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 the Road - 카오산 로드에서 만난 사람들
박준 글.사진 / 넥서스BOOKS / 200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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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배낭여행은 늘 꿈꾸던 것이였다.

그러나 배낭을 싸보기도 전에 오만가지 근심 걱정을 들어가며 포기해 버리기 일쑤다. 정말 내가 갈 수 있을까.. 위험하지 않을까.. 난 돈이 별로 없고 현실을 떠나기에 용기가 부족한데...

그러나 그들은 떠났다.. 현실을 버린 것이 아니라 현실을 옮겼다.

세계의 한가운데로.. 그리고 현실은 늘 변했다. 나와 같은 똑같은 일상이 아니라 그들은 늘 새로움을 만끽하고 있었다.

4년을 준비하고 세계여행을 떠난 부부.. 자퇴하고 여행을 온 여고생..중년의 나이에 배낭여행을 하는 부부.. 마약과 섹스에 빠져 있다 여행을 통해 자아를 찾아가는 외국인 등 카오산 로드는 수많은 사람들이 수많은 사연들을 안은채 여행하고 있었다.

방콕의 카오산을 왜 이렇게 많이 오는걸까?

세계에서 외국인이 가장 많다는 기록을 과시하듯 거대한 쇼핑센터 같다는 말을 하면서도 사람들은 몰려든다. 그 안에는 활기와 열정이 있었다. 장기간 있는 사람들보다 머물러 있다 가는 사람들이 더 많았지만 그럴 수 밖에 없었다. 그들은 늘 움직였으니까 그리고 늘 간구했으니까..

그래서 카오산을 말하기는 불가능하다. 나도 그들을 좇아 늘 움직였기에..

 

몇년씩 여행하는 사람들은 그렇다 쳐도 정말 한번이라도 배낭을 메고 여행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 늘 부러웠다. 나도 저들처럼 떠나고 싶지만 대단할 것이 없는 나의 현실은 늘 내게 족쇠를 채운다.

떠나지 말라고.

그래도 저렇게 여행하는 사람들은 특별한 사람들일꺼야 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그들은 국경을 떠나 나이를 떠나서 평범한 사람들이였다. 오히려 내가 그들을 특별하게 만들고 있을 뿐 그네들은 자신들이 특별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리고 방구석에 가만히 누워서 내가 생각하는 오만가지 걱정들보다 쉽게 생각하고 쉽게 여행을 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한결같이 말한다. 꼭 배낭여행을 떠나보라고..

끔찍한 슈트케이스가 아닌 배낭을 메어보라고 말이다.

그렇게 말하는 그들이 한가해 보이고 막연하기도 했다.

과연 돌아가서 어떻게 기반을 잡을 것인가라는 분수에 넘치는 걱정도 해봤다. 그러나 오히려 그들은 그런 미래의 불안함을 털어버릴 수 있었다고했다. 모든걸 내가 결정하고 책임지는게 조금 힘들 뿐이지 언어, 돈은 문제가 아니라고..

한결같이 그렇게 말하고 있어서 진부하기도 했다.

'인터뷰 내용이 너무 같은거 아니야?' 라는 푸념을 해 보아도 사람들은 대부분 하는 말들이 비슷했다.

그들을 보고 있자니 부러워서 가방을 싸고 싶을 정도였지만 그것도 처음의 만남일때 뿐이였다. 중간으로 넘어갈수록 후반으로 갈수록 그들의 여행에 대리만족을 해가며 서서히 현실과 타협하고 있었다.

처음의 흥분과 열정은 책을 읽어가면서 많이 수그러 들었지만 그 가벼움은 나의 마음속으로 들어왔다.

1년 후라도.. 지금부터 준비해서 떠나보자라는 한가닥 꿈이...

그리고 배낭여행이 편하다라는 말은 별로 못들었지만 유럽을 갈망했던건 어쩜 그 편안함을 조금이나마 추구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름대로 진로를 바꿔 보았다.

중국을 거쳐 인도를 거쳐 중동을 거쳐 유럽으로.. 그리고 돌아와서 아프리카로의 봉사활동...

불가능하다라고 생각했던 부분이 가능성으로 바뀌고 있었다.

