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만을 보았다
그레구아르 들라쿠르 지음, 이선민 옮김 / 문학테라피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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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한번쯤 내 안의 이야기를 해보는 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곤 한다. 그러나 이내 고개를 흔들며 나에게는 그런 용기가 없다고 결론짓고 내 안의 어둡고 무거운 것들을 감춘 채 긍정적인 면모를 드러내려 애쓰며 살아가려 한다. 그러다 한 번씩 의도치 않게 그런 것들이 튀어나오면 당황하기보다 여전히 내 안에 살아있는 그런 암흑을 보며 좌절하곤 한다. 그래서 어쩌면 그것들을 감추려 문학 속으로 도피하고 타인의 삶을 통해 대리만족을 얻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착각에 빠지기도 한다. 그런데 내가 내지 못한 용기를 고스란히 드러낸 작품을 만날 때면 오히려 마음이 편해지곤 한다. 전혀 내용을 예상하지 못했던 이 작품처럼 말이다.

  주인공은 앙투안은 자신은 어떠한 용기도 없으며 비겁하다고 끊임없이 고백한다. 처음엔 자신을 낮춰서 그런 게 아닌가 했지만 그가 쏟아낸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그 말이 사실이라는 사실과 함께 솔직하게 자신을 드러내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럼에도 그의 고백들이 싫지 않았다. 단순히 자신이 살아 왔던 삶, 어릴 적 쌍둥이 여동생 중 한 명의 죽음으로 인해 엄마의 부재로 인한 고통을 쏟아내는 방식이 평범하지 않았다. 굉장히 어수선하고 복잡할 수도 있는 이야기를 산만한듯 하면서도 하고 싶은 얘기를 모두 하고 있었다. 있는 사실만을 나열할 수 있는 고백이 아닌 삶의 순간순간에 느꼈을 고뇌와 고통, 고민, 번민, 기쁨이 그대로 드러나 쉽게 책장을 넘길 수가 없었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하나의 메시지처럼 관통하고 있는 게 사랑이란 생각이 문득 들었다. 사랑에 서툴고, 표현에 약하고, 사랑받지 못하고 사랑하지 못했기에 그 모든 일들이 일어났을지도 몰랐다. 앙투안의 어머니와 아버지는 서로 깊이 사랑해서 결혼하고 앙투안과 쌍둥이 자매를 낳았지만 그 중 한 아이가 죽었을 때, 결혼생활에 종지부를 찍었다. 앙투안의 엄마는 그런 상황을 견디지 못했고 결국 집을 나갔다. 사랑해서 결혼은 했지만 그 사랑을 어떻게 유지해야 하는지, 어려움이 닥쳤을 때 어떻게 해쳐나가야 하는지, 자신들이 겪는 불행만큼 아이들에게도 고스란히 전달된다는 것을 그들은 몰랐다. 그래서 남겨진 앙투안과 동생은 마음속에 상처와 고뇌를 담은 채 성장했고 앙투안은 그런 부모를 닮지 않으려 했지만 결국 더 못난 부모가 되었다는 것, 자신의 아이들이 삐뚤게 자라도 지켜보지 못한 처지에 놓이고 말았다는 사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었다.

  어릴 적 성장과정이 사람의 인생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앙투안의 고백과 좌절과 고통으로 충분히 알게 되었다. 결혼을 하고 두 아이를 두고, 보험회사에 근무하면서 나름대로 인정을 받고 있지만 그의 내면은 언제나 불안했다. 그가 품고 있는 불완전한 삶이 언제 폭발할지 모를 것 같았다. 그래서 그는 창녀를 찾아가기도 하고, 평소와 달리 일처리를 감정적으로 처리해 회사에서 해고를 당하기도 한다. 거기다 아내는 바람을 피우고 그런 현실과 여전히 자신을 괴롭히는 어릴 적 기억들, 그리고 암에 걸려 힘들어하는 아버지를 보며 끊임없는 생각의 고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러다 그는 끔찍한 일을 저지르고 만다. 잠들어 있는 자신의 딸 조세핀의 얼굴을 총으로 쏘고 만다. 그 다음으로 아들을, 그리고 자신을 향해 방아쇠를 당기려 했지만 실행하지 못하고 조세핀에게 엄청난 고통과 상처만 남기고 말았다.

