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명에 못 죽은 20대 여성들"

 

1/ 경찰청 통계 자료에 의하면 2008년 자살자의 수는 전년에 비해 1,000명 이상 줄어 2000년대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 2005년 이후 경제 불안으로 꾸준히 늘어났던 30~40대와 60대 이상 노년층 자살이 줄어든 덕분”이라 한다.(<제 명에 못 죽은 20대 여성들>, <한겨레> 2009.08.21) 자살과 ‘경기’의 원론적, 통계학적 연관성을 생각할 때, 이는 2008년에 경기가 좋아지거나, 양극화가 완화되었다는 뜻이다.

 

그러나 ‘상식적’으로는 이해하기 힘들다. 알다시피 2008년 하반기에 소위 ‘글로벌 경제 위기’가 닥쳐와서 ‘거품’이 여기저기 꺼졌고, 자살의 그야말로 ‘직접’ 원인이 되는 ‘부도’와 ‘해고’가 늘었기 때문이다. 또한 ‘양극화’가 완화되었다는 증거를 어디에서도 발견하기 어려우며 정부의 경제 정책은 이와 반대로 가고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최진실, 안재환 자살 사건 등으로 작년에 '자살'은 또 한번 한국사회를 보여주는 키워드가 되었다.

 

따라서 2008년에 자살이 준 것이 사실이라면 두 가지로 생각해볼 수 있다. 실제로는 ‘글로벌 경제 위기’가 한국사회의 하층에까지 미친 영향이 작았다는 것? 아니면 하반기에 주로 경제위기의 효과가 늦게 도달하여, 그 영향이 아직 2008년에는 나타나지 않았다는 것? 그렇다면 2009년 상반기에 자살률은 다시 급등할 것인가? 또는 노인복지가 확충되었다는 것?



 

2/ 지난 금요일 <한겨레>와 금주 월요일(8.24) MBC ‘오늘 아침’이라는 프로그램은 20대 여성 자살 문제를 다뤘다. 최근 한국의 20대 여성 자살률이 전체 성별ㆍ연령별 인구에서 가장 빨리 증가하고 있고, 20대는 “‘자살자’ 수가 남성보다 많은 유일한 세대”라는 것.(아래 <한겨레>기사 참조) ‘통계 미비’까지를 고려하면, 20대 여성 자살은 훨씬 실제 수가 많을 것이라는 점. 원래 10-20대 여성은 ‘자살 충동’을 가장 많이 느끼는 층이지만 실제 자살 행위나 자살 ‘성공’으로 이어지는 비율은 매우 낮으나, 이런 일반적 경향이 깨져 있다는 것.

 

<한겨레>의 해당 기사는 현재 20대 여성이 겪는 사회경제적 고난에 대해 잘 말하고 있다. 경제활동을 하는 여성 계층이 자살 확률이 낮다는 말도 주목할만하다. 전체 논지에 대부분 동의 가능하다. 그러나 “20대 여성의 경우 인생에서 가장 감정적인 영향을 많이 받는 시기이고, 일신상 겪게 되는 굵직한 변화들 때문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때여서 우울감 때문에 자살이 많은 것으로 짐작하기 쉽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자살은 심리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문제를 가장 극명하게 반영하는 지표라고 말한다. 20대 여성이 가장 사회적 약자이기 때문에 자살을 많이 하는 것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에는 쉽게 동의하기 어렵다. 이 ‘전문가’는 누군지 몰라도 이런 논지는 자살에 대한 경제환원론이라 할만하다.

 

첫째, 자살이 사회적 문제를 가장 극명하게 반영하는 지표라는 것은 맞지만, 자살은 개인에게 부과된 심리의 문제이기도 하다. 심리적, 기질적, 사회적 요인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자살은 일어난다. 물론 각 요인의 작용 범위와 힘은 서로 다르다.

 

둘째, 여성의 ‘자아’가 처하는 고난도 단지 취업과 경제적 문제만을 아닐 것이다. 한국의 이성애와 ‘젠더’ 상황, 여성 내부의 경쟁, ‘가족’과 ‘결혼’이 처한 여러 형태의 과도기적 양상 속에서, 그들의 자아는 ‘우울’에 빠져들고 있는 것이다. 또한 이런 ‘관계’들 속에서 20대 여성의 자아를 ‘지지(支持)’해주는 힘이 지극히 약화되어 있다는 점이 지적될 수 있겠다. 자살은 지지의 문제와 깊은 관련이 있다. 즉, 막연하거나 구체적인 자살 충동을 느낄 때, 혹은 자살행동의 심리적 원인이 되는 ‘고립감’에 휩싸여 있을 때, 그것을 제어하고 ‘위로’해줄 ‘관계’의 문제이기도 하다.

 

셋째, 위 기사에는 20대 여성이 ‘가장 사회적 약자’라는 말도 나온다. 이전에 여성학자 정희진이 ‘젊고 예쁘면 사회적 약자가 아니다’는 말을 했던 것이 기억난다. 자살은 분명 사회적 약자가 더 많이 하는 것이지만, 20대 여성은 왜 ‘사회적 약자’가 되나? 그들을 둘러싼 사회적 관계 때문에, 그리고 이들을 속박하는 ‘도덕’ 때문에, 그들이 가진 젊음과 건강 같은 자원에도 불구하고 약자가 되는 것일 테다. 이를테면 ‘지방 거주-하층-60대-남성’이 엄청나게 많이 자살한다. 이들이야말로 사회적 약자로서의 면모를 다 가지고 있다고 보인다.



