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이 독자에게 전하고 싶은 것 중 하나가 '임신중지'는 감정 각본을 통해 통제된다 라는 것인 것 같다.
임신중지와 관련된 법안을 이야기하며 3달, 22주, 15주... 그리고 태아가 생명인가 아닌가 이런 것들을 얘기하지만 임신중지와 관련된 일들은 기본적으로 '감정적'이라는 것. 그리고 임신중단에 반대하는 집단(안티초이스)은 물론이고 찬성하는 집단(프로초이스)조차 그렇게 다루고 있다는 것이다.
임신중지 반대론자들은 임신중지를 겪은 여성에게 적대적이라는 비판에 대응해, 임신중지의 감정 경험에 호소함으로써 자신들의 정치를 방어했다. 한편 프로초이스 활동가들은 '이기적인 임신중지 여성'이라는 전형에 맞서고자 감정 경험에 눈을 돌렸다. (242쪽)
모성적 행복, 애통함과 후회, 피임에 대한 책임, 죄책감, 수치감...
모성적 여성성은 애통함과 수치가 뒤따르는 어려운 임신중지라는 서사를 유도하고, 애통함과 수치는 모성적 여성성을 자연화하는 근거가 된다. 이 자기영속적 순환고리는 왜 똑같은 감정이 다양한 담론장을 가로질러 임신중지에 자꾸만 들러붙는지를 설명하는 데 도움이 된다. (195쪽)
저자는 프로초이스의 논리가 모성적 행복을 전제하고 있다는 한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지만, 나는 프로초이스 진영이 (맘에 쏙 들지는 않지만) 현명했다고 생각한다.
(임신중지 비범죄화) 법안 지지자들은 이 감정 각본(임신중지의 애통함과 트라우마)을 인용해, 입법의 맥락과 별개로 여성은 임신중지가 일으킬 끔찍한 효과 때문에 그 조치를 피할 것이므로, 임신중지에 더 잘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
임신중지가 '가장 큰 트라우마를 안기는 과정'이고 '장기적인 정신-신체의 위험'을 수반하기에, 어떤 여성도 '단지 임신을 원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임신중지를 선택하진' 않을 것이라는 얘기였다. (166쪽)
위 논리가 잘 이해가 되는가? 단지 임신을 원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임신중지를 선택하진 않을건데, 그러니까 임신중지에 더 잘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는 논리. 구체적인 내용은 더이상 나와있지 않지만, 이 이유가 임신중지를 비범죄화 해야하는 충분조건이 되지는 않는다. 최소한 개선하지 않고 놔둬도 되는 문제였다. 그럼에도 프로초이스는 잘 설득해냈다는 이야기 아닐까?
감정 각본은 여성을 세뇌(?)하는 데에도 필요하지만, 정치에서 유권자를 설득하기 위해서도 필요한 것이다. 프로초이스가 저런 논리를 폈다고 해서 프로초이스 진영의 속마음까지 모성적 행복을 전제하고 있었을까? 그건 일종의 전략이 아니었을까. (내 생각이다) 정치란 순간의 감정에 호소하는 것이니까. 올해 대선을 치른 한국 사람들은 이 부분에 특히 공감하리라 본다.
엠마 왓슨이 UN의 'He for She' 캠페인을 위해 한 연설 (링크있음) 을 보고 나는 꼭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 생각했었다. 우리의 목소리를 내는데 남성의 지지 혹은 호감을 꼭 얻어야 하나? 그러나 인류의 반은 남성이고 영향력을 발휘하는 위치에는 남성이 더 많다. 법안을 만들건 예산을 따건 남성의 동의와 도움이 꼭 필요하다. 그렇게 하지 못했다면 여기까지 올 수도 없었을 것이다.
작년 <시녀이야기>를 읽고 한 순간에 경제권과 직업을 잃고 남성에게 종속되는 일화, 한낱 생식도구로만 이용되는 이야기가 정말 비인간적이라고 생각했다. 지금 누리고 있는 것이 그렇게 쉽고 굳건한게 아니고 마음만 먹으면 갑자기 뒤집어질 수도 있는 것들이구나 하고 경각심이 들었다. 여성의 권리가 더 확대되기를 바라지만, 요즘처럼 여성 혐오가 공개적으로 표현되는 세상에서 지금 갖고있는 걸 지키는 안전장치도 잘 마련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한국에서는 현재 임신중지가 수술로만 가능하고, 책에 나오는 RU486-미프진-미페프리스톤 같은 약물은 허용되지 않는다)
로 대 웨이드: '낙태권 보장' 미국 대법원 판결 49년 만에 뒤집혀 - BBC News 코리아 (링크있음)
지난 6월 24일 미국에서 24주 이전 낙태를 합법으로 인정하는 '로 대 웨이드' 판결이 뒤집히면서 낙태권에 대한 미 연방 차원의 헌법적 보호가 폐지되었다. 트럼프 정권에서 보수적 성향의 대법원 판사를 여럿 지명한 영향이 이제 나타나기 시작했다고 볼 수 있겠다. 미국의 사례가 다른 나라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고, 현 한국 정권의 성향을 고려할 때 또 이후 정권 교체가 가능할지 불투명해 보이는 상황에서 우려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시녀이야기>가 막연히 놀랍고 암울한 이야기였다면 <증언들>은 그 놀랍고 암울한 이야기의 사이사이를 조금씩 채워주는 이야기이다. 스토리의 완성도는 조금 아쉬우나 <시녀이야기>를 읽었다면 이것도 꼭 읽기를 권하고 싶다. 읽고나면 덜 우울해지기 때문이다 (...)