  내면이 불안했던 그가 그런 일을 저지르고 나서 3년 동안 정신병원에 갇혀 있는 동안 아내는 다른 남자와 아이들과 함께 새로운 가정을 꾸렸다. 그리고 그가 병원에서 나왔을 때 늘 꿈꾸었던 것처럼 이름도 알기 힘든 먼 타국의 호텔에서 지내기 위해 떠난다. 하지만 현실은 혼자였고, 그는 범죄자이며 휴가차 그곳으로 온 것이 아닌 도망자로, 한낱 하찮은 일꾼으로 전락한 상태였다. 그가 딸에게 한 행동 때문에 나머지 가족들이 고통 받고 절대 용서받을 수 없다는 걸 알기에 그는 낯선 땅에서 침묵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었다. 그가 한 행동은 어떠한 이유로든지 정당화 할 수 없지만 늘 불안했던 그의 내면의 폭발이 그런 행동으로 드러남으로써 오히려 그의 내면이 평안해 진 것 같았다.

  이렇게 우울하면서도 결코 유쾌하지 않은 내용들로 채워져 있음에도 이 소설을 쉽게 간과할 수 없는 이유는 환상 속에나 있을 법한 이야기가 아닌 고개를 돌리면 누군가 살아내고 있을 그런 삶을 제대로 보았기 때문이 아닐까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앙투안을 아빠가 아닌 개자식으로 부르면서 엉망으로 된 자신의 얼굴과 마주하며 오랜 치료를 해야 했던 조세핀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것, 절대로 용서하지 않을 것 같은 아빠를 찾아가는 모습에서 뭔지 모를 찡한 감동을 느꼈다.

  그래서 ‘그러니까 인생이란 결국 힘겹더라도 살아갈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라는 소설의 마지막 문장이 그간의 이야기를 모두 마무리 짓는 것 같았다. 어쩜 앙투안의 모든 이야기를 다 듣고 그의 내면의 변화를 경험하면서도 희망이란 걸 가질 수 없었는데 조세핀이 자신을 찾아오고 인생이란 살아갈 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왜 그 모든 이야기를 쏟아냈는지 알 것 같기도 했다. 삶이 순탄하게 흘러가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누구나 나름대로의 고충과 힘듦을 안고 살아간다. 그러면서 삶이 팍팍하다고 녹록치 않다고 불평을 하곤 하지만 앙투안과 그가 만난 주변 사람들, 가족들을 보면서 예기치 못한 삶의 메시지를 얻은 기분이다.

 