못할게 뭐 있겠는가...

 

'왜 꿈만 꾸는가.. 한번은 떠나야 한다. 떠나는 건 일상을 버리는게 아니다. 돌아와 더 잘살기 위해서다.'

 

이 사실을 이제야 깨달았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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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이, 대디, 플라이 더 좀비스 시리즈
가네시로 카즈키 지음, 양억관 옮김 / 북폴리오 / 200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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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누군가를 미치도록, 죽이고 싶도록 증오한 적이 있는가?

아마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정말 복수하기 위해 노력한 적은 있었는가?

아마 없었을 것이다.

나처럼 이렇게 평범한 샐러리맨 스즈키 하지메..

50을 바라보는 나이.. 땅딸막한 체형..  그가 몸짱이 되고 고등학교 최고의 챔피언 권투선수 이시하라를 쓰러트린다. 왜?

스즈키의 소중한, 하나밖에 없는 딸 하루카가 이시하라에게 맞았기 때문이다. 자신은 아무런 힘이 없었다. 용기도 없었다.

그러나 분노는 그 모든걸 뛰어 넘었다.(나도 스위스전 주심을 상대로 분노좀 품어볼까?ㅋ) 그 분노를 뒷받침 시켜주고 이시하라를 쓰러 트릴 수 있게 도와준건 가족과 '더 좀비스'였다.

'레볼루션 no.3'의 '더 좀비스'를 어떻게 만났을까.. 스즈키는 스기하라에게 복수하기 위해 부엌칼을 가지고 스기하라의 학교에 잠입한다.

그러나 스즈키가 들어간 곳은 '더 좀비스'가 다니는 학교...

게다가 순신과 마주쳐 된통 혼이 난다. 그러나 '더 좀비스'와 그의 일행들은 스즈키의 얘기를 듣고 프로젝트를 만든다. 단지 재미있을거라는 이유하나로..

스즈키가 이시하라를 쓰러트리기 위해서는 싸울 줄 알아야 한다.

당연 순신의 가르침을 받지만 그 과정은 처절하면서도 인상깊다.

회사에 한달 반정도 휴가를 내어서 순신에게 훈련을 받고 이시하라를 쓰러트리기까지 그의 분노는 누구도 막을 수 없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마음속으로 갈등하고 자책하고 괴로워 하면서도 스즈키는 순신의 훈련을 잘 참아낸다. 속으로 욕은 무지 하지만..

그 정도로 순신은 프로다운 면모를 보여주었고 스즈키는 가족을 지키는 아빠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노력했다.

그리고 하루카를 다시 집으로 데려올 수 있다는 생각으로 하늘을 날 것 같은 스즈키...

 

뿌듯했다. 결과의 통쾌함보다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부여한 중년 샐러리맨의 사투는 많은 것을 깨닫게 했다.

스즈키 자신만 해도 인생이 180도 달라질 정도였으니까 그 모습을 지켜본 사람들은 180도는 아니더라도 90도 정도는 달라질 수 있다라는 생각을 갖지 않았을까?

나에게 이런 열정과 제대로 된 스승이 있었다면 나의 인생이 달라졌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모두들 성적의 숫자 놀음에 놀아나며 그 숫자가 높으면 높을수록 좋아하기에 중학교때 나도 공부를 정말 잘하고 싶었다. 그러나 포기하고 말았다. 내 자신에게 실망하고 말았다. 제대로 된 도전한번 안해 봤기에..

그리고 지레 겁 먹어 버렸기에..

차리리 좀비스처럼 숫자로 판단하는 세상에 열렬히 비판하며 포기를 해버리던가 스즈키처럼 제대로 도전해 보든가 그랬음 나았을 텐데...

나는 어정쩡한 중간치였다. 다른 사람의 시선을 좇아 움직이는 중간치..

그래서 좀비스와 스즈키가 통쾌했는지도 모르겠다.

 

여튼 좀비스와 스즈키의 프로젝트는 멋졌다.

소설이기에 가능했지만 깊은 밤 책을 덮고 나니 책 속의 한가운데를 둥둥 떠다니는 나를 발견하고 베시시 웃어 버렸다.

다음날이면 추락해 있을거라는 걸 알면서도..

