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그리운 것은 늘 멀리 있는 걸까? - 살아가는 힘이 되어준 따뜻한 기억들
박정은 지음 / 책읽는수요일 / 2015년 1월
평점 :
절판


아이가 잠들면 후다닥 컴퓨터를 켠다. 나의 유일한 쉼터 공간인 블로그에 머물러있기도 하고 리뷰를 올리기도 하고 시간이 더 생기면 잠깐 책을 보기도 한다. 하루 종일 아이와 함께 있다 보니 아이가 낮잠 자는 시간이 나에겐 꿀 같은 휴식의 시간이다. 이런 시간이 충족되지 못하면 아이가 잠든 깊은 밤에 나머지 일들을 한다. 낮에 보지 못한 책을 더 집중해서 읽거나 밀린 리뷰를 쓰거나. 그렇게 간단한 일만 해도 시간은 훌쩍 가고 늘 수면부족으로 아침에 아이보다 일찍 일어나지 못하는 엄마가 되고 만다. 그렇더라도 나만의 유일한 이 시간을 쉽게 버리지 못하고 있다. 곧 둘째가 태어나면 절대 이런 시간을 가질 수 없을 거라는 불안감도 한 몫하고 있지만 그런 시간을 갖고 있을 때 민낯으로 나를 만나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그리고 조금은 행복하다는 생각이 드는 시간. 그래서 밤마다 이렇게 책 주변을 어슬렁거리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 의미에서 저자가 쏟아낸 그림들과 일상에서 느끼는 생각들에 공감이 가는 부분이 많았다. 그림을 그릴 때가 가장 행복하고, 그림 그리기에 집중하고 있다 보면 갑자기 삐- 소리가 나면서 그 시간이 오롯이 자신만의 시간인 것처럼 느껴진다는 말. 내가 책을 읽거나 리뷰를 쓰고 있을 때 경험해본 것이라 마냥 신기했다. 나만 그런 느낌을 가지고 있는 게 아니며 내가 알지 못하는 누군가도 그런 시간을 소중해하며 행복해 한다는 것에 뭔지 모를 동질감을 느꼈다. 나는 저자처럼 그림을 그리는 능력이 있는 것도 아니고 글을 잘 쓰는 것도 아니기에 그야말로 지극히 개인적인 행위에 지나지 않지만 이 시간들이 쌓이다보면 아주 먼 훗날 나에게도 뭔가가 있지 않을까란 막역한 희망을 가끔 품어보기도 한다. 그런 희망이 민망해서 금세 배시시 웃어버리며 생각을 털어버리지만 저자의 그림과 글을 보면서 꼭 창작물로 이어지지 않아도 내 일상은 소중하고 내가 하는 생각들이 헛되며 부질없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서 좋았다.

어쩌면 기억을 그리는 행위는 멀게만 느껴지는 그리움의 순간으로 나를 데려다 주는지도 모른다. 닿지 않는 곳을 향해서 있는 힘껏 손을 뻗고 또 뻗어보는 중인지도 모르겠다. (6쪽)

 

  내가 책을 읽고 소소한 리뷰를 남기는 순간이 어쩌면 ‘멀게만 느껴지는 그리움의 순간으로 나를’ 이동시키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통해서 얻게 되는 새로운 생각이나 내 안에 약간은 미화되어 기억되고 있는 과거의 추억들. 그리고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미래에 반드시 나에게 좋은 일이 있을 것 같은 막연한 희망들이 현재 내가 바라고 있는 그리움의 총체인지도 모르겠다. 현재에 만족하지 못해 과거나 미래의 것에 얽매어 그리워만 한다면 문제가 있겠지만 긍정적인 그리움을 드러낸다면 그것 또한 일상의 활력이 되고 삶의 목적이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어쩌면 너무나 평범하게 느껴지는 저자의 일상과 생각들을 드러내지 않고 내면에만 간직하고 있었다면 우리는 저자의 내면을 들여다볼 기회가 없었을 것이다. 꼭 드러내는 것만이 능사라는 말이 아니라 내면에서 하고 싶은 말이 맴돌 때 그것을 드러내는 행위. 그런 행위의 드러냄으로 미지의 타인에게 공감을 이끌어내고 용기를 줄 수 있는 것. 그것이 자신이 가진 능력을 최대한 끌어낼 수 있는 최고의 행위가 아닐까란 생각이 든 것이다.

 

  그림을 그릴 때 행복하고, 소소한 결혼생활을 드러내며, 좋아하는 것들을 나열하는 모습이 나와 동떨어져 있는 이야기가 아니라고 느꼈기에 더 나의 모습과 대입해서 이런 저런 생각을 끌어당겼는지도 모른다. 삶의 모습은 누구와 꼭 닮을 순 없지만 타인의 삶을 들여다보면서 내가 가진 것에 감사하고 가족이나 지인에게 털어놓지 못한 이야기에 대한 대답을 대신 들을 때도 있기에 나와 다른 삶을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일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타인의 삶을 내 삶에 접목시켜 나만의 색깔을 드러낸다면 그것보다 더한 효과는 없겠지만 꼭 그렇지 않더라도 같은 느낌을 가질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동시대를 살아가고 있다는 것에 왠지 모를 위로를 받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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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5-02-07 11: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서평쓰기도 일상의 모습을 사진 찍고 블로그에 공개하는 행위와 같다고 생각해요. 사진을 찍는 것도 무심코 흘러가는 일상을 기억하기 위한 것이잖아요. 서평은 책 내용과 감상을 기억할 수 있는 활자로 이루어진 사진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