이런 60대 노인 남자와 20대 여성이 ‘사회적 약자’로 존재하는 양상은 크게 다른 것일 테다. 한편으로는 20대 여성이야말로 가장 열심히 자아를 돌보고 가꾸고 관리하는 계층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자기 ‘계발’ ‘관리’ ‘돌봄’의 실패와 자살의 문제가 함께 읽혀야 하겠다. (이후 계속) 

작성 : JH.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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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2009-08-27 12: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자살감소는, 위에 언급된 것 외에 이런 이유를 상정해 볼수도 있잖을까 합니다. "외부적 불행과 자살과는 비교적 무관하다는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저개발 국가보다도 부유한 산업국가의 자살률이 더 높으며, 가난한 사람들보다는 쾌적하고 전문적인 직업에 종사하는 안락한 중류계층의 사람들의 자살 수치가 더 높다. 나치의 강제수용소의 경우엔 자살수치가 보통 이상으로 낮았다."(알프레드 알바레즈, <자살의 연구>, 138쪽)그런점에서 우리가 더 살기 어려워지면서, 그 총체적 위기의식이 오히려 자살률을 감소시킨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보았습니다. 그러나...이 책에서도 20대 청춘남녀의 자살의 비율은 낮다고 되어있는데, 20대여성의 자살률이 가장 높다는 걸 보면, 참...자살의 원칙이나 논리는 쉽게 파악이 안되는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2009-08-30 10:09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감사합니다. 맞습니다. '자살'의 서로 다른 계층별, 국가별, 젠더별 원인을 파악하기란 매우 어렵습니다. 헌데 저는 대체로 알바레즈의 말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저개발 국가보다 .. 부유한 산업국가"를 비교할 경우 알바레즈의 말은 부분적으로(만) 성립할 수 있으나, "가난한 사람들보다 쾌적하고 전문적인 직업..."은 거의 인정하기 어렵습니다.(더구나 나치 수용소를 거론한 것은 좀 무책임한 논지 같습니다.) 현재 한국과 같은 한 국가 내에서는 특히 그렇습니다. 사회들의 문화적 차이를 고려해야겠지만, 경기 변동과 자살률의 관계는 한국과 같은 사회에서는 아주 잘 적용되고 있다고 보입니다.

기인 2009-08-27 23: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자살'에 저도 관심이 아주 많이 생기고 있고, 사실 이번 학기 제 주된 테마 중 하나가 될 것 같습니다. '자살'관련 중요한 책들을 리스트로 한번 정리해주시는 것은 어떠하신지요?
저는 개화기 소설부터 시작하여, 왜 이리 한국문학사에 '자살'이 빈번히 등장하는지에 대해서 살펴보려고 하는데요. 일본문학의 '자살'예찬 모방이라는 식 외에, 문학적 장치 내부의 의미, 사회적 의미 등등을 따져보려고 하고 있습니다. ㅎㅎ

통계의 차이 2009-09-06 22: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원래 경찰청이랑 통계청의 자살에 대한 통계발표가 좀 다르다고 하는군요. 그 이유에 대한 분석도 오늘자 한겨레에 나왔네요.<엇갈린 자살통계, 왜?>라고.. http://www.hani.co.kr/arti/economy/economy_general/375264.html 이 주소로 가시거나 '통계의 차이'라고 적힌 이름란을 클릭하면 볼수 있습니다.
 

<드림>이란 드라마가 시작한다면서 홍보성 기사들이 마구 뜰 때부터 알아봤다.
이 드라마는 '안 될 것'이라는 걸.

 
사실, 막상 몇 회에 걸쳐 보고 나니 그렇게 '안 될', '나쁜' 드라마는 아니었다.
박상원의 새로운 캐릭터-요즘 이런 중견배우들, 맘에 든다.  지적이고 현모양처 이미지의 대명사 김미숙이 <찬란한 유산>에서 맡은 '신선한' 악역도 그랬고, 박상원의 젠틀한 이미지 뒤에 감춰진 위선과 비열함을 뽑아낸 <드림>에서의 강경탁 캐릭터도 매우 흥미롭다.-가 일단 재미있고
서사도 너무 느리지 않은 속도감과 적절한 인물배치, 괜찮게 짜여진 드라마였다.

 

그러나...한자릿수 시청률을 벗어나긴 쉽지 않을 것이다.
왜 그럴까? 그건 역시 이 드라마가 처음부터 끝까지
'마초 드라마'의 이미지를 표방하고 있기 때문이다.



 

1.  드라마는 뭐니뭐니해도 여성 시청자들을 사로잡아야 한다. tv 채널의 선택권은 역시 여성들, 특히 중장년 여성들에게 가장 많이 주어져있다. 그런데 이 드라마는 이미 출발부터 '남성' 드라마임을 표방하고 있다.

 

안타깝게도 우리나라 중장년 여성들은 '강한 남자' 이야기에 별로 흥미가 없다.<남자의 이야기>라는 드라마가 망한 것도 비슷한 이유가 아닐까 하는데-나도 안봤지만, 그 드라마도 실제 '마니아'들이 꽤 있을 만큼 미덕도 많은 드라마였다고 한다-'남자' 얘기로는 여성 시청자들을 끌어들이기 쉽지 않다. 굵고 강한 '남자'이야기로 성공할 수 있는 것은 KBS에서 그동안 많이 해온 사극 정도? 사극은 남성 시청자들이 좋아한다. 그것조차 최근에 왜 <천추태후>라는 여성이 주인공인 사극을 하고 있는가를 잘 생각해야 한다. 했다 하면 뜨는 MBC의 사극 <대장금>, <주몽>이나 <이산>, <선덕여왕>같은 경우는 훨씬 말랑말랑하며 여성적이다.

 

2. 특히 남성들이 좋아하는 '격투기' 종목을 대상으로 한 드라마라는 점.
아...싸우는 거, 싫어하는 여성들 무지 많다. 나를 비롯하야.
언젠가 20대 남성(?)들과 그런 얘기를 한 적이 있는데, 이런 거다.
20대 남성들 왈, 그들은 로맨틱 코미디물이나 멜로물을 왜 보는지 모르겠다,
결국 주인공 남녀가 잘 될 거 아니냐...뻔한 결론인데 그 사이에 지지고 볶고...그걸 왜 보냐?

 

똑같은 논리가 여성들의 입에서는 이렇게 나온다.
액션물을 왜 보는지 모르겠다.
결국 주인공 남자가 이길거 뻔한데
이리 패대기, 저리 패대기 치는 거 깨지고 터지는 거...왜 보고 있어야 하냐?
그래서 격투기 종목들은, 스포츠 종목 중에서도 여성 팬을 갖기 좀 어려운 종목인 게 아닐까?
야구, 축구 같은 종목의 여성 팬들에 비하면 그들 팬덤의 형성 속도는 매우 느리다.

