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이트 오브 더 유니언
더글라스 케네디 지음, 조동섭 옮김 / 밝은세상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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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실수. 이 단어를 떠 올릴때마다 4년 전 입사한 회사에서 생활했던 2년 동안의 시간이 여전히 나를 괴롭힌다. 분명 좋은 추억도 많은데 문득문득 지금도 얼굴이 붉어질 정도로 실수했던 순간들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일했던 곳에서 떠나 고향으로 돌아와 지금은 주부로 살고 있음에도 그때의 기억은 공간을 뛰어넘어 여전히 나를 낯 뜨겁게 만든다. 여전히 부끄러운 실수라고 해도 사회생활을 하다보면 누구나 겪게 되는 일이라고 치부할 수 있다. 하지만 내가 한 행동이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상처가 되는 실수라면 과연 내 스스로에게 너그러워질 수 있을까? 이 책 속의 한나가 남편이 집을 비운 사이 혼외정사를 한 것도 모자라 범법자를 국외로 도망치게 도와준 일 모두 한 순간의 실수에서 비롯되었다. 남편이 집을 비운 사이에 외간 남자를 딸의 집으로 보냈던 아버지의 실수. 그런 외간남자와의 욕망을 이기지 못한 실수. 어린 나이에 엄마가 되고 한 남자의 아내가 되어 자신의 삶은 잃어버린 채 살아가고 있다는 자괴감에 빠져 있던 실수. 다른 이유로 다가온 사람을 의심하지 못할 정도로 순진했던 실수. 유혹을 뿌리치기 힘들어 저질렀던 그때의 실수는 30년이 훌쩍 지난 뒤 한나의 삶을 송두리째 흔들어 버린다.

  한나는 빠듯한 생활의 시골의사 부인에서 존경받는 교사로 재직하고 있고 의사로 성공한 남편, 나름 반듯하게 자라 준 아이들과 어설프고 혼란에 빠져있던 초보주부가 아닌 어엿한 중년의 모습으로 나름 삶에 만족하며 살아가고 있다. 부부간의 뜨거운 열정도 없고 장성한 아이들과 끈끈한 유대감은 없지만 현재 주어진 환경과 일에 자긍심을 가지며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모든 가정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각각의 가정사가 있다는 말처럼 겉으로는 문제없어 보이는 한나의 가정사도 그다지 완만해 보이지는 않았다. 가장 가깝다고 생각하지만 속을 몰라 모호할 때가 많은 남편, 잘못된 신앙으로 보수적인 성향이 강한 아들, 펀드매니저로 성공한 듯 보이지만 늘 타인에게 의존하고 사랑을 갈구하는 딸까지 한나의 마음을 불안하게 하는 요인은 늘 있었다.

  1부에서는 한나가 자라온 환경과 결혼생활, 저슨이란 남자와의 잠깐의 외도와 그로 인한 협박과 범법자를 도운 뒤 그간의 불만을 정리하고 가정에 충실하겠다는 다짐 등 1960년대의 한나의 모습을 보여주며 당시 사회적인 모습도 상세한 배경으로 등장한다. 저슨이란 남자와 저지른 외도와 신혼생활에 대한 불만을 배우자 탓으로 돌리는 모습에 격한 동조를 할 순 없지만 저슨이 좀 더 괜찮은 사람이었다면 좋았을 거란 아쉬움이 있었다. 오글거리는 로맨스를 원하는 것도 아니고 추억 속에 담아둘 한때의 사랑을 갈구하는 것도 아니지만 숨통을 조여오던 시골 의사 아내라는 위치와 엄마라는 역할에서 잠시나마 해방시켜주었던 게 저슨과의 대화였기 때문이다. 당시 미국 사회의 혼란을 보여주는 낯선 정치적인 내용과 통쾌하게 웃을 수 없는 유머가 있었지만 그들의 대화 속에서 문학 얘기가 많이 나와 흥미로웠다. 마음이 잘 맞는 이성을 만나면 흥분되고 금방 마음을 빼앗기듯이 한나가 저슨에게 잠시 흔들렸던 마음도 이해는 가지만 외도를 한 행동은 그녀의 손을 들어줄 수 없었다. 2부에서는 유부남과의 스캔들 후 실종 된 딸로 인해 언론의 뭇매를 맞고 있던 시점에서 저슨은 한나와의 외도한 내용이 포함된 책을 출판해 그녀를 더 곤경에 빠뜨리고 만다.

