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休
반지인 지음 / 마음길(도서출판마음길,마음길어린이) / 200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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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볕에 바싹 마른 침대 커버를 씌웠다.

샤워를 하고 양치질을 하고 선풍기 바람을 과감히 '약풍'으로 돌린 뒤 이 책에 같이 끼워서 온 음악을 틀었다. 음악을 틈과 동시에 책을 꺼내들려 했다. 그러나 들려오는 음악에 난 새로 씌운 침대 커버 위로 벌러덩 누웠다.

폭신했다. 그리고 음악은 푸근했다. 누런 벽지로 쌓인 천장을 푸른 하늘이라 생각했다. 몽롱해졌다. 음악은 감미롭고 몸은 푹신하고 기분은 상쾌했다. 바깥의 따가운 햇살이 그려지는게 아니라 무한한 푸르른 하늘이 펼쳐졌다. '행복해'라는 말이 저절로 튀어 나왔다.

그리곤 이 분위기에 어울리는건 현재 읽고 있는 '아리랑'이 아닌 '조선 선비 살해 사건'이 아닌 더군다나 '요셉과 그 형제들'이 아닌 '그리고 休'라는 결론을 내렸다. 이 책만이 지금의 분위기에 날개를 달아줄 것 같았다.

나는 훨훨 날았다. 그리곤 너무 행복해 스르르 밀려드는 잠속으로 빠졌다. 수많은 꿈을 꾼듯했다. 그러나 내가 잔 시간은 고작 10분 남짓이였다. 너무 달콤했다. 배가 고팠다. 저녁을 챙겨 먹고 다시 음악을 틀고 책을 펼쳤다.

하늘을 날았던 기억, 꿈속의 추억이 밀려 들었다.

 

소박한 사진과 소소한 웅얼댐이 현재의 나를 행복하게 해주었다.

그녀는 먼 곳이 아닌 가까운 곳에서 현재를 만끽하고 있었다.

분명 그녀가 지나쳐온 과거, 바라보는 미래가 있었는데 난 왜 그녀가 현재 행복하다고 느낀 것일까...

그리고 난 왜 그녀의 행복을 닮아가는 걸까...

그녀의 웅얼댐이 편안했고 또한 궁상맞기 까지 했지만 그래도 그녀의 행복이 내게도 전달되었다.

그녀의 글에 그녀의 사진속에 그리고 흐르는 음악속에 무조건 파묻힌게 아닌 적당한 거리를 유지한채.

그녀는 그녀의 소박함을 얘기했고 나는 나의 소소함을 누렸다.

그녀의 전부를 흡수하는 것이 아닌 그녀의 자유로움 속에서 나도 나만의 자유를 꿈꾸고 있었다. 눈으로 그녀의 글을 좇으며 그녀의 사진을 느끼며 머리속으로 그녀의 글과 나의 상상이 뒤죽 박죽 섞여 감에도 나는 내 생각을 많이 하였다.

종국에는 그녀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모를 정도로 나는 나의 세계에 깊이 빠졌다. 그러나 그건 글을 읽으면서 이해할 수 있는게 아니였다. 그녀의 글과 의도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느낌으로 다가와 주었다.

그런 전달을 해주는건 나 자신이였다.

그녀의 세계 속에서 끊임없이 생각하게 되던 나 자신 말이다.

오랜만에 진실된 모습으로 만나는 나는 무척 반가웠고 죄책감이 들지 않았다. 늘 내 자신을 타박하고 용서하지 못하는 내가 아닌 있는 그대로의 순수한 나를 만날 수 있었다.

 

그런 나와의 만남은 그녀의 사진, 그리고 그녀의 글 - 비록 내 마음 깊이 와닿도록 꼼꼼히 읽지 못하더라도-의 영향도 컸지만 음악의 깊이는 한결 감미롭게 다가와 주었다.

책을 보며 사색할 수 있었던 것, 그리고 내면 깊숙한 곳의 나를 만날 수 있게 해주었던건 음악이였다.

