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김포의 꿈틀책방에서 하는 <나혜석의 고백> 온라인 북토크를 들었다. 진행자는 희진샘. 





얼마전 잠자냥님이 희진샘 수업 관련해서 글 올려주실 때 너무 부러워하다가 이 북토크를 한다는 걸 어디서 보고 혹해서 신청했다. 김포 꿈틀책방은 지인 덕분에 알고 있었지만, 가본 적은 없고 인스타그램 팔로우는 어제 했는데... 어디서 보고 신청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평일 저녁이지만 온라인이라 해볼만 했고, 일주일 중 좀 바쁜 날이라 약간 고민을 했는데 신청글에 깨알같이 포함되어 있었던 '선생님도 카메라를 켜주실 예정이다' 라는 말이 나의 손가락을 움직이는데 한 몫을 했던 것 같다.









나혜석의 글은 전에도 몇 번 읽어보았고 한국여성문학 읽으면서도 좀 읽었지만, 다시 읽어도 참 구구절절 맞말이고 그 시대에 이런 생각을 했다는 게 참 자랑스럽고 대견하고... 그런데 그 시절도 아니고 요즘 사람들이 왜 비난하고 문제 삼는지 알 수가 없다. 




열심히 필기하며 들었고... 




샘은 먼저 현대 한국 사회에서 나혜석이 해석/소비되는 방식에 대해 검토하고, 나혜석에게 결혼과 모성이란 어떤 의미였는가에 대해서 이야기하셨다. 나혜석은 시대를 앞서갔다, 비참하게 죽었다, '신' 여성이라는 이미지로 연출되는데, 나혜석이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으면서 '여성은 (근대적) 인간으로 살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아 말년이 불행했던 것이라며 당시 결혼하지 않았던 신여성과의 비교를 통해 나혜석의 삶에 결혼과 모성이 큰 영향을 주었음을 언급하셨다. '신여성' 이란 말은 있지만 '신남성' 이라는 말은 없는 것처럼 신식 교육을 받았어도 여성과 남성의 삶에는 계급적 차이가 있었고, 그래서 서로의 관심사가 다를 수 밖에 없었다는 것도. 


에이드리언 리치가 1980년대 제도로서의 모성에 대한 이야기를 썼는데 나혜석은 이미 백년 전 그것을 <모母 된 감상기>에서 이야기했고, 개인의 경험을 이론화시키는 능력이 탁월했다며, 한국 여성들은 탈식민주의가 필요하다고도 하셨다. 나혜석이 그렇게 깨어있을 수 있었던 것은 개인의 능력과 교육의 영향도 있지만 식민지 조선의 상황 (근대화, 서구화 등) 도 한몫 했을 거라고 하셨고. 그리고 관련하여 읽을 책으로 아시스 난디의 <친밀한 적>을 추천하셨다. <오리엔탈리즘>보다 얇다면서...




원래도 장바구니에 담겨있었지만, <오리엔탈리즘>보다 얇다고 하시니 혹하고.. 

(하지만 <오리엔탈리즘>은 갖고 있고 <친밀한 적>은 없는데)


<포스트모더니즘의 조건>처럼 얇은데 어려운 건 아닐까... 





어제 인상깊었던 것은 나혜석의 이야기보다는 선생님이 어떤 것을 보는 방식에 대한 것이었는데 선생님 책을 그동안 읽어왔고 매거진도 들었지만 여전히 새로운 부분이 있었다. 그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과거의 인물이나 작품을 볼 때의 태도다. 시대의 한계를 언급하고 끝내는 경우가 많은데 과거를 현재의 기준으로 판단하는 건 사실 좀 반칙 아니냐면서, 시대의 한계이다 아쉽다 이렇게 생각하고 끝내지 말고 '맥락에서 보자' 라고 하셨다. 과거의 작품에 대해 시대적 조건을 생각하면서도 비난하고 싶었던 적이 많아서.. (아닌 척 하려 애썼지만) 반성했다. 