 
3. 그리고, 왜 그런진 참 모르겠지만, 주진모라는 주연배우가 주는..'마초 이미지'.
나는 그가 <사랑>이란 영화에 나올 때 참 안타까웠다.
그에게 맞는 옷은 <미녀는 괴로워> 같은 것이다.
더 튀고, 강한 여성캐릭터들에게 끌려가는 잘 생긴 남자 캐릭터가
그의 현재 연기력이나 외모에는 잘 맞다.
그가 '나쁜 남자'로 굴기 시작하면 그 비열한 느낌을 참아내기가 쉽지 않고,
그가 순정파로 굴면서 자기의 모든 것을 여성에게 바치면 궁상스럽다.

<쌍화점>에서도 기본적으로 주진모의 이미지는 너무 굵고 강해서 매력이 없다. 

 

4. 반면 김범은 '가난하다'
<꽃보다 남자>의 럭셔리 예술재벌집 아들이었던 김범이
80년대의 올드한 '가난뱅이' 격투기선수로 변신했다.
만날 재벌 이야기 좋아하는 시청자들을 두둔할 마음은 조금도 없지만,
분명, 요즘, 사람들은 가난한 자들의 이야기를 외면하고 싶어하는 듯 하다.
내 삶도 힘겨워서 남의 힘겨운 삶을 보고 있기가 어려운 것일까?

 

어쨌거나 그런 가난한 청년 김범이 격투기 선수로 성공해 부를 얻는다...해도,
사실 '해피엔딩'같이 예견되지 않는다.
격투 종목은 결국 자기 몸 깨져가며, 몸 팔아 돈 버는 스포츠다.
그들은 언제나 자기 목숨을 걸고 싸운다.
그 끝에 돈이 남을지, 죽음이 기다리고 있을지 쉽게 짐작이 안된다.
이런 '불안한', 애초부터 '우울한' 드라마, 사람들이 별로 안좋아한다.
(더구나 이 더운 여름엔 무조건 '발랄'이다.)

 
5. 손담비는 너무 '섹시하다'
사실 나는 손담비에게선 도통 매력을 못느끼고 있기 때문에
균형감각 있는 말을 하기 쉽지 않다.
그러나, 무엇때문에 인기가 있거나 화제가 되는지는 이해는 간다.
 

그녀에게는 늘씬하고 볼륨있는 몸매, <미쳤어>를 통해 만들어진 섹시한 이미지가 있다.
그녀의 그런 섹시한 이미지는 너무 '전형적'이어서 나같은 여성에게는 흥미가 잘 안 생긴다.
그녀의 이 드라마에서 홍보에 활용하는 방식을 보면 꼭 <007시리즈>의 본드걸 같다고나 할까?
철저하게 남성들 이야기의 액세서리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손담비가 나올 때마다  너무나 올드한 방식으로 과도하게 자주 클로즈업되는, 
그녀의 가슴과 허벅지 컷도 무척 불쾌하다.

 

즉 "남성시청자들이어, 너희가 좋아하는 격투기를 갖고 만든 드라마다.
근데 이 드라마를 보면 섹시한 손담비로 눈요기도 종종 할 수 있다. 땡기지?"
뭐, 이렇게 말하고 있는 듯 하다는 것.

여성들은, 이런식으로 여배우가 성적 대상화되는 건 별로 안달갑다.

 

<올인>이나 <태양을 삼켜라>와 같은 '마초'에 가까운 드라마도
송혜교나 성유리를 그따위로 다루진 않는다.
이런 드라마들에서도 여성캐릭터는 남성 주인공에 비해 '부수적'이며, 얼굴마담 노릇을 하지만
나름 영리하고 당찬 이미지의 여성들로 나온다.

 
그래서...이 드라마는 김범의 열렬 팬 여성들 말고는 여성 시청자들의 유인요소가 거의 없다.

그러니 '안 될'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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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드 2009-08-25 17: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선덕여왕 보다가 중간중간 돌려 보는데, 구구절절 공감이 가는 글이네요.
특히 주진모부분. 그간 주진모를 보면 느껴졌던 거부감의 정체를 이제야 알 것 같습니다. ^^

somun 2009-08-26 09:49   좋아요 0 | URL
^^반갑습니다 하이드님~공감해주시니 감사하고요..요즘 보고싶은 드라마가 적어서 저같은 드라마홀릭자는 낙이 없습네다;;

기인 2009-08-25 18: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하이드님 안녕하세요 :) ㅋ
저도 이 드라마 첫회만 잠깐 봤었는데, 첫회부터 손담비가 비치 발리볼 -_-; 조교로 나오는 등 어째 쫌 그렇더라고요.. 흐미...

지나가다 2009-08-27 09: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시청률'의 관점에서 드라마를 판단하고 있어 글에 약간 거부감이 듭니다. 어쨌든, '남성용' 드라마라 해서 꼭 시청율이 낮은 건 아니겠지요. 이런 저런 정치드라마나 사극을 생각해보면요.
제가 볼 때 이 드라마의 문제는 '마초'적이어서 재미가 없다기 보다, 그야말로 정교하게 만들어지는 '여성용'(?) 드라마에 비해서, 스포츠산업과 격투기라는 소재의 새로움을 믿고 그 뒤에 숨어서, 정작 중요한 드라마의 서사를 너무 헐렁하고 유치하게 만든 데 있다고 봅니다.