 

  한나가 위험에 처할수록 책장은 쉼 없이 넘어갔고 벼랑 끝까지 몰린 그녀의 처지가 답답했지만 오히려 더 차분해져갔다. 나름 평탄했던 한 사람의 인생과 가정이 순식간에 무너지는데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고 안 좋은 일은 동시에 일어난다는 말을 믿을 수밖에 없게 만드는 수많은 일들에도 이상하게 흥분된 분노가 일지 않았다. 그렇다고 한나가 저지른 과오 때문이라는 생각도 들지 않아 인과응보라고 냉철하게 말하고 싶은 기분도 아니었다. 왜 한나에게 그런 일들이 한꺼번에 일어나는지, 누군가 한나의 인생을 망치기로 작정한 것만 같아 안타까울 뿐이었다. 그런 와중에도 한나를 온전히 옹호할 수도 책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무조건 나쁘다고 비방할 수도 없었다. 한나도 한 번의 외도를 저질렀지만(어쨌든 수긍할 수 없는 실수지만) 이후로 가정과 일에 충실했고, 한나가 가장 힘들 때 비겁한 방법으로 그녀 곁을 떠났다 다시 용서를 구한 남편,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로 한나와 인연을 끊었다 잘못을 뉘우친 아들, 유부남과의 떠들썩한 스캔들로도 모자라 낙태, 쇼핑중독, 의존적인 사랑에 찌들어갔지만 그 모든 혼란 속에서 자신의 부족한 면을 인정하고 다시 인생을 시작해보려는 딸까지 어느 누구도 완벽하지 않았기에 온전히 미워할 수 없었는지도 모른다. 딸의 실종, 언론의 마녀사냥, 남편과의 이혼과 아들의 절연까지 모자라 직장까지 잃고 베스트프렌드는 암에 걸린 그 모든 상황 속에서도 한나는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거란 근거 없는 차분한 확신이 들었다.

  폭탄처럼 터지는 일련의 사건 속에서도 한나의 편이 되어주던 아버지와 절친이 있어서 그녀는 견뎠는지도 모른다. 딸의 행방을 적극적으로 도와주는 형사의 등장과 변호사와 함께 저슨의 거짓말과 맞서기로 다짐했을 때 이제 다시 제자리로 돌아올 때라는 사실을 직감했다. 그리고 거짓말처럼 많은 오해가 풀렸고 애타게 찾던 딸의 소식도 들려오고 아들과 남편의 사과도 받고 직장에도 복귀되었지만 예전과 같은 삶을 기대하긴 힘들었다. 그러기엔 한나와 그의 가족들에게 너무 많은 일들이 일어났고 깨져버린 믿음 속에서 새롭게 깨달아가는 삶의 한 단면을 적나라하게 맛보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내 인생을 돌아볼 때 가장 후회되는 게 뭔지 아니? 내 스스로 행복해질 수 있는 일을 만들지 않았다는 거야. (355쪽)

  한나의 엄마가 알츠하이머병 진단을 받기 전에 한나에게 쏟아낸 이 말이 한나에게도, 이 소설을 마주하고 있는 우리에게도 모두 해당되는 것 같아 씁쓸했다. 한나의 엄마도 행복한 결혼생활을 했다고 말할 수 없고 한나도 결국 중년의 나이에 자신의 결혼생활도 그러했음을 인정하게 되었지만 ‘스스로 행복해질 수 있는 일’을 만들 기회가 이제야 찾아왔다고 생각했다. 그 대가가 너무 가혹하고 잔인해서 한나는 물론이고 보는 이들까지 허망하게 만들긴 했지만 말이다. 한나의 힘들었던 신혼시절 유일하게 이야기가 통했던 마을의 도서관 사서가 ‘ 우리가 인생에서 마주치게 되는 가장 두터운 장벽은 사실 스스로 쌓은 장벽이라고 하잖아요.’ 라고 했던 말이 다시 곱씹어지는 건 한나 스스로도 그런 장벽을 어느 정도 쌓고 살아왔기에 세상과의 장벽을 한꺼번에 마주하게 된 건 아닌지 생각해보게 되었다.

