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여름 국립극장에서 '조용히' 막 내린 뮤지컬 '돈키호테'가 2년만에 '맨 오브 라만차'로 돌아왔다. 제목만 달라진 게 아니다. 이번엔 조승우다.

류정한, 김성기, 강효성이 열연한 2년전 '돈키호테'는 평론가와 마니아에게 호평을 받았지만 이번처럼 대중적(?) 관심을 끌진 못했고 나 역시 아쉽게 놓치고 말았다. 그런데 작년 여름 우연찮게 이 작품을 만날 수 있었다. 열린극장 창동에서 동서대 뮤지컬전공 학생들의 '즐겨라 뮤지컬 페스티벌' 공연을 보게 된 것. 그리고 난 '이룰 수 없는 꿈'에 푹 빠져 버렸다.

대학생들답지않은 공연도 좋았지만 작품 자체가 일단 뛰어났다. '돈키호테'란 익숙한 원작의 한계를 뛰어넘는 극중극이란 색다른 형식부터 감옥과 여인숙을 오가는 역동적인 무대장치, 기타와 드럼 반주에 맞춘 경쾌한 라틴 리듬, 배우의 가창력을 최대한 이끌어내는 멋진 노래들.

이런 훌륭한 작품과 조승우가 만났으니, '고기가 물 만났다'라는 표현이 딱 어울릴 듯 했다.

개막 사흘째인 8월 5일 일요일 저녁 LG아트센터.

명불허전. 역시 조승우였다. '지킬앤하이드'에서 이미 두 얼굴의 연기를 멋지게 소화했던 조승우는 이번 작품에서도 젊은 극작가 겸 세무원 세르반테스와 늙은 지주 겸 기사 지망생 돈키호테를 오가며 한층 원숙해진 연기력을  보여줬다.

나는 아직도 '지킬앤하이드'에서 연약한 듯 강력한 지킬과 굵으면서도 한맺힌 듯한 하이드의 목소리를 오가던 조승우를 잊지 못한다. 여기에 '지금 이순간'을 부를 때 그 전율까지...

그 감동은 '맨 오브 라만차'에서 그대로 재현됐다. 1막 마무리 알돈자 앞에서 사랑을 고백하듯 부르는 '이룰 수 없는 꿈(The Impossible Dream)'에서의 그 느낌은 '지금 이순간'을 뛰어넘었다. "꿈 이룰 수 없어도, 싸움 이길 수 없어도.."로 시작하는 리듬이 가슴을 두드리는 그 흥분을 어찌 표현할 수 있을까.

비록 3층 B석 구석자리에 앉아서 멀찌감치 무대를 지켜봐야 했지만 그 느낌은 1층 바로 앞자리 앉은 것처럼 생생하게 다가왔다.

그런 조승우 앞에 알돈자, 아니 둘시네아 김선영의 연기는 더 빛이 났다. 이미 '마리아마리아' 소극장 버전에서 예수를 유혹하는 창녀 막달라 마리아의 연기를 지켜봤기에 그 깊이를 가늠할 수 있었다. 특히 2막에서 윤간을 당한 뒤 돈키호테 앞에서 이룰 수 없는 꿈의 무력함을 비난하며 흐느끼듯 절규하는 노래는 김선영이 아니면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장면이었다.

커튼콜 역시 예상대로 조승우의 독무대. 마지막으로 조승우가 등장하자 공연장이 떠나갈듯한 '교성'에 다른 배우들도 놀라는 표정이 역력했다. 멋쩍었는지 김선영에 대한 박수를 따로 유도하는 조승우의 무대매너도 훌륭했다. 그리고 잠시 암전이 지나고 예정된(?) 멋진 앙코르곡 마무리까지...

