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운대 - Haeunda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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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 밤 파도소리에 숨어 살포시 해변을 걷는 한쌍의 어색한 그림자. 한창 때 해운대에 얽힌 추억 하나쯤 간직하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첫키스처럼 설레고 애틋하게 다가오는 그 어렴풋한 속느낌 말이다.

맙소사! 그런 곳을 배경으로 만든 영화가 다른 장르도 아닌 재난 블록버스터라니. 행여 대한민국 연인들의 성소에 쓰나미 같은 영화가 되지 않을까 지레 겁먹을 필요는 없다.적어도 내가 보기엔 이 영화는 올 여름 최고의 '멜로영화'다. <해운대>라는 제목이 결코 아깝지 않은...

제 아무리 수억 달러를 쏟아부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라도, 재난 영화는 일단 휴머니즘을 앞세울 수밖에 없다. 모든 장면을 초특급 CG로 가득 채울 제작비가 없어서가 아니라, 그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한 필수 장치다. '지구온난화 시대' 난데없는 빙하기를 맞은 <투머로우>나 로또 확률보다 낮은 소행성과 충돌한 <딥 임팩트>, 시종일관 쓰나미 뺨치는 파도가 내리꽂히는 <퍼펙트 스톰>에도 '사람냄새'가 빠지지 않는다.

제 아무리 한국형 재난영화라도 이런 공식을 피해갈 순 없다. 아예 한술 더 뜬다. 하나도 모자라 세 쌍의 커플이 등장한다. 배우부터 쟁쟁하다. 설경구, 하지원, 박중훈, 엄정화에 신예 이민기, 강예원까지. 각각 떼어놓더라도 영화 세 편쯤 거뜬히 만들 만한 화려한 출연진이다. 영화 속에서 저마다 무게감도 대단해서 누가 주연인지 헷갈릴 정도다(요즘엔 출연시간 많다고 주인공은 아니지 않은가).

영화 도입부에 굳이 2004년 동남아 쓰나미를 장황하게 묘사하지 않더라도, 관객들은 이미 이 영화 끝트머리에 밀어닥칠 재난을 알고 있다. 그리고 제 아무리 사랑스런 연인들이 저마다 장밋빛 미래를 꿈꿀지라도 그들의 미래가 결코 '해피엔딩'이 아님은 초딩도 안다(그래서 12세 관람가 아닌가). 그럼에도 빠져들 수밖에 없는 건, 갑자기 부모를 잃는 엄청난 참극 앞에서도 해맑게 웃는 세살배기를 보며 느끼는 심정과 다르지 않다. 그래서 한없이 어설퍼 보이는 뻔한 러브 라인조차 더 애틋하고 아름다워 보이는 것이다.

119구조대 '얼짱' 이민기(최형식 역)와 삼수생 '퀸카' 강예원(김희미 역)의 '로미오 앤 줄리엣'도, 남은 건 딸자식 사랑밖에 없는 돌싱 커플 박중훈(김휘 역)과 엄정화(이유진 역)의 '미워도 다시 한번'도, 철없는 아들 딸린 '이혼남' 설경구(최만식 역)와 '송윤아' 빼닮은 하지원(강연희 역)의 '우리 결혼했어요' 극장판조차도, 뻔한 신파가 아닌 아름다운 '멜로'로 포장되는 것이다. 이게 바로 우리 영화계엔 낯선 재난 영화의 이점이자, <해운대>의 매력이기도 하다. 



제 아무리 CG가 훌륭했던들 이들의 러브 라인이 제대로 살아나지 않았다면, <해운대>는 그저 그렇고 그런, CG 빼면 별로 남는 게 없는 <디워> 같은 괴수 영화로 기억됐을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난 <해운대>에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고 싶다. 한때 젊은 연인이었거나 곧 그렇게 될 수많은 관객들이 해운대에서 건진 추억의 부스러기들 만큼은 거대한 쓰나미도 어쩔 수 없음을 분명히 보여줬으니까. 


