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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들은 낙태 근절을 위해 낙태 시술 병원들을 고발하고 정부에 엄격한 단속을 요구하고 있다. 

 
당신들 말대로 현재 낙태 시술이 불법이라는 것도 사실이고 엄정한 법 집행이 되지 않는 것 또한 사실이다.
 

생명을 없애는 것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또는 문제가 해결된다고 보는 이들에 대한 선전포고라는 그대들의 의도도 의심하지 않겠다. 
 

1) 그러면 그대들의 목적은 낙태 시술이 이 땅에서 사라지도록 하는 것인가? 
 

2) 아이를 가진 모든 여성들이 모두 다(모자보건법에 규정된 낙태 허용 사례-강간 임신이나 유전병 또는 근친상간 임신 등을 제외하고) 아이를 낳기를 바라는가? 
 

3) 그대들이 벌이고 있는 낙태 금지 운동과 고발 운동이 과연 현상 타개와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된다고 보는가? 
 

그 문제가 되는 현상이란 이런 거다. 가장 중요한 것은 다음의 문제라고 생각된다.

첫째. 낙태가 만연한 현실. 우리나라 낙태 건수는 2005년 조사된 것만 35만건이고 현재 많게는 50만건까지 추정하고 있다. 이게 순수한 '낙태 금지'와 엄격한 법집행과 처벌로 해결될 거라고 보는 건가, 정말로?


둘째, 미혼모 문제. 출산을 선택하는 미혼,비혼 여성들은 꾸준히 있어왔고 선진국처럼 늘어날 수도 있다. 하지만 결혼을 하지 않은 채 아이를 가진 한국 여성들은 당신네들 주장을 따르자면 크게 두 가지 선택지밖에 없다.

무조건 낳아서 이 척박한 땅에서 힘겹게 아이를 기르거나/자기가 낳은 아이를 버리거나, 아니면 음성적으로 야메로 시술을 받거나. 현재 한국에서는 그렇다. 당신네들이 이 모두를 책임지겠다는 건가?


당신들이 순진한건지 무식한 건지 도통 짐작할 수가 없다. 그래서 당신들 입장에서 생각해보려 한다. 
 

낙태근절운동으로 낙태가 근절될 수 있다고 믿지는 않을 것이다. 설마. 그렇게 믿는다면 당신들은 대화의 여지도 없는 '바보'들이 틀림없기 때문이다. 사창가 단속이랑 낙태시술 단속이랑 다를 게 하나도 없다. 법망을 피하는 길은 반드시 열리게 마련이다. 당신들 생각과 달리 인간들은 그렇게 단순하고 순진하지 않다. 이 정도는 당신네들도 모르지 않으리라고 믿기로 한다.


미혼모들이 고통받는 현실, 아이의 임신과 출산에서 전적으로 여자만이 모든 짐을 떠안게 되는 현실을 모르지는 않을 것이다. 아마도 그대들은 아이를 포기하는 것보다 낳는 것이 더 나은 선택이며 아이를 낳으면 길은 열릴 것이라고(길을 열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모양이다. 그런데 그 주장을 왜 이런 방식으로 해야 하는지 생각해 봤는가? 

순간의 실수로 또 무지로 아이를 임신한 여성들이 낙태를 선택한다고 해서 범죄자 취급을 하는 것이 의사들인 당신들이 역시 한 생명인 이 여성들에 대해 취할 수 있는 정당하고 옳은 행동이라고 생각하는가? 태아의 생명은 그토록 소중히 여기면서 이 여성들에게는 왜 그렇게 가차없는 태도를 취하는지알 수 없다. 낙태를 하지 말라는 건 곧 낳으라는 이야기이므로 가차없는 몰아붙이기에 다름 아니다.

당신들의 그 엄정함의 가면을 쓴 공격성과 무자비함은 당신들이 도외시하고 있는 한 생명을 궁지로 또 사지로 몰 수도 있다. 


이상의 질문들에 대답을 할 수 없는 한, 아무리 여론 조사에서 낙태 반대가 찬성을 앞지르는 것이 사실이라 해도, 당신들의 행위는 결코 지지받을 수 없을 것이다.

 
부디 사창가 단속한다고 막대한 인력과 예산과 시간을 낭비한 '풍속의 수호자'들 꼴 나지 않기를. 태아는 생명이며 생명은 무엇보다 소중하다는 원칙론은 집어치워라. 그런 누구나 입에 올릴 수 있는 원칙만 고집하지 말고 제대로 된 그리고 현실성 있고 가능한 대책을 논의하는 데 힘을 보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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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인 2010-03-07 21: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http://news.donga.com/Column/3/04/20100307/26668271/1&top=1 이 글도 도움이 되네요.
낙태와 성매매특별법은 다른 것 같아요. 저는 전자에 대한 현정부의 정책이나, 노동부장관의 발언은 어이상실이며, 천박함을 보여주는 증표라고 생각하지만, 성매매특별법은 '막대한 인력과 예산과 시간'을 낭비하는 것에 지나는 것이 아니라, 적어도 국가가 표면적으로는 성매매에 반대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물론, 현실적인 대응방안이 뒤따라야 되겠지만요. 반면 낙태에 대한 반대는, 훨씬 더 공적으로 논의가 있고, 사회적 여론이 형성되고서야 판단되어야 될 것인데, 이 정부는 마구 밀어붙이고 있다는 점에서 큰 문제인 것 같아요.

