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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라는 이상한 존재 - 탈코르셋, 섹스, 이혼에 대하여
배윤민정 지음 / 왼쪽주머니 / 2021년 10월
평점 :
<나는 당신들의 아랫사람이 아닙니다>를 읽으며 나는 이렇게까지 할 수 없을 것 같다 생각했다. 나를 불편하게 하는 사람이 많지 않기도 하지만 그만큼 내가 가부장제와 결혼 생활이라는 것에 익숙해져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저자의 남편과 그 부모님은 이해심과 공감능력이 많아 보였고, 저자는 나름 솔직하면서도 감정적이지 않으려 노력하며 글을 썼다고 생각했지만, 가족 안에서 일어났던 이야기가 책으로 나오고도 잘 지낼 수 있었을까? 호칭이 개선되었을까? 희망적인 결말을 보고 싶었다. 그게 쉬우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나는 당신들의 아랫사람이 아닙니다>를 읽기 전 이미 알아버렸다. 저자는 이혼을 했고 이혼의 시작은 남편의 외도였다는 것을. 이혼하면서 저자는 그 때까지의 결혼생활에 대해 돌아보고 복잡한 심경을 솔직하게 써서 다시 책을 냈다. 다른 무엇보다 때로는 모순된 입장을 취하는 자신을 속속들이 들여다보고 솔직하게 썼다는 것 때문에 별점은 다섯 개다.
얼마 전 어느 책의 북토크에 갔다가 70년대 미국에서도 그랬고 지금 한국에서도 급진적인 페미니스트들에게 성 엄숙주의 경향이 나타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페미니즘에 있어 무지하지도 않지만 조예가 깊지 않은 나는 성 엄숙주의라는 말을 처음 들었고 좀 당황했다. 내가 페미니즘에 대해 함께 얘기한 사람들은 이성애자, 기혼 여성이 많았고 알라딘 서재에서는... 성 엄숙주의... 일단 여성주의책같이읽기를 주도하시는 다락방님의 글을 보면... 잭 리처를 좋아하시고. (기타 등등) 그리고 요즘은 동성애에 대한 논의도 활발하지 않나?
젊은 여성 한 명이 성 엄숙주의에 대해 고민이라는 이야기를 했고, 한참 듣던 나는 옆자리에 중고등학생으로 보이는 딸을 데리고 온 어머니의 눈치를 슬쩍 본 뒤 '지금 이 성 엄숙주의라는 것이 이성애와 관련된 것이 맞느냐' 라고 묻고 말았다. 연사는 맞다고 했고 나는 궁금증을 해결했지만, 눈치없이 질문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요즘 젊은 사람들이 결혼을 안하고 연애를 안하는 것에 이 성 엄숙주의라는 것도 한 몫했겠구나 싶었다. 우리 ㅁㅁㅁ가 생각났으며, 또 한 번 소중함을 느꼈다.
나는 왜 페미니즘을 처음 접했을 때 정신없이 매혹됐을까? 태어나서 처음으로 내가 동질감을 느끼면서 속할 수 있는 집단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페미니스트라는 집단 안에서 나는 처음으로 내가 2등 시민이 아니어도 된다는 안도감을 느꼈다. 이 집단은 이제까지 사소한 것으로 취급당해 온 나의 경험이 절대 사소하지 않다고 말했다. 내가 여성으로 살면서 느낀 분노, 슬픔, 공포가 나만의 체험이 아니라 '우리'가 해결해야 하는 문제로 승화되는 경험. '사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다.' 라는 페미니즘의 명제는 내 삶의 동아줄과 같았다. 불편한 용기 집회 장소에서 내가 본 것 역시 우리가 우리의 삶을 구할 수 있다는 희망이었다. 함께 힘을 모아서 지금 당장 이 사회를 바꿔야 한다는 결의, 다른 누구도 아닌 자신이 그 역할을 하겠다는 다짐, 그리고 아주 순간적으로 존재했던 자매애였다. (168-169)
저자가 페미니스트와 이성애자, 기혼여성으로서의 자신을 조화시키기 어려워하는 과정을 보며 다시 한 번 내가 그동안 (나에게) 상당히 편안한 환경에서 페미니즘을 접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차이보다 동질감을 더 크게 생각했고, 스펙트럼이라는 말로 뭉뚱그리려 했으며, 여성간의 연대가 가능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전에 비혼 여성 가족으로부터 '결혼한 당신이 왜 페미니즘에 관심을 가지느냐' 라는 말을 듣긴 했지만, 그 외에는 기혼 여성이라고 공격받은 적이 없었다. 오히려 기혼 여성들에게 페미니즘을 더 알리려 했고, 페미니즘을 알려 하지 않는 기혼 여성들을 보며 안타까워하는 입장이었다. 그런데 저자가 인용한 (인터넷 등에서 볼 수 있는) 기혼 여성들에 대한 비난- 굳이 여기에 옮기진 않겠다-들을 보니 '내 위치에서 할 수 있는 것을 한다' 고 생각했던 내가 너무 안일해보였다. 눈 앞의 현실을 보려하지 않았다고 해야할까. 성 엄숙주의라는 단어가 다시 생각나면서, 그게 왜 요즘 젊은 여성들에게 중요한 건지 이해하지 못했던 나와 그들 사이의 차이가 더 크게 느껴졌다.
기혼 여성이 가정을 유지하면서 페미니스트로서 실천하는 삶을 사는 건 불가능한 일일까? 기혼 여성이기에 더 괴롭고 어려운데도 하고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서로 접어두고 연대하는 것이 가능할까? (이번달 정희진의 매거진에 나온 일본인 위안부에 대해 과거 한국의 정대협이 발표했던 입장이 생각난다) 나는 비혼 여성들에게 이해받고 싶은걸까?
(스포일러 체크를 하고 싶었지만 이 책에는 지원하지 않는 기능이라고 나와서 그냥 쓴다)
낙태죄 폐지를 위한 집회에 함께 참가하고 탈코르셋 페미니스트인 아내를 지지했지만 다른 여성과 외도를 했고 그 과정에서 피임을 하지 않은 저자의 남편 얘기를 알게 되니, 처음 책을 읽기 시작할 때 희망적인 결말로 가지 않아 아쉽다는 생각은 사라졌다. 서로를 존중하며 살고 있다고 생각했던 나와 배우자의 관계는 이대로 괜찮은걸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무성애자 페미니스트로 정체하고 있는 나와 (무성애자라고 굳이 밝힌 적은 없지만) 그럭저럭 잘 지내고 있는 그는 가사일을 하고 아이를 챙긴다. 나는 불만이 있으면 이야기하는 타입이지만 그는 잘 말하지 않는다. 그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이런 책들을 읽고 있는 걸 알고 있지만, 내가 <졸혼 시대>라는 책을 선물 받았을 때 "그 사람은 왜 이런 책을 보내준거야?" 라고 물었지만 (내가 궁금하다고 해서 보내줬지..) 내가 하는 말 외에 굳이 나의 생각에 대해 더 묻지 않는 그에게 너는 이런 나를 보며 무슨 생각을 하고 있냐고 물어야 할지, 그냥 이대로 지낼 수 있다면 이 상태에 만족해야 할지. 만약 둘 사이에 아이가 없었더라도 이렇게 대충 뭉뚱그려 살아가려 했을지. 이런 생각들이 마구 솟아나게 만드는 책이었다.
좀 지난 뒤에 다시 한 번 읽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