  조금은 식상하게 보이는 소재들이 등장해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던 내가 책의 말미에서 잠시 눈물을 흘릴 정도로 나를 훑고 간 감정의 변화들은 다양했다. 결혼 2년차인 나도 생활이 만족스럽지 못할 때면 배우자 탓을 하기 일쑤였고 아이를 키우고 또 다른 아이를 잉태하고 있어서인지 한나의 장성한 아이들이 전혀 다른 존재인양 갈등을 일으키는 것을 보고 지나칠 수도 없었다. 강경할 정도로 배타적이고 한나를 비난하던 아들이 자신을 못 보게 하겠다던 저슨의 협박을 뒤늦게 알아차리고 사과하는 모습을 보며 부모에게 자식은, 자식에겐 부모가 무언인지에 대해서도 많이 생각하게 되었다. 나도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살아보니 부부가 다정다감하기도, 아이들을 사랑으로 양육하기 힘들다는 사실을 늘 느끼고 있다. 결혼을 하지 않았더라면 공감하지 못했을 많은 부분들이 느껴져 다행이었다고나 할까? 이제부터라도 어떤 일이든 행복해질 수 있는 일들을 만들고 싶다. 결과를 바라기보다 시작부터 행복한 일들. 사실 그게 멀리 있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일상에 잠식되어 나를 가둔 채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에 지금껏 실천하기가 힘들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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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5-01-23 19: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355쪽 문장이 가슴에 와 닿습니다. 행복하지 않다고 쓸데없이 내 자신을 남의 삶과 비교하고, 불행의 원인을 남 탓 주변 탓으로 돌린 제 자신이 부끄럽군요.

안녕반짝 2015-01-24 06:42   좋아요 0 | URL
저도 그런적 많았어요.
문학을 통해서 그러지 말아야겠다는 다짐을 많이 하게 돼요.
정말 소중한 건 현재의 나이고, 내 삶의 주인 역시 나이니까요^^
 
어쿠스틱 라이프 7 어쿠스틱 라이프 7
난다 글 그림 / 애니북스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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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둘째라서 그런지 배도 빨리 불러오고 하루하루 살이 늘어난 느낌이 여전히 어색하기만 하다. 두 번째 임신인데도 적응되지 않는 입덧과 그에 따라오는 온갖 자잘한 변화들. 한 생명을 품는다는 건 신기하면서도 조심해야 할 것 투성이라 늘 염려스럽기만 하다. 그래서인지 육아보다는 임신 출산과 관련된 책을 보면 괜히 더 동질감을 느끼게 된다. 육아는 여전히 서툴러서 느낌을 정리하는 것도 쉽지 않고 공감하는 범위도 너무 넓은데 임신 출산은 두 번째 경험을 하고 있는 거라 괜히 더 공감이 가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오랜만에 만나는 <어쿠스틱라이프>에서 난다와 한군이 엄마 아빠가 된다고 하기에 얼른 책장을 열고 싶었는지 모른다.

  늘 투닥거리면서도 소소한 일상을 보여주었던 난다와 한군이 엄마 아빠가 된다고 하기에 내 모습과는 어떻게 다를까 궁금했다. 출산과 그 이후의 이야기까지 있는 줄 알고 있다가 좀 아쉬워하긴 했지만 임신 과정에서의 소소한 일상과 변화들에 많은 공감이 갔다. 배가 불러올수록 답답해서 배를 까고 있는 것 하며 예민해지고 감정기복이 심해지는 것들에 미묘한 동질감을 느꼈다. 다만 첫째 아이를 가졌을 때 남편이 한군처럼 다정다감하지 못해 맨날 잔소리하고 별거 아닌 일에 툭하면 눈물 짜던 일들이 생각나 괜히 멋쩍게 웃기도 했다.

  주호민 작가의 <셋이서 쑥>을 읽어서인지 내심 이 책에 실린 에피소드도 그런 이야기일거라 혼자 착각하고 있었다. 임신이라는 가장 큰 변화가 있었지만 출산 후의 이야기도 실려 있었으면 더 좋았겠다란 아쉬움이 여전했다. 다음 이야기에서 만날 수 있지 않을까 내심 기대를 하면서도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 난다와 한군을 중심으로 엮어가는 이야기들에 만족해야 했다. 그들의 이야기를 마주하면서 나와 내 남편의 이야기를 쓴다면 과연 소재거리가 있을까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만큼 너무나도 다른 남편과 나이기에 깊이 있는 대화라든지 툭하고 내뱉었을 때 내가 듣고 싶은 비스무리한 대답 같은 걸 기대하기 힘들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일상을 살아가면서 남편이 고생한 에피소드는 무척 많지만(입덧으로 거의 2달간 집안을 팽개쳐 둔 이야기를 하자면 남편이 정말 불쌍해진다.) 난다와 한군처럼 부부인듯 부부아닌 친구 같은 소재는 없을 것 같다는 말이다.