한국의 여성주의에 대한 책이 없어 아쉽다는 얘기를 하셨고, 그래서 나혜석의 책도 선정하신 것 같은데 (아마 책방에서 선정한 게 아니고 선생님이 하신 것 같다) 이번에 선생님 책이 새로 나왔으니 꼭 사서 읽겠다고 하시는 분들이 많았다. 선생님은 좀 쑥스러워하시더니 새로 나온 책이 알라딘 사회과학 부문에서 3위를 찍었는데, 방금 확인해보니 몇 권이 팔렸는지 아냐고 하시며 국내 여성학 부문은 여전히 협소하고 규모가 작다고 말씀하셨다. 서재에서 희진샘 책 사는 사람들에 둘러싸여있는 상황이 물론 이 사회의 중간값에 가깝다고 생각하진 않았지만 생각보다 권수가 많지 않아서, 여성학도 사회과학도 정말 책이 많이 팔리지 않는구나 하고 좀 슬퍼졌다. 특히 선생님 책 구매자의 연령/성별 집단을 비교했을 때 특정 연령대의 여성보다 오히려 30대 남성의 구매율이 높을 때도 있고 변동이 있다고 하셔서 (그 남성들은 페미니즘에 관심이 있거나, 대응을 고민한다기보단 인문학의 도구로 활용하는 것 같다고 하셨다) 우리 은바오님이 정말 소중한 사람이라고 다시 한 번 느꼈다.



한국의 상황 얘기가 나오니 전에 매거진 듣고 궁금해했던 걸 질문하고 싶어져서, 끝날 시간이 다 되어가는데 용기를 내어 질문했다. '백래시'는 한국의 상황과는 거리가 있다고 하신 게 무슨 뜻이냐고. 샘은 좋은 질문이라고 하시며 (학자들이 좋은 질문이라고 할 때의 의미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하여튼), 한국에서는 애초에 백래시라는 게 일어날만큼 여성의 권익이 개선된 적도 없지만 정권이나 언론 등에서 조직적, 대대적으로 '백래시'의 움직임을 일으킨 것도 없다고 하셨다. 그저 남성들이 '당황' 하고 있고 그걸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세력이 있다 뭐 이 정도이고, 이준석도 사실 반여성주의자는 아닐 거라고. 사실 여성주의에 큰 관심이 없는 거라고 생각하신다고. 



위에 책 판매부수도 그렇고 오히려 더 서글퍼지기도 하는 말이었지만, 그래도 선생님께 질문하고 또 의견을 들을 수 있어서 참 기쁘고 행복했다. 용기내길 잘했지.. 



<다시 페미니즘의 도전> 관련해서 누군가 적어둔 걸 본 것 같은데, 여성들은 선각자가 있었어도 그들에 대해 잘 모르거나 알려하지 않아서 (주류, 남성들의 세계를 탐구하느라 바빠서 그런 거겠지) 다시 그 선각자의 궤적을 되풀이한다는 말이 있었다. 나혜석도 혼자만 생각하지 않고 글을 써서 기고했기 때문에 지금까지 남아있는 것 아닌가. 더 많은 여성이 자신의 고민과 생각에 대해 목소리를 내고 글을 써서 알려야겠다. 물론 그전에 공부도 열심히 해야하고. 




북토크 내용에 대해 이렇게 자세히 적어도... 되는 거겠지? 그래도 다 적진 않았다. 



어제 알게 되었는데 선생님이 어딘가에서 추천하셨던 <애국의 계보학> 북토크가 (물론 진행자는 선생님) 곧 모처에서 있을 거라고 한다. 이것은 온라인 아니고 현장 북토크인듯. 여기에 적자니 너무 홍보하는 것 같고 관심있는 분들은 찾아보시길.. 


