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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스타를 보는 이유는 배우때문이다.
이선균은 배우계의 '노홍철'이라 할 만큼
'ㅅ'을 번데기 발음으로 대신하시는 약점이 있긴 하지만^^
워낙 좋은 목소리와, <커피프린스 1호점>과 <파주>등을 보고
그만의 색깔을 구축해 나가고 있는 것 같아 관심이 간다.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공효진, 이하늬...
그들이 나온 드라마에서의 캐릭터들은 거의 대부분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작가의 몫이었겠지만, <눈사람>에서, 유일하게 믿고 의지해오던 언니가 갑자기 죽고 난 뒤
공효진의 '슬픔'을 표현한 방식은, 초콜릿을 입에 달고 사는 것이었다.
그게 너무 신선해서 잊혀지지 않았다.
과하지 않게, 일상을 잘 견디고 있는듯 보이는데
언제나 초콜릿을 야금야금거리고 있는 공효진.
나는 그녀의 '강함'과 '약함' 모두가 잘 드러나게 표현된 장면이라고 생각되었다.
그외에도 하여간...역시 말하자면 입아프고.
(음..<미쓰 홍당무>는 좀 예외긴 하군. 그건 좀 복잡하다.)
그래서 드라마 스토리는 뻔할 걸 알면서도,
캐릭터들에 대한 기대감으로 본 드라마이다.
 

그런 점에서 이 드라마는 방향은 잘 잡았다.
스토리가 4명 주연급들의 4각관계인 전형적인 트렌디 드라마이지만
<커피프린스..>덕에 미각적인 어떤 조건반사를 불러일으키는 이선균과
당찬 여성캐릭터의 1인자인 공효진을 캐스팅함으로써,
그리고 '파스타'라는 음식을 소재로 한다는 점에서
'4각멜로'의 진부함을 감출 기본구색은 갖췄다.
 

헌데, 최근 이 드라마가 영화평론가 황진미씨에 의해 뭇매를 맞았다.
이유는, 이 드라마에서 보여주는 여성차별의 문제때문이다.
"파스타, 최악의 남녀불평등 노동막장 드라마"
 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85450
맞는 말이다. 이 드라마에서 최현욱(이선균 분)의 고용과 해고문제에서의 폭력성은
말할 필요도 없이 막무가내이고, 위법적이다.
이 '개명천지'에 "내 주방엔 여자는 없다"는 말을 공공연히 하는 쉐프라니...
세상 참 무서운 줄 모르는 짓이다.
그리고 나 역시 '성차별'적인 드라마는 웬만해서 못참는다.
하지만...이번 경우의 황진미씨는 좀 '섣불렀다'고 말하고 싶다.

 
저 글에 대한 비판, 반박을 하는 많은 글들의 논리는,
"사실 그런 차별이 있는 게 현실인데 그걸 그리는 게 뭐가 문제냐? 세상 모른다", 는 것과
"드라마는 드라마일뿐, 오해하지 마시길~!"(해피투게더식으로)을 외치는 것이다.
감정적인 듯하지만, 그들의 반박도 일리는 어느 정도 있다.
그러나 그런 이유들에 앞서 '이건 곧 고쳐질 것'이기 때문에 섣부른 비판이었다.
 

이 드라마는 최쉐프가, 자신의 개인적 상처때문에 여성차별적인 고용폭력을 휘두르지만,
결국에는 그러한 자신의 상처를 치유하고, '편견'을 깨고, 잘못을 깨우침으로써,
성평등적인 상태로 '복원'되면서 끝날 것이기 때문이다.
이 드라마 내부의 그 어떤 인물도
현재의 최쉐프의 행동을 옳다고 말하고 있지 않지 않은가?
 

그는 지금 '잘못'하고 있다. 그걸 누구나 다 안다.
그래서 그걸 '고쳐'나가는 과정이 이 드라마의 중심 서사가 될 것이다.
그걸 고치는 데에 공효진이 크게 기여할 것이고. 일로든, 사랑으로든.
그래서 내용상으로 뻔한 얘기이긴 하지만
걱정만큼 성차별적인 주제의식을 갖고 있을리는 없는 드라마다.
드라마는 그래서 영화랑 좀 다르다.
끝까지 보기 전엔 칭찬도, 비판도 함부로 하기가 조심스럽다.
 

허나, 그렇다해도 <파스타>는 그야말로 드라마 춘추전국시대의 소용돌이 속에서
제대로 살아남기는 쉽지 않아보인다.
아직까지로선, 황진미씨의 반응처럼, 보기 불편해하는 시청자들이 꽤 있을 거라는 점.
폭군과 같은 이선균의 태도가 너무 오래 지속되면 위험하다.
이쯤해야지...벌써 <공부의 신>은 '천하대특별반'의 멤버 다섯 명 중
한명의 '(가족내)갈등'이 '해결'까지 이루어진 상황이다.
이 '스피드'를 쫓아가려면, 최쉐프도 버럭쉐프질로 일관하지 말고, 완급조절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
 

~~~~~~~~~~~~~~~~~~~~~~~~~~~~~~~~~~~

...라고까지 2주차를 보고 썼는데,
3주차를 본 뒤의 소감은, 재빨리 드라마가 '감'을 찾아가고 있다는 느낌이다.