녹두 2015-01-18 13:35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낙태는 뱃속아이를 죽이는거임
즉 남의 주권을 침해하고 해끼치는거지
매춘은 어느누구에게도 해끼친거없고 주권침해한거없음
도대체 뭔소릴하는건지
뇌가 어뜨케되잇는건지
사고능력이 있는 인간이긴한건지

기인 2010-03-07 21: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기사도 성매매와 출산이 어떻게 기저에서는 연관되는지도 말하고 있어서 흥미롭네요.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337093&PAGE_CD=N0000&BLCK_NO=3&CMPT_CD=M0002

기인 2010-03-07 21: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거는 제 생각이랑 비슷한 기사. 노동부 장관이 정말 '저출산'이 '국가'를 위해 '위험'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면, 저는 이 생각에도 별로 동의하지 않지만, 아이는 사회, 국가적 책임임을 인지해야 하겠지요.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334715&PAGE_CD=N0000&BLCK_NO=3&CMPT_CD=M0002

녹두 2015-01-18 13: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도대체 먼소릴하는건지 뱃속에 있는 아이라고 멋대로 죽여도 되고 죽일수잇다는건 무슨 근거로 하는소리??
 

요즘 매일매일 신종플루 관련 속보가 뜨고 있다. 

속보의 내용은 대부분 신종플루 환자의 사망소식인데, 그 소식들의 헤드라인이란 사망자의 연령, 성별, 지역, 고위험군여부 정도이다. 하루에 몇명의 사망자가 발생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이 기사들을 보면서 기분이 묘하다. 도대체 이 기사들은 무엇을 위한 기사인 거지? 하면서. 

그런 기분은 이들 기사를 클릭해보았을 때 더더욱 강화된다. 기사가 내용이 별 게 없다. 우리가 그 기사를 클릭할 때는 무얼 기대하겠는가? 당연히, 신종플루에서 "어쩌다가" 사망에까지 이르렀는지를 알고 싶은 것이다. 왜? 그걸 알아야, 나는 그걸 피하거나 막거나 조기치료를 할 수 있을테니까. 그러나 기사들은 그것에 대한 내용은 없다. 그들이 몇월 몇일에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고, 언제 확진판정을 받은 뒤 며칠 만에 사망했는지가 주된 내용이다. 거기에 덧붙여서 그들이 고위험군이었는지, 어떤 병력이 있었는지, 어느 지역 사람인지 정도만 나온다.  

 그런 기사들은 아직 사망하지 않은, 그리고 아직 신종플루에 걸리지 않은(걸렸는지 안 걸렸는지 모르는) 사람들에게 아무런 도움도 안된다. 정보전달성이 매우 떨어지는 기사이다. 사망자가 고위험군일때에는, 일부의 사람들에게는 안도감을 줄지도 모른다. 자신은 그러한 고위험군의 인간이 아니라는 점에서. 그러나 그 안도감은 너무나 얄팍하고, 매일같이, 아니 하루에도 여러 차례 쏟아져 나오는 신종플루 확진 환자의 사망 기사는 대체로 우리에게 '공포'를 조장한다.  

이런 사람도 죽었고, 저런 사람도 죽었다. 신생아도 죽었고, 10대도 죽었고, 20대도 죽었고, 여성도 죽었고, 남성도 죽었고, 고위험군이 아닌 사람도 죽었고, 신종플루에서 완치됐던 사람도 죽었고, 영남 사람도 죽었고,  대전 사람도 죽었고...그런 정보만 전해준다. 그러한 기사는 계속 축적되어 한국의 전 인구가 모두 자신의 '부류'의 인간들도 죽었다는 것을 인지할 때까지 지속될 것이다.  

거기다 그들의 신종플루 사망자수의 누적통계 방식도 매우 거슬린다. 기한도 없이 계속해서 누적시켜 숫자를 세면, 당연히 많을 수밖에 없잖겠는가? 그렇게 따질 거면, 독감, 감기로 사망한 환자 수도 계속 누적해서 말해라. 독감으로 사망한 환자 수인들 그것보다 적을까?  그럼에도 신종플루 환자의 수는 이미 완치된 사람까지 게속 누적하고 있고, 사망자 수도 계속 누적해 나갈 모양이다. 그리하여 전 인구의 신종플루 공포. 그게 그러한 기사들의 결과이자...어쩌면 의도이다. 

