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어떤 영화 보셨어요?
2004년 6월 김선일씨 납치·사망사건으로 한국이 떠들썩하기 두 달 전 역시 이라크에서 자원봉사중이던 일본인 3명이 무장단체에 납치되는 사건이 벌어졌다. 다행히 이들은 일본 정부의 노력(엄청난 몸값)에 힘입어 풀려날 수 있었다.
문제는 그 다음에 벌어졌다. 일본정부가 치른 큰 대가에도 피랍자 일부는 이라크에 계속 남아 이라크인들을 돕길 원했고, 일본인들에게 이는 '적반하장' 정도로 여겨진 모양이다. 이후 이들에 대한 일본인들의 '집단적 왕따' 현상을 그린 작품이 2005년 칸 영화제에 출품된 고바야시 마사히로 감독의 <배싱>이다.
난 <배싱>을 올해 초 어느 일요일 오후 EBS TV에서 우연히 봤다. 초반 10여분 정도는 놓쳤고 주인공 유코가 회사에서 해고되는 장면부터 볼 수 있었다. 한동안 무슨 내용인지 몰라 헤매다가 인터넷을 통해 영화 내용을 검색해 보고서야 나머지 내용도 따라 잡을 수 있었다. 지금에서 이 예전 영화를 떠올리는 것은 최근 아프간 한국인 피랍자들을 대하는 우리 일부, 그리고 내 자신의 모습에서 유사성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배싱 한 장면
영화는 피랍된 일본인 석방 이후를 그리고 있다.
중동(구체적으로 이라크라 지칭하진 않는다)에서 자원봉사하다 무장단체에 납치된 유코는 일본정부가 엄청난 몸값을 내준 덕에 풀려나고, 일본으로 돌아온다. 하지만 정부의 경고에도 이를 무릅쓰고 위험지역에 들어갔고, 그로 인해 일본에 엄청난 물적, 정신적 피해를 끼친 이들에 대한 일본인들의 '집단적 비난'이 쏟아진다.
이는 주변 사람들의 집단적 왕따(이지메)와 협박전화로 이어지고 유코는 집에 숨다시피하며 은둔생활을 하게 된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유코는 회사에서 해고당하고, 남자친구하고도 헤어진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않는다. 유코의 유일한 버팀목이었던 아버지 역시 회사까지 협박전화가 끊이지 않아 결국 실직하고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일본 내에서도 많은 논란을 낳은 영화지만 일본을 비롯한 동양권의 '집단의식'을 그렸다는 점에서 우리 역시 예외는 아닌 듯하다. 실제 최근 아프간 피랍자들을 바라보는 일부의 시선이 곱지않다. 국정원에서 여행자제국가로 경고한 아프간, 그중에서도 가장 위험지역으로 분류된 칸다하르 지역에 위험을 무릅쓰고 들어간 자체도 그렇고, 봉사활동이 주목적이지만 이슬람국가에서 '선교' 분위기를 띄었다는 점도 그렇다.
아직 석방 협상이 진행 중이어서 충격과 동정여론이 더 높은 상태지만, 이들이 무사히 풀려났을 때 우리 사회 일부에서 형성될 집단적 분위기가 어떨지는 충분히 감지할 수 있다.
그들의 무사귀환과 함께, 제2, 제3의 유코가 한국에서는 나타나지 않기를 빌어본다.
배싱(Bashing)은 '심한 비난'을 뜻하는 말로 석방 이후 피랍자들에게 쏟아진 일본인들의 집단적 비난을 가리킨다.
*별빛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