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글샘 > 꼴통과의 전투 돌입
우리 반엔 복학생이 한 명 있다.
뭐라고 붙일 이름이 없어서 복학생이라고 하긴 했지만, 작년에 다른 학교에 입학했다가 며칠만에 때려 치우고 놀고, 다시 우리학교에 신입생으로 들어왔다.
그런데도, 아이들이 알고 형이라고 부른다.
입학해서 며칠 만에 결석을 했다. 불러서 몇 마디 상담을 하다가 복학생인 걸 알았고, 잘 다니라고 하고 말았다.
3월에 결석 한두개, 4월에 결석과 결과 한두개, 이렇더니 5월부텀은 작정하고 학교를 빠진다. 원래 학교를 싫어하거나 반항적인 아이는 아니라서 지도가 가능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점점 심해지는 것 같아서, 오늘 마음을 먹고 싸움을 걸었다.
싸움이랬자, 퇴학을 시킬 것도 아니고, 처벌을 할 것도 아니니, 내 마음과의 싸움이라고 해야 하겠다.
녀석에게 그간의 경위서를 적으랬더니 이렇다.
선생님 죄송합니다. 결석하게 된 이유는 학교오기 귀찮고, 친구들과 놀고 싶어서 자주 학교를 빠지고, 수업을 빠지게 됐습니다. 처음엔 학교 잘다녀봐야지 하고 일찍 일어나서 등교를 하게 됐는데, 점점 늦잠자게 되고, 수업도 지루해져서 조금씩 학교 빠지게 되었습니다. 놀다가 새벽 늦게 집에 와서 늦잠자고, 일어나기 귀찮아서 빠진 적도 있습니다. 죄송합니다. 학교 빠지고 놀 땐 내일은 꼭 가야지 생각은 했는데, 다음 날도 놀게 되고 친구 집에서 자고, 그러다가 계속 놀게 됐습니다. 죄송합니다. 잘 때 되면 일찍 일어나서 학교가야지 생각하는데, 아침돼서 눈 뜨면 가기 싫고 그래도 참고 교복입고 가방 챙기고 학교 가는 길에 점점 가기 싫어져서 딴데로 빠지고 친구집에 놀러 갔습니다. 자꾸 학교 가자고 생각하면 놀고 싶어지고 더 자고 싶어지고 그래서 자주 결석하게 됐습니다. 죄송합니다. 다음부터 학교 빠지는 일 없이 잘 다니겠습니다.
이렇게 적었다. 이런다고 잘 다닐 리는 없다.
이 아이를 믿지 못해서가 아니라, 근본적으로 해결된 것이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아이의 부모는 입에 풀칠하기 어렵다. 막노동과 식당일은 힘든 반면 벌이는 적다. 누나는 대학생인데 아이와 별로 친하지 않다. 요즘은 형제가 많다고 꼭 든든한 건 아니다. 집에서 아이에게 적절한 모범이 되고 지도를 할 사람이 아무도 없다. 아이가 학교에 갔는지 자주 결석을 하는지 챙길 사람이 아무도 없다. 그리고 아이는 학교오는 길이 만만치 않다. 대도시 속의 오지에 살다 보니 버스 타러 나오는 데 이십 분이 넘게 걸린다. 그리고 버스는 한 대 놓치면 무조건 지각하도록 간만에 온다. 나도 버스 타려다가 안 오면 약속가기 싫은 적 많았다.
그래서 일단 아이를 데리고 도서관으로 갔다. <너, 외롭구나> 책을 빌려 주니, 사서 아주머니께서 '어쩐 일로 특별히 선생님과 책을 빌리러 왔니?'하고 물으신다. 눈치가 뻔하면서...
휴대폰을 빼앗아 놓고, 그 책을 다 읽고 나에게 편지를 한 통 적어 오라고 했다.
커피를 한 잔씩 뽑아 마시면서, 학교 다니는 것은 사실 그리 중요한 일이 아니고, 선생님도 부모님도 세상 무엇도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했다.
세상이라는 풍경화에서 학교가 지워져도 다른 배경은 그대로 남고,
세상이라는 풍경화에서 부모가 지워져도 다른 배경은 그대로 남고,
세상이라는 풍경화에서 친구가 지워져도 다른 배경은 그대로 남는다.
우리(WE)는 어차피 나(ME)의 그림자라는 이야기 기억나느냐 물었더니 기억 난단다. 다행이다.
세상이라는 풍경화에서 내가 지워지면 그림은 존재하지 않는다.
결국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건 나라는 걸 생각하고, 너를 만나고 그 느낌을 편지로 한 통 적어오면, 휴대폰과 교환하기로 했다.
이 녀석과 싸움에서 이기려면 마음 독하게 먹어야 하겠다. 자꾸 정이 가는 녀석이기 때문에, 내가 녀석에게 이길 것이 아니라, 스스로 자신을 발견하도록 하는 것. 자신을 바로 보는 것. 자존감을 갖도록 하는 것. 그것이 이 싸움의 끝이다.
아니, 끝없는 이야기가 될 것이다.
답답하긴 하지만 유월의 훈풍이 향긋한 아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