그러한 기사를 보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겠는가? 매일 다니는 직장, 학교를 때려치우고, 아무와도 접촉을 안할 것인가? 차도 돈도 없는 사람이 갑자기 자가용을 몰고다니며 대중교통을 피할 것인가?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다. 살던 대로, 해야하는 일 해가면서 사는 수밖에 없다. 그러니 얼마나 무기력한 공포감에 시달리겠는가? 매일매일 신종플루 환자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거기에 비례해 많은 수의 사망자가 발생하고 있지만, 그런다고 개인이 할 수 있는 대비책은 거의 없으니. 개인이 신종플루에 걸리지 않으려면 언제까지, 어떻게 막아야 할지 방법은 전혀 알수가 없다. 그래서 그냥 두려워하면서도 그대로 사는 것이다.  

딱 한 가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 그것은 백신접종. 이제 백신 접종이 시작됐다고 한다. 일차적으로 의사, 간호사들에게 접종을 시작했는데,  일부 의사, 간호사들조차 백신 접종을 꺼린다고 한다. 아직 안정성이 확보되기엔 임상기간이 너무 짧을 테니 당연한 반응일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신종플루에 대한 공포심이 너무 크면 별수 없이 가서 맞게 된다. 그리고 그 공포심은 언론이 만들어내고 있다. 그래서 무척 화가 난다. 다시 말해, 언론 등이 조장한 신종플루 공포때문에, 우리는 백신을 맞아야만 하게 된 것이다.

난 백신 맞기 싫다. 아직 그 백신의 안정성을 못믿겠다. 그러나 신종플루 걸리는 것도 물론 싫다. 그래서 난 다른 정보를 얻고 싶다. 일반적인 신종플루 예방을 위한 생활수칙은 알고 있다. 그것 외에, 사망자 소식에서는, 그들이 어떻게 해서 신종플루로부터 사망에까지 이르렀는지 그 증상의 진행과정을 알고 싶다. 그리고 어떤 부분에서 문제가 커져서 사망을 하게 됐는지, 구체적이고 명료한 정보를 알고 싶다. 어떤 사람이 몇 명 죽었는지, 말고, 왜 죽었는지를. 그러기 전까진, 난, 언론과 정부와 백신회사, WHO가 뭔가 우리를 조종하고 있단 느낌을 지우기가 힘들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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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석증때문에 얼마 전 담낭적출술을 받았다. 나름 전신마취도 하고 하는 '진짜' 수술이었지만 요즘의 의학기술이 워낙 좋아져서, 3박4일이면 퇴원할 수 있는 병이었는데, 나는 좀 특이한 상황때문에 9일만에 퇴원을 하게됐다. 이 특이한 상황이란  처음의 나를 담당한 진료과목이 '내과'였다가, '외과'로 트랜스퍼되었던 것. 처음엔 췌담관 내시경 조영술을 하면서 담도나 담낭에 있을 지 모르는 돌들을 찾아내고, 돌이 발견되면 그것을 제거하는 간단한 내과적 '시술'로 끝날 줄 알고 학기중에 겁없이 입원을 했었다. 그런데 내시경을 넣어 막상 몸 안을 보니, 담낭(쓸개)쪽에 돌이 너무 많아서 외과적 수술을 받지 않을 수 없다는 진단이 내려졌고, 그래서 그 수술까지 받느라 입원이 길어졌다.

 

그 과정에서 담석증이라는 같은 증상에 대한 내과와 외과의 접근방식의 차이 같은 것을 그야말로 몸/소/ 체험하게 되었다. 내과의들은 매우 친절하다. 그들은 나에게 이것저것 열심히 묻는 편이고, 매우 자주 나의 바이탈 사인을 체크한다. 검사도 진짜 여러번 한다. 간단한 피검사부터 엑스레이며 CT며...반면에 외과의는 교수뿐 아니라 레지던트, 인턴 조차도 정말 바람처럼 휙 왔다가 바람처럼 사라지며, 수술을 받은 후엔 내 상처나 몸을 쳐다봐 주지도 않아서 깜짝 놀랐다. 심지어 상처부위의 드레싱 한번도 안해주고 퇴원시키더라. 퇴원 후 하루 이틀 뒤쯤 동네 일반외과에 가서 하면 된다면서. 물론 기초적인 내 바이탈 사인이 정상적이었기 때문일 테지만, '시술' 수준인 내시경 한번을 받으려고 시술 전날에 수차례 검사를 하고, 시술 다음날에 다시 그 검사를 거의 재탕으로 다 하는 내과와 비교하면 너무 낯설었다. 나는 수술한 다음 날 '근데 수술이 잘 되었는지 무슨 검사같은 건 안 해요?'라고 담당의에게 물었다가 '네? 무슨 검사를 또 하라구요?'라는 대답을 듣고 한참 무안해지고 말았다.  

 
-하얀거탑에서의 다이내믹한 수술장면 보여주기


나는 왜 외과의들이 저런 태도를 취할까를 생각했다. 저 자신감은 어디서 오는 걸까? 이런 유추가 적당한지 모르겠지만, 우리같은 '글쟁이'들은 논문 한편, 아니 이런 블로그에 낙서 한 바닥만 해도, 제가 쓴 글을 보고 또 보며 고칠 데 없나 확인한다. 더이상 고칠 수 없는 마감 때까지 어딘가에는 실수나 오탈자가 있을 것 같아 쉽게 자기 글을 놓아버리지 못한다. 근데 하물며 다른 사람의 몸에 구멍을 내서, 웬만한 사람은 다 가지고 있는 장기 하나를 떼어 버렸는데, 그 과정에 뭔가 실수나 이상이 있지 않을까를 저렇게 궁금해하지 않을 수가 있나?

