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바람구두 > 펌/고3직업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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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샘 2006-03-28 10: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싫다... 싫어... OTL

BRINY 2006-03-28 11: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난 시간에 위만이 고조선을 계승한 증거 얘기하다가, 위만이 처세술 좋아서 조선사람인 척 했는 지 어떻게 알아요, 흥, 다 주입식 교육이야라고 말하던 녀석 생각이 나네요.

해콩 2006-03-28 11: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 그야말로 OTL입니다.

해콩 2006-03-28 23: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BRINI님은 역사샘이셨군요~ 반갑슴돠! 꾸벅 -- __ --
 

학교다. 사실 7시 반쯤 도착했다. 어제 회식을 하고 EBS의 [지금도 마로니에는] 보고 1시에 잠들어서 아침 요가를 빼먹었다. 마음이 가는 데로 가리라 맘 먹었기에.

책상 위에 놓인 쪽지. 어제 8교시 보충 수업 담당 샘께서 올려 놓은 쪽지. 허락해준 녀석 말고도 10명이 보충을 빠졌다. 감정을 다스리기 위해 새벽 요가를 나가는데 맘 속 깊은 곳에서 조금씩 보글보글 소리가 들리더니 이내 부글부글한다. 어째야할까?

사정있는 아이들은 야자도 거의 빼주고, 아프다는 아이들은 보충수업도 빼고 병원 보내며, 매일 야자를 하는 아이에 한해서지만 한 달에 한 번 야자 조퇴할 권리도 인정해준다. 그런데도... 이건... 이건 어떻게 이해해야하는 걸까?

솔직히 어느 선에서 야단을 쳐야할지 모르겠다. 야단치다보면 제풀에 자꾸 성질이 올라 부글부글... 폭발하는 성격인데. 어쩌나..

"너희는 앞으로 보충이건 야자건 다 하지마라!" 해야하나? "너희에게 주었던 자율을 모두 회수한다"라고 해야하나? 또한 간수와 죄수처럼 옥죄고 감시하고 처벌해야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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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콩 2006-03-28 11: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침 듣기 방송시간, 우리 반만 방송 꺼달라하고 일단 전체를 대상으로 '해당없는 너희들에겐 진짜 미안하다'고 하며 잔소리 시작~ 다시 그 녀석들만 밖으로 불러내서 또 한 잔소리~ 그리고 별로 좋아하지 않는 반성문! "6교시 한문 수업 전까지 써오너라. 수업할 때는 너희들 얼굴 보며 하고 싶으니까"

그래도 그래도 말이다, 신기하게 밉진 않네. 왜? "양심에 손을 얹고 한 번이라도 보충, 야자 짼 적 있는 녀석들은 나오너라" 했더니 어제 도망간 녀석들 말고도 몇몇이 같이 나올 만큼은 정직?하고, 선택의 여지가 있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하는 보충과 가끔은 죽도록 싫은 날도 있음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야자. 대한 민국 고등학교 체제 내에서 그렇게 늘 시달리는 아이들이 맘 속 깊이 측은하기 때문이며 그 속에서 '선생'노릇하는 나의 '원죄'때문이지.

이 아이들을 미워할 자격이 내겐 없는 것 같다.

BRINY 2006-03-28 10: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원죄인가요. 원죄...

해콩 2006-03-28 23: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감수해야할 원죄! 사실 논리적으로 따지자면 아이들에게 우리가 어떤 합리적인 근거를 댈 수 있을까요? 보충수업과 야자에 대한..
 


수입 바나나의 비밀을 아십니까?

심하라, 당신의 구매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

       조태용(runkorea) 기자   
▲ 바다 건너 수입 되었으나 국산 과일보다 싸고 싱싱한 바나나. 그 이유는 무얼일까?
ⓒ 조태용

시장을 본다고 다녀온 아내가 바나나 한 송이를 사가지고 왔다. 다른 과일은 가격이 비싸서 가장 저렴한 바나나를 사가지고 왔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가격표에 3천원이라는 글자가 선명한 것에 비하여 그 크기는 정말 푸짐하다. 왜 하필 수입 바나나를 사왔냐고 한 마디 했더니 아내는 "싸니까?"라고 항변한다. 싸니까 산다, 단지 가격이 저렴하기 때문에 바나나를 구입해야 하는 것일까? 그래서 나는 아내에게 바나나에는 가격 이외에 고려해야 할 것이 있다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 이 글을 쓰게 되었다.

오래 전, 고급 과일이었던 바나나가 지금은 서민들이 먹는 가장 대표적인 과일이 돼버렸다. 그만큼 대표적인 수입 농산물 중 하나가 바로 바나나다.

한때 바나나를 먹어본 경험만으로도 자랑이 되던 시대가 있었다. 나 역시 바나나에 대한 추억이 있는데, 때는 70년대였다. 하와이 건설노동자로 나갔다가 귀국한 삼촌이 바나나를 가져왔던 것이다. 그래서 난생 처음 바나나라는 값비싼 수입 과일을 먹어볼 기회가 나에게도 생겼다.

