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성년 - 상 열린책들 세계문학 108
도스또예프스끼 지음, 이상룡 옮김 / 열린책들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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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얼마 만에『미성년』을 완독했는지 모르겠다. 상, 하 권으로 나뉘어 있어서 상권을 꽤 오랫동안 읽었음에도 하권 또한 훨씬 나중에 집어 들었다. 그리곤 또 오랜 시간을 들여 겨우 읽어냈다. 도끼 옹의 전집을 순서대로 읽겠다는 다짐을 한 뒤부터 읽는 속도가 더뎌 지더니 이제야 겨우『미성년』을 끝냈다. 이제 대망의『까라마조프 씨네 형제들』만 남아 있는데 이 책을 펼치면 얼마의 시간이 걸릴지 가늠할 수 없기에 펼치는 것조차 겁이 날 지경이다. 그럼에도 도끼 옹의 작품에 매료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분명 존재한다. 내 능력이 부족해 또렷한 의견도, 전문적인 고견도 드러낼 수 없지만 굉장히 소소한 이유로 나는 도끼 옹의 작품을 좋아한다.

  굉장히 오랜 시간을 들여 이 책을 완독했다고 했지만 몇 번의 끊김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책을 펼칠 때마다 집중이 잘 되었다. 앞의 내용은 잘 생각이 나지 않고 등장인물이 정리된 면을 계속 들춰가며 읽었음에도 매일매일 도끼 옹의 책을 읽고 있었던 기분이 들었다. 특히 이 작품은 도끼 옹의 5대 장편 중에서도 완성도도 떨어지고 산만하다는 이유로 문학적 평가가 절하되고 있는데도 잘 읽혔다. 물론 도끼 옹 첫 작품으로 이 책을 선택해서 읽는 이가 있다면 분명 이게 뭐냐며 책을 덮어버릴 것이다. 하지만 오랫동안 도끼 옹 작품을 만나오면서 특유의 수다스러움과 등장인물이 처한 상황을 잊어버릴 정도로 긴 대화나 내면을 바라보고 있다 보면, 어느새 익숙해짐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되어 잘 읽힌다고 착각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더군다나 이 작품은 장편이고 사생아인 주인공 돌고루끼의 심경의 변화라든지 종종 이해할 수 없는 행동들이 다른 사람들이 인정한 것처럼 더 산만하게 만들긴 했다. 책을 펼칠 때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난 듯한 기분이 들기도 했고, 타인의 이야기를 그의 입을 통해서 듣고 있음에도 정갈하다는 느낌을 갖지 못했다. 그러다 마지막 200페이지 정도를 남겨놓고 또 지지부진하게 진도를 못 빼고 있다가 완독하고 싶어 우연히 꺼내들었는데 순식간에 읽어버릴 정도로 이 책이 그간 향해 온 결말을 제대로 만난 기분이었다. 일반적인 상식으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아버지와의 갈등과 비현실적인 사랑 다툼, 그 외의 인물들과 복잡하게 얽히고설켜 있는 이런저런 사건들이 나를 혼란스럽게 했던 게 사실이었다. 하지만 어렵게 아버지와 마주 앉아 아버지 내면 속의 이념을 전해 들으면서 돌고루끼는 극적으로 아버지와의 화해를 하게 된다. 그 이념이라는 것이 독자인 나를 설득시킬만한 내용은 아니었지만 돌고루끼에게는 아버지를 원망하고 비난하며 살았던 세월을 납득시킬만한 내용이었음은 분명하다.

내 앞에 펼쳐지는 전혀 다른 삶, 새로운 지평이 바로 내 <이념>이다. 그것은 이전의 것과 외형적으로는 유사하지만 그 내용은 완전히 다른 것이기 때문에 지금 그것을 인식하기란 도저히 불가능하다. (971쪽)

  돌고루끼가 이런 이념을 갖게 된 건 여러 가지 일들과 시간의 흐름도 있었지만 아버지와의 대화의 영향도 받았다. 그래서 이 소설의 마지막 장에 주인공이 쓴 수기가 ‘혼란스럽던 지나간 시대를 그려 보려는 미래의 예술 작품을 위해서 적절한 소재가 될 것이’ ‘새로운 시대란 항상 그런 방황하는 젊은 영혼들에 의해서 창조되기 때문입니다.’라는 말은 이 복잡다단하고 산만한 이야기를 대변하고 있다. 옮긴이는 ‘일상적이고 평면적인 삶의 모습 속에서 인간이 겪게 되는 존재의 목적에 대한 개인적 성찰이나 존재의 의미 탐구를 그 주제로 삼고 있다.’라고 했지만 내 능력으로는 그런 주제를 또렷이 건져 올릴 재간이 없다. 어렴풋하게나마 옮긴이의 이야기를 통해서 띄엄띄엄 끼워 맞췄던 이야기를 하나로 이어 붙였고 왜 나는 또끼 옹의 작품을 좋아하고 읽을 수밖에 없는지 정도만 겨우 다시 인지하게 되었다.

  그런 인지라는 것이 잠깐 다른 생각을 하고 나면 금세 잊히기 일쑤지만『까라마조프 씨네 형제들』을 꺼내서 완독하고 도끼 옹이 좋아 아주 오래 전 무선본으로 구입해 놓은 그의 전집을 재독할 날을 기다리고 있다. 재독을 다짐하고 책을 펼칠 때는 부디 이렇게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게 계획할 생각이고 더 즐겁게 읽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두 번 읽다 보면 책을 읽고 있으면서도 도끼 옹 작품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해석하지 못했던 나의 무지가 조금은 나아지지 않을까 하는 조금은 허황된 희망을 가져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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