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로시. 어디서부터 시작할까? 처음부터 노골적인 것으로? 

아님 은근하게 시작해서 후끈달아오르게? 

 

그런데, 역시 필자의 걱정 중 하나는, '뭐가 이게 에로시여? 너무 약하잖여~~ '라는 반응되겠다. 그리하여 여러 고민 중에, 처음부터 본격적인 에로시를 선택하기로 했다. 그러니 나중에 좀 약해지더라도 타박말기를. 

약하고 은근해야 제멋인 에로시도 있는 것이니께. 그렇다고 몇년전 딴지일보가 주최한 '야시'를 기대하지는 말고 ^^;; 함께 에로시의 세계의 계보도를 그려보도록 하자.  

우선 첫시는 '김영태'라는 시인의 <월광 2>라는 작품이다. 1965년에 <<현대시>> 8집에 실려있다. 

 

문이 열린다
월광의
브드러운 손길
월광으로 열리는
아내의 입술
문은
연한 혀가
열고 들어가
안개가 자욱한 아내의
눈을 감긴다
눈을 뜬다
성안의
한포기의 풀
곤충의 수염에 매달린
오색의 실러블
돌 속에 헤엄치는
브드러운 내 월광의
혀는
접시속에 들은
과실에 스민다
하얀 거울에
미끄러운 바다
문이 열린다
월광으로 열리는
아내의 입술
수염에 매달린
오색 실러블이 흔들린다
(김영태, <월광 2> 전문)
  


노골적으로 성행위를 암시하는 시. 달은 여성스러움, 신비함, 동물적임, 광기 등을 상징한다. 그리고 물론 이는 밤의 시간임으로, 이성적, 직업적, 에고의 낮과 대비되는 감성적이고, 휴식적, 이드의 시간이다. 
 

달빛.  새로운 세상이 열리는 시간. 휴식의 시간. 그리고 에로스의 시간. '문이 열린다'

문이 열린다/월광의/보드러운 손길/월광으로 열리는/아내의 입술

아내는 누워있다. 아내의 나신 위로 달빛이, 애무를 하듯 몸을 쓰다듬고 있다. 아내는 그 월광의 손길을 느끼며 누워있다. 아내의 입술이 벌어진다. 어쩌면 이 월광의 손길은, 시인의 시선일지도 모르고, 시인의 애무의 손길일지도 모른다. 점점 더 자극은 고조된다.
 

문은/연한 혀가/열고 들어가/안개가 자욱한 아내의/눈을 감긴다
 

문=아내의 입술에 화자의 ‘연한 혀’가 ‘열고 들어가’니, 이미 ‘안개가 자욱한’ 아내는 눈을 감는다. 문/입술=연한 혀/열쇠라는 은유. 뒤에 더 나오겠지만, '연한 혀=열쇠'라는 도식은 '연하지 않은 열쇠'를 예비하고 있다. 그러다 갑자기, 아내가 무언가에 놀란듯 ‘눈을 뜬다’.
 

눈을 뜬다/성안의/한포기의 풀/곤충의 수염에 매달린/오색의 실러블/돌 속에 헤엄치는/브드러운 내 월광의/혀는/접시속에 들은/과실에 스민다

여기서, 이제 이 시는 처음의 '문'이 여성의 입이었을까를 의심하게 된다. 아내의 '입술'이라는 것의 의미는 무엇이었는가? '월광으로 열리는 아내의 입술'은? 이제 성안-풀-곤충의 수염-돌-접시속-과실이라는 상징의 연결은 모두 여성의 성기를 가리킨다. 이제 다시 올라가서 처음의 '월광으로 열리는 아내의 입술'과 이 '문'을 여는 '연한 혀'는 커닐링구스(Cunnilingus)를 의미하게 된다. 또 주목할 것은 '내 월광의 혀'라는 표현이다. 처음에 '월광으로 열리는 아내의 입술'은, 달빛 뿐만 아니라, 화자의 '월광'의 손길, '월광'의 혀를 의미하는 것임이 밝혀진다.