  서로의 체온이 맞지 않아(나는 추위를 잘 타고 남편은 몸에 열이 많다.) 가을부터 각기 다른 방에서 잠을 청하는데 갑자기 쌀쌀해진 날씨 탓에 추운지 오늘부터 안방에서 자겠다고 남편이 이불을 싸들고 왔다. 그러다 잠자리가 바뀌어서 불편하지 다시 원래 자던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 방에는 2면이 내 책들로 가득하고 컴퓨터까지 있는 방이라 아이를 재워놓고 혼자서 책보거나 리뷰를 쓰는 방이기에 그간 제대로 이용을 못하고 있었다. 이랬다저랬다 하는 남편이 얄미워서 리뷰 쓸 거라며 억지로 안방으로 돌려보냈다. 당연히 내가 잘한 일이라 생각했는데 마지못해서 안방으로 들어가는 남편의 모습이 괜히 마음에 걸리기 시작한다. 난다와 한군의 이야기를 곱씹어보니 내가 참 남편에게 못하며 살았구나를 실감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이를 키우고, 또 다른 아이를 품고 있다는 이유로 내 권리만 주장하고 있는 요즘의 내 모습이 참 미안해지면서도 그래도 내 남편이니 잘하며 살아야겠단 다짐이 생긴다. 문제는 그 다짐을 실천하느냐 마음속에 품고만 있느냐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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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5-01-22 15: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재와 컴퓨터가 같이 있는 방이 부러워요. 제가 사는 집은 컴퓨터가 거실에 있어요. 이런 실내 구조 덕분에 학창시절에 게임에 환장한 적이 없었어요. 그런데 블로그에 글을 쓸 때가 불편해요. 저는 조용한 분위기 속에 혼자 작업하는 걸 좋아하거든요. 블로그에 글 쓰는 작업을 가족이 지켜보는 것도 좋아하지 않아요... ^^;;

안녕반짝 2015-01-22 15: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예전에 언니네에서 살때 제 방에서 노트로 리뷰를 쓰고 거실에 나와서 그걸 일일이 타이핑 했어요. 제 컴퓨터가 없었으니까요^^ 그러다 노트북이 생겨서 제 방에서 블로그 하는데 그 고요함이란 정말^^ 거실에 책장이 가득이라 어쩔 수 없이 컴퓨터는 방으로 넣었어요! 집이 넓지 않아 최대한의 구조로^^

하양물감 2015-01-22 21: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남편이랑 온도가 안맞아요. 그래서 남편은 늘 거실에서 자죠

안녕반짝 2015-01-23 15:18   좋아요 0 | URL
겨울엔 남편 옆에만 있음 따뜻한데 여름엔 근처도 못 오게 해요 ㅋ
 
눈먼 자들의 국가 - 세월호를 바라보는 작가의 눈
김애란 외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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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박이 침몰한 ‘사고’이자

국가가 국민을 구조하지 않은 ‘사건’이다. (56쪽)

  세월호 ‘사건’이 잊히고 있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 이 엄청난 사건을 나 또한 많이 잊고 있었음을, 오히려 떠오르지 않으려고 망각의 자세를 취하고 있음을 깨닫고 얼마나 씁쓸해졌는지 모른다. 또한 내가 진짜로 마주하지 못한 세월호 ‘사건’의 숨겨진 진실의 민낯을 만나자 얼마나 비극적인지, 얼마나 불행하고 슬픈 일인지 내 마음에 쿵 하고 다시 한 번 묵직한 고통이 내려앉은 기분이다. 첫 번째로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했던 건 세월호 ‘사고’가 아니라 ‘사건’이라는 사실이었다.

