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이트 오브 더 유니언
더글라스 케네디 지음, 조동섭 옮김 / 밝은세상 / 2014년 11월
평점 :
절판


실수. 이 단어를 떠 올릴때마다 4년 전 입사한 회사에서 생활했던 2년 동안의 시간이 여전히 나를 괴롭힌다. 분명 좋은 추억도 많은데 문득문득 지금도 얼굴이 붉어질 정도로 실수했던 순간들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일했던 곳에서 떠나 고향으로 돌아와 지금은 주부로 살고 있음에도 그때의 기억은 공간을 뛰어넘어 여전히 나를 낯 뜨겁게 만든다. 여전히 부끄러운 실수라고 해도 사회생활을 하다보면 누구나 겪게 되는 일이라고 치부할 수 있다. 하지만 내가 한 행동이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상처가 되는 실수라면 과연 내 스스로에게 너그러워질 수 있을까? 이 책 속의 한나가 남편이 집을 비운 사이 혼외정사를 한 것도 모자라 범법자를 국외로 도망치게 도와준 일 모두 한 순간의 실수에서 비롯되었다. 남편이 집을 비운 사이에 외간 남자를 딸의 집으로 보냈던 아버지의 실수. 그런 외간남자와의 욕망을 이기지 못한 실수. 어린 나이에 엄마가 되고 한 남자의 아내가 되어 자신의 삶은 잃어버린 채 살아가고 있다는 자괴감에 빠져 있던 실수. 다른 이유로 다가온 사람을 의심하지 못할 정도로 순진했던 실수. 유혹을 뿌리치기 힘들어 저질렀던 그때의 실수는 30년이 훌쩍 지난 뒤 한나의 삶을 송두리째 흔들어 버린다.

  한나는 빠듯한 생활의 시골의사 부인에서 존경받는 교사로 재직하고 있고 의사로 성공한 남편, 나름 반듯하게 자라 준 아이들과 어설프고 혼란에 빠져있던 초보주부가 아닌 어엿한 중년의 모습으로 나름 삶에 만족하며 살아가고 있다. 부부간의 뜨거운 열정도 없고 장성한 아이들과 끈끈한 유대감은 없지만 현재 주어진 환경과 일에 자긍심을 가지며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모든 가정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각각의 가정사가 있다는 말처럼 겉으로는 문제없어 보이는 한나의 가정사도 그다지 완만해 보이지는 않았다. 가장 가깝다고 생각하지만 속을 몰라 모호할 때가 많은 남편, 잘못된 신앙으로 보수적인 성향이 강한 아들, 펀드매니저로 성공한 듯 보이지만 늘 타인에게 의존하고 사랑을 갈구하는 딸까지 한나의 마음을 불안하게 하는 요인은 늘 있었다.

  1부에서는 한나가 자라온 환경과 결혼생활, 저슨이란 남자와의 잠깐의 외도와 그로 인한 협박과 범법자를 도운 뒤 그간의 불만을 정리하고 가정에 충실하겠다는 다짐 등 1960년대의 한나의 모습을 보여주며 당시 사회적인 모습도 상세한 배경으로 등장한다. 저슨이란 남자와 저지른 외도와 신혼생활에 대한 불만을 배우자 탓으로 돌리는 모습에 격한 동조를 할 순 없지만 저슨이 좀 더 괜찮은 사람이었다면 좋았을 거란 아쉬움이 있었다. 오글거리는 로맨스를 원하는 것도 아니고 추억 속에 담아둘 한때의 사랑을 갈구하는 것도 아니지만 숨통을 조여오던 시골 의사 아내라는 위치와 엄마라는 역할에서 잠시나마 해방시켜주었던 게 저슨과의 대화였기 때문이다. 당시 미국 사회의 혼란을 보여주는 낯선 정치적인 내용과 통쾌하게 웃을 수 없는 유머가 있었지만 그들의 대화 속에서 문학 얘기가 많이 나와 흥미로웠다. 마음이 잘 맞는 이성을 만나면 흥분되고 금방 마음을 빼앗기듯이 한나가 저슨에게 잠시 흔들렸던 마음도 이해는 가지만 외도를 한 행동은 그녀의 손을 들어줄 수 없었다. 2부에서는 유부남과의 스캔들 후 실종 된 딸로 인해 언론의 뭇매를 맞고 있던 시점에서 저슨은 한나와의 외도한 내용이 포함된 책을 출판해 그녀를 더 곤경에 빠뜨리고 만다.

