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국가대표 김연아
우리의 자랑스런 김연아는 며칠 전에 있었던 그랑프리 5차대회에서도 우승을 했다고 한다. 프리에서 엉덩방아를 찧는 실수를 하고서도 당당히 1등. 쇼트 프로그램에서는 그동안의 본인의 기록을 갱신하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그녀를 보며, 우리 '대한민국' 사람들은 흥분한다. 이렇게 자랑스러운 '국가대표'가 있었나? 물론 박찬호, 박세리도 있었고, 추신수, 박지성도 있고, 또래의 신지애, 박태환도 못지 않다. 그 외에도 그동안 종종 자랑스런 '대한의 건아(?)들'은 출몰해왔다. 그러나 그들보다 연아의 '국가대표성'은 안정적이며 자랑스럽다. 왜?
김연아는 스포츠선수임에도 연예인 못지 않게 예쁘다. 동양적인 눈매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작은 얼굴 크기와 길고 가느다란 팔다리라는 서양적 미적 기준도 충족시켜준다. 그래서 한국에서도 통하고, 세계무대에서도 통하는 미모를 가지고 있다.
또한 벌써 대회 7연승이라는 엄청난 기록, 심사점수에 있어서도 끊임없는 기록갱신, 다른 선수들과의 현격한 실력차이 등으로 자타가 공인하는 세계 최고이다. 그냥 예쁘기만 한게 아니라 자기 분야에서 정말 1등이다.
여기에 덧붙여, 그녀는 똑똑하게 (한국)말도 잘하고, 특히나 영어도 잘한다. 외국 기자들 앞에서는 당당하게 영어로 듣고 답하고, 한국말로 할 때 역시 나이에 걸맞지 않은 성숙함과 자신감 있는 발언으로, 오히려 기자들을 주도하는 느낌까지 준다. 또 가끔 TV에 나왔을 때 보면, 노래, 춤, 표현력...뭐 하나 빠지는 데가 없다. 엔터테이너로서의 소질 역시 빵빵. 그러니 어찌 자랑스럽지 않을 수 있겠는가? 정말 그녀는 우리가 바라마지 않는 최고의 '국가대표'이다.
2. 전 국민의 국가대표화?
그런데...요즘 몇몇 '사건'들을 보면서, 이러한 '대표성'에 대한 우리 국민들의 과도한 강박같은걸 느끼게 된다. 아무나, 아무데나 '국가대표'를 강요한다. 그 첫 사건은 2PM의 재범군 논란이다. 난 '재범군'이라고 말할 만큼, 사실 그의 성(姓)도 모른다. 관심도 없었고. 하지만 그때 그가 했다는 발언으로 논란이 되는 걸 보며, 좀 이상하단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대한민국이 다 좋은가? 한국인들은 한국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며, 같은 한국인을 비하하거나 우습게 생각하는 일이 한번도 없나? 아니다. '한국인들은 이래서 안돼'같은 말은, 우리가 거의 습관적으로도 많이 하는 말이다. 그럴정도로 우리 내부에도 우리나라 사람에 대한 비하, 멸시의 감정은 꽤 크다.
그런데 한 재미교포 출신 젊은 가수가 한국을 비하했다가, 결국 비난과 욕을 못참고 그룹을 탈퇴, '걔네 나라'로 도망쳐버렸다. 그가 한국 국적이었으면 어땠을까? 그래도 그는 이렇게 욕을 먹었으려나? 뭐...어느정도는 그럴지도. 그러나 재미교포이기 때문에 아마도 더 많은 욕을 먹었을 것이다. 그때 그가 한 말은 일종의 '타자'의 시선이고 목소리로 여겨졌기 때문에. 우리끼리 욕하는 건 괜찮아도, 밖에 사람이 욕하는 건 참을 수 없는 우리의 과도한 민족주의가 여기서 발동했던 것이라 생각된다.
