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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워
배명훈 지음 / 오멜라스(웅진) / 2009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사회적 과학소설? 날카로운 사회적 통찰? 이런 말의 성찬은 일단 좀 제껴 놓자. 이 소설은 그냥 재.밌.다. 재미란 걸 느끼는 지점이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적어도 책을 읽는 도중 지하철 목적지에 도착하는 게 아쉽고, 읽고 난 뒤엔 가슴 깊은 곳에 뭔가 한방 맞은 느낌을 받을 때 난 '재미'라고 한다.
'타워'는 그런 소설이다. 바벨탑 같은 674층 빌딩 국가와 주인공 대신 '감정'을 전하는 로봇, 사막에 떨어진 사람도 찾아내는 위성기술을 등장시켜 과학소설 분위기를 살짝 풍기기도 하고 열반에 들려는 코끼리처럼 판타지적 요소도 버무렸지만 아주 그럴듯한 '뻥'이기에 억지스러움은 없다.
한편으론 고급술병에 전자태그 붙여 권력 지도 그리기, 좌우파 뺨치는 수평주의-수직주의 이념 대결 등 사회 풍자적 요소가 짙지만, 가자지구 폭격을 연상시키는 빈스타워의 테러와의 전쟁, 용산사태처럼 엘리베이터 증설 진압 과정에서 죽는 철거민, 박연차 수사 같은 권력자의 정적 먼지 털기 수사, 시청 광장 앞에서 벌어지는 시위대와 경비대의 혈투 등 너무 직접적이서 지극히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소설 6편의 아쉬움을 달래주는 앙증맞은 소품 같은 4편의 부록까지, 소설가 박민규의 추천사처럼 굳이 100년 뒤를 기다리지 않더라도 내겐 충분히 고마운 소설이건만 안타깝게도 옥에 티는 있다. 바로 책 말미에 붙은 소설가 이인화의 서평이다.
이인화에 대한 개인적 선입견 탓이라고 치부하고 싶다. 하지만 그러기엔 그 서평은 이 책과 너무 동떨어지고, 무엇보다 재.미.없.다.
'날카롭고 불온하다'는 첫 화두는 그렇다 치자. '불온하다'는 평가도 조선일보가 하냐, 한겨레가 하냐에 따라 전혀 상반되게 들리기도 하니까. 하지만 적어도 '작품 소개'는 제대로 해야 하지 않을까? 사회비판소설을 쓰다가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권력의 '먼지 털이'가 두려워 자연주의로 전향한 작가 K의 이야기를 다룬 <자연예찬>. 이 시대 소설가라면 마땅히 뜨끔했을 이 작품에 대해 이인화는 이렇게 말한다.
"<자연예찬>에서처럼 아무리 자본의 힘이 모든 것을 지배하는 세계에서도 우리 존재의 어머니인 가이아, 지구의 생태적 모성을 지키고 싶은 희망은 사라지지않는다."
한마디로 뜬금없다. 결국 '먼지 털리기'를 각오하고 빈스토크 권력을 통렬하게 비판하는 것으로 작가 생명을 마감한 K의 모습은 그 어디에도 없다. 오히려 초고층빌딩에 갇혀 자연에 발을 디딜 수 조차 없으면서도 '자연예찬'을 강요받아야 했던 K의 모습만이 담겨있을 뿐이다. 아무래도 같은 소설가로서 이를 직설적으로 받아들이기가 힘겨웠을까?
이 서평 만큼은 노무현 서거 뒤에 쓴 글인 모양이다.
"대통령이 자살하는 나라에 사는 사람들은 자주 비통한 무감각 속에 왜 사는지 모르겠다고 푸념한다. 세상은 본래 어지럽고 비현실적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우리는 허구라는 안경을 쓰고 간신히 현실을 본다. 좀처럼 믿기지않는 거짓말에서 살아야 할 이유를 찾아내는 것이다."
백번 양보해 다른 작가 책 말미에 붙는 서평임을 감안하더라도, 이 대목에서 작가 K의 모습을 발견하기란 어렵지 않다. 현상만 볼 뿐 그 근저에 깔린 권력의 비정함은 애써 외면하는, 뭔가 있는 듯 적당히 얼버무리기. 거꾸로 배명훈 소설에선 날카롭게 드러냈던 그 '날 것' 말이다.
그래서 이인화의 훈수 역시 마뜩치 않다.
"배명훈의 흥미진진한 알레고리들은 앞으로 보다 따뜻해져서 현재의 날카로운 사회적 통찰과 함께 가승 뭉클한 인간적 감동으로 확대되어가리라 생각한다."
불편했을 것이다. 누구보다 후배 작가의 날 것을 본 노회한 베스트셀러 작가의 시각에서 그 날카로움은 계속 닳고 닳아 '보다 따뜻해져서' 누구에게나 보편적으로 다가가는 작품이 나오길 바라는 게 현실적인 충고였을 것이다. 그게 작가란 직업인으로서 살아남는 이땅의 법칙이기에.
그런 닳고닳은 베스트셀러보다는 이처럼 덜 다듬어진 날 것을 더 즐기는 걸 보니 난 너무 가학적이거나 어쩔 수 없는 '골수 수평주의자'인 모양이다.
*별빛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