그래서 이 작가의 책을 다 읽어 보고픈 욕심이 생겼다.

캐릭터들에게 정이 들어서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사서 보기에는 아깝다는 짐작과 수긍과는 반대로 간직하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홀라당 사버렸다.

아직 나의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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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
가네시로 카즈키 지음, 김난주 옮김 / 현대문학북스 / 200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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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록을 뒤져보니 2001년 12월에 읽은 기록이 남아 있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때는 독서록에 회의를 느껴 느낌은 하나도 없고 단지 말 그대로 기록만 남아 있었을 뿐이였다.

지금처럼 예쁘게 양장본으로 나온 책도 아니였고 기억도 잘 안나지만 번역가는 같았다. 그래서 기억에 남아있지 않은 책을 다시 꺼내보기 위해 책장 귀퉁이에 꽂혀 있는 GO를 꺼냈다.

가네시로 카즈키의 전작을 읽었지만 기억이 안난다는게 조금은 무안했다. 책을 왠만해서는 두번 읽지 않는데 이렇게 두번 읽을 수 있는 기회를 이끌어냈다. 설레였다. 단순히 기억의 재생이 아닌 2001년 12월의 추억도 따라서 올 것 같은 느낌이였기 때문이다.

 

책을 읽으면서 사소한 부분들이 '이 책에서 이 말이 나왔구나'라고 기억을 추스려주었을 뿐 굵직한 줄거리는 정말 생각이 안났다. 약 5년전에 읽었던 것이니 그럴수도 있겠다 수긍하며 재미있게 읽었지만 책의 내용은 레볼루션 NO.3나 플라이 대디 플라이처럼 가볍고 재미나게 읽을 수 있는 건 아니였다. 책 속에는 저자의 자전적 소설이자 사회문제 더 나아가 국제적 차별까지 여러 문제들을 두루 두루 다루고 있었지만 차분하게 그리고 솔직함을 뒷받침해 저자의 문체로 정리를 잘해가고 있었다.

 

저자는 재일 한국인이다. 일본에서 태어나 일본에서 자랐지만 중학교때까지 조선학교를 다녔다. 일본의 식민지였을때도 조선을 그렇게 핍박했는데 일본의 한가운데 조선학교를 다녔을 저자의 고충은 훤하다.

그러나 대부분 덤덤히 넘기고 있다. 자신의 고충을 시시콜콜 늘어놓고 아버지의 세대와 같이 행동했더라면 나도 스기하라처럼 아버지한테 '당신 시대는 끝났다'라고 당돌하게 말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 상처와 방어를 동시에 가지고 살면서도 스기하라는 당당하다.

이런 머리아픈 문제는 다루려는게 아니라 이 책은 자신의 연애애기라며 밝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듯이..

 

일본 고등학교에 들어갔지만 스기하라는 친구가 없다. 남들이 뭐라고 비난하든 말든 스기하라는 자신의 의지대로 자신의 길을 닦아 나간다. 남들은 희망이 없다라며 짓눌러 버려도 아랑곳하지 않고..

내가 미국계 한국안이였다면 미국에서도 그다지 불편함 없었을테고(스기하라와 여러 외국인들과 비교해 보았을때..)한국에서도 앞의 예보다 더 어려움은 없었을 것이다. 대접을 받거나 부러움의 시샘의 비난을 들을지라도 개의치 않을 정도로..

그러나 일본을 가면 얘기가 달라진다. 미국인들처럼 순수한 자기네 혈통에 빠져 우월주의의 극은 미국보다 더하다.

물론 한국이 일본보다 힘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동급으로 인정하기에는 관용이 뒷따르지 않는다. 이런 세계에서 같은 재일 한국인도 아니고 (같은 재일이더라도 연애, 결혼은 재일 대 일본 만큼이나 까다롭다.)일본인과 어떻게 연애를 할 것인가...

스기하라는 자신의 이상형이라 할 수 있는 사쿠라이를 만나 좋아한다.

그러나 사랑을 나누기 전 자신이 재일이라는 걸 밝히자 사쿠라이는 겁을 먹는다.

