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가을의 어느 날이었다. 화상을 입은 적이 있다. 허벅지에 국물을 쏟았다. 언제나 그렇듯이 모든 사고는 예고없이 찾아와 당황하게 만든다.
옷이 붙지 않도록 조심조심하면서 동시에 부랴부랴 욕실로 들어가 샤워기를 대고 열을 식혔다. 하지만, 그건 우리가 일상에서 겪는 간단한 화상보다 약간 심한, 그러니까 2도쯤 되는 화상이었다.
응급처치를 받는다고 소독을 하고 거즈를 붙이고, 펑퍼짐한 치마를 입고 2일 정도를 보냈는데, 그냥 그걸로 때우기엔 좀 불안해서 병원에 갔다.
우선, 우리 동네 어딘가에 있는 성형외과의원. 매우 조용한 그 의원은 화상치료 안 한다고 매정하게 나를 돌려보냈다.
두번째로, 신촌세브란스병원. 진료카드가 있었기 때문에 그리 갔다. 정확한 기억은 안 나는데, 아무튼 거기서도 나는 치료를 못 받았다. 화가 나서 주차장을 나오는데, 주차요금을 받으려한다. 아니, 이게 무슨 되먹지 못한 경우람??? 치료도 못 받고 나오는데, 주차요금을 받다니...
화가 머리끝까지 나서 상황을 설명하고, 주차요금을 낼 수 없다고 하고 그냥 와버렸다.
갈 곳은 1군데 밖에 안 남았다. 일산백병원. 애초에 거길 갔어야 했다. 같은 대학병원이지만, 여긴 한산하다. 그 당시엔 주차요금 같은 것도 안 받았다.
펑퍼짐한 치마를 걷어올리고 상처를 보여주면서 응급처치를 하긴 했는데 그래도 전문적인 치료를 받아야 할 것 같아서 왔다고 했더니, 잘 왔다고 하면서..
내 다리 밑에 파란색의 큰 휴지통을 받치더니, 소독약을 들이붓는다. 반통 이상을 쓰는 것 같다. 그걸 바라보는데 속이 다 시원하다. 화상을 입은 환자는.. 보험혜택을 받는 사람은, 의원에서 치료해주지 않는다는 것에 정말 그 때 많이 놀랐다.
날이 더워 상처가 덧날까봐 조심스러운데 그렇게 이 병원, 저 병원 전전하던 날을 생각하면 지금도 아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