  소설가 박민규는 ‘사고와 사건은 다르다. 사전적 해석을 빌리자면 ’사고‘는 뜻밖에 일어난 불행한 일을 의미한다. 반면 ’사건‘은 사회적으로 문제를 일으키거나 주목받을 만한 뜻밖의 일을 의미하는데 거기엔 또 다음과 같은 해석이 뒤따른다. 주로 개인, 또는 단체의 의도하에 발생하는 일이며 범죄라든지 역사적인 일 등이 이에 속한다.(57쪽)’고 명확히 말하고 있으며 그래서 세월호는 ‘사고’가 아닌 ‘사건’이라고 명시하고 있다. 단순한 사고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음에도 정확한 설명을 듣고 있자니 소름이 돋을 정도로 무서워졌다. 이 엄청난 사건을 우리는 언론을 통해 낱낱이 지켜보고 있었음에도 도대체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무엇이었단 말인가. 하물며 피해자인 세월호 유가족을 시간이 지날수록 가해자로 보는 시선을 거두지 않았던 이 모든 시간의 흐름 속에 진정으로 원하는 게 무엇이란 말이던가.

  지난 4월 16일, 모든 방송을 장악했던 뒤집혀 있던 배, 세월호가 또렷이 기억난다. 처음엔 모두 구조되었다는 보도를 보며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했다가 탑승인원과 구조자와 실종자, 사망자의 숫자가 오락가락 하다 약 300명의 사람이 실종됐다는 정정 보도를 보며 가슴이 무너져 내렸다. 길을 가다가도 내가 걷고 있는 이 거리가 통째로 물속에 가라앉아서 그대로 수몰되어 버렸다고 생각하면 땅이 빙글빙글 도는 것 같아 가슴이 저렸다. 한동안 차가운 바다 속에 수장 된 그들이 떠올라 바다를 보는 것조차 고통스러웠다. 그런 고통은 나뿐만이 아니라 대한민국 국민 모두를 무기력하게 만들었고 언론의 영향이 컸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짐작할 뿐 나의 부족한 혜안으로 이 사건을 명확하게 볼 능력이 없었다.

  그렇게 시간을 흘러갔고 잊힐 것 같지 않던 세월호 사건은 점점 우리의 관심 밖으로 밀려나기 시작했다. 산 자는 살아야 한다는 이기적이지만 어쩔 수 없는 몸부림에 억지로라도 맡길 수밖에 없었다. 안 그랬다간 이 엄청난 사건에 나 또한 그대로 묻혀 버릴 것 같아 겁이 났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월호 사건을 감상적으로만 바라볼 수 없게 만드는 일들이 계속해서 일어났다. 세월호 유가족들이 오히려 국민에게 호소를 하고 있는 것이다. 국가가 그들의 사랑하는 가족들을 구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정확히 인정하고 보호하고 위로해야 하는데 좁혀지지 않는 갈등만 점점 고조되고 있다.

그러니 ‘이해’란 타인 안으로 들어가 그의 내면과 만나고, 영혼을 훤히 들여다보는 일이 아니라, 타인의 몸 바깥에 선 자신의 무지를 겸손하게 인정하고, 그 차이를 통렬하게 실감해나가는 과정일지 몰랐다.(18쪽)

  세월호 사건을 지켜 본 우리는 과연 가족을 잃은 유가족들을 제대로 이해하려고 했을까? 무엇보다 국민의 마음을 다스리고 추슬러야 할 국가는 이해라는 다가섬으로 그들을 감싸 안으려는 노력을 했을까? 시간이 흐를수록 세월호 사건이 잊히고 있는 가운데 이 책에 실린 문인들의 글은 정신을 바짝 들게 한다. 세월호 사건을 보는 다양한 시각에서 나의 능력 부족으로 제대로 보지 못했던 사건의 진실과 이면들을 낱낱이 만난 기분이었다. 다양한 필자만큼이나 다양한 시선으로 바라 본 세월호 사건에 대한 시각이 때론 가슴을 찌르기도 하고, 조금은 난해한 비유에 나의 무지를 탓하기도 하며 혼란스러워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세월호 사건을 개탄하고 있음을, 이런 사건이 다시는 일어나지 말아야 함을, 얼마나 귀한 생명을 허무하게 잃어버렸는가에 대해 명확히 밝히고 있다는 사실이 이 책의 의미를 관통했다.