  절망스런 상황에 놓여 있더라도 모든 것이 불행하지 않으며, 삶을 이어가고자 하는 의지가 있을 때 다시 한 번 기회가 온다는 것. 이 소설을 마주하면서 내내 불안했던 사랑을 봐 왔다면 마지막엔 이제야 새롭게 시작된 사랑으로 새롭게 시작할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 서툰 발걸음이 상처주고 고통스럽게 했던 과거의 시간을 충분히 치유할 수 있을 거라 믿으며 현재 내가 할 수 있는 사랑은 무엇인지 곰곰 생각해 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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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가게
장 퇼레 지음, 성귀수 옮김 / 열림원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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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장에 읽지 않은 책이 엄청나다 보니 한 권의 책이 선택되어 읽히기까지도 참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오랫동안 내 책장에서 김치처럼 묵혀지고 있는 책이 있는가하면 내 손에 닿자마자 바로 읽히는 책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소설은 정말 우연한 계기로 읽게 되었다. 이웃 블로그에서 책에 관한 기사를 보게 되었고 이 책을 추천하다는 말 한마디에 무려 7년 동안 묵혀 있었던 이 책을 꺼낸 것이다. 그리고 반나절 만에 읽어 버렸다. 묵혀 있던 시간이 미안할 만큼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고 차라리 지금 읽은 게 나에겐 시기가 더 맞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을 선물 받았을 때가 7년 전인데 그때 나의 독서 성향을 봤을 땐 있는 그대로 소설을 읽지 못했을 것 같다. 선물한 지인이 블랙 코미디라는 말을 했었고 그런 장르를 좋아하지 않을뿐더러 소설임에도 ‘자살’이라는 단어가 들어가 영 내키지 않았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이제야 이 책을 읽어보니 오히려 이 소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그간 다양한 소설을 접했고, 내 취향이 아니더라도 이런 소설도 있으며 소재에 모든 걸 묻어버리기보다 다른 면을 볼 수 있어서가 아니었나 싶다.

 

  그도 그럴 것이 소재가 참 독특하다. 자살을 돕는 물품을 파는 가게라니. 그 가게를 운영하는 부부는 자신의 아이들이 우울하고 죽음에 관해 가까이 다가갈 때 더 좋아하며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다만 콘돔을 실험하다 생긴 셋째 아이 알랑만이 예외다. 자살가게에, 그리고 그 가게를 운영해가는 가족 구성원에서 어울리지 않게 밝은 알랑은 늘 핀잔을 듣기 마련이다. 명복을 빌어야 하는 가게임에도 반갑게 인사를 건네고 늘 희망을 주는 듯한 웃음과 밝음이 손님들에게 전염되어 물건을 사지 않을까 부모는 늘 노심초사다. 그러거나 말거나 알랑은 특유의 발랄한 모습으로 자신의 삶을 영위해가고 서서히 가족들에게 긍정적인 면들이 스며들어 간다.

 

  알랑을 잠시 제쳐두고라도 자살가게의 모습은 흥미롭다. 자살을 도울 수 있는 물건을 파는 가게라는 설정에도 불구하고 섬뜩하거나 잔인하지 않다. 말 그대로 한편의 코미디다. 자살을 하기 위해 아무렇지 않게 가게를 찾아 새로운 물품을 찾는 손님들과 그런 손님을 대하는 부부와 아이들의 모습이 극히 자연스럽다. 철저히 비즈니스로 생각하고 움직이는 부부의 모습을 따라 아이들도 가게의 매출을 올리려 돕는 모습에서 비난은커녕 물품이 좀 독특할 뿐 일반적인 상인의 모습을 엿볼 수 있을 정도였다. 그 물건들이 모두 자살을 돕는 것일 뿐, 그 물건을 사용해보고 싶다거나 그 물건을 사용하고 정말 다른 세상으로 간 사람들이 불쌍하다는 생각조차 들지 않는 한 편의 블랙 코미디였다.

삶이란 있는 그대로의 삶 자체를 말하는 거예요. 있는 그대로의 가치가 있는 것이죠! 서툴거나 부족하면 서툴고 부족한 그대로 삶은 스스로 담당하는 몫이 있는 법입니다. 삶에 그 이상 지나친 것을 바라선 안 되는 거예요. 다들 그 이상을 바라기 때문에 삶을 말살하려 드는 겁니다. (154쪽)

 

  손님에게 물건을 하나 더 팔아보겠다며 온갖 감언이설을 뱉어내던 알랑의 가족이, 알랑으로 인해 이런 긍정적인 말을 하게 된 것은 놀라운 변화였다. 손님에게 이런 말을 하면서 스스로 왜 이렇게 변했는지 놀라는 모습에서 한 명의 긍정적인 힘이 어떤 변화를 가져오는지 철저히 지켜볼 수 있었다. 거기다 알랑의 아빠는 알랑을 보며 ‘인간의 고뇌를 달래는 가족치료사’라는 표현을 떠올리며 처음에는 골치 덩어리였던 아이가 자신의 가족에게 긍정적인 힘을 미친다는 것을 인정하기도 한다.

