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비 - 장영수

 

우리는 고무신으로 찝차를
만들었다. 미군 찝차가
달려왔다. 네가
내리고.

미군들이 쑤왈거리다가 메이비,
하고 떠나고. 그리하여 너는
메이비가 되었다.
미제 껌을 씹는 메이비. 종아리 맞는
메이비.

흑판에 밀감을 냅다 던지는
메이비. 으깨진 조각을 주으려고
아이들은 밀려 닥치고.
그 뒤에, 허리에 손을 얹고 섰는
미군 같은 메이비.

남자보다 뚝심 센 여자애보다
뚝심 센 메이비. 여자애를 발길로
걷어 차는 메이비.

지금은 비가 내리고.
어느 틈엔지 미군들을 따라
떠나 버린 메이비.

바다 건너 가 소식도 모를
제 이름도 모르던 메이비. 어차피
어른이 되어서는 모두가 고아였다.
메이비. 다시는 너를
메이비라고 부르지 않을 메이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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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콩 2006-03-23 23: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하루꼬짱, 메이비를 그리며

전후 초등학교 교실의 풍경은 과연 어떠했던가요. 아마도 이 시 「메이비」가 매우 상징적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전쟁으로 말미암아 기존의 사회제도와 도덕윤리, 가치관이 붕괴되고 낯설고 새로운 모습들이 등장하기 시작한 것이지요. 그중에 하나가 바로 일본적 감수성이 물러나고 대신 미국적인 상관물들이 등장하기 시작한 것이 아닌가 합니다. 그동안 반백 년 가까이 사람이름만 하더라도 에이꼬짱, 하루꼬짱, 마사오상 불리던 것들이 퇴조하면서 대신 쑈리김, 쟈니윤이니 꺼삐딴리니 하는 서양식, 특히 미국식 이름들이 낯선 모습으로 생활속에 끼어들어오기 시작했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50년대 전후 시대의 쪼무래기 아이들이 미군 찝차를 따라 다니며 ‘할로, 할로!’, ‘오케이’, ‘?c코렛’하며 손 내밀던 모습이 새삼 아프게 떠오릅니다. 바로 그때 ‘메이비’가 난데없이 등장한 것이지요. 해방 후 미군이 이땅에 주둔하면서 그들이 아무렇게나 뿌린 씨가 바로 메이비로 자라난 것입니다.
메이비라뇨? 아마도 그것은 영어의 ‘may be' 즉 ‘어쩌면 그럴지 모른다’, ‘잘 모른다’라는 불확실한 삶 또는 예측불가능한 인생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일 겁니다. 그만큼 전후 폐허와 상처 속에서 다시 시작된 국민학교 교실의 풍경은 시대상만큼이나 복잡하고 짐작하기 어려운 모습이라는 뜻이지요. 그렇게 벼 속에 피처럼 섞여 떠돌던 ‘메이비’들, 그 혼혈아들은 〈바다 건너 가 소식도 모를/제 이름도 모를 메이비〉들이 되어 어디론가 떠나가 이제는 민들레처럼 뿌리내리고 살고 있지 않을까 생각되는군요. 사실 생각해보면 그 많던 이땅의 전쟁 고아 친구들도 모두 메이비가 아니었을까요. 아니 우리 모두가 〈어른이 되어서는 모두가 고아가 되는〉것이기에, 그것이 또한 나의 또다른 모습이기에 이제 다시 메이비라고 누구를 멸시할 수는 없을 게 분명합니다. 새삼 이제는 그 어딘가에서 자식들 낳고 잘 살고 있을, 또는 불행해져 있기도 한 그 시절 메이비 친구들이 새삼 그리워지는 것도 그런 연유가 아닌가 합니다.

- 김재홍: 문학평론가, 경희대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