                                                                                              *별빛처럼


(사진 출처: 영화 해운대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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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워
배명훈 지음 / 오멜라스(웅진)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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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과학소설? 날카로운 사회적 통찰? 이런 말의 성찬은 일단 좀 제껴 놓자. 이 소설은 그냥 재.밌.다. 재미란 걸 느끼는 지점이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적어도 책을 읽는 도중 지하철 목적지에 도착하는 게 아쉽고, 읽고 난 뒤엔 가슴 깊은 곳에 뭔가 한방 맞은 느낌을 받을 때 난 '재미'라고 한다.  

'타워'는 그런 소설이다. 바벨탑 같은 674층 빌딩 국가와 주인공 대신 '감정'을 전하는 로봇, 사막에 떨어진 사람도 찾아내는 위성기술을 등장시켜 과학소설 분위기를 살짝 풍기기도 하고 열반에 들려는 코끼리처럼 판타지적 요소도 버무렸지만 아주 그럴듯한 '뻥'이기에 억지스러움은 없다.  

한편으론 고급술병에 전자태그 붙여 권력 지도 그리기, 좌우파 뺨치는 수평주의-수직주의 이념 대결 등 사회 풍자적 요소가 짙지만, 가자지구 폭격을 연상시키는 빈스타워의 테러와의 전쟁, 용산사태처럼 엘리베이터 증설 진압 과정에서 죽는 철거민, 박연차 수사 같은 권력자의 정적 먼지 털기 수사, 시청 광장 앞에서 벌어지는 시위대와 경비대의 혈투 등 너무 직접적이서 지극히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소설 6편의 아쉬움을 달래주는 앙증맞은 소품 같은 4편의 부록까지, 소설가 박민규의 추천사처럼 굳이 100년 뒤를 기다리지 않더라도 내겐 충분히 고마운 소설이건만 안타깝게도 옥에 티는 있다. 바로 책 말미에 붙은 소설가 이인화의 서평이다.   

이인화에 대한 개인적 선입견 탓이라고 치부하고 싶다. 하지만 그러기엔 그 서평은 이 책과 너무 동떨어지고, 무엇보다 재.미.없.다.  

'날카롭고 불온하다'는 첫 화두는 그렇다 치자. '불온하다'는 평가도 조선일보가 하냐, 한겨레가 하냐에 따라 전혀 상반되게 들리기도 하니까. 하지만 적어도 '작품 소개'는 제대로 해야 하지 않을까? 사회비판소설을 쓰다가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권력의 '먼지 털이'가 두려워 자연주의로 전향한 작가 K의 이야기를 다룬 <자연예찬>. 이 시대 소설가라면 마땅히 뜨끔했을 이 작품에 대해 이인화는 이렇게 말한다. 

"<자연예찬>에서처럼 아무리 자본의 힘이 모든 것을 지배하는 세계에서도 우리 존재의 어머니인 가이아, 지구의 생태적 모성을 지키고 싶은 희망은 사라지지않는다." 

한마디로 뜬금없다. 결국 '먼지 털리기'를 각오하고 빈스토크 권력을 통렬하게 비판하는 것으로 작가 생명을 마감한 K의 모습은 그 어디에도 없다. 오히려 초고층빌딩에 갇혀 자연에 발을 디딜 수 조차 없으면서도 '자연예찬'을 강요받아야 했던 K의 모습만이 담겨있을 뿐이다. 아무래도 같은 소설가로서 이를 직설적으로 받아들이기가 힘겨웠을까? 

이 서평 만큼은 노무현 서거 뒤에 쓴 글인 모양이다.  

"대통령이 자살하는 나라에 사는 사람들은 자주 비통한 무감각 속에 왜 사는지 모르겠다고 푸념한다. 세상은 본래 어지럽고 비현실적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우리는 허구라는 안경을 쓰고 간신히 현실을 본다. 좀처럼 믿기지않는 거짓말에서 살아야 할 이유를 찾아내는 것이다."