 

  그렇게 독특한 가게를 꾸려나가고 그 안에서 부정적인 면만 키워나가던 가족이 알랑으로 인해 긍정적인 사고를 갖게 되면서 해피엔딩으로 끝날 줄 알았다. 지극히 자연스러웠고 뻔한 결말이라고 핀잔을 줄 필요조차도 없어 보였다. 그러나 저자는 마지막에 충격적인 결말로 냉정하게 알랑의 의무를 표현해 버렸다. 겨우 가족들이 긍정적인 마음을 갖게 되고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새롭게 뜨게 되었는데 알랑은 그걸로 자신의 의무를 다했다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순식간에 읽어버린 소설이었지만 그런 흡입력과 독특한 소재만큼이나 결말이 믿겨지지 않았다. 여전히 알랑의 선택에 고개를 젓고 싶어지고 이건 너무 잔인한 코미디가 아니냐고 저자에게 따지고 싶기까지 하다. 하지만 자살가게에서 팔았던 물품이며, 그 가족이 손님들에게 장사수완을 부렸던 일들이며, 많은 사람들이 실패해야 자살가게가 더 운영이 잘 되었던 사실을 생각하면 알랑의 선택에 무조건적인 불평만을 쏟아낼 수 없다는 게 아이러니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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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일, 스미레
모리사와 아키오 지음, 이수미 옮김 / 샘터사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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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껏 살아 온 내 인생에서 가장 큰 굴곡이 있었던 시기는 언제였을까? 이미 지나온 과거의 기억은 희미해져서 그때는 죽을 만큼 힘들었을 일들도 지금은 그럭저럭 지나왔노라고 미화되고 있다. 그래도 굳이 꼽아보자면 한참 방황했던 20대 초반이 아니었을까? 내 멋대로 혼자서 서울에 가서 살았던 6개월의 시간. 오히려 다시 고향으로 내려와서 그 전보다 더 심한 방황을 하고 끝날 것 같지 않았던 어둠의 터널을 겨우 빠져 나왔었다. 그래서 나의 20대 초반은 기억하기 싫고 돌아가고 싶지도 않은 시절이다. 진부하게 이런 얘기를 하게 된 것은 이 책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 때문일 것이다. 주인공 재휘와 선영에 비하면 내가 생각하는 인생의 굴곡은 너무나 미미했다.

 

  종종 내가 속한 세계보다 더 위로 올라가고 싶다는 욕망은 있어도 더 아래로 내려가거나 그런 세계를 알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나와는 너무나 동떨어진, 나와 다른 사람들이 살아가는 지하 세계가 존재하고 있다는 것은 알지만 그런 세계를 알아버리면 내 삶조차 암울해 질 것 같아 알아가는 것조차도 피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도박에 천재적인 능력을 갖췄지만 거대한 재력과 권력을 가진 강회장이란 인물에 의해 살해 된 아버지, 그리고 병으로 세상을 떠난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재휘는 용팔이란 인물에 의해 길러진다. 그 역시 도박판을 떠나지 못하는 사람이었고 재휘의 아버지와 인연이 있어 그의 아들을 거둔다. 우연히 도박판에 재휘를 데려갔다가 아버지와 같은 천재성을 발견하고 그 세계를 머물며 근근이 살아가는 피가 섞이지 않은 부자. 강회장에 의해 아버지의 자살을 목도하고 몸까지 팔릴 뻔한 여고생 선영과 만나게 되면서 그들은 더 큰 암흑의 세계로 빠져드는 것 같았다.