 

  한나가 위험에 처할수록 책장은 쉼 없이 넘어갔고 벼랑 끝까지 몰린 그녀의 처지가 답답했지만 오히려 더 차분해져갔다. 나름 평탄했던 한 사람의 인생과 가정이 순식간에 무너지는데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고 안 좋은 일은 동시에 일어난다는 말을 믿을 수밖에 없게 만드는 수많은 일들에도 이상하게 흥분된 분노가 일지 않았다. 그렇다고 한나가 저지른 과오 때문이라는 생각도 들지 않아 인과응보라고 냉철하게 말하고 싶은 기분도 아니었다. 왜 한나에게 그런 일들이 한꺼번에 일어나는지, 누군가 한나의 인생을 망치기로 작정한 것만 같아 안타까울 뿐이었다. 그런 와중에도 한나를 온전히 옹호할 수도 책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무조건 나쁘다고 비방할 수도 없었다. 한나도 한 번의 외도를 저질렀지만(어쨌든 수긍할 수 없는 실수지만) 이후로 가정과 일에 충실했고, 한나가 가장 힘들 때 비겁한 방법으로 그녀 곁을 떠났다 다시 용서를 구한 남편,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로 한나와 인연을 끊었다 잘못을 뉘우친 아들, 유부남과의 떠들썩한 스캔들로도 모자라 낙태, 쇼핑중독, 의존적인 사랑에 찌들어갔지만 그 모든 혼란 속에서 자신의 부족한 면을 인정하고 다시 인생을 시작해보려는 딸까지 어느 누구도 완벽하지 않았기에 온전히 미워할 수 없었는지도 모른다. 딸의 실종, 언론의 마녀사냥, 남편과의 이혼과 아들의 절연까지 모자라 직장까지 잃고 베스트프렌드는 암에 걸린 그 모든 상황 속에서도 한나는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거란 근거 없는 차분한 확신이 들었다.

  폭탄처럼 터지는 일련의 사건 속에서도 한나의 편이 되어주던 아버지와 절친이 있어서 그녀는 견뎠는지도 모른다. 딸의 행방을 적극적으로 도와주는 형사의 등장과 변호사와 함께 저슨의 거짓말과 맞서기로 다짐했을 때 이제 다시 제자리로 돌아올 때라는 사실을 직감했다. 그리고 거짓말처럼 많은 오해가 풀렸고 애타게 찾던 딸의 소식도 들려오고 아들과 남편의 사과도 받고 직장에도 복귀되었지만 예전과 같은 삶을 기대하긴 힘들었다. 그러기엔 한나와 그의 가족들에게 너무 많은 일들이 일어났고 깨져버린 믿음 속에서 새롭게 깨달아가는 삶의 한 단면을 적나라하게 맛보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내 인생을 돌아볼 때 가장 후회되는 게 뭔지 아니? 내 스스로 행복해질 수 있는 일을 만들지 않았다는 거야. (355쪽)

  한나의 엄마가 알츠하이머병 진단을 받기 전에 한나에게 쏟아낸 이 말이 한나에게도, 이 소설을 마주하고 있는 우리에게도 모두 해당되는 것 같아 씁쓸했다. 한나의 엄마도 행복한 결혼생활을 했다고 말할 수 없고 한나도 결국 중년의 나이에 자신의 결혼생활도 그러했음을 인정하게 되었지만 ‘스스로 행복해질 수 있는 일’을 만들 기회가 이제야 찾아왔다고 생각했다. 그 대가가 너무 가혹하고 잔인해서 한나는 물론이고 보는 이들까지 허망하게 만들긴 했지만 말이다. 한나의 힘들었던 신혼시절 유일하게 이야기가 통했던 마을의 도서관 사서가 ‘ 우리가 인생에서 마주치게 되는 가장 두터운 장벽은 사실 스스로 쌓은 장벽이라고 하잖아요.’ 라고 했던 말이 다시 곱씹어지는 건 한나 스스로도 그런 장벽을 어느 정도 쌓고 살아왔기에 세상과의 장벽을 한꺼번에 마주하게 된 건 아닌지 생각해보게 되었다.

  조금은 식상하게 보이는 소재들이 등장해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던 내가 책의 말미에서 잠시 눈물을 흘릴 정도로 나를 훑고 간 감정의 변화들은 다양했다. 결혼 2년차인 나도 생활이 만족스럽지 못할 때면 배우자 탓을 하기 일쑤였고 아이를 키우고 또 다른 아이를 잉태하고 있어서인지 한나의 장성한 아이들이 전혀 다른 존재인양 갈등을 일으키는 것을 보고 지나칠 수도 없었다. 강경할 정도로 배타적이고 한나를 비난하던 아들이 자신을 못 보게 하겠다던 저슨의 협박을 뒤늦게 알아차리고 사과하는 모습을 보며 부모에게 자식은, 자식에겐 부모가 무언인지에 대해서도 많이 생각하게 되었다. 나도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살아보니 부부가 다정다감하기도, 아이들을 사랑으로 양육하기 힘들다는 사실을 늘 느끼고 있다. 결혼을 하지 않았더라면 공감하지 못했을 많은 부분들이 느껴져 다행이었다고나 할까? 이제부터라도 어떤 일이든 행복해질 수 있는 일들을 만들고 싶다. 결과를 바라기보다 시작부터 행복한 일들. 사실 그게 멀리 있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일상에 잠식되어 나를 가둔 채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에 지금껏 실천하기가 힘들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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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5-01-23 19: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355쪽 문장이 가슴에 와 닿습니다. 행복하지 않다고 쓸데없이 내 자신을 남의 삶과 비교하고, 불행의 원인을 남 탓 주변 탓으로 돌린 제 자신이 부끄럽군요.

안녕반짝 2015-01-24 06:42   좋아요 0 | URL
저도 그런적 많았어요.
문학을 통해서 그러지 말아야겠다는 다짐을 많이 하게 돼요.
정말 소중한 건 현재의 나이고, 내 삶의 주인 역시 나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