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그리운 것은 늘 멀리 있는 걸까? - 살아가는 힘이 되어준 따뜻한 기억들
박정은 지음 / 책읽는수요일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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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잠들면 후다닥 컴퓨터를 켠다. 나의 유일한 쉼터 공간인 블로그에 머물러있기도 하고 리뷰를 올리기도 하고 시간이 더 생기면 잠깐 책을 보기도 한다. 하루 종일 아이와 함께 있다 보니 아이가 낮잠 자는 시간이 나에겐 꿀 같은 휴식의 시간이다. 이런 시간이 충족되지 못하면 아이가 잠든 깊은 밤에 나머지 일들을 한다. 낮에 보지 못한 책을 더 집중해서 읽거나 밀린 리뷰를 쓰거나. 그렇게 간단한 일만 해도 시간은 훌쩍 가고 늘 수면부족으로 아침에 아이보다 일찍 일어나지 못하는 엄마가 되고 만다. 그렇더라도 나만의 유일한 이 시간을 쉽게 버리지 못하고 있다. 곧 둘째가 태어나면 절대 이런 시간을 가질 수 없을 거라는 불안감도 한 몫하고 있지만 그런 시간을 갖고 있을 때 민낯으로 나를 만나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그리고 조금은 행복하다는 생각이 드는 시간. 그래서 밤마다 이렇게 책 주변을 어슬렁거리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 의미에서 저자가 쏟아낸 그림들과 일상에서 느끼는 생각들에 공감이 가는 부분이 많았다. 그림을 그릴 때가 가장 행복하고, 그림 그리기에 집중하고 있다 보면 갑자기 삐- 소리가 나면서 그 시간이 오롯이 자신만의 시간인 것처럼 느껴진다는 말. 내가 책을 읽거나 리뷰를 쓰고 있을 때 경험해본 것이라 마냥 신기했다. 나만 그런 느낌을 가지고 있는 게 아니며 내가 알지 못하는 누군가도 그런 시간을 소중해하며 행복해 한다는 것에 뭔지 모를 동질감을 느꼈다. 나는 저자처럼 그림을 그리는 능력이 있는 것도 아니고 글을 잘 쓰는 것도 아니기에 그야말로 지극히 개인적인 행위에 지나지 않지만 이 시간들이 쌓이다보면 아주 먼 훗날 나에게도 뭔가가 있지 않을까란 막역한 희망을 가끔 품어보기도 한다. 그런 희망이 민망해서 금세 배시시 웃어버리며 생각을 털어버리지만 저자의 그림과 글을 보면서 꼭 창작물로 이어지지 않아도 내 일상은 소중하고 내가 하는 생각들이 헛되며 부질없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서 좋았다.

어쩌면 기억을 그리는 행위는 멀게만 느껴지는 그리움의 순간으로 나를 데려다 주는지도 모른다. 닿지 않는 곳을 향해서 있는 힘껏 손을 뻗고 또 뻗어보는 중인지도 모르겠다. (6쪽)

 

  내가 책을 읽고 소소한 리뷰를 남기는 순간이 어쩌면 ‘멀게만 느껴지는 그리움의 순간으로 나를’ 이동시키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통해서 얻게 되는 새로운 생각이나 내 안에 약간은 미화되어 기억되고 있는 과거의 추억들. 그리고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미래에 반드시 나에게 좋은 일이 있을 것 같은 막연한 희망들이 현재 내가 바라고 있는 그리움의 총체인지도 모르겠다. 현재에 만족하지 못해 과거나 미래의 것에 얽매어 그리워만 한다면 문제가 있겠지만 긍정적인 그리움을 드러낸다면 그것 또한 일상의 활력이 되고 삶의 목적이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어쩌면 너무나 평범하게 느껴지는 저자의 일상과 생각들을 드러내지 않고 내면에만 간직하고 있었다면 우리는 저자의 내면을 들여다볼 기회가 없었을 것이다. 꼭 드러내는 것만이 능사라는 말이 아니라 내면에서 하고 싶은 말이 맴돌 때 그것을 드러내는 행위. 그런 행위의 드러냄으로 미지의 타인에게 공감을 이끌어내고 용기를 줄 수 있는 것. 그것이 자신이 가진 능력을 최대한 끌어낼 수 있는 최고의 행위가 아닐까란 생각이 든 것이다.