그렇게 헤어진 두사람.. 그러나 스기하라는 나름대로 자신의 삶을 꾸려 나가는 중이다. 여전히 거친 세상에 거칠게 맞대응하며...

그리고 아버지에게 '당신 시대는 끝났어' 라고 말하는 것처럼 새로운 세대를 열어간다. 그 세계속에는 국적은 필요없다라는 사실을 깨닫는 사쿠라이의 마음도 한 몫한다.

 

상처와 고달픔 억울함이 뒤범벅이 되어 있더라도 스기하라는 불행해 보이지 않았다. 문제아에 거칠긴 해도 자신의 미래를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라면 선택과 결단을 할 수 있었을까?

아마 도망쳐 버렸을지도 모른다. 왜 가네시로 카즈키의 소설을 읽으면 내 자신이 한없이 작아지는지 모르겠다.

분명 주인공들의 삶보다 내가 나아 보인다는 우월감을 갖고 있었는데 헛된 망상이였다. 내가 남보다 우월하다는 기준 자체가 바보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남들보다 우월하게가 아닌 동등함을 위하여 살길 바랬는데 이런 말장난이나 하고 있는 모습이란.. 동등함은 또 무어란 말인가.. 쯧....

 

겉표지의 찬사의 한부분처럼 '재일 문학 속의 호밀밭의 파수꾼'이라고 가벼이 넘기면 좋으련만 '호밀밭의 파수꾼'처럼 가볍게만은 넘길 수 없는 문제가 있다. 그러나 스기하라의 행동이나 생각처럼 그렇게 심각하게 받아들일 생각은 없다.

왠지 그런것들에 짓눌리다 보면 나의 미래도 답답하게 짓눌려 버릴 것 같았기 때문이다.

박차고 나올 것이다.

그리고 스기하라처럼 당당히 숨쉬며 살 것이다.

당신들의 시대는 끝났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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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ED 더 좀비스 시리즈
가네시로 카즈키 지음, 양억관 옮김 / 북폴리오 / 200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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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좀비스'의 이번 시리즈(?)는 전작의 유쾌함과 발랄함(?)의 느낌이 조금은 아쉬움이 남았다. 사건을 해결하는 이미지가 강했고 고등학생이 대학의 깊은 속사정에 관여하다 보니 -이건 억측이다. 전작에서의 예들은 이것보다 더 하면 더 했지 부족함이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그런 이미지가 강했는지도 모르겠다.

이런 껄끄러움의 속사정을 나름대로 추측해 보건데 불륜, 그리고 돈, 권력, 대학이라는 거대한 압박까지 가세해 숨통을 조여서 '더 좀비스'답지 않았다고 말하는지도 모르겠다. 더 좀비스에게는 이런게 전혀 어울리지않았다. 돈과 권력? 대학??

물론 그들의 심중에 이런걸 누리고 싶은 마음들이 왜 없겠냐만은 그들에게 왠지 세상의 때로 느껴지는 것들을 미리 느껴보게 하기 싫었는지도 모르겠다. ( 세상의 때가 골수까지 파고들어 상처가 넘쳐나는 그들인데 나도 참..... )

문제아,꼴통들로 보일지라도 그들이 세계에서 '더 좀비스'는 멋졌다.

그러나 대학이라는 곳에 주늑들고 - 대학이라는 추상적인 의미로 볼때- 돈과 권력에 무릎 꿇고 그들의 세계에서 당연히 추구되는 것들일지라도 벌써부터 그들에게 고3이라는 고삐리의 신분을 벗겨내기가 싫었다.

왠지 대학교내의 사건에 말려 듦으로써 대학과 그들의 모습을 일직선에 두고 비교해 보지 않을 수가 없었는데 모순이 되어갔다.

그들은 취직을 위해 대학을 선택하고 지식과 학구열을 불태우기 위해 대학을 선망하는게 아님을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명문대 앞에서 그들이 왜 초라해 보였는가..

그들은 명문대를 추구해 옴이 아닌대도 그들은 그 사실을 묵묵히 받아들이고 자신들의 삶을 삶에도 왜 난 그들을 단박에 초라하다고 말하는 걸가.. 시선의 차이였다.