 

  재휘와 선영은 같은 목표를 품고 있었다. 부모의 원수를 갚기 위해 강회장을 무너뜨리는 것. 하지만 재휘는 도박을 하면 할수록 강회장에 대한 복수가 전부가 아님을 알게 되지만 어머니의 보험금까지 모두 잃고 자신의 인생까지 망치게 한 아버지에 대한 분노를 강회장에게 꼭 되갚아 주려 하는 선영은 오히려 그 반대가 된다. 강회장에게 복수하기 위해 포커를 가르쳐 달라 하고 어쩔 수 없이 선영에게 포커를 가르쳐 준 재휘는 그녀의 복수심 때문에 큰 위험에 빠지고 만다.

 

  도박에 관한 소설을 몇 편 읽어봤지만 그 세계가 정직하고 밝은 분위기를 풍기는 곳이 아님을 알기에 처음엔 이 소설 또한 그러한 이야기라고 하기에 내심 책을 펼치기가 꺼려졌다. 그런데 나의 생각과는 달리 책장이 쉼 없이 넘어갔고 엄청난 흡인력에 이끌려서 책을 펼치자마자 순식간에 읽어버렸다. 재휘와 선영이 과연 강회장에게 복수할 수 있을지 결과도 궁금했지만 도저히 당해낼 수 없을 것 같은 강회장에게 어떻게 복수를 한다는 것인지 가늠이 되질 않았다. 그러다 선영의 섣부른 행동으로 복수는커녕 재휘를 위험에 빠뜨리고 자신은 용팔의 도움으로 겨우 해외로 도피했을 때는 나 또한 짜증이 최고조에 달했다. 몰입해서 읽다 보니 선영의 경솔함이 원망스러웠고 강회장의 몰락을 내심 바라며 험악한 도박 세계를 알아가던 나에게는 김빠지는 순간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강회장에게 삶을 망친 사람이 한두 명이 아니어서인지 선영에게 또 다른 기회가 찾아왔고 다시 한 번 재휘를 구하고 강회장에게 복수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온다. 그 기회를 어떻게 잡을 것인지, 재휘가 자신 때문에 강회장에게 묶이면서 끊어져버린 연인의 끈을 다시 되찾을 수 있을지 궁금해서 도저히 끝을 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내겐 여전히 낯선 도박의 세계. 그 안에서 인간의 밑바닥과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처절함을 맛보았지만 그럼에도 흡인력 있게 이 모든 이야기를 끌어당기는 힘에 놀랐다. 때론 신파적인 면도 있었고 어쩌면 조금은 뻔한 결말일지도 모르나 이만한 흡인력을 갖추면서 이야기를 엮어나가기란 쉬운 게 아님을 알기에 그 부분을 가장 높이 사고 싶었다. 누구에게나 자신의 삶이 있고 그 삶을 자신만의 것으로 만들어 갈 의무와 희망이 있지만 원치 않은 운명으로 인해 그 모든 걸 포기해야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도 알고 있다. 재휘와 선영은 그런 운명을 정면으로 맞닥뜨렸지만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며 돌파하려 하고 있었다. 그 방법이 도박이란 사실이 내키진 않았지만 그 당시에는 그게 최선이었다는 것을 알기에 포기하지 않고 나름대로 삶을 진행시킨 그들이 새삼 대견해 보였다. 나라면 진작에 내 인생 자체를 포기해버렸을 막막했던 운명. 그들을 통해 그 운명을 이길 힘이 자신 안에 있다는 것을 알고 나자 현재 내가 가지고 있는 자잘한 고민들과 번뇌가 조금은 가벼워진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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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5-03-21 01: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은 일본 작가 책인데, 한국이름이 많이 나오나봐요, 좋다 하시니 나중에 읽어보고 싶어요, 안녕반짝님,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하양물감 2015-03-21 06:25   좋아요 1 | URL
책이 잘못 선택된것같은데요

