어제 오후, 연수를 위해 짐을 챙겨 막 나가려던 참에 전화를 한 통 받았다. "대구에서 그 학교 배정받아 전학왔는데요. 내일 어떻게 하면 될까요?" 에구 전입생이구나. 내일 또 바쁘겠구나. 특이하게 아버지가 전화를 하셨네. "공문이 왔는지 모르겠는데 일단 내일 학교로...뚜-뚜-" 또 전화가 끊어졌다. 밧데리 수명이 다 되서 툭하면 이런 식으로 끊어진다. 켜면 꺼지고 켜면 꺼지고를 몇 번 반복하다가 포기해버렸다.

오늘 아침, 학교에 가자마자 바로 행정실에 그 부모님 전화번호를 물어보았다. "알아보니 어제 오후에 공문이 왔다네요. 전출 서류 가지고 학교로 오시면 됩니다. 제가 1,2교시 수업이 있으니 11시쯤 오시면 안 기다리셔도 될 것 같네요. 그런데 몇 학년이죠? 선택 과목은?" 2학년 문과에 일어, 체육선택. 그럼.... 4,5,6 반엔 특수아가 있으니 우리 반에 넣으면 되겠군.

11시! 공문을 만들어 교무실로 내려갔더니 눈이 예쁜 뽀사시한 아이가 아버지와 함께 서 있다. 이리 저리 뛰어다니며 결재를 받고 아버님과 아이에게 "제가 담임입니다" 했더니 깜짝 놀라는 눈치. ㅋㅋ "교복이 아직 준비가 안 되었나요? 요앞 교복사에 가시면 바로 사실 수 있을 겁니다. 그럼, 교복사에 한 번 가보시고 어차피 급식도 안되니까 지희랑 천천히 점심 드시고 오시지요. 지희만 보내셔도 되구요. 5교시 수업부터 들어가면 될 듯 하니 1시쯤 오시면 될 것 같습니다."

그리곤 바로 조례. 4.3이라 '곤을동 봄날'이라는 지식채널을 보여주고 "애들아, 오늘 아침엔 선물이 있다. 특히 혼자 앉는 진주에게!" 하면 운을 뗐다. 지난 토요일, 처음으로 4월 자리배정 제비뽑기를 했는데 진주는 저만 혼자 앉게 생겼다고 표나게 툴툴거렸다. 그게 1분단 제일 앞자리라서 그런 건지, 혼자 앉게 되어서 그런 건지 분간은 잘 가지 않았지만 "사물함까지 너무 멀단 말예요" 라는 말에 앞자리가 싫은 거겠지 생각했다. '혼자 앉은 진주에게 주는 특별 선물'이란 말에는 그런 정황이 깔려있었다. 아이들은 "뭔데요, 뭔데요?" 하며 눈동자를 굴렸고, 재미를 위해 나는 잠깐 뜸을 들인 후에 "우리 반에 전학생이 있다"라고 말해주었다. 아이들의 폭발적인 반응!!! "우와 진짜요? ", "진주야, 축하해~", "근데 어디서 오는 거예요? 이뻐요?" "아직 나도 잘 몰라. 근데 얼굴은 그 나이 때 샘만큼 예쁘더라" "우~우" 아이들이 이렇게까지 열렬이 환영해주다니, 다른 반에 넣었으면 우짤뻔했노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영아, 뭔가 환영하는 이벤트를 준비해볼래?"

"전학생, 언제 와요?", "왜 아직 안와요?" "공부는 잘 한데요?" 이런 저런 질문거리를 가지고 죙일 아이들은 뻔질나게 교무실을 드나들었다.