 

그 대목에서 떠오른 것이 그동안 내가 봐왔던 수많은 의학드라마들이다. 대부분의 의학드라마의 주인공은 외과의이다. 흉부외과이건 신경외과이건 소화기외과이건 간에, '메스! 썩션!'따위를 외치며 피를 보여주고 꿈틀대는 장기들을 만져대는 외과의들의 역동적이고 '예술적'인 수술과정이 대부분의 드라마들이 상정하는 의학의 '본령'(?)이다. 우리는 그런 장면들을 보며 의학의 힘을 경외시하곤 해왔다. 반면에 내과의는 보통 여성 인물들이 맡으며, 그들의 역할은 외과의에 비해 부수적이다. 그들이 보여주는 '보살핌'의 '포즈'는 경외시할 대상까지는 되지 못한다.

 

 

그런데 미국드라마 <하우스>는 그동안 드라마에서 그려져 왔던 내과와 외과 사이의 이러한 '계급'을 완전히 전도시켰다. <하우스>에서 외과는 내과의인 하우스와 그의 팀원들이 밝혀 낸 환자의 병을 수술로 고쳐주기만 하면(?) 되는 '따까리' 신세가 된다. 병명을 알 수 없는 이상 증세를 보이는 환자로부터 병인을 진단해 내는 것은 모조리 내과의, 하우스의 몫이다.

 

이처럼 <하우스>는  의학, 하면 외과를 떠올리게 하던 기존의 의학드라마들의 공식을 보란듯이 깨고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그럼 왜 그동안의 의학드라마들은 굳이 외과만을 다루어왔을까? 실제로는 3D과로 취급되어 외과 전공의의 숫자가 나날이 줄어들고 있는 오늘날 같은 현실에서. 그 이유를 내가 다 알 수는 없지만, 가장 큰 이유 중의 하나는 '비주얼'일 것이다. 수술을 해야 드라마에 장면이 살아난다. 그렇다고 성기 등을 노출해야 하는 산부인과나 비뇨기과 수술을 다루긴 어렵겠고, '메스-썩션'의 메아리가 리듬감있게 울려퍼지며 꿈틀대는 심장, 시뻘건 장기를 적나라하게 '보여줘'가며 뭔가 제대로 인간의 몸을 고치고 있다는 느낌이 들기로는 외과만한 진료과목이 없기 때문이다. 외과 드라마들이 어려운 의학용어를 쏼라쏼라해도 보는 데에 큰 불편함이 없는 것도 바로 이러한 드라마들이 '듣는' 게 아니라 '보는' 것이기 때문이다. 뭔 말인지 못알아 들어도 수술 장면을 보면서 그 긴박한 상황과 수술의 극적 성공이나 실패를 누구나 이해할 수 있다.

 

그러니 앞으로도 의학드라마들은 아마도 외과 쪽의 이야기를 다룰 가능성이 높다. 최근의 <하얀거탑>처럼 간담췌의 권위자라거나 <카인과 아벨>처럼 뇌신경외과 전문의라거나...좀더 외과 내부의 세부전공을 다루긴 하더라도 외과를 벗어나는 것은 시각매체인 드라마나 영화로서는 쉽지 않을 것이다. 이 점이 나를 수술한 외과의들이 보였던 '자신감'과도 관련이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들은 내 몸을 직접 보았다. 직접 눈으로 보고 문제가 있는 장기를 말끔히 떼어냈으니, 더 이상 궁금할 게 없는 것. 내과의들처럼 직접 보지 않고 여러 검사결과를 가지고 추정을 해야하는 경우와는 차원이 다른 것이다.

 





따라서 직접 보여 줄 것이 별로 없는 내과를 중심에 두고 다루었으니, <하우스>는 나름 의학드라마로서는 새로울 뿐 아니라 위험한 시도를 감행한 셈이다. 사실, 그런 점에서 <하우스>는 '마니아' 층을 만들 수는 있어도 대중적 인기를 끌기는 어려운 드라마이다. 너무 말이 많고, 그들의 끊임없는 의학적 토론은 너무 전문적이어서 반 이상은 이해도 안된다. 그럼에도 미드팬들이나 미국의 시청자들이 <하우스>를 즐겨보는 이유는 뭘까? 나는 그 이유 중 가장 큰 것이 '사생활의 엿보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하우스>의 중심 이야기 패턴은 거의 비슷하다. 한 사람이 멀쩡하다가 갑자기 발병해서 병원에 실려온다. 환자는 일부러이건, 혹은 혼수 상태 등의 이유로 어쩔 수 없어서건 간에 자신이 이러한 병에 걸리게 된 원인을 말해주지 않는다. 그러는 사이 환자의 병세는 점점 악화된다. 하우스 박사의 팀은 새롭게 드러나는 증상들에 따라 그때 그때 새로운 처치방법을 택하지만, 처음엔 쉽게 병세가 호전되지 않는다. 그러다가 몇몇의 증세를 단서로 해서, 그리고 그 환자의 사생활(가족, 거주환경, 생활패턴, 성격, 과거의 병력, 가족력 등)을 파악하게 되면서 환자의 병명과 병인을 알게 된다. 그래서 그에 따라 처치를 하고, 그 과정에서 다시 병을 회복한 환자는 목숨을 구제받은 대가로 자신의 감춰뒀던 사생활, 비밀을 고해성사할 수밖에 없게 된다.