somun 2009-08-27 10:11   좋아요 0 | URL
댓글 감사합니다. 맞습니다. 서사가 헐렁하고 유치한 것이야말로 드라마가 실패하는 가장 큰 이유이겠지요. 그리고 그게 결정적인 '이 드라마의 문제'일 겁니다. 반면 마초적이어도 서사가 잘 짜여진 드라마는 성공할 때가 있을 겁니다...다만 저는 <드림>의 초반 몇회를 본 뒤 그 마초적 성격때문에 이 드라마의 서사가 어떠한지에 대해선 생각할 겨를도 없이 다시는 채널이 돌아가지 않길래, 이 드라마의 서사적인 부분에 대해 잘 모르는 채로 말하기 어려워 깊이 다룰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또 한가지 문제는, '뜨는' '여성용' 드라마들이라고 해서 '그야말로 정교하게 만들어지는' 건 전혀 아니라는 데 있습니다. <아내의 유혹>이나 <밥줘>, <하얀 거짓말> 등 최근에 크게 히트를 친 '여성용' 드라마의 서사의 헐렁함과 유치함은 <드림>과는 비교도 안되는 수준이니까요. 그 드라마들에 비하면 <드림>은 '훌륭'합니다.^^ 그러나 그들 드라마는 나쁘고 바보같고 무능력한 남성과, 씩씩하고 역경을 꿋꿋이 헤쳐 나가는 여성들이 등장하기 때문에 여성 시청자들은 대리만족을 느끼며 그 유치함을 '견뎌'냅니다. 따라서 (여성)시청자들에게 거부감을 주는 것은 유치하고 허술한 서사보다도 마초성일 가능성이 높다는 생각이, 저는 개인적으로 듭니다.

그런데, 시청률의 관점에서 드라마를 판단하고 있는게 거부감이 든다는 말씀은 잘 이해는 안가는군요. 시청률의 관점에서 드라마를 판단하면 안된다고 생각하시는 건지?(그러시다면, 왜, 안될까요? 어떤 드라마가 대중적 호응을 얻기 힘들겠다...라고 말하면 안되나요? 또한 님의 그 다음 문장, '어쨌든, '남성용' 드라마라 해서 꼭 시청률이 낮은 건 아니겠지요'라는 것 역시 시청률로 판단하신 것 아니신지요? )
아니면 시청률이 낮다=나쁜 드라마라는 등식이 마음에 안드신다는 건지요?(그러시다면, 저는 시청률이 낮다고 해서 나쁜드라마라는 등식까지 세우고 있는 사람은 아닌데요. 그냥 이 드라마는 시청률이 낮을 것이다..라고만 말하고 싶습니다. 물론 서사가 잘 짜여졌다거나 이데올로기적으로 훌륭했더라면, "시청률은 낮을 것이지만, 참 좋은 드라마인데 이렇게 '못 뜨는' 건 참 안타깝다.."라고 말할 순 있었겠지요. 근데 이 드라마는 어느쪽으로도 변명해줄 여지는 없는 것 같습니다. 이데올로기뿐 아니라 저보다 꼼꼼히 이 드라마를 보신 님 말씀까지 참고하면 서사조차 엉망인 드라마라니까요.^^)
 

프랑소와 오종의 영화 <이제는 떠날 시간>(영어 제목 Time to Leave, 원제 Le Temps Qui Reste, 2005)>에서 폐암에 걸려 ‘시한부 선고’를 받는 청년은 게이이다. 그는 ‘시한부로 생을 마치기’의 한 방법을 보여준다. 그는 연인과 가족들에게 자신이 죽는다는 사실을 말하지 않고, 조용히 혼자 죽는다. 

 

‘시한부 선고’를 받고 난 뒤에 어떻게 행동하고 어떻게 죽음을 맞이할 것인가? 에 관한 영화와 담론이 많이 나오고 있다.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일 것이다.

 

첫째, ‘악성 신생물’(‘암’의 보건학적 공식 용어)로 의한 죽음이 현대인의 사인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으로 떠올랐다. 세계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그렇다.

 

둘째, 암은 셀 수 없이 그 종류가 많고 양상도 다양하여, 환자가 어린에부터 80대 노인까지 고루 퍼져 있다. 젊은 사람이 (한국에서 전체 사인 2-3위를 차지하는) 뇌졸중ㆍ심근경색 같은 병으론 잘 죽진 않지만, 암으로는 죽는다. 멀지 않은 사이의 젊은 사람이 위암이나 혈액종양, 뇌종양 등에 걸려 죽었다는 부음이 가끔 들려온다.

 

셋째, 그래서 수잔 손택의 말대로 암은 20세기 후반 이래 가장 강력한 ‘은유’를 지닌 ‘질병’으로서 왕좌를 차지하고 있다. 몇 가지 종류의 암은 많은 완치 사례를 낳고 있지만, 암은 여전히 예측 불가능하고 ‘치명적’인 것이라는 인식을 거느리고 있다. 그래서 암은 당분간 ‘은유’ 왕의 자리를 다른 병에게 양도하지 않을 것이다.

 

넷째, 오늘날 이 ‘악성신생물’에 의해 죽어가는 주체의 몸과 그것을 다루는 현대의학 사이의 투쟁(?)이 (1) 현대 의사(醫事, 醫療) 문화 뿐 아니라, (2) ‘죽음 문화’의 핵심적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이 글에서 주목할 점도 이것이다. 암에 걸리면 어떻게 되는가? 어떤 치유 또는 죽음의 과정을 밟는가? ‘수술 - 키모 - 모르핀’ 등으로 구성된 지배적인 서양의학의 매뉴얼화된 방법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이를 다 믿을 수 없다. 이 과정을 밟는다 해서 암을 치료할 수 있다는 '보장'은 물론 없다. 그러나 고통스러운 이 과정을 무시하기란 어렵다. 용기 있는 사람이라면 대체의학이나 보존치료를 과감히 택할 수도 있고, 돈 있는 사람이라면 수술 및 키모 등의 항암 요법에 대체의학이나 보존치료를 병행할 것이다.


그러나 그리 선택의 폭이 넓은 것은 아니다. 또 '초기'가 아니라면 정답에 가까운 치료법이 있다고도 할 수 없다. 즉, ‘이미 늦었다. 수술이 안 된다’는 경우일 때 문제가 진정으로 시작된다.



암에 걸리면 온갖 기발ㆍ기상천외한 치료법들과 대안들이 주변사람들의 소개로 쏟아진다. 그것들이 가진 엄청난 규모의 생과 육신에 대한 패러다임들 앞에서 우리는 고뇌ㆍ방황하게 된다. ‘내 인생’이 거기 걸리고, 내 몸이 모르모트나 마루타가 된다. 그때, 실로 한국사회의 ‘생-문화’의 최종적 심급과 우리의 인생관 전체가 맞물리게 된다.