<증언들>은 <시녀이야기>에도 나왔던, 아주머니 of 아주머니인 리디아 아주머니, 캐나다에 사는 한 여자아이, 그리고 길리어드에서 태어나 자란 한 여자아이의 회고록이 번갈아가며 이야기가 진행된다.
알라딘 서재의 많은 분들이 길리어드의 여성이 된다면 주저없이 아주머니가 되는 길을 택하리라 생각한다. 다른 여성들과 달리 아주머니는 책을 읽을 수 있다 (...)
마침내 나는 '금지된 세계문학' 구역 깊은 곳, 내부의 성소에 다다랐다. 나만의 개인 책장에 하위 직급은 볼 수 없는 금서들을 골라 꽂아 두었다. <제인 에어>, <안나 카레니나>, <더버빌가의 테스>, <실낙원>, <소녀들과 여자들의 삶>, 탄원자들 사이에 풀어놓으면 저 책들 한 권 한 권이 얼마나 엄청난 도덕적 공황을 유발하겠는가!
우리는 장례식에 갈 때 말고는 그곳 출입이 금지되어 있었어요. 망자의 이름이 묘석에 새겨져 있어서, 잘못하면 읽기로 이어지고, 나아가 타락으로 이어질 수 있었으니까. 읽기는 여자에게 맞지 않는 일이었어요. 읽기의 힘을 감당할 정도로 강한 건 남자뿐이었습니다. 그리고 물론 아주머니도요.
같은 여성을 체제에 순응하도록 교육하고 감시하고 처벌하는 일을 하지만 읽고 쓸 수 있다는 특권을 갖고 있는 아주머니는 일종의 지식인이자 권력의 하수인이기도 하다. 아주 개운하지는 않지만 나에게 선택권이 있다면 나는 기꺼이 아주머니가 될 것 같다. 읽고 쓰는 것도 그렇고, 뭔가를 꾀할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이 아주 유혹적이기 때문이다.
당신을 총명하고 야심찬 젊은 여성으로 그려 본다. 당신의 시대가 되면, 동굴처럼 어둡고 메아리만 들리는 학계가 여전히 존재할지 모르겠지만, 당신은 그 속에서 자신에게 맞는 틈새를 찾고 있을 것이다.
(중략)
당신은 내가 쓴 이 기록을 거듭해서 읽고 오류를 뒤지며 전기 작가들이 집필 대상에 대해 자주 느끼게 되는, 선망과 지루함이 뒤섞인 증오심을 키우고 있을 것이다. 어떻게 그렇게 서툴게, 그렇게 잔인하게, 그렇게 어리석게 행동할 수 있었을까? 당신은 이렇게 질문할 것이다. 당신이라면 절대 그런 짓을 하지 않았을텐데! 그렇지만 당신에겐 그런 일을 해야 할 필요가 절대 생기지 않을 것이다.
그런 일을 해야 할 필요가 많지 않았기에 이전 세대의 여성들 그리고 동의해준 남성들에게 정말 감사하고, 앞으로도 많이 생기지 않기를 바란다. 그리고 우리의 노력으로 인해 다음 세대들은 해야 할 '그런 일' 이 더 적길 바란다.
임신중지를 감추지 않고 소리내어 이야기하는 #ShoutYourAbortion 캠페인은 개별적-공개적 스토리텔링을 통해 의식을 고양한다고 했다. 우리가 하고 있는 일. 읽고, 이야기하고, 알리는 것이 필요하고 중요하다.
그리고, 정치적으로 권리의 확대를 얻어내는 것 또한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 본심을 조금 감추고 타협할 필요가 있다. 그것에 실망하지 말자. 정치에 진실을 기대하지 말자. 마음은 뜨겁게, 머리는 차갑게.
+ 제 시간에 8월의 책을 다 읽어 기쁘다. 이제 밀린 일도 하고 다른 책 읽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