 

  그림을 그릴 때 행복하고, 소소한 결혼생활을 드러내며, 좋아하는 것들을 나열하는 모습이 나와 동떨어져 있는 이야기가 아니라고 느꼈기에 더 나의 모습과 대입해서 이런 저런 생각을 끌어당겼는지도 모른다. 삶의 모습은 누구와 꼭 닮을 순 없지만 타인의 삶을 들여다보면서 내가 가진 것에 감사하고 가족이나 지인에게 털어놓지 못한 이야기에 대한 대답을 대신 들을 때도 있기에 나와 다른 삶을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일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타인의 삶을 내 삶에 접목시켜 나만의 색깔을 드러낸다면 그것보다 더한 효과는 없겠지만 꼭 그렇지 않더라도 같은 느낌을 가질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동시대를 살아가고 있다는 것에 왠지 모를 위로를 받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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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5-02-07 11: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서평쓰기도 일상의 모습을 사진 찍고 블로그에 공개하는 행위와 같다고 생각해요. 사진을 찍는 것도 무심코 흘러가는 일상을 기억하기 위한 것이잖아요. 서평은 책 내용과 감상을 기억할 수 있는 활자로 이루어진 사진입니다. ^^
 
미성년 - 상 열린책들 세계문학 108
도스또예프스끼 지음, 이상룡 옮김 / 열린책들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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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얼마 만에『미성년』을 완독했는지 모르겠다. 상, 하 권으로 나뉘어 있어서 상권을 꽤 오랫동안 읽었음에도 하권 또한 훨씬 나중에 집어 들었다. 그리곤 또 오랜 시간을 들여 겨우 읽어냈다. 도끼 옹의 전집을 순서대로 읽겠다는 다짐을 한 뒤부터 읽는 속도가 더뎌 지더니 이제야 겨우『미성년』을 끝냈다. 이제 대망의『까라마조프 씨네 형제들』만 남아 있는데 이 책을 펼치면 얼마의 시간이 걸릴지 가늠할 수 없기에 펼치는 것조차 겁이 날 지경이다. 그럼에도 도끼 옹의 작품에 매료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분명 존재한다. 내 능력이 부족해 또렷한 의견도, 전문적인 고견도 드러낼 수 없지만 굉장히 소소한 이유로 나는 도끼 옹의 작품을 좋아한다.

  굉장히 오랜 시간을 들여 이 책을 완독했다고 했지만 몇 번의 끊김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책을 펼칠 때마다 집중이 잘 되었다. 앞의 내용은 잘 생각이 나지 않고 등장인물이 정리된 면을 계속 들춰가며 읽었음에도 매일매일 도끼 옹의 책을 읽고 있었던 기분이 들었다. 특히 이 작품은 도끼 옹의 5대 장편 중에서도 완성도도 떨어지고 산만하다는 이유로 문학적 평가가 절하되고 있는데도 잘 읽혔다. 물론 도끼 옹 첫 작품으로 이 책을 선택해서 읽는 이가 있다면 분명 이게 뭐냐며 책을 덮어버릴 것이다. 하지만 오랫동안 도끼 옹 작품을 만나오면서 특유의 수다스러움과 등장인물이 처한 상황을 잊어버릴 정도로 긴 대화나 내면을 바라보고 있다 보면, 어느새 익숙해짐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되어 잘 읽힌다고 착각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더군다나 이 작품은 장편이고 사생아인 주인공 돌고루끼의 심경의 변화라든지 종종 이해할 수 없는 행동들이 다른 사람들이 인정한 것처럼 더 산만하게 만들긴 했다. 책을 펼칠 때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난 듯한 기분이 들기도 했고, 타인의 이야기를 그의 입을 통해서 듣고 있음에도 정갈하다는 느낌을 갖지 못했다. 그러다 마지막 200페이지 정도를 남겨놓고 또 지지부진하게 진도를 못 빼고 있다가 완독하고 싶어 우연히 꺼내들었는데 순식간에 읽어버릴 정도로 이 책이 그간 향해 온 결말을 제대로 만난 기분이었다. 일반적인 상식으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아버지와의 갈등과 비현실적인 사랑 다툼, 그 외의 인물들과 복잡하게 얽히고설켜 있는 이런저런 사건들이 나를 혼란스럽게 했던 게 사실이었다. 하지만 어렵게 아버지와 마주 앉아 아버지 내면 속의 이념을 전해 들으면서 돌고루끼는 극적으로 아버지와의 화해를 하게 된다. 그 이념이라는 것이 독자인 나를 설득시킬만한 내용은 아니었지만 돌고루끼에게는 아버지를 원망하고 비난하며 살았던 세월을 납득시킬만한 내용이었음은 분명하다.

