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비문학 책이 그렇듯 선형적인 구성이고 귀에 쏙쏙 잘 들어와서, 당분간 출퇴근하며 <암컷들>을 듣기로 했다.
흥미진진하다. 아쉬운 점은 재미있는 문장을 들었을 때 빨리 밑줄을 그을 수 없다는 것.
3장은 동물 암컷들이 일부일처제를 지킬 것이라는 (근거는 딱히 없었던) 믿음을 깨준 사례들을 조류와 영장류의 예를 들어 소개하고 있다. 일부 남성학자들이 암컷이 '바람'을 피우는 것에 인간의 입장에서 감정이입하여 사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지 못했던 일화가 재미있다.
그걸 인정하는 게 왜 그리 어려웠는지. 간단하게 자본주의적 관점에서 생각해보자. 어차피 낳아서 키워야 한다면 우수한 종자를 얻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이 당연하지 않겠는가? 뭐가 우수한 지 모르면 다양한 종자를 확보하는 것도 괜찮고. 이런 뻔한 논리를 받아들이기 힘든 것이 인간이다. 동물 행동에 대해서도 이렇게 편향적으로 보니, 사람 행동이나 사람 심리에 있어서는 더하겠지.
갑자기 한 때 생태학 강의 (재미있고 학점을 잘 준다고 해서 들었는데 결과는....) 를 같이 듣던 남자 선배와 인간은 왜 발정기가 없을까- 그런 게 있으면 엄청 편할텐데 라는 말을 했다가 그 선배가 너란 동물은 정말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했다는 게 기억난다. 왜 동물에게는 인간의 관점을 적용하면서, 인간이 동물과 같이 가는 건 그리 싫어하는 것인가..
그 때는 연애라는 것에 신경 쓰는 게 너무 귀찮아서 발정기가 있으면 정말 편할 것 같다고 생각했다. 애트우드의 <미친 아담> 시리즈에서 발정기에 강간이 일어나는 걸 보고 그 생각은 접었지만... (뭐 없는 발정기를 만들어 낼 수도 없고)
그나저나, 나는 그 전에도 그랬었고 어제 은오님 글을 읽고나서 더 그런 생각이 드는 지도 모르겠는데. 종족 번식의 본능이란 건 진짜 존재하는 것인지 (다수가 갖고 있는 것 같기는 한데), 그게 정말 유전적으로 프로그램 되어있다는 증거가 있긴 한 건지 궁금하다. 이런 생각을 갖고 있는 나도 번식을 하긴 했지만..
데이비드 M. 버스 같은 진화생물학자는 모든 여성이 아이들을 가장 잘 부양하기 위해 궁극적으로 일부일처를 추구한다는 생각을 즐길지도 모르지만, 만약 정절이 여성의 타고난 자질이라면 왜 그렇게 많은 문화에서 여성의 성생활을 통제하려고 애를 쓰겠냐고 허디는 묻는다. 통제 수단이 비방의 말이든 이혼이든 심하게든 할례이든 간에, 그 이면에는 여성을 방치하면 성적으로 난잡해진다는 보편에 가까운 의심이 깔려 있다. 허디가 지지하는 새로운 관점은 여성이 가진 성적 성향의 잠재력을 억제하고 제한하기 위해 가부장적 사회 체계가 진화했다고 본다.
저는 이형접합 이론이 세상에 일반화된 여성혐오를 어떻게든 강화한다고 봅니다.
*여기서의 이형접합은 Heterogamy, Heterozygosis 보다는 Anisogamy를 뜻함: 유성 생식에서 암수의 생식 세포의 크기가 다른 것이 접합하는 것. *이형접합 이론: 정자는 작고 양이 많지만 난자는 크기가 크고 수가 제한되기 때문에 수컷은 방종하고 암컷은 까다롭고 정숙하다는 식으로 동물의 생식 행동을 설명하는 이론(인 듯. 확인해보지 못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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