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란 무엇인가 - 진정한 나를 깨우는 히라노 게이치로의 철학 에세이
히라노 게이치로 지음, 이영미 옮김 / 21세기북스 / 2015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얼마 전 타 지역에서 살 때 사귀던 친구에게 의외의 말을 들었다. 나는 그 친구를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 내가 한 행동에 대해 깊이 담아두고 있지 않았는데 2년이 훌쩍 지난 지금도 그 친구는 내가 한 행동에 대해 상세히 기억하고 마음에 담아두다 나에게 모두 토로했다. 그런 얘기를 꺼내게 한 나의 행동이 먼저는 잘못이지만 갑작스레 그런 말들을 듣고 나니 마음이 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내 인간관계가 이것밖에 안되나 하는 자괴감부터 내가 그렇게 큰 잘못을 한 것일까란 생각까지 꼬리에 꼬리를 물어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며칠이 지나도 그 친구가 한 말들이 가슴에 콕콕 박혀 괴로웠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 친구를 그렇게 분노케 할 만큼의 잘못이 아니란 결론이 났다. 그렇다고 그 친구를 비난할 생각은 없지만 관계를 회복해 이어나가고 싶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개인individual'이라는 말의 어원은 ‘나눌 수 없다’는 의미이며 이런 문제를 깊이 생각해 보기 위해 ‘분인dividual'이라는 새로운 단위를 도입한, 저자의 이 책을 떠올리지 않았더라면 괴로움이 무척 오래갔을 것이다. 누구나 여러 면의 ‘나’의 모습을 가지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보며 의문을 갖고, 나는 어떤 사람인지 진지하게 생각했던 적이 한번쯤은 있을 것이다. 나 또한 그런 일이 잦았는데 어떠한 결론이 나지 않아 이중적이고 다중적인 모습을 가진 것에 부정적인 의미를 가지고 금세 의기소침해지고 말았다. 사람에 따라 나의 단면이 다르게 드러나는 것은 당연한데 일관되지 못하다고 스스로를 비난하고 때로는 가식적이고 내 편할 대로 사람들을 사귀어 나간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저자의 에세이를 통해 ‘분인’이라는 이미지를 구축해 나가고 내 모습에 대입해 보니 그제야 그간의 고민들이 조금은 해갈 된 기분이 들었다.

그렇다고 인간은 결국 타인의 낯빛을 살피며 ‘진정한 나’와 ‘표면적인 나’를 구분해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타자와 더불어 살아간다는 것은 억지로 강요당한 ‘가짜 나’로 산다는 의미가 아니다. 그것은 너무나 씁쓸한 사고방식이다. (13쪽)

  이런 일을 겪고 난 다음에 이 책을 읽어서인지 자책감이 훨씬 덜했다. 저자의 말에 따르면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통해 ‘분인’이 이뤄지고 발견하게 되는데 그렇기에 ‘분인’은 여러 가지며 동일한 모습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나는 그 친구에게 좋은 ‘분인’의 모습으로 인식되지 않았을 뿐이고 나는 그 친구의 마음을 제대로 읽지 못하고 무디게 반응했다는 결론이 났다. 물론 다른 이들과 좋은 ‘분인’의 모습을 이어가고 있기도 하기에 사람에 따라 내가 다르게 인식되는 게 당연하다는 결론이 났다. 저자의 이론에 완전히 동조할 수 없더라도 저자가 드러낸 ‘분인’이라는 개념을 이해하지 못하고 받아들이지 못했다면 동일하지 못한 나의 ‘분인’에 대해 오랜 시간 괴로워했음은 자명했다.

  처음에는 저자가 내세운 ‘분인’이라는 개념을 이해하고 인식하면서도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했었다. 내 안에 존재하는 ‘분인’을 인정하면 그간 내가 저지른 이런저런 잘못들에 너그러워지고 타인에게 다르게 인식되는 내 모습에 편안함을 느꼈었다. 하지만 그런 사실을 가볍게 인지하고 똑같은 실수를 저지를까봐, 그럴 수도 있지 않느냐며 가볍게 넘어갈까봐 조금은 걱정이 되었던 게 사실이다. 이런 나의 걱정을 인지한 듯 저자는 그런 ‘분인’의 모습을 여러 각도에서 독자에게 보여주고 있었고 그간 저자가 써 낸 작품 속 인물들을 통해서도 드러낸다. 국내에 출간 된 그의 작품을 모두 소장하고 있지만 모두 다 읽은 건 아니기에 저자가 드러낸 인물들에 완전한 동조를 할 순 없어도 어느 정도 공감은 할 수 있었다. 오히려 여러 각도에서 ‘분인’이라는 개념과 함께 나란 존재에 대한 자각을 일깨워줘서인지 다양한 나를 만나고 그 가운데서 나에 맞는 이미지를 구축하고 대입했던 것 같다. 한 가지 개념으로 일관하고 자기주장만 펼쳤다면 거부감이 들어 겉핥기로 읽어버렸을 텐데 여러 시선이 오히려 도움이 되었다.

나는 분인의 집합체로 존재한다. 그것들은 모두 타자와의 만남의 산물이며, 커뮤니케이션의 결과다. 타자가 없다면 나의 다양한 분인도 없고 요컨대 지금의 나라는 인간도 존재하지 않는다. (127쪽)

  저자 또한 다양함 속의 ‘나’를 인식하게끔 도와주었기에 자신의 생각이 모두 옳고 그대로 받아들이라는 뜻은 전하지 않았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갖고 있는 여러 가지 모습의 ‘나’를 구체화해서 받아들이도록 도와준 것이다. ‘개인은 분명 나뉠 수 없다. 그러나 타자와는 명료하게 나뉜다.(206쪽)’고 했듯이 ‘개인이라는 개념의 본질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점’을 납득해 달라는 부탁처럼 나에 대해서, 그리고 나에게 비춰진 타인의 다양한 모습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저자도 전문가의 논의와는 동떨어진 스케치 수준의 내용이라고 밝혔지만, 소설가로 살아오면서 혹은 평범한 한 인간의 모습으로 살아오면서 했을 고민들이 짙게 묻어나 진솔하게 느껴진 부분들이 많았다. 온전히 자신의 생각을 주입하는 방식도 아니었고, 나 또한 이 책을 읽으면서 내 나름대로의 생각을 구축하느라 도움이 되었던 부분도 고개를 갸웃거리는 부분도 있었다. 하지만 또 다른 나 ‘분인’을 발견하고 인정한 것만으로도 내 삶이 훨씬 평안해진 것 같아 이 책을 만난 것만으로도 고마움을 느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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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장소] 2015-02-06 06: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위로가 될지..이미 안녕반짝˝님 스스로도
정리한 그 관계를..말예요..
한 사람의 기억 속엔 (분명 서운함 원망등을 토로한 시점등도 있겠지만)시간이란 이상해서 ..곧 , 그와 동시에 그가 주었던 다른 친밀한 기억들도 떠오르게 해준다는 겁니다.절대 악이..절대 선이 종이한장이 차이같음(?)을 종종 접하곤 하는데..마치 그런 것처럼요. 그 분은 후회하고 있을겁니다.그러며.자신의 다른 분인을 자책하고 있겠죠..좋았던 기억을 잊었던 ...미움에 싸여있던 순간들이 얼마나 허망한지를...그러며..이 모든건..다 지나간다..는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