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리엇 비처 스토의 <톰 아저씨의 오두막>을 1월 초부터 출퇴근 길에 듣고 있다. <다락방의 미친 여자>를 읽을 때 조지 엘리엇이 스토로부터 '여성적 미덕'에 있어 영감을 받았다고 언급되어 있어 궁금해서 읽기 시작했는데, 사실 '여성적 미덕' 부분은 잘 모르겠다 - 조지 엘리엇이 생각한 혹은 <다락방의 미친 여자>의 저자들이 생각하는 '여성적' 이라는 개념을 내가 확신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어릴 때 축약본을 읽긴 읽었으나 톰 아저씨가 불쌍했던 것만 기억하고 있기에 새롭게 읽고(듣고) 있는데, 생각보다 원래의 소설은 급진적이고 과격하다. '독자여~' 하며 작가가 자신의 목소리를 낼 때 특히 그렇다.
고상한 기독교인 독자들 중에 이 장면에서 소개된 집단에 반대하는 분이 있으시다면, 부디 간청하건대 그분들은 조만간 본인들의 편견을 타파하시길 바란다. 노예사냥 사업은 합법적이고 애국적인 직업적 명예를 얻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켜 드리고 싶다. 미시시피와 태평양 사이의 광활한 대지 전체가 육체와 영혼을 사고파는 거대한 시장이 되고, 인간재산들이 이 19세기의 기관차적 기질을 유지한다면, 노예상인과 노예사냥꾼은 앞으로는 귀족계층이 될지도 모른다.
요즘 내가 읽고 있는 책들의 저자는 여성이 많고, 서양의 백인 남성이나 주류로 인정받는 남성의 책은 잘 읽지 않고 있다. 내가 일부러 그러는 것이 아니고, 내가 관심있는 책들을 읽고 있으면 어느새 그렇게 되어 있다. 여성, 소수자, 약자, 억압받는 사람들에 공감하고 그런 정서를 갖고있는 책들의 저자는 대개 주류 남성이 아닌 것이다. 얼마 전 읽은 <시간의 틈>의 작가 지넷 윈터슨은 셰익스피어의 <겨울 이야기>를 소수자 (성소수자만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의 감성으로 다시 썼다. 그 소설은 흥미진진하기도 했지만, 그 감성이 나는 정말 좋았다.
지넷 윈터슨은 1월 여성주의책같이읽기 책 <페미니즘 이론과 비평> 중 7장 레즈비안 페미니즘과 퀴어이론에 언급되는 책 <벚나무 접붙이기> 의 저자이기도 하다. <벚나무 접붙이기>가 한국어로 번역되지 않아 찾아보았더니 원제는 <Sexing the Cheery>이다. 우와. 이런 제목을 붙인 것도 놀랍고, 그걸 <벚나무 접붙이기>로 (<페미니즘 이론과 비평>에서) 번역한 것도 놀랍다.
나무..니까... 그럴 수도 있긴 있는데..음.. 뭐. 원서를 안 읽어봐서 더이상 뭐라 말할 수는 없다. Sexing the Cherry를 읽어보고 싶은데, 궁금한데, <시간의 틈>을 읽어본 결과 지넷 윈터슨이 잘 읽히는 문장을 쓰는 작가는 아닐 것 같아서 선뜻 읽지 못하겠다. 아쉽다. 이럴 때 자꾸 영어 공부를 해야하나 하는 생각이 들지만, 하지 않아왔고 하지 않고 있다. 미미님이 번역서와 원서를 함께 읽는 방법을 투비에 쓰셨는데, 잠깐 솔깃했지만 내가 읽고 싶은 책은 주로 번역서가 없어서 (사실은 번역서가 없으니까 원서 읽을 생각을 하는 거지만).
어쨌든.. 오늘 아침에도 출근하며 <톰 아저씨의 오두막> 2권을 들었다. 이 소설에는 미국에서 흑인 노예와 백인 주인과의 다양한 성격을 띠는 관계가 나오는데. 여-여 관계도 있고 남-남 관계도 있고 성별과 관계없는 관계도 있지만, 여-남 관계가 또 있다. 예쁜 흑인 노예는 백인 주인과의 관계가 더 복잡미묘한 거다. 그래서 이 소설이 인종도 다루고 있지만 페미니즘도 다루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데, 이는 <다락방의 미친 여자>에서도 암시적이라고 언급된 바 있다. 그 책에서는 흑인-백인의 관계가 여성-남성을 암시한다고 언급했던 것 같은데, 읽어보니 암시적으로 볼 수도 있지만 그냥 대놓고도 페미니즘적 요소가 있다.
그런 생각을 하며 듣다보니... 어느새 여성주의책같이읽기 2월 책 <여성, 인종, 계급>과 연결되는 것이 아닌가?
당분간은 내가 말한 '그런' 정서의 책을 위주로 읽게 될 것 같다. 그 당분간이 얼마나 길게 지속될지는 모르겠지만... 어쩌면 계속 그럴 수도 있고. 2월의 책이 기대된다 (2월 안에 읽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 아이들에게 축약본 소설을 읽히는 것에 대해 원래도 회의적인데, <톰 아저씨의 오두막>을 읽으며 더욱 생각을 굳히고 있다. 역사를 배우기 위해 미국에서 읽히는 거라면 모를까 이런 걸 왜 한국에서 읽히는 건지. 이런 훌륭한 책을 어릴 때 이미 읽었다고 생각하고 혹은 어린이책이라고 생각하고 읽을 생각을 하지 않는 성인들이 많을 것 같아 안타깝다. 얼마 전까지 나도 그런 성인 중의 한 명이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