 

가족들은 전문의학서적을 사서 공부를 하기도 하고 백방으로 뛰어다니며 병원을 알아보고 명의를 수소문한다. 그러나 정보의 가치를 판단할 능력은 약해진다.  정보는 엄청나게 많아지지만, 귀가 한없이 얇아진다.(가족이 없는 사람은 어떻게 될까?) 

 

히 한국에서는 양의와 한의가 둘로 갈라져 싸우고 있고, 양자의 서로 다른 이해관계에 근거한 서로 다른 처방이 강하게 대립하고 있다. 양자는 실로 패러다임 전쟁이라 할만한 깊은 인식 차이를 드러내는데, 현실의 담론에서는 서로를 사기꾼으로 취급하는 경향이 강하다. 그래서 환자와 그 가족은 더욱 힘겹다. 돈도 많이 써야 한다.


(소개되는 치료법ㆍ대안 중에는 전혀 신뢰할 수 없거나 심지어 사기성이 농후한 것들도 포함되어 있다. 암을 이용해서 믿을 수 없는 방법으로 떼돈을 버는 의사들도 있다. 주로 '한의'라 불리는 사람들이다. 나는 서울 종로구 Y한의원에 대해 약간의 원한감정을 가지고 있다. 이 한의원에 가서 내가 제일 먼저 들었던 말은 '우리 병원은 카드가 안 됩니다'란 것이었다.  물론 약도 효과가 없었다. '산삼침' 요법을 한다는 강남 모 한의원도 국세청이 탈루ㆍ탈세 조사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바이다.)

 

암 환자 자신은 어떨까?

최악의 경우는 암환자 자신이 제 죽을 병을 모르는 경우이다. 아리에스가 <죽음 앞의 인간>의 결론 부분에서 역설했고, 죽음을 진지하게 생각하는 모든 인문학ㆍ종교학자가 그렇게 되뇌듯, 오늘날 죽음은 일상적 삶에서 추방해야 할 악ㆍ무례ㆍ비정상으로 간주된다. 그래서인가? 죽음은 은폐된다.

 

암 환자는 제가 언제 죽을지도 모르고, 멍청한 상태에 있으면서, 점점 쇠약해진다. 그래서 자라난 암세포가 이성을 잃게 할 만큼 커져서 자기 생을 정리해야 하는 스스로의 의무(맞나?)를 수행하지 못하게 될 때까지, 무방비 상태로 있는다.



아무도 진실을 말하지 않는다. 의사나 가족이 맡아야 할 일인데, 가족은 대부분 마음이 약하거나 아파서 그렇다치고...(물론 그 책임을 면제시키는 것은 아니다.) 의사는.. 의사는.. 뭔가? 이 사람들은? 의사는 가족의 일이라 미루는 건가?

(일부 못된 '한의'가 암을 이용해 탈세를 자행하며 돈벌이에 급급하다면, 몇몇 ‘양의’는 암 앞에 그리고 암에 걸린 환자 앞에서 한 마디로 무기력하고 무지하다. 그들 중 일부는 병증에 대해서 잘 알지 모르나 (인간 몸에 닥치는 위기의 총체로서의) ‘병’과 인간에 대해서는 참으로 무지한 게 아닌가? 나는 지금도 서울 S병원 S과 과장을 비롯한 의사들이 의사로서 한심한 2류라 생각하고 있다. 그들은 말기 암환자와의 소통에 대해 전혀 생각해보지 않은 듯하다.)

 

또는 암에 관한 현대의학의 메커니즘 자체가 그러할지 모른다. ‘수술이 안 된다’는 말이 나오는 그 순간, 지배적 현대의학은 암에 대해 무기력할 뿐 아니라, 오히려 그 치료법은 우리 생의 적일 수도 있다. (예컨대 <일요일 일요일 밤에> 8월 9일 방영분을 보라. 왜 말기암에 걸린 환자 중에, 전혀 의학에 무지한 자가, 혼자 ‘치유법’을 찾아 ‘자연’으로 떠나겠는가? 그리고 가끔 기적(?)을 만들기도 하겠는가?


(그런데 ‘수술이 안 되는’ 상태의 가난한 환자들은 어떻게 죽어가는가? 보험을 들어놓지 못했거나 다 썼다면? 그냥 6인실에서 고통 받다가... 참으로 끔찍한 일이다.)

 




내 병을 안다면 어떻게 할까? 객관적으로(물론 이는 양의가 ‘확률’로 판단해준다.) 몇 개월 안 남았다면? (다 열거하기에는 너무 손가락이 아프고)


‘시골의사’ 박경철 씨의 에피소드도 흥미롭다. 외과전문의인 그는 작년에 췌장에서 자란 지방덩어리를 말기 췌장암으로 스스로 오진하고 생애를 정리(?)할 계획을 세웠다 한다. 그의 계획이란 가족을 비롯한 가장 가까운 타인 아무에게도 자기 병을 알리지 않고, 당장 해 줘야 하는 원고 마감 따위의 일을 해주고 난 뒤에는 어디론가 휙 사라져서 몰래(?) 죽는 것. 

 

러니까 <타임 투 리브>와 비슷한 방식이고, 이해가 된다. <타임 투 리브>의 게이 청년도 애인과 부모ㆍ동생한테는 전혀 알리지 않았다.(물론 몇 가지 ‘감정’ 정리는 한다.) 하지만, 할머니한테는 사실을 이야기하고, 불임부부와의 ‘3SOME'을 통해서 제 유전자를 세상에 남기고 난 뒤에 바닷가의 석양을 보면서 죽어간다. 그가 게이란 것은 이런 저런 일련의 선택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 를 생각해봤지만 답을 찾을 수 없었다. 게이는 특별한 인간이 아니니까.

 

왜 그들은 자기 병을 알리지 않았을까? 타인들이 질 마음의 짐 때문에? 죽음을 은폐하는 문화에 감염됐기 때문에? 다가오는 죽음이 나를 뭔가 우울증 상태와 같은 데로 빠뜨리기 때문에?