서니데이 2015-03-21 06:27   좋아요 0 | URL
아, 그런가요, 저는 아직 이 책을 읽지 않아서 쓰신 글만 읽었거든요, 말씀해주셔서 감사해요
 
너는 모른다
카린 지에벨 지음, 이승재 옮김 / 밝은세상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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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반전이 있는 결말 때문인지 소설의 끝장을 덮은 지 오래 되었음에도 아직도 멍한 기운이 남아있다. 책을 펼치자마자 결말이 궁금해 순식간에 읽어버렸고, 소설의 후반부에 모든 이야기가 완성되고 집약되다 예상하지 못한 결말을 보여주어서 이 소설을 어떻게 생각해야 할지 갈피를 못 잡고 있었다. 새벽녘에 책장을 덮고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다 마치 현실에서 일어난 이야기처럼 씁쓸함을 감추지 못했다. 이런 소설을 많이는 아니지만 종종 읽어왔기에 약간은 뻔한 결말을 상상하고 있었다. 나의 예상을 제대로 깼지만 얽히고설킨 인간사에 대한 회의감은 여전히 남아 있다.

 

누군가 나를 이유도 알려주지 않은 채 지하 철창에 가두고 음식도 덮을 거리도 주지 않는다면 얼마나 황당하고 고통스러울까? 브누아 경감은 도움이 필요했던 리디아란 여자의 집에서 술을 마신 기억 뿐, 왜 리디아가 자신을 가두고 이유를 스스로 생각해 보라고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어떠한 실마리도 주지 않은 채 리디아는 브누아 경감에게 죄를 고백하라고 하고, 브누아 경감은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이 갇힌 이유를 알 수 없다고 말한다. 자존심을 드러내다 음식 앞에 꺾이고 상대가 긁어대는 상처에 감정이 오락가락 하면서 그렇게 100페이지 정도를 지지부진하게 이끌어 갔다. 독자로서도 전혀 감을 잡을 수 없었기에 그런 실랑이에 짜증이 났다. 리디아가 정확하게 알지 못하고 브누아 경감을 가둔 것 같았고, 브누아 경감을 온전히 동정하기에 그의 사생활이 그다지 단정치 못하다는 게 마음에 걸렸다.

 

브누아 경감이 실종되자 그가 근무했던 경찰서에서 전담반을 꾸려 그를 찾고 있었지만 아무런 진척이 없다. 그도 그럴 것이 정말 감쪽같이 사라져 버렸고 어떠한 흔적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의 집을 수색하면서 사생활에 접근을 해봤지만 기혼임에도 여자관계가 복잡했다는 것만 드러날 뿐 사건에 관련된 것은 어느 것도 발견되지 않았다. 그런 와중에도 리디아는 지하 감옥에서 브누아 경감과 끊임없이 잔인한 줄다리기를 했고 그녀가 그런 이유가 15년 전 자신의 쌍둥이 자매를 살해한 사람이 브누아 경감이라고 믿고 있기 때문이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쌍둥이 여동생의 소지품이 브누아 경감의 집에서 발견되었고, 익명으로 그가 범인이라는 사실을 알린 이가 있었다. 브누아 경감은 절대 살인을 하지 않았으며 사건이 일어난 당일 다른 곳에 있었고, 그 증거물이 집에 있다고 말하지만 리디아는 믿지 않는다. 정신과 치료를 받으며 쌍둥이 자매가 늘 자신과 함께 있다고 믿는 그녀의 마음을 쉽게 돌린다는 것이 쉽지 않아 보였다.