조승우가 아니더라도 맨오브라만차의 매력은 하나같이 아름다운 뮤직넘버들. 스페인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서곡'부터 시작해서 세르반테스가 돈키호테로 분장하는 장면에 등장하는 힘찬 행진곡풍 '나는 돈키호테', 알돈자를 향한 애절함이 묻어난 서정적 분위기의 '둘시네아'와 '작은 새야 작은 새야(Little Bird, Little Bird)', 밝고 상큼한 리듬의 '나는 당신의 생각뿐(I’m Only Thinking of Him)', 알돈자의 가슴 울리는 노래 '알돈자(Aldonza)' 모두 잊지못할 멜로디를 간직하고 있다.

8월 9일 나올 예정이라 이날 아쉽게도 구입하지 못한 2CD짜리 2007 한국캐스트 앨범(14000원)은 'Must Have'. 프로그램도 아직 공연장면 없이 캐스트 프로필과 연습장면만 담긴 5000원짜리 약식 팜플렛만 팔고 있었다. 14일 정도에 공연 장면이 담긴 사진집이 나온다니 그때까지 프로그램 구입은 보류해도 좋겠다. 이래서 개막 초에 공연을 보는 건 여러가지 손해보는 느낌. 그래도 이 감동을 남들보다 먼저 느낀다는 것도 나쁘진 않다.

                                                                                  *별빛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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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yo12 2007-09-11 22: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승우군을 보고 싶었는대. ㅋㅋ 여전한 티켓 전쟁이더군요.^.~
 
요즘 어떤 영화 보셨어요?

영화예매사이트 예매순위 1위, 개봉 첫주 관객 100만 돌파...

할리우드 영화에 밀려 위기감의 극치를 맛본 한국영화계에 뜻밖의 구원투수가 등장했다. 다름 아닌 화려한 휴가다. 아직 개봉 첫주 상황이고 8월 초 블랙버스터 '디 워'나 '판타스틱4'의 '위협'이 예상되긴 하나 5.18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감안하면 무난한 출발이다.

아니 내 예상을 깬 뜻밖의 결과다. 주변에 이 영화를 벼르던 386 언저리들이 많고 나 역시 주말에 옆지기와 함께 상영관을 찾긴 했지만 이 정도로 관객이 찰 줄은 몰랐다. 내가 괜찮게 봤던 다른 영화들처럼 이 영화도 개봉관에 걸리자마자 며칠만에 자취를 감추고 연말에 인디상영관에서나 다시 보게 될 줄 알았다. 그런데 웬 대박 분위기?


이준기를 좋아하는 10대 열성 팬이나 대형극장체인을 소유한 배급사의 힘? 아님 모 신문 보도처럼 객석점유율 90%대를 기록한 특정지역 분위기 탓? 5.18에 대한 갑작스런 사회적 관심이나 영화의 뛰어난 작품성?

하긴 영화 흥행 조건에 어디 정답이 있던가. '괴물'이나 '태극기를 휘날리며' 같은 영화야 워낙 소문난 잔치였으니 그러려니 했지만, '왕의 남자' '말아톤' '마파도' 같은 영화야 누가 예상이나 했겠는가. 그러고보면 우리 관객들 자체가 수수께끼다.

화려한 휴가. 예상대로 말이 많다. 5.18을 본격적으로 다뤘다는 데 보다 의미를 부여하는 이들을 젖혀 두면 작품성에 실망한 이들이 많다. 신파다, 멜로다, 이럴 거면 차라리 안 만드는 게 낫다 등등... 나름 일리있는 지적들이다. '여섯개의 시선'류의 계몽영화든, 상업영화든 일단 시장에 선보인 이상 냉정한 평가를 받아 마땅하다.

그 점에서 나 역시 이 영화에 별 다섯 개를 줄 수 없었다. 안성기, 이요원, 김상경, 이준기, 송재호... 하나같이 반듯한 등장인물들은 지나치게 전형적이었고, 기대를 모았던 시민군과 공수부대의 충돌 장면은 10년도 더 된 '모래시계'의 긴장감에도 못미쳤다. 무엇보다 5.18를 모르는 대다수 관객들에게 과연 어떤 메시지를 줄 수 있을지, 압축적인 스토리라인도 답답했다.


