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지배자
크리스토프 바타이유 지음, 김정란 옮김 / 문학동네 / 199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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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토프 바타이유의 처녀작 '다다를 수 없는 나라'가 너무 강렬해 이 작가의 책을 검색해 보았지만 '시간의 지배자'와 '지옥만세'밖에 없었다. 지옥만세를 읽고 또 다른 변신에 감탄사를 던졌는데 우리 나라에 번역된 마지막 책 '시간의 지배자'를 마주하고는 아쉬움이 앞섰다.

한 작가의 여러 작품을 읽는다는건 흔한 것 같으면서도 흔치 않은데 번역된 책이 없어 읽지 못한다는 건 흔치 않음을 떠나 안타까움이 앞선다.

그래서 진즉 사놓고도 읽기가 아쉬워 오랫동안 읽지 않았는데 단 하루만에 다 읽어 버렸다.

 

밤마다 218개의 시계를 찾아 다니면서 시계를 고치는 시계공.. 그 환상의 공간속에서의 시계공과 그 주변의 이야기는 저자의 독특한 상상력을 이번에도 여실히 보여 주었다.

전작에서 보여 주었던 언어의 마술, 절제, 그리고 글쓰기가 철저히 계산적이라다라는 옮긴이의 말을 굳이 빌지 않더라고 이 모든 것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시계공이라는 의미보다 제목처럼 시간의 지배자, 시간의 달인이라는 의미가 더 가까운 이들은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단순히 시간을 맞춘다라는 의미만으로 결정 지을 수 없을 것이다.

직업의 특성상 밤에 일하는 이들은(제르당->주제페->아르투로 옮겨간다) 밤의 지배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왕궁을 누비며 시계가 있는 곳이면 어디든지 찾아가고 하루에 한번 꼬박 꼬박 해야 하는 일은 지치고 의미없어 보이면서도 왕궁에 작은 생기를 불어 넣어 주는 것이다. 특히 아르투로와 공작의 이런 밤의 나들이는 그들이 정말 시간을 찾으려고 하는 진지한 행위로 보였다. 아르투로는 자기의 일을 성실하게 했고 공작과의 밤 나들이에서 충분히 많은 교감을 나누었음에도 후일 태어난 아루투로의 딸 로도이프스까를 범하고 삶의 종지부를 찍어준 일은 공작 다우면서도 끔찍했다.

아르투로의 결혼이 그에게 밤 나들이의 흥분과 묘한 감정을 뺏앗아 갔지만 진정 그렇게 쉽게 공작과 우리들은 로도이프스까를 잊어 버릴 수 있단 말인가..

아르투로는 그렇게 고치던 시간과 삶을 잃어버렸다.

공작에게는 원래 시간과 삶이라는 것이 무의미하고 진부할 뿐이였지만 아르투로는 소중했다. 공작이 쉽게 놓아버리는 것들이...

딸의 죽음 이후 성으로 돌아오지 않았던 아르투로를 두고 부인 헬렌은 몇년 후 사내아이를 낳는다. 헬렌은 성에 잘 적응했고 어울리는 인물이였다. 세탁을 하는 그녀의 직업에서 아르투로를 만나 묘한 신분상승을 통해그녀는 그렇게 성에 흡수되어 버린다. 마치 고쳐지지 않는 시계처럼 당연한 듯이...

 

저자는 이 모든 이야기에 분명 철저한 냉정과 여백을 두고 있음에도 그 여백은 전작처럼 그렇게 백지가 아니다. 끊임없이 머릿속에 그려지는 상상과 감정들의 멈춤을 형식을 빌어 마치 없는 것처럼 보일뿐 그의 여백 가운데는 끊임없이 생각과 느낌들이 솟아난다.

환상의 세계를 말하고는 있지마 상처는 생생이 느껴지는 일관성이, 더 깊은 블랙홀 속으로 빠져들게 하는지도 모르겠다.