일단, 쓸데없는 '오해'와 '엇갈림'을 최소화한 점.
공효진이 1회에서 받은 계란도매업자의 '뇌물' 천만원의 문제를 가지고
너무 질질 끄는 듯한 인상이었는데
이선균이 개입하여 깔끔하게 해결하고, 본격적인 4각(연애)구도를 시작하기 위해
알렉스가 사장으로 전면에 나서는 등, 이야기가 나름 재정비를 해가고 있다.
 

또한, 음식이야기로 드라마를 만들 때 가장 사람들이 즐거워 하는 것 중에 하나가 '요리배틀'이다.
<대장금>에서 몇 차례에 걸친 요리경쟁이 얼마나 흥미진진했던가? <식객>도 그렇고.
그런데 <파스타> 역시 이 요리를 통한 경쟁모드를 드라마에 도입함으로써
흥미를 유발시키고 있다.
피클에 대한 대안을 찾는 과정,
푸아그라 대신 쥐치의 간으로 요리를 할 생각을 하는 것 등도 재밌었다.
 

또한 역시 공효진 다운 방식의 애정표현과 일에 대한 열정, 역시 귀엽고 매력적이다.
이선균은...조금만 더 '버럭성'을 줄이면 어떨까 싶다. 데시벨이 너무 높아 피곤하려한다.
그래도 이선균의 조금씩 '변화'되어가는 모습, 나쁘지 않다.
조금만 더 노력(?)해서 더 '착해져' 가면 황진미씨의 우려와 같은 것들도 더 많이 불식되리라.
 

그런 점에서 공효진이 '모시던' 3명의 주방 언니들, 어떻게좀 해결해줘야 할듯.
그녀들을 지나치게 '감초'로 사용하고 있어서 그녀들의 매력지수가 팍팍 떨어지고 있다.  

그녀들, 나름 유능한 요리사들 아니었나?
왜 갑자기 아무 것도 안하는 채로
신데렐라를 시기하는 계모의 딸들처럼 공효진을 질투하고 의심하기만 하는가?
차라리 세 명이 작은 레스토랑을 개업한다든가,
공효진을 보면서 자신들도 다시 라스페라에 들어올 궁리를 한다든가,
뭔가 '지향점'이 좀더 분명해져야 하지 않을까?
 

또한, 3주차를 보고 난 뒤 이하늬의 캐릭터가 너무 어정쩡하다는 것도 아쉬움으로 남는다.
그녀가 생뚱맞게 라스페라 요리사들 내부의 요리대결에 자기도 끼워달라고 하는 것은 좀 황당하다.
일의 순서가 있는 것인데...
먼저 요리사로 취업이 된 것도 아니고...이런식의 어정쩡하게
옛 남자의 주변에서 얼쩡거리는 방식은 좀...
뭔가 공식적인 루트로 개입하게 만들어줘야 할텐데.
지금은 그녀가 뭐하는 사람인지조차 헷갈린다.
(드라마 초반엔, 잘나가는 요리프로그램 진행자였던 것 아닌가?)

 

그런 점들만 조금 더 보완하면,
음, 초반의 걱정보다 매니아적 지지층을 확보할 수 있을듯하다.
15%를 전후하면서...그 이상은 어렵겠지만
이 드라마 춘추전국시대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선전하는 드라마가 될듯.
그리고 드라마 이후, 이선균, 알렉스(알렉스는 앞으로의 캐릭터에 달렸고), 그외의 조연급 신인들 등이
스타로 등극하게 될 듯 하다. 팬층을 확보하며.
또한 이 드라마의 작가나 연출가가 매니아층을 확보할 가능성도 있어보인다.

 
그 과정에서 한 가지만 더 바라자면,
황진미 평론가와 같은 지적 앞에 떳떳해질 수 있도록,
꼭, '성차별'문제는 '정치적으로 올바르게' 해결하며 드라마가 끝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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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인 2010-01-24 11: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푸아그라 대신 쥐치의 간은, 예전에 보았던 전설적인 일본 음식 만화 1회에서 그대로 가져온 것 같네요;;

somun 2010-01-25 08:39   좋아요 0 | URL
오호, 그렇군요...그럼 표절?좀 깨는데;;;
 

시청률30%대 드라마 2-막장드라마

막장드라마라는 말은 <아내의 유혹>때부터 유행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막장드라마는 단지 <아내의 유혹>을 통해 처음 등장한 것은 아니다.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스토리, 설정들...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청률이 높은 드라마들은 그 이전에도 주기적으로 드라마시장에 논란을 일으키며 나타났다 사라지곤 했다. 