부드러운 속살에 달콤함, 그리고 은은하게 퍼지는 바나나 향은 시골 촌놈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음은 당연한 일이다. 그 후로 오랜 시간 동안 진짜 바나나를 먹지 못했는데 다행히 슈퍼에는 바나나 맛이 나는 과자가 있어 바나나가 먹고 싶을 때마다 과자로 만족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시간은 흘러 어느새 바나나는 필리핀에서는 너무나 먼 지리산 산골 구례에서도 가장 저렴한 과일이 되었다. 그동안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바나나 가격이 저렴해진 이유 중에 하나를 알 수 있는 것이 고등학교 지리 교과서에 있다.

단작, 외래종, 연작이 합쳐질 때

바로 플랜테이션 농업이다. 지리 선생님은 플랜테이션 농업에 대해 당시 이렇게 설명했다. "플랜테이션 농업은 다국적 기업이 자본과 기술을 제공하고 현지의 값싸고 풍부한 노동력을 이용해서 단일경작(單一耕作)을 하는 기업적인 농업 경영"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아니, 이 말에 무슨 문제가 있는 것일까? 또한 바나나와는 무슨 관련이 있는가?

바나나는 플랜테이션 농업의 대표적인 농산물이다. 우리가 먹는 대부분의 바나나는 필리핀에서 생산된다. 필리핀에서 바나나의 주요 산지는 민다나오 섬인데 이곳은 과거에는 옥수수와 쌀이 생산되었던 곳이다. 즉 식량이 생산되었던 곳이다. 그러나 농산물 다국적 기업에 의하여 일본을 겨냥한 바나나 생산지로 변하였다.

1960년대 후반부터 외국자본과 필리핀 정부, 현지 지주들의 힘으로 광대한 농장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플랜테이션의 장점인, 그 지역의 풍부한(?) 노동력을 이용하여 저임금과 열악한 환경에서 농사를 짓도록 강요했다. 식량을 키우던 곳에 바나나를 키우게 함으로써, 돈이 없으면 생존을 할 수 없게 된 사람들은 바나나 농장에서 어쩔 수 없이 일하게 된 것은 자명한 수순이다.

▲ '원산지 필리핀' 표시가 선명하다. 대체 필리핀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지?
ⓒ 조태용
앞서 말한 것처럼 플랜테이션 농업은 단작(單作)을 한다. 단작이라는 것은 단일 작물을 한 곳에서 집중적으로 재배한다는 것인데, 농업에서 단작은 곧 병충해에 취약함을 뜻하기도 한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바나나를 좋아하는 바이러스나 벌레가 엄습했다고 가정했을 때 주변에 단일 작물은 그들의 쉬운 공격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또한 한 작물을 지속적으로 심게 되면 연작장애가 일어나 병충해에 약하게 된다.

또한 필리핀 토종 바나나는 크기가 작은 바나나였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가 먹는 것은 큼지막한 바나나다. 즉 우리가 먹는 바나나는 필리핀 사람들에게는 외래종인 것이다. 외래종 바나나를 심다 보니 토착 기후에 취약하다.

그래서 단작, 외래종, 연작까지 겹치니 다량의 농약 사용이 불가피하다. 또한 수출을 위하여 미끈하게 벌레자국 하나 없이 키워야 하므로 많은 농약을 사용하는 것은 불가피하다. 바나나 경작지는 비행기로 엄청난 양의 농약을 살포하여 재배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결국 필리핀 농부들은 농산물 다국적 기업에 종속되어 비행기로 뿌려지는 다량의 농약을 뒤집어쓰고 농사를 짓게 되는 것이다.

필리핀 노동자의 열악한 노동조건

또한 값싼 바나나의 이면에는 필리핀 노동자의 열악한 노동조건이 있다. 이들의 하루 일당은 1.1달러 수준이라고 한다. 그 돈으로 그들은 농약으로 오염된 몸을 치료한다. 가족의 생계를 이어가기에 턱없이 부족한 돈이다. 그들의 저임금이 있었기에 3천원만 주면 푸짐한 바나나가 우리 식탁에 올라오는 것이다.

더구나 자연상태에서 바나나는 사과나 배보다 쉽게 상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어찌된 영문인지 시장에서 판매하는 바나나는 국내산 과일보다 더욱 싱싱하다. 자연에서 이런 일은 불가능하다. 결국은 많은 방부제와 살충, 살균을 위한 농약이 살포되었음을 알 수 있다.

알려진 농약으로는 '데민'이라는 농약이 있는데, 이것은 골프장에도 뿌려지는 농약이다. 바나나가 우리 손에 껍질이 벗겨지기까지 이러한 역사와 과정이 있었던 것이다.

우리 나라에서 바나나가 갑자기 저렴해지기 시작한 것은 1991년이다. 수입개방에 의하여 바나나가 대량 수입되었기 때문인데 이로 인해 바나나는 저렴한 수입 과일의 대명사가 되었다.