어떤 음악은 독서를 방해하지만 어떤 음악은 독서와 조화를 이룬 후 깊은 사색으로 이끈다.

힐링음악이라고 하는 첨부되어 있던 음반은 내게 후자의 역할을 해주었다. 무언가를 치유하고 회복시킨다는 힐링 음악...

분명 '그리고 休'와 함께 내면의 나를 회복하고 치유해 주었다.

달뜬 감정이 아닌 차분한 만족감을 느끼는 나를 만나는 것은 실로 너무 오랜만이므로.. 확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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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랑 4 - 양장본 조정래 대하소설
조정래 지음 / 해냄 / 200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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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랑을 읽으면서 자꾸 태백산맥이 생각났다.

태백산맥보다 더 끈적거리고 진득한 그 느낌.. 그건 바로 한이였다.

한이 서린다는건 분명 이런 느낌일테다. 태백산맥은 민족간의 대립에서 오는 한이기에 깊은 슬픔을 갖고 있다면 아리랑은 일본의 식민지라는 데서 오는 서러움이 짙다. 그 서러움과 한의 대상이 개개인인것이 너무나 안쓰럽다.

나라를 잃어버렸으니 당연히 따라오는 것이라고 생각할지 몰라도 늘 나라와 나라가 아닌 나와 지배국간의 맞섬으로 시작된다.

야금 야금 먹혀가는 것이 호남평야가 아닌 국토가 아닌 백성들의 혼과 넋이 먹히고 있었다. 아무리 발버둥 쳐봐도 그들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없음에도 주눅이 들거나 숨죽이는게 아닌 목숨을 내 놓고 저항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의 노고를 잊어 버리고 싶지 않다. 그들의 저항이 자기의 것을 빼앗음에도 시작 됐다 해도 그들의 울분을 잊어 버리고 싶지 않다.

 

그러나 반면 나와 지배국의 맞대응에서 지배국, 혹은 그 나라의 개인에게 흡수되고 기꺼이 봉사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 시류를 타고 한 몫 챙기려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아무 생각 없는 사람들, 또 저항에서 더 큰 뜻을 품고 국내에서 만주에서 독립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송수익과 같은 사람, 그리고 그를 따라 나서는 사람 그리고 우리가 알지 못하는 수 많은 사람....

그리고 4권에서 내내 비치지 않다 마지막 즈음에 나타난 하와이 농장으로 팔려간 이주 노동자들....

저자의 그 큰 스케일과 구성과 엮음 속에 머리가 아찔해진다.

그러면서 만약 내가 그 시대에 살고 있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자주 든다. 둘중의 하나라고 생각된다. 한번의 저항으로 목숨을 잃든지 아니면 숨죽여 살든지... 나의 생각은 극을 달리고 있다.

그러나 그런 상상은 겁이 난다. 자유를 갖었음에도 몹시 답답해 하는 나인데 그런 자유를 가지지 못한다면 나는 어떻게 될까...

정신을 놓아 버릴 것 같다.

그래서 어찌 되었던 현실을 잘 꾸려낸 그들이 용감하다 생각된다.

그들이 그렇게 느끼고 있지 못하더라도 그들을 바라보는 나는 그런 생각이 든다. 100% 순순한 눈길이 아니였다고 하더라도.

 

어느 나라든 마찬가지 였겠지만 일본인들의 철두철미함 그리고 잔인함에 한없이 서글퍼진다. 왜 탐내는 것일까... 왜 만족하지 못하는 것일까.. 과연 그걸 해탈한 이들이 얼마나 될 것인가...

내가 할 수 있는건 지켜보는 것 뿐이였다.

그들이 어떻게 하든지 그리고 우리의 백성들이 어떻게 당하는지..

그렇게 1913년은 흘러가고 있었다.

일본에게 해방이 되려면 아직도 멀었는데 그 세월을 지켜봐야 하는 나로써는 괴롭고 우울해진다.