 

**

 

일단 오늘 이야기의 결론을 내려보자; 내가 ‘말기 암’ 환자라면ㅡ 이를테면, 내일 갑자기 길을 가다 쓰러진 후 병원에서, ‘폐암 4기입니다’ ‘췌장암 말기입니다’라든가, '급성 백혈병(혈액암)입니다.' ‘앞으로 길면 9개월, 짧으면 3개월 밖에 못 사십니다’는 따위의 말을 들었을 때, 어떻게 해야 되는가?

 

이를 여러 번 생각해봤으나 뾰족한 답은 나오지 않는다. 물론 나는 내가 원하는 방식대로 죽기를 원한다. 하지만, 그것은 심지어 위법(제기랄)일 수도 있고, 암 환자에게는 (빌어먹을) 내 의지대로 되지 않을 국면이 많다는 것을 알고 있다. 내가 원하지 않아도, 나는 가족 때문에, 또는 친구 때문에, 그리고 정신과 육체가 약해져 판단력이 흐릿해질 나 자신 때문에... 받아야할 치료를 못(안) 받거나, 전혀 쓸데없는 치료를 받을 가능성도 높다, 아마도.



그래도 어떤 길을 명확히 선택하고 잘 정리하는 게 필요하다는 것은 알고 있다. 또한 그런 선고를 받는 순간, 새로운 의미를 지닌 삶이 새로 시작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분명 마음대로 되지 않을 것이다. 공포와 상실감,  그리고 고통이 엄습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죽는 연습이 필요하다.


의사들의 통계학이 선언해주는 ‘3개월’, '6개월'이라는 시간은, 죽어 가기에는 너무 길지도 짧지도 않은, 적당한 시간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프랑소와 오종 영화의 프랑스어 원제도 '떠날 시간'이 아니라 '남은 시간'이다. 




작성 : JH.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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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촌스럽게, '가문'이라니?
 

SBS에서 주말 10시에 방영했던 <가문의 영광>이 막을 내렸다.

총 54회에 걸친 꽤 긴 호흡의 드라마였는데,

내가 재미를 붙여 보기 시작한 것은 한 중반쯤, 20회 즈음이 넘은 이후였다.

 

처음에 관심이 안 갔던 이유는 제목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재벌집 선남선녀들의 짝짓기 얘기인듯한데

제목까지 '가문'의 '영광'이라니, 이 무슨 시대착오적인 주제를 담으려 하는 것인가...싶었다.

 

지금, 한국에서 '가문'따위는 결국 부르주아 계층 내부에서

자신들의 밥그릇을 지키기 위해서나 동원되는 개념이 아닌가?

재벌들이 모자라든 잘났든 제 자식들에게 어떻게든 자신의 기업을 물려주는 일,

그 안이 썩고 곪았어도 자기끼리는 서로 잘났다며 추켜세우고 감싸주는 일,

그러는 과정에서 그 외부에 대해 그들이 보여주는 폭력적이고 이기적인 가족주의...

뭐, 그런것들밖에 상상이 안되는 어휘였기 때문이다, '가문'이란.

 

2. 연애를 통해 '재혼'하는 네 커플

 

주연급 남녀들의 러브스토리도 딱히 새롭지 않다.

대성건설 하사장(서인석 분)의 세 자녀-수영(전노민 분), 태영(김성민 분), 단아(윤정희 분)가

적당한 '갈등', '혼사장애'를 딛고 결혼에 골인하는 이야기이다.

 

이란성 쌍둥이인 수영과 태영은 둘 다 이혼남이다.

드라마 초반이 하회장(신구 분)의 아버지의 임종에서 시작되는데,

증조부의 장례를 치뤄야 하는 날,

수영은 아내의 불륜으로, 태영은 스스로가 바람을 피우다 들통나서 간통죄로 이혼을 하게 된다.

이후 수영은 자신보다 열 몇살이 어린 고아 아가씨이자 자신의 회사 청소부 직원인 진아(신다은 분)와 사랑에 빠지고,

태영은 자신이 간통죄로 경찰서에 끌려갔을 때 보게 된 가난한집 똑순이 여경 나말순(마야 분)과 티격태격하다 연애를 시작한다.

 

그들에게 닥치는 혼사장애는 흔한 것들이다.

신분의 차이, 계급의 차이, 나이의 차이.

거기에 태영의 바람기와 불임의 몸인 진아의 '종부'로서의 부족한 (생물학적)자질 정도가 덧붙여진다.

그러나 적당한 갈등과 장애 끝에 그들은 결혼을 결심하고, 결혼에 골인한다.

 

한편 막내딸인 단아도 결혼 경력이 있다.

그러나 결혼한 날 교통사고로 남편을 잃은 뒤

과거의 유물과 같은 '청상과부'로, 그녀가 일하는 학교의 박물관에서 늙어가고 있었다.

그러다가 졸부 집안의 아들로 카리스마 넘치는 냉혈한,

전형적인 '하이틴 로맨스' 주인공 같은(특히 그의 손발이 오그라드는 '당신, --였군.--였나?'말투, 딱 HR스탈이다^^;) 

남자 이강석(박시후 분)과

연극으로 시작된 가짜 연애를 하다 사랑에 빠진다.

 

이들의 혼사장애는 단아의 '서방 잡아먹을 팔자'.

강석의 부모는 단아가 강석까지 잡아먹을까봐 극구 결혼을 반대하지만,

강석이 자초한 위기의 순간에 목숨을 건 두 사람의 절절한 사랑 덕분에

강석의 부모는 결국 두 사람을 받아들인다.

 

이러한 내용들은 어떻게 보면 신선할 것 별로 없다.

그런데 한 가지 정도는 이미 이 지점에서도 특이함을 발견할 수 있다.

그것은 바로, 하사장의 세 자녀가 모두 '재혼'을 한다는 설정.

 

심지어 이 드라마에서는 아버지인 하사장조차도 재혼을 한다.

30년 전에 상처한 하사장은 같은 회사의 홍보실장이자 후배인 이영인(나영희 분)과 사랑에 빠진 것이다.