내가 우리 엄마, 아빠, 동생, 고모, 삼촌을 욕하는 건 괜찮다. 하지만 친구가 내 가족들을 욕하면 발끈하는 게 '가족주의'이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말도 쓴다. 하여간 우리/남으로 선이 그어지는 순간 사람들은 '우리'를 지키기 위해 강박적으로 방어적인 태도를 취하게 된다. 재범군의 사건도 그 지점이 보였기 때문에 사람들은 분노했던 것이다. '우리'인 줄 알았던 그 청년이, 알고보니 '남'이었고, '남'인 주제에 '우리'를 욕한 걸 참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여기에 한 가지 더 영향을 끼치는 것은 역시 미디어의 힘이다. 그가 방송에 나오는 '공인(?)'이므로, 그는 더더욱 무언가를 '대표'하는 존재로 취급받는다. 그 '대표성'이 정확히 무언지 모르지만, 하여간 대표이다. 그런 대표가 그런 말을 하는 순간, 그건 개인적인 생각이 아니고, 보편적인 어떤 말로 취급받는다. 이에 더해 이 사적인 발언이 언론을 통해 공식발언처럼 취급되면서 더더욱 우리는 분개했다.
그러나 툭까놓고 보면, 아무것도 아닌 일이다. 뒤에선 '나랏님도 욕하'는 법인데, 걔가, 철부지 한 교포 출신이 그런 말 한번 한게 뭐 그리 대단한 일인가? 아무것도 아니다. 걔가 그렇게 말했다고 한국인 전체가 진짜 한심한 인간이 되는 것도 아니고, 한국이란 나라가 OECD국가에서 강퇴당하는 것도 아니고, 뭣도 아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재범이가, 한국에 와서 돈을 벌어 가는 외국인의 대표이고, 그가 공식 기자회견에서 한국에 대해 비하하는 말을 하기라도 한듯 흥분했다.
3. 미수다 '루저' 논란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은, 이러한 사건들에 대한 가치판단은 아니다. 재범군이 그런 비난을 받고 탈퇴를 해선 안됐다거나 하는 얘기를 하고 싶진 않다. 관심도 없을 뿐더러, 저런 좀 '과도한' 반응도, 어쨌든 그 반응에 따라 인기도가 좌지우지되는 연예인으로서는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그런 점에서 박진영의 탈퇴 결정은 매우 영리하다. 가장 쉽게 논란을 진화하는 길이 그것이었음을 그는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그런 사건들 속에서 우리가 그렇게까지 반응해야 하나...쓸데없는 분노, 흥분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해서 우리의 정신건강에 좋을 게 없으니까.
그러기 위해 그 이후의 두 사건에 대해서도 말해보려는 것이다. 하나는 <미녀들의 수다>에 나온 미녀 여대생들의 180센티미터 이하의 남성은 루저라는 발언이고, 하나는 <무한도전>이 식객 특집으로 뉴욕에 가서 뉴욕의 길거리 인터뷰를 한 문제이다.
먼저 <미수다>의 '루저' 논란도 나는 역시 이상했다. 거기서 발언을 했던 여대생들은 아무런 대표성도 없다. 한국의 모든 여성들이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아니고, 심지어 여대생, 그녀들처럼 170이 넘는 키의 미녀 여대생들 내부에서도 합의될 리 없는 사실이다. 그런데 그 몇명의 출연자들의 발언 때문에 갑자기 남자들은 자신들이 '루저'가 됐다며 분개한다.