그러나 그 시대를 살아온 이들이 있다.

그 아픔을 아직 치유하지 못하는 이들이 있다.

지켜보는 것쯤이야.... 충분히 해 낼 수 있다.

어떤 것들이 내 안에서 튀어 나올지 모른다 해도 난 충분히 견뎌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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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죽음 - 전2권
김진명 지음 / 대산출판사 / 200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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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만나보는 김진명의 소설이였다.

늘 지난 작품을 읽어서인지 읽는 내내 시류를 제대로 만나지 못하고 있다는 이질감이 느껴졌는데 발간된지 조금 지나긴 했지만 비교적 신간이라서 그런지 시류를 제대로 타고 있었다.

그러나 내가 문외한인 정치,역사 그리고 복잡미묘한 국제 문제들이라 뚜렷한 주관을 내세울 수는 없었다.

아는것이 있어야 풀어놓을 재간이 있고 의견을 피력할 수 있을 터인데 무엇하나 뚜렷이 말할 수 있는게 없었다.

 

김일성의 죽음을 둘러싼 동북공정의 진행적인 음모....

현무첩을 통해 고구려 역사를 파헤치고 그 역사를 지키려는 측과 부정하려는 측의 갈등은 여전히 뜨겁게 씌여져 있었다.

현무첩의 의미를 풀어내고 그것이 갖는 의미를 알았음에도 또한 그것이 주류였음에도 무언가를 시원히 뒤집어줄 것 같았으나 끝은 허무했다. 동북공정의 음모처럼 뒤집기는 여전해 현재진행형인 걸까..

김정일의 욕과 뒤섞인 거친 발언에 지금껏 이끌어온 소설의 진행이 무너져 버렸다. 그렇게 끝낼 것이라면 좀 더 일찍 민서가 김정일에게 전화를 걸어 희생을 막을 것이지 그리고 그런 음모를 진즉 꺽을 것이지 허무하고 허탈했다.

또한 3명만 알면 우리나라 사람을 어찌 어찌 다 알게 된다는 말처럼 민서는 충실했다.

지미 카터를 비롯해 김정일, 중국의 거물들까지 민서는 손만 뻗으면 만날 수 있었다. 민서 같은 역할 자가 있어야 소설이 흘러가겠지만 자연스럽고 매끄러움이 부족했던건 사실이다.

분명 읽는 동안 푹 빠져서 정신을 못 차릴 정도로 순식간에 읽었음에도 아쉬운 부분이 많이 보였다. 푹 빠지면 헛점이 많이 보이지 않는 법인데 아이러니 했다. 읽기와 즐거움은 따로 따로인 듯 그렇게 흘러간 소설이였다.

그러나 결코 호락 호락하지 않는 숙제 꺼리를 만들어 놓고 갔다. 나 혼자서 풀 수 없는 그리고 결코 나 혼자서 해결할 수 없는 숙제들 말이다.

남과 북 그리고 미국을 떠나서 중국과 일본과의 정치적 지리적 관계... 이모든 것들을 어떻게 우호적으로 풀 수 있단 말인가...

분명 남과 북은 한민족이라 이렇게 갈라져 있음에도 끈끈한 무엇인가가 응집되어 있어 북한이 어려움을 당했을때 당연 우리에게 손을 뻗을 줄 알았는데 중국에게 먼저 손을 뻗칠거라는 가정은 충격이였다. 이미 그렇게 드러나 있어 가정이 아님에도 그리고 우리와는 단절 되었어도 중국과는 늘 교류를 해왔다는 사실을 앎에도 인정하기 싫었다.

그렇기에 중국의 북한 흡수라는 가설을 이끌어 낼 수 있었겠지만 그렇게 되지 말아야 한다며 광개토대왕을 그 시대를 상기 시키려 하지만 그 앞에 우리는 너무 초라하다. 그리고 너무 나약하다.