세월호 이후의 문학은 이러한 온정주의 금지선들, 그리고 시혜의 논리를 반동적으로 활용하는 감성정치들이 정당한 싸움을 마비시키지 못하도록, 고통받는 이들의 표상을 여러 방식으로 균열시킬 수 있어야 한다.(83쪽)

  평범한 내가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우왕좌왕 흘러가는 세태를 바라보는 것만으로 고통받고 있을 때 문학이 움직이고 있음을, 이러한 시도가 여전히 진행중이라는 사실이 얼마나 큰 위로가 됐는지 모른다. 세월호 유가족의 고통을 우리는 통감하는 것조차 버겁기에 문학으로 위로를 받고 문인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면서 잊지 않으려는 시도가 많이 드러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많은 사람이 국민의 생명을 구할 능력도 성의도 없는 정부에 실로 경악을 금치 못(129쪽)’했던 것처럼 이 나라의 국민으로 살아가야 한다면 앞으로 정부의 행보를 매의 눈으로 지켜봐야 할 것이다. 어이없게 사랑하는 가족을 잃고 이 나라에 무슨 해를 입히는 존재로 취급받으며, 자신들의 이야기를 들어달라고 극단적으로 호소해야만 하는 유가족들이 더 이상 아프지 않게 그들의 고통을 감싸 안아줬으면 좋겠다. 진정으로. 반드시. 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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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누나 마스다 미리 만화 시리즈
마스다 미리 지음, 박정임 옮김 / 이봄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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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과 함께 살고 생활하면서도 가족 중 누군가 특정대상을 위해 뭔가를 써 본적은 거의 없는 것 같다. 늘 함께 생활하다보니 따로 생각해서 일화를 끼적여본다는 것 자체가 쑥스럽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엄마에 관한 책을 읽으면 나도 엄마에 대해서 추억을 남겨볼까 싶고, 아이에 관한 책을 읽으면 흘러가는 시간들이 아까워 기록해두자 하면서도 쉽지 않음을 알고 있다. 같은 동성끼리도 이러할진대 성별이 다른 가족의 이야기를 한다는 게 쉽지 않을 거란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먼저는 상대방이 아무런 거리낌 없이 하는 이야기를 온전히 받아들이고 있는지 의문이 들 것 같았고 성별의 다름 자체에 의의를 두고 편협하게 흘러가진 않을까란 걱정이 앞섰다.

  장황하게 이 책에 대한 염려를 늘어놓는 건 그간 저자의 다른 작품들 속의 소소한 일상과 걸림돌 없이 흘러갔던 분위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전작과 같은 분위기를 기대했던 터라 누나와의 일상, 누나의 생각, 함께 살아가면서 이런저런 사유를 나누는 모습이 매끄럽지 못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제목에 너무 얽매이다보니 누나의 일거수일투족을 기록한 느낌도 받기도 했고 유머러스하면서도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모습이 보이지 않아 아쉽기도 했다. 읽는 데는 어떠한 무리도 없었고 남동생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누나의 모습이 꽤 세세하게 나왔음에도 왜 그런 느낌을 받았는지 모르겠다.

  그럼에도 누나와 남동생의 가식 없는 대화 속에서 성인 남녀의 진솔함과 솔직함을 엿보기도 했다. 서로의 사생활을 모두 털어놓다가도 어느 정도 선을 지니는 것 같은데, 둘의 대화를 들어보면 각자의 입장에서 동성의 심리에 대한 충고도 잊지 않는다. ‘넌 평생 2만 엔짜리 브래지어는 만져볼 수 없는 남자야.’라고 남동생에게 쿨하게 말할 수 있는 누나가 몇 명이나 될까? 나에게 남동생이 있다하더라도 진지 혹은 농담으로라도 그렇게 말할 수 없을 것 같은데 둘은 너무나 자연스럽게, 때론 남 같으면서도 남매 같다는 생각이 들게끔 대화하는 것을 보며 이게 이 책의 매력인가보다 싶었다.

  전작에 대한 만족도가 높아 혹은 전작과 비슷한 분위기를 원해서 읽고 나서도 좀 아쉽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하지만 곰곰 생각해보니 각각의 책이 지니고 있는 매력과 독자에게 전해오는 메시지가 다르듯이 이 책 또한 다른 매력이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남매간의 진솔함과 남녀 간의 심리 알아가기라는 낯간지러운 평은 그렇다 쳐도 인간 대 인간으로 마주보는 시선이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모든 시선이 그러했던 건 아니지만 나와 다름을 인정하고 어쩔 땐 그런 다름이 낯설다는 이유로 언쟁을 하기도 하지만 그것 또한 같은 핏줄이든 타인이든 함께 살아가는 데 필요한 과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기가 점점 힘들어지는 요즘, 내 주변 사람들을 그냥 편안하게 바라볼 수 있도록 조금이나마 도와준 책이 아니었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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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5-01-21 16: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느 정도 다 자랐고 알 것(?) 다 아는 남매가 수위가 높은 대화를 나누는 모습은 일본이나 우리나라나 똑같군요. ㅎㅎㅎ
 