참고 미수다 동영상) http://blog.naver.com/coolya112/40094866802
그들의 이야기를 찬찬히 보자. 먼저, 키큰 남자가 키 작은 남자보다 좋다? 그건 못생긴 여자보다 예쁜 여자가 좋다거나 뚱뚱한 여자보다 날씬한 여자가 좋다는 말과 다를 바 없는, 그냥 그런 말이다. 남성들은 그걸 몰랐나? 아마 알고 있었을 것이다. 키 작은 남자들은 그래서 많이들 컴플렉스를 갖고 산다. 못생기거나 뚱뚱한 여성들이 열등감을 갖고 사는 것처럼. 따라서 새로울 것 없는 얘기이다. 그런데 왜 그런 말을 발언한 게 이렇게까지 논란이 되는가? 마치 그런 줄 몰랐다는 듯이. 몰랐다는 '순진한' 포즈를 취하는 남성들이 있다면, 그냥 이 참에 그런 '현실'을 알아두라고, 대체로 여자들은 키 큰 남자를 좋아한다고, 말해주고 싶다. 그러나 이미 알고 있었던 사실이라면, 너무 새삼스럽게 과잉반응 하는게 아니냐고 묻고 싶다. 루키즘이 어제오늘 일인가? 외모가 경쟁력이란 거, 살다보면 수시로 뼈저리게 느끼는 사실 아닌가?
두번째로 180센티미터 이하는 '루저'라는 발언. 이건 그냥 콧방귀를 뀌고 웃으며 넘어가야 하는 '마구 주어삼킨 말'일 뿐이다. 그 말을 한 여성이 그냥 그렇다는 거다. 그녀의 입장에서나 그렇지, 실제 그럴 리가 있나? 우리나라 남성들 중 180센티미터를 넘는 남성의 비율이 얼마나 되겠는가? 그리고 180센티미터를 넘기만 하면 그들은 모두 '위너'인가? 아무도 그렇게 생각 안할 것이다. 그러니 진리도 아니고, 진실도 아니고, 보편적이지도 않고, 근거도 없는 말이다. 그냥 그 말을, 그 여성이 (자의에서건 대본에 의해서건) 한번 해본 말이다.
이 말을 갖고 농담을 할 수는 있다. 새로운 유행어도 될 수 있고, 시시덕거릴 소재거리정도로는 딱이다. 손석희씨가 자신의 라디오프로그램에서 '나도 루저'라고 한 말의 수준이 딱 그거다. 그가 자신이 '루저'라고 열폭했는가? 그냥 이슈가 되었으니, 한번 던져보는 농담같은 소리다. 대부분의 남성들이 다 그 정도 하고 넘어가면 되지 않을까?
비슷하게 여성들에겐 '168센티미터에 45킬로그램'이 최고의 완벽한 몸매라는 '환상'이 있어 왔다. 물론 남성들이 만들어 낸 신화이다. 나는 이 점에서도 김연아의 역할이 꽤 중요했다고 생각하는데, 김연아처럼 늘씬하고 마른 편의 몸매도, 경기 시작전에 나오는 체위 설명에서 '164 센티미터에 51킬로그램'이라고 나오는 걸 봤다. 그런 게 진실이다. 160센티미터만 넘어도 40킬로그램대의 몸무게를 갖는 것은 여성들로서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하다. 그런데, 누가 김연아의 몸을 보고 살이 쪘다고 하겠는가? 오히려 너무 마른 편에 가깝다.
그런데도 '168-45'의 신화는, 연예인들의 '거짓' 프로필 속에서 오랫동안 재생산되어 왔고, 이때문에 일반 여성들까지도 그러한 체위가 되지 않으면 항상 '열등'하다는 마음을 품고 살아왔다. 그래서 체중계에 오르는 일은 보기에 너무도 늘씬한 연예인들조차 언제나 부끄럽고 감추고 싶은 일이 되어 왔다. 당연하지 않겠는가? 45킬로그램의 여성은 많지 않으니까. 그 기준에 따르면 대부분이 '루저'이므로.