내 앞에 펼쳐지는 전혀 다른 삶, 새로운 지평이 바로 내 <이념>이다. 그것은 이전의 것과 외형적으로는 유사하지만 그 내용은 완전히 다른 것이기 때문에 지금 그것을 인식하기란 도저히 불가능하다. (971쪽)

  돌고루끼가 이런 이념을 갖게 된 건 여러 가지 일들과 시간의 흐름도 있었지만 아버지와의 대화의 영향도 받았다. 그래서 이 소설의 마지막 장에 주인공이 쓴 수기가 ‘혼란스럽던 지나간 시대를 그려 보려는 미래의 예술 작품을 위해서 적절한 소재가 될 것이’ ‘새로운 시대란 항상 그런 방황하는 젊은 영혼들에 의해서 창조되기 때문입니다.’라는 말은 이 복잡다단하고 산만한 이야기를 대변하고 있다. 옮긴이는 ‘일상적이고 평면적인 삶의 모습 속에서 인간이 겪게 되는 존재의 목적에 대한 개인적 성찰이나 존재의 의미 탐구를 그 주제로 삼고 있다.’라고 했지만 내 능력으로는 그런 주제를 또렷이 건져 올릴 재간이 없다. 어렴풋하게나마 옮긴이의 이야기를 통해서 띄엄띄엄 끼워 맞췄던 이야기를 하나로 이어 붙였고 왜 나는 또끼 옹의 작품을 좋아하고 읽을 수밖에 없는지 정도만 겨우 다시 인지하게 되었다.

  그런 인지라는 것이 잠깐 다른 생각을 하고 나면 금세 잊히기 일쑤지만『까라마조프 씨네 형제들』을 꺼내서 완독하고 도끼 옹이 좋아 아주 오래 전 무선본으로 구입해 놓은 그의 전집을 재독할 날을 기다리고 있다. 재독을 다짐하고 책을 펼칠 때는 부디 이렇게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게 계획할 생각이고 더 즐겁게 읽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두 번 읽다 보면 책을 읽고 있으면서도 도끼 옹 작품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해석하지 못했던 나의 무지가 조금은 나아지지 않을까 하는 조금은 허황된 희망을 가져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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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란 무엇인가 - 진정한 나를 깨우는 히라노 게이치로의 철학 에세이
히라노 게이치로 지음, 이영미 옮김 / 21세기북스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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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타 지역에서 살 때 사귀던 친구에게 의외의 말을 들었다. 나는 그 친구를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 내가 한 행동에 대해 깊이 담아두고 있지 않았는데 2년이 훌쩍 지난 지금도 그 친구는 내가 한 행동에 대해 상세히 기억하고 마음에 담아두다 나에게 모두 토로했다. 그런 얘기를 꺼내게 한 나의 행동이 먼저는 잘못이지만 갑작스레 그런 말들을 듣고 나니 마음이 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내 인간관계가 이것밖에 안되나 하는 자괴감부터 내가 그렇게 큰 잘못을 한 것일까란 생각까지 꼬리에 꼬리를 물어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며칠이 지나도 그 친구가 한 말들이 가슴에 콕콕 박혀 괴로웠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 친구를 그렇게 분노케 할 만큼의 잘못이 아니란 결론이 났다. 그렇다고 그 친구를 비난할 생각은 없지만 관계를 회복해 이어나가고 싶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개인individual'이라는 말의 어원은 ‘나눌 수 없다’는 의미이며 이런 문제를 깊이 생각해 보기 위해 ‘분인dividual'이라는 새로운 단위를 도입한, 저자의 이 책을 떠올리지 않았더라면 괴로움이 무척 오래갔을 것이다. 누구나 여러 면의 ‘나’의 모습을 가지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보며 의문을 갖고, 나는 어떤 사람인지 진지하게 생각했던 적이 한번쯤은 있을 것이다. 나 또한 그런 일이 잦았는데 어떠한 결론이 나지 않아 이중적이고 다중적인 모습을 가진 것에 부정적인 의미를 가지고 금세 의기소침해지고 말았다. 사람에 따라 나의 단면이 다르게 드러나는 것은 당연한데 일관되지 못하다고 스스로를 비난하고 때로는 가식적이고 내 편할 대로 사람들을 사귀어 나간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저자의 에세이를 통해 ‘분인’이라는 이미지를 구축해 나가고 내 모습에 대입해 보니 그제야 그간의 고민들이 조금은 해갈 된 기분이 들었다.

