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1TV 일요스페셜...

815기획 야스쿠니와의 전쟁 제1편-야스쿠니와 세 여자


◎ 방송일시 : 2006년 8월 13일 (일) 밤 8시, KBS 1TV
◎ 글·연출 : 이호경

◎ 주요내용


'안녕, 사요나라'라는 제목의 한일합작 다큐멘터리가 있습니다.

한일 양국의 시민단체가 주도해서 만든 다큐멘터리 영화. 이 영화는,
아버지가 야스쿠니에 합사된 이희자 씨(태평양전쟁 피해보상 추진위원회 대표)와
그녀의 야스쿠니와의 싸움을 돕는 양심적인 일본인 후루카와 씨의 이야기입니다.

'안녕, 사요나라'를 눈물 흘려가며 감명 깊게 본 것이 5월 초 무렵이었습니다 .
영화를 보고 나서, 아버지가 야스쿠니에 무단 합사된 이희자 씨와 그 반대의 입장에
있는 일본인을 비교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번뜩 들었습니다.
서둘러 A급 전범 도죠 히데키의 손녀이며, 이미 한 차례 KBS와 인연이 있는
도죠 유우코와 연락을 취해 그녀를 섭외할 수 있었습니다.

A급 전범 도죠 히데키, 그의 손녀 도죠 유우코


유우코 씨의 할아버지 도죠 히데키는 육군대장이자 진주만 공격을 결정한
전쟁내각의 수상이었던 인물로 1978년 야스쿠니에 합사되었습니다.
도죠 유우코는 현재 일본에서 야스쿠니의 입장을 가장 분명히 대변하는 여성으로
이름이 높습니다. 일본에서 그녀를 취재하던 도중, 몇 군데의 일본 언론으로부터
'도죠 유우코를 취재하는 KBS'를 취재하고 싶다는 제의를 받았을 정도로
그녀의 지명도는 높더군요.

야스쿠니로 진격하라, 가오진 쑤메이


이희자와 도죠 유우코, 두 여성의 이야기를 촬영하던 도중,
타이완 원주민 출신 국회의원 가오진 쑤메이(원주민명 지와스 아리)를 알게 됐습니다.
가오진 쑤메이.
영화 "결혼피로연"의 여자주인공으로부터 5년 전 국회의원으로 변신한,
특별한 이력의 여자.

그녀의 활동 전적을 조사해 보니, 그동안 정말 목숨을 걸고 야스쿠니와 싸워왔더군요.
특히 그녀는 일본우익의 테러 대상 명단에 올라있어 일본 경찰까지 쑤메이의 활동에
바짝 긴장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녀가 야스쿠니에 요구하는 것은 단하나 "還我祖靈"이었습니다.
야스쿠니에 합사된 대만 원주민 2만 8천여 명의 영혼을 돌려달라는 것입니다.
그녀의 미모와 폭발적인 투쟁방법에 매료된 취재팀은 지체 없이 대만으로 날아갔습니다.

세 여자, 서울에 모이다


취재가 끝나고 난 뒤,
촬영팀은 이 세 명이 한자리에 모여 야스쿠니에 대해 이야기할 자리를 제안했고,
세 여성 모두 '처음 있는 일인 만큼' 흔쾌히 응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지난 7월 19일, 이희자, 도죠 유우코, 가오진 쑤메이,
야스쿠니를 둘러싼 세 여성이 마침내 서울에 모였습니다.

대담을 위해 KBS 스튜디오에 모인 세 사람 모두에게 긴장한 표정이 역력했습니다.
특히 적진(?)에 필마단기로 뛰어든 도죠 유우코 씨는
통역에게 '무섭다, 불안하다'란 말을 반복했다고 합니다.

자기 소개로부터 시작한 토론-
긴장했던 것처럼 보이던 도죠 유우코 ,
그러나 그녀는 곧장 야스쿠니를 옹호하는 모든 논리를 풀어놓았습니다.
촬영장의 모든 스탭들이 "일본인은 정말 이런 식으로 생각하고 있구나!"하는
경악에 휩싸였습니다. 이에 맞서 이어진 이희자 씨와 가오진 쑤메이의 반론.
잔뜩 날이 선 분위기 속에서 두 시간 반 동안 이어진 토론은
결국 언성을 높이던 당사자들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는 파국을 맞이했습니다.
도저히 좁혀질 수 없는 의견차 만을 확인한 채.


야스쿠니 신사와 밀접히 연관된 세 여자의 삶과 의견을 지켜보는 동안,
야스쿠니의 본질에 대해 고민하는 주말 저녁이 되었으면 합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생각의 옳고 그름은 차치하더라도,
먼 길 찾아와 일본인의 속마음을 털어놔 준 유우코 씨의 용기에 감사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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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5기획 야스쿠니와의 전쟁 제2편
국제공동투쟁의 기록


◎ 방송일시 : 2006년 8월 20일 (일) 밤 8시, KBS 1TV
◎ 글·연출 : 이호경

◎ 주요내용

위령(慰靈)과 현창(顯彰),

야스쿠니 신사의 본질적인 기능은 위의 두 가지를 말합니다.
야스쿠니를 반대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거부하는 것은 침략 전쟁에 참가해
죽어갔던 과거를 찬양하고 또 다른 죽음을 장려하는 `현창` 입니다.
피붙이가 이런 시설에 신으로 모셔진 것에 반대하는 한국과 일본 그리고
타이완의 유족들이 있고, 정치 지도자가 이 시설에 참배하는 것을 반대하는
일본의 양심 세력들이 있습니다.
 


작년부터 야스쿠니와 싸우는 사람들이 국경을 넘어 뭉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올해 드디어, 야스쿠니에 대한 개별적 대응에 한계를 느끼고 야스쿠니를
반대하는 사람들의 국제 연대 조직 <反야스쿠니 공동 행동>을 결성했습니다.
'야스쿠니는 일본 고유의 문화이므로 반대 운동은 내정간섭'이라는 일본 측 주장과 달리
이제 야스쿠니는 국제적인 이슈가 되고 말았습니다.

<反야스쿠니 공동 행동>은 올해 8월 야스쿠니와의 전쟁을 선포했습니다.
<反야스쿠니 공동행동>의 깃발을 들고, 일본 군국주의의 상징 야스쿠니로 한국에서,
타이완에서, 그리고 일본 각지에서 야스쿠니 반대자들이 모입니다.

2006년 8월15일 우리는 야스쿠니로 간다 !

"살이 부르르 떨리는 분노를 느꼈지만, 이제 다시 시작입니다. " 


이희자


태평양전쟁 피해보상 추진 위원회 대표.
1945년 6월 중국전선에 강제 동원되어 전사한
아버지가 야스쿠니에 합사됨.
5년 전 부친을 야스쿠니에 무단 합사한 일본 정부를
상대로 소송제기. 2006년 5월 25일 기각결정.


"이것은 정치의 문제가 아니라, 양심, 시비, 공정, 평화의 문제입니다." 


가오진 쑤메이


대만 원주민 국회의원.
50년에 이르는 식민통치의 기억.
야스쿠니에 합사된 2만 8천여 대만 원주민의 이름을
영새부에서 지우기 위해 투쟁 중.
고이즈미의 야스쿠니 참배를 고소한 결과
작년 9월 오사카지재에서 '수상의 신사참배는
위헌'이라는 획기적인 헌법판단을 쟁취.
그러나 위헌 결정 직후 고이즈미는 임기 중 다섯
번째 야스쿠니 참배 강행. 올해 일본 우익들이
대만에 설치한 `원주민 전사자를 위한 기념비`를
철거한 탓에 일본 우익 테러의 표적이 됨.


"입을 다물고 있으면 침략전쟁을 시인하는 것이 되고
이것은 피해를 입은 주변국가에 대해 죄를 짓는 것입니다"


쓰노다 사부로


기독교 목사.
크리스챤이었던 두 형이 태평양 전쟁 때
전사되어 야스쿠니에 합사됨.
1968년 야스쿠니에 합사된 두형을 빼
달라고 최초로 야스쿠니에 합사 취하 요청.


"내 아이들과 손주, 오키나와에 사는 사람들이 제2차 세계대전처럼 말려들지 않게
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것이 야스쿠니 참배에의 싸움이에요."


긴죠 미노루


오키나와의 독립을 꿈꾸는 조각가.
남태평양에서 전사한 아버지의 유골이 단팥빵과
함께 집에 도착. 그 단팥빵을 허겁지겁 먹었던
기억이 생생함.
나이가 들어 오키나와 비극의 근대사를 공부하면서
일본에 이용된 아버지의 죽음을 '개죽음'이라고
표현해 어머니와 다툼.
<오키나와 야스쿠니 위헌 소송단> 활동을 주도,
아버지의 전사를 침략 전쟁의 이데올로기로
이용하는 고이즈미의 야스쿠니 참배를 고소.