난 '더 좀비스'의 시선에서 세상을 보는 것이 아니라 권력을 갈망하는 자,평탄한 길을 추구하는 자들의 시신에서 '더 좀비스'를 바라봤다 왜?

그런 울타리가 짐짓 튼튼해 보였기 때문이였다. 그들의 삶의 방향을 추구했음에도 겉모습에 홀라당 넘어가 버리는 나의 허영이 얄미웠고 '더 좀비스'를 초라하게 만든 사건의 실태가 맘에 들지 않았다.

결국 이런 나의 맘에 들지 않음이 명문대를 싸고 잇는 온갖 허영들을 벗겨 주었지만 그 벗김이 후련하지 않았다.

그 안에는 개선될 수 없는 사회의 구조의 답답함과 그 구조를 따라가야 하는 사람들 틈에서의 반항적인 '더 좀비스'들이 외로워 보였기 때문이다.

 

책의 중심 내용과는 다르게 나의 이야기가 많이 빗나가고 말았지만 책을 읽는 내내 이런 마음의 응어리가 자꾸 꾸역 꾸역 올라오는건  왜 였을까? '더 좀비스'가 성인이 된다는 생각?(어떤 식으로?)

삶이 더 고달파 질거라는 생각?(그러니까 어떤 식으로?)

그들의 삶이 결코 평탄치 않음을 알고 그 조건을 즐겼음에도 난 왜 이렇게 무겁게 얘기하고 있는 걸까?

물어도 대답없는 '더 좀비스'들이여..

떠나지 말지어다. 변하지 말지어다.

조금은 징그러운 발랄함 속에서 영원한 고딩으로써의 삶을 지속시켜 달라는 요구는 얼토당토 않는 나의 억지요 불순환이라는 걸 알지만 난 그들을 세상속에 덩그러니 놓아두기 싫었다. 그들에게 존재하지도 않았던 보호막을 걷어 내는 것도 아니오.. 그렇다고 그들이 죽는 것도 아닌데 - 더 좀비스니까- 난 그들의 미래가 심각하다.

 

그들이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더 좀비스'는 실질적인 매력을 잃을 것 같다. 그리고 그들에게 어떤 미래가 부여될지 솔직히 걱정된다.

나의 삶의 미래가 아닌 왜 '더 좀비스'를 걱정하는가..

그들에게 정이 들었다라고 말하는 건 너무 단순하지만.. 왠지 그냥 그 자리에 있어줬음 하는 바램이 생긴다.

헤어짐의 정이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 그냥 내게 ' 더 좀비스'로 남아주면 안되는 걸가...

 

좀비스의 곁에 사건과 '새침한 여학생'-책의 설명을 빌어- 을 첨가시켜 그들을 나이먹고 철들게 하는 것보다 사고쟁이, 철없는 그들로 남아주길 바라는 마음이다.

복잡하고 골치 아픈걸 좋아하는 그들로써 나의 소망이 실현되지 않을 거라는 걸 안다.

 

결국 나의 마음 가짐이 중요하다느 얘기군...

그래 좋다.

내게서 '더 좀비스'는 매력으로 넘쳐나는 어디로 튈지 모르고 단순하지만 그들의 생각을 읽을 수 없는 불멸의 존재로 남겨 두는 수 밖에...

'더 좀비스'여 영원하라.. 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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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으로도 때리지 말라
김혜자 지음 / 오래된미래 / 200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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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오늘의 책'에서 이 책의 소개글을 부탁했다.

자신이 없었다. 그러나 판단은 그쪽으로 맡기기로 하고 우선은 써보기로 했다. 그러나 내게 이 책이 없었다. 내가 추천을 한 책이긴 하지만 책방에서 빌려본 거라 어쩔 수가 없었다. 그래서 후다닥 책을 샀고 소개를 하기 위해 다시 읽기 시작했다.

책을 왠만해서 두번 읽지 않는 나로써는 어찌 되었건 읽은 책을 다시 읽게 된 것이다. 

읽고 나서 사람들이 왜 책을 2~3번 읽는지 조금은 이해하게 되었다.