생각의 일요일들
은희경 지음 / 달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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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 sns에 빠져 있던 때가 있었다. 짤막한 나의 생각을 올리고 즉각 반응해 오는 답글에 매력을 느껴 나의 소소한 일상부터 나누고 싶은 책의 구절까지 올리곤 했었다. 그러나 1분도 안되어 일렁이는 글 속으로 이내 파묻혀 버리는 나의 소소한 감정들에 진부함을 느꼈다. 잠시 한눈을 팔면 나 역시 지나치고 건너 뛰어 버리는 타인의 감정들. 때론 거대함에 두려움을 느끼기도 했고 작은 세상에 매력을 느끼기도 했지만 소모성을 이겨내지 못하고 접고 말았다. sns를 안 한지 2년이 넘었음에도 여전히 돌아갈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내 감정도 제대로 다스리지 못하면서 타인의 감정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무게감을 감당하지 못할 것 같아서다.

  이 책을 읽으니 나 또한 sns 세계에 빠져 있던 때가 생각났다. 개인적인 이유로 sns를 하지 않지만 좋아하는 이의 일상과 생각을 엿볼 수 있는 건 또 다른 매력이라는 걸 알고 있다. 꼭 답글을 남기지 않아도, 나에게 답장이 오지 않아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이들의 글. 지금껏 산문집을 출간한 적이 없기에 이 책이 가져다 준 의미는 저자의 팬들에게 좀 남다를 것 같다. sns에 올린 글들이 있고 인터넷에 연재를 하면서 남긴 느낌들, 그 외에 사소한 일상들, 그리고 저자의 내면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글들은 부담이 없다. 오히려 옆집에 사는 누군가와 수다를 떨 듯 가볍게 만나고 가볍게 지나칠 수 있는 글들이다. 그 지나침이 미안해지지 않는 건 나의 일상을 저자에게 들려줄 순 없지만 그의 일상을 자주 들여다보는 익숙한 느낌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런 익숙함 속에는 소소한 일들도 있지만 소설에 관한 진지한 이야기들도 있다. 그렇다고 그런 진지함이 묵직하다거나 어려운 것이 아니라 저자의 내면을 좀 더 깊이 들여다 본 느낌이다. 소설가의 내면을 들여다본다는 건 어느 정도 편견도 있고 틀에 박힌 어떤 형식을 떠올리기 마련인데(그게 뭘까?) 결국 소설도 일상과 얽혀있고 그 얽힘이 있기에 소설이 나올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소설을 쓰는 것은 결국 내 안에 있는 고통과 혼란과 변명과 독대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누군지 알고나 살자’는 마음으로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는 말도 그런 뜻일 테구요.(119쪽)

  인간 개개인의 내면에 담겨 있는 복잡 미묘한 감정들을 일반인인 우리는 어떠한 창작물로 드러내지 못한다. 소설가는 그런 내면을 하나의 창작물로 드러낼 수 있는 사람들이 아닐까란 생각을 갖게 된 것도 저자가 드러낸 생각을 통해서였다. 그래서 소설을 쓴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며, 그런 소설을 탄생시키는 인고의 시간들을 좀 더 존중해야겠다는 다짐도 들었다. 독자라는 이유만으로 늘 평가를 쉽게 하곤 했던 내 모습이 조금은 미안해지기도 했다.

  부담 없이 읽다 보면 저자의 나이를 가늠하기가 힘들어진다. 자신의 나이대로 살아간다는 건 어렵기도 하고 부담이 되기도 하는데 저자는 발랄한 소녀 같은 느낌이 들었다. 몇몇 어른 같은 소재를 잠시 제쳐둔다면 꿈 많은 말괄량이 소녀의 글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다. 그런 감성을 키울 수 있기에 소설을 쓸 수 있는 게 아닐까란 생각이 들었고 오히려 내가 더 애늙은이 같은 느낌도 받았다. 묵직한 글들에서 잠시 벗어나 책장을 휙휙 넘기며 편하게 읽다 보니 한동안 잊고 지냈던 일렁이는 타인의 글들이 잠시 그리워지기도 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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