약속한 1시, 지희는 새로 산 교복을 입고 5층 교무실로 찾아왔다. "조끼는 없어서 주문해뒀어요. 타이슬링은 어디서 사야하나요?" 상기된 얼굴로 쑥스러움을 감추며 물었다. "응, 아이들에게 물어봐. 아마 요 앞 서점이나 매점에 있을거야. 덥제? 시원한 물이라도 한 잔 마시거라" 마침 5교시가 근현대사 강*정샘 수업이라 지희를 소개할 시간을 부탁하려고 교무실 앞문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마침 반장과 부반장이 아이스크림, 음료수 등을 사가지고 교실로 가고 있었다. "뭐야, 그거? 혹시 반장 부반장 턱 내는 거야? 그거 샘이 절대로 못한다고 했잖아. 금품 향응 제공하면 당선무효!!" "아니 샘, 그게 아니구요, 샘이 전학생 이벤트 준비하라고 해서... 뭐 따로 할 것도 없고 해서..." "일단 알았다." 지희를 데리고 교실로 갔다. 아이들의 열화와 같은 반응. 내가 대충 소개를 하고 지희에게 말할 시간을 주었지만 부끄러워하며 머뭇머뭇... 아무튼 아이들은 좋아라 하고.

그렇게 우리 반은 완벽한 짝을 갖춘 34명이 되었다. 가만...어차피 계발활동 부서도 정해야할텐데 저 녀석을 우리 동아리에 넣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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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필자에게 한국 역사상 가장 멋진 명언이 무엇이냐 물어본다면, 만해 한용운이 젊은 벗들과 술을 마실 때마다 “이놈들아, 나를 매장시켜 봐라”고 했던 말이 최고의 격언이라 답하겠다. 문자대로 해석하자면 “나보다 독립운동을 더 열심히 해서 나를 무색하게 해 보라”는 이야기지만 넓은 의미로는 “나의 권위를 받아들이지 말고 너희들 자신의 길을 찾아라”는 뜻이었을 것이다.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종파를 처음 세운 이)를 만나면 조사를 죽여라”는 원칙의 선승다운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종교를 불문하고 참된 스승이 제자에게 꼭 해야 할 최고의 교훈이기도 하다. 그 이상의 사도(師道)는 없다. 스승이든 하느님이든 부처님이든 권위라는 것을 한 번도 의심해보지 않은 사람은 충분한 의미의 ‘어른’이 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부모·교사, 그리고 군 장교의 말이라면 무조건 받아들이고 복종하는 사람이라면 결국 아우슈비츠 수용소 가스실에서 윗사람의 명령에 따라 수인들을 대량으로 죽인 직후 커피를 마시면서 모차르트 음악을 편안하게 들을 수 있는 인간형이 될 수도 있다. 절대 순응이란 양심과 이성이 있는 인간이기를 포기하는 일이다.

구미 학생들과 한국인 학생들이 수업시간에 교사와 함께 그룹으로 서로 토론할 때, 한국 학생들은 자신들의 독자적 생각을 논리적으로 정리하여 참석자들을 설득하기가 어렵고, 반론을 받았을 때 주장을 펼쳐나가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고들 말한다. 토론 능력, 독자적 논리력을 개발시키자면 기존의 권위가 부정될 가능성을 허용해야 한다. 그러나 이 가능성은 한국 청소년들에게 부정되는 것이다. 유럽의 많은 고등학교에서는 물론 중학교에서까지도 학생회 대표자들이 학교 운영위원회 회의에 교사·학부모 대표자들과 함께 참석해 학교 운영과 관련된 제반 사항을 자유롭게 토론하고, 교사·교장과도 설전을 벌이면서 자신들의 토론 능력을 적극적으로 키워 나간다. 곧, 교육 환경은 제도화된 권위 부정, 제도화된 ‘반란’을 허용할 뿐만 아니라 이를 장려하기까지 한다. 학교 운영 사항은커녕 자신의 머리 길이와 색깔마저도 스스로 결정할 권리가 없는 한국 청소년에게 이는 남의 나라 이야기라기보다는 달나라 이야기에 가까울 것이다.