하얀 거울에/미끄러운 바다/문이 열린다/월광으로 열리는/아내의 입술/수염에 매달린/오색 실러블이 흔들린다


하얀 거울과 같은 나신에서 ‘미끄러운 바다’로 은유되는 흥분된 여성의 성기의 ‘문이’ 열린다. 이제 ‘아내의 입술’은 두가지 의미를 갖는다. 특히 마지막에 ‘수염에 매달린/오색 실러블’이라는 의미에서 후자는 여성의 성기를 의미함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마지막 ‘흔들린다’는 무엇일까. '오색 실러블'은 오선지를 뜻하는 것이 아닐까? 다음에 보겠지만 <월광 1>에서도 음악에 유달리 관심을 갖은 시인이기에, 이는 오선지의 음표를 의미할 수도 있다. 즉 아내의 신음소리. 그리고 '흔들린다'는 서술어는 신음소리와 동시에 성행위를 나타냄을 짐작할 수 있다. 

이러한 의미를 읽고 다시 시를 훑어(?)보자. 

 

문이 열린다
월광의
브드러운 손길
월광으로 열리는
아내의 입술
문은
연한 혀가
열고 들어가
안개가 자욱한 아내의
눈을 감긴다
눈을 뜬다
성안의
한포기의 풀
곤충의 수염에 매달린
오색의 실러블
돌 속에 헤엄치는
브드러운 내 월광의
혀는
접시속에 들은
과실에 스민다
하얀 거울에
미끄러운 바다
문이 열린다
월광으로 열리는
아내의 입술
수염에 매달린
오색 실러블이 흔들린다
(김영태, <월광 2> 전문) 

내가 좋아하는 시는 그런 시다. 처음에 읽으면서 느낌과, 다 읽고 나서 다시 읽었을 때의 느낌이 다른 시. 시를 읽으면서 의문이 생기고 또 풀리는 시. 영화로치면, '메멘토'같은 시. 그러나 다시 돌아갔을 때, 또 단일하게 읽히지는 않고, 처음 읽었던 의미와 두번째 읽었던 의미들이 복합해서 여러 목소리들을 동시에 울리고 있는 시.  

'브드러운 내 월광의 혀는 접시속에 들은 과실에 스민다''월광으로 열리는 아내의 입술 수염에 매달린 오색 실러블이 흔들린다'. 65년 에로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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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8-15 20: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8-15 22: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1960년대 에로시. 

언젠가, 근현대 유머시라는 장르를 개척해보겠다고 다짐했건만, 이는 무위로 돌아가고 말았다. 김상용의 '왜 사냐건 그냥 웃지요' 같은 형이상학적이고, 어찌보면 반일적이기까지 한 철학적 '유머시'말고는, 그냥 '유머'들이 시라고 우기는 수 밖에 없었는데, 이는 분명 필자의 좁디 좁은 소견 때문일 것이며, 어딘가 '유우머시'라는 장르들이 의식적으로 존재하며 쓰여지고 있거나, 아니면 적어도 발견되기를 기다리고 있으리라 믿어의심치 않는다. (개화기 이전 시들에서 찾아볼 수 있는 유머시들의 전통을 잇고 있는 시들을 아는 분들은 제보부탁드림니당~ 혹자는 30년대말부터의 대일협력적 시나, 60년대 이래 정권 옹호 시들을 유우머 시라고 주장하기도 하지만, 그런 유우머는 참 슬프다. 지은이나 읽는이나 모두 '웃김'을 목적으로 하고 그 효과로 하는 시야말로 유우머 시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이번에는 조금 더 자극적인, '에로시'를 찾아보도록 하겠다. 그리고 시대는 60년대! 

1960년대하면, 역시 4.19와 그에 이은 박통. 새마을운동. 좀 더 지나면 미니스커트 장발 등등이 떠오를 것이다. 

이런 시기에도, 묵묵히 에로시를 쓰던 사람들이 있었으니, 이 어찌 선구자적 자세가 아니리뇨... 

 운은 여기까지 뛰우기로 하고, 다음부터는 60년대 에로시들을 찾아나서기로 한다. :) (이번에는 이미 몇편 찾아놓았기에, 지난 '유우머 시'처럼 조금 찾아보려고 하다보니 귀찮아서 잠들고 말았더라 같은 짓은 없을 것... 이기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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