 

충동적인 애국심은 이제 솟아 오르지 않지만 이런 씁쓸함의 여운은 오래간다. 소설이라는 허울을 다 잊더라도 남게 되는 진실 앞에서 나는 어쩔 수 없음을 느낀다.

성경에 그런 구절이 있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니.

그러나 그 진리는 스스로 내게 오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자유도 어디서 날아오는게 아닐 것이다.

그 진리의 자유는 기다리되 멈춤은 안될 것이다.

그리하지 아니하면 우리의 자유는 영영 잃어 버리고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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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병호의 초콜릿
공병호 지음, 오금택 그림 / 21세기북스 / 200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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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에 대한 잠언집이라는 말이 딱 들어맞는 표현이겠다.

애니메이션과 함께한 짤막한 글 중에서 그 모든걸 수용하고 기억할 수는 없지만 스쳐 버리기엔 편치않은 구절들이 많았다.

그 구절들을 구분하고 옮겨 적는건 그 느낌을 깨어버릴 것이다. 그래서 잠시 내게 와 닿는 구절들은 묵상을 했다.

떠오르는 생각들, 나를 돌아보는 시간들,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공상까지 잠깐의 묵상으로 내 안에 담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한참 꿈을 품을 때는 내 안에 담을 수 있는게 무한했고 내 손에 잡힐 것 같은 환희에 차곤 했었는데 현재의 나는 참 작아졌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담고 있어도 내 안에서 거부 반응을 일으키는 것들이 허다했고 자꾸만 내게서 멀어져 가는 꿈들을 손에서 놓을 수 밖에 없었다.

왜 나는 이렇게 멀어져 버렸는가.

성공이라는 거창함이 아니더라도 무언가에서 굉장히 멀어진 느낌이였다. 그건 바로 나 자신이였다. 이 책에 등장하는 수많은 사람들은 자신과의 대화 그리고 자신을 철저히 알아갔다.

그리고 무척 소중하게 여겼던 것이다.

 

자꾸 과거지향적이 되어 버리는 내게 끊어버리지 못하면 절대 헤어나올 수 없다는 그림을 보면서도 나는 과거의 나만 생각했다.

그래서 책을 덮고 잠시 생각해 보았다.

나에겐 더이상 가능성이 없는 것인가...

답은 생각보다 빨리 나왔다. 나는 아직 젊다는 것!

그것 하나 만으로도 용기가 솟았다.

그리고 내가 진정 하고 싶은게 무엇일까... 라는 질문을 던졌다.

좀 저 생각해 봐야 할 것 같다.

아직 이 나이를 퍼먹도록 그것 하나 모르고 있는 내게 난 좀 더 생각해 봐야 할 것 같다고 말하고 있었다.

이렇게 이 짧은 상념들은 나를 돌아보게 하는 시간이 많았고 컸다.

나를 제대로 알아야 겠다라는 다짐속에서 이루어진 짤막한 묵상들은 점점 나를 행해가는 지름길이 되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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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레이드 오늘의 일본문학 1
요시다 슈이치 지음, 권남희 옮김 / 은행나무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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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하면서도 독특한 그들, 평범한것 같으면서도 범상치 않은 그들을 쉽게 얘기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 그들의 이야기는 편안하게 시작 되었다. 그래서 부담없이 읽어 나갔는데 끝을 향해 갈수록 무거워 지는 우울함은 떼어버릴 수가 없었다. 상대방의 눈에 비춰지는 나는 나름 특징있고 삶에 목적이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내 눈에 비춰지는 나의 모습은 그야말로 너무 적나라해서 순수하게 상대방의 의식만을 인정할 수는 없었다.

그런 고백적 퍼레이드가 짙어 갈수록 그들의 내면을 알아가면 알아 갈수록 그래서 종반부에 내게 던져진 우울을 종잡을 수 없었는지도 모른다. 다섯명의 동거인들의 퍼레이드 배치도 소설에서 나름 영향을 미쳤기에 뒤에 배치된 인물들에 대한 반전이 충격적이 였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 충격적인 인물은 가장 마지막에 나왔던 나오키였다.