'페어트레이드'가 필요하다

그럼 필리핀 농민들은 바나나가 많이 팔리길 원할까? 그들은 결코 그런 바나나 생산에 종사하기를 원하지 않는다. 가까운 일본에서는 필리핀 농민과 연대하여 이른바 '공정한 무역(Fair Trade)'를 통해 정당한 가격을 지불하고 구입하는 시민단체와 매장이 있다.

한 필리핀 농민이 일본에 보낸 한 통의 편지가 계기가 됐다고 한다. 즉, 당신들이 바나나를 구입하기 때문에 우리가 농약과 저임금에 시달리고 있다는 폭로가 있었던 것이다. 그 후 일본에서는 바나나에 대한 인식이 전환되었고, 정당한 가격을 주고 구입하는 '공정한 무역'의 시발점이 되었다.

우리가 먹는 수입산 과일 대부분은 이런 방식으로 재배되는 것들이다. 요즘 많은 양이 수입되고 있는 오렌지의 경우, 주 생산지는 미국의 캘리포니아다. 캘리포니아는 미국에서 가장 많은 농약을 사용하는 곳으로 유명하다. 프랜시스 라페가 쓴 <굶주리는 세계>(창비)에 따르면, 미국은 전세계 농약 사용량 180만 톤 중에서 90만 톤의 농약을 사용하는데, 이중 25%가 캘리포니아에서 사용된다고 한다. 캘리포니아 오렌지를 좋아하는 분들은 꼭 이 사실은 알아두기 바란다.

바나나의 신선함과 싼 값에는 이유가 있다. 그 이유에는 엄청난 농약과 노동력 착취가 있음은 당연한 일이다. 여러분은 단지 바나나를 가격이 싸다는 이유로, 또는 아이들이 좋아한다는 이유로 구매하지만, 당신의 구매가 필리핀 농민 착취의 기반에서 이루어지며, 알게 모르게 다국적 농업 기업들이 그들을 지속적으로 착취하는 데 도움을 준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당신의 구매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
'페어트레이드'란 발전도상국의 유기·무농약농산물이나 수공예품을 공정한 가격으로 거래하며, 일을 만드는 것부터 기술원조까지 하는 종래의 무역과 대극을 이루는 무역으로, 세계의 NGO들이 중심이 되어 벌이고 있는 풀뿌리 국제경제활동이다. 공정한 가격으로 구매해주기를 원하는 개발도상국 생산자들의 요구를 부응하여 만들어낸 것으로 고용과 경제적 자립과 빈곤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무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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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중가인 2006-03-26 0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열대나라에서는 바나나는 진짜 엄청나게 자란대요// ㅎㅎ 그래서 걔네는 달고 맛있는 몽키바나나(그 쪼그만거요)밖에 안먹는다던데.. 부러울 뿐입니다 ㅎㅎㅎ

비로그인 2006-03-26 00: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해콩님, 저 이 글 퍼갑니다. 고맙습니다.

해콩 2006-03-26 20: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희반 아이들 두 녀석이 아토피를 앓고 있습니다. 이전까지 없던 일이죠. 생리통, 감기 등 일상적인 질병에서 피부병, 디스크 등과 함께 아이들 건강에 대한 적색신호가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죠.

먹거리가 몸을 이루고 몸의 건강이 결국 정신의 건강에도 영향을 주게 되는데... 이미 급식에 길들여진 아이들에게 '음식과 입맛의 획일화'라는 차원의 문제를 넘어 일종의 대량생산인 급식이 건강에 나쁠 수 밖에 없으니 '소박한 도시락' 싸다니거라~ 하는 말은 현실적으로는 여유로운 자의 호사스런 주문 정도로만 여겨지는 형편이고..

자기들 먹는 것 아니라고 음식에 못 된 짓해서 돈 벌 궁리하는 사람들, 참 나쁘죠.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노동력 착취는 말한 것도 없구요. 요즘은 내가 사용하는 물건 중 다른 사람의 노동을 착취하지 않고 만들어진 것이 무얼까? 생각하게 되요. 운동화, 옷, 커피, 바나나... 다국적 기업이 손만 댔다 하면 이런 문제가 생기니... 중국이든 필리핀이든 수입하는 물건, 대부분이 그런 경로를 통해 우리에게 오는 것 아닌가 싶어 가끔 두렵답니다. 나도 모르게 다른 사람을 착취하며 살고있는...

이런 문제에서 벗어나는 방법, 있을까요?