이라고 썼는데, 뭐 홍보하면 어떤가. 거리의화가님이 올리셨던 글이 있어서 링크를 가져왔다. 관심있는 분은 이 글로 가서 보시면 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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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3-12-01 10:2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아 전에 말씀하셨던 그 온라인 북토크였군요!
으음, 한국에서 책 사보는 사람들이 참 드물긴합니다...;; 사서 보는 사람들조차 대부분 베스트셀러 (편의점 아류 표지의) 소설/ 자기계발에 꽂히니...사회과학 서적은 더 그렇겠죠. 30대 남성들이 더 많이 사본다는 것은 의외이긴 하네요.
은바오는 이곳에선 우쭈쭈 받으면서 무럭무럭 자라지만..... 현실에선 괴리감이 참 클 것 같기도 해요. ㅎㅎㅎ (동년배들과 다른 책 읽는 자들의 슬픔이랄까...)

책 두께는 오리엔탈리즘>>>>>>>>친밀한 적>>포스트모더니즘의 조건 순입니다. ㅋㅋㅋㅋ

<애국의 계보학> 북토크는 전에 거리의 화가 님이 한 번 홍보해주셨어요. 망원동 어디선가 하는 것 같던데 유료였던 듯!

건수하 2023-12-01 10:31   좋아요 2 | URL
제가 좀전에 수정했는데, 30대 남성이 더 많이 사보기도 하고 좀 왔다갔다 한다고 해요.
(하지만 데이터가 적어서 확신하긴 어렵다고 하심 ^^;)

<친밀한 적>이 조금 더 목적?에 부합할 것 같긴 한데, 오리엔탈리즘을 이미 갖고 있기도 하니 개념을 읽고 응용으로 가는게 좋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걸 언제 읽느냐가 문제...

맞아요 망원동의 모 서점입니다 ^^ 제가 어제 참석했던 것도 유료 북토크였어요. 그래서 서재에 알릴까 하다가 말았..

잠자냥 2023-12-01 10:41   좋아요 3 | URL
와 근데 필기를 검-빨-파 섞어가면서 하고 중간에 이모티콘도 그린다........

건수하 2023-12-01 11:29   좋아요 1 | URL
만년필 쓰는 재미로... 파란색은 맞는데 나머지는 진녹색, 적갈색 입니다 ㅎㅎ

거리의화가 2023-12-01 11:3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나혜석을 다루었군요^^ 나혜석의 이미지 소비(!)는 과거에도 사람을 매장하는 방식에 가까운 것이었으나 현대 들어와서 나혜석이 재이슈가 되었을 때에도 그 방식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으며 왜곡된 시선이 여전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베스트셀러만 봐도 여전히 자기계발, 소설, 에세이 등이 순위를 차지하는 것을 보면 서재 친구분들이 책을 고르는 안목이 남다르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것이 확대되어야할텐데요. 그리고 계속 써야한다는 것도요^^ 모쪼록 한국의 상황을 담은 여성학 책이 많이 나와주면 좋겠습니다.
은오님은 정말 대단합니다. 저는 그 나이에 아무 생각이 없었던 것 같아요ㅠㅠ

그나저나 수하님 열정적으로 강의를 들으셨군요!

건수하 2023-12-01 13:20   좋아요 3 | URL
희진샘 지도교수님 (김은실 교수님)이 나혜석 관련하여 논문도 쓰셨고 그 내용 일부도 가져왔다고 하셨어요. 한국 여성들이 한 번쯤 꼭 읽어봐야 할 것 같습니다.

한국의 상황을 담은 여성학 책.. 선생님이 내 주셔서 감사하고 얼른 읽어야겠어요. 근데 이제는 여성학 책 안 쓰실 거래요... ^^;

저 진짜 열심히 들었나봐요. 두시간 좀 넘게 했는데 끝나니 엄청 피곤하더라고요 ^^!

얄라알라 2023-12-04 12:11   좋아요 1 | URL
오마나!!! 김은실 선생님께서 지도교수님이셨어요?^^;; 와 몰랐던 새로운 정보!!! 굉장히 반갑네요

건수하 2023-12-04 13:44   좋아요 1 | URL
저도 몰랐는데 그렇다고 하시더라고요 ^^
얄라알라님은 김은실 선생님 잘 아시나요? 저는 성함만 알지만 괜히 더 반가웠습니다.