 

이 부분 때문에 사람들은 그 알아듣지도 못할 의학용어의 홍수 속에서도 꿋꿋이 버텨가며 <하우스>를 보는 것이다. 이를테면, 한 9살짜리 비만의 꼬마 여자아이가 병원에 심장마비로 실려 들어오자 그 아이가 어린아이가  엄마 몰래 다이어트 약을 복용했다는 사실을 밝혀낸다거나, 어떤 대통령 후보가 어렸을 적 간질을 앓았고 그때문에 간질 치료제를 먹었다는 사실을 털어놓게 만든다거나, 젊은 청년이 부모님 몰래 제3세계국가에 여행을 갔다가 성병에 걸려온다거나...하는, 사람들이 감추고 싶어하는 비밀을 그들의 몸과 증세를 통해 파헤쳐 까발기는 과정이 재미있는 것이다. 그 사람의 뭔 수치가 무슨 호르몬의 이상으로 높아졌는지, 거기에 뭐뭐 약을 쓰면 증세가 호전되는데 대신에 무슨 부작용이 있는지 따위의 말은 한 마디도 못알아 들어도 상관이 없다. 



 

외과가 중심이 되는 대부분의 의학드라마는, 병에 걸린 환자가 '왜?' 그 병에 걸렸는지는 거의 다뤄지지 않는다. 아니, 외과가 아니더라도 대부분의 드라마에서는  병자가 어떠한 생활, 식습관, 복용력 등을 가졌는지는 관심이 없다. 주인공이 백혈병에 걸린 것이 그의 어떤 생활습관때문이라고 말하는 드라마를 본 적이 있는가? 주인공이 위암에 걸렸다고, 그가 짜게 먹어서, 매운 음식을 좋아해서, 뭐뭐뭐 약을 장기 복용해서 위암에 걸렸다...식의 말을 하는 드라마를 본 적이 있는가? 병에 걸리게 된 그 사람의 '과거'는 보통 드라마에서 하나도 안 중요하다. 그냥 병에 걸린 것, 그래서 그 이후 병마와 싸워야 하는 것 자체만이 중요하다. 외과의들은 그런 병을 수술로서 치료해주는 것이고.

 

그런데 <하우스>의 의사들은 '어떻게 병을 치료할 것인가?'의 답을 보통의 의학드라마들이 하는 방식의, 'A증상에는 A~의 치료법을'과 같은 병-치료(수술)법의 대응표를 갖고 있는 것이 아니라 'A증세는 a라는 원인때문이다'라는 병의 원인-병의 대응표를 갖고 있다. 그들은 병의 치료법은 증세로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병의 원인을 통해 판단해야 정확하다고 여긴다. 따라서 원인을 찾기 위해 병자의 '뒷조사'를 열심히 해댄다. 시청자들은 이 뒷조사가 재미있어서 이 드라마를 즐겨보는 것이다. 이동침대에 누워 수술실을 오갈때 나를 보던 사람들의 '젊은 처자가 어쩌다, 뭔 병에 걸려서?'하는 동정과 동시의 호기심 어린 눈빛들처럼.

 

어쨌든, 병, 증상의 원인이 생각보다 단순하지 않으며, 몸의 모든 부위는 서로 유기적인 연관관계가 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는 점에서 <하우스>는 독특하고 또 의미있는 의학드라마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하우스>의 서사는 병에 걸린 수많은 사람들에게 묘한 죄의식이나 공포를 심어주기도 한다는 점에서는 못마땅하다. 원인을 열심히 캐고, 그 원인들이 대부분 환자 본인의 사생활에서 비롯된 것임을 보여주는 이 드라마때문에 환자들은 자신이 뭔가 인생을 잘못 살아서 이런 병에 걸렸다는 죄책감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내과의와 외과의 앞에서 다른 태도를 취하게 된 것도 바로 이 <하우스> 때문이었다. 외과의 앞에서의 나는 거의 아무 것도 고백(?)하지 않았다. 그러나 내과의 앞에서 나는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참 쓸데없이) 솔직했다. 나의 생활습관이나 약물복용의 경험 등에 대해서 너무 열심히 털어놨다. 그러지 않으면 <하우스>에 등장하던 수많은 환자들처럼 갑자기 이해할 수 없는 증상을 보이며 병세가 악화될지도 모른단 공포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막상 내가 겪은 병원과 의사, 의학이란 <하우스>같은 정도의 내 뒷조사를 요구하진 않았다. 내가 40대 이상의 비만 여성들에게 많이 발생한다는 담석증에 걸린 이유를 알기 위해 실컷 내 사생활(?)을 얘기했지만 원인 규명에는 별 소용이 없었다. 나의 담당 내과의는 '원인은 정확하게 모릅니다. 뭐 그게 약간은 영향을 미쳤을 수도 있죠' 식의 애매한 답변 뿐이었다. 