남성의 180센티미터나 여성의 45킬로그램의 신화는 그냥 사라지면 되는 것이고, 무시하면 되는 것이다. 그게 맞는 길이지, 그런 말을 한 사람을 (한심해 하거나 상대를 안할 순 있어도)사회적으로 매장까지 시킬 이유가 없다. 그 기준에 안맞는 대다수의 '루저'들은 그런 걸 '공표'하는 사람과, 그냥 안 사귀면 된다. 아마 <미수다>도 비슷한 발상이었던 게 아닌가 한다. 동영상을 보면 알 수 있듯, 그녀들이 그런 말을 했을 때, 그 자리에 있던 연예인 남성들은 모두 '루저'였다. 그리고 그들은 그녀들의 말을 기가 차다는 표정으로 듣다가 '나도 싫어요'라고 반응했다. 제작진들은 시청자들도 딱 그러고 넘어갈 줄 알았을 거다. TV를 통해 발언을 했으니, 농담용으로 가끔 입에 오르내리며 사용해볼 순 있지만, 그 이상도 이하도 될 필요가 없었다.
그런데 왜 그렇게 순식간에 그 말이 공중의 분노를 샀을까? 내가 보기엔, 이 동영상에서 두 가지 정도의 지점이 포착됐는데, 하나는, '설문조사'의 결과를 들먹인 것이다. 설문조사를 어디서 봤는데, '때리는 남자보다 키작은 남자가 더 싫다'라는 말을 함으로써, 마치 키 작은 남자에 대한 여성들의 '혐오'감의 수준이 매우 심각하고도 보편적인 것인듯 취급되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설문조사는 어디서 한 것인지, 어떤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것인지, 표본오차는 얼마나 되는지, 이 설문의 종속변인은 무엇이었는지 등은 아무것도 알 수 없다. 한마디로 개인적인 발언 수준과 별로 다를 게 없는 '그냥 해본 말'이다. 그런데도 '설문조사'라는 말때문에, 그들의 말은 '대표성'을 갖게 됐다.
더구나 여러 명의 여대생들이 한 말인데, 그 말들이 하나로 엮어지면서 이런 꼴이 됐다.
"180센티미터가 안되는 '루저'들보다는 차라리 때리는 남자를 만나겠다는 것이 한국의 대부분의 여성들의 생각이다"
저렇게 된다면 분개할 만 하다. 저것이 사실이라면 말이다. 그러나 그럴리가 있는가? 굳이 뭔가 증거를 찾으려 하지 않아도 한귀로 듣고 흘릴 수 있는 말도 안되는 말일 뿐이다. 그럼에도 '설문조사'운운과 그 출연진 대다수가 비슷한 논조로 말했다는 이유로 저런 말이었다는 듯이 확대해석되었다.
또 한 가지 이유는, 이게 이 글을 쓰게 된 동기인데, 그녀들이 마치 한국을 '대표'하고 있는 듯이 여겨질 수 있었던, 프로그램상의 구도 때문이다. <미수다>는 외국인 여성들을 앉혀놓고, 그들이 겪은 한국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프로그램이다. 나는 기본적으로 이런 컨셉이 매우 마음에 들지 않아서 이 프로그램을 단 한번도 본 적이 없다가, 이번 논란 부분만 살짝 봤다. 그런데 이걸 보면, 외국인 '미녀'들과 미녀 '한국인'들을 대비적인 구도로 만들어 놓고 있다. 저런 발언들을 주어삼킨 여대생들의 맞은 편에 외국여성들이 앉아서, 그녀들의 생각에 쉽게 동의를 못하겠다는 듯 반박을 하거나 고개를 젓는 장면들이 노출되었다.
뿐만 아니라, 사랑보다는 조건이 결혼에 더 중요하다는 한국 여대생들의 발언에 대해, 외국 백인 여성이 "그래선 안된다, 사랑이 제일 중요하다"고 말하는 장면도 보인다. 그러나 사실 결혼에 사랑이 제일 중요하다는 생각도 오늘날에 와서는 서구의 근대 부르주아 사회가 만들어낸 '낭만적 사랑'의 '이데올로기'일 뿐이라는 사실이 밝혀진 만큼, 그 백인 여성의 말도 '참'이 아니다. 그런데도 그녀의 말은 '참'인 것으로, 조건만을 '밝히는' 한국 여대생들은 '속물'로 취급받는 건, 오히려 같은 한국 여성으로서 불쾌했다. 너무 '현실적'이 되어가는 요즘의 세태가 조금은 '향수어린 낭만주의'적 생각에 의해 각박하다고 여겨질 수는 있어도, 그게 꼭 틀린 건가? 계급에 따른 결혼, 그게 더 현명할 수도 있다. 정답이 어디 있겠는가? 각자의 선택이지.