"전 원래 소송을 하거나 밖에 나가서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없는, 내성적인 성격입니다.
그러나 (두 아들을 잃은) 어머니의 분노와 슬픔을 이 재판에서 표출하고자 하는
생각으로, 충혼비 소송에 뛰어들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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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INY 2006-08-20 08: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 이번 주에도 하네요? 일찍 들어와서 봐야겠어요~
 

7월 18일 공주 올라왔으니 한 달 하고 하루가 지난 걸까? 암튼 시간 정말 빠르다.

1교시부터 4교시까지 평가관련 수업을 들었지만 건진 게 별로 없는 것 같다. --; 내 생각엔 이런 강의를 좀 더 빵빵하게 수업해야한다고 생각하는데.. 평가방법도 얼마나 좋은가! 나름대로 평가문항을 두어 문제씩 만들어오라고 과제를 주는 거다. 그럼 40명의 샘들이 나름대로 독창적인 문제를 출제해올 것이고 그 문제를 다 같이 분석해주면서 장점과 단점을 일일이 짚어주면 정말 도움이 되는 강의가 될텐데... 아쉽다.

5,6교시엔 한시 수업 및 시험. 5교시에 수업한 내용을 6교시 시험문제로 내시다니 --; 대략난감이었다. 내 단기기억력을 확인할 수 있었던..

7,8교시. 유학사시간. 20문제를 짚어주셨다. 작년보다 많이 줄인 거라며. 헐~

일과가 끝나고 임ㅁㅎ샘 차로 은ㅈ랑 칠갑산까지 드라이브했다. 차가 꾸지다면서 샘은 계속 미안해했지만 난 낡은 차가 좋다. ^^  아랫지방에서 태풍이 올라오고 있어서인지 오늘은 하루 종일 선선했는데 구름 낀 하늘로 비치는 일몰이 정말 멋졌다. 연미산 자락이 벌겋도록...

돌아와 또 [토속식당]으로 갔다. 벌써 네 번째다. 먹을 때마다 새록새록 맛나니 내 식욕도 정말 대단하다. 은ㅈ랑 ㅁㅎ샘은 어떠셨을까? 원체 싫은 말을 못하는 사람들이라 '맛있다'고 하시며 드시긴 하셨는데 대접하고도 조금 미안해지는 건 왜?

8시쯤 돌아와 도서실에서 공부 좀 하고.

 

뭔가 허전한데.. 그게 뭔지 모르겠다. 뭘 잃어버린 것 같기도 하고, 그리워하는 것 같기도 하고.. 암튼 이 감정의 정체는 뭘까? 어디서 오는 걸까? 시작할 때의 두근거림, 약간의 긴장과 귀찮음.. 등등이 연소되어가는 과정에서 오는 허탈일까? 아니면 아직도 2% 부족한 그 무엇이 있는 걸까? 그렇게 돌아다니며 '최선'을 다해 놀았는데? 잊고 있는 뭔가가 있는 듯한 느낌. 뭘까? 뭘까? 끝나면 시원할거라고 생각했는데 조금 불안하고 조금 허전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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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주 오늘쯤, 아이들과 약속했던 그 번개를 때리려고 합니다. 

여름방학 숙제의 하나로 냈더니 숙제를 꼭 해야한다며 약속을 시행할 것을 압박하는 녀석도 있고. ^^;

솔직히 몇 녀석이나 나올까 걱정이 됩니다만... 혼자 나가게 되면 혼자 놀죠 뭐. ^^

부산근교에서

고등학교 2학년 여학생 녀석들 (지금으로선 10명 안쪽 정도로 예상합니다)과

재미나게 놀 수 있는 방법

좀 알려주세요~

채택된 분께는 상품 있습니다.

무슨?

알라딘에서는 늘 그렇듯이 책이 좋겠죠?

원하시는 책 1권! 쏩니다.

참고로 저는 바닷물에 몸 담그는 것 싫어하구요. 차도 없구요. 부모님께 얻혀 살아서 집으로 초대할 수 도 없고... 흠흠...

아이들은 박물관, 영화 이런 거 별로겠지요? 용돈도 넉넉치 않을 거니까.... 돈 별로 안 들면서... 재미나게 한 나절 놀 수 있는 방법!

부탁드립니다. 꾸우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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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포터7 2006-08-18 13: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셔요? 해콩님! 존경스런선생님이시군요..저는 그시절에 기냥 바다만 바라보고 하루종일 앉아만 있어도 시간이 빨리 지나가든데요..참고로 제가 간 곳은 태종대 꼭대기의 한 절벽이었습니다.ㅎㅎㅎ

느티나무 2006-08-18 15: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산에 사는 사람으로서 답해야 할 의무가 있는 거 같아서요.

1) 빙상센터에서 얼음지치기- 시원할 거니까... 사람은 좀 많다더군요.
2) 범어사 다녀오기 - 옆의 계곡도 아닌 시냇물이 흐르는데, 거기에 발만 담궈도 시원하더라구요. 범어사 '풍경'소리도 좋고^^
3) 금정산 오르기 - 이건 진짜 좋은건데, 애들은 다 싫어하죠 ^^
4) 구포도서관에서 함께 비디오 관람 : 괜찮은 비디오라면 가능함
5) 어린이대공원에서 산책하거나 놀이기구(-별로 안 좋아하시죠?ㅋ) 타고 놀기
지금 생각나는 건 이 정도네요.

흠...낼 산에 가려는데, 또 비온다네요~ 미치겠네,정말^^

BRINY 2006-08-18 17: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저도 낼 애들과 바다에 가요~ 당일치기로~ 개학이 다음 준데 방학 내내 보충과 연수에 잡혀있던 인간들끼리 너른 바다 한번 보자해서 가는건데, 글쎄 태풍주의보라니요...비바람 치면 바다에서 한나절동안 뭐하죠?

해콩 2006-08-25 21: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8월 26일 번개계획
1. 아침 9시~12시 부산대 도서실에서 각자 책보기 (책은 아무거나 상관없음)
2. 12시~14시 부산대 아무 곳이나 널브러져서 도시락 먹기 (각자 도시락 싸오기)
3. 점심 먹은 후 지하철로 범어사로 이동 (절 구경도 하고 사진도 찍고 놀기)
4. 차후는 마치는 시간에 따라 유동적.
범어사 아래 '너른마당'(찻집)에 가서 간식 먹고 수다떨기 or 노래방가기 등.
5. 6시에 번개 마무리하고 각자 집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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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획을 이렇게 잡아봤답니다. 근데... 내일 비오면? 요즘 너무 천둥번개가 잦아서리..
댓글 달아주신 세 분, 사람들이 별로 돌아보지 않는 [질문]에 관심가져주셔서 감사하구요, 그래서 여러분 모두에게 책을 한 권씩 보내드리고 싶어요. 가지고 싶은 책이랑 주소를 남겨주시면~ ^^
 

해체의 詩學 : 파격시의 세계


"절대적 진리도, 선도 없다는 해체주의는 세상 일에 집착하지 않는 일종의 허무주의다. 왜곡된 현실을 왜곡되게 표현하는 해체시에서 온갖 비속어, 욕설 등이 서슴없이 구사되는 언어의 테러리즘을 보게 된다. 해체시의 어조는 진지하지 않고 너무나 유희적이고 거칠다."

- 김준오 《도시시와 해체시》 중에서 -

 

要路院의 두 선비


〈要路院夜話記〉는 숙종조의 한 시골 선비가 서울서 과거를 보고 돌아오는 길에 충남 아산 어름의 요로원에 잠자리를 찾아 드는 것으로 시작된다. 병든 말에 초췌남루한 행색의 나그네는 가는 곳마다 홀대와 업수이 여김을 받았다. 한 숫막에서 서울의 행세하는 집안의 끌끌한 선비와 함께 묵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가 이 소설의 기본 줄거리이다.

자신의 꾀죄죄한 행색을 보고 갖은 수모와 비아냥거림을 던지는 서울 선비에게 시골 선비는 아예 작정을 하고 세상 물정을 전혀 모르는 촌놈 행세를 한다. 이에 더욱 기가 난 서울 선비는 숫제 아래 것 다루듯 시골 선비를 희롱하며 놀다가 완전히 기를 죽여 놓으려고 肉談風月 짓기 시합을 제의하였다. 육담풍월이 무엇인고 하니, 다섯자 일곱자로 언문진서를 섞어 짓는 문자 놀음이다. 다음은 서울 선비가 먼저 던진 풍월이다.


내가 시골 '내기'를 보니
몸 '가짐'을 괴상히 하는도다.
언문 '쓸' 줄도 알지 못하니
眞書 '못'함을 어찌 괴상타 하리.

我觀鄕之賭
怪底形體條
不知諺文辛
何怪眞書沼

원문과 번역을 대조해 보면 갸우뚱 하는 독자가 많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각 구의 끝 글자는 한자의 의미로 새긴 것이 아니라, 훈으로 읽은 것이기 때문이다. '賭'는 '내기'이니 '鄕之賭'는 섞어 讀을 하여 '시골 내기'가 되고, '條'는 '가지'라서 '形體條'를 '몸 가짐'으로 읽는다. '辛'은 맛이 '쓰다'는 뜻으로, '諺文辛'이라 해 놓고서 '언문을 쓴다'고 읽고, '沼'는 '못'이니 '眞書沼'는 '眞書를 못함' 즉 한문을 모른다는 뜻이 되는 것이다.