 

소설의 소재만 보자면 그다지 유쾌하고 밝은 분위기라고 할 수가 없었다. 경찰을 납치하고 감금, 폭행, 고문, 욕설이 낭자했고 동정심을 유발하기엔 브누아 경감의 사생활이 그다지 깨끗하지 못했다는 게 계속 걸렸다. 여자관계가 조금 복잡하다고 그가 그런 처우를 받아도 된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억울하게 누명을 썼는데도 리디아가 자신만의 세계에 갇혀 전혀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였다. 그러다 그의 실종사건으로 그의 부인과 서장의 사생활까지 드러나면서 사건이 일단락되나 싶었는데, 정작 브누아 경감을 그렇게 만든 장본인은 따로 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그 밑바닥에는 브누아 경감의 문란한 사생활이 원인이 되었다. 그리고 삐뚤어진 복수심을 가진 이가 리디아뿐만이 아니었다는 사실과 리디아의 쌍둥이 자매가 살해 된 사건과 브누아 경감이 잠깐 즐기다 차 버린 여대생이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바람에 그 모든 일들이 얽혀 버렸다는 게 드러난다.

 

브누아 경감이 쌍둥이 자매를 죽이지 않았다는 증거물을 발견하고 리디아는 그를 풀어주려고 한 순간 불행이 닥쳐 그는 감옥에서 빠져나올 수가 없었다. 그리고 얼마 후 정체모를 사람이 그곳에 오지만 브누아 경감을 꺼내주기는커녕 알 수 없는 메시지를 남기고 사라진다. ‘넌 절대로 그 이유를 알 수 없어.’란 메시지와 이 책의 제목처럼 브누아 경감은 왜 자신이 그런 상황에 빠졌는지 결코 알 수 없게 되어 버렸다. 뒤늦게 그를 찾은 그의 동료들도 이상한 그 메시지를 발견하지만 그들이 그 이유를 찾을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었다. 아무래도 어렵겠단 생각이 들면서 브누아 경감이 맞이한 처절함에 멍하니 있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브누아 경감과 리디아의 신경전이 길어져 초반에는 짜증이 날 정도로 지난했지만 흡인력과 뒤에 드러나는 모든 이유들과 반전을 꿰한 결말은 독특하다고 말하고 싶다. 자주 목격했듯이 이러한 소설이 한 사람에게라도 해피엔딩을 안겨 주었으면 좋았을 테지만 작가는 독자의 그런 뻔한 마음을 알고 있는 듯 매몰차고 비극적으로 이야기를 마무리해 버렸다. 그래서 한동안 그런 결말에 정신을 차리지 못했던 것이고 뿌린 대로 거둔다는 옛말에 공감을 하면서도 갱생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던 등장인물에 안타까움이 더해졌다. 나쁜 짓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 그리고 똑바로 살아야 한다는 것이 이 소설이 주는 메시지가 아닌가란 생각과 함께 책 제목이 다시 한 번 섬뜩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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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의 해신 서의 창해 십이국기 3
오노 후유미 지음, 추지나 옮김 / 엘릭시르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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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리즈를 겨우 두 권을 읽었을 뿐인데 점점 이야기에 빠져드는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다음 이야기가 무척 기다려졌고 나의 바람대로 3권을 손에 쥐었음에도 독서에 대한 권태기가 몰려와 조금 읽다 약간의 공백기를 갖은 후에 다 읽을 수 있었다. 그런 공백기가 무색할 정도로 흡인력 강했던 3권. 개인적으로 1~3권 중에서 이 책이 가장 재미있었던 것 같다. 이유를 곰곰 생각해보니 완전한 인간이라 할 수 없는 인물들에게서 인간미를 느낄 수 있어서가 아니었나 싶다.