그렇다고 인간은 결국 타인의 낯빛을 살피며 ‘진정한 나’와 ‘표면적인 나’를 구분해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타자와 더불어 살아간다는 것은 억지로 강요당한 ‘가짜 나’로 산다는 의미가 아니다. 그것은 너무나 씁쓸한 사고방식이다. (13쪽)

  이런 일을 겪고 난 다음에 이 책을 읽어서인지 자책감이 훨씬 덜했다. 저자의 말에 따르면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통해 ‘분인’이 이뤄지고 발견하게 되는데 그렇기에 ‘분인’은 여러 가지며 동일한 모습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나는 그 친구에게 좋은 ‘분인’의 모습으로 인식되지 않았을 뿐이고 나는 그 친구의 마음을 제대로 읽지 못하고 무디게 반응했다는 결론이 났다. 물론 다른 이들과 좋은 ‘분인’의 모습을 이어가고 있기도 하기에 사람에 따라 내가 다르게 인식되는 게 당연하다는 결론이 났다. 저자의 이론에 완전히 동조할 수 없더라도 저자가 드러낸 ‘분인’이라는 개념을 이해하지 못하고 받아들이지 못했다면 동일하지 못한 나의 ‘분인’에 대해 오랜 시간 괴로워했음은 자명했다.

  처음에는 저자가 내세운 ‘분인’이라는 개념을 이해하고 인식하면서도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했었다. 내 안에 존재하는 ‘분인’을 인정하면 그간 내가 저지른 이런저런 잘못들에 너그러워지고 타인에게 다르게 인식되는 내 모습에 편안함을 느꼈었다. 하지만 그런 사실을 가볍게 인지하고 똑같은 실수를 저지를까봐, 그럴 수도 있지 않느냐며 가볍게 넘어갈까봐 조금은 걱정이 되었던 게 사실이다. 이런 나의 걱정을 인지한 듯 저자는 그런 ‘분인’의 모습을 여러 각도에서 독자에게 보여주고 있었고 그간 저자가 써 낸 작품 속 인물들을 통해서도 드러낸다. 국내에 출간 된 그의 작품을 모두 소장하고 있지만 모두 다 읽은 건 아니기에 저자가 드러낸 인물들에 완전한 동조를 할 순 없어도 어느 정도 공감은 할 수 있었다. 오히려 여러 각도에서 ‘분인’이라는 개념과 함께 나란 존재에 대한 자각을 일깨워줘서인지 다양한 나를 만나고 그 가운데서 나에 맞는 이미지를 구축하고 대입했던 것 같다. 한 가지 개념으로 일관하고 자기주장만 펼쳤다면 거부감이 들어 겉핥기로 읽어버렸을 텐데 여러 시선이 오히려 도움이 되었다.

나는 분인의 집합체로 존재한다. 그것들은 모두 타자와의 만남의 산물이며, 커뮤니케이션의 결과다. 타자가 없다면 나의 다양한 분인도 없고 요컨대 지금의 나라는 인간도 존재하지 않는다. (127쪽)

  저자 또한 다양함 속의 ‘나’를 인식하게끔 도와주었기에 자신의 생각이 모두 옳고 그대로 받아들이라는 뜻은 전하지 않았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갖고 있는 여러 가지 모습의 ‘나’를 구체화해서 받아들이도록 도와준 것이다. ‘개인은 분명 나뉠 수 없다. 그러나 타자와는 명료하게 나뉜다.(206쪽)’고 했듯이 ‘개인이라는 개념의 본질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점’을 납득해 달라는 부탁처럼 나에 대해서, 그리고 나에게 비춰진 타인의 다양한 모습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저자도 전문가의 논의와는 동떨어진 스케치 수준의 내용이라고 밝혔지만, 소설가로 살아오면서 혹은 평범한 한 인간의 모습으로 살아오면서 했을 고민들이 짙게 묻어나 진솔하게 느껴진 부분들이 많았다. 온전히 자신의 생각을 주입하는 방식도 아니었고, 나 또한 이 책을 읽으면서 내 나름대로의 생각을 구축하느라 도움이 되었던 부분도 고개를 갸웃거리는 부분도 있었다. 하지만 또 다른 나 ‘분인’을 발견하고 인정한 것만으로도 내 삶이 훨씬 평안해진 것 같아 이 책을 만난 것만으로도 고마움을 느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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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장소] 2015-02-06 06: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위로가 될지..이미 안녕반짝˝님 스스로도
정리한 그 관계를..말예요..
한 사람의 기억 속엔 (분명 서운함 원망등을 토로한 시점등도 있겠지만)시간이란 이상해서 ..곧 , 그와 동시에 그가 주었던 다른 친밀한 기억들도 떠오르게 해준다는 겁니다.절대 악이..절대 선이 종이한장이 차이같음(?)을 종종 접하곤 하는데..마치 그런 것처럼요. 그 분은 후회하고 있을겁니다.그러며.자신의 다른 분인을 자책하고 있겠죠..좋았던 기억을 잊었던 ...미움에 싸여있던 순간들이 얼마나 허망한지를...그러며..이 모든건..다 지나간다..는것.
 