필자가 사는 곳에서는 고등학생들은 물론 고학년의 중학생까지도 활발하게 참여하는 청년·청소년 조직이 정당마다 있으며, 중·고등학교 학생회 선거 때 정당 소속별로 선거전을 벌이기도 한다. ‘정치운동 하는 고등학생’ 이야기를 하면 아마도 일제 강점기 고등보통학교 학생들의 사상서클 정도가 연상될 것이다. 오늘날 우리 청소년에게는 정치활동 등을 통해 자아를 확립한다는 것은 꿈도 꾸기 어려운 일이고, 주관도 개성도 아무 의미도 없이 학습 노동에만 강제로 ‘몰입’했다가 비인간적 경쟁 속에서 인생 비관에 빠지지만 않아도 다행일 것이다. 자동차를 조립하는 성인 노동자에게는 적어도 노조를 만들어 공장 주인에게 ‘대꾸’할 권리라도 있는 것이다. 경제적 민주주의가 없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성인에게는 그나마 정치적·사회적 의미의 민주주의가 존재하기라도 하지만, 훈육의 대상으로 간주되어 ‘시키는 대로’만 해야 칭찬받는 청소년에게는 이것마저도 박탈된다.

새롭게 진보 깃발을 든 진보신당에는 학습 노동자인 청소년도 그의 일터인 학교와 나아가서 사회·정치의 공론의 장에서 동등한 주체가 될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일에 노력하자고 조언하고 싶다. 고등학생이 교장에게 필요할 때 “당신은 이 점이 틀렸다”라고 주저 없이 의견을 말할 수 있는 것이 진정한 선진국이다!


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국립대 교수·한국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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씀바귀

- 정두리

쌉쌀한 맛

씁쓸한 맛

쓰다고 씀바귀래요

엄마는 씀바귀 나물 먹고 입맛이 난다 했어요

 

언 땅을 뚫고 견딘 힘

이른 봄에 일어설 수 있는 고집쟁이

씀바귀의 힘은 쓴 맛에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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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울 2008-04-09 14: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엊그제, 봄맞이꽃도 구경할 겸해서, 틈에 있는 씀바귀를 한틈 베어 물었습니다. 혀를 관통하여 가슴까지 다가서는 묵직하고 깊은 맛. 그 여운이 너무도 강열하더군요. 어쩌면 몸의 절반이 그 강열함으로 물들었을지도. ㅎㅎ. ㅡ 그 덕에 지난 겨울을 아예 잊어버렸는지도 모르겠어요. 씀바귀의 힘은 쓰으은 맛에 있어요. ㅎㅎ
 

항상 좋은 말씀만 드리고 싶은데 오늘은 샘들을 불편하게 해드릴 이야기를 두 가지나 하게 생겼네요. 송구한 마음부터 전합니다.

첫 번째 말씀드릴 것은 소풍에 관한 것입니다. 반별로 가게 될지 단체로 가게 될지 결정되지 않았을 때 반 아이들에게 넌지시 근처 산에 쑥을 캐러 가면 좋겠다고 말을 했더랬습니다. 반 아이들 몇 녀석이 쑥 캐러 가지 말고 예쁜 스카프 두르고 벗꽃구경 가자고 농담처럼 이야기를 하더군요. 아무튼 지난 토요일 회의의 결과 단체로 가는 것으로 결정이 되었고 장소도 거의 확정이 된 상태입니다만, 제 마음속엔 아이들과 봄 한 나절 쑥을 캐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작은 소망'이 사그러들지를 않네요. 반별 소풍을 못가게 될 지도 모르고 가게 되더라도 가을엔 쑥이 없기 때문인가 봅니다. ㅠㅠ 샘들께서 허락해주신다면 저의 이 작은 소망을 이룰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7반만 따로 간다면 너무 불편하실까요? 우리반을 제외한 다른 반 아이들의 불만은 별로 없을 것 같습니다. 예쁘게 치장하는 것 포기하고 체육복에 칼이랑 시커먼 비닐 봉지 들고 쑥캐러 가는 걸 부러워할 18세는 별로 없을 것 같거든요.^^ 지난 토요일 우리반 아이들에게는 "무조건 금정산 갈거다" 고 엄포를 놓아두었기 때문에 우리 반도 별 무리는 없을 것 같구요. 저도 가끔 독재를 즐긴답니다. 2차에는 반드시 합류하겠습니다. 샘들~ 이 일만 어떻게 양해가 안 될까요?