1. 임성한, 서영명,  김순옥 

사람들에 따라 '막장드라마'의 기준이 다를 수 있겠지만, 내가 가장 막장 드라마의 대표주자로 생각하는 작가는 <인어아가씨>와 <왕꽃선녀님>, <하늘이시여>를 만든 임성한과 <아름다운 죄>와 <밥줘>의 서영명, 그리고 <아내의 유혹>을 만든 김순옥 등이다.이 세 사람의 드라마를 보다 보면, 기가 막히다 못해 약간은 경외감까지 든다. 어떻게 이렇게 막 갈 수 있는가, 하며. 정말 말~도 안되는 이야기는 복장을 터지게 하고, 화가 나게 하지만, 놀랍게도, 이들 드라마는 '중독성'이 있다. 나는 가끔 "이런 드라마들은 봐 주면 안된다!"며 '저항'을 하지만 주변에는, 특히 울 어무니나 이모, 고모, 숙모들을 비롯한 중년 이상의 아주머니들은, 욕을 직싸게 하면서도 꾸역꾸역 종영때까지 드라마를 봐준다. 나는, 이들의 드라마때문에 드라마매니아들이 도매금으로 욕을 먹는다고 생각한다. '드라마=쓰레기'라는 오명을 뒤집어쓰면서. 

그러나 욕만 하는 건 얼마나 쉬운가? 나와 같은 드라마를 아끼고 사랑하는 드라마홀릭자라면, 이런 막장드라마들도 '왜?' 인기가 있는지, 이들의 매혹의 요소는 무엇인지, 알고 대중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이들 드라마에도 어떤 '미덕'이 있다면, 그건 인정해주어야 한다. 

 

2. 복수의 플롯 

이들 드라마가 대중을 매혹하는 최고의 이유는, 역시 '처참한 배신-화려한 복수'의 서사구조이다. 이것은 드라마와 같은 연속성이 있는 서사물이 시청자들을 지속적으로 유혹할 수 있는 최고의 '미끼'이다. 드라마 초반에는 처참하게 짓밟히는 여자주인공들의 이야기로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시청자들은 기구한 주인공의 인생에 혀를 끌끌 차기도 하고, 그녀를 그렇게 만든 악역들에 대해 '갈아 먹어도 시원찮을..'이라며 욕을 해대고, 때때로는 그녀의 인생이 남일 같지 않아서 공감도 하며 드라마를 지켜본다. 

그러나, 만약 처음부터 끝까지 그녀가 고생만 하는 이야기라면, 시청자들은 어느 순간부터 슬슬 드라마를 떠나게 된다. 가끔 그래서 망한 드라마들도 있다. 고난, 수난의 서사가 과도하게 길면 시청자들은 외면한다. 최근에 했던 드라마 중 그래서 망한 드라마를 꼽자면, <잘했군 잘했어>를 들 수 있다. <잘했군 잘했어>에서 채림은 자신이 과외를 했던 연하의 남자(엄기준 분)에게 수년에 걸친구애를 받는다. 그런데 그녀는 비혼모이다. 그리고 엄기준의 어머니(정애리 분)는 채림의 회사 사장이고, 채림은 엄기준의 모친으로부터 두터운 신임을 받고 있다. 처음의 이러한 설정은 이 드라마의 무게가 그다지 무겁지 않을 것을 예측하게 했다. 씩씩한 비혼모가 약간의 장애물을 거쳐 알콩달콩한 사랑과 결혼에 골인하는 내용-그런 것일 거라 예상했다. (편의상 모든 인물은 실제 배우 이름으로 대신하겠다.)

그러나...이 드라마는 갈수록 '독해'지기 시작했다. (1)시작은 채림과 엄기준이 사귄다는 사실에, 채림이 무언가 감추는 게 많고, 채림의 부모들이 번듯하지 못하다는 이유로 정애리가 그들의 결혼을 과도하게 반대하는 데서부터 시작했다. 그러다가 아들이 하도 우기니 약간 승낙을 할까말까..할때 (2) 정애리의 가장 친한 친구의 딸(김정화 분)의 약혼자가 채림의 첫사랑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때문에 거의 남매와도 같은 엄기준과 김정화의 사이에 문제가 된다며 채림을 도로 반대한다. 좀더 강렬하게. 그러다가 또 다시 (3)채림이 '미혼모'라는 사실이 밝혀진다. 이를 알게 된 정애리는 더더욱 심하게 반대하고, (4) 그 아이가 김정화의 약혼자(김승수 분)와의 사이에서 낳았다는 걸 알게 된다. (5)김승수가 채림이 자신의 아이를 낳았다는 것을 알고 채림에게 돌아가려 해서 이들의 사이를 방해하고, (6)김승수와 채림이 같이있는 장면들을 보며 김정화나 정애리는 거의 광기를 보이며 이들을 탄압한다. 

이와 같은 수도 없이 많은 장애물, 시련들 앞에서 채림은 매일매일 눈물만 짜냈다. 한번에 터져도 될 비밀들이 하나씩 하나씩 터지면서 그때마다 채림은 점점 강도가 센 역경들을 만나고 그래서 드라마는 매우 피로했다. 이 드라마는 결국 애국가시청률과 10%시청률 사이를 오가다가 막을 내렸다. 당연한 결과였다. 이렇게 계속 여주인공이 당하는 드라마는 시청자들을 끝까지 붙잡아 둘 수가 없다. 