서울 선비는 제깟것이 뜻인들 알랴 하는 마음으로 풍월을 읊고는 득의양양 했겠다. 그리하여 화답을 재촉하니 시골 선비는 짐짓 못하겠노라고 사양을 한다. 더욱 기세가 오른 서울 선비는 화답치 않음은 나를 업수이 여김이니 이 방에서 몰아 내겠다고 으름장을 놓는다. 이에 시골 선비 풍월을 읊조려 가로되,


내가 서울 '것'을 보니
과연 거동이 '되'도다.
대저 인물을 '꾸'었으나
의관을 '꾸민' 것에 불과하도다.

我觀京之表
果然擧動戎
大抵人物貸
不過衣冠夢

라 하였다. '表'가 '것(겉)'이 되고, '戎'은 뙤놈이란 뜻을 '되다'로 읽었다. '貸'는 '꾸다'로, '夢'은 '꿈'이니 이를 '꾸미다'로 읽었다. '시골내기'를 업수이 보다가 '서울 것'이 된통 당한 형국이다. 네까짓 것이 언문도 쓸줄 모른다니 진서야 일러 무엇하겠느냐고 맞보았던 서울 것에게, 그래 너는 겉만 번드르 했지 잘난 게 무에냐는 반격이다. 내용으로만 보자면 시랄 것도 없는 시덥잖은 말장난이지만, 순발력과 재치가 돋보인다.

'서울 것'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감쪽 같이 속았던 자신이 부끄럽고, 깜찍하게 속였던 '시골내기'가 맹랑했다. 이에 본격적으로 서울 것과 시골내기는 시 짓기 시합을 벌이는데, 여기에 동원된 詩體라는 것이 앞서 소개한 바 있던 잡체시들이다. 人名을 넣어 짓는 人名詩로 겨루고, 聯句로 주거니 받거니 시합하고, 다시 六言으로 실갱이를 하다가, 종내 3 5 7言의 層詩로 옮겨 가고, 藥名體로 승부를 결하였다. 서울 것은 시골내기에게 끝내 한번도 이기지 못하고 참패를 하기에 이른다. 그러자 이번엔 거꾸로 시골내기가 五行詩로 겨룰 것을 제안하고 나섰다. 짓는 방법은 첫구 첫자에 '木'자를 넣고, 끝자에는 '土'로 맺으며, 둘째구 첫자는 '水'자로 열어 끝자는 '火'자로 닫으며, 그 가운데에 '金'자를 넣어 五行의 구색을 갖추는 것이다. 시골내기가 먼저 짓기를,


부평 같은 자취 어드메서 이르렀나
꽃 달만 빈 집에 가득하도다.

萍犠何處至
花月滿虛堂

라 하였다. 두 구절의 첫자 '萍'과 '花'는 머리에 '艸'를 얻었으니, '木'에 속하고, '至'와 '堂'은 破字하여 아래 반을 취하면 '土'가 된다. 그러자 서울 것이 한참을 끙끙대다가, 겨우

흐르는 그림자 금술잔에 어리니 流影金樽照
란 한 구절을 맞추고는 4구를 마저 채우지 못하고 손을 들었다. '流'는 '水'에 속하고 '照'는 '火'로 받쳐져, 그 가운데 '金'을 얹은 것이다. 그러자 시골내기는 즉시

맑게 흰빛을 마시는도다. 瀅然飮白光


로 깔끔하게 마무리 지었다. 시골내기의 완전한 KO승이 확정되는 순간이다.

〈요로원야화기〉는 단순하게는 갖은 詩體를 놓고 두 선비가 각축을 벌인 이야기이지만, 그 안에 담긴 의미는 그리 단순하지만은 않다. 거들먹거리는 서울 것을 KO시킬 만큼의 詩才를 지녔으면서도 정작 시골내기는 靑雲의 벼슬길에 명함 한번 내밀어 보지 못했고, 전전하는 여관마다 천덕꾸러기 신세였을 뿐이었다. 모처럼 서울 것 하나가 제대로 걸려 분풀이는 했지만, 뒷맛은 언제나 씁쓸하다.

 

눈물이 석 줄


한시의 어조는 조선 후기에 이르러 과거처럼 단순하고 천편일률적인 목소리에서 벗어나 모순되고 복잡한 양태를 연출하였다. 그들은 성리학적 세계관이 규정하는 제반 사회조건에 길들여져 있었으면서도 그것에서 벗어나려 하였다. 이런 가운데 시인의 태도는 자연스럽게 희극적 양상을 나타내게 되는데, 그 결과 시는 진지성과는 점점 거리가 멀어지게 되었다. 이른 바 戱作化의 경향은 이 시기에 들어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현상이다. 물론 이전의 詩話에도 희작의 양상이 보이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요로원야화기〉부터 김삿갓의 시에 이르러 극에 달하는 파격의 희작시들이 조선 후기에 이르면서 집단적 양상을 띄고 등장하는 것은 주목되는 한 양상이 아닐 수 없다.

이들 희작시의 작가들이 창작을 통해 보여주고 있는 시정신은 탈중심주의, 탈이데올로기의 현대 해체시가 표방하고 있는 세계와 긴밀하게 맞닿아 았다. 비시적 대상의 시화를 통해 이미 용도 폐기되어버린 공허한 언어의 일상성을 파괴하고 당대 현실의 삶에 뿌리 내림으로써 이들은 구체성과 정직성을 획득하고 있다. 80년대 해체주의가 전통적 시양식에 대한 전면적이고 과격한 파괴를 통해 관습적 시관에 도전장을 던졌다면, 김삿갓을 비롯한 일군의 시인들은 전통 한시의 기교지상주의적 관념 시단에 대해 비아냥거림과 조소의 태도를 통해 야유를 보내고 있는 것이다.

조선후기《禦睡新話》란 책에 실려 있는 17자시는 바로 그러한 예 가운데 하나다. 제목 그대로 이 책에는 졸음을 단번에 씻어가 줄 수 있는 듣도 보도 못한 새로운 이야기들로 가득차 있다. 말하자면 당대의 개그 笑話集인 셈이다. 17자 시는 세 수의 연작이다.

어느 해 가뭄이 몹시 심했다. 원님이 단을 쌓아 놓고 기우제를 지내는데, 그 齋를 올리는 곳이 기생집 근처였다. 말이 기우제이지, 원님은 잿밥에 더 마음이 있었던 것이다. 한 선비가 그 꼴을 보고 시를 지었다.


원님이 몸소 비를 비는데
그 정성 뼈에 사무치더라.
한 밤중에 창을 열고 내어다 보니
밝은 달.

太守親祈雨
精誠貫人骨
夜半推窓看
明月

정성을 다해 드려도 시원찮을 기우제를 온통 잿밥에 마음이 쏠려 지냈으니, 기우제에 대한 하늘의 응답은 明月이었다. 원님이 이를 듣고 대로하여 선비를 매질하였다. 곤장을 실컷 맞고 나온 선비가 또 가만 있지 못하고,


열 일곱자의 시를 지었다가
곤장 스물 여덟대를 맞았네.
만약 만언의 상소를 지었더면
죽었을 거야.

作詩十七字
受笞二十八
若作萬言疏
必殺

라고 근질대는 입을 놀렸겠다. 원님은 한층 격노하여 그를 멀리 귀양 보냈다. 떠나는 날 그 외삼촌이 술과 안주를 차려 전송을 해 주었다. 그 정성이 느꺼워 선비는 다시 붓을 들었다.


저물녁 단풍든 언덕 길에서
나를 전송하는 외삼촌의 마음.
서로 떨구는 이별의 눈물은
석 줄.

斜陽楓岸路
舅氏送我情
相垂離別淚
三行

선비의 외삼촌은 애꾸였던 것이다.

그런데 이 시는 사실 우리나라 사람의 작품은 아니고 중국 명나라 때의 무명씨의 작이다. 중국의 《秋水涉筆》에 위 17자 시가 실려 있는데, 대개 두 가지 줄거리를 가진 5수의 17자 시가 하나로 뭉뚱그려져 《어면신화》에 변개 수용된 것이다. 글자의 출입도 상당하다. 이 책에는 16자 시도 실려 있다.


달님이 버들 가지 끝에 떠오니
해 진 뒤에 만나기로 약속합시다.
부모님 모두 곤히 잠들면
몰래.

月上柳梢頭
人約黃昏後
父母俱睡熟

아쉬운 데이트 시간은 너무도 빨리 흘러 가버려 어느덧 달이 늘어진 버들닢 새로 떠올랐다. 그러나 뜨거운 청춘 남녀는 그것으로 만남을 끝내기엔 아쉽기만 하다. 그래서 부모님께 들통나지 않게 한밤 중에 다시 만나 밀회를 나누자는 약속을 주고 받는 것이다.