두 번째는 저희 반 야자에 관한 것입니다. 도망가는 녀석들이 생기고 야단을 치는 과정에서 이건 아니다 싶어 학급 투표를 했습니다. 야자에 대해 제가 별로 엄격하게 하지 않기 때문에 그래도 '지금처럼 운영하자'에 표를 던지는 녀석이 반은 넘을 줄 알았는데 완전 오산이었습니다. 23명이 '완전자율'을 원하더군요. ㅠㅠ 이미 엎질러진 물이라 담임 체면에 결정을 번복할 수는 없고 채찍을 당근으로 바꾸어 성적이 떨어지지 않도록 하는 방법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성적이 떨어지거나 다른 반 친구를 꼬셔서 도망가도록 하는 경우 야자자유권을 박탈하겠다는 엄포도 놓았구요. 그럼에도 분명 저희반 야자 참여학생의 수는 오늘부터 서서히(또는 급격히) 떨어지리라 예상됩니다. 본의 아니게 다른 반의 학습분위기에 영향을 줄 수도 있을 것 같구요. 앞으로 담임으로서 최선을 다 해 아이들의 학업에 신경쓰도록 하겠습니다. 걱정되시더라도 참고 지켜봐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꾸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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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오늘부터 야간 자율 학습 시간에 남느냐, 가느냐는 완전히 너희들 결정에 달렸다. 자유로운 의사결정과 그 일의 결과에 대한 책임, 이 두 가지를 온전히 너희에게 돌려주는 수 있게 되었구나. 우리는 이 사안을 투표로 결정했고 너희 중 23명이 '자유'의 손을 들었지. 담임으로서 부담스러운 부분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너희들의 올바른 판단에 박수를 보낸다. 그렇지만 애들아, 담임으로서 나는 너희들의 학교공부에 얼마간 책임을 느끼는 사람이고, 그 때문에 너희들의 미래에 대해서도 어떤 두려움을 느낀단다. 이 두려움이 너희들의 공부와 성적에 대한 걱정에서 비롯된 다는 것은 짐작하겠지? 그래서 어제 종례시간에 '우리반 모두 야자를 자율로 하면서도 학교 성적이 떨어지지 않도록 하는 방법을 한 가지씩 생각해오자'고 제안했고 사실 나는 어제 오늘, 계속 이 두 가지 문제에 대해 걱정하고 생각하고 고민하고 있단다. 그 결과 담임으로서 약속 받고 싶은 것이 다음과 같은 것이란다. 자유를 얻는 대신 너희들도 이 몇 가지 약속을 해주었으면 한다.

1. 우선 부모님의 동의를 얻도록 하자. 담임인 나보다 훨씬 너희들의 공부와 성적에 걱정이 많으신 분들이니 당연히 야자에 대한 의견을 들어보야아한다고 생각한다. 만약 부모님께서 너희들 생각과 다르셔서 강제로라도 야자를 해야한다고 여기신다면 최선을 다해 믿음을 드리렴. 너희들이 할 수 있는 약속을 하고 각오와 다짐을 보여드리렴. 그래도 부모님께서 야자를 강제로라도 꼭 하기를 원하신다면 나로선 부모님의 의견을 따르는 수 밖에 없겠다. 너희들이 부모님을 설득해야한다. 그것은 너희들의 행동에 달렸다. 부모님께서 "우리 아이는 자율적으로 공부하지 않습니다. 억지로라도 야자를 시켜주세요"라고 의사를 전해오신다면 그 날부터 너희의 자유는 사라지게 될 거야.