이미 두 번 이혼한 경험이 있는 영인은 결혼을 두려워했으나

하사장의 아이를 갖게 되고 낙태를 하려하지만

하사장네 가족의 따뜻한 마음에 감복해 그와 결혼을 하게 된다.

 

 

3. 새로운 가문, '패치워크' 가족되기

 

즉, 이 드라마는 네 커플의 재혼이야기이다.

이들이 각각 사랑에 빠져 결혼을 하기까지의 과정은 드라마 트루기적이다.

그러나 그들의 결혼이 재혼이기 때문에,

이 하사장네 '가문'은 매우 복잡한 가족관계를 맺을 수밖에 없다는 것에서

이 드라마만의 독특한 색깔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영인은 갑자기 30대의 자식이 셋이나 생겼고, 손자가 된 동동이보다 9살이나 어린 아이를 낳는다.

태영과 결혼한 말순은 태영의 전처와의 사이에 낳은 아들인 동동으로부터

"우리 아빠, 바람기 많은 건 아시고 결혼할 결심하셨어요?"라는 질문을 받으며 결혼에 골인한다.

종손인 수영은 진아가 불임의 몸이기 때문에 결혼 후 아이를 공개입양한다.

 

이처럼 이들은 고상하고 족보있는 '장성 하씨 가문'이라고 하기엔 꽤나 '콩가루' 스타일의 가족인 것이다.

혈족, 순혈주의같은 것은 도무지 지키기 힘든 그런 가족.

그러나 그런 겉으로 보기에 '콩가루'인 이 가족은,

가족간의 연대, 배려, 소통을 통해 그 어느 '혈통 좋은' 가문보다 훌륭하게 '가문'을 이루며 살아간다.

 

종부인 자신이 아이를 낳을 수 없다는 사실 때문에 결혼을 거부하는 진아에게

이 사실을 아는 하회장과 영인, 그리고 수영은 '가문은 꼭 혈통으로만 이어지는 것이 아니다.'라며,

종손을 낳을 수 없다는 사실때문에 결혼을 할 수 없다고 당당하게 말하는 진아의 그 '진실함'만으로

종부로서의 자격이 충분하다며 결혼을 적극 추진한다.

그리고는 아이를 공개입양한다.

 

한편, 영인(나영희 분)은 '쿨한 새로운 종부상'을 제대로 구현한다.

종부가 되었지만 그녀는 집안일보다는 회사일에서 훨씬 두각을 나타내고,

그러나 집안의 대소사에 대해서는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정치적 올바름의 감각으로

성별로 등급이 나뉘어져 있던 식사 문화를 세대별로 나눈다거나

집안일에서 남성들의 참여를 적극적으로 끌어내는 등

가문의 고루한 관습을 적당히 개혁하면서도,

가족 구성원들 각자의 노고와 고민을 해결해 주는 등 

그 가족 내부의 소통에는 가장 주도적 인물로 역할한다.

 

또한 그러한 그녀를 가족들은 제대로 이해하고 대우해준다.

아이를 낳은 뒤부터는 집안일을 거들 사람이 부족하니 회사를 그만두겠다고 했을때

시아버지 하회장과 남편 하사장은 그녀처럼 유능한 사람을 집에 두는 것도 낭비이며,

아이 낳은 뒤 그녀처럼 일 좋아하는 사람은 집에만 있으면 산후우울증에 걸릴 수도 있다며 반대한다.

그러면서 하회장이 며느리 대신 아이를 돌본다.

 

태영과 말순은 어른스러운 아홉살 짜리 아들 동동이에게서

매일같이 훈화말씀과 반성문 숙제를 받으며 철이 들어가고,

동동은 의로운 경찰인 새엄마가 자랑스러워서 학교에 가면 자랑하기 바쁘다.

새로 태어난 동생도 누구보다 열심히 보살피며, 자신의 적성이 '신생아 돌보기'임을 자처한다.

 

이처럼 새롭게 맺어진 가족들이

혈연으로 맺어진 가족보다 더 훌륭하게 가족을 이루며 사는 모습은(그것도 한꺼번에 네 커플이나!!!)

기존의 드라마들이 보여주지 않던 미덕이었다.

 

이들 하씨 집안 '가족되기'의 장애는

대부분 사랑과 결혼을 결심하는 당사자들 내부에서 비롯된 갈등이다.

자신이 부족해서, 상대방에게 너무 미안해서, 차마 마음을 못 연다.

그러나 그들이 그 고민을 딛고 결혼을 결심하면 가족들은 그 결정을 무조건 받아들인다.

 

보통 드라마의 혼사장애는 당사자들 스스로의 갈등이 아니라, 부모세대의 반대에서 비롯된다.

정말 지긋지긋하지 않은가....머리싸매고 드러누워 아들의 결혼을 반대하는 시어머니.

(최근 배우 윤여정이 <여우비>라는 다큐에서 이런 드라마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런 드라마 속 역할이 나 스스로도 하도 지겨워서 우리 아들에게 그랬어요. 네가 어떤 여자를 데려와도 난 절대로 반대 안하겠다고요.")

 

그런 점에서 이 드라마는 시대착오적이기는 커녕, 훨씬 이 시대에 걸맞는 가치관을 갖고 있다.

결혼이나 가족맺기에서 제일 중요한 의사결정의 주체는 본인들이라는 것.

그렇게 해서 맺어진 새로운 가족은 서로의 개성과 차이를 인정하고 노력하여 맞춰나간다.

엘리자베트 벡이 말한 '패치워크' 가족이란 이런 것이 아닐까?

 

 

 

4.판타지라도 어디냐-재벌의 '노블레스 오블리주'



그 외에도 이 드라마의 미덕은 아주 많다.

하회장 가족은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정신을 실현하는 재벌이다.

그들은 강석이 회사를 인수합병하려 했을때, 회사를 양도하는 조건으로 직원들의 고용보장 한 가지만을 요구한다.

또한 하회장은 자신의 재산을, 평생을 자신의 집에서 일한 몸종 할머니 삼월에게만 남겨주고

자신의 자녀들, 손자들에게는 한푼의 재산도 상속시키지 않는다.

