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임홍빈 옮김 / 문학사상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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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셋 무라카미 하루키는 아테네에서 첫 풀코스를 달렸고 난 서울에서 다섯번째 풀코스를 달렸다
 

표지에 나온 무라카미 하루키의 뒷모습은 전형적인 마라토너다. 크지않은 키에 근육질이 아닌 비교적 마른 체형, 가는 발목에 탄탄한 다리. 42.195km를 달리는 데 아주 경제적인 몸매다.  

사실 그처럼 가벼운 걷기와 조깅으로 시작해 5km, 10km, 하프, 풀을 끊고 울트라마라톤이나 트라이애슬론까지 도전하는 과정은 '마스터스'라 불리는 아마추어 마라토너들에겐 거의 통과의례에 가깝다. 하지만 환갑이 되도록 25년 넘게 매년 풀코스 완주에 성공한 이라면 이 바닥에서도 손에 꼽을 정도다. 꾸준함이 미덕인 마라톤에선 세계신기록 제조기인 게브르셀라시에 못지않게 귀한 존재인 셈이다.  

세계적인 작가 반열에 오른 그가 마라토너란 사실은 솔직히 이 책을 보고 처음 알았다. 10여년 전 <상실의 시대(노르웨이의 숲)>을 읽은 뒤 한때 무라카미 소설에 빠진 적도 있지만 그동안 내게 있어선 '과거'일 뿐이었다. 그런 그가 다시 내게 다가왔다. 소설도 아닌 달리기 이야기로. 

사실 이 책 역시 내가 마라토너가 아니였다면 쉽게 접하지 못했을 것이다. 공교롭게도 나 역시 무라카미 하루키와 비슷한 나이(33세)에 달리기를 시작해 지난 3년 동안 풀코스 5번을 완주했다. 기록도 3시간 30분대인 한창 때 그에겐 못 미치지만 '서브4'는 어렵게 달성했다. 

이 책은 그의 달리기 인생에 관한 글이자, 글쓰기에 관한 것이기도 하다. "나는 소설 쓰는 방법의 많은 것을 매일 아침 길위를 달리면서 배워왔다"는 4장 제목이 이를 압축한다. 전혀 비교할 게 못되지만 역시 '글쓰는' 직업을 가진 사람으로서, 달림이로서 이 책을 보는 감회는 남다르다. 바로 '공감'이다.  

왜 그렇게 힘들게, 때론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까지 달리냐고 묻는 이들에게 그는 이렇게 말한다. 

"주어진 개개인의 한계 속에서 조금이라도 효과적으로 연소시켜 가는 일,  그것이 달리기의 본질이며, 그것은 또 사는 것의(그리고 나에게 있어서는 글쓰는 것의) 메타포이기도 한 것이다"(128쪽)

그가 말했듯 글쓰는 데 필요한 재능도, 꾸준한 성실함도 갖추지 못한 나 같은 이들에게 마라톤은 이처럼 달리는 것 이상의 많은 가르침을 준다.  

사실 내가 이책을 읽기 전 난 6개월 가까이 달리기를 중단한 상태였다. 하루키처럼 '러너스 블루' 같은 거창한 이유도 아니다. 지난해 3월 동아마라톤에서 최고기록 달성 이후 목표 잃은 기러기처럼 달리기를 조금씩 일상에서 밀어내고 있었다. 

물론 갖다댈 핑계는 많다. 이사온 뒤로 마땅히 뛸만한 조깅코스도 없고, 매주 일요일 훈련하는 한강과의 거리가 2배는 멀어졌다. 하지만 핑계는 핑계일 뿐. 덕분에 그간 몸무게는 3kg 늘었고, 얼마전 자전거 타고 언덕을 오른 뒤 하늘이 노래지고 숨이 막힐듯한 빈혈증세까지 다시 찾아왔다. 

이래선 안되겠다 싶었다. 마침 이 책을 접했다. 그리고 오늘 다시 조깅을 시작했다. 
주어진 한계 속에서 조금이라도 나를 효과적으로 연소시키기 위해...

                                                                      *별빛처럼

2009.3.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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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버웨어 판타 빌리지
닐 게이먼 지음, 나중길 옮김 / 노블마인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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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더스트> 닐 게이먼의 데뷔작이란 타이틀은 역시 날 실망시키지 않았다. 스타더스트에서 월을 경계로 현실과 판타지 세계를 넘나들었다면, 네버웨어는 지상과 지하 사이에 눈에 보이지않는 경계가 존재한다. 차이가 있다면 지상 사람들은 눈치 못채는 사이 지하 세계 사람들과 공존하고 있다는 것.  

이 책을 읽는 독자가 런던 토박이가 아니어도 대영박물관, 런던타워, 얼스코트 등 낯익은 런던 지명들과 지하철역명에서 이야기를 풀어내는 닐의 재치있는 입담에 빠져들지 않을 수 없다.  

모든 문을 열 줄 아는 신비한 능력을 지난 도어와 어느날 갑자기 지상세계에서 자신의 존재를 감추고 지하세계로 빠져버린 주인공 리처드 메이휴. 두 사람을 둘러싼 살벌한 살인극과 활극, 미스터리가 한바탕 버무려져 읽는 재미가 솔솔하다. 

난 주로 이책을 지하철 출퇴근길에 읽었는데, 혹시 서울에도 지하도시가 존재하지 않을지, 을지로입구역엔 을지문덕 장군이 살고, 선릉역엔 성종 대왕이 버티고 있지 않을지 상상의 나래를 펴곤 했다.   

1996년에 이책의 원작인 셈인 BBC TV드라마가 있다는데 꼭 찾아 보고 싶다. 

