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 구시렁구시렁의 연속! ㅠㅠ 말을 최대한 줄여서 '카리스마' 있어보이려고 했는데... 실패했다.
담임 시간이 너무 많은 것이 사단이었다.

9:00~10:30  '2학년실 자리 정비해야하니 다 같이 들어가지 말자'는 이야기를 듣지 못하고 지난 주 준비해둔 가정환경조사서를 가지고 교실로 들어갔다. 마냥 떠들던 아이들이 얼렁 제자리를 찾아든다. 한달 간은 번호 순서대로 앉아달라 부탁하려고 "어떻게들 앉아있니?" 했더니
"번호 순서대로 앉아있어요~" 한다. 어라, 말도 안했는데 끼리끼리가 아닌 번호 순서대로 즈들이 알아서 앉아있다고? ㅎㅎ
"앞으로 한 달만 이렇게 앉자. 샘이 느들 얼굴이랑 이름이랑 번호랑 기억해야하니까. 그렇게 할까?" 
"예~"
"사물함은?"
"번호 순서대로 정리했는데요..."
엥? 사물함까지? 이 아이들, 독특한 거야. 작년에 이렇게 군대식으로 교육받은 거야?
비어있는 복도 쪽 책꽂이를 가리키며
"그럼 개인 책꽂이는? 그것도 번호순서대로 할까?" 
또한 다같이 소리 맞춰 "네~"
쉽게 쉽게 넘어가니 좋긴 좋구나. 전제군주제, 맛들이면 헤어나기 힘들겠다. ㅋㅋ

[선생님께만 보여주는 나](가정환경조사서)를 나눠주고 작성하게 했다. 생활기록부 운운하며 진실하고 성실하게 작성해야한다고 신신당부. 특히 학비감면이 필요한 사람은 작년에 받은 것을 토대로 상황을 객관적으로 쓰라고. 필요하면 가정방문을 갈 수도 있다고.

그리고 급식 도우미 선발. 아이들은 의외로 손을 많이 들었다. 지난 학교에서는 급식비를 면제받고 도우미를 신청했기 때문에 '듣던대로구나. 이렇게 많은 아이들이 급식비 내기도 어렵단 말이지... 에구.. 어쩌나..' 맘속으로 깊은 시름에 잠기며
"가위바위보로 정하면 정말 필요한 아이가 지원을 못 받게 될 수도 있으니까 정말 필요하다 싶은 사람은 샘한테 문자 날려라"
칠판에 이름과 핸폰 번호를 써주며
"자 모두들 핸폰 꺼내고 샘한테 7반 0번 누굽니다~ 이렇게 문자 날려줘. 번호 저장하게. 급식도우미 하고 싶은 사람은 필요하다는 메시지도 넣고"
시개를 보니 애매하게 남았다.. 흠흠.. 갑자기 들고간 노트북을 열심히 설치하기 시작했다. '기러기의 비행'을 보여주고 싶었던 거다. "2,3학년 학생들은 지금 즉시 강당으로 오세요. 교장선생님의 취임식, 새로 오신 선생님 인사, 부장선생님 인사, 담임 발표가 있습니다."라는 방송이 시끄러운 가운데 정신 없이 동영상이 흘러가면 드뎌 '혼자 날면 빨리 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럿이 함께 날면 멀리 갈 수 있습니다.' 멋진 마지막 멘트도 끝났다. 다른 반은 거의 강당으로 다 가고 우리반만 허위허위... 헉헉..

취임식을 마치니 11시 30분 점심시간까지 1시간이 남았는데 또 담임시간이란다. 우이씨... 다른 반 샘들은 이제 처음 아이들을 만나는 거지만 나는 벌써 할 거 다했다. 어쩔? 하는 수 없이 [얘들아, 나는 말이야...]를 들고 다시 교실로. 우선 아까 미쳐 정하지 못한 급식 도우미 이야기를 다시 꺼냈다.
"급식 도우미 그거 세 명은 봉사시간 주는 거라며? 나는 급식비 지원하는 건줄 알고... ^^ㅋㅋ 급식비 지원 받는 건 나중에 상담해서 결정하기로 하고 봉사시간 주는 건 지금 정하자. 다같이 가위바위보 해서 나랑 같은 거 내는 세 사람. 어때?"
"네~" 
어리버리한 담임 때문에 지난한 과정을 그렇게 세 명이 정해졌다.