2. '성적이 떨어지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담임 혼자만의 멍청한 기우라는 걸 결과로 증명해주어야한다. 다시 말해서 야자를 강제로 하지 않아도 너희들 스스로 공부를 잘 해낼 수 있다는 것과 학습의 공간이 반드시 학교일 필요는 없다는 사실을 눈에 보이는 결과로 보여달라는 것이지. 그래서 제안한다. 매 시험마다 학급등수가 5등 이상 떨어지는 사람은 다시 '강제야자'로 돌아가는 것으로. 성적이 5등 이상 떨어지는 것, 분명 공부를 소홀히 했다는 증거이고 그럴 땐 공부의 습관과 방법과 환경을 바꿔야할 필요가 있으니까. 3월 한 달 동안 학원 다닌다고 야자 빼준 녀석들에게 내가 말했었지? "성적 떨어지면 무조건 야자복귀"라고. 모두 이 조건을 수락하고 야자를 하지 않았고. 지금 우리 반은 야자를 자율로 하는 것으로 결정했고 그렇다면 이 정도의 조건은 너희들 모두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사실 내신은 계열별/과목별 석차이기 때문에 반 등수가 의미있는 건 아니지만 공부에 대한 노력의 정도는 간접적으로 드러내준다고 본다. 이 정도 약속도 못한다면 나 역시 '야자 완전 자율'을 다시 생각해 볼 수 밖에 없다. 이런 일, 나도 일어나지 않길 바래. (학급 안에서 공부로 너희들의 경쟁을 조장할 생각은 전혀 없다는 것, 알지? 반등수는 당근 본인에게만 알려줄 것임)

3. 수업시간에 최대한 집중하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다오. 야자도 자율로 하는 마당에 수업분위기마저 나쁘다는 이야기가 들려오면 샘은 너무 불안할 것 같아. 다른 교과 샘들이 우리반 수업 분위기 좋다고 칭찬하는 이야기들 많이 듣게 해주라. 대답 잘 하고 질문 많이 하는 반이라는 소리 들으면 너희들에 대한 믿음이 팍팍 생기겠지? 야자를 자율로 해도 아이들 스스로 이렇게 잘 한답니다~ 다른 반 선생님들께 자랑하고 싶겠지? 수업시간에 집중해서 잘 듣는 것이야말로 성적을 올리는 지름길이고 수업시간에 열심히 안하면서 '열심히 공부합니다'라고는 절대로 말할 수 없다고. '수업집중' 이것만 잘 지켜도 반에서 5등이상 떨어지는 일은 없을거야.

4. 이건 하나마나 한 이야기지만 절대 다른 반 아이들을 꼬셔서 같이 가서는 안된다. 각 학급은 그 나름대로의 규칙이 있다. 우리 반이 자율이라고 다른 반 아이의 도망을 종용하는 짓은 샘이 절대로 용서하지 않는다. 다른 반 아이들이 가고 싶은 맘 생기지 않도록 너희가 더욱 신경쓰거라. 야자가 시작되는 6시 10까지 남아있다가 그제서야 슬슬 계단 내려가는 녀석들 역시 샘한테 혼난다. 다른 아이들 공부를 방해하는 행동이니까.

이렇게 쓰고 보니 원래 그랬어야하는 야간자율학습을 '자율'로 해줘놓고 샘이 엄청 많은 조건과 생색을 내는 듯이 보이는군. 사실 나도 홀가분한 면도 있다. 우선 매일 너희들과 '간다 못간다, 보내달라 안된다' 하며 실갱이를 하지 않게 되어서 너무 좋다. 아프다고 할 때, 생일이라고 할 때, 나라고 왜 보내주고싶지 않았겠냐. 오죽하면 '마 도망가고 야단 맞아라'라고 까지 했을까? 몸이 아프거나 1년에 한 번밖에 없는 생일이라고 할 때, 그런 날까지 학교에 남아서 공부하라고 했던 내 마음도 사실 편치 않았다. 힘들었지.