마음은 말없는 가운데 있어
고개를 푹 숙이고 눈 웃음 짓네.
오늘 오지 못하게 되면
난 몰라.

意在不言中
低頭중眼風
今日來不得

다정한 님의 소곤거림에 그녀는 더욱 두근대는 가슴을 달랠 길 없었다. 혹시 부모님이 늦게 주무셔서 약속을 못지키게 되면 어떻게 하나. 벌써 그녀의 두 볼은 붉게 물들고 말았다.

대개 이런 시들은 형식미의 굳건함을 고수하던 전통 한시에 대해 풍자와 해학의 효과를 발휘하기에 충분하다. 내용의 희화화 뿐 아니라 형식도 더불어 와해의 조짐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김삿갓은 없다


희작시의 특징은 파격과 해학, 민중성과 익명성으로 대표된다. 특정 작가가 없을 뿐 아니라, 있다 하더라도 의미 없는 가탁이 대부분이다. 또 이들 희작시들은 기존 한시의 문법을 과감히 깨뜨리고 있고, 시의 소재 또한 당시 사설시조가 평시조에 대해 그랬듯이 非詩的 대상을 詩의 소재로 끌어들이고 있다. 또한 그럴듯한 표면 진술의 糖衣를 입혀, 이면에서 풍자와 해학을 겨냥하는 언문풍월도 다양하게 발달하였다. 전통 한시의 기준에서 본다면 이들 희작의 파격시들은 시랄 것도 없는 희학질에 불과하다. 도대체 점잖은 선비가 할 짓은 못되는 것이다.

희작시는 보통 전승의 과정에서 복수성을 띠면서 부연 확장된다. 예를 들어 김삿갓이 어느 늙은이의 부고장에 '柳柳花花'라고 넉 자를 써 주었는데, 그 뜻은 훈으로 새겨 '버들버들(柳柳) 떨다가 꼿꼿(花花)이 죽었다'의 의미가 된다. 그러면 이것이 그 다음에 가면 '柳柳井井花花'로 부연된다. 즉 '버들버들 떨다가 우물우물 하더니 꼿꼿이 죽었다'는 것이다. 〈흥부전〉에서 놀부의 심술 가지 수가 이본에 따라 한없이 늘어나는 양태와 방불하다. 이런 말장난이 좀더 세련된 시의 모양을 갖추면 새로운 한편의 희작시가 탄생된다.


세상 일을 곰곰히 생각해 보니
남들은 모두 다 활활 가는데,
내 마음 벌벌 떨기만 하며
나 홀로 살살 오가는구나.
말들은 비록 풀풀 뱉지만
세상 일은 데데하기 그지 없도다.
마음을 꼿꼿이 지키면
앞길이 솔솔 열리리라.

世事熊熊思
人皆弓弓去
我心蜂蜂戰
我獨矢矢來
言雖草草出
世事竹竹爲
心則花花守
前路松松開

참으로 절묘한 말장난이다. '熊熊'이 '곰곰'이 되고, '弓弓'은 '활활'로 읽는다. '蜂蜂'이 '벌벌'로, '矢矢'가 '살살'이 된다. 대개 장난도 이쯤 되려면 이전부터 쌓여진 노하우가 있지 않고서는 안된다. 김삿갓의 부고장이 극단에까지 이른 양상이다.

김삿갓은 없다. 언필칭 그의 시로 일컬어지는 시들은 김삿갓이 아니고서야 누가 이런 시를 지으랴 싶은 것을 모두 주워 모아놓은 것이라고 보면 거의 실상에 가깝다. TV 광고에서 김삿갓이 죽장을 짚고 근엄하게 외치는 "백년도 못되는 인생을 살면서, 천년의 근심을 지닌 채 살아가는 중생들아. 生年不滿百, 常懷千歲憂"도 사실은 그의 시가 아니라 중국의 유명한 古詩十九首 가운데 한 구절이다.

이응수에 의해 김삿갓의 시집이 처음 간행된 것은 그가 세상을 뜬지 근 70년 뒤인 1939년의 일이다. 이응수는 이곳 저곳에서 구전되던 김삿갓의 시 183편을 모아 상재하였다. 대부분이 傳聞에 의한 기록이고 보면, 그 眞僞를 헤아려 따진다는 것은 애초에 무망한 일이다. 최불암 시리즈가 그렇고 덩달이 시리즈가 그렇듯이 극단적으로 말하면, 김삿갓의 시 또한 전부터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던 불특정 다수의 희작시들이 모두 그의 이름 아래 모인 것일 뿐이다. 예를 들어,


옳은 것 옳다 하고 그른 것 그르다 함, 이것이 옳음 아니고
그른 것 옳다 하고 옳은 것 그르다 함, 옳지 않음 아닐세.
그른 것 옳다 하고 옳은 것 그르다 함, 이 그름이 아닐진대
옳은 것 옳다 하고 그른 것 그르다 함, 이것이 시비로구나.

是是非非非是是
是非非是非非是
是非非是是非非
是是非非是是非

라고 한 김삿갓의 〈是是非非詩〉는 이미 김시습이 지은 것으로 홍만종의 《소화시평》에 소개되고 있다. 한마디로 是非에 대한 분별력을 상실한 개판의 세상을 향한 야유다. 뿐만 아니라 김시습은 아예 한수 더 떠서,


다른 것 같다 하고 같은 것 다르다 하니, 같고 다름이 다르고
같은 것 다르다 하고 다른 것 같다 하니,다르고 같음이 같구나.

同異異同同異異
異同同異異同同

라는 구절도 남기고 있다. 許厚도 그의 〈是非吟〉에서 이렇게 노래한 바 있다.


참 옳은 것 시비하면 옳음도 그름 되니
물결 따라 억지로 시비할 것 아닐세.
시비를 문득 잊고 눈을 높이 두어야
옳은 것 옳다 하고 그른 것 그르다 할 수 있으리. 是非眞是是還非
不必隨波强是非
却忘是非高着眼
方能是是又非非

다 비슷한 발상에서 나온 말 장난들이다. 또 김삿갓이 문전축객 하는 주인을 풍자해서 지었다는 〈人到人家〉에,


사람이 사람 집에 왔는데 사람 대접 않으니
주인의 인사가 사람 되기 어렵도다.

人到人家不待人
主人人事難爲人

라 한 것은, 역시 奇遵의 시에,


사람 밖에서 사람 찾으니 사람이 어찌 다를 것이며
세간에서 세상을 찾으니 세상을 같이하기 어렵겠네.

人外覓人人豈異
世間求世難同世

라는 구절을 연상시킨다.

정조 때 정승을 지낸 李書九가 만년에 은퇴하여 향리에 물러나 있을 때 일이다. 그가 허름한 베잠방이 차림으로 냇가에서 낚시를 하고 있는데, 경망한 선비 하나가 시내를 건너려다, "여보. 늙은이! 나를 좀 업고 건네게." 했겠다. "그러시지요." 하고는 젊은 것을 업고 시내를 건너는데, 이 친구 늙은이 등에 업혀 까닥까닥 냇물을 건너다 보니 아뿔싸! 늙은이가 정승이나 할 수 있는 玉貫子가 하고 있지 않은가. 시골 무지랭이 늙은인줄 알았다가 큰 경을 치르게 생겼다. 어쩔줄 몰라 부들부들 떨다가 창졸간에 시내를 건넜는데, 경망한 선비는 좀전의 서슬은 간데 없이 난짝 꿇어앉아 이마를 땅에 짓찧으며 죽을 죄를 빌었다. 그러자 이 의뭉스런 늙은이는 시를 한 수 읊어주고는 다시 건너가 모른 척 낚시질이다. 그 시에 일렀으되,


吾看世시옷

是非在미음

歸家修리을

不然点디귿


이라 하였다. 도대체 무슨 말인가? 굳이 해석을 해 보면,


내가 세상의 '시옷'을 보니
是非가 '미음'에 있더라.
집에 돌아가 '리을'을 닦아라
그렇지 않으면 '디귿'에 점찍으리라.

吾看世시옷
是非在미음
歸家修리을
不然点디귿

가 된다. 점점 알 수 없는 오리무중이 아닌가. 그러고 보니 시옷은 '人'이요, 미음은 '口'의 모양이다. 리을은 '己'요, 디귿에 점을 찍으면 망할 '亡'자가 된다. 이렇게 풀고서 다시 시를 읽으면,


내가 세상 '사람'을 보니
是非가 '입'에 있더라.
집에 돌아가 '몸'을 닦아라
그렇지 않으면 '망'하리라.

吾看世人
是非在口
歸家修己
不然則亡

가 된다. 경망한 선비에게는 活訓이 아닌가. 그런데 이것이 김삿갓의 시로 둔갑이 되면서는 처음 1 2구가 슬쩍 바뀌고, 전후 이야기도 달리 윤색되었다.