단발머리 2023-12-01 12:1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에구~~ 선생님의 근황 + 탈식민주의 + 건수하님 노트 필기까지!! 이 페이퍼에 감탄 + 감탄 + 감탄하면서 읽었습니다.
평일 온라인 북토크라면 저도 참여할 수 있었는데, 제가 요즘 찾아볼 정신이 없었네요. 정리해주신 것 찬찬히 다시 읽어볼게요.
얼른 후르륵 읽었습니다만 완벽 꿀맛입니다!!

건수하 2023-12-01 13:21   좋아요 1 | URL
미리 서재에 공유를 할 걸 그랬나 봅니다 ^^ 어제 단발머리님 물어보셔서 그때라도 알려드려야 하나 1초 정도 고민을 했었다는 ㅎㅎ 앞으로는 알게 되는 거 있으면 공유할게요!

단발머리 2023-12-01 14:13   좋아요 1 | URL
ㅎㅎㅎ 아니어요~~ 놓친 마음은 안타깝지만 못 들었을수도 있어서요.
제게는 건수하님의 알찬 페이퍼가 있습니다!

독서괭 2023-12-01 17:1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학자들이 좋은 질문이라고 할 때의 의미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하여튼) - 전 이게 궁금합니다, 건선생님 ㅋㅋㅋ
좋은 강의 들으셨네요^^ 지난번부터 궁금해하셨던 것 질문도 하시고, 성공적!!
소중한 은바오, 우리 모두 아껴줍시다. 비록 인간이 아닐지라도..
그나저나 사회과학 분야 자체가 책이 많이 안 팔리는군요. 더 사드려야 하는데... 그동안 너무 많이 샀지 말입니다.ㅠㅠ

건수하 2023-12-01 20:03   좋아요 3 | URL
인간이 아닐지라도 ㅋㅋㅋ 사실 전 푸바오 잘 몰랐는데요 은오님 때문에 찾아보게 되었다능…

‘좋은 질문’ 의미는..

1. 정말 좋은 질문. (이런 경우는 별로 없..)
2. 대답하기 곤란한 질문일 때 이 말을 하면서 시간을 번다
3. 약간 어이없는 경우 이렇게 말하고 대충 얼버무리면서 애매하게 대답
4. 학생이나 일반인의 평범한 질문에 관대하게 말해주는 경우

이 정도요? 아마 위의 경우는 4번…

독서괭 2023-12-01 20:19   좋아요 1 | URL
ㅋㅋㅋㅋ 그런거군요. 하지만 저는 1번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은오 2023-12-01 19:2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본문 은바오 등장에 깜짝 ㅋㅋㅋㅋ 오잉?! 근데 알라딘 구매자 분포에서 희진쌤 이번 책도 그렇고 지난 책도 그렇고 여성이 압도적인데 그건 알라딘이 여초라서 그런 걸까요? 흠 어쨌든 희진쌤이 더 정확히 아시겠지...ㅋㅋㅋㅋ 많이 읽혔음 좋겠어요. ㅠㅠ
질문도 넘 좋습니다 😆 저도 궁금했던 점인데 이렇게 수하님 글로 답변을!

건수하 2023-12-01 20:05   좋아요 1 | URL
그러고보니 구매자 분포를 볼 수가 있군요 ㅎㅎ 차이가 많이 안나서 그런가 20대여성-30대남성의 숫자 우위가 왔다갔다 한다고 하시더라고요 :)

<정희진처럼 읽기> 나 글쓰기 시리즈는 남성들도 많이 사 볼 듯 해요 ^^

잠자냥 2023-12-01 20:42   좋아요 2 | URL
심지어 *우리 은바오* ㅋㅋㅋㅋㅋ

잠자냥 2023-12-01 20:44   좋아요 2 | URL
저 위 댓글에 괭이 심지어 *소중한 은바오*래 ㅋㅋㅋㅋㅋㅋ 은바오 너 1년 만에 성공했구나! ㅋㅋㅋㅋㅋㅋ

은오 2023-12-01 20:46   좋아요 3 | URL
심지어 저한테 뽀뽀도 해주셨습니다...
건조하신 수하님의 뽀뽀라
더 촉촉하게(?) 느껴졌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성공했다 나 자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