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DVD로 영화를 다시 봤다. 작년에 미국에 오기 전 3월인가 2월에 직장 동료들이랑 본 기억이 나는데 당초에 뭘 본 건지 내용이 거의 기억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영화 자체가 좀 추상적이고 영화 말미에 잡혀야 할 범인이 잡히지도 않아서 그런가 일을 마친 후 뒤처리를 깨끗이 하지 못한 느낌이었다. 다시 본 이 영화의 느낌을 한마디로 표현해 본다면, '한없이 작아지는 내 존재의 초라함'이 될 수 있겠다. 지금 내 심정으로 볼 때 이 한마디는 2가지 뜻을 담고 있다. 첫번째는 영화가 두말할 나위도 없이 역시 대단했다는 점, 두번째는 이 험한 혹은 험할 수도 있는 세상을 사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바싹 내 앞에 다가선 느낌이 들었다는 것이다. 주인공인 르웰린은 죽음을 예감했음이 분명하다. 그러니 폭풍이 몰려오고 있는 텍사스 황량한 벌판에 버려둔 사람에게 '물'을 그 꼭두새벽에 가져다 주러 나가면서 이런 말을 했겠지. 르웰린: 내가 만약 돌아오지 않으면 어머니께 사랑한다고 전해줘.(If I don't come back, tell mother I love her.) 칼라 : 당신 어머니는 돌아가셨어.(Your mother's dead, Lewellyn.) 르웰린 : 그럼 그 땐 내가 말하지 뭐(Well then I'll tell her myself.) 그럼에도 뭐에 홀린 듯 칼라를 친정으로 보내고 자기는 이 모텔, 저 모텔을 떠돈다. 이 영화는 내게 참으로 오랫동안 '최고'로 남아 있을 듯하다. 원래 코언 형제 영화를 좋아하는데 이런 위대한 영화를 내놓았으니 말이다. 그 중 가게 주인장인 초로의 남자와 동전던지기 내기를 하는 장면은 근래 최고의 긴장감이었다. 지금도 가게 주인의 표정과 목소리가 떠오른다. 사냥하다가 우연히 거액의 돈가방을 챙긴 르웰린이나, 가게 주인장이나, 차량 통행이 거의 없는 찻길에서 앤톤을 도와주려다 피해를 당하는 사람이나 모두 살기 위한 그 모든 행위 혹은 말 따위는 애당초 필요없었을지도 모른다. 어찌됐든 앤톤은 자기가 원하는 바를 그들에게서 이끌어냈을 테니까. 영화가 끝나갈 즈음 슬펐다. 뭔지 확실하게 다가오지는 않는데 슬프고 허무해서 텔레비전 앞을 뜰 수 없었다. 그리고, 지금 다시 보고 싶다. 아무래도 뒤늦게 이 영화에 중독된 것 같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이 영화를 보면서 다시 진지하게 고민을 해봐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