이처럼 <미수다>는 마치 외국여성들이 외국을 대표하고, 출연한 여대생들이 한국을 대표하는 듯한 대립구도를 '과도하게' 의도적으로 연출하여, 뭔가 '논쟁적'인 분위기를 만들고, 그걸로 어떤 '재미', '흥미'를 유발하고자 한 듯 하다. 이 때문에 출연한 여대생들의 지극히 개인적이고, 근거 없는, 신경 쓸 필요도 없는 발언이 한국 여대생, 또는 한국의 여성들의 '대표'발언으로 오해된 것이다. 그러나 그게 '대표'가 될 리 있겠나? 당근 없다. 사람들도 그 사실을 금세 깨닫는다. 그러니 어떤 반응을? 그렇다, 그런 말을 한 특정 출연진들에게 '테러'를 감행하는 것이다. "넌 마치 한국 여성들을 대표하는 듯이 나서서 한국 남성들의 대다수를 루저로 만들었어! 네가 뭔데?"라면서.
이러한 이중성때문에 문제들이 심각해지는 것 같다. 대표가 아닌데 대표로 받아들이고, 그래서 분개한 뒤에는 다시 전체가 아닌 특정인에게 모든 비난의 화살을 돌리는.
4. <무한도전> 뉴욕편
마지막으로 <무한도전>의 뉴욕편에 대한 과민반응도 비슷한 방식으로 보인다. 모 가수의 형이 했다는 발언때문에 새삼 논란이 되었는데, 세계의 중심이라는 뉴욕에 가서 영어 한 마디 못하는 채 바보짓이나 하고 왔다, 쪽팔린다...는 게 요지이다.
그런데, 정말 쪽팔릴 일인가? 뭐가 그렇게 쪽팔린가? 왜 쪽팔린가? 영어를 못하면 안되는가? 물론, 나도 기왕 '목적'이 그곳 사람들의 식생활에 대한 조사를 위한 인터뷰였다면, 적어도 그들에게 공통적으로 물어볼 말 "당신은 어떤 종류의 음식을 좋아하나요?", "한국 음식에 대해서 아나요?" 정도의 질문에 대해선 미리 연습하고, 딱 두 문장만 달달 외우고 나가는 정도의 컨셉은 있었으면 좋았겠다고 생각한다. 이유는, 쪽팔리지 않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게 조사를 나간 목적 달성에 필요하니까. 나머지 말은 콩글리쉬든 바디랭귀지든 못하면 좀 어떤가? 거기에서 유재석팀이 만난 여성들이 한 말이 정답 아닌가? 영어를 못해 미안하다고 하는 유재석과 정준하한테 그녀들이 말했다.
"괜찮아요. 우리도 한국말 못하는데요"
그런 거지 뭐. 영어 못하면 미국, 뉴욕 가면 안되나? 영어못하면 미국사람한테 말 걸면 안되나? 만약 그들이 미국이 아니라 베트남에 가서 베트남 말을 못해 헤매는 모습을 보였다면, 그때도 똑같이 '쪽팔린다'고 반응했을까? 설마...
그런 점에서 그 모 가수의 형의 발언은 제국주의적인 발상이다. 물론...자신이 미국에서 살면서 체감한 서양인들의 동양인에 대한 경멸을 의식하면서 방송을 봤기 때문에 더 그렇게 보였을지도 모른다. 사실 그들이 경멸했을지도 모른다, 바보같은 무한도전 팀 사람들을. 그러나, 그렇다고 그게 무한도전 팀의 잘못인가? 그건 경멸한 그들이 잘못된 거다. 그들이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은' 것이다.