허리 아래엔 '기역'을 차고
소 코에는 '이응'을 뚫었네.
집에 돌아가 '리을'을 닦아라
그렇지 않으면 '디귿'에 점찍으리.

腰下佩기역
牛鼻穿이응
歸家修리을
不然点디귿

1구는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른다는 속담이 무색하다. 소의 코뚜레를 잡고 허리에 낫을 차고 지나가는 떠꺼머리 총각을 묘사한 것이 1 2구라면, 3 4구는 박절하게 나그네를 타박하는 주인에게 쏘아붙인 독설이다. 자! 어느 것이 진짜 김삿갓이 지은 것인가?

현재 김삿갓의 시로 수록된 작품 속에서 역대 야담집이나 시화에 다른 사람의 시로 이미 소개된 것은 위의 예들 말고도 얼마든지 더 있다. 이러한 예를 통해서도 오늘날 김삿갓의 시로 믿고 있는 것이 어떤 경로로 정착되었는지는 짐작하기 어렵지 않을 것이다. 영월 소재 김삿갓 묘를 발견하여 보고한 바 있는 朴泳國 선생이 1987년 김삿갓의 三回甲을 기념하여 전국에 김삿갓 遺詩를 공모했던 바, 무려 690수의 시가 제보되었는데 앞서 본 "세상일을 곰곰이 생각해보니" 하는 시도 이때 김삿갓의 시라고 제보된 것 중 하나이다. 이렇듯 김삿갓의 시는 앞으로도 계속 늘어날 전망이고 보면, 종내는 조선조에 노래된 모든 희작시가 김삿갓의 이름 아래 야권통합(?)을 이루고야 말 모양이다.

 

슬픈 웃음, 解體의 詩學


"절대적 진리도, 선도 없다는 해체주의는 세상 일에 집착하지 않는 일종의 허무주의다. 왜곡된 현실을 왜곡되게 표현하는 해체시에서 온갖 비속어, 욕설 등이 서슴없이 구사되는 언어의 테러리즘을 보게 된다. 해체시의 어조는 진지하지 않고 너무나 유희적이고 거칠다."(김준오,《도시시와 해체시》(문학과비평사, 1992) p.17). "해체주의는 자명한 이치와 질서와 도덕을 근본적으로 회의한다. 세계를 가변적이고 일상적이며 부조리한 것으로 인식한다. 자아도 더 이상 일관되게 세계와 교섭하고 대결하는 심리적 통일체나 종합적 기능으로 보지 않는다. 그래서 해체시는 무질서한 세계를, 파편화된 세계를 그대로 수용한다."(p.152) 80년대의 해체시를 두고 한 이 언술들은 필자가 읽기에 마치 김삿갓의 시를 두고 한 말처럼 여겨진다. (이하 본문 중의 따옴표는 이 책의 구절들을 끼워 넣은 것이다.)


이대로 저대로 되어가는 대로
바람부는 대로 물결치는 대로
밥이면 밥, 죽이면 죽 생기는 이대로
옳으면 옳고 그르면 그른 부치는 저대로
손님 접대는 집안 형편대로
시정 매매는 세월대로
온갖 일 내 마음대로 함만 못하니
그렇고 그렇고 그런 세상 그런대로 지내세.

此竹彼竹化去竹
風打之竹浪打竹
飯飯粥粥生此竹
是是非非付彼竹
賓客接待家勢竹
市井賣買歲月竹
萬事不如吾心竹
然然然世過然竹

〈竹〉이란 작품이다. 脫絶凡俗한 자태로 세속을 초월한 고고한 선비의 절개를 표상하던 대나무는 이 시에서는 급전직하 '될대로 되라'는 '대'로 전락하고 있다. 원문을 중국사람에게 읽힌다면 무슨 암호문처럼 여겨졌을 것이다. 이른 바 이두의 원리를 이용한 '낯설게 만들기'가 시도되고 있는 해체의 현장이다. 이 시만 해도 조선 후기 시화집인 《夢遊野談》에는 세사에 달관한 어느 정승의 일화 속에 포함되어 실려 있다. 글자에도 다소간 출입이 있다.

예전 鄭澈이 관동부사로 있을 때 일이다. 강릉 사람 全義民이 시를 잘 지었는데, 송강이 그에게 말하기를, "내가 전에 平昌에 갔을 때 藥水라는 지명이 있길래 한 구절을 지었는데 그 바깥 짝을 얻지 못했다" 하고 읊조리기를,

땅 이름 藥水인데 병 고치기 어렵고 地名藥水難醫疾

라 하였다. 그러자 全이 말하기를, "그 대구가 있지만 감히 여쭙지 못하겠습니다."하였다. 송강이 억지로 말하기 하니, 그가 말하였다.

역 이름 餘粮인데 주림 구하지 못하네. 驛號餘粮未救飢

餘粮은 강원도 정선 땅에 있던 역 이름이었다. 송강이 낯빛을 고치고 그를 대하였다. 대개 시 속에 풍자의 뜻이 담겼던 것이다. 《詩評補遺》에 보인다. 두 구절이 모두 지명을 가지고 훈으로 풀어 유희한 것이지만, 담긴 뜻은 진지하다. 그러나 김삿갓이 함경도 일대를 떠돌다 지었다는 〈無題〉를 보면,


길주 길주 하지만 길한 고장 아니요
허가 허가 해봐도 허가하지 않는구나.
명천 명천 하건만 사람은 현명찮코
어전 어전 하여도 식탁엔 고기 없네.

吉州吉州不吉州
許可許可不許可
明川明川人不明
漁佃漁佃食無魚

라 하였다. 같이 땅 이름을 가지고 장난쳤지만 진지함을 찾기 어렵고 가벼운 말장난에 뿌리를 대고 있다. 꼴에 운자는 그대로 지키고 있으니 이 아니 얄미우랴. 교묘한 말장난 외에는 따로 건질 것이 없다.


고을 이름 開城인데 어찌 문을 닫으며
산 이름 松嶽인데 어이 땔감 없느뇨.
황혼의 逐客은 사람 인사 아닐래라
예의 동방 이 나라에 그대 홀로 오랑캐라.

邑號開城何閉門
山名松嶽豈無薪
黃昏逐客非人事
禮義東方自獨秦

이것은 개성에서 땔감이 없어 냉골에서 재울 수 없다는 핑게로 逐客을 당하고서 그집 대문에 써붙이고 갔다는 시다.


작년 9월에 구월산을 지났는데
금년 9월에도 구월산을 지나누나.
해마다 9월이면 구월산을 지나노니
구월산의 빛깔은 노상 9월이로세.

昨年九月過九月
今年九月過九月
年年九月過九月
九月山光長九月

김삿갓의 〈九月山〉이다. 무려 '九月'이란 어휘가 여덟번 되풀이 된다. 시인은 이렇게 하고서도 말이 되지 않느냐고 쾌재를 불렀을 것이다. 유희적 태도가 행간에 넘난다. 이런 말장난 뿐이 아니다. 예전 같으면 생각지도 못할 벼룩이나 이, 아니면 입에 담지 못할 욕설도 그의 시에서는 서슴없이 등장한다. 먼저 이(柕)를 읊은 시를 보자.


주리면 피 빨고 배 부르면 떨어지니
온갖 벌레 중에 가장 하등이라.
먼 길손 품 속에서 낮 햇볕을 근심하고
주린 이 배 위에서 새벽 우레를 듣는다.
모습 비록 보리알 같으나 누룩되긴 어렵고
글자 風字 못되니 매화꽃도 못 떨구리.
묻노니 능히 仙骨도 범하려는가
麻姑 할미 머리 긁으며 天台山에 앉았는데.

飢而橪血飽而熿
三百昆蟲最下才
遠客懷中愁午日
窮人腹上聽晨雷
形雖似麥難爲麴
字不成風未落梅
問爾能侵仙骨否
麻姑搔首坐天台

역시 운자는 지켰다. 이(柕)를 시적 대상으로 노래한 것만으로도 대단한 파격인데, 그 발상 또한 흥미롭다. 먼 길손의 품 속에서 낮 햇볕을 근심한다는 3구는 무슨 말인가? 길 가던 나그네는 햇살이 따뜻하면 양지녁에 쭈그리고 앉아 저고리를 홀랑 뒤집어 놓고 이른바 이 사냥을 하게 마련이다. 4구의 우레소리는 주린 창자에서 나는 꼬르륵 소리에 다름 아니다. 보리알 처럼 생겼음에도 누룩은 될 수 없고, '柕'자는 '風'에서 한 획을 뺀 것이니 헛김이 샐 밖에. 仙骨은 자신을 이름일테고, 마고할미는 '麻姑搔痒'이란 말이 있듯 새 처럼 긴 손톱을 지녔다는 전설 속 선녀의 이름이다. 그러니 7 8구는 긴 손톱으로 어디든 가려운 곳을 긁어내는 마고 할미가 천태성에 앉아 仙骨인 나를 지키고 있으니 감히 내게 붙을 생각도 하지 말라는 경고인 셈이다. 삿갓 쓰고 떠도는 인생, 사방 어디 걸리는 것 없어도, 이나 벼룩 따위의 괴로움만은 면할 수 없어 해학으로 풀어본 것이다. 그러니까 주제는 '이야! 제발 내게서 떨어져 다오.'이다.

