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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스필드 파크 ㅣ 시공 제인 오스틴 전집
제인 오스틴 지음, 류경희 옮김 / 시공사 / 2016년 10월
평점 :
<맨스필드 파크>의 후기가 별로 없는 것은 두꺼운 분량 (700페이지가 넘는다) 그리고 상대적으로 덜 매력적인 여주인공 패니 때문이 아닐까 싶다. <오만과 편견> <이성과 감성>의 여주인공들은 유머 감각이 넘치고 당당하여 흥미로운 에피소드들을 많이 생산하지만, <맨스필드 파크>의 주인공은 예민하고 주목받는 걸 부담스러워하며 소중히 생각하는 가치를 지키면서 자기 자리를 지키는 사람이다. (패니 프라이스가 천성적으로 쾌활하고 명랑한 성격을 타고났다 하더라도, 끊임없이 자신의 위치를 재확인시키는 이모 노리스 부인이 있는데 어떻게 당당한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었겠는가!) 제인 오스틴이 젊을 때 썼던 작품에 비해 통통 튀는 매력이나 흥미로운 이야기의 비중은 적은데 책은 두꺼우니 인기가 없을 만도 하다. 독자들은 대개 <오만과 편견>을 먼저 읽었을 것이므로 한참 읽었는데도 재미있는 이야기는 없고 품성 이야기만 하고 있으니 중도하차하고 싶어질 것 같다.
제인 오스틴이 결혼 문제에만 집착하는 여성 작가라고 보는 사람들도 있지만, 결혼은 사랑과 현실이 결합된 것이기 때문에 그만큼 인간의 본성을 잘 드러내 주는 문제다. 다른 소설에서도 그런 면이 나타나지만, <맨스필드 파크>는 넉넉한 지면을 통해 애정과 결혼에 관련된 사람들의 이기심과 본심을 자세히 서술한다. 그리고 작가가 생각하는 인간이 추구해야 할 가치 - 배려, 예의범절, 품행, 소신, 종교-에 대한 이야기도 전한다. 가장 올바른 인물들조차 이기심을 갖고 있고 사랑에 눈이 멀어 바르게 행동하지 못할 때가 있지만, 그들은 경험을 통해 깨닫게 된다.
나는 연애 문제나 이해 관계에 있어 사람들이 어떤 선택을 하는 지의 (내가 잘 이해하지 못하는) 이유를 잘 풀어 주어서 제인 오스틴을 좋아하게 되었는데,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여전히 매력적이었다. 좀 두껍고 진지하고 인물이 좀 전형적이긴 하지만, 작가가 하고싶은 이야기를 충분히 한 것 같아서 마음에 들었다.
내가 생각하는 주요 등장인물은 다섯 명이다.
패니 프라이스, 에드먼드 버트럼, 헨리 크로퍼드, 메리 크로퍼드, 노리스 부인.
다 자세히 적기가 좀 귀찮(...)은데 (귀찮으면 리뷰는 왜 쓰니),
패니 프라이스와 에드먼드 버트럼이 올바른 성품을 대표하는 인물들이라면 (물론 이들도 인간적인 면을 보여준다)
헨리와 메리 크로퍼드 남매가 세속적인 사람들, 악의 축(?)이고
노리스 부인은 그냥... 닳고 닳은 책략가랄까. 처세의 달인이다.
패니 프라이스는 이런 사람이다.
그녀는 비할 데 없는 원리원칙주의자였고, 따라서 자신의 의무를 다하기로 결심했다.
원래 패니는 노리스 이모를 생각할 때조차도, 초라하고 쓸쓸한 작은 집에서 사는 그 이모와 가장 최근에 자리를 함께했을 때 다소 관심을 덜 기울인 게 아닌지 자책하지 않고서는 못 배기는 성향이었다.
(노리스 이모는 그녀에게 매우 인색하며, 그녀가 항상 감사하고 사양해야 하는 처지임을 상기시키는 인물이다)
상대방 남자가 아무리 사람들의 호감을 사는 사람이라 해도, 적어도 여자들 가운데 한 명에게서 인정이나 사랑을 받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는 건 어떤 여자든 분명히 느낄 거라고요. 그 남자가 이 세상 온갖 완벽한 장점들을 갖고 있다 해도, (우연찮게도 그의 쪽에서 먼저 좋아하게 된) 여자라면 누구나 그를 받아들일 거라고 정해놓아선 안 된다고 생각해요.
에드먼드 버트럼은 패니 프라이스에게 많은 영향을 끼친 사람이며, 성직자가 되려고 한다.
여가 시간을 즐겁게 해줄 책들을 권장하고, 패니의 독서 취향을 격려하고, 분별력을 바로잡아준 것은 에드먼드였다. 읽은 내용을 두고 함께 이야기를 나눔으로써 패니의 독서를 유익하게 만들었고, 적절한 칭찬으로 독서의 즐거움을 고조시켰다.
그는 지금껏 패니의 정신을 형성시키고 그녀의 애정을 차지해왔으니, 사고방식에 있어서도 그녀를 자신과 같게 만들 가능성이 아주 높았다.