따라서 적당한 시점에선 이제 주인공의 복수, 반격이 시작되어야 한다. 그래야 대중들은 희망을 품는다. 저렇게 당하기만 하던 여주인공도 다시 잘 살 수 있고, 자기를 짓밟았던 사람들에게 되갚아 줄 수 있다는 걸 보여주기 시작하면 대중들은 좋아한다. 특히 좋아하는 것들은, 지지리 궁상이던 여주인공이 갑자기 세련되고 예뻐지는 것. 그래서 젊은 다른 남자들에게 사랑받는 것. 특히 헌신적이고 돈도 많고 능력도 좋고 잘생긴 연하남이 그녀의 새로운 안소니가 되어주는 것이다. 그런 로맨스 사이에서 여주인공은 차근차근 복수의 활로를 닦는다. 이게 왜 그렇게도 재미있는지, 드라마들마다, 특히 막장드라마들은 빼놓지 않고 이 플롯을 활용한다. 

사실 복수의 플롯은 단순히 막장이어서만 쓰는 것은 아니다. 박찬욱감독도 좋아하는 게 복수극 아니던가?(복수에 대한 해석에 있어서 박찬욱과 막장드라마를 같은 급으로 취급하잔 말은 아니다. 그건 박찬욱에게 좀 미안한 일이니까.) 인간에게는 자신이 당한 억울한 일에 대해 언제나 되갚아주고싶은 본능이 있다. 그러나..현실은 과연 그러기 쉬운가? 아니다. 대부분은 억울한 사람들이 또 억울하게 산다. 그게 우리 인생이다. 나에게 못되게 군 인간들, 내게 상처준 사람들은 벌도 안받고 또 떵떵거리고 산다. 그런 실제 삶으로부터 벗어나 '인과응보', '사필귀정'을 실현해보는 것, 거기서 대리만족을 하는 게 대중이다. 그런 마음을 보듬어준다는 점에서 막장드라마에게도 나름의 역할이 있다. 

 

2. 투명성(?) 

이것 또한 중요하다. 막장드라마들을 볼 때는 아무 것도 짐작하거나 추측할 필요가 없다. 얼마나 명쾌하게 지금의 행동들을 왜 하는지를 설명해주는지...어떤 이상한 행동, 의미심장한 행동을 한지 3분도 안돼서 그 행동의 이유를 친절하게 알려준다. 때로는 그 행동을 한 인물의 독백이나 마음속 말 나래이션으로, 때로는 다른 인물들이 대신 설명을 해주는 방식으로. 그러니 얼마나 깔끔한가? 여백이 전혀 없다. 드라마에서 말해 진 대로 사건은 진행되고, 인물들간의 관계는 형성된다.  

이것 역시 대중들에게는 참 편한 부분이다. 영화나, 잘 만든 드라마들일 수록 대사는 함축적이고, 서사 속 여백이 많다. 그 부분들은 보는 사람이 채워가는 것이며, 그 맛에 영화를 보고 웰메이드 드라마를 즐기는 시청자들,관객들도 많다. 그런데 그건 그만큼 머리를 많이 쓰며 시청을 해야 한다는 뜻이다. 자신이 능동적으로 해석하지 않으면 '쟤 왜 저러는 거야?" 라는 질문에서 답을 찾기 힘들다. 그런 오리무중...뭔 얘기인지 모르는 드라마나 영화들이 되어버린다. 

그런데 막장드라마들은 그런 게 없다. 생각, 머리, 전혀 안써도 된다. 그 드라마가 말해주는 대로 졸졸졸 따라가면 무슨 얘기인지 다 알 수 있다. 제일 심했던 것은 <아내의 유혹>이다. 그 드라마는 제작비나 촬영시간을 아끼기 위해서인지 마음속 말까지 배우들이 그 자리에서 직접 말로 하는 정말 기이한 방식의 독백, 내래이션을 매우 자주 썼다. "어떻게 된거지? 저 남자가 그 사실을 어떻게 아는 거야? 내가 아까 한 말을 엿들은 건가?" 뭐 이런 식의 대사를 입벌리고 혼자 있는 방에서 중얼거린다. 보통 예의상, 드라마들은 그런 이야기는 입은 안벌리고 눈을 굴리며 궁리하는 배우의 모습에 따로 더빙을 한 목소리를 입혀서 속엣말임을 표현하는 정도의 성의는 보인다. 그러나 <아내의 유혹>에서는 그것도 없이 그냥 그 자리에서 다 말로 해주는, 무성의한 편집, 연출방식을 즐겨 썼다.  

3. 두고두고 씹힐 만한 말도 안되는 설정이나 캐릭터 한 개 

마지막으로, 막장드라마가 되려면 한 줄로 요약되면서 두고두고 씹힐 만한 말도 안되는 설정이나 인물이 하나는 있어야 한다. 이건 독이 될 것 같지만, 사실 의외로 엄청난 홍보효과를 낳는다. 막장 드라마를 씹는 수많은 기사, 비평들에게 매우 편리하게 그 드라마들을 언급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구구절절하게 스토리와 여러가지 인물관계도를 설명해 가며 어떤 드라마가 어째서 문제다...라고 말하게 만들면 기사, 평론에서 자주 씹기가 힘들다. 그러나 한 줄로 딱 요약되는 말도 안되는 설정이 있으면 언론에서 비판적으로 언급할 때도 손쉽고, 대중들 사이에서도 그 드라마가 자주 입에 오르내리기도 쉽다. 