 안국의 왕이란 신분을 지닌 쇼류는 괴짜였다. 1권에도 나왔던 안국이지만 3권에 등장하는 안국은 더 과거의 안국으로, 선대 왕이 잘 관리하지 못한 탓에 피폐한 나라가 된 배경을 지닌 채 등장한다. 그런 안국의 왕을 기린인 로쿠타가 선택했고 그는 오랜 시간에 거쳐 겨우 나라의 모습을 되찾게 만들었다. 하지만 국정에 관심이 많고 백성을 생각하는 마음보다 제멋대로인 모습을 보일 때가 많아 그 주변의 신하들조차 심하다 싶을 정도로 함부로 대하기 일쑤였다. 그럼에도 그런 쇼류를 미워할 수도 없고 신하들을 욕할 수도 없는 묘한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3권은 부모에게 버려진 두 아이, 기린인 로쿠타와 후에 로쿠타로 인해 이름을 얻게 된 고야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그 두 아이가 각각 자라서 만났을 땐 판이하게 다른 삶을 살고 있었지만 요마에 의해 선택되어 살고 있는 고야는 로쿠타에 의해 이름도 얻고 편견 없는 시선을 처음으로 받았지만 잘못된 충성심으로 그를 납치하게 된다. 지금으로 따지면 도지사 쯤 되는 신분일까? 원주의 주후 자리가 탐나 반역을 꾀한 아쓰유에 의해 요마와 함께 그의 곁에 살게 된 고야는 그에게 은혜를 갚는다는 마음으로 안국의 기린인 로쿠타를 납치하게 된 것이다. 얄궂은 운명의 장난은 그들을 전혀 다른 세상에서 살게 만들어 버렸다.

  십이국의 이야기를 다 듣자면 앞으로도 여러 권의 책을 만나야 할 것 같은 예감이 들지만 3권에서는 그런 십이국이 어떻게 형성되어 있는지 구체적인 구조를 드러낸 것 같았다. 한 나라를 대표하는 왕의 입장과 그 나라가 어떻게 이뤄지고 유지되어 가는지에 대해 상세히 알아갔던 부분은 조금 지난하긴 했다. 그러나 그렇게 능력 없어 보이고 무시할 짓만 하던 왕 쇼류가 반역자 아쓰유와 정면으로 마주하고 안국을 굳건히 하려는 부분에서는 왕이 왜 필요한지, 왜 기린이 왕을 선택하는지에 대한 궁금증이 조금은 해갈된 것 같았다. 여전히 왕의 자질에 대한 부분은 의문이지만 왕은 기린에 의해 선택되어질 만큼 그만한 능력을 갖춘 게 아닌가란 생각이 들었다.

천의가 어디에 있는지 알고 싶다면 굳이 백성을 끌어들이지 않더라도 나와 네가 겨루어보면 끝날 일이다. 아닌가. 아쓰유.(327쪽)

  천의를 믿지 않고 가식적인 모습으로 나라를 생각하는 척 삐뚤어진 애국심으로 반란을 일으켰던 아쓰유에게 쇼류 왕이 한 말은 왕은 왕이라는 이유를 명백히 밝히고 있다. 늘 생각 없이 지내는 줄 알았던 쇼류 왕이 아쓰유를 제대로 간파하는 모습을 보며 유난히 3권에서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던 기린 로쿠타를 비롯한 여러 사람에게 그나마 왕의 모습을 제대로 보여 준 것 같았다. 로쿠타는 납치되어 아쓰유의 곁에 있으면서 방법은 잘못 되었지만 진정으로 나라를 생각하는 마음 때문이라 생각했는데 여러 인물과 정황들에 의해 겨우 그의 잘못된 본심을 발견하게 된다.

  쇼류는 아쓰유에게도 반역자를 도운 고야에게도 좀 더 나은 나라를 만들겠다는, 그래서 자신이 필요한 거라고 말하지만 과연 그런 나라가 쇼류에 의해 만들어질지, 그리고 오래 지속될지 확신할 순 없었다. 하지만 진심으로 대할 때 타인에게 그 마음이 와 닿는다는 사실과 자신의 의무를 져버리지 않을 때 나라든 천의든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결국은 자신이 있는 자리에서 자신의 할 일을 열심히 하는 것. 그것이 어려움을 돌파하는 최고의 방법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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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이 2015-03-16 01: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잠깐 멈추고 있는데 얼른 다시 시작해야겠어요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