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노 장날에 다녀와서


제10회 포노장날(사진 출처: 포노 www.phono.co.kr)

24일 처음 찾은 포노 장날은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도 많았지만, 결과적으로 소중한 추억을 안겨준 멋진 경험이었다.

하지만 정작 구하고 싶었던 음반들을 찾아내지 못해 발길을 돌려야 했던 아쉬움도 컸다. 애초 포노 장날을 찾은 가장 큰 목적은 국내에서 구하기 힘든 해외 뮤지컬 앨범들을 찾는 것이었다. 이미 며칠 전 온라인을 통해 '뮤지컬 그리스 오리지널 캐스트 앨범'을 구하는 뜻밖의 성과를 거둔 뒤라 더했는지 모르겠다.

결과적으로 그 많은 중고앨범 중에서 내가 찾고자 했던 뮤지컬 앨범은 단 하나도 건질 수 없었다. 물론 그 과정에서 뜻밖의 수확도 있었다. 이미 국내엔 절판돼 버린 프랑스 팝가수 엘자의 베스트 앨범은 정말 브라보! 였다.

다음엔 또 어떤 예상치못한 '보물'을 건질 수 있을까하는 기대감에 나는 다시 포노 장날을 찾을 듯하다.

우선 기대를 더욱 부풀게 했던 몇 가지 장면을 떠올려 보자.

1. 친절한 발바닥.

지하철 3호선 남부터미널역을 나서는 순간 처음 만난 바닥에 붙은 '발바닥' 안내 표시는 주최측의 세심한 배려가 엿보이는 부분이다. 덕분에 처음 찾는 내겐 훌륭한 길 안내자이자 정보제공자로 손색없었다.

2. 가방보관 서비스.

3층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맞이하는 친절한 안내. "가방 주시겠어요. 지갑은 챙기셨죠?" 물론 도난방지(?)가 가장 큰 목적이었겠지만 이후 몇 시간 동안 물류 창고와 야외주차장에서 발품을 팔아야 했을 내겐 큰 짐을 던 것이었음을 뒤늦게 깨달았다.

3. 보물창고를 휘젓는 느낌.

무엇보다 돋보이는 부분은 물류센터의 과감한 개방이다. 난생 처음 쇼핑몰의 물류센터를 찾은 느낌은 마치 보물창고를 휘젓는 기분이었다. 가지런히 진열된 음반매장과는 비교할 수 없었지만 여기저기 오가며 고객이 주문한 상품을 찾는 직원들 속에 뒤섞여 색다른 분위기를 만끽할 수 있었다.

4. 야외주차장의 '보물찾기'

중고음반들과 행사상품이 가득 찬 야외주차장은 마치 숲 속 보물찾기를 연상시키기에 충분했다. 곳곳에 숨어있는 자신만의 음반들을 찾아 박스를 채우기에 여념 없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는 것 자체가 내겐 멋진 경험이었다. 


이 과정에서 느꼈던 아쉬웠던 부분을 지적해 보자.

1. 모래밭에서 바늘 찾기, 서울에서 김 서방 찾기!

야외 주차장에 진열된 중고CD의 경우 아직 제대로 정리가 되기 전임을 감안하더라도 너무 무질서하게 뒤섞여 있어 원하는 음반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클래식, 가요, 팝/록, 재즈 정도로 구분돼 있긴 했지만 온라인의 장점을 잃어버린 오프라인 상에서 그 테두리는 너무 방대했고 원하는 음반을 찾기 위해선 수백 수천개의 CD를 일일이 뒤져야 하는 원시적인 '보물찾기'를 되풀이해야 했다.

물론 그 가운데 원하는 앨범을 구했을 때의 '기쁨'이야 더 배가되겠지만 자칫 그 안에 있을 수 있었던 것도 순간의 방심에 놓쳐버릴 수 있는 '위험'도 감수해야 한다는 건 크나큰 아픔이다.

2. 기왕 열어본 거 들어도 봤음 하는 바람이 있네.

중고음반의 장점이자 단점은 케이스를 열어볼 수 있다는 것. 미처 CDP를 준비하지 못한 사람으로선 좀 난감할 수밖에 없다. 운 좋게 깨끗한 CD를 구했으면 괜찮겠지만 원하던 음반이긴 한데 CD 상태가 영 의심스러울 땐 일단 들어보는 건 장땡! 하지만 주변에 마땅한 청음시설이 갖춰져 있지 않은 건 큰 아쉬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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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하나둘 장만한 책들이 방구석에 쌓이다 보니 정리하는 것도 골치더군요. 그래서 큰 맘 먹고 책장을 하나 들여놨습니다.

이곳저곳 인터넷 사이트를 뒤지고 뒤져 고른 것이 이지프리 3단 책장입니다. 마침 쇼핑몰에서 공동구매 중이라 정가보다 20% 정도 할인된 3만4000원에 샀습니다. 어제 택배가 도착했는데 나무판들을 고정 플라스틱으로 맞추는 방식이라 조립이 그렇게 어렵진 않았어요.

다른 책장과 비교해 뒤가 뻥 뚫려서 좀 허전하긴 하지만 책장이 3단으로 분리할 수 있어 방 이곳저곳으로 옮길 때 불편하진 않을 것 같네요. 색상도 체리색이라 꽤 고급스럽고 재질도 파이티클 보드 합판이라 묵직한 게 좋습니다. 두께도 15mm 정도 돼 튼튼해 보이고요.