비로그인 2006-03-26 19: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희 집 부근은 요즘 아파트 건설이 한참 붐인데, 한번은 상담실에 저희집 근처에서 짓고 있는 아파트에서 일하다 앞니가 와장창 나가버린 베트남 분이 오셨더랬어요... 아버지가 기린공장에서 빵을 사오셔서 상담실에 들고 가니 실장언니가 기린이 연수생상담했던 곳이라 하더군요... 아주 하찮은 물건을 만들다가도 다치고 장해입고 죽고... 산업사회에서 살면서, 자본주의 사회를 살면서 착취를 피한다는 건 낙타가 바늘귀 들어가는 일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으로선 그 사실이라도 분명히 알고 착취를 줄여나가는 것 말곤.... 방법이 뭘까요...

코마개 2006-03-27 09: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유명한 다국적 과일회사인 치키타의 경우 바나나 수입과 관련한 이권때문에 미국의 파나마 침공시 전쟁 비용을 모두 부담했죠.
바나나를 제배하기 위한 플렌테이션 농업 때문에 정작 그 지역의 국민들은 토양에 알맞은 식량 재배를 하지 못해 기아에 허덕이고...참 죄 안짓고 먹고 살기가 이리 힘들어서야.
 

"학급운영에 연수는 필요없다"

 

1. 기 죽거나, 기술적인 면으로 치우치거나.
올해로 저는 교직경력 8년차가 됩니다. 담임경력은 6년째 접어들었죠. 처음 실업계 학교로 발령받고 서툰 담임 노릇을 하게 되었을 때 이러저러한 학급운영 연수를 부지런히 쫓아다녔습니다. 그 즈음 시작된 ‘참실보고대회’에도 당근 참여했습니다. 여러 가지 다양한 방면에 일가견이 있는 전국의 노련한 선생님들이 선보이는 현란한 학급운영의 방법과 기술들을 대하면서 터져나오는 감탄과 동경의 눈빛 이면에 저는 숨이 막혔습니다. ‘저렇게까지 해야 되나? 저런 식이라면 교사에게 개인 시간이라는 것이 남아 있겠나? 나는 죽었다 깨어나도 저렇게는 못하겠다.’나름대로 열심히 하려고 노력은 하지만 아이들과의 관계가 맘처럼 부드럽지 못한 신규로서 저는 기가 죽다 못해 짜증이 났습니다. 그런데 얼마간 시간이 흐른 후에 그 방법과 기술들을 엇비슷하게 흉내 내고 있는 저를 발견했습니다. 딱히 할 말도 없으면서 가정방문을 시도했고, 억지로 우겨서 모둠도 꾸려봤으며, 의미 없는 말들과 감탄사의 나열인 모둠일기 강요에, 아이들의 손길이 배제된 나홀로 학급문집 만들기까지. 겉으로 보기엔 저 역시 노하우라는 이름의 현란한 기술과 방법들에 익숙한 노련한 교사가 되었습니다. 몇 번 ‘학급운영’ 연수라는 걸 맡아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재작년 저희 반 아이들은 그런 제 가면을 홀딱 벗겨놓았지요. 아무리 다양한 기술로 다가가도 녀석들의 맘은 까딱도 하지 않았습니다.

2. 기성복같이 매끈매끈한 자료들! ‘내’ 고민의 계기를 박탈한다.
‘즐거운 학교’나 ‘구글’을 검색하면 내가 원했던 여러 가지 학급운영 자료들이 이미 잘 만들어져 올라와 있습니다. 경험 없는 신규로 담임을 맡았을 때는 그런 요령이 없어 밤늦게까지 뭔가 준비하느라 잠 못 들곤 했는데 이젠 별로 그럴 일이 없는 것이 요즘의 제 모습입니다. 필요한 것이 생각나면 검색하고 복사하여 나눠주거나 자료 좀 보내달라는 전화 한 통하는 것도 사실 드물게 성실을 발휘한 것이지요. 그럼에도 직접 만든 자료보다 훨씬 세련된 자료들, 활동들…. 자료의 양에 비례해서 또 제 욕심에 비례해서 아이들에게 요구하는 활동과 결과물의 분량도 계속 늘어납니다. 그러나 요즘의 제가 밤늦게까지 잠 못 들고 뭔가 퉁탕거리며 만들던 신규시절 만큼 학급운영에 관한‘생각과 고민’을 할까요? 아울러 자료 자체만으로는 그 자료를 만든 선생님들의 고민이나 느낌이나 감동들을 모두 알 수는 없었습니다. 스스로 충분한 고민이나 명확한 목표가 없는 시도였기에 학년 말까지 꾸준히 유지되는 학급활동은 가물에 콩 나듯했고 또 방만하고 산만했죠. 한 가지 학급활동을 해도 그에 대한 확고한 목표와 깊은 고민이 필요한데 인터넷에 올려진 여러 선생님들의 세심한 자료는 제 고민보다 늘 한 발 앞서가더군요. 설익은 학급활동은 저나 아이들에게 ‘부담’일 뿐이었습니다.


