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월에 걸쳐 읽기로 했으니까, 2월에 1권, 3월에 2권 읽으면 되나? 분량은 2권이 훨씬 많은데...
어쨌든 1권의 막바지로 가고 있다. 1권은 문헌 속에서 여성이 어떻게 묘사되는지를 보여주면서 그것이 어떤 의도에서 그렇게 되었는가를 이야기한다. 읽으며 지난 삶에서 잘 이해하지 못했던 것들이 많이 해소되었다.
예를 들면 여성과 성교를 하는 것을 '소유한다' '먹는다' 라고 표현하는 이유.
(엄밀히 말하자면 남성이 '먹히는' 것 이 더 적절한 표현인 것 같은데, 저런 표현을 쓰는 이유)
또 월경을 불결한 것, 숨겨야 할 것으로 생각하는 이유 라던가..
이 책을 읽고 내 머릿속에 정리된 게 있다면
남성들이 자신들이 좋다고 생각하는 것,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남성과 관계있다고 주장해왔고
이해하기 힘든 것, 설명할 수 없는 것, 그리고 뭔가 꺼림직한 것은 다 여성적 특성으로 규정하고
남성이 원하는 것, 스스로 얻지 못하는 것은 여성에게 구하고자 했다... ?
많은 문헌 사례가 담겨있어 레퍼런스로 활용하기 좋을 것 같다. 진작 읽었으면 인간사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겠다는 생각이 들지만, 그렇다고 이 레퍼런스를 내가 활용할 기회가 이전에 있었거나 이후로 많을 것 같진 않다.
방대한 자료들을 읽고 정리하고 논지에 맞춰 묶었음에 존경을 표한다.
여성이 왜 남성이 원하는 것을 계속 받아주었는가, 왜 들고 일어나지 않았는가는 초반에 제시되는 질문인데
거다 러너의 <가부장제의 창조>가 그 답을 알려주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전에 주워들은 바로는 보부아르의 생각과는 좀 다른 답이 나올 것 같지만..
3부 신화 1장을 읽을 때까지만 해도 이렇게 평온하게 소감을 쓸 수 있었다.
밀리의 서재에 따르면 나는 <제2의 성>을 30% 정도 훑었다.
어제부터 제3부 신화 2장에 들어갔는데, 여기서는 몽테를랑 - D.H. 로렌스 - 클로델 - 브르통 - 스탕달 이렇게 다섯 명의 작가가 그들의 작품에서 여성을 어떻게 묘사했으며 남성이 여성을 어떤 태도로 대하는 가를 상세하게 기술하고 있다.
간략하게 기술할 때는 그래그래 그렇구나 했는데 자세하게 듣다보니 속이 좋지 않다 -_-;
1장에서 (저번에 독서괭님이 올려주신) 몽테를랑도 엄청 짜증났는데, 2장 D.H. 로런스는 다른 의미로 짜증이 나고..
짜증내며 듣고 있던 중 급 생각난 소설이 있었는데 그게 뭔가하면
임경선 작가의 <가만히 부르는 이름> 이란 소설이다.
이 소설이 원래 네이버 오디오클립에서 연재가 됐었나... 해서 작가가 오디오북으로 들려주기까지 했었는데, 사람들이 재미있다고 해서 보고 들었었다. 사실 임경선 작가가 '캣우먼'으로 한참 활동할 때 나는 라디오를 안 들었던지라 (그 시간엔 술을 마시던가 자던가) 작가에 대해 특별한 애정은 없다. 주변에서 자꾸 얘기해서 에세이는 몇 권 봤고 그냥 그렇다고 생각했으며 소설은 이게 처음이었는데.
작가가 작정하고 연애 판타지를 썼다고 생각을 했었다. 그게 본인의 판타지인지 아닌지는 내가 알 바가 아니고. 사실 나는 연애에 판타지가 없는 편이라, 조금 신기하기도 하고 불편하기도 했었다. 특히 그렇다고 생각했던 장면이 두 군데 있었는데
(스포일러 주의 해야하나? 읽어보실 분들은 여기서 돌아가세요)
(미안하다 고양이1)
하나는 월경기간 중에 섹스를 하는 장면이고, 또 하나는... 이별 전 마지막 섹스를 한 뒤 화장실에 가서 변기에 앉아 정액이 변기로 떨어지는 것을 묘사한 장면이다.
월경 중 섹스를 하는 장면에서는 둘이 원하는데, 월경중이라 주저하자 남성이 괜찮다며 수건을 깔고 하자고 (....) 하는데. 뭐 배려가 넘치는 장면이기도 하고, 원래도 판타지라고 생각했었는데 남성이 월경에 대해 가지고 있는 부정적 이미지를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그래서 <제2의 성>에서 월경에 대한 태도 부분을 읽을 때 이 소설 생각이 났었다. 월경 중에 하는 섹스를 지금까지 다른 소설에서는 보지 못했기 때문에.
그리고 두번째 장면은.. 뭐랄까. 사실 처음에는 헤어질 건데 피임 안하고 섹스하는 거 완전 최악이라고 생각을 했었는데. 변기에 앉아서 떨어지는 정액을 흘려보내며 그 사람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런 생각만 했었는데, <제2의 성> 에서 남성 작가가 여성을 묘사하는 태도에 약간 짜증이 난 상태에서 이 장면을 다시 생각하니 약간 통쾌하다는 생각이 드는 거다. 음... 어느 부분이 통쾌하냐면, 남성이 뭔가 남기려고 하는 흔적을 다른 것도 아닌 변기에 흘려보낸다는 부분이? 자세히 쓰자니 좀 불편한 느낌이 들어서 여기까지만.
그래서, 저번에 읽었을 때는 임경선 작가 소설 별로라고 생각했었는데. 사실 남성의 판타지로 범벅된 소설들은 많지 않나. 하루키도 다른 부분은 괜찮았는데 그 부분이 짜증이 났었다. 임경선 작가가 나도 한 번 그런거 써보고 싶다고 생각하고 썼는지는 모르겠는데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까 약간 맘에 드는 구석이 생기는 거다. 조금 더 읽어볼까 이제 에세이말고 소설로? - -;
이제 2월이 5일 남았는데 나머지 70%는 언제 다 읽나 싶지만, 3월은 2월보다 3일 더 길고 (...)
<제2의 성> 2권은 잘 읽힌다고 하니 그것에 기대를 걸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