사토루에서부터 이상한 기미가 흐르더니 나오키는 그런 기류를 확실히 그리고 은밀히 타버린 인물이였다. 혼자 다니는 여성들의 얼굴을 처참히 뭉게 버리는 범인의 주인공이였으니까.

그것도 조깅을 하면서 태연히.

사토루의 자칭 밤일, 마약 복용, 주거침입도 결코 가벼워 보이지는 않았으나 나오키의 행동은 충격적이였다. 요스케, 고토미, 미라이의 생활도 그리 착실하다라고 칭친할만 것이 못되나 라스트의 묘미를 채우듯 그리고 한편의 영화를 찍듯 태연히 자행되는 나오키의 범죄는 이해하고 싶지 않았다.

다섯명의 동거인을 모두 이해한다고 그리고 이해할 수 있다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드러난 그들의 모습앞에 철저한 방어막을 보고 말았다. 좁은 맨션에서 무려 다섯명이 북적거리며 사니까 싸울일도 많고 한편으로는 고뇌를 나누며-심각한 고뇌가 그들에게서 발견되지 않았지만- 미운정 고운정 서로 얹어주며 살 것 같지만 그들은 단지 한 공간안에 있을 뿐이였다.

그들 자신 스스로가 공간이 되어 이동할뿐 같은 영역이 되지 않는 그래서 언제 어디서 사라지든 형성되든 늘 마찬가지인 그런 마주침이였다.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으면서-사토루의 비디오 사건만 빼면-각자의 삶을 구축해 가면서 펼쳐지는 그들의 모습은 내가 보기엔 그랬다.

 

그런 그들의 퍼레이드는 자신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연결이 되었다. 어찌 되었든 한 맨션에 살고 있으니 빠질래야 빠질수가 없는 노릇이니까.

그런 묘미가 한층 재미를 더해 주었고 아무리 들여다봐도 대책 없고 생각없는 그들의 유별난 동거가 또 다른 삶일 수도 있겠구나 라는 생각을 갖게 했지만 결코 쉬이 넘겨 버릴 수 있는 문제만은 아니였다. 그들은 하나같이 자아를 잃어 버린 젊은이들이였다.

공부를 하든 연애를 하든 일을 하든 그들의 고백 속에서도 그들의 자아를 만나고 있다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즉흥적이고 무관심하고 나른한 그들을 하나의 개체로 볼 수 있을까.

'인간 군상이로구나' 라며 쉽게 물리쳐 버릴 수도 있는 문제를 왜 또 나는 진부하게 꺼내는 걸까 라는 의문이 생기지만 분명 현재의 모습을 담고 있었다.

각각의 모양 중에서 그저 이런 모양을 추렸을 뿐이라고 - 어떻게 보면 그들에게 이런 모양이라고 말할 수 있는 공통점은 없지만-말할수도 있겠지만 그냥은 웃고 넘어갈 수 만은 없을 것이다.

그냥 유쾌하게 읽고 지나가는게 나의 바램이지만 밀려드는 생각 또한 나도 이렇게 고백하지 않을 수가 없다.

 

범죄로 인해 범죄자라는 틀만 기억하는 나오키, 다소 위험요소가 있다라고 경계하는 사토루, 미친듯이 술만 마셔대는 미라이, 온통 연애에만 빠진 고토, 어리 버리하면서 선배의 애인을 좋아하는 대학생 요스케....

그들의 애기를 어느 정도 들었음에도 나는 그들을 어느 정도 안다고 말할 자신이 없다. 그들은 오늘도 그들 나름 대로의 퍼레이드를 이어갈 것이고 난 그들의 삶의 일부분만 보았을 뿐이니까.

그리고 나의 퍼레이드 속에서 빠져 나오고 있지 못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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