3. 천편일률적 자료, 천편일률적인 학급운영?
크고 작은 학급운영에 관한 연수를 맡아본 것이 서너 번 되는 것 같고 작년엔 ‘학교에서 행복해지기’편집팀으로 일하면서 제가 가지고 있는 자료를 엄청 뿌리고 다녔습니다. 올해 저희학교로 옮겨오신 선생님이 담임을 맡으신 반에 수업 들어갔더니 사물함 이름표, 좌석배치표, 주번 주의사항, 사물함이용 주의사항 등 낯익은 자료들로 교실을 꾸미셨더군요. 심지어 몇 년 전 제가 반 아이들에게 날린 ‘부끄러운’멘트까지 그대로 --; 순간 갑자기 드는 생각! “교실이 비슷해지고 있다”물론 드러나는 모습만 가지고 담임교사의 학급운영이 비슷해진다고 판단할 수는 없겠지만, 표현되는 형식이란 고민이 드러나는 하나의 양상이거나 최소한 고민의 깊이에 영향을 주는 것은 아닐까요? ‘비슷비슷한 학급운영 자료, 이것이 과연 바람직한가? 소박하더라도, 다소 촌스럽더라도 스스로의 필요에 의해 충분히 연구한 후 실천하는 학급활동, 담임과 아이들이 직접 생각하고 만들어본 활동자료가 여러 가지 면에서 의미 있는 것 아닐까?’등으로 이어지는 상념의 끝자락에, 신규 때 연세 지긋하신 샘들이 보여주시던 거칠지만 소박하고 간단한 자료가 그리워졌습니다. 새 학년, 백지 한 장을 나눠 주며 자기소개를 써보라고 하더라도 어떤 눈빛으로 어떤 말을 하면서 전할까 고민하는 모습이 더 아름답던….

 

4. 학급 활동의 범람으로 인한 ‘마음’의 실종.
원치 않는 읽을거리 -시나 훈화자료 등- 각종 자료 떠맡기기, 억지로 꾸려가는 모둠활동, 강제로 쓰는 학급일기, 담임 혼자 열심히 만들고 혼자 즐거워하며 나눠주는 학급문집…. 실업계는 실업계대로, 인문계는 인문계대로 삶의 무게 때문에 가끔은 숨쉬는 것 자체도 힘이 들고 학교에 와주는 것만으로도 고마워해야할 그 아이들에게 내 빤질빤질한 학급운영이라는 것이 과연 무슨 의미가 있었을까? 생각해보면 가끔 부끄럽고 민망하고 또 미안하기 그지없습니다. 실속 없이 겉으로만 부풀어버린 제 겉모습에 사람들은 노력하는 열성적인 교사라는 훈장을 붙여주더군요. 그런 기대에 부합해야한다는 의무감 비슷한 것이 저를 더 부추겼을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돌아보면 그렇게 용을 쓸수록 제 영혼은 점점 쪼그라들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아이들이 가끔 들려주던 ‘우리들에게 관심을 보여주는 좋은? 샘’이라는 칭찬도 ‘지나치게 옭아매는 귀찮은 샘’이라는 평가에는 귀를 막고 자신을 기만하는 데 일조했을지도. 간혹 아이들이 제 마음을 몰라준다고 불평 했지만 사실 아이들 삶과 마음을 몰라준 건 오히려 내 쪽이 아니었을까요? 아이들의 진심어린 속내를 들여다볼 기회를 잃어가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요? 그런 각종 번잡한 학급행사, 이벤트보다 따뜻한 눈길한번, 말 한 마디가 아이들에게는 훨씬 힘이 되지 않았을까 돌아봐집니다. 강단 있게 자신을 드러내는 법도 알려주어야 했고 아이들을 이해하려 노력하되 객관적인 거리를 유지하는 것도 필요했을 것입니다. 스스로 만족하기 위한 학급운영은 아니었는지, 정신없는 학급 활동들 속에서 서서히 처음의 그 마음을 잃어버린 것은 아니었는지….

5. 인문계 고등학교에서의 학급운영은?
인문계 고등학교로 옮기고 나서 참 혼란스러웠습니다. 아이들과 교사들의 ‘삶’에 대한 기준이 많이 달랐으니까요. 생존 자체를 고민하는 아이들과 학부모들 속에서 빠져나오니 그리 멀지 않은 곳에‘좋은 성적’으로 ‘좋은 대학’가는 것이 ‘학교’에 다니는 이유가 되는 사람들도 있더라는 빤한 사실을 알게 된 겁니다. 아침 보충수업은 텅 빈 교무실에 저를 유배시켜 버렸습니다. 동료교사들과 함께 어울려 다니는 데 익숙했던 제게 오후시간 역시 적응하기 힘들었습니다. 일과가 끝난 뒤에도 끝나지 않는 수업 때문에 회식 잡기도 힘든 상황에 ‘같이 놀러 가자’는 주문은 욕심인 듯 했습니다. 인문고 1년을 근무하면서 이전에는 ‘불합리’하다고 생각했던 ‘신규교사의 실업계 발령’이 다행으로 느껴졌습니다. 인문계 고등학교에서 교사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면 아무런 회의 없이 아이들을 숫자로 환산하여 보는 일에 익숙해져 버렸을 거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이듬해 드디어 인문계 고등학교 2학년 담임을 맡게 되었는데 실업계에서 하던 담임 노릇과는 사뭇 달랐습니다. 아이들과 학부모가 담임에게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잘 모르겠고, 학급운영이라고 늘 뭔가 붙잡고 있는데 그런 것들이 누구를 위한 건지 또 무엇을 위한 건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분명한 목표를 잡고 출발했다고 생각했는데 이리저리 흔들리던 배는 앞으로 나아가기는커녕 제자리에서 맴을 돌며 천천히 가라앉고 있었습니다.