21살엔 '이방인'이후의 최대의 처녀작으라 불리우던 '다다를 수 없는 나라'를 쓰고 25살엔 이 작품을 썼다. 그러나 이런 결과가 결코 쉽게 이루어진 것은 아닐 것이다. 천재는 만들어 진다라는 말처럼.. 저자도 자신을 하루 하루 만들어가 이런 작품을 쓰지 않았나 싶다.

그렇기에 더더욱 다른 작품을 읽어보고 싶은 욕구가 강하다.

다음 작품을 기대할 수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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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유전자 1 뫼비우스 서재
마이클 코디 지음, 오현수 옮김 / 노블마인 / 200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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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이벤트 응모할때 만약 신의 유전자를 지녀서 예수와 같은 능력을 갖게 된다면 어떤 일을 하고 싶냐는 질문에 쉽게 답을 하지 못했다.

정말 예수와 같은 능력이라면 도대체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 구원의 길을 더 넓혀서 많은 기회를 주겠다고 했다. 많은 사람들의 의견중에서 정답이 나왔다. 이 책에서는 신의 유전자로 병을 고쳤다. 주는게 더 행복하다는 진리와 함께...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로 왓다는 주님...받는 것보다 주는 것이 더 행복하다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힘입어 신의 유전자는 불치병을 고친것이다.

 

예수가 재림할 것이라는 나사로의 예언을 발견한 형제단은 자기네들 사명에 거슬리는 일을 하고 있다고 믿는 의사 톰을 죽이려다 톰의 부인을 죽이고 만다. 부인인 올리비아가 살아있더라도 뇌종양으로 얼마 살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과 유전이라는 걸 알기에 자신이 딸 홀리의 유전자를 검사하니 홀리도 곧 뇌종양으로 목숨을 잃을 위기다.

톰은 딸을 살리기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닌다. 그러다 예수의 유전자를 지닌사람을 찾기 위해 교주 에스겔은 톰과 거래를 하고 2천년전의 예수의 치아를 통해 불치병을 치료할 수 있는 유전자를 추출하고 에스겔의 찾는 신의 유전자를 지닌 사람을 발견하지만 그는 바로 톰의 암살범이자 종교집단의 살인마라 불리우는 네메시스, 마리아이다.

마리아는 살인죄가 밝혀져 사형이 선고되고 톰은 신의 유전자를 직접 주입해야 낫는 것이 아닌 주입한 사람이 다른 사람들을 고칠 수 있다는 것을 발견하다. 마리아는 독약 주입 방식의 사형에서 자신이 죽더라도 부활할 것이라 믿고 톰은 남은 유전자 샘플을 두고 세계의 존경받는 사람들을 뽑아 주입한다. 형제단의 본부를 습격해 에스겔 일행과 마리아의 시신을 없애지만 책의 말미에서는 마리아가 분명 불에 탔음에도 시신은 사라진다. 우리에겐 아직 남은 질문이 있다. 마리아는 과연 어디로 간걸까..

 

줄거리를 대충 훑터 보더라도 소설이지만 왠지 거리감이 느껴진다.

그러니깐 소설이 아니겠느냐고 말할지는 몰라도 책 속으로의 스며듬이 얕았다. 그리고 책 속에서 홀리가 '라이온킹'을 봤다고 하는 장면에서 이 책이 나온지 좀 됐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게 거리감을 더 넓혀주었는지도 모르겠다.

과학책은 최신것을 읽고 문학은 고전을 읽으라는 말이 있는데 최신을 요구하는 과학부분이 약 10년이나 됐으니(책의 내용이 현재와는 거리가 멀다 해도...) 이렇게 느끼는 것도 무리가 아닌가 싶다.

여튼 아쉬움이 남는건 제대로 뒤집기를 못해준 것이다.

예수의 재림을 기다리고 그 사실을 믿는 무리가 제대로 된 신념을 가진 집단이 아니라는 것과 신의 유전자를 체취할 수 있다는 것... 그러나 상대방이 치료해 줄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마리아의 행방이 이런 헛점으로 작용했는지도 모르겠다.