이러한 "풍자정신 앞에 신성한 것, 숭고한 것, 초월적인 것은 아무 것도 존재할 수 없다. 여기서 또 하나 주목되는 것은 '생각해 보았는가'하는 세계에 대한 지적 반응이다. 지적 반응은 희극적 태도다. 희극적 태도는 한마디로 세상을 '우습게' 보는 태도다."(p.21)


서당을 진작부터 알고 있나니
방 가운덴 모두다 존귀한 물건뿐.
생도는 모두 열 살도 안되어
선생이 와도 인사할 줄 모른다.

書堂乃早知
房中皆尊物
生徒諸未十
先生來不謁

김삿갓이 고약한 시골 훈장을 기롱한 시로 전한다. 겉보기에는 심상한 시골 서당의 풍경을 노래한 듯 하지만 각 구절 뒤의 세 글자를 독음으로 읽으면 흉칙한 욕설이 된다. 다섯글자로 시 흉내만 낸 것이지 정말 고약한 장난이다. 김삿갓의 세상을 향한 비뚤어진 욕설은 이에 그치지 않는다.


동글동글 중 머리통 땀난 말 불알 같고
뾰족한 선비 대가리는 앉은 개좇 같구나.
목소리는 구리방울로 구리 솥을 치는듯
눈깔은 검은 후추 흰 죽에 떨어진듯.

僧首團團汗馬崇
儒頭尖尖坐狗腎
聲令銅鈴零銅鼎
目若黑椒落白粥

아마도 변성기를 거치지 않은 듯 쨍알쨍알 하는 목소리의 중과, 어디 박혔는지 한참 찾아야 할 지경으로 눈이 작은 선비가 합세해서 김삿갓을 구박했던 모양이다. 위 시는 이 때 김삿갓의 반격으로 전해지는데, 僧俗을 불문하고 무차별 공격을 감행하는 형국이다. 경박하기 그지 없고, 언어에 대한 일말의 애정도 찾아 볼 수 없다. 이게 무슨 시인가?

"시인은 현실의 온갖 추악한 모습을 비정하게 들추어낼 뿐 판단은 독자에게 맡긴다."(p.147) "해체시에서 세계는 온갖 추악과 모순으로 가득 차 있다. 해체주의 시인들은 절대적 진리도 선도 가치도 믿지 않는다. 김병익의 기술을 빌리면 그들에게 '믿을 수 있는 것, 전할 수 있는 것, 사랑할 수 있는 것은 전혀 없다. 욕설과 요설의 비틀린 언어는 이런 허무주의적 공허의식의 산물이다."(p.152)

사정이 이렇고 보니, 일찍이 홍기문은 김삿갓의 시를 두고 비천한 재담이지 시가 아니라고 혹평한 바 있고, 근세의 한학자 呂圭亨은 이런 시풍이 유행하여 정통의 한시가 타락의 나락으로 떨어지고, 이 소문이 이웃나라에 알려질까봐 걱정이라는 시를 남기기까지 했다.

"풍자 일변도는 悲歌的 세계관으로 연결된다. 매우 역설적이지만 비가적 세계관은 불만을 삶의 완벽한 기교로 채용한다. 그래서 비가적 시인에게는 계속 짖어야 될 부정의 세계를 언제나 필요로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의 존재 근거를 상실하기 때문이다. 세계가 바뀌면 그 바뀐 세계의 불만의 요소를 또 발견해야 한다. 비가적 세계관은 상황의 거대함과 자아의 왜소함 사이의 그 엄청난 불균형을 과장한다. 그것은 넋두리와 하소연의 무기력한 어조를 띤다."(p.21)

대체로 김삿갓의 장난시를 대할 때마다 필자가 느끼게 되는 감정은 서글픔과 씁쓸함이다. 經國濟世에의 포부를 품고 배우고 익힌 학문과 지식을 고작 이깟 희학질에 썼더란 말인가? 그인들 이런 시를 짓고 싶었으랴만, 그로 하여금 이런 장난질에 몰두하게끔 강요한 현실이 역으로 희대의 민중시인을 낳았다는 이 역사의 아이러니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그의 시에서 이나 벼룩, 욕설과 섹스 등 비시적 대상의 시화가 지배적 특징으로 나타나는 것은 결코 이상한 일이 아니다. 비록 김삿갓의 경우 조부의 훼절에 말미암은 개인적 연유에서 비롯된 것이라고는 하나, 김삿갓의 시정신은 당대 조선사회가 처했던 제반 역사환경의 변모에 의해 안받침 되고 있으며, 이를 통해 사회적 성격을 부여받고 있다. 시는 그 사회를 비추는 거울인 까닭이다.

그렇다고 김삿갓이 '비천한 재담'만을 일삼았던 광대였던 것은 아니다. 만일 그가 천박한 재담만으로 일관했다면 애초에 그의 시는 문자로 기록되어 보지도 못하고 사라지고 말았을 것이다.


네 다리 소반에다 죽이 한 그릇
하늘 빛에 구름이 함께 떠도네.
주인아 면목 없다 말하지 마오
얼비쳐 오는 청산 내사 좋으니.

四脚松盤粥一器
天光雲影共徘徊
主人莫道無顔色
吾愛靑山倒水來

가난한 살림에 지나는 과객에게 먹다 남은 묽은 죽 한 그릇을 내오는 것을 보고 지었다는 시이다. 죽이 얼마나 묽었으면 앞 산의 그림자가 얼비쳤을까. 이런 시도 점잖은 체면에서 보면 되잖케 보이기 마련이어도, 자신의 인생을 물끄러미 관조하는 잔잔한 서글픔이 있어 좋다.


천황씨가 죽었느냐 인황씨가 죽었느냐
푸른 산 나무마다 온통 소복 입었네.
밝는 날 햇님보고 조문하게 한다면
집집 처마 마다 눈물이 뚝뚝.

天皇崩乎人皇崩
萬樹靑山皆被服
明日若使陽來弔
家家畯前淚滴滴

눈을 노래한 〈雪〉이란 작품이다. 소담스런 서설이 내려 온 세상은 하얀 素服으로 갈아 입었다. 하얀 소복을 입고 흰 눈이 내린 날 아침에는 아이들을 울리지도 말자던 노천명과는 달리, 시인은 엉뚱하게 흰 눈에서 주재자의 죽음을 떠올리고, 햇볕에 녹아 떨어지는 낙수를 눈물로 환치시켜 버린다. 시상을 전개하는 시적 발상도 참신하려니와, 그의 무기력한 나른함과 뿌리 깊은 비애의 정조가 가슴을 씁쓸히 적신다. 그는 뒷날 자신의 평생을 돌아보며 34구의 〈蘭嗸平生詩〉를 남겼다. 그 끝 네 구절은 이렇다.


궁한 신세 속인들의 白眼視만 받았고
세월 가며 터럭만이 시들었구나.
돌아가기도 어렵고 머물기도 어려워
몇 날을 길 가에서 서성였던고.

身窮每遇俗眼白
歲去偏傷撖髮蒼
歸兮亦難佇亦難
幾日彷徨中路傍

김삿갓의 해학의 뒤안에는 이럴 수도 저러지도 못하는 체념의 悲感이 감돌고 있다. 연구자들은 김삿갓이 특히 科體詩에 능하여 200여수를 남긴 것을 특기한다. 과체시란 무엇인가? 문자 그대로 과거 시험장에서 요구하는 형식이 지극히 까다로운 詩體이다. 김삿갓이 장난질의 와중에서도 그 많은 과체시를 남기고 있다면 그 속에 담긴 숨은 뜻은 무엇일까? 나도 마음만 먹으면 體制가 요구하는 교과서적인 시쓰기도 얼마든지 할 수 있었다는 절규는 아니었을까? 어쨋든 그의 웃음은 슬프다. 그 슬픈 웃음의 뒤안은 외면한 채, 자꾸 가십적인 살을 붙여 그를 봉이 김선달류의 '비천한 재담가'로 만드는 것은 이즘 사람들의 악취미다.

 

漢詩 최후의 광경


"해체시는 전통미학과 기존문화를 해체하고 기존의 인간관도 해체시키려는 일종의 무규범성으로서의 소외 양상이었다. 해체시는 언어에 대한 불신으로 세계에 대한 불신을 효과적으로 표명했다. 욕설, 야유, 아이러니의 비틀린 언어도 소외의 주목할만한 시적 양상이다."(p.115)


슬프다 문벌은 모두 훌륭한 집안으로
세월에 헛되이 늙으니 홀로 구슬프도다.
오로봉 아래에서 이치 논하며 앉았자니
세상 사람 모두 도를 안다 일컫네.