예를 들어, <아내의 유혹>의 가장 말도 안되는 설정은, 장서희가 자신을 버린 남편 변우민에게 복수를 하는데, 과거와 달라진 점은 머리를 잘랐다는 것과 얼굴에 점을 하나 찍었다는 것 뿐이다. 점 하나 찍었다고 수년을 함께 살았던 전처를 몰라본다? 말이 되는가? 그러나 이 말도 안되는 설정은 <아내의 유혹>의 트래이드 마크가 됐다. 그래서 <내조의 여왕>에서도 김남주에 의해 "당신 바람피우면 내가 코 밑에 있는 요 점 빼고 나타나서 당신한테 복수할거야"라는 패러디, 희화화거리로 등장했다.  

<인어아가씨>는 자신의 어머니를 버린 아버지에게 딸이 복수를 하면서 아버지와 아버지의 현재 아내의 뺨을 때리는 장면으로, <왕꽃선녀님>은 멀쩡하던 주인공이 어느날 신이 내려져서 무당이 되는 설정으로, <하늘이시여>는 어렸을 적 버린 딸을 자신의 의붓아들과 결혼시키는 엄마의 이야기로, <밥줘>는 조강지처가 남편과 남편의 애인이 함께 사는 집에서 밥과 청소를 하며 지내는 설정으로 물의와 논란을 일으켰다.  

이런 논란거리는 욕을 먹기도 하면서도, 그걸 다시 욕하면서 보게 만드는 효과가 있다. 말도 안되는 그러한 설정들을 욕하고 비웃으면서도 은근히 즐기는 사람들의 묘한 심리를 막장드라마들은 십분 이용하여 점점 더 독하고 말도 안되는 이야기들을 만들어 나간다. 

  

4.그래서? 

이런 세 가지 요소들을 그냥 비판만 할 수 있을까? 나는 이런 막장드라마를 즐기는 대중들의 마음도 끌어안고 보듬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시청자들이 왜 복수플롯에 열광하고, 명쾌한 스토리에 끌리며, 말도 안되는 설정들을 즐기는가...특히 위와 같은 막장드라마들은 대체로 일일연속극들에서 자주 등장한다는 점. 중장년 여성들이 채널권을 가진 시간대에 그러한 드라마들이 많은 것은 왜일까. 아마도 그들에게 아마도 다른 대안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아침이나 저녁의 일일연속극 시간의 드라마들은 전혀 진화하지 않는다. 독한 설정만 점점 강해질 뿐, 늘 가족 이야기이고, 고부간의 갈등이고, 못된 년놈들의 파멸기-착한 주인공의 성공기이다. 그러한 드라마들이 동시간대에 방송사마다 동일하게 방영이 되는데, 시청자들이 무엇을 선택할 수 있겠는가? 그 중에 가장 자극적이고 명쾌통쾌한 드라마로 채널이 돌아갈 수밖에. 

'대안'을 고민하는 일은 쉽지 않다. 일일연속극 시간대에는 이런 '막장'스타일이 아닌 이야기로 시작했다가 인기를 못끌어서 드라마 도중에 억지로 '막장'이 되어 갔던 드라마도 많다. 안 그러면 살아남을 수가 없어서. 방법은, 그러한 막장 스토리에서 벗어난 좋은 대본과 스타급 배우들의 과감한 출연결정이 아닐까? 지난번에 이야기 한 <솔약국집 아들들>만 해도 막장스러운 이야기는 하나도 없지만 올해의 최고 흥행 드라마가 되었다. 적당한 판타지가 있기는 했어도, 그 정도의 '꿈'은 드라마로서 용납가능하다. 그런 이야기틀에(아마 <솔약국집..>은 일일연속극으로 했어도 매우 인기있었을 스토리이다.) 그정도 급의 배우들-현재 아주 잘나가지도 않지만 한때 스타였고, 앞으로 크게 될 스타들인-이 자신의 과거의 '영화'를 생각하며 '모냥 빠지게 일일연속극?' 하며 거절하지 말고, 출연해야 한다. 그것이 자극적 소재를 이길 수 있는 길이다.  

<하얀 거짓말>(안 봐서 모르는데  이 드라마도 꽤나 막장이었던 듯 싶긴 하지만)의 성공요인 중 하나는 이런 아침 드라마에 나올 것 같지 않은 신은경이라는 배우가 과감히 주인공으로 캐스팅되었던 점이기도 하다. 최근에 <무릎팍도사>에 나온 안재욱의 '사람들이 제가 한국에 있다는 걸 잘 몰라요'란 고민에 강호동이 "일일연속극에 출연해라"라고 처방해준 것, 나쁘지 않은 얘기라고 생각한다. 딱 그 정도의 배우가 일일연속극에 나오면, 막장이 아니어도 사람들은 채널을 돌려줄 것이다. 그럴 때 좋은 이야기, 복수 대신 용서, 억지 설정 대신 삶의 깊은 진실을 담은 스토리로 시청자들의 마음을 빼앗는 것, 그래서 그런 드라마들이 성공하고, 이걸 계기 삼아 일일연속극 시장도 진화하는 것...그게 막장드라마들을 사라지게 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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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09-10-21 11: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대안이 솔깃합니다. 강호동이 내렸던 그 처방이 웃으란 얘기가 아니라 정말 설득력 있는 얘기네요.