신의 유전자를 가졌다고 해도 어찌 한 인간이 인간을 두고 살릴지 말지를 결정할 수 있단 말인가. 전 세계에 10명 남짓 하는 사람들에게 주입시켜 다른 사람들을 살린다 해도 예수를 부인해 지옥을 가는 것과 그 사람들을 만나지 못해 죽는것과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읽기는 그럭 저럭 재미나게 읽었음에도 이렇게 투덜 거리고 있다.

이런 사실부터가 아이러니일까..

소설을 소설로 받아들이지 않는 상태에서 밝혀내는 헛점들이?

그래서 소설이지만 삶과의 연관성이 부족하다고 푸념하는 지도 모르겠다. 그 연관성이라는 걸 제대로 파악하지도 못한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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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스케치
장 자끄 상뻬 글 그림, 정장진 옮김 / 열린책들 / 199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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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에 이끌려 '사치와 평온과 쾌락'을 읽은 적이 있다.

스케치를 참 꼼꼼하게 그리고 사실적으로 그린다는 생각을 했지만 그 뒤로 상뻬의 책을 읽을 기회는 자주 없었다. 이 책이 상뻬의 두번째 책이다.

아는 언니의 생일 선물로 주려고 샀다가 궁금해서 들추다 보니 순식간에 읽어 버렸다.(스케치도 있으니 무조건 읽어다라는 표현은 단순하군..)

프랑스인으로 보게 된 뉴욕의 모습을 표현한 책인데 왠지 뉴욕을 가보지 않았음에도 뉴욕답다라는 감탄사가 나온다.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의 사고 방식도...

상뻬는 이런 뉴욕과 뉴욕커들을 이해를 해 버렸다고 했는데 그의 글과 그림에서 상뻬가 말한 것처럼 비난이 아니라는게 느껴진다.

창조적인 일을 하려는 사람들, 늘 긍정적이고 약간의 과장이 베어 나오고 뉴욕에 물들어 가는 이들을 보고 있자니 왠지 나도 단순해지는 느낌이였다. 복잡한 뉴욕에서 왜 난 그런 생각을 하게 된걸까....

분명 상뻬의 글만으로는 이런 감정을 쉽게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그의 스케치가 있기에 가능했다. 글이 있음에도 글의 상상력을 훨씬 더해주는 그의 스케치는 낯선 뉴욕을 그림에도 저자처럼 그들을 이해해 버리는 마력이 있었다. 어느날 꿈에서 보았던 뉴욕의 어두운 거리의 면묘가 아닌 지극히 흔한 모습에 꿈에서 보았던 뉴욕의 두려움이 아닌 늘 내게도 존재하는 일상을 본 것이다. 그런 모습이 프랑스인인 상뻬의 시선으로 그려지는게 어쩜 내가 수긍하고 이해하고 느끼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뉴욕이 친근해진 느낌이다.

조금만 가면 만날 수 있는 다른 도시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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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인슈타인을 위하여 - 꼬마 아인슈타인 미구엘의 이야기
마크 웨이클리 지음, 변용란 옮김 / 미토스북스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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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제목에 비해 책의 디자인이 클래식하다라는 느낌이 들었다.

분명 과학을 말하고 있는 것 같았기에..

그러나 책을 읽고 나니 이번에는 제목이 너무 클래식하다라는 엉뚱한 생각이 드는건 뭘까.. 과학과 연관이 없는게 아니지만 과학보단 인간 존중에 더 중점을 두었다는 느낌이 들어서인지도 모르겠다.

 

이 책을 읽는내내 미하일 불가꼬프의 '개의 심장'이 생각이 났다.