무엇보다 DIY라 앞으로 다른 형태로 얼마든 재활용할 수 있다는 점이 맘에 듭니다. 몇 년 전에도 DIY 공간박스를 몇 개 구입했는데, 집에 있던 싸구려 책꽂이랑 조합시켜서 근사한 붙박이 책장을 만들었거든요.(요건 다음에 구경시켜 드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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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에 실린 제 글입니다.

"저 혼자였음 밤새 눈만 치웠을 겁니다"

춘삼월 폭설 내린 날 밤 펼쳐진 '눈과의 전쟁'

100년만에 최대라는 춘삼월 폭설이 내린 4일 밤. 광화문 네 거리를 가득 메운 채 엉금엉금 기는 버스들을 뒤로 하고 모처럼 지하철로 퇴근했습니다. 밤 10시가 넘은 늦은 시각이었지만 지하철역을 나서는 순간부터 집에 오는 거리 곳곳엔 수북히 쌓인 눈을 치우는 사람들로 북적였습니다.

▲ 눈을 치우고 난 뒤에 찍은 사진입니다. 아파트 소방도로 경사가 급해 눈을 치우지 않으면 빙판길로 변해 버립니다.
ⓒ2004 김시연
마포 달동네를 재개발해 지은 탓에 경사가 유난히 급한 우리 아파트까지 올라오면서 든 생각은 여기 쌓인 이 엄청난 눈은 누가 치울까 하는 걱정이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제가 사는 4동 진입로는 수북히 쌓인 눈이 고스란히 방치돼 있었고 덕분에 모처럼 아빠와 함께 눈사람을 만드는 아이들만 신나게 놀고 있었습니다.

20cm 가까이 쌓인 눈밭을 헤치고 집안에 들어선 저는 갑자기 이날 낮에 도착하기로 한 택배 생각이 나 1층 경비실로 내려갔습니다. 하지만 경비실은 텅비어 있었고 입구엔 '순찰중'이라는 팻말만 걸려있었습니다.

삽으로 눈을 북북 긁어대는 소리가 들린 건 그때였습니다. 4동보다 훨씬 높은 곳에 있는 5동에서부터 경비원 아저씨와 대여섯 명의 주민들이 소방도로에 쌓인 눈을 열심히 치우며 내려오고 있었습니다. 그냥 집으로 들어갈까도 생각했지만 빗자루를 든 채 눈을 치우고 있는 할머니와 여자아이까지 본 마당에 그냥 외면할 순 없었습니다.

별 수 없이(?) 그들 주변을 기웃거리던 전 마침 두툼한 장갑을 낀 채 넙죽한 나무 판대기로 힘겹게 눈을 길가로 밀어내고 있는 40대 아저씨를 발견하곤 다가갔습니다.

"많이 힘드시죠. 제가 할테니 좀 쉬세요."

처음엔 맨손에다 힘이 잔뜩 들어가 삽이 눈 위로 미끄러지기 일쑤였지만 조금씩 요령이 붙은 전 맨 앞에 나가 열심히 눈을 한쪽 길가로 밀어냈습니다. 그러면 곧 작은 삽을 든 어린아이, 빗자루를 든 아주머니와 할머니가 뒤따르며 남은 눈을 마저 쓸어냈습니다. 반대쪽에선 삽을 든 경비원 아저씨와 제설용 플라스틱 삽을 든 30대 아저씨가 열심히 눈을 치워내고요.

조금 있으니 먼저 나무판대기를 건네 줬던 아저씨가 다시 자기 차례라며 임무 교대를 해줍니다. 그래서 이번엔 할머니에게서 싸리비를 건네 받아 눈을 쓸었습니다.

한 20여분 남짓 됐을까요. 길 복판에 수북히 쌓였던 눈이 어느새 자취를 감췄습니다.

▲ 눈이 깨끗이 치운 덕에 아침 빙판길은 면할 수 있게 됐습니다.
ⓒ2004 김시연

"다들 고생하셨습니다."
"수고하셨어요."

함께 힘을 모은 덕에 비교적 짧은 시간에 일을 끝냈다는 뿌듯함에 서로서로 자연스런 공치사를 나눴습니다. 평소 인사 없이 지내던 낯선 이들이었지만 이때만큼은 누구보다 가까운 이웃사촌이었죠.

"아이고, 고맙습니다. 저 혼자였으면 오늘 밤새도 못 치웠을 겁니다."

가장 고마워했던 분은, 분홍색 수건을 목에 걸치고 땀을 뻘뻘 흘리며 눈을 치우던 경비원 아저씨였습니다. 이날 밤 당직이었을 이 분 혼자서 3개 동을 맡아야 했거든요.

제가 사는 곳은 공공임대아파트인 탓에 홀로 사는 노인분들이 특히 많습니다. 하지만 아파트가 높은 지대에 있는 탓에 이렇게 간밤에 내린 눈이 그대로 남아 빙판길이 돼버리면 거동이 불편하신 분들은 꼼짝할 수 없습니다.

만약 이날 밤 이들의 작은 수고가 없었다면 다음날 더 많은 분들이 고생했겠죠.

어느 때보다 혼잡할 오늘 아침 출근길. 눈이 치워진 거리를 보며 전날 밤 그 눈을 치우느라 고생했을 우리 숨은 이웃들에게 작게나마 감사의 마음을 가져보는 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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