somun 2009-10-22 08:06   좋아요 0 | URL
아, 마노아님, 반갑습니다.^^

기인 2009-10-21 12: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요즘 신소설 읽으면서 겹치는 부분도 많네요.. '복수극' 흠. '신소설'과 요즘 드라마들의 공통점이랄까.. 이런것도 재미있는 것 같아요.^^

somun 2009-10-22 08: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그게 제가 신소설을 처음 연구하게 된 이유이기도 하지요.

janeDoe 2010-01-13 21: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중원 소설은 어떤가 찾아보다가 여기까지 흘러들어왔네요 ^^.

임성한은 단지 '막장'이라고만 정리할 작가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오히려 자본주의 사회에서 중산층 가족이란 무엇인지, 그 가족을 지탱하는 여자들의 욕망과 사고방식은 무엇인지 너무 적나라하게 잘 보여주는 작가가 아닐까 싶어요 ㅋ 하늘이시여까지의 임성한의 인물들은 '아름답고 감동적인 진심'이라고는 눈꼽만큼도 없고 다들 적나라한 욕망에 불타고 있는데, 그 정도로 솔직하니, 개인적으로는 오히려 통쾌한 기분마저 들거든요.

게다가 등장인물의 속셈을 마음속의 독백대사로 다 읊어서 '들려'주는 방식은, 배우의 미묘한 표정이나 미쟝센으로 함축적으로 처리하는 영화적으로 '보여'주는 방식보다 촌스럽고 유치하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주부들이 TV라는 매체를 시각매체라기보단 라디오에 가깝게 접한다는 점, 살림을 하면서 왔다갔따하면서 거의 반쯤은 '듣는' 것을 중심으로 드라마를 본다는 점을 생각하면 촌스러운 것이 아니라 장르적인 특성이라 볼 수도 있지 않을까요.

임성한은 단지 자극적인 설정으로 롤러코스터 태우는 데만 재능이 있는 작가는 아닌듯...

순옥킴의 경우는 롤러코스터 재능도 그 정도면 거의 경외감을 느낄정도구요(도대체 한 회차 안에서 반전이 몇개인지) ㅋㅋㅋ

somun 2010-01-14 00:12   좋아요 0 | URL
반갑습니다, 제인님.^^

네..그렇게 보실 수 있죠. 주부들의 드라마가 '듣는' 매체에 가까운 형식을 취한다는 지적은 신선하고 적절한 것이라 생각됩니다. 또한 저도 임성한은, 다른 '급'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작가만이 할 수 있는 '무언가'가 있죠. 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우리의 감추고 싶은 욕망까지 '까발겨주는'면. 그 원초적 욕망의 재현이 통쾌한 것 사실입니다.

저 역시 이 글을 쓰면서 기본적으로 가졌던 태도는, 그런 드라마들을 비난하거나 무시하기만 해선 안된다. 그런 드라마들을 왜 사람들이 즐겨보는가는 이해하고 보듬어야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또한 임성한, 김순옥, 문영남 등의 작가들은, 저는 점점 피하게 되지만, 그들의 시청자를 '매혹'하는 '재능'은 인정해주고 싶습니다. (그러나 서영명은 좀 많이 다르죠...그 작가의 작품은 거의 대부분이 정말 '서사의 파탄' 그 자체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도 그 드라마들이 '좋은' 드라마가 아닌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일이라 생각해요. 그러한 드라마들은 우리에게 무얼 얘기해주는 걸까요? 그냥 시간이나 때워라? 집안 일 하면서 심심하니 켜 놓고 일하기에 좋으면 된다? 세상에 고민하고 안타까워해야 할 일이 얼마나 많은데, 분노하고 변화시켜야 할 것들이 얼마나 많은데, 그런 말 안되는 '출생의 비밀', '고부간 갈등', '불륜', '복수'얘기의 복제품들만 보면서 있어야 하나 싶거든요.

특히 그 중심에는 여성들끼리의 싸움이 있다는 게 제일 마음에 안 듭니다. 대부분 여자의 적은 여자들입니다. 왜 같은 여자들끼리 말도 안되게 서로를 음해하고, 괴롭히는 이야기를, 여성 시청자들이 보면서 욕을 하고 있어야 하나요? 그게 현실 속의 여성들 사이의 갈등까지도 자꾸 만들어내는 건 아닐까요? 그런 '갈등'을 드라마를 통해 학습해서, 각 여성들 사이의 '관계'속에서 '실천'하게 만드는...

좀더 많은 사람들이 행복해지는 방법, 다 같이 잘 살 수 있는 방법을 보여 줄 '착한', '예쁜' 드라마를 바라는 게, 제가 단순히 '계몽적' 태도라서만은 아니지 않나 생각이 드는데요...제인님은 어떠신지 모르겠네요.^^;
 

1. 참여연대에 걸린 김제동 사인

참여연대 사무실에 처음 갔을 때 눈에 들어온 것은
좀 생뚱맞게 걸려있는 김제동의 사인지였다.