백번 양보해 다른 작가 책 말미에 붙는 서평임을 감안하더라도, 이 대목에서 작가 K의 모습을 발견하기란 어렵지 않다. 현상만 볼 뿐 그 근저에 깔린 권력의 비정함은 애써 외면하는, 뭔가 있는 듯 적당히 얼버무리기. 거꾸로 배명훈 소설에선 날카롭게 드러냈던 그 '날 것' 말이다. 

그래서 이인화의 훈수 역시 마뜩치 않다. 

"배명훈의 흥미진진한 알레고리들은 앞으로 보다 따뜻해져서 현재의 날카로운 사회적 통찰과 함께 가승 뭉클한 인간적 감동으로 확대되어가리라 생각한다." 

불편했을 것이다. 누구보다 후배 작가의 날 것을 본 노회한 베스트셀러 작가의 시각에서 그 날카로움은 계속 닳고 닳아 '보다 따뜻해져서' 누구에게나 보편적으로 다가가는 작품이 나오길 바라는 게 현실적인 충고였을 것이다. 그게 작가란 직업인으로서 살아남는 이땅의 법칙이기에.  

그런 닳고닳은 베스트셀러보다는 이처럼 덜 다듬어진 날 것을 더 즐기는 걸 보니 난 너무 가학적이거나 어쩔 수 없는 '골수 수평주의자'인 모양이다.  

                                                                                        *별빛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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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렐라인 : 비밀의 문 - Coral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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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렐라인'은 아이들이 꿈꾸는 판타지 세계다. 보라, 외딴 곳에 있는 낡은 집에 이사왔건만 부모는 모두 제 할 일 하느라 코렐라인에겐 눈꼽만큼도 관심도 없다. 또래 친구라고 해봐야 해골을 뒤집어쓴 스토커 같은 말많은 꼬마에, 이웃들도 하나 같이 괴상하다. 집과 주변도 온통 회색빛깔이고 넓은 정원도 삭막하다.

코렐라인이 발견한 막힌 문은 탈출구다. 이 심심하고 따분하고 재미없는 세계에서 벗어나기 위한. 

소원은 기가 막히게 이뤄졌다. 상냥하고 사랑 넘치는 '딴 세상' 엄마 아빠에, 절로 침이 꼴깍 넘어가는 진수성찬, 윗집 꺾다리 아저씨의 새앙쥐 서커스, 아랫집 노파들의 공중그네타기, 여기에 '말없는' 착한 꼬마 친구까지. 집도 따뜻한 빛깔로 충만하고 화려한 정원은 눈이 휘둥그래진다.  

어떤 아이가 이 '딴 세상'의 유혹을 벗어날 수 있을까. 그래도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 딴세상 사람들은 모두 눈 대신 '단추'를 달고 있다. 뭔가 이상하다. 또 너무 친절하고 너무 사랑스러워 거북할 정도다. 이쯤 되면 어떤 '함정'이 도사리고 있을까 걱정될 수밖에. 

그랬다. 이 모든 세계가 코렐라인을 끌어들이려는 마녀의 음모였다. 검은고양이의 도움으로 이 비밀을 알게 된 코렐라인은 '딴 세상' 마녀의 마수에서 벗어나기 위해 내기를 걸게 되고, 그 과정에서 하나씩 허물어지는 판타지 세계를 목격한다. 제대로된 세상이라면 그렇게 상냥한 부모, 친절한 이웃들은 존재할 리 없는 것이다. 

닐 게이먼 특유의 딴 세상 넘나들기는 이 작품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이번엔 아이들의 머릿 속 판타지 세계다. 아이들은 정많은 부모와 따뜻한 저녁식사, 친절한 이웃들, 속깊은 또래친구를 꿈꾼다. 이미 수많은 동화책을 통해 경험한 착한 세계다. 하지만 현실은 냉정하다. 부모는 늘 일에 쫓기고, 이웃들은 서로 관심이 없다. 친구들도 다 제 잘난 맛이다. 그래서 늘 탈출을 꿈꾼다. 그게 영화 속 '딴 세상'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동화가 그렇듯 이 작품 역시 어른의 교훈으로 끝마치는 듯하다. 아무리 딴세상이 좋고 화려해도 진짜 부모, 진짜 이웃, 진짜 친구만 못하다고. 판타지는 판타지일 뿐이라고.   