그해 학급운영에 있어 제 목표는 ‘행복한 학교생활’이었습니다. 공부와 입시에 지쳤을 아이들이 조금이라도 즐겁게 학교생활을 하도록 돕는 것, 그게 제 소박한(?)목표였지요. 그러니 저는 애초에 야자나 보충을 잘 시키는 담임일 수 없었고 아이들을 잘 잡아주는 교사는 더더욱 아니었던 겁니다. 나름대로 노력을 했다는 말이 무색할 만큼…. 아이들의‘행복한’ 학교생활을 위해 담임이 마련한 이런저런 이벤트, 그 1회성의 ‘기쁨’에 아이들이 마음을 열고 다가오지 않은 것은 지금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입니다. 다른 반 운운하며‘반 등수’ 알려달라고 찾아온 아이를 ‘나에겐 그런 권리와 의무가 없다’는 말로 매정하게 돌려보내고 ‘사설 모의고사’를 당당하게 요구하는 아이들에게 ‘원치 않는 아이들이 들러리 서는 것에 대해서 최소한 미안한 마음은 가져야한다’는 식의 마음 불편한 잔소리를 늘어놓는 담임이었던 저는 아이들 공부를 챙겨주지 못한다는 자책감 때문에 여러 가지 잡다한 ‘즐거움’을 주느라 허덕거렸지만 그건 아이들을 돌고래로 만들고 저를 지치게 하는 무의미한 행사에 지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스스로 늘 혼란스러운 담임이었고 아이들도 저의 관심이나 사랑이 싫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뭐 그다지 필요하지도 않은 그런 뻘쭘한 관계로 멀찌감치 서있었습니다. 서로에게 마음이 닿지 않는데, 그걸 서로가 뻔히 아는데 겉으로만 즐거워 보이는 그런 행사들은 스스로와 아이들을 기만하는 것에 불과했다는 생각이 이제서야 듭니다. 그해 제가 꾸려나갔던 ‘학급운영’은 아이들에게는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었을까요?


사실 제일 무서운 건 자기검열인 것 같습니다. 올해 저는 또 2학년 담임을 맡았습니다. 동학년 담임샘들이 참 좋은 분들이라 다른 학년에 비해 아이들의 자율을 많이 보장해주시지요. 그런데 지금까지 저는 아파서, 혹은 다른 개인적인 이유로 야자를 빼달라는 아이들과 학부모님의 말을 다 들어주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아이들의 성적과 공부라는 핑계를 늘 준비하고 있지만 실은 자기검열이지요. ‘그래도(?) 인문계인데 이렇게 다 보내버려도 되나, 반 전체가 공부 안하는 분위기가 되면 나중에 어떻게 감당하나, 한 명 두 명 보내다가 나중에 거의 다 빼주어야 하는 상황이 되면 그땐 또 어쩌나, 내년에 내신 나빠서 원하는 대학 못가면 어쩌나, 그때 나를 원망하면 어쩌나, 다른 반 담임샘들께 우리 반의 분위기가 누가 되면 어쩌나’ 지독한 이 검열을 깨어보려고 노력하고 있는 중이지만 알 수 없는 두려움과 불안에서 내 스스로 완전히 자유로워지기가 쉬운 일은 아닌 듯 합니다.


지금까지 자질구레한 제 개인적인 이야기가 너무 길었습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학급운영’은 기술만은 아니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그건 기술이나 방법적인 측면보다는 ‘마음’ 그 자체이어야 하지 않을까요? 마음만 있다면 자료는 얼마든지 구할 수 있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하는 선생님들이 만들어 둔 자료가 오늘도 인터넷 자료실에 넘쳐나고 있으니까요. 오히려 그 많은 자료들이 낳는 부작용에 대해서 한 번 짚어볼 때가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방법이나 기술적인 측면으로 기운 학급운영을 하게 되거나, 교사가 진지하게‘고민’할 기회를 박탈하는 것이죠. 고민의 부재로 마음이 담기지 않은 학급운영이 되거나, 천편일률적인 학급운영으로 흐르는 것도 문제가 있다는 생각이구요, 간혹 아이들의 입장은 소외된 교사의 자기만족에 그치기도 하지요. ‘작고 소박한 자료라도 교사 스스로 고민해서 진행하는 학급운영이야말로 살아있는 것이 아닐까? 무리 하거나 욕심 부리지 말고 나와 아이들에게 맞는 방법으로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진행할 수 있는!’ 어찌 보면 너무나 당연한 이 결론에 도달하기 위해 참 많은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런 면에서 이런 식의 학급운영연수 -여러 가지 자료를 소개하고 나누는 것-는 진지하게 고려해 볼 때가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관점을 세우고 담임의 교육관이 자연스럽게 아이들에게 녹아들게 하는 전문적인 연수가 마련되어야합니다. 구체적인 문제 상황에 대처하는 데 도움이 되는 상담연수나 심리치료연수 같은.