可憐門閥皆佳族
虛老風塵獨可悲
五老峯下論理坐
世人皆稱道也知

위 시는 《閒中記聞》에 실려 있다. 한 사람이 시덥잖은 제 집안과 학문을 지나치게 뽐내므로 林悌가 조롱하여 지었다는 설명이 붙어 있다. 五老峯 아래에서 理를 논하며 앉아 있는 늙은이가 있다. 훌륭한 문벌의 자손으로, 이제는 영락해서 늙고 고단한 인생이다. 이야기야 예전 좋은 시절 조상 자랑이거나, 그렇고 그런 道學 이야기일테지만, 영문을 모르는 세상 사람들은 道人으로 일컬으며 높이고 있다는 이야기다. 몰락한 양반님네의 안스러운 허세를 풍자한 것이다.

그러나 이 시는 독음으로 읽어야만 본 뜻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슬프다 문벌은 모두 개가죽이요
세월에 헛되이 늙은 도깨비로다.
오로봉 아래에 노루가 앉았는데
세상 사람 모두들 도야지라 일컫네.

可憐門閥개가죽
虛老風塵도깨비
五老峯下노루坐
世人皆稱도야지

'모두 훌륭한 족속(皆佳族)'이 사실은 '개가죽'이었고, '홀로 구슬프도다(獨可悲)'를 독음으로 읽으니 '도깨비'가 되었다. '이치를 논함(論理)'는 들짐승 '노루'가 되고, '도를 안다(道也知)'는 기실 '도야지' 즉 돼지였을 뿐이다. 도대체 문벌이니 도학이니 하는 것이 무엇이던가. 개가죽이요 도깨비 같이 허상만 있고 실상은 아무 것도 없는 빈 껍데기가 아니던가. 노루를 보고 도야지라 하는 세상 사람들의 어리석음은 또 어떠한가. 시인은 기실 그를 아는 사람이라고 추켜 세운 것이 아니라 돼지 같은 놈이라고 욕을 퍼붓고 있는 것이다. 또 《俚諺叢林》에는 오성 이항복이 지었다는 시가 실려 있다.


오늘 아침 남의 수레를 빌려 타다
홀연이 떨어져서 뒤꼭지가 깨졌네.
장안 큰 길에서 에고에고 울자니
세상 사람 모두다 미치광이라 하더라.

今朝借乘남의襄
忽然落地꼭뒤傷
長安大道에에哭
世人皆稱미치狂

언문진서 섞어作으로 칠언절구를 지었다. 내용이야 뭐 대단한 것이 있을 리 없고, 다만 말을 씹는 재미가 있을 뿐이다. 이것이 구한말에 오면


사랑 문간에 처녀가 있는데
무던한 얼굴에다 가녀린 허리.
사람을 한번 보고 얼른 숨으니
마치 구름 사이 달이 숨는듯.

舍廊곗집處女在
무던顔色가는腰
사람一見얼는隱
마치雲間月明消

로 진전된다. 李沂가 《대한자강회월보》에 소개한 것이다. 그 사이에 김삿갓의 "데걱데걱登南山, 씨근벌떡息氣散. 醉眼朦朧굽어觀, 울긋불긋花爛漫"이나, "靑松등성듬성立, 人間여기저기有. 所謂엇뚝빗뚝客, 平生쓰나다나酒"와 같은 작품들이 또 있으니, 대개 이러한 파격시도 어느 순간 평지돌출 한 것이 아니라 오랜 세월 동안의 집적 속에서 이루어진 것임을 알 수 있다.

한시의 해체가 종당에 가면 아예 한글로 한시를 짓는 이른바 '언문풍월'로까지 발전한다. 언문풍월은 예전 주로 궁녀들이 한시의 작법을 응용하여 나름의 규칙을 세워 짓던 일에서 비롯된 것으로 알려진다. 김삿갓의 시에도 '타'를 운자로 해서 "사방기둥붉어타, 석양행객시장타. 네절인심고약타"와 처럼 3구가 낙구된채로 전해지는 언문풍월이 있다. 그러나 언문풍월이 본격적인 창작을 보게 된 것은 개화기에 와서인데, 1900년대에는 거의 시조문학과 경쟁관계를 유지할만큼 기세를 떨쳤다. 여러 잡지에서는 운자와 제목을 주고 현상공모를 하고, 응모작 중에 가작 수백편을 모아 《諺文風月》이란 책을 출판하는 성황을 이루기까지 했던 것이다. 언문풍월은 쉽게 말해 기존 한시의 작법을 패로디하여 만든 국문시가이다. 다음은 대한매일신보에 실렸던 작품이다. 제목은 〈자명종〉이고, 운자는 '가나다'이다.


두개바늘놀아가
글자마다치노나.
땅땅치는그소리
늙을로자부른다.

큰 바늘 작은 바늘이 쉬지 않고 돌면서 정시마다 종을 쳐댄다. 그 소리는 마치 늙음을 재촉하는 소리로만 들린다는 재치다. 1.2.4구의 끝에 운자를 차례대로 달았다.

참대붙인종이가
흔들면은바람나
몹시더운여름에
친한벗이네로다

제목은 〈부채〉과 운자는 역시 '가나다'이다. 운자가 언제나 '가나다'인 것은 아니다.


명주비단고운올
요리조리가는골
어김없는네로다
좋은솜씨지은솔

제목은 〈바늘〉이고, 운자는 '올골솔'이다. 올이 고운 명주비단에 요리조리 골을 내어 바느질을 하고 나니 솔기마다 솜씨가 정갈하다는 내용이다. 이렇듯 언문풍월은 일상적인 여러 소재들을 가지고 운자에 있어서도 쉬운 것에서 어려운 것까지 다양하게 창장되고 있다. 특히 이것은 한시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 없이 재치만으로도 창작이 가능했으므로, 특정계층에 국한되지 않고 폭넓은 작가층을 가졌다는데서 또 다른 의의를 갖는다. 이 시기에 와서 한시는 이제 더 이상 감당해 낼 역할을 잃고 말았던 것이다.

의식의 변화는 내용의 변모를 가져오고, 내용의 변모로도 의식의 변화를 감당할 수 없을 때 형식이 변한다. 기존 한시의 굳건한 문법은 개화기의 발랄한 실험정신 아래 헤아릴 수 없이 많은 해체의 양식들을 선보였다. 다만 그것이 치열한 시정신에 의해 안받침 되지 못한 결과, 새로운 형식들은 일과성의 장난기로 그치고 말았지만, 이러한 실험들이 시사하는 바는 심장하다. 해체주의의 80년대를 넘어, 포스트모더니즘이 공룡처럼 다가와 있는 오늘의 시단에서도 새로운 담론의 방식에 대한 모색은 활발히 계속되고 있다. 기존 언어에 대한 회의와 불신의 벽을 허물고, 새로운 시의 문법을 찾아 나서려는 노력도 힘차다. 그러나 시의 새로운 말하기 방식이 그 실험적 의도의 강렬함에도 불구하고 시대를 인식하는 시대정신이나, 치열한 시정신에 의해 안받침되지 않는다면, 이 또한 희필의 붙이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잡체시나 파격시가 오늘의 시단에 던지는 정신사적 연관이 있다면 이 또한 아마도 이러한 언저리에 놓여질 것이다.


내용출처 : http://osj1952.com.ne.kr/study/study4-18.htm

(출처 : '욕으로 된 한시(漢詩)?' - 네이버 지식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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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시중미지략언 (論詩中微旨略言)-이규보(李奎報)


    

 시(詩) 가운데 있는 은미한 뜻을 논한 약언-李奎報

 


夫詩以意爲主(부시이의위주) : 대저 시는 뜻[意]으로 주를 삼는 것이니,

 

設意尤難(설의우난) : 뜻을 베푸는 것이 가장 어렵고,

 

綴辭次之(철사차지) : 말을 만드는 것이 그 다음 어렵다.

 

意亦以氣爲主(의역이기위주) : 뜻은 또 기(氣)로 주를 삼는 것이니,

 

由氣之優劣(유기지우렬) : 기(氣)의 우열에 따라

 

乃有深淺耳(내유심천이) : 천심(淺深)이 있게 된다.

 

然氣本乎天(연기본호천) : 그러나 기(氣)는 하늘에 근본한 것이니,

 

不可學得(부가학득) : 배워서 얻을 수는 없다.

 

故氣之劣者(고기지열자) : 그러므로 기(氣)가 졸렬한 사람은

 

以雕文爲工(이조문위공) : 문장을 수식하는 데에 공을 들이게 되어,

 

未嘗以意爲先也(미상이의위선야) : 일찍이 뜻으로 우선을 삼지 않는다.

 

蓋雕鏤其文(개조루기문) : 대개 문장을 다듬고

 

丹靑其句(단청기구) : 문구를 수식하니


信麗矣(신려의) : 그 글은 참으로 화려할 것이다.

 

然中無含蓄深厚之意(연중무함축심후지의) : 그러나 속에 함축된

                                                                                 심후한 뜻이 없으면,

 

則初若可翫(칙초약가완) : 처음에는 꽤 볼 만하지만,

 

至再嚼則味已窮矣(지재작칙미이궁의) : 재차 음미할 때에는 벌써

                                                                          그 맛이 없어지고 만다.