자신의 나머지 재산은 모두 회사 직원들의 복지를 위해 내 놓는다.

 

이러한 하회장 집안의 정신에 동화되어 가는

졸부사돈 이천갑(강석의 아버지, 연규진 분)도 자신의 재산을 사회에 환원한다.

졸부가 되었지만 넝마주이 출신인 탓에 늘 '가문'과 '족보'에 대한 컴플렉스를 가졌던 천갑의 모습과

식모 출신으로 허영심 많고 무식하긴 해도 정 많고 순수한 천갑의 처 영자는

그들의 눈에 비친 '족보있는 집안', '뼈대 있는 가문'의 대명사인 하회장 일가에 대해

존경의 마음을 갖게 되면서 돈이면 다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돈을 제대로 쓰는 법을 차츰 깨달아가는 것이다.

 

강석이 공격적으로 사업을 확장하던 과정에서 자살하게 만든 한 재벌가의 아들 문제로 사회에서 지탄을 받게 되자

자신의 재산을 내놓는다는 걸 발표하면 어떻겠냐는 생각을 아들 강석에게 말하자,

"정말 사회에 환원하고 싶으시면, 익명으로 하세요. 저 구할 생각으로 하지 마시구요."라며 아버지의 생각을 조금 더 교정한다.

천갑은 그러자 "그래, 내가 또 '거래'를 하려 들었구나. 여전히 장삿꾼 기질을 못버렸어."라며 반성한다.




물론 꿈같은 스토리이다. 지나치게 착한 드라마다.

드라마의 막판으로 갈 수록 등장인물들이 하나같이 착해져서 약간은 보기 민망할 지경이었다.

이 세상에 이렇게 욕심없는, 이렇게 착하기만 한 자본가가 있겠는가?

그러나 어차피 꿈을 그리는 게 드라마라면,

재벌이 "내 돈을 거절한 여자는 네가 처음이야!"라며

내숭9단의 재투성이 아가씨를 선택해

신분상승시켜 준다는 꿈보다는 바람직하지 않은가?

 

뭐...이 드라마를 과연 재벌들이 봤을까는 의심스럽지만(시청률은 꽤 높아 늘 주말시청률 1~2위를 다퉜다),

봤다면, 분명 자본가들에게 '계몽'이 될만한 드라마임은 분명하다.

 

 

5. 하씨 핏줄 아닌 사람들이 성취해 낸 하씨 가문의 영광

 

그런데...이게 끝이 아니었다.

이 드라마의 마지막 반전.

이 드라마는 종반부에 가서 한 가지 더 놀라운 진실을 밝힘으로써

또 한번 '가문의 영광'의 새로운 의미를 구성해냈다.

 

그것은 바로, 하회장(신구 분)이 사실은 하씨 집안의 자손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하회장의 모친은 하회장의 아버지가 일제 강제징용에 끌려간 사이

동네의 부랑배에게 겁욕을 당해서 하회장을 임신했던 것.

하회장의 부친은 징용때 끌려가서 불임의 몸으로 돌아왔었다.

몸을 더럽힌 종부인 하회장의 모친은 하회장을 낳은 뒤 자살을 했고,

그런 하회장은 부친의 극진한 사랑으로 자라났다는 것이다.

 

이 사실을 어렸을 때 알게 된 하회장은 '자신은 더러운 피이다. 하씨 집안 사람이 아니다'며

집을 나가려 했지만, 그때마다 부친은 하회장을 붙잡아 안으며 말했다고 했다.

'너는 내가 사랑한 아내의 자식이니 내 자식이다. 내 자식이니 하씨 집안 종손이다.'라고.

그 뒤로 자신은 하씨 집안 사람이라는 사실을 더이상 의심하지 않았다고

하회장은 모든 가족을 불러 앉혀놓고 말한다.

(이러한 '비밀'은 작가가 처음 드라마를 구상할때부터 마련해놓았던 장치였다.

그만큼 처음부터 이러한 주제의식은 작가에 의해 면밀히 의도되고 계획된 것이었다는 점에서 특히 훌륭하다.)

 

즉, 그 자리에 있던 사람은, 사실 그 누구도 하씨 집안의 피를 이어받지 않았던 것.

(하회장의 늦둥이 여동생(박현숙 분) 도 물론 업둥이다.)

그들은 그러한 하회장의 말을 엄숙히 듣고난 뒤 충격을 받기는 하지만,

다음날에도 매일 아침 올리던 상식을 올리며 하씨 가문의 조상들에게 예를 다한다.

 
이처럼 이 드라마는 매우 독특한 가치관을 가진, 정치적으로 올바른 드라마다.

가문, 가족을 이루는 힘이 이처럼 인간에 대한 순수한 애정과 연대의식이라면,

오늘날의 가족주의가 가진 수많은 병폐들은 생겨나지 않을 것이다.

서로 사랑하고, 이해하고, 배려한다면 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피로 맺어지지 않아도 훨씬 더 좋은 '가문'으로, '영광'을 누리며 살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이 드라마가 협찬 때문에 거론한다는 혐의는 있음에도

실버타운을 건설해서 그 안에서 노인들이 새로운 가족을 형성하는 모습을 여러 차례 보여준 것도 무척 인상깊었다.)

 

 

그러니, 이 드라마를 보며 우린 이런 정도의 생각은 기억해 둘 수 있지 않을까?

"가문이란, 그 가문 내부의 사람들을 외부로부터 배타적으로 보호하기 위한 울타리가 아니라

더 많은 외부의 사람들까지 새롭게 연결하기 위한 끈이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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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짱녜 2009-08-22 03: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아 이 드라마가 최근까지 하고 있었던 것이로군여! 몇 달 전 몇 번 봤던 기억이 다인데.. 신구 영감을 수장으로 하는 그 가문의 인적 구성이 무척 황당하면서 흥미로웠던.. 원수 집안(?) 간의 로맨스는 좀 낯간지럽더라는..ㅋ 그런데 한가인 남편 연정훈의 아버지 연규진의 졸부 속물 연기가 정말 지대로더라는..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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