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달달 8-9-10월의 책.
9월부터 시작하여 급한 마음에 출퇴근길에 들었다. 출퇴근길 책 듣기는 애로사항이 많다. 영어책은 더 그랬다. 아는 얘기는 잘 들리고 모르는 얘기는 잘 안 들린다. 모르는 단어는 정말 모르는 단어일 때도 있고 내가 아는 발음과 다른 고유명사일 때도 있다. 이렇게 듣다보면 졸기도 하고, 잘 모르겠는 와중에 네비게이션 안내 소리 한 번 나와주면 그때부터 갑자기 산으로 가는 내 정신력.. 아이 데리러 갔다가 듣던 부분을 계속 틀었는데 잘 들리냐고 물으니 잘 들린다고 하더라. 그래 어릴 때부터 네이티브들에게 영어를 배운 네 귀 좋다 흥...
그래서 어떤 에피소드는 쉽게 넘어가는데 어떤 에피소드는 3-4번 듣기도 했다. 처음에는 듣고 나서 잘 모르겠던 부분을 책으로 확인했지만, 뒤로 갈수록 지쳐가서 이제는 내가 어느 부분을 이해 못했는지 기억도 안 나는 상태가 되어 대략적인 내용을 파악하는 데 의의를 두고 계속 들었다.
그러다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영어읽기를 하려고 이 책을 함께 읽기로 한 것인데, 내가 한 건 듣기와 세계사 이해이다...? 어쨌든.. 끝까지 다 들은 걸 위안삼기로 한다.
목차를 다시 살펴본다. 이 책의 소제목은 early-modern times 이고 중세에서 근대로 가는 시기, 소위 근세라고 부르는 부분을 다루는 것 같다. 시작은 엘리자베스 1세 여왕. 3권에서는 본격적으로 제국들이 식민지를 건설한다. 미국, 캐나다, 아프리카, 인도, 중국... 전쟁과 조약, 그리고 노예가 그에 따라온다. 이 책을 읽으며 (전에도 그런 생각을 했는데) 대개 영국인들이 먼저 나쁜 짓 (노예제도, 식민지 개척, 자본주의 등) 을 시작하고, 그러면 다른 나라들이 똑같이 따라하고.. 그러고서 영국의 지식인들이 비판하면 그쯤에 반성하는 척 하며 레드오션에서 먼저 손을 떼는 (그러고서 교묘하게 뒤에서 계속하는) 일을 해왔다는 생각을 굳히게 됐다. 지금도 비슷한 것 같다. 내가 영어를 배우게 된 이유도 이 사실에서 비롯되었는데, 지금도 영어를 공부한다고 이 책을 읽고 있었으니 씁쓸하다.
30년 전쟁이나 나폴레옹이 일으킨 전쟁 등 뭔가 소소하고 서구에 중요한 역사적 사건들이 많이 나온다. 또 북아메리카에 유럽인들이 건너가 살게 되면서 다른 곳보다 미국의 건국 역사가 상세하게 나온다. 이런 이유로 '근세'를 별도의 권으로 분리할 필요가 더 있지 않았나 싶은데.. 내가 이걸 이렇게 상세하게 알아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교양이라고 생각하고 다 듣긴 했다. 미국 교과서로 영어 공부하는 초등학생들이 이런 기분일 것 같다. (왜 미교로 영어공부하는지 이해를 못했는데, 내가 그러고 있...) 남아메리카 독립의 역사에 대해서도 꽤 상세하게 나오는데... 미국은 그래도 좀 알고 있는데 중앙아메리카-남아메리카에 대해서는 너무 몰랐구나 하고 약간 반성하게 되었다. 아프리카에 대해서도. 아무래도 가본 적도 별로 없고 문학으로도 별로 접하지 못한 곳들이다.
후반부에는 산업혁명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미국 서부의 금광 개척얘기로 끝난다. 4권은 좀더 재미있길... 일단 아는 얘기가 더 많이 나오긴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