개의몸에 부랑자의 뇌와 생식기를 이식 받아 개가 사람인냥 추태를 부리는 모습에서 다른 양상이긴 하지만 천재 과학자 말로의 뇌를 거리를 떠도는 11살 소년 미구엘에게 이식시켜 말로의 생명연장과 연구를 마치려는 도닝 박사가 왠지 닮았다라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도닝 박사의 노력과 의도는 과학적인 면에서는 당연한 시도와 연구로 묵과될 수 있겠지만 생명존중의 윤리적인 면에서는 관대하지 못했고 현재 우리도 마찬가지이다.(달콤한 사탕발림의 말 속에 넘어가더라도 이간은 양심이 있기에 뒤늦게나마 깨닫기 마련이다. 안그러는 사람도 있지만...)

수술을 성공적으로 마친 미구엘의 몸속에는 두 사람의 모습이 나타난다.

순간적 영혼의 드나듬이 아닌 뇌를 통한 한사람은 잊혀지는 것이다.

그러나 도닝의 눈에서처럼 좀 너무한다 싶지만 하찮아 보이던 미구엘은 자신의 삶의 끈을 놓지 않는다.

도닝의 연구에 의심반 기대반 하면서도 성공적인 수술의 결과를 보기 시작한 말로 교수는 처음엔 만족 했지만 삶에 대한 애착을 드러내는 미구엘을 서서히 느껴간다. 불규칙적인 미구엘과 말로의 등장은 각자에게 특별한 물건을 보았을때 규칙적으로 나타난다는 것을 알고 말로 교수는 결국 미구엘에게 완전한 미구엘이 될 수 있도록 말로로 돌아오는 수영 메달을 없앤다.

도닝의 정직하지 않았던 연구의 과정을 알게 되고 미완성이던 논문을 완성하고 자신이 살았던 삶도 되돌아 볼 수 있었고 가장 중요한 미구엘을 존중해 주었으니 그럭 저럭 아름다운 마무리라 할 수 있겠다.

점점 냉철해지고 자신이 연구에만 몰두해가는 도닝에 비해 점점 인간적이 되어가는 말로 교수와 자신의 삶을 개척해가고자 하는 의지를 보인 미구엘의 모습은 비교가 될 수 밖에 없었다.

도닝은 계속해서 극을 달리고 있었고 말로와 미구엘은 우정이 깊어가고 있었다. 한 몸속에서...

 

미구엘이 자신의 삶을 포기하고 말로는 욕심을 부려 겉모습은 미구엘로 살며 계속된 연구를 통해 커다란 업적을 만든다해도 그것을 과연 과학의 발전으로만 볼 수 있을까...? 과학이 먼저냐 인간존중이 먼저냐는 끝없는 논쟁거리가 되고 마는 가운데 그래도 나는 인간존중이라고 말하고 싶다.

인간의 가치 여부는 인간의 영역이 아닌 신의 영역이기에...

비공식적인 불법 연구지만 그래도 과학의 진보를 바라 보는 도닝의 모습에 완전한 말로로 바뀌지 못하고 규칙적인 변신을 위해 소중해 하는 물건을 봐야만 바뀌는 걸 보며 아니러니컬 했다. 결국 인간은 인간이 제어할 수 없다는 능력 밖의 모습을 여실히 보여준 것이나 다름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구엘과 말로에겐 누구도 닮을 수 없는 우정이 생겼다. 그 우정의 대가가 혹독하긴 했지만 서로에게 소중한 것들을 찾아가는데 도움이 되지 않았나 싶다.

물론 그런 조건의 대가라면 나같음 당연 치르지 않겠지만...

이 책에서는 '평범하게 살래, 천잴로 살래'의 물음이 아닌 '너의 정체성을 지킬래, 포기할래' 가 더 가깝지 않나 싶다.

언뜻 '천재가 될 수 있다'라는 사탕발림 속에는 껍질만 자신일뿐 천재의 주인공은 내가 아니기 때문이다.

과연 하찮아 하지 않는 자신의 삶일지라도 이런 판단을 인간이 결정할 수 있을까.. 누군가 뺏으려고 하면 더 지키고 싶은법...