 





아마도 이것은 나의 담당의가 무능력해서라기보다는, 그게 실제 현재의 의학의 수준이어서가 아닐까 싶었다. <하우스>처럼 병의 원인을 명쾌하게 밝히고 단정적으로 그 병에 대해 진단해 내는 일은 현실에선 아직 쉽지 않은(어쩌면 위험한기도 한) 것이 아닐까. 인간의 몸을 통해 한 인간의 사생활을 파헤치는 것, 그리고 그를 통해 병에 걸린 환자에게 병의 책임을 돌리는 것은 시청자들을 매혹하기 위한 과도한 설정일 뿐. 인체는 여전히 신비롭고 너무나 복잡하며, 현실 속의 의사들은 대체로 이 인간의 몸 앞에 겸손하다. 당신이 어떤 '짓'을 하고 살아서 그런 병에 걸린 거라며 비난(?)하는 일은, '독설가 닥터 하우스'가 드라마 속에서나 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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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인 2009-10-01 00: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우스 흥미로운 것 같아요. 코난 도일의 홈즈-하우스/왓슨 구도를 그대로 차용해서, 결국 현대적 '탐정'=내과의사라는 등식을 만들어냈다는 것이 기발한 것 같아요. ㅎㅎ

somun 2009-10-01 10:53   좋아요 0 | URL
그렇죠, 새로운 컨셉인 건 분명합니다. CSI도 그렇고 하여간 사람들은 이런 탐정, 수사물을 참 좋아하는 것 같아요. 근데 우리나라 드라마나 영화는 이런 류가 극히 적고, 성공 확률도 매우 낮다는 거...왜 그럴까요?

기인 2009-10-05 00: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근데 이거 눈 너무 아픈데 ㅜㅠ 검정바탕 하얀글씨... 저만 그런가요? ㅜㅠ

somun 2009-10-05 23:15   좋아요 0 | URL
음, 좀 그렇네요...근데 지금 이 스킨포맷은 제가 고르는 게 아니고요, 랜덤식으로 매일매일 알라딘이 알아서 갈아입혀주는 거야요...따라서 내일은 또 다른 스킨이 걸리겄지요...내일 거는 이렇지 않을지도 모르니 좀만 참으삼~
 

 이반 일리히, 병원이 병을 만든다. 

 

 

 

 

 

 

 

 

아툴 가완디, 나는 고발한다 현대의학을 

 

 

 

 

 

 

 

로버트 S. 멘델존, 나는 현대의학을 믿지 않는다 

 

 

 

 

 

  

로버트 S. 멘델존, 병원에 의지하지 않고 건강한 아이 키우기 

 

 

 

 

 

  

 로버트 S. 멘델존, 여자들이 의사의 부당 의료에 속고 있다 

 

 

 

 

 

      

파트릭 팰루, 환자를 위한 나라는 없다 

 

 

 

 

 

 

  

환자들의 권리, 의료 혁명의 필요성, 의료 현장 고발에 대해 쓴 책들의 저자들은 아이러니하게도 또는 다행스럽게도 의사가 많은데, 대부분 외국의 저자들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어느 분야를 막론하고 일종의 '내부고발자' 역할을 하는 그런 전문직 필자들을 찾아보기가 힘든데, 그건 의사(전문직 종사자)들이 그런 문제에 덜 의식적이어서일까 아니면 사는게 너무 고달파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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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인 2009-09-24 16: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의료계에 김두식 선생님 같으신 분은 없나요? >.<
 

한국의 모든 임산부는 병원에 등록되면 반드시 기형아 검사를 받게 된다.   

9주 무렵부터 시행되는 기형아 검사는 몇 단계로 나뉘게 되고 또 위험군인지 아닌지에 따라 추가 검사가 요구되는 경우도 있다.  

요즘에는 선별(?)의 정확도가 높아 80~90%까지 사전 진단이 가능하다고 한다. 얼마나 다양하고 다채로운 검사법들이 있는지 놀라울 정도인데,  

first double marker : 임신 초기(9주~) 혈액검사로 다운증후군을 가능성을 판단한다 

NT : 초음파 측정 후 비정상 소견일 때 융모검사나 양수검사로 확진 

융모막 융모 검사 : 융모(태반 조직)를 이용해 염색체 검사, 다양한 '증후군'을 99% 잡아낸다. 

트리플 마커 : 임신 중기 혈액검사 

쿼드 : 트리플에 추가적으로 행하는 검사 

이밖에도 태아 당단백 검사, 양수검사, 정밀초음파 등등이 있는데, 더이상의 설명은 각설하고, 문제는 이 검사들의 목적이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왜, 기형아 감사가 필요하며 그를 통해 우리가 알고 싶은 것 또는 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가? 

