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가게
장 퇼레 지음, 성귀수 옮김 / 열림원 / 2007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책장에 읽지 않은 책이 엄청나다 보니 한 권의 책이 선택되어 읽히기까지도 참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오랫동안 내 책장에서 김치처럼 묵혀지고 있는 책이 있는가하면 내 손에 닿자마자 바로 읽히는 책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소설은 정말 우연한 계기로 읽게 되었다. 이웃 블로그에서 책에 관한 기사를 보게 되었고 이 책을 추천하다는 말 한마디에 무려 7년 동안 묵혀 있었던 이 책을 꺼낸 것이다. 그리고 반나절 만에 읽어 버렸다. 묵혀 있던 시간이 미안할 만큼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고 차라리 지금 읽은 게 나에겐 시기가 더 맞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을 선물 받았을 때가 7년 전인데 그때 나의 독서 성향을 봤을 땐 있는 그대로 소설을 읽지 못했을 것 같다. 선물한 지인이 블랙 코미디라는 말을 했었고 그런 장르를 좋아하지 않을뿐더러 소설임에도 ‘자살’이라는 단어가 들어가 영 내키지 않았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이제야 이 책을 읽어보니 오히려 이 소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그간 다양한 소설을 접했고, 내 취향이 아니더라도 이런 소설도 있으며 소재에 모든 걸 묻어버리기보다 다른 면을 볼 수 있어서가 아니었나 싶다.

 

  그도 그럴 것이 소재가 참 독특하다. 자살을 돕는 물품을 파는 가게라니. 그 가게를 운영하는 부부는 자신의 아이들이 우울하고 죽음에 관해 가까이 다가갈 때 더 좋아하며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다만 콘돔을 실험하다 생긴 셋째 아이 알랑만이 예외다. 자살가게에, 그리고 그 가게를 운영해가는 가족 구성원에서 어울리지 않게 밝은 알랑은 늘 핀잔을 듣기 마련이다. 명복을 빌어야 하는 가게임에도 반갑게 인사를 건네고 늘 희망을 주는 듯한 웃음과 밝음이 손님들에게 전염되어 물건을 사지 않을까 부모는 늘 노심초사다. 그러거나 말거나 알랑은 특유의 발랄한 모습으로 자신의 삶을 영위해가고 서서히 가족들에게 긍정적인 면들이 스며들어 간다.

 

  알랑을 잠시 제쳐두고라도 자살가게의 모습은 흥미롭다. 자살을 도울 수 있는 물건을 파는 가게라는 설정에도 불구하고 섬뜩하거나 잔인하지 않다. 말 그대로 한편의 코미디다. 자살을 하기 위해 아무렇지 않게 가게를 찾아 새로운 물품을 찾는 손님들과 그런 손님을 대하는 부부와 아이들의 모습이 극히 자연스럽다. 철저히 비즈니스로 생각하고 움직이는 부부의 모습을 따라 아이들도 가게의 매출을 올리려 돕는 모습에서 비난은커녕 물품이 좀 독특할 뿐 일반적인 상인의 모습을 엿볼 수 있을 정도였다. 그 물건들이 모두 자살을 돕는 것일 뿐, 그 물건을 사용해보고 싶다거나 그 물건을 사용하고 정말 다른 세상으로 간 사람들이 불쌍하다는 생각조차 들지 않는 한 편의 블랙 코미디였다.

삶이란 있는 그대로의 삶 자체를 말하는 거예요. 있는 그대로의 가치가 있는 것이죠! 서툴거나 부족하면 서툴고 부족한 그대로 삶은 스스로 담당하는 몫이 있는 법입니다. 삶에 그 이상 지나친 것을 바라선 안 되는 거예요. 다들 그 이상을 바라기 때문에 삶을 말살하려 드는 겁니다. (154쪽)

 

  손님에게 물건을 하나 더 팔아보겠다며 온갖 감언이설을 뱉어내던 알랑의 가족이, 알랑으로 인해 이런 긍정적인 말을 하게 된 것은 놀라운 변화였다. 손님에게 이런 말을 하면서 스스로 왜 이렇게 변했는지 놀라는 모습에서 한 명의 긍정적인 힘이 어떤 변화를 가져오는지 철저히 지켜볼 수 있었다. 거기다 알랑의 아빠는 알랑을 보며 ‘인간의 고뇌를 달래는 가족치료사’라는 표현을 떠올리며 처음에는 골치 덩어리였던 아이가 자신의 가족에게 긍정적인 힘을 미친다는 것을 인정하기도 한다.

 

  그렇게 독특한 가게를 꾸려나가고 그 안에서 부정적인 면만 키워나가던 가족이 알랑으로 인해 긍정적인 사고를 갖게 되면서 해피엔딩으로 끝날 줄 알았다. 지극히 자연스러웠고 뻔한 결말이라고 핀잔을 줄 필요조차도 없어 보였다. 그러나 저자는 마지막에 충격적인 결말로 냉정하게 알랑의 의무를 표현해 버렸다. 겨우 가족들이 긍정적인 마음을 갖게 되고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새롭게 뜨게 되었는데 알랑은 그걸로 자신의 의무를 다했다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순식간에 읽어버린 소설이었지만 그런 흡입력과 독특한 소재만큼이나 결말이 믿겨지지 않았다. 여전히 알랑의 선택에 고개를 젓고 싶어지고 이건 너무 잔인한 코미디가 아니냐고 저자에게 따지고 싶기까지 하다. 하지만 자살가게에서 팔았던 물품이며, 그 가족이 손님들에게 장사수완을 부렸던 일들이며, 많은 사람들이 실패해야 자살가게가 더 운영이 잘 되었던 사실을 생각하면 알랑의 선택에 무조건적인 불평만을 쏟아낼 수 없다는 게 아이러니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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