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들은 낙태 근절을 위해 낙태 시술 병원들을 고발하고 정부에 엄격한 단속을 요구하고 있다.
당신들 말대로 현재 낙태 시술이 불법이라는 것도 사실이고 엄정한 법 집행이 되지 않는 것 또한 사실이다.
생명을 없애는 것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또는 문제가 해결된다고 보는 이들에 대한 선전포고라는 그대들의 의도도 의심하지 않겠다.
1) 그러면 그대들의 목적은 낙태 시술이 이 땅에서 사라지도록 하는 것인가?
2) 아이를 가진 모든 여성들이 모두 다(모자보건법에 규정된 낙태 허용 사례-강간 임신이나 유전병 또는 근친상간 임신 등을 제외하고) 아이를 낳기를 바라는가?
3) 그대들이 벌이고 있는 낙태 금지 운동과 고발 운동이 과연 현상 타개와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된다고 보는가?
그 문제가 되는 현상이란 이런 거다. 가장 중요한 것은 다음의 문제라고 생각된다.
첫째. 낙태가 만연한 현실. 우리나라 낙태 건수는 2005년 조사된 것만 35만건이고 현재 많게는 50만건까지 추정하고 있다. 이게 순수한 '낙태 금지'와 엄격한 법집행과 처벌로 해결될 거라고 보는 건가, 정말로?
둘째, 미혼모 문제. 출산을 선택하는 미혼,비혼 여성들은 꾸준히 있어왔고 선진국처럼 늘어날 수도 있다. 하지만 결혼을 하지 않은 채 아이를 가진 한국 여성들은 당신네들 주장을 따르자면 크게 두 가지 선택지밖에 없다.
무조건 낳아서 이 척박한 땅에서 힘겹게 아이를 기르거나/자기가 낳은 아이를 버리거나, 아니면 음성적으로 야메로 시술을 받거나. 현재 한국에서는 그렇다. 당신네들이 이 모두를 책임지겠다는 건가?
당신들이 순진한건지 무식한 건지 도통 짐작할 수가 없다. 그래서 당신들 입장에서 생각해보려 한다.
낙태근절운동으로 낙태가 근절될 수 있다고 믿지는 않을 것이다. 설마. 그렇게 믿는다면 당신들은 대화의 여지도 없는 '바보'들이 틀림없기 때문이다. 사창가 단속이랑 낙태시술 단속이랑 다를 게 하나도 없다. 법망을 피하는 길은 반드시 열리게 마련이다. 당신들 생각과 달리 인간들은 그렇게 단순하고 순진하지 않다. 이 정도는 당신네들도 모르지 않으리라고 믿기로 한다.
미혼모들이 고통받는 현실, 아이의 임신과 출산에서 전적으로 여자만이 모든 짐을 떠안게 되는 현실을 모르지는 않을 것이다. 아마도 그대들은 아이를 포기하는 것보다 낳는 것이 더 나은 선택이며 아이를 낳으면 길은 열릴 것이라고(길을 열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모양이다. 그런데 그 주장을 왜 이런 방식으로 해야 하는지 생각해 봤는가?
순간의 실수로 또 무지로 아이를 임신한 여성들이 낙태를 선택한다고 해서 범죄자 취급을 하는 것이 의사들인 당신들이 역시 한 생명인 이 여성들에 대해 취할 수 있는 정당하고 옳은 행동이라고 생각하는가? 태아의 생명은 그토록 소중히 여기면서 이 여성들에게는 왜 그렇게 가차없는 태도를 취하는지알 수 없다. 낙태를 하지 말라는 건 곧 낳으라는 이야기이므로 가차없는 몰아붙이기에 다름 아니다.
당신들의 그 엄정함의 가면을 쓴 공격성과 무자비함은 당신들이 도외시하고 있는 한 생명을 궁지로 또 사지로 몰 수도 있다.
이상의 질문들에 대답을 할 수 없는 한, 아무리 여론 조사에서 낙태 반대가 찬성을 앞지르는 것이 사실이라 해도, 당신들의 행위는 결코 지지받을 수 없을 것이다.
부디 사창가 단속한다고 막대한 인력과 예산과 시간을 낭비한 '풍속의 수호자'들 꼴 나지 않기를. 태아는 생명이며 생명은 무엇보다 소중하다는 원칙론은 집어치워라. 그런 누구나 입에 올릴 수 있는 원칙만 고집하지 말고 제대로 된 그리고 현실성 있고 가능한 대책을 논의하는 데 힘을 보태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