물론 모든 임산부들이 저 검사들을 다 하는 것은 아니다. 혈액 검사를 통해 '선별된' 산모들만 추가 검사를 하고, 위험성이 높을 때는 양수검사를 하게 된다.  

검사 결과 이상 없다면 그냥 그걸로 끝이다. 그런데 이상이 발견되었을 때는? 이것저것 추가 검사를 통해 태아에게 '결함'의 위험이 높다고 판단되었을 때 문제는 시작된다.  

어쩌란 말인가?  

이에 관해 이야기를 나눠본 많은 산모들은, '중절'을 선택해야 하는지의 문제에 봉착하게 되고, 심한 갈등을 겪게 된다. 그리고 이 가운데는 실제로 중절을 감행하는 이들도 많다.  

기형 또는 결함을 갖고 태어나 평생 불행하게 사느니 사전에 차단하는 것이 좋다는 데 동의하는 사람들도 상당히 많다. 당장 '기형아 검사 해서 안좋게 나오면?"이라는 질문에 '수술해야지 별 수 있나'라고 답하는 사람이 의외로 많은 것을 볼 수 있다. 그런데 과연 그래야 할까? 

한국의 열악한 장애인 후생복지 현실을 무시할 수 없는 것 사실이다. 냉정하게 볼 경우, 선별되지 않고 탄생할 어떤 인간들로 '인해' 소용될 인적 경제적 사회적 비용 또한 만만치 않을 것도 뻔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선별 검사와 낙태가 자연스럽게 용인되어도 좋은 걸까? 

기형아 검사를 받아야 한다는 사실 자체에 갈등을 겪었던 나는, 무엇을 위해서, 무엇 때문에 이걸 해야하는지 오랫동안 회의해야 했다. 물론 여기에는 이런 갈등도 포함된다. 내 아이가 혹시 위험군으로 판명되었을 때 나는 무엇을 해야하는가. 내가 이런저런 한국의 현실을 무시하고 삶이 고달파질 한 아이를 낳게 되었을 때 또 나는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내 아이가 안전하다고 판명된다고 해서 나는 그저 안심하고 안도하고 있어도 되는 것인가.  

사실 한때는 심각하게 '기형아검사 반대를 위한 연대'까지 만들어볼까 하는 생각을 해봤었다. 

기형아 검사의 목적을 나는 아직도 잘 알 수 없다. 아이에게 닥칠 위험성과 불안한 미래를 미리 알고 사전에 잘 대비하기 위한 것이라면 혹 모를까, 열성 인자들을 미리 배제하기 위함이라면 그것은 과연 그대로 내버려두어도 좋은 것인가? 

여기에는 많은 문제들이 개입된다.. 앞선 글에서도 말했던 과잉진료의 문제부터, (35세가 넘은 고령(?)의 산모는 초산이든 경산이든 무조건 양수검사를 종용하는 경우를 숱하게 봐왔다. 물론 산모에게 거부권은 있지만 말이다.), 장애아 선별 배제 기능으로서의 의료 행위, 장애인이 처한 현실적 조건 등등.. 

이에 대한 논의는 충분히 필요한데, 아무튼 나는 주장한다. 기형아 검사따위는 거부하자고.. 혈액검사따위로 이상이 발견되었다고 해서 내 안에 자리잡은 하나의 생명을 없애는 데 아무 거리낌이 없다면 상관 없다. 나 자신을 위해서라도 아이를 위해서라도 또 사회와 국가를 위해서라도 그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면 또 할 수 없는 일이다.  

아이의 미래를 누가 책임 질 거냐고, 기형아를 낳고도 아이에게 그리고 타인들에게 떳떳할 수 있느냐고 묻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장애인에게 가혹한 현실에 평생 맞서 싸울 자세가 되어 있냐고. 물론 나에게도 그런 자세 따위는 형성되어 있지 않다. 누가 오지 않은 미래에 대해 미리 책임지고 사는가. 문제는 지금 행해지는 그런 종류의 검사들이 겨냥하고 있는 불온한 의도이며 불안을 저당잡고 행해지는 폭력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그 숱한 혈액검사나 위험한 양수검사를 통해 나의 태아가 기형인지 아닌지 판별받아야 할 의무가 없고, 그들-의료 권력, 국가 권력-은 그걸 판별하고 삭제할 권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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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소친구 2009-09-24 0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또 말꼬리 잡는다고 하실지도 모르겠는데요,

제가 글 읽다가 `의무`와 `권리`라는 단어의 뜻을 내가 잘 모르는 건가 하고 햇갈려서 다시 국어사전까지 찾아봤습니다. 사전을 다시 읽어봐도 의무라는 단어의 설명에는 강제력이 핵심이 되고, 권리를 찾아보니 '어떤 일을 행하거나 타인에 대하여 당연히 요구할 수 있는 힘이나 자격' 이더군요.