그들에게도 내가 보기엔 과도하게 '국가대표'의 멍에를 씌운 게 문제라는 생각이 든다. 그들이 한국의 대표 외교사절단이라도 되나? 그냥 코미디언일 뿐이다. 뉴요커들이 그들을 비웃었건, 실제로 재미있어했건, 그들은 한국에서 안방에 앉아 그 프로그램을 보는 사람들에게 재미있는 우스꽝스런 모습을, 한국에서 찍을 때와 다름없이 보여주었을 뿐이다. 그들이 영어를 못하고 버벅거렸다고, 한국의 위상이 떨어지나? 그들이 살인이나 강도짓을 한 것도 아닌데?(심지어 한국인이 범죄를 일으켰다고 해도 그걸 가지고 한국인 전체를 싸잡아 범죄자 취급을 하는 것도, 그들이 잘못된 거잖나?)
5. 국가대표 얘기 그만하자.
그러나, 사실 더 문제는, 그 모 가수의 형의 발언 역시 대표성이 없다는 것이다. 그가 자신의 미니홈피에서 그런 말을 한 걸 가지고 언론화하는 것, 그게 더 웃긴 거다. 뭐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는 것 아닌가? 미국에서 살았던 한국인의 입장에선 말이다. 그러나 그런만큼 그건 그의 특수한 상황에서 나올 수 있는 특수한 반응일 뿐 모두의 생각은 아닌 것이다. 그거에 다시 무한도전 팬들이 분개하는 것도 불필요한 일이다. 언제나 문제를 키우는 건 대표성이 없는 일을 기사화하고 공론화해서 말도 안되는 대표성을 부과하는 언론들이다. 그들이야말로 '악의 축'이다.
우리끼리, 그 '악의 축'의 놀음에 놀아나선 안된다. 전달이 제대로 되었을지 모르겠지만, 내가 말하고 싶은 건 그런 거다. 그 악의 축 때문에, 우리가 분개하는 거야 말로 진짜 기분 나빠해야 할 일이 아니냐는 것. 이런 논란을 보고 즉각적으로 화가 날 수도 있겠지만, 곰곰히 따져보면 아무 일도 아니고, 별 일도 아니고, 아무런 대표성도 없다는 사실을 기억해서, 한 귀로 듣고 흘려버려주자는 것. 정치판에 대해서만 언론이 우리를 '선동'하고 있는 게 아니다. 언론은 여러모로, 우리를 갖고 놀려 든다. 그들에 휘둘리지 말고 사는 게 우리의 정신건강에 이롭다.
또 김연아 얘기를 하자면, 그녀의 매력적인 점 중 또 하나는, 그녀는 '국가대표'로 굴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녀는 자신을 응원해주는 한국인들에게 고마워하지만, 국가를 대표하기 위해 뛰지 않는다. 그냥 자기 자신을 위해 뛴다. 한번도 그녀가 과장되게 민족주의적 발언을 내세우는 걸 본 적이 없다. 그래서 더 좋다. 어쩌다보니 국가대표이고, 같은 나라 사람으로서 그녀가 그렇게 잘해주는 것이 무척 기쁘고 자랑스럽지만, 딱 거기까지만이다. 그녀는 대한민국 국가대표로 살지 말고, 그냥 김연아로 살아야 한다. 우리는 그녀가 국가대표라서 좋아하긴 하지만, 그녀에게 국가대표로서만 살라고 해선 안된다. 혹시 그녀가 내일 갑자기 은퇴를 하든, 국적을 바꾸든 말이다.
우리 나라 사람들의 민족주의가 언제나 나쁘게 작동하는 것은 물론 아니다. 그 덕에 잘된, 효율적인, 아름다운 역사의 장면들도 물론 많이 있다. 나 조차도 대한민국 국가대표들이 승리했을때 벅차오르는 본능적인 마음을 쉽게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사실 진정한 국가대표같은 건 없다. 그리고 없어야 한다. 누가 누구를 대표하는 일이란 얼마나 위험한가? 그 과정에서 요구되는 건 팔할이 파시즘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