음식점같은데에 연예인 사인이 걸려있는 경우는 많이 봤지만
참여연대 사무실에 연예인 사인이라니.

 
그게 생뚱맞아 보이지 않으려면, 좀 많은 연예인의 사인지가 걸려있었어야 한다.
그런데 다른 건 없었다. 달랑 그의 사인이 하나.
그가 어떤 정도로, 어떤 이유로 그곳과 인연을 맺고 있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거기에 걸린 그 사인지는, 생뚱맞으면서도 동시에, 참 그.답.다.

  

2. 정치하는 개그맨?

'그답다'는 이유는 뭐 열심히 설명하지 않아도 요즘 잘 알려진 사실이다.
최근 그가 스타골든벨 MC 자리에서 물러나게 된 것을 가지고
정치적 외압에 의한 것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이 약 50%나 된다는 것 만으로도
그의 행보가 정치판의 눈에 '거슬릴' 여지가 있는 일이었다는 점은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사실이니까.
그는 노무현을 추모하고, 진보신당 일에 참여하며,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를 다니고, 참여연대에 사인지를 남기는, 그런 사람이다.
여당과 정부 입장에서 곱게 보이지 않을 '짓'을 자-꾸 하고 다니니,
스타골든벨 하차문제가 정치적으로 해석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3. 스타골든벨 하차, 정치적이거나 말거나

그런데 50% 조금 못미치는 숫자의 사람들이'나'
그의 하차를 정치적 '보복'으로 보는 거라 할 수도 있지만,
사실, '겨우' 50%도 안되는 사람들만이 그렇게 생각한다는 것이라 볼 수도 있다.

 
왜 나머지 50%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까?
그건...설문응답자의 정치적 입장이 친이, 친여적이어서일 수도 있겠지만,
그가 사실 '한 물 간' 취급을 받고 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그는 최근 여러 프로그램에서 제 자리를 못잡고 있었다.
'야심만만-예능선수촌'에서도 하차했고, '노다지'도 곧 폐지된단다.
그 이전에도 '연예가중계', '간다투어' 등의 프로그램이라든가...
이름도 잘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소리소문없이 사라진 프로그램들 속에
그가 진행자로 끼어 있었던 적이 여러번이다.

 
거기다 그는 사실 밖에 나가서는 그런 '좌파'적 행보를 함에도 불구하고
프로그램 내에서는 거의 전혀 자신의 정치적 입장을 드러내는 사람이 아니다.
그래서 스타골든벨의 하차가 단지 그의 정치적 행보에 대한 '보복'이 아니라
그냥 신선미가 떨어져서, 한물 가서 바꾼 것이라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다.
그만큼, 그는 자신의 정치적 입장과 상관없이 방송계 내에서 '위기', '하락세'의 상황이었다.
 

물론 그가 스타골든벨에서 하차되는 거, 무척 불쾌한 일이지만,
그 사실에 대한 섭섭함은 손석희의 <100분토론> 하차설에 비하면 그렇게 섭섭한 일은 아니다.
스타골든벨이 그렇게 훌륭한 프로그램도 아니고, 이제 매너리즘에 빠질 만큼 빠졌고
김제동의 자질과 매력을 보여주기에 충분한 포맷도 별로 아니다.(물론 본인 입장에선 섭섭하겠지만)
그래서 긴가민가...하고 있었는데, <오마이텐트>라는 프로그램을 우연히 보고난 뒤에는
그깟 스타골든벨, 하차하거나 말거나...란 마음으로 확 바뀌었다.
스타골든벨보다 후어얼씬 그에게 잘 맞는 프로그램, '오마이텐트'를 그가 만났기 때문.

 

 

 

 

 

 

 

 

 

4. 김제동을 위한 프로그램, <오마이 텐트>

(어떤 블로그에 이번 편의 내용을 착실히 소개해 놨길래 링크한다.

http://blog.naver.com/yyetm?Redirect=Log&logNo=120092675059)

 
이 프로그램은 '여행(캠핑)'과 '토크'가 함께 있는 포맷인 듯 하다.
여행? '1박2일'이나 '패밀리가 떴다'를 벤치마킹한거? 아니다.
물론 연예인들이 여행을 떠나 자신들의 진솔한 모습을 보여준다는 건 같은 포맷일테지만
<오마이텐트>는, 한번 보고 속단할 순 없겠지만, '리얼'은 맞는데 '버라이어티'는 아닌 것 같다.
이 프로그램엔 쓸데없는 연예인들의 게임대결도 없고, 화려한 개인기 자랑도 없다.
 

첫회는 앞으로의 진행자가 될 김제동이 김제동과 떠나는 여행, 즉 혼자 출연했기 때문에
앞으로 다른 출연자와 함께 여행을 떠나면 성격이 바뀔 수도 있을 테지만,
김제동의 성격이나, 첫회를 편집, 구성한 방식으로 보았을때
'버라이어티'가 아닌 '다큐멘터리'를 지향하고 있는 듯 하다.