마지막 줄에 쓰신 의료권력 국가권력 의무&권리 운운보니 조금 황당해서요. 기형인지 판별받을지 말지는 아무도 강제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기형을 판별해서 인공유산하라고 `당연히 요구할 수 있는 힘이나 자격`(=권리)은 의료인이나 국가에 없습니다. (태아의 사망가능성이 높고 태아로 인해 산모의 생명에 지장이생기는 경우가 아닌한) 의사가 먼저 인공유산하라고 행여나 한마디라도 했다가는 요새 바로 의료소송당합니다.

글 중간에도 써놓으셨더군요. `물론 산모에게 거부권은 있지만 말이다`. 세상에 거부권있는 의무라는게 있나요?

말꼬리 잡는 것 같아 죄송하지만, 기형아 검사 받는 것은 본인이 원하면 받는거고 싫으면 안받아도 되는거잖아요. 도대체 그걸 누가 강요합니까? 알고싶어하는 있는 산모가 자기돈 지불하고 본인이 원해서 검사받는 거죠. 글 뉘앙스가 무슨 군대 신체검사하듯이 강제로 소환해서 거부하면 벌금때리고 검사시키는 것 같아요.

보건소친구 2009-09-24 00: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고위험군(35세 이상의 산모나 과거 유산의 기왕력이 있는 산모등등)의 산모에게 융모막 검사를 하라고 고지하지 않은 상태에서, 산모나 태아에게 문제가 생겼을 때, 고지하지 않은 의사(그 의사분은 초음파 검사상 문제가 없었고 그런 문제가 교과서상에 확률이 매우 낮기에 고지하지 않았다는게 기억이 납니다)가 책임을 져야한다는 판례가 있습니다. 그것도 수천만원을 위자료로 줘야한다는.

이런 현실속에서 의사는 고위험군이면 초음파 검사상 별문제없더라도 검사하라고 고지해야할 필요가 있지요. 과잉진료라기보다는 의사입장에서 생존을 위해서 행하는 방어진료의 의미가 더 크다고 봅니다.

저런 일들 한두번 겪어본 산부인과 의사는 오히려 전문의 타이틀을 포기하고 일반진료를 보는 의원으로 개업하더군요. 전문의 타이틀 걸어놓지 않은 의원중에 상당수가 산부인과입니다.

글쓴이 2009-09-24 10: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중요한 것은 거부권(권리)는 명목상 주어지지만(그렇게 알고 있지만) 의무적(반강제적)으로 행해진다는 겁니다. 환자들은 병원에 등록되어 관리대상이 되는 순간 거부권을 행사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내면화된 공포 때문이기도 하고 불이익에 대한 우려 때문이기도 하고 병원의 압박 때문이기도 하고 참으로 여러 복합적인 이유 때문입니다. 실제로 행사할 수 없는 권리를 어떻게 권리라고 할 수 있는지요?

일례로, 산부인과 내진을 강하게 거부할 때(그렇게 강하게 거부할 수 있는 강심장들도 거의 없지만) 그 요구를 들어주는 의사가 있나요? 듣도 보도 못했습니다. 이건 겪어본 수만 수십만 임산부들한테 물어보면 바로 답이 나옵니다. 어떤 산모는 진통 중에 내진한다고 들락거리는 간호사에게 '제발 그 손좀 치워요'라고 절규했다고 합니다. 그렇다고 그 요구를 들어주는 줄 아십니까? 참 답답하군요.

왜 바보같이 자기 권리를 자기가 행사하지 못하냐구요? 사전적 정의가지고 딴지 걸지 마세요. 다 아시지 않나요? 아니면 정말 모르시는지..

그리고 기형아 검사, 절대로 선택사항이라는 고지 없습니다. 산부인과에 실제로 가보시죠. '피검사 받으세요' 그 한마디로 끝입니다. 많은 환자들은 말씀하신 그대로 신체검사하듯이 강제로 검사하는 기분 백이면 백 느낌니다.

다시 2009-09-24 11: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의사 입장에서 생존을 위해 행하는 방어진료라니, 자기 안위를 보존하고 귀찮은 분쟁 피하기 위해서라고 하는 편이 더 솔직하지 않나요? 현직 의사라고 들은 것 같은데, 일선 병원(모르긴 몰라도 보건소는 좀 다르겠습니다만)에서 이루어지는 의사와 환자 사이의 현실을 많이 모르시는 것 같아 오히려 좀 답답하게 느껴집니다.

물어봅시다, 정말로 산모들이 기형아 검사를 거부할 수 있고 선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의대에서 배우셨나요? 정말 궁금해서 그럽니다. 그렇게 가르치는 학교가 있다면 어디인지 좀 알고 싶군요. 꼭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의사들은 병원 갈 때마다 실험실의 쥐가 된 듯한 느낌을 갖게 되는 환자들 입장을 죽었다 깨야, 아니 아팠다 깨야만 알게 되는가 봅니다. 전에 존경하는 의사선생님이 그러시더군요. 의사들도 한번 크게 아파서 병원에 입원을 해 봐야 정말 훌륭한 의사가 될 수 있다고. 뭐, 꼭 아파 봐야 한다는 뜻도 아니고 또 그럴 필요도 없겠지만, 그 말뜻이 무슨 뜻인지는 누구나 이해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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