분명 처음 읽을때 스쳐가버렸던 것들을 두번 읽으므로써 다시 잡을 수 있었다. 그 횟수가 반복 될수록 미쳐 발견하지 못했던거, 그리고 발견했더라고 깊이 새기지 못했던거.. 그것들을 새로이 발견할 수 있고 나를 다독이는 시간까지 생겨 여러번의 책 읽기가 유용하다는 걸 실감하는 계기가 되었다. 두번 읽었음 그냥 된거지 왜 또 독후감을 쓰냐고?

두번 읽었을때의 느낌이 또 달랐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다른 느낌을 말하고 싶어졌다.

 

두번째 읽는 책 속의 고통받는 땅의 사람들이 아픔으로 전해져 왔다.

상상할 수 없는 기아와 질병과 가난과 상처에 시달리는 그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 것인가.. 책을 읽다 고개만 들면 딴 세상을 만날 수 잇는데 그들을 내가 어떻게 도와야 할까.. 가슴이 아팠다.

그래서 엉엉 울어 버렸다.  울다가 잠들어 버린 꿈속에서도 고통받는 대륙의 사람들이 나타났다. 도와달라고 배가 고프고 몸이 아프다고..

그러다 선뜻 그 책을 거내들 수 없었다. 나 자신을 제어할 용기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읽다 쉬다를 몇번 반복한 끝에 겨우 겨우 소개글을 보냈고 -실린다는건 상상조차 하지 않는다.- 책을 다 읽었음에도 선뜻 나의 느낌을 옮기기가 힘들었다. 아프리카로 자꾸 가고 싶다라는 생각만 앞섰고 사진속의 고통스레 울고 있는 아이.. 벌거숭이가 된 상태에서도 해맑게 웃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이 떠나지가 않았다. 비슷한 고통을 갖고 있음에도 얼굴에 살이 오르거나 웃고 있거나 옷을 아이답게 걸치고 있는 모습의 사진이라도 볼라치면 그렇게 안심이 될수가 없었다.

처음 책을 읽었을때 사진속 인물들의 얼굴에만 집중을 두었었고 그 얼굴들은 바라보고 있는게 힘이 들어 금방 금방 넘겨버렸는데 두번째 읽음에서는 그 아이들을 오래 오래 쳐다보게 되었다.

그러면서 그 아이들과 대화를 하고 있었다.

 

'넌 어쩜 그리 예쁘니...'

'네 옷.. 정말 낡았구나...'

'그 웃음.. 지켜주고 싶어..'

'얼마나 배고프니....'

그러나 그런 소리 없는 대화의 끝은 김혜자씨처럼 '죽지 마라, 죽지 마라.. 제발 살아만 있어 다오'라며 탄식이 되고 있었다.

 

한 여인이 있었습니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온갖 전쟁과 가난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보면서 그녀는 신에게 항의 했습니다.

"왜 당신은 이 사람들을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건가요?"

그러자 신이 그녀에게 말했습니다.

"그래서 내가 널 보내지 않았는가?"

 

내가 이런 신의 부름을 받아 아프리카로 떠나고 싶어하는 건 아니다.

세계의 평화 뭐 이런 거창함을 실행하기 위해 가고 싶은 것도 아니다.

단지 저 아이들에게 '괜찮다'라며 안아주고 위로해 주고 싶을 뿐이다.

그게 무슨 아프리카로 가고 싶은 이유가 되냐고 물을지라도 정말 그 아이들을 위해 아프리ㅓ\카로 가고 싶을뿐이다.

책을읽으면서 많은 분노, 한심함, 무관심 그리고 소수의 욕심으로 인해 한나라가 완전 망가져 버리는 모습을 지켜 보며 그런 감정들을 쉽게 털어낼 수 없었다.

그러나 내가 그런 감정을 품고 그들을 비난하고 비판한다고 해서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들이 자각하지 않는 한  그런 고통은 끝이 없을 것이다. 그런 시간이 더뎌 지더라도.. 나도 현재 생각만 하고 있는 것처럼...

그 아이들을 위해 모두가 갈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작은 관심을 엄청난 힘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저 아이들이 나와 무슨 상관이냐고 말하기 전에 저 아이들의 웃음을 지켜주고 싶지 않은가...

저 아이들에게 '괜찮다'라고 위로해 주고 싶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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