개인적으로 보든 집단적으로 보든, 아니면 일시적으로 보든 영원한 시간으로 보든, 성직자는 인간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을 책임지고 있습니다. 성직자는 종교와 도덕의 수호자입니다. 그리고 그 두 가지의 영향으로 생겨나는 예의범절의 수호자이기도 하지요.
이 사촌남매는 크로퍼드 남매와 남녀 관계로 엮이게 되는데 크로퍼드 남매는 숙부 집에서 지내면서 바람둥이 숙부의 행각과 그로 인해 숙모가 마음 고생하는 것을 보며 자랐고, 런던의 사교계에도 익숙하여 결혼에 대해 세속적인 기준을 갖고 있다.
헨리 크로퍼드의 대사를 보자.
약혼한 여자는 늘 약혼하지 않은 여자보다 더 매력적이거든요. 자기 자신에 대해 만족하고 있으니까요. 걱정이 끝났으니 아무런 의심 없이 다른 사람을 매혹시키는 자신의 능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는 거죠. 약혼한 아가씨와 함께하면 모든 게 안전해요.
그 아가씨 성격은 어떨까? 진지한 편인가? 별난 편인가? 왜 나만 보면 그렇게 움츠러들면서 심각한 표정을 짓지? 좀처럼 말을 하게 만들 수가 없어. 내 평생, 어린 아가씨와 함께 있으면서, 즐겁게 해주려고 그렇게 오랜 시간을 들이고도 실패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니까! 그렇게 심각한 표정으로 나를 보는 아가씨를 만나본 적도 없었고! 그 표정으로 꼭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아. '저는 당신이 마음에 안 듭니다. 당신을 좋아하지 않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속으로 '아니, 그렇게 될걸’ 이라고 하지.
그가 그녀의 품행이 아주 견실하고 규칙적이라 말했을 때, 그녀가 고귀한 명예 관념을 갖고 있으며, 어떤 남자든 그녀의 신념과 성실성을 전적으로 믿을 수밖에 없게 하는 예의범절을 준수하는 사람이라고 말했을 때, 그는 그녀가 훌륭한 원리원칙과 종교적인 심성을 갖고 있다는 걸 알게 됨으로써 자신의 마음속에 떠오른 생각을 표현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녀라면 전적으로, 절대적으로, 신뢰할 수 있을 것 같아." 그가 말했다. "내가 원하는 게 바로 그런 모습이거든."
(여자의 마음을 가지고 노는 걸 즐기는 그도, 신뢰할 수 있는 여성을 원한다)
이 소설에서 가장 현실적이며 흥미로운 인물은 메리 크로퍼드이다. 그녀는 에드먼드 버트럼을 사랑하고 에드먼드나 패니의 품성을 좋게 생각하지만 재산을 상속하지 못하며 성직자가 되려는 차남과 결혼할 생각은 없다. 재산이 많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오빠와 달리 그녀는 재산을 간과할 수가 없다.
"... 중도적인 정직함, 세상살이의 여러 상황 중 중간 지점의 삶에서 보이는 정직함이, 제가 크로퍼드 양이 경멸하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는 전부입니다." (에드먼드)
"하지만 저는 그 정직함이 가난보다 더 훌륭할지라도 경멸할 거예요. 더 높은 삶의 위치로 올라갈 수 있는데 그저 그런 수준에서 만족하는 삶이라면 분명 경멸할 만하죠." (메리)
젊은 분이 너무 가엾게도! 만약 그분이 세상을 떠난다면, 가엾은 젊은이 두 분이 세상에서 사라지게 되겠죠 (한 명은 재산을 상속하게 되어 가엾지 않아진다는 뜻이다). 두려움 없이, 대담한 얼굴로 저는 누구에게라도 이렇게 말할 수 있어요. 그분의 부와 영향력이 그 둘을 차지할 만한 가치가 더 많은 분의 수중에 들어갈 수 있다고요.
(이 대목에서 메리 크로퍼드의, 제인 오스틴의 솔직함에 조금 놀랐다)
패니는 애정, 가치관, 그리고 소극적인 태도로 잘못된 선택을 피할 수 있게 되고
에드먼드는 일련의 사건들로 결국 정신을 차리게 된다.
그 여자는 이번 사건을 그저 어리석은 짓으로만 생각하고 있더라고. 그런 어리석은 짓에 발각이라는 도장이 찍힌 것일 뿐이래. 통상적인 신중함과 조심성이 부족했다고…… 세상에! 패니, 그 여자는 그들의 죄가 아니라 발각된 것만 비난했어. ...
그 여자의 잘못은 원칙의 잘못에서 비롯된 거야, 패니.
그리고 결말은 좀 진부하긴 하지만 좋은 성품의 사람들이 행복해지는 것으로 끝난다.
이 소설은 200년 전에 쓰여졌고, 지금은.. 패니나 에드먼드 같은 사람을 찾아볼 수 있을까? 메리나 헨리 크로퍼드 같은 사람들도 요즘은 딱히 비난받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사람들의 언행은 일관적이지 않고 그들 자신의 내면과 일치하지 않을 때도 많다. 그렇지만 대화나 행동으로 어떤 사람들을 짐작하는 것에 관심이 있다면 <맨스필드 파크>를 추천한다. 두껍지만 읽어볼 가치가 있다. 아주 흥미진진하지는 않지만 나름 재미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