                                                                        *별빛처럼

 2009.2.2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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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쓸한 사냥꾼 미야베 월드 (현대물)
미야베 미유키 지음, 권일영 옮김 / 북스피어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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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헌책방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아기자기한 소품 같은 미스터리 여섯 편이 담겨 있다. 이웃집 할아버지 같은 헌책방 주인 이와씨와 손자 미노루 콤비가 주인공이다.  

 역시 가장 눈길을 끄는 건 표제작인 마지막 작품 '쓸쓸한 사냥꾼'이다. <모방범>의 원형이라 불릴 정도로, 그 습작을 보는 듯 하다. 특히 이 작품에선 명탐정이 곧잘 등장하는 정통 미스터리물에서 사이코패스처럼 예측불가능한 현실사회를 반영한 사회파 미스터리로 넘어가는 과도기를 엿볼 수 있다. 미야베 미유키가 그 후자로 분류되는 상황에서 재밌는 대목이다.

작품에서 '쓸쓸한 사냥꾼'이란 미완성작품을 남겨두고 실종된 한 추리소설작가가 등장한다. 탐미적인 정통 미스터리물을 쓰지만 독자의 관심에서 멀어져가던 그는 연쇄살인이 등장하는 사회파 미스터리물을 시도한 것이다. 결말이 오리무중인 상황에서 자신은 그 결말을 알고 있다며 이 작품에 묘사된 그대로 살인을 따라하는 '모방범'이 등장한다. 

이 작품과 월간 판타스틱에도 실렸던 '유월은 이름뿐인 달' 정도를 제외하곤 끔찍한 살인사건보단 책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다양한 에피소드를 다루고 있다. 바로 정통 미스터리물를 향한 미야베 미유키의 '향수'다. 

                                                                                   *별빛처럼

2009년 2월 13일~15일 서울-대전간 왕복 열차 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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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너럴 루주의 개선 가이도 다케루의 메디컬 엔터테인먼트 3
가이도 다케루 지음, 권일영 옮김 / 예담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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립스틱을 칠한 듯 붉은 입술에 추파춥스를 빨고 있는 미남 의사. 책표지를 장식한 인물이 바로 제너럴 루주라 불리는 피투성이 장군 하야미 부장이다. 다구치-시라토리 시리즈의 배경이 되고 있는 도조대학병원 구명구급센터의 사령관. 바로 신들린 사나이다. 

 사건은 단순하다. 열악한 재정상태에서 구급센터를 지탱하고 있는 하야미 부장의 뇌물 스캔들. 병원은 발칵 뒤집히고 에식스 커미티, 즉 윤리위원회가 소집된다. 하지만 문제는 단순하지 않다. 다구치의 친구이자 정의로운 하야미 부장의 '부정'은 만년적자구조인 구급센터를 유지하기 위한 고육책이었던 것. 하지만 윤리위를 이끄는 이들은 이번 기회에 하야미 부장을 '제거'하기 위해 불을 켜고 이에 맞서 하야미를 지키려는 다구치-시라토리 콤비의 활약이 펼쳐진다. 

연이은 위원회 생중계여서 지루할 법 하지만 일본 병원과 의학계 현실을 여실히 보여주는 생생한 논쟁은 흡사 진중권 노회찬 같은 대표논객들끼리 맞붙은 100분 토론을 보는 듯해 짜릿하다. 무엇보다 대형재해사고에 임하는 구급센터 의사 간호사들의 눈물겨운 현장도 실감나게 접할 수 있다.  

전편인 나이팅게일의 침묵과 이란성 쌍둥이. 같은 시기에 동시에 벌어지는 사건으로, 분량 문제로 별개의 작품으로 나누었다고 한다. 그래서 일부 중복되는 내용도 있지만 꼭 2권을 동시에 읽기를 권한다. 다구치-시라토리 콤비 4탄이 어서 나오기를. 그리고 이 작품에서 처음 선보인 얼음공주 하메미야의 본격적인 활약이 기대되는 나전미궁도 기다려진다.   

                                                                        *별빛처럼

 2009.1.9-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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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팅게일의 침묵 가이도 다케루의 메디컬 엔터테인먼트 2
가이도 다케루 지음, 권일영 옮김 / 예담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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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감각. 노래를 들으며 영상을 떠올리는 청각과 시각의 결합. SF 소설의 신소재 가운데 하나인 공감각이 가장 합리적 분야인 '의학'과 버무려진다. 이 책에는 이런 능력(?)을 지닌 두 나이팅게일이 등장한다. 노래를 불러야하는 운명을 타고난 새 나이팅게일과 간호사를 상징하는 나이팅게일. 두 가지 의미가 교묘하게 결합돼 있다. 

 표면적으론 엽기적인 토막살해사건을 둘러싼 병원의 긴박한 상황이 전개된다. 하지만 일반 추리소설처럼 범인의 치밀한 트릭과 이를 파헤치는 형사 또는 공무원(?) 간의 두뇌싸움이 전부는 아니다. 사건이 일어남과 동시에 사실상 범인이 누군지 드러난다. 다만 이를 둘러싼 의사, 간호사, 환자, 경찰, 공무원 등 다양한 군상들이 저마다 다른 대응방식이 재미있게 묘사된다. 그리고 그 결정적 실마리는 '공감각'을 불러일으키는 한 간호사의 노래다. 

 전작인 바티스타 수술팀의 영광보다 긴박함을 떨어질 수 있지만, 주인공들의 심리묘사에 공이 많이 들어갔다는 느낌. 그리고 이 작품의 이란성 쌍둥이인 <제너럴 루주의 개선>의 장면 일부를 공유하는 묘미도 있다. 꼭 함께 읽어보도록. 

시라토리-다구치 콤비 두번째 작품. 

                                                                                 *별빛처럼

 2009.2.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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