결국 기대치 탓이었다. 그냥 영화를 영화 그 자체로 보지않고 이 영화를 통해 5.18을 모르는 10대, 20대들, 무엇보다 5.18을 외면해온 중장년세대에게 '화려한 휴가'를 봐, 5.18을 똑바로 보라고! 외치고픈 욕심에 상업영화를 가장한 보다 세련된 '계몽영화'이길 나 스스로 바랐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건 아닌데, 많이 모자란데, 어떻게 100만이나 봤지? 물음표를 날리고 있는 건지도...

옆지기는 영화를 보는 내내 눈물을 펑펑 쏟았다. 그리고 영화를 보고 나서 내게 왜 그렇게 눈물이 없느냐고 물었다. 사실 옆지기 몰래 나도 눈물을 훔치고 있었다. 그래 좋은 영화가 별거냐. 보고 느낌이 있으면 되는 거고, 이 영화 덕에 5.18을 한번쯤 다시 떠올리게 된다면, 그걸로 충분한 거 아냐? 내가 언제부터 그리 머리 써가며 봤다고...

                                                              *별빛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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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지에 들고 갈, 한 권의 책!
두 용의 대격돌! 『테메레르』vs『퍼언 연대기』
테메레르 1 - 왕의 용 판타 빌리지
나오미 노빅 지음, 공보경 옮김 / 노블마인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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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겨울 호빗과 반지의 제왕, 2006년 여름 어스시의 전설, 그리고 1년만에 다시잡은 소설 역시 공교롭게 용 이야기였다. 하지만 세대가 바뀐 탓일까? 이미 고전의 반열에 오른 톨킨이나 어슐라 르 귄의 용과 신세대 작가 나오미 노빅의 용은 전혀 달랐다. 적어도 가운데땅과 어스시에서조차 자취를 감춰가던 전설속의 신비한 용에 대한 기대는 일찌감치 접어야 했다.

대신 테메레르에는 서양 용과 동양 용을 교묘하게 결합해 전쟁용으로 적합하게 만든 퓨전 용들이 등장한다. 임페리얼 종, 롱윙 종, 그랑 슈발리에 종 등 다양한 종족명이 마치 명마의 품종이나 비행기 기종을 이야기하듯 자연스럽게 흘러나온다.

때는 나폴레옹 전쟁이 한창이던 19세기 초반. 유럽 대륙에 난데없는 공중전이 펼쳐진다. 단지 20세기에나 등장한 비행기 자리를 수십마리의 거대한 용들이 대신할 뿐이다. 그렇다고 이 용들이 시공을 초월해 갑자기 등장한 것도 아니고 이미 수천년부터 존재해온 '생물병기'인 것이다.

대체역사물. 즉 철저한 상상의 세계인 가운데땅이나 어스시를 내세운 판타지 소설과 궤 자체를 달리하는 작품이다. 따라서 판타지에 익숙한 내겐 오히려 낯설게 다가왔다. 차라리 비행기의 자리를, 말하는 생물체가 대신할 뿐 나폴레옹전쟁 이야기의 확장판 버전에 다름 아니다. 그리고 실제 전반적인 전쟁 흐름이나 무기, 군사체계는 역사서를 고스란히 따른다. 따라서 단순 전쟁이야기에 방점을 둔다면 오히려 밋밋해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무생물체인 비행기가 아닌 3개 국어에 능통하고 인간 못지않은 사유체계를 지니며, 무엇보다 강력한 전투력과 비행능력, 나아가 비행사에 대한 애틋한 감정까지 지닌 이 매력덩어리가 주인공이라는 것이야말로 이 색다른 소설이 지닌 미덕이다.