파랑이 진다 작가정신 일본소설 시리즈 25
미야모토 테루 지음, 서혜영 옮김 / 작가정신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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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는 동안 내가 마치 주인공이 되어 대학 4년 동안 테니스만 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대학을 다녀보지 않아 대학생활이 어떤지 직접 피부에 와 닿지는 않았지만, 친구들의 대학생활을 옆에서 지켜보고 함께 대학식당이라든지 학교 행사들을 경험하고 들어서 어렴풋이나마 기억을 떠올려 보았다. 내가 직접 학업에 뛰어든 게 아니라서 친구들의 학교생활의 깊숙한 부분까지 알 수는 없지만 20대 초반의 치기어리고 어설픈 내면과 부딪히며 그 시절을 보냈던 건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 특히나 이성에 눈을 뜨면서 열병처럼 나를 핥고 지나갔던 짝사랑과 첫사랑의 기억들이 이 소설을 읽는 내내 나를 지배했었다.

 

  자기가 원하는 학교와 과를 가는 학생이 얼마나 될까? 내 주변에서도 여전히 학교와 학과를 선택해서 가는 사람보다 성적에 맞춰서 가는 학생들이 더 많다. 이 책의 주인공 료헤이도 이런 저런 이유로 처음 생긴 대학에 입학하기로 마음먹었으면서도 등록하기를 망설인다. 그러다 입학절차를 위해 학교에 갔다 자신과 같은 목적으로 온 나쓰코에게 마음을 빼앗긴다. 그리고 그녀 때문에 충동적으로 입학절차를 밟는다. 무엇에 홀린 듯 그렇게 대학 입학을 결정지었지만 그건 시작에 불과할 뿐, 료헤이가 대학 4년 내내 학업보다 테니스에 집중할 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거기다 테니스로 알게 된 친구들과 나름 끈끈한 우정을 맺고 이런저런 일에 휘말리기도 하며, 얽히고설킨 짝사랑의 실태를 알게 되고, 친구의 죽음을 목도하기도 한다.

 

  나 또한 내가 스무 살 적에 친하게 지내고 그네들의 캠퍼스까지 따라가 대학생 아닌 대학생 흉내를 내던 경험을 떠올려보면 피식 웃음만 나온다. 허세보다는 무기력감이 더 지배했었고 친구들의 대학생활이 부럽다기보다는 과연 우리는 더 어른이 되면 무엇일 될까에 짓눌려 있었던 것 같다. 대학을 다니는 친구나 알바로 근근이 생활하면서 방황하는 나나 별반 다를 게 없다는 사실이 놀라웠고 그랬기에 료헤이가 겪는 대학생활에 대한 진부함과 테니스에 빠질 수밖에 없는 상황, 자신이 의도하지 않게 이런저런 일에 휘말리게 되는 상황에 어느 정도 동질감이 느껴졌다.