가지고 온 [얘들아, 나는 말이야]를 나눠주고 우선 뒷면의 시를 함께 읽었다.
"담쟁이-도종환 ... ..."
"너무 좋지?"
아이들 묵묵부답. --;;
'너희들 서로의 첫인상이 더욱 중요하니까 다른 아이들에게 자신을 소개해보거라' 하며 그림도 그리게 하고, 자기 이름으로 삼행시도 쓰게 하고, 자신의 장점과 올해 꼭 하고 싶은 일, 모두에게 하고 싶은 말 등등을 쓰게 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엄청 오래 걸렸다. 뒷 게시판에 대충 다 붙이고 나니 10분 정도 남는군. 그때 번뜩 든 생각! '아, 임시 반장 안 뽑았다'
"그럼 이제 우리 임시 반장을 정해볼까? 자격기준은... 우선 담임을 좋아하는 사람, 그리고 두번째는 성실한 사람"
"000 시키지요~"
"세번째 자격이 임시반장 하고 싶은 사람"
조용~~ 아무도 없다.
"만약 정식 반장 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지금 임시반장으로 아이들에게 점수 따놓는 게 좋겠제?" 한 마디 더 미끼를 던졌으나
고요~~ 너무도 적막. 역시 아무도 없다. 나만 멀뚱멀뚱 뚫어져라 쳐다보는 아이들. 그때 마침 점심시간 종이 울렸다. 우짜지?
"야들아, 임시 반장 정해져야 밥 묵지. 나 배고파. 느들도 배고프제. 하고 싶은 사람 빨리 말해라. 내가 그리 싫나?"
그래도 조용. 하는 수 없이 비장의 가위바위보를 다시 제안했다.
"다 같이 가위바위보 해서 나랑 같은 거 내는, 샘이랑 텔레파시 통하는 사람으로 하자. 어때?"
"좋아요~"
또한 이렇게 지난한 과정을 거쳐 23번 주은이가 임시반장으로 정해졌다. 가위바위보, 두 번 연달아 내가 '찌'를 냈는데 두 번째도 나랑 같은 '찌'를 낸 사람은 주은이 하나밖에 없었다.
"우와~ 니 진짜 내랑 통하는 갑다. 자 이제 다들 밥 먹어라~"
우루루

7교시는 토3이 올라오기로 되어있었다. 6교시 후 교실에서 청소지도를 하고 있는데 방송이 나왔다. "7교시까지 이어서 대청소를 하시기 바랍니다."  아니 무슨.. 첫날에 청소구역도 안 정해지고, 청소도구가 있어야 말이쥐.
"천천히 7교시까지 수업할래? 아니면 얼릉 끝내고 7교시 수업할래?"
"천천히 할게요"

7교시. 하는 수 있나. 또 담임이 들어가는 수밖에. 우선, 나도 [담임 소개서]를 게시판에 붙였다.
멀뚱멀뚱...이번 시간에는 뭘 하나?? 그래서 시작된 나의 지리한 횡설수설... 요약하면 공부 잘하는 방법, 별거 없다. 수업 시간에 반드시 샘을 볼 것! 그러면 자연히 귀에도 설명이 들어오고 그렇게 하나 둘 듣다 보면 하루 이틀 집중하는 시간 늘어나고 알아듣는 것도 많아진다. 입은? 당연히 샘 말에 대꾸해야지. 알면 알겠다, 모르면 모르겠다. 이것 못 하면 따로 백날 공부 해도 헛꺼야. 세상에 별 것 없는 이 내용으로 30분을 떠들었다. 아이들이 졸만도 하지. 그리고 남는 시간엔 나의 비장의 무기 지식채널 보여줬다. 교양과 상식을 쌓는 데 이것만한 것이 없다. 앞으로 아침 조례시간에도 일주일에 두 번 정도는 이걸 보여줄거다. 상식이 많아야 세상과 사물을 보는 눈이 깊어지고 넒어진다.

준비물 알려주고 교실을 나온 시간이 5시 20분. 내 밑천 바닥까지 다 드러낸 모습으로 터벅터벅...
에고 지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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