그래도 뭔가 불안하고 허전하다면 제 경험으로는‘마음’을 나눌 동료를 찾아 함께 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학교 내에서 마음 맞는 샘들이랑 의논하며 함께 한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그것이 힘들다면 여러 학교를 걸치는 모임을 만들어도 많은 도움이 됩니다. 첫 마음을 잃지 않을 수도 있고 여러 가지 고민을 나누어 가질 수 있지요.

처음 교사가 된 이듬해, 우연히 함께 하게 된 ‘@@@’는 연령대가 다양한 샘들의 모임이었습니다. 교사가 아이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어떠해야 하는지 배우게 되었죠. 인문계로 옮긴 후 지금까지 비교적 ‘젊은’ 북부지역 샘들을 중심으로 하는 ‘###’에 나가고 있는데 일년에 한두 번 신규샘들을 위한 연수, 여름방학 야영을 꾸리기도 하고 일상적으로는 생활나누기, 독서토론, 학급운영 고민들을 나누고 있습니다. 생각해보면 이 모임은 흔들리는 저를 붙잡아 주는 뿌리가 아닌가 싶네요.

학교 내에서 소모임의 훌륭한 예로 소개하고 싶은 것은 몇 년 전 ooo고에 있었던 ‘ㅁㅁㅁ’입니다. 당시 1학년 담임교사 몇 명이 주축이 되어 모임을 만들고 여러 가지 학급, 학교 행사들을 추진하고 축적된 자료들을 소개하며 공유했습니다. but 공립학교는 몇 년이 지나면 다들 헤어져야하기 때문에 계속 유지되기 힘들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올해도 저는 담임을 맡았습니다. 그 나이 때 저 역시 그러질 못했으면서 입시에만 너무 매이지 말고‘인간다운 삶’을 아이들이 꿈꿀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다는 큰 욕심을 내고 있습니다. 사회전반의 현실적인 필요와 담임의 이상적인 주문 사이에서 우리 반 아이들은 많이 힘들지도 모릅니다. 야간타율학습, 보충수업, 사설모의고사 등등 검증되지도 않은 학습능력향상을 빌미로 학교가 아이들의 결정권을 무시할 때, 아이들 스스로 타율을 선택하며 주어진 자율을 비웃을 때, 저는 여전히 그 사이에서 오락가락 헷갈릴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교사로서 여러 가지 기술이나 방법보다 중요한 건 아이의 고민과 아픔에 공감하고 연민하는 능력, 그리고 그들이 때로 실수하고 방황해도 끝까지 믿고 기다려주는 인내심임을 믿으려 합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교사가 행복하지 않으면 아이들 역시 행복할 수 없다는 당연한 사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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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콩 2006-03-23 23: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연수를 마친 후 원인 모를 두통, 허무, 우울... 원인 모를?

여울 2006-03-24 08: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정말 그럴 때..., 무엇인가 맘을 준 것이 쏘옥 빠져나가 남의 것이 되버린 듯. 나만의 것에서 우리들의 것이 될 때? 맘주지 않은 사람은 영원히 느끼지 못하는 그 허전함은 아닐까요? 꽃봉오리가 개화가 될 때의 허전함은 아닐까요? ... 글 즐감하고 갑니다.

글샘 2006-03-24 09: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학급 운영이 힘든 것은, <구조적 모순> 앞에서 <개인적 대응>이 얼마나 무력한지를 보여주는 일례에 불과하지 않을까 합니다.
어제 홍세화 선생님 강연을 들었는데요,
정말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지배계급의 물신적 이데올로기>에 저항할 수 있는 <생각할 줄 아는 능력>과 <민중성을 배반한 자기 의식>을 스스로 극복할 수 있도록 <독서>하게 만들고, 서로 토론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하시더군요.
그러기에 적합한 공간이 알라딘 아닐까 합니다.
아이들에게 서재를 만들게 하고, 독서하게 하고, 지속적으로 토론하고...
허탈해도 힘 내세요. It's Friday. 놀토 아닙니까?ㅋㅋ
수고 많으셨습니다.^^

해콩 2006-03-26 21: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울마당님~ 꽃이 확 피어버린 후 느끼는 허무. 우울.. 그런 느낌도 있는데 준비하는 내내'이런 글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하는 생각을 가졌던 것이 다른 이유일 수도 있겠다 싶어요. 그래서 아주 어렵게 어렵게 쥐어 짜내듯이 쓸 수 밖에 없었던. 연수 들으러 오셨던 샘들이 해주신 말씀들이 오히려 제게 위로가 되었어요.. ^^;ㅋ