그런데 우리 말이야. 그동안 그저 바보처럼 테니스만 했지? 책도 안 읽고 영화도 안 보고 공부도 안 하고 차에 빠지지도 않고 여자아이와 놀지도 않고 그저 테니스만 쳐댔어. 난 어차피 이렇게 된 거 나머지 이 년 동안도 철저하게 테니스만 할 거야. 내 앞에 매치포인트가 있다 이거야. 안 그래? (274~275쪽)

 

  료헤이가 가네코의 꼬드김에 넘어가서 테니스부에 들긴 했지만 힘들게 테니스 코트장을 만들고, 맘에도 없던 테니스를 하게 되면서 욕심도 내고 경기에 진지하게 임하는 자세를 보면서 전혀 바보 같다는 생각이 들진 않았다. 또렷한 목표가 있어서 대학에 들어가고 공부를 하고 취업준비를 하는 빡빡한 일정이 아닌 것이 오히려 그들을 더 인간적으로 보게 만들었다. 방황을 해도 대학생이라는 특권일 때 할 수 있는 게 아니냐며 내 스스로를 합리화 시키면서 그들을 바라봤던 게 뭔지 모를 위안이 되었던 것 같다.

 

  료헤이를 비롯한 주변의 친구들이 겪는 일들이 썩 건전하거나 그들에게 큰 영향을 주진 않았지만 테니스를 통해 얻은 건 꽤 많았다. 대학 4년을 버티게 해주었고 그 안에서 소중한 만난 소중한 친구들. 그리고 자신이 짝사랑하던 나쓰코가 점점 멀어지고 있음에도 그녀에 대한 마음을 끝내 지울 수 없었던 일들까지 모두 테니스와 연관이 깊었다. 그랬기에 대학생들의 이야기, 그들의 4년의 기록을 보는 듯한 기분이 드는 이 책을 읽으면서도 마치 내가 그런 삶을 살아온 것처럼 묘한 기분이 들었다. 졸업할 시기가 되고 조금씩 사회로 나아가야 할 상황이 되었을 때 처음 입학했을 때보다 좀 더 세파에 단 듯한 모습조차도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료헤이는 아무도 없는 테니스부실로 돌아와 보자기에 싸인 색지를 손으로 살그머니 쓰다듬었다. 그 순간 다쓰미 게이노스케라는 인간의 마음이 료헤이 안에 어둡게 자리 잡고 있던 슬픔을 깨끗이 지워버렸다. 엄청난 맑은 기운이 단숨에 더러움을 흘려보내듯이. (467쪽)

 

  결국 돌고 돌아 나쓰코와의 긍정적인 가능성도 엿볼 수 있었고 은사님으로 인해 마음속에 자리 잡은 슬픔과 더러움이 씻겨나갔던 료헤이를 보면서 그 모든 게 일상적으로 흐르는 삶이 아닐까란 생각이 들었다. 그들을 보면서 온전히 동조할 수는 없었지만(타인의 삶을 온전히 동조하는 게 가능할 것 같지도 않지만) 현재의 내 삶도 여전히 흐리고 있으며 아무런 일이 일어난 것 같지 않아 보여도 한 획을 긋고 있음을 깨닫자 괜히 숙연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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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에 나는 없었다 애거사 크리스티 스페셜 컬렉션 1
애거사 크리스티 지음, 공경희 옮김 / 포레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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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긴 세상이 그런 거지. 붙어 있어야 할 때는 그만두고, 내버려두어야 할 때는 매달리고. 한순간 인생이 너무나 멋져서 이게 현실일까 믿기지가 않다가, 이내 지옥 같은 고민과 고통 속을 헤매고! 상황일 잘 풀릴 때는 이 순간이 영원할 것 같은데 - 그런데 그렇지가 않지 - 나락으로 떨어질 때는 이제 절대 위로 올라가 숨쉬지 못할 거란 생각이 들잖아. 그런 게 인생이잖니? (25쪽)

 

 

능력 있고 자상한 남편, 나름 잘 키워 온 세 남매가 있는 중년 여성 조앤에게는 이 말이 해당되지 않았다. 막내딸이 갑작스레 아프다는 소식을 듣고 급히 영국에서 바그다드로 향하고 사막에 고립되기 전까지는 말이다. 먼 길을 왔던 것처럼 순조롭게 기차가 자신을 안락한 집으로 데려다 줄 거라 의심하지 않았던 그녀는 기차가 연착되면서 일정이 꼬이고, 읽을 책도 소일거리도 없는 곳에서 오로지 할 수 있는 게 생각밖에 없자 기묘한 의심들을 하게 된다. 자신과는 완전히 다른 삶을 살아가고 있는 동창을 우연히 만나고 그녀에게서 이상한 말을 들었던 것부터, 자신이 바그다드로 향했을 때 기차역에서의 남편의 뒷모습, 세 아이들이 자신을 대하는 태도 등 그 모든 것을 고립된 사막에서 다시 곱씹게 된다.