해리포터 등과 마찬가지로 시리즈물을 전재로 만든 소설인 탓에 첫 권에는 다양한 등장인물과 용의 품종에 대한 설명에 치중해 실제 전투장면은 많지않다. 주인공 테메레르와 그 파트너 로렌스 대령 역시 막판에 인상적인 활약을 펼치긴 하지만 400쪽까지 읽는 내내 열심히 훈련하면서 교감을 쌓아가는 내용이 대부분이어서 다소 지루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한편으론 앞으로 펼쳐질 두 주인공의 활약의 서곡이기에 이정도는 감수해야지 싶기도 하다.

무엇보다 아쉬운 부분은 테메레르 시리즈가 한꺼번에 나오지 않고 감질맛나게 1권만 달랑 나왔다는 사실. 이어지는 세 권이 올해 안으로 나온다고 하니 서둘러 나오길 기대해 본다. 사실 1권에 맛을 들인 독자들을 너무 오래 감질맛나게 하는 것도 출판사의 미덕은 아니다.

                                                                              *별빛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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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f657 2007-07-28 18: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6권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하던데..........일단 1권이 나왔으니 나머지 5권만 나오면........

별빛처럼 2007-07-29 23:34   좋아요 0 | URL
아마존에서 검색해보니 지금까지 출간된 원서는 모두 3권이고, 시리즈 네번째 Empire of Ivory는 9월 25일 출간 예정이라는군요. 나머지 2권은 내년에나 볼 수 있을 듯 싶네요. 작년에 나온 2, 3권이라도 빨리 나왔음 좋겠는데...
 
요즘 어떤 영화 보셨어요?

2004년 6월 김선일씨 납치·사망사건으로 한국이 떠들썩하기 두 달 전 역시 이라크에서 자원봉사중이던 일본인 3명이 무장단체에 납치되는 사건이 벌어졌다. 다행히 이들은 일본 정부의 노력(엄청난 몸값)에 힘입어 풀려날 수 있었다.

문제는 그 다음에 벌어졌다. 일본정부가 치른 큰 대가에도 피랍자 일부는 이라크에 계속 남아 이라크인들을 돕길 원했고, 일본인들에게 이는 '적반하장' 정도로 여겨진 모양이다. 이후 이들에 대한 일본인들의 '집단적 왕따' 현상을 그린 작품이 2005년 칸 영화제에 출품된 고바야시 마사히로 감독의 <배싱>이다.

난 <배싱>을 올해 초 어느 일요일 오후 EBS TV에서 우연히 봤다. 초반 10여분 정도는 놓쳤고 주인공 유코가 회사에서 해고되는 장면부터 볼 수 있었다. 한동안 무슨 내용인지 몰라 헤매다가 인터넷을 통해 영화 내용을 검색해 보고서야 나머지 내용도 따라 잡을 수 있었다. 지금에서 이 예전 영화를 떠올리는 것은 최근 아프간 한국인 피랍자들을 대하는 우리 일부, 그리고 내 자신의 모습에서 유사성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배싱 한 장면


영화는 피랍된 일본인 석방 이후를 그리고 있다.

중동(구체적으로 이라크라 지칭하진 않는다)에서 자원봉사하다 무장단체에 납치된 유코는 일본정부가 엄청난 몸값을 내준 덕에 풀려나고, 일본으로 돌아온다. 하지만 정부의 경고에도 이를 무릅쓰고 위험지역에 들어갔고, 그로 인해 일본에 엄청난 물적, 정신적 피해를 끼친 이들에 대한 일본인들의 '집단적 비난'이 쏟아진다.