뺏기기전에 자신을 사랑하고 지키는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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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신 치바 이사카 코타로 사신 시리즈
이사카 고타로 지음, 김소영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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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조사시간은 일주일....

왠지 '조사하면 다 나와'란 유행어가 떠올랐지만 실체를 들여다 보니 그닥 나올것이 없는 조사 같았다. 치바가 나의 죽음을 준비한다면 서슴없이가(可)라고 말할 것 같다. 삶을 충실하게 그리고 보람되게 살고 있지 않다는 자신감 상실이다. 책을 다 읽고 나니 비가 온다. 치바가 온걸까?

누굴 조사하고 있는 것일까..

 

사신.. 말 그대로 죽음의 신이다.

삶에 대한 희망과 열정이 없으면 아니 치바가 봤을때 굳이 살 이유가 없으면 '가'를 보고한다. 그러면 일주일째 되는날 조사 대상은 죽는다.

6명의 인간 중에서 삶에 의욕이 없고 늘 죽고 싶다라고 입버릇 처럼 말하며 '가'로 보고하기에 손색이 없는 가즈에만 '보류'를 한다. 그녀는 죽고 싶어 했지만 그녀를 괴롭히는 사람의 진짜 의도는 그녀의 목소리에 반해 가수로 만드려는 뜻이 숨어 있었기 때문이다.

6편의 이야기 중에서 죽음을 보여주는 것도 있었고 죽음을 확실히 말해 주지 않는 것 그리고 죽음이 참 쉬운 것도 있었다. 인간이 아닌 사신이기에 그런 면모를 보여 주었겠지만 그런 냉철함이 오히려 소설의 매력을 더해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치바 앞에서만큼은 생명이 하잘것 없어 보일 정도로 치바는 첫 제목처럼 '정확했다' 가끔 그런 인간들 앞에서 연민을 보여주기도 했지만 죽음을 보류시킬 정도는 아니다. 오히려 정이 넘치는 다른 사신들에 비해 정이 없다고 느껴질 정도다. 그래.. 그는 인간이 아니니까.... 치바의 세계에서 들여다 본 인간들의 죽음이 연민이 느껴졌을 뿐이지 그런 인간 세계에 살면서 그들의 죽음을 보면서 늘 무덤덤하니까...

오히려 냉철하다고 말하는 치바에게 내가 더 가식적으로 보이는 느낌이다. 죽음은 내가 결정하지 않지만 죽음을 상대하는 태도와 생각은 비슷하니까.. 사연없는 죽음.. 안타까운 죽음이 왜 없겠는가.. 결국 우리는 다 죽을텐데...

 

이 특별하면서도 단순한 죽음을 이런 모양으로 엮어내는 작가의 상상력이 돋보인다. 단편처럼 느껴지는 이야기속에 직소퍼즐을 맞추듯 딱 들어맞는 복선과 결과는 독특한 상상력에 재미를 덧붙여 주었다. 가즈에를 보류를 했지만 정말 그녀가 가수가 되었는지 알지 못했는데 또다른 인물과의 연결을 통해 늦게 꽃이 핀 굉장한 가수가 되었다는 이런 꼼꼼한 맞춤은 그래도 살아있을때 행복하다라는 걸 암시해 주는 듯 했다.

설사 치바가 조사를 나오더라도...

치바가 나를 조사하고 있더라도...

하루 하루를 준비하며 살면 내가 느꼈던 허무와 연민은 줄어들지 모른다. 어떤 책에서 그랬다.

늘 죽음을 준비하라고...

그래서 3년전 처음으로 유서를 써 보았는데 이제 다시 수정이 필요할 듯 하다. 죽음이 멀든 가깝든 그 막연함에 두려워하지 말고 자신에게 충실한 하루 하루를 살면 낫지 않을까?

우리는 하루 살이다. 오늘이면 내가 죽고 내일이면 다시 태어난다.

내일 태어나는 나와 어제 죽은 나와의 동일성 같은건 따지지 말고 나는 하루살이라는 생각으로 살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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