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림>이란 드라마가 시작한다면서 홍보성 기사들이 마구 뜰 때부터 알아봤다.
이 드라마는 '안 될 것'이라는 걸.
사실, 막상 몇 회에 걸쳐 보고 나니 그렇게 '안 될', '나쁜' 드라마는 아니었다.
박상원의 새로운 캐릭터-요즘 이런 중견배우들, 맘에 든다. 지적이고 현모양처 이미지의 대명사 김미숙이 <찬란한 유산>에서 맡은 '신선한' 악역도 그랬고, 박상원의 젠틀한 이미지 뒤에 감춰진 위선과 비열함을 뽑아낸 <드림>에서의 강경탁 캐릭터도 매우 흥미롭다.-가 일단 재미있고
서사도 너무 느리지 않은 속도감과 적절한 인물배치, 괜찮게 짜여진 드라마였다.
그러나...한자릿수 시청률을 벗어나긴 쉽지 않을 것이다.
왜 그럴까? 그건 역시 이 드라마가 처음부터 끝까지
'마초 드라마'의 이미지를 표방하고 있기 때문이다.
1. 드라마는 뭐니뭐니해도 여성 시청자들을 사로잡아야 한다. tv 채널의 선택권은 역시 여성들, 특히 중장년 여성들에게 가장 많이 주어져있다. 그런데 이 드라마는 이미 출발부터 '남성' 드라마임을 표방하고 있다.
안타깝게도 우리나라 중장년 여성들은 '강한 남자' 이야기에 별로 흥미가 없다.<남자의 이야기>라는 드라마가 망한 것도 비슷한 이유가 아닐까 하는데-나도 안봤지만, 그 드라마도 실제 '마니아'들이 꽤 있을 만큼 미덕도 많은 드라마였다고 한다-'남자' 얘기로는 여성 시청자들을 끌어들이기 쉽지 않다. 굵고 강한 '남자'이야기로 성공할 수 있는 것은 KBS에서 그동안 많이 해온 사극 정도? 사극은 남성 시청자들이 좋아한다. 그것조차 최근에 왜 <천추태후>라는 여성이 주인공인 사극을 하고 있는가를 잘 생각해야 한다. 했다 하면 뜨는 MBC의 사극 <대장금>, <주몽>이나 <이산>, <선덕여왕>같은 경우는 훨씬 말랑말랑하며 여성적이다.
2. 특히 남성들이 좋아하는 '격투기' 종목을 대상으로 한 드라마라는 점.
아...싸우는 거, 싫어하는 여성들 무지 많다. 나를 비롯하야.
언젠가 20대 남성(?)들과 그런 얘기를 한 적이 있는데, 이런 거다.
20대 남성들 왈, 그들은 로맨틱 코미디물이나 멜로물을 왜 보는지 모르겠다,
결국 주인공 남녀가 잘 될 거 아니냐...뻔한 결론인데 그 사이에 지지고 볶고...그걸 왜 보냐?
똑같은 논리가 여성들의 입에서는 이렇게 나온다.
액션물을 왜 보는지 모르겠다.
결국 주인공 남자가 이길거 뻔한데
이리 패대기, 저리 패대기 치는 거 깨지고 터지는 거...왜 보고 있어야 하냐?
그래서 격투기 종목들은, 스포츠 종목 중에서도 여성 팬을 갖기 좀 어려운 종목인 게 아닐까?
야구, 축구 같은 종목의 여성 팬들에 비하면 그들 팬덤의 형성 속도는 매우 느리다.
3. 그리고, 왜 그런진 참 모르겠지만, 주진모라는 주연배우가 주는..'마초 이미지'.
나는 그가 <사랑>이란 영화에 나올 때 참 안타까웠다.
그에게 맞는 옷은 <미녀는 괴로워> 같은 것이다.
더 튀고, 강한 여성캐릭터들에게 끌려가는 잘 생긴 남자 캐릭터가
그의 현재 연기력이나 외모에는 잘 맞다.
그가 '나쁜 남자'로 굴기 시작하면 그 비열한 느낌을 참아내기가 쉽지 않고,
그가 순정파로 굴면서 자기의 모든 것을 여성에게 바치면 궁상스럽다.
<쌍화점>에서도 기본적으로 주진모의 이미지는 너무 굵고 강해서 매력이 없다.
4. 반면 김범은 '가난하다'
<꽃보다 남자>의 럭셔리 예술재벌집 아들이었던 김범이
80년대의 올드한 '가난뱅이' 격투기선수로 변신했다.
만날 재벌 이야기 좋아하는 시청자들을 두둔할 마음은 조금도 없지만,
분명, 요즘, 사람들은 가난한 자들의 이야기를 외면하고 싶어하는 듯 하다.
내 삶도 힘겨워서 남의 힘겨운 삶을 보고 있기가 어려운 것일까?
어쨌거나 그런 가난한 청년 김범이 격투기 선수로 성공해 부를 얻는다...해도,
사실 '해피엔딩'같이 예견되지 않는다.
격투 종목은 결국 자기 몸 깨져가며, 몸 팔아 돈 버는 스포츠다.
그들은 언제나 자기 목숨을 걸고 싸운다.
그 끝에 돈이 남을지, 죽음이 기다리고 있을지 쉽게 짐작이 안된다.
이런 '불안한', 애초부터 '우울한' 드라마, 사람들이 별로 안좋아한다.
(더구나 이 더운 여름엔 무조건 '발랄'이다.)
5. 손담비는 너무 '섹시하다'
사실 나는 손담비에게선 도통 매력을 못느끼고 있기 때문에
균형감각 있는 말을 하기 쉽지 않다.
그러나, 무엇때문에 인기가 있거나 화제가 되는지는 이해는 간다.
그녀에게는 늘씬하고 볼륨있는 몸매, <미쳤어>를 통해 만들어진 섹시한 이미지가 있다.
그녀의 그런 섹시한 이미지는 너무 '전형적'이어서 나같은 여성에게는 흥미가 잘 안 생긴다.
그녀의 이 드라마에서 홍보에 활용하는 방식을 보면 꼭 <007시리즈>의 본드걸 같다고나 할까?
철저하게 남성들 이야기의 액세서리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손담비가 나올 때마다 너무나 올드한 방식으로 과도하게 자주 클로즈업되는,
그녀의 가슴과 허벅지 컷도 무척 불쾌하다.
즉 "남성시청자들이어, 너희가 좋아하는 격투기를 갖고 만든 드라마다.
근데 이 드라마를 보면 섹시한 손담비로 눈요기도 종종 할 수 있다. 땡기지?"
뭐, 이렇게 말하고 있는 듯 하다는 것.
여성들은, 이런식으로 여배우가 성적 대상화되는 건 별로 안달갑다.
<올인>이나 <태양을 삼켜라>와 같은 '마초'에 가까운 드라마도
송혜교나 성유리를 그따위로 다루진 않는다.
이런 드라마들에서도 여성캐릭터는 남성 주인공에 비해 '부수적'이며, 얼굴마담 노릇을 하지만
나름 영리하고 당찬 이미지의 여성들로 나온다.
그래서...이 드라마는 김범의 열렬 팬 여성들 말고는 여성 시청자들의 유인요소가 거의 없다.
그러니 '안 될'수밖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