다만 좀 더 적극적으로 해석한다면 이런 부모와 이웃들을 되돌아오게 만든 건 코렐라인의 힘이다. 즉 아이가 판타지를 깨고 자아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자기가 꿈꾸던 부모와 이웃들을 모습을 현실로 끄집어낸 것이다. 이 부분이 전형적인 동화 판타지와 달리 느껴진다. 

영화는 시종일관 화려한 볼거리로 눈을 즐겁게 해준다. 회색빛 현실과 대비된 화려한 딴세상의 모습은 '크리스마스 악몽'의 할로윈 마을과 대비된 크리스마스 마을을 떠올린다. '유령 신부'도 마찬가지다. 인간 세계는 회색빛인 반면 유령들의 세계는 화려하고 재미있다. 그리고 주인공은 하나같이 화려한 판타지세계를 꿈꾼다. 실제 사람도 그림도 아닌 살아 움직이는 인형이 주인공이란 점도 이런 판타지를 더 부추긴다. 

이래저래 '코렐라인'은 어린이들만 즐기기엔 아까운 영화다. 그런데 개봉한 지 얼마 됐다고 극장엔 오전 타임만 남은 걸까. 그것도 우리말 더빙만. 어른들에게도 제발 기회를 달라!

                                                                         *별빛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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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6-14 09: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님말이 맞아요. 어른들은 할일 이 넘 많고 아이들은 회색빛으로 돼버리고 ㅠㅠㅜ
 
인터월드 - 떠도는 우주기지의 전사들
닐 게이먼 외 지음, 이원형 옮김 / 지양어린이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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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더스트'에선 월을 넘어 마법의 세계로, '네버웨어'에선 땅을 뚫고 지하 세계로, '신들의 전쟁(원제: 미국의 신)'에선 신의 세계로 넘나들었던 닐 게이먼이 이번에 인비트윈을 넘어 다차원 우주로 뛰어들었다.  

사실 '인터월드'는 이들과 비교해 치밀해 보이진 않는다. '청소년용'이란 딱지를 애써 붙인다면 모를까. 닐 게이먼 특유의 상상력으로 복잡해 보이는 다차원 우주와 마법과 과학이 경쟁하는 흥미로운 세계를 창조해 SF 분위기를 풍기지만, 이야기 뼈대는 평범한 청소년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전형적인 성장소설 내지 모험소설이다.  

주인공 조이 하커는 현실세계에선 '길치'다. 그러나 다차원 우주를 자유자재로 넘나들 수 있는 워킹 능력을 지닌 뛰어난 워커다. 다차원 우주엔 우리 지구와 비슷한 수천 수만, 아니 수조개에 이르는 또다른 지구가 존재하고, 각각 다른 지구에 또다른 조이 하커가 존재한다. 워킹 능력을 지닌 수많은 조이 워커가 모인 게릴라 조직이 바로 인터월드다. 

이 세계엔 마법을 앞세운 헥스제국과 과학을 앞세운 바이너리제국이 존재하고 서로 세계를 차지하기 위해 경쟁한다. 그리고 다차원 세계를 넘나들며 세계를 지배하려면 워킹 능력이 필요하고 그 능력을 흡수하기 위해 워커들을 잡으려고 혈안이 돼 있다.

 여기에 남보다 뛰어난 워킹 능력을 지난 조이 하커가 끼어든다. 역시 두 제국은 서로 조이 하커를 차지하려고 혈안이고, 다행히 인터월드의 베테랑 워커, 제이가 먼저 조이 하커를 구해낸다. 우여곡절 끝에 조이 하커는 워커가 되는 훈련을 받고 동료들의 오해와 냉대를 뚫고 최고의 대원으로 성장하고 온갖 역경을 이겨내고 적을 물리친다는 이야기다. 