 

 

생각밖에 할 게 없을 때 수많은 생각이 사람의 머릿속을 헤집다 떠나가며 몇 가지의 생각은 머무르게 되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의심으로 시작된 조앤의 생각들은 또 다른 의심을 낳게 되고 결국 그녀가 도달한 진실이란 것에 기겁하게 된다. 마치 자신은 온전히 사막 한 가운데 세워두고 영혼이 빠져 나오듯 한 걸음 뒤에서 자신의 삶을 돌아보니 그간 허울처럼 살아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것. 조앤이 도달한 결론은 그랬다. 자신에게 다정다감했던 남편이 자신보다 못한 여자와 사랑에 빠졌다는 것. 세 아이들 중 누구 하나도 자신에게 진실하지 못했으며 조앤 또한 자신이 설계해온 삶에 어느 것 하나 제대로 된 결과물이 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간과한 것이다. 남편과의 결혼생활이, 자식을 기른다는 게 계획대로 되는 것은 아니지만 늘 자신의 생각대로 이끌어나가길 바랐던 조앤은 사막 한가운데서 그제야 자신을 온전히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그 모든 일들을 곱씹어 본 후에 자신은 철저히 외로운 삶을 살았고 남편이 하고 싶어 하는 일 하나조차도 못하게 만드는 여자였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그런 깨달음이 온 몸을 감싸자 어서 집으로 돌아가 남편에게 모든 것을 털어놓고 사과하고 전혀 다른 사람이 되기를 다짐한다. 사막에서의 기묘했던 의심의 결과물이란 것이 그녀에게 충격적이고 받아들이고 변화하기 힘든 일들이었지만 그곳에서의 굳은 다짐을 잊지 않기로 한 조앤. 그런 조앤의 바람대로 모든 것이 착착 움직여 주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지만 지금껏 조앤이 그러했던 것처럼 자신의 뜻대로 인생은 흘러가지 않았고 그간 그녀가 달고 살아왔다고 생각했던 고독과 외로움도 결국 떨쳐내지 못한 채 남편의 충격적인 독백이 이 소설의 결말을 아우른다.

 

 

몇 날 며칠 자신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 말고는 할 일이 아무것도 없다면 자신에 대해 뭘 알게 될까? (201쪽)

 

 

분명 조앤은 자신밖에 생각할 일이 없는 상태에서 그간의 삶을 돌아보며 새로운 사실을 추측해갔고 진실에 다가갔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자신이 변화하기를 바랐다. 그렇지만 집에 도착하는 순간, 그녀는 예전의 그녀로 돌아오고 만다. 그리고 남편의 독백으로 조앤에게 앞으로 펼쳐질 운명을 어렵지 않게 예감할 수 있게 되었다.

 

 

여행지에서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의심과 함께 추리를 해가는 그녀를 보면서 내밀한 내면을 들여다 봐왔다고 생각했다. 남부러울 것 없이 중산층으로 살아온 그녀의 내면에 어떠한 사고와 인생론이 담겨 있는지 세세하게 들여다봤다. 하지만 결국 자신이 만든 틀 속에 고립된 그녀를 보고 있자니 혹시 내 삶도 그렇게 되어버리는 것은 아닌지 덜컥 겁이 났다.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가정을 꾸려나가야겠단 생각과 동시에 내 자신을 잃어버리지 않아야겠단 다짐을 하게 되었다. 특히 허울 속에 나를 가두는 어리석은 일은 하지 말고 순간순간을 진실되게 살아간다면 최소한 조앤처럼 고립은 겪게 되지 않을 거라고 말이다.

 

 

에거서 크리스티의 명성은 너무나 익숙하다. 하지만 아직까지 그녀의 작품을 읽어보지 못했다. 그래서 필명으로 발표한 이 작품이 나에겐 첫 작품이다. 추리소설의 여왕으로 불리는 그녀의 기존 작품과 비교할 수 있는 재량이 내겐 없지만, 추리소설로 치부하지 않고 문학적인 요소를 갖추면서도 긴장의 끈을 놓치지 않게 만들었던 이 작품을 통해 그녀의 작품을 두루두루 읽어보고 싶은 욕망이 일었다. 순식간에 읽어버린 작품이었던 만큼 여운이 강하게 남아서인지 필명으로 발표한 다른 작품들도 꼭 완독하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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