너희들이 도망가면 벌을 주어야하는 이유가 없어졌다는 사실 역시 너무 좋다. 야자 도망갔다고 너희들을 무슨 범죄자처럼 바라보며 잔뜩 찡그리고 야단칠 때, 너무 갑갑했다. 너희들도 기분 꿀꿀했지? 도망간 다음날은 들킬까봐 잔뜩 쫄아서 샘 얼굴 보기도 힘들었지? 우리가 서로를 째려보지 않게 되어서 너무 다행이야. 사실 혹시 누군가 도망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 때문에 반 전체를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지 않게 된 것, 이게 내가 얻게 된 가장 큰 선물이지. 벌을 상으로 바꿀 수 있게 된 것도. ^^ 앞으로 야자를 열심히 하는 녀석들에게는 다음과 같은 상을 주겠다.

우선, 4월부터 매달 야자를 한 번도 빠지지 않는 녀석들에겐 좋은 책을 한 권씩 상으로 주겠다. 열 달이면 열 권의 책을 선물로 받겠구나. 어때? 상으로 책을 받으면 정말 좋겠지? 예쁜 상장도 만들어주마. 책이 지겹다면 간혹 영화를 보여줄 수도 있고.

그리고 매달 야자 참여 횟수를 참고로 해서 [학교생활기록부] <행동발달상황난>에 긍정적인 기록도 해주지.ㅋㅋ 수시로 원서 넣을 땐 이런 내용이 아~주 긍정적으로 작용한다는 것, 알고 있지?

매일 야자에 누가 참여했나 기록하는 건 선도부장인 우리 해인이가 하는 게 좋겠다. 이건 부담없이 할 수 있겠지, 해인아? 그런데 니가 야자에 빠지고 싶을 땐 어떡하냐? 선물도 받을 겸, 가능하면 빠지지 말거라~ ^^

하루하루가 모여서 한 달, 두 달이 되고, 그렇게 일 년 이 년이 간다. 2학년 때의 내신은 절대로 3학년에서 바꿀 수 없지. 이제 거의 성인인 18살 너희들, 너희들의 선택과 판단이 옳았음을 증명할 수 있는 자율적으로 행복한 1년이 되었으면 좋겠다.

덧붙임... 이건 좀 다른 이야기이긴한데... 야자완전자율, 너희들의 큰 소원 한 가지를 들어주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담임으로서 나도 너희들에게 소원이 생길 것 같다. 그것이 무엇이 될지는 아직 나도 모르지만. 아무튼 샘이 너희들에게 소원이 생기면 너희들도 나의 작은 소원 세 가지 정도는 넉넉한 마음으로 들어주었으면 한다. 약속컨데 절대로 너희에게 절대적으로 불리하거나 불가능한 일은 아닐 것이다. 야자도 완전 자율로 허락한 마당에 몇 가지 소원 정도는 들어줄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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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덕화 2008-03-31 16: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멋져요. 우리 아이도 야자 하기 싫다고 해서 일주일에 두 번은 겨우 빠져 나오는 데, 선생님도 아이도 괴로운 일을 과연 무엇때문에 하는지, 단체 혹은 조직의 경직성을 느낍니다. _()_

해콩 2008-04-01 00: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쎄... 사실 이게 그리 녹녹한 문제는 아니랍니다. 지난 학교에서 저도 계속 야자를 강제로 시켰었고, 올해는 별안간 벌어진 일에 당혹스런 상태에서 뒷수습을 하고 있는 수준이죠. 입시제도가 바로 서지 않는 한 고등학교 교육이 제자리를 찾기는 어렵고 소위 말하는 일류 대학들이 3불정책을 폐지를 요구하고 교육정책이 그에 맞춰주는 현상황에서 입시제도가 바로 서길 바라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깝지 않을까... 그래서 지금은 우리반 아이들 오늘은 몇 명이나 남았을까 걱정하는, 그런 수준의 담임노릇입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뭘까요?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