이는 주변 사람들의 집단적 왕따(이지메)와 협박전화로 이어지고 유코는 집에 숨다시피하며 은둔생활을 하게 된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유코는 회사에서 해고당하고, 남자친구하고도 헤어진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않는다. 유코의 유일한 버팀목이었던 아버지 역시 회사까지 협박전화가 끊이지 않아 결국 실직하고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일본 내에서도 많은 논란을 낳은 영화지만 일본을 비롯한 동양권의 '집단의식'을 그렸다는 점에서 우리 역시 예외는 아닌 듯하다. 실제 최근 아프간 피랍자들을 바라보는 일부의 시선이 곱지않다.  국정원에서 여행자제국가로 경고한 아프간, 그중에서도 가장 위험지역으로 분류된 칸다하르 지역에 위험을 무릅쓰고 들어간 자체도 그렇고, 봉사활동이 주목적이지만 이슬람국가에서 '선교' 분위기를 띄었다는 점도 그렇다.

아직 석방 협상이 진행 중이어서 충격과 동정여론이 더 높은 상태지만, 이들이 무사히 풀려났을 때 우리 사회 일부에서 형성될 집단적 분위기가 어떨지는 충분히 감지할 수 있다.

그들의 무사귀환과 함께, 제2, 제3의 유코가 한국에서는 나타나지 않기를 빌어본다.

배싱(Bashing)은 '심한 비난'을 뜻하는 말로 석방 이후 피랍자들에게 쏟아진 일본인들의 집단적 비난을 가리킨다.

                                                                         *별빛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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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피랍사건을 인해 네티즌에게 고함...!
    from bookbook 2007-07-24 00:55 
    여러가지 글들을 통해 다양한 시각과 의견들을 접할수 있었습니다... 이미 전 글에 피력했듯이 저는 피랍자들의 무사 귀환을 바라는 사람입니다... 무책임한 글들도 많이 볼수 있었습니다... 그냥 아무런 생각없이 한가지 비유가 떠올라 몇자 적어봅니다... 당신의 가족 중 한사람이 극약(쥐약, 농약, 청산가리, 염산 등)을 먹고, 자살시도를 했습니다... 회사에서 돌아오니 배를 움켜쥐고, 바닥에서 신음하며 뒹굴고 있었습니다... 신음하는 가족의 옆에는 유..
 
 
Mephistopheles 2007-07-23 19: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영화 봤습니다.
결국 여자 주인공 일본에서의 모든 걸 잃고 다시 그곳으로 향하죠..

별빛처럼 2007-07-27 23:10   좋아요 0 | URL
일부러 결말을 안 밝혔는데...사실 스포일러라고 보긴 어렵겠네요.
결말이 어떻게 되든 이번 사건의 후유증은 클듯하네요.
 
요즘 무슨 책 읽고 계세요?
암보스 문도스 밀리언셀러 클럽 62
기리노 나쓰오 지음, 김수현 옮김 / 황금가지 / 2007년 5월
평점 :
절판


기리노 나쓰오에 대해 잘 모른 채 무심코 잔학기와 이책을 집어들었다. 못생긴 데다 일시적으로 잃어버린 기억을 갖고 있는 여자, 30대 노숙자, 가정이 있는 편집자의 정부... 하나 같이 사회에서 소외된 인생들이다. 그들의 이야기는 읽은 이의 마음을 시종 불편하게 만든다.  

그렇다고 특별한 미스터리가 있는 것도 아니고 스릴러적 요소가 있는 것도 아니다. 평범한 그들의 일상을 그저 담담하게 또는 삐딱하게 그리고 있을 뿐이다. 그래도 뭔가 있겠지 하고 읽어가다보면 다소 뜻밖의 결말로 독자를 당황하게 만든다. 그럼에도 묘하게 빠져들게 되는 건, 일종의 사회소설처럼 평소 관심을 갖지 못했던 다양한 삶을 대리경험하는 묘미일지도 모르겠다. 한편의 낯설지 않은, 내 삶의 일부인 듯한 기시감...

7편의 단편을 아직 전부 읽진 못했다. 하지만 한번에 모두 읽고 털어버리기엔 왠지 허전한, 그래서 한편 한편 곱씹어 보고 생각해보며 읽어야할 작품인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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