글샘샘~ 옳으신 말씀! 그래서 토욜, 일욜은 제가 가진 책들 목록 뽑아와서 아이들에게 빌려줄까 싶어요. 저희 학교 멋진 샘 한 분이 지도하시는 아이들 <독서토론> 동아리에도 구경가볼까 싶구요. 저희 반 녀석도 세명이나 참여하거든요. 그 샘도 참 대단하신 분이죠. 어쩌면 샘께서 아는 샘일지도..ㅋㅋ 그리고 보내드릴 자료에 연수 원고는 없는데 이렇게라도 보여드려서 다행스러워요. 다행? 사실 좀 부끄럽지만... 이건 연수 원고라기 보다는 무슨 '참회록' 수준이라. 그치만 '실패한 경험'을 나누는 것도 중요하겠죠? 흠~ 자료 더 빵빵하게 모아서 다음 주 쯤에 보내드릴게요. 이ㅅㅅ샘께도 보내드리고..
 

메이비 - 장영수

 

우리는 고무신으로 찝차를
만들었다. 미군 찝차가
달려왔다. 네가
내리고.

미군들이 쑤왈거리다가 메이비,
하고 떠나고. 그리하여 너는
메이비가 되었다.
미제 껌을 씹는 메이비. 종아리 맞는
메이비.

흑판에 밀감을 냅다 던지는
메이비. 으깨진 조각을 주으려고
아이들은 밀려 닥치고.
그 뒤에, 허리에 손을 얹고 섰는
미군 같은 메이비.

남자보다 뚝심 센 여자애보다
뚝심 센 메이비. 여자애를 발길로
걷어 차는 메이비.

지금은 비가 내리고.
어느 틈엔지 미군들을 따라
떠나 버린 메이비.

바다 건너 가 소식도 모를
제 이름도 모르던 메이비. 어차피
어른이 되어서는 모두가 고아였다.
메이비. 다시는 너를
메이비라고 부르지 않을 메이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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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콩 2006-03-23 23: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하루꼬짱, 메이비를 그리며

전후 초등학교 교실의 풍경은 과연 어떠했던가요. 아마도 이 시 「메이비」가 매우 상징적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전쟁으로 말미암아 기존의 사회제도와 도덕윤리, 가치관이 붕괴되고 낯설고 새로운 모습들이 등장하기 시작한 것이지요. 그중에 하나가 바로 일본적 감수성이 물러나고 대신 미국적인 상관물들이 등장하기 시작한 것이 아닌가 합니다. 그동안 반백 년 가까이 사람이름만 하더라도 에이꼬짱, 하루꼬짱, 마사오상 불리던 것들이 퇴조하면서 대신 쑈리김, 쟈니윤이니 꺼삐딴리니 하는 서양식, 특히 미국식 이름들이 낯선 모습으로 생활속에 끼어들어오기 시작했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50년대 전후 시대의 쪼무래기 아이들이 미군 찝차를 따라 다니며 ‘할로, 할로!’, ‘오케이’, ‘?c코렛’하며 손 내밀던 모습이 새삼 아프게 떠오릅니다. 바로 그때 ‘메이비’가 난데없이 등장한 것이지요. 해방 후 미군이 이땅에 주둔하면서 그들이 아무렇게나 뿌린 씨가 바로 메이비로 자라난 것입니다.
메이비라뇨? 아마도 그것은 영어의 ‘may be' 즉 ‘어쩌면 그럴지 모른다’, ‘잘 모른다’라는 불확실한 삶 또는 예측불가능한 인생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일 겁니다. 그만큼 전후 폐허와 상처 속에서 다시 시작된 국민학교 교실의 풍경은 시대상만큼이나 복잡하고 짐작하기 어려운 모습이라는 뜻이지요. 그렇게 벼 속에 피처럼 섞여 떠돌던 ‘메이비’들, 그 혼혈아들은 〈바다 건너 가 소식도 모를/제 이름도 모를 메이비〉들이 되어 어디론가 떠나가 이제는 민들레처럼 뿌리내리고 살고 있지 않을까 생각되는군요. 사실 생각해보면 그 많던 이땅의 전쟁 고아 친구들도 모두 메이비가 아니었을까요. 아니 우리 모두가 〈어른이 되어서는 모두가 고아가 되는〉것이기에, 그것이 또한 나의 또다른 모습이기에 이제 다시 메이비라고 누구를 멸시할 수는 없을 게 분명합니다. 새삼 이제는 그 어딘가에서 자식들 낳고 잘 살고 있을, 또는 불행해져 있기도 한 그 시절 메이비 친구들이 새삼 그리워지는 것도 그런 연유가 아닌가 합니다.

- 김재홍: 문학평론가, 경희대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