 

雖然(수연) : 그러나

 

凡自先押韻(범자선압운) : 시를 지을 때에 먼저 낸 운자가

 

似若妨意(사약방의) : 뜻을 해칠 것 같으면

 

則改之可也(칙개지가야) : 운자를 고쳐내는 것이 좋다.

 

唯於和人之詩也(유어화인지시야) : 오직 다른 사람의 시를 화답할 경우에

 

若有險韻(약유험운) : 그 운자가 험하거든

 

則先思韻之所安(칙선사운지소안) : 먼저 운자의 안치할 바를 생각한 다음에

 

然後措意也(연후조의야) : 뜻을 안배해야 한다.

 

至此寧且後其意耳(지차령차후기의이) : 이때에는 차라리 그 뜻을 다음

                                                                         으로 할지언정

 

韻不可不安置也(운부가부안치야) : 운자는 안치하지 않을 수 없다.

 

句有難於對者(구유난어대자) : 글귀 중에 대를 맞추기가 어려운 것이 있으면

 

沈吟良久(침음량구) : 한참 동안 침음(沈吟)하고 나서

 

想不能易得(상부능역득) : 쉽게 얻어질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되면

 

則卽割棄不惜宜矣(칙즉할기불석의의) : 곧 그 글귀는 버리는 것이

                                                                         마땅하다.

 

何者(하자) : 왜냐하면

 

計其間儻足得全篇(계기간당족득전편) : 그 글귀의 대를 맞추는 시간에

                                                        혹 전편(全篇)을 지을 수도 있기 때문이니,

 

而豈可以一句之故(이개가이일구지고) : 어찌 한 글귀 때문에

 

至一篇之遲滯哉(지일편지지체재) : 1편이 지체되게 해서야 되겠는가?

 

有及時備急則窘矣(유급시비급칙군의) :그때에 막 당하여 촉박하게

                                                                         지으면 군색하기 마련이다.

 

方其搆思也(방기구사야) : 그러므로 시를 구상할 때에

 

深入不出則陷(심입불출칙함) : 깊이 생각해 들어가서 헤어나지 못하면

                                                        빠지게 되고,

 

陷則着(함칙착) : 빠지면 고착되고,

 

着則迷(착칙미) : 고착하면 미혹되고,

 

迷則有所執而不通也(미칙유소집이불통야) : 미혹하면 집착되어

                                                                                통하지 못하게 된다.

 

惟其出入往來(유기출입왕래) : 오직 출입왕래하며

 

左之右之瞻前顧後(좌지우지첨전고후) : 좌우전후로 두루 생각하여

 

變化自在(변화자재) : 변화가 자재하게 한 뒤에야

 

而後無所礙(이후무소애) : 막힌 바가 없이

 

而達于圓熟也(이달우원숙야) : 원만하게 된다.

 

或有以後句救前句之弊(혹유이후구구전구지폐) : 혹은 뒷 글귀로

                                                               앞글귀의 폐단을 구제 하기도 하고

 

以一字助一句之安(이일자조일구지안) : 한 글자로 한 글귀의 완전함을

                                                                          돕기도 하는 것이 있으니,

 

此不可不思也(차부가부사야) : 이것은 불가불 생각해야 할 것이다.

 

純用淸苦爲體(순용청고위체) : 순전히 청고(淸苦)로 시체(詩體)를 삼으면

 

山人之格也(산인지격야) : 산인(山人)의 격(格)이요

,

全以姸麗裝篇(전이연려장편) : 순전히 화려한 말로 시편을 장식하면

 

宮掖之格也(궁액지격야) : 궁액(宮掖)의 격이다.

 

惟能雜用淸警雄豪姸麗平淡然後備矣(유능잡용청경웅호

                       연려평담연후비의) : 오직 청경(淸警) 웅호(雄豪)ㆍ연려(姸麗)

                                      평담(平淡)을 섞어 쓴 다음에야 제대로 갖추어져서,

 

而人不能以一體名之也(이인부능이일체명지야) : 사람들은 일체

                                                                         (一體)로 이름하지 못한다.

 

詩有九不宜體(시유구부의체) : 시에는 9가지의 불의체(不宜體;마땅하

                                                        지 않은 체)가 있으니,

 

是予所深思而自得之者也(시여소심사이자득지자야) : 이는 내가

                                                                      깊이 생각해서 자득한 것이다.

 

一篇內多用古人之名(일편내다용고인지명) : 1편 내에 옛사람의

                                                                                이름을 많이 쓰는 것은

 

是載鬼盈車體也(시재귀영차체야) : 바로 재귀영거체(載鬼盈車體)요,

 

攘取古人之意(양취고인지의) : 옛사람의 뜻을 절취하는 것으로

 

善盜猶不可(선도유불가) : 좋은 것을 절취하는 것도 오히려 불가한데,

 

盜亦不善(도역부선) : 좋지 못한 것을 절취한다면

 

是拙盜易擒體也(시졸도역금체야) : 이는 바로 졸도이금체(拙盜易擒體)다.

 

押強韻無根據處(압강운무근거처) : 그리고 강운(强韻)을 근거없이 내어

                                                                쓰는 것은

 

是挽弩不勝體也(시만노불승체야) : 바로 만노불승체(挽弩不勝體)요,

 

不揆其才(부규기재) : 그의 재주를 요량하지 않고

 

押韻過羌(압운과강) : 운자를 정도에 지나치게 내는 것은

 

是飮酒過量體也(시음주과량체야) : 바로 음주과량체(飮酒過量體)요,

 

好用險字(호용험자) : 험한 글자를 쓰기 좋아하여

 

使人易惑(사인역혹) : 사람으로 하여금 의혹되기 쉽도록 하는 것은

 

是設坑導盲體也(시설갱도맹체야) : 바로 설갱도맹체(設坑導盲體)요,

 

語未順而勉引用之(어미순이면인용지) : 말이 순조롭지 못한데

 

是強人從己體也(시강인종기체야) : 굳이 인용하는 것은 바로 강인종기체요

 

多用常語(다용상어) : 상스러운 말을 많이 쓰는 것은 

 

是村父會談體也(시촌부회담체야) : 촌부회담체요

 

好犯語忌(호범어기) : 기휘(忌諱)하는 말을 쓰기 좋아 하는 것은 

 

是凌犯尊貴體也(시능범존귀체야) : 바로 능범존귀체요

 

詞荒不删(사황부산) : 거친 말을 산삭하지 않는 것은 

 

是莨莠滿田體也(시랑유만전체야) : 바로 낭유만전체다.

 

能免此不宜體格(능면차부의체격) : 이 불의체를 면하고

                                                              

而後可與言詩矣(이후가여언시의) : 난 뒤에야 시를 말할 수 있다. 

 

人有言詩病者(인유언시병자) : 시의 병통을 말해 주는 사람이 있으면

 

在所可喜(재소가희) : 기쁜 일이다.

 

所言可則從之(소언가칙종지) : 그러나 그의 말이 옳으면 받아들이고

 

否則在吾意耳(부칙재오의이) : 옳지 않으면 나의 뜻대로 할 뿐이다

.

何必惡聞(하필악문) : 어찌 듣기 싫어하기를

 

如人君拒諫終不知其過耶(여인군거간종불지기과야) : 마치

                                    임금이 간언을 거절하는  것과 같이 하여 끝내 그

                                    허물을 모르고 넘길 필요가 있겠는가?

 

凡詩成(범시성) : 무릇 시가 이루어지면


反覆視之(반복시지) : 반복 관찰하되,

 

略不以己之所著觀之(략불이기지소저관지) : 자기가 지은 것으로

                                                                                  보지 말고

 

如見他人及平生深嫉者之詩(여견타인급평생심질자지시) : 다른

                                 사람이나 또는 평생 심히 미워하는 자의 시를 보듯 하여,

 

好覓其疵失(호멱기자실) : 그 하자(瑕疵)를 열심히 찾아도

 

猶不知之(유부지지) : 오히려 알지 못하는데

 

然後行之也(연후행지야) : 하자을 없앤 뒤에야 그 시를 세상에 내놓는다.

 

凡所論(범소론) : 무릇 논한 바는

 

不獨詩也(부독시야) : 시뿐만 아니라,

 

文亦幾矣(문역기의) : 문(文)도 그러하다.

 

況古詩者(황고시자) : 더구나 고시(古詩) 중에

 

如以美文句斷押韻者佳矣(여이미문구단압운자가의) : 아름다운

                                              문구에 운자를 단 매우 아름다운 것 같은 것은

 

意旣優閑(의기우한) : 뜻은 이미 우한(優閑)하고

 

語亦自在(어역자재) : 말도 자유로워서

 

得不至局束也(득부지국속야) : 구속받는 점이 없다.

 

然則詩與文(연칙시여문) : 그렇다면 시와 문은

 

亦一揆歟(역일규여) : 역시 늘 변함이 없는 한결 같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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