저자들도 밝혔듯 작품 자체는 치밀한 소설보다는 TV시리즈물을 위한 상세한 시놉시스를 연상시킨다. 물론 자체로 완결성은 갖추고 있지만, 적은 완전히 소멸되지 않았고 조이 하커도 아직 완전하지 않다. 다음 작품들을 위한 가능성을 확실히 열어둔 셈이다. 안타깝게도 아직 영상물로 만들 계획은 없는 듯 하다. 극장판 영화감으로 좀 부족하겠지만 TV시리즈나 애니메이션 시리즈로는 꽤 흥미있는 그릇이 될 듯 하다. '인터월드-떠도는 우주기지의 전사들'에 이은 후속편을 기대해 본다. 
 

                                                                              *별빛처럼 

2009.6.5-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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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더 - Moth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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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암동에 있는 한 복합상영관을 찾았습니다. 인터넷에 스포일러가 마구 쏟아지는 영화 <마더>를 가급적 서둘러 닦아 치울 작정이었죠. 평일 오전 11시. 당연히 텅 비었을 거란 예상은 보기좋게 빗나갔습니다. 200여 석 되는 객석 절반 가까이 찼고, 더 놀라운 건 그 대부분이 50~60대 어머니, 할머니 관객들이란 점이었습니다.

<워낭소리> 붐이 한창 불 때 오랜만에 부모님을 모시고 극장을 찾은 적 있지만, 20~30대 소굴인 대형 복합상영관에서 만난 아줌마·할머니 부대는 신선했습니다.  

"애인과 함께 보시는 분이라면..."이란 극장 광고가 무안할 정도로, 제 주변은 어머님들에 둘러싸였습니다. 친목모임에서 단체관람을 오신 듯한 할머니들도 계시고, 바로 제 옆자리에선 50대 어머님 두 분이 2시간 내내 소곤소곤 담소를 나누며 영화를 보셨습니다.  

그랬습니다. 영화 <마더>는 미스터리 스릴러물이란 장르 요소만 빼면, 바로 우리 어머니들의 영화였습니다. 살인 혐의로 감옥에 간 아들의 결백을 입증하려 사방팔방 뛰어다니는 어머니, 심지어 피살자의 장례식장에 뛰어들어 유족들에게 몰매를 맞을지언정 자식을 포기하지않으려는 어머니, 바로 자식 걱정이 주름 잘 날 없는 우리 어머니들의 모습이었습니다.  

"어떡해, 어떡해, 저런 상황에서 밥이 넘어 가겠어?"  
"으이그, 공무원들이 왜 저 모양이야?"

극장 어머님들도 완전 감정이입. 김혜자의 명연기에 몰입해, 장면장면마다 혀를 끌끌 차며 안타까움을 있는 그대로 발산합니다. 이렇다할 증거도 없이 아들(원빈)을 살인자로 모는 경찰들의 모습에 입팔매를 던집니다. 기껏해야 감탄사 정도만 나오는 평소 극장 분위기와는 사뭇 다릅니다.

영화도 시종 어머니의 얼굴을 클로즈업 합니다. 때론 광기어린 듯한, 때론 모든 걸 체념한 듯한 김혜자의 모습에서 우리 어머님들은 자신의 과거 모습을 비쳐보는지도 모릅니다. 급기야 탐정이나 형사 뺨치게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는 모습에선, 트럭에 깔린 자식을 구하기 위해 초인적인 힘을 발휘했다는 어머니들의 일화를 떠올립니다.

<마더>가 어머님들을 끌어모으는 힘은 결국 엄청난 반전보다는, 어머님들의 동감을 끌어내는 봉준호 감독의 연출력에 있는 듯 합니다.  

극장에 중년 관객을 끌어들이면 대박이라는데, 노년층까지 끌어들인 미성년관람불가 <마더>의 흥행 조짐이 심상치 않아 보입니다.  

                                                                                 *별빛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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