 
김제동은 본인 입으로 말했듯, 쓸데없이 진지하다.
개그맨 되기는 진작에 포기한 것 같고, 진행자로서도 좀 재미가 없는 편이다.
거기다 생각이 너무 많다는 것. 그는 아마도 '정치적으로 올바른' 말만을 해야한다는
강박에 시달리고 있는 것 같다.
 

자신의 한심한 생활(등산+난 기르기)을 하는 걸 보고
주위 친구들이 '벌써부터 명퇴자처럼 사냐?'란 소리를 들었단 말을 해놓고
'아...이것도 명예퇴직하신 어르신들에게 누가 되는 소린 아닌지...'란 걱정을 곱씹고,
자신의 노랫소리가 너무 구슬퍼서 학교 다닐때 음악시간에 <그리운 금강산>을 가창시험보다가
선생님이 '너, 실향민이냐?'란 말을 들었단 소리를 해놓고도
'실향민들께 누가 되는 소리..'일까 고민한다.
그러니, 초스피드와 강공으로 치고 나가야 살아남는 요즘과 같은 방송프로그램의 포맷들 속에서
그가 무슨 말을, 얼마나 할 수 있었겠는가?
고민하는 사이에 타이밍을 놓치고, 저런 고민들로 주저하는 사이에 분위기만 썰렁해진다.
 

냉정하게 말하면, 그는 '좋은 사람'이지만, 유재석만큼 '유능한 사람'은 아닌 것이다.
유재석은 몸에 밴 '정치적 올바름'이 있다. 그래서 그는 리얼버라이어티 진행자로는 최상이다.
그는 재치있고 순발력있게 치고 나가 자기 멘트를 던지지만
그가 구설수에 한번도 오른 적이 없다는 것. 그게 그의 능력을 말해준다.
유재석은 고민하지 않아도 나쁜 말을 안하고, 거기다 재미있기까지 한 것이다.

 
반면에 김제동은 나쁜 말은 안하지만, 좀 늦고, 덜 재미있다.
요즘처럼 집단MC체제가 대세를 이루는 분위기에선 그러니 살아남기 힘들다.
누구도 그가 바르고도 재미있는 말을 잘 골라내어 할때까지 기다려주지 않는다.
거기다 그의 진지함은, 재미만을 위해 내면 없이 막말을 던져대는 다른 MC들 사이에서
'분위기 파악 못하는 애' 취급만 받는다.

 
따라서 그런 그에겐 누군가와 같이 MC를 보는 프로그램은 잘 안맞는다.
여러명이 함께 진행하는 프로그램이라면
자기가 얘기할 기회가 명시적으로 배분되어있는 프로그램일 경우에만 살아남는다.
<스타골든벨>이나, <환상의 짝꿍>처럼 말이다.

 
그리고 일반인들과 이야기하는 프로그램이 더 잘 맞는다.
그는 진솔하고, 착한 사람이기 때문에 일반인들과 마주치면
참 정감가는 인간적 모습을 보여 보는 사람들을 훈훈하게 한다.
거기다 그는 다른 '튀는' 연예인들보단 덜 웃기지만, 일반인들보다는 확실히 더 웃긴다.
그래서 일반인들과의 대화 속에서 따뜻함과 웃음, 뿐 아니라 감동과 눈물을 만들어내는 기술은
유재석보다 나을 수도 있다.

 
그래서, <오 마이 텐트>에서 그가 장에서 만난 할머니들이라든가 다른 캠퍼 가족들과
대화를 나누던 장면들은 요절복통할 웃음은 없어도 계속 비실비실 웃게 만들었다.
보는 1시간 내내 흐뭇했다.

  


5. <강심장>과 <오마이 텐트>

<오마이텐트>를 보며 최근 시작한 <강심장>이 생각났다.
강호동의 최초 본격 토크쇼로 홍보된 <강심장>은, 앞으로 둘 중 하나의 길을 갈 것이다.
하나는 프로그램의 조기 폐지, 하나는 포맷의 전면 수정.
난 강호동이 언젠가 이런 자기 이름을 건 토크쇼를 할 날이 올 줄은 알았지만,
그렇게 된다면 <무릎팍 도사>의 포맷과 비슷할 줄 알았다.
지금으로선 전혀 생각도 못했을 만큼 너무 산만하고, 매우 진부하다.

 
토크 배틀의 형태로 서로 '독한' 얘기를 쏟아내는 포맷, <서세원쇼>나 <예능선수촌>에서
이미 할 만큼 해먹었던 것이고,
이 프로그램의 타겟 시청자를 누구로 삼았는지 알기 힘들게 무질서하고 많은 출연진
특히 아이돌 그룹 스타들을 무더기로 데려다가 홍보장소로 삼는 '노골성'

 
거기다, 결정적으로 그 프로그램 안에는 '강.호.동.이. 없.다.'
오히려 이승기가 선전하고 있는 듯 보인다.
이승기는 순간순간 반응하고 상황에 맞는 똘똘한 멘트를 치지만, 
강호동은 무대포식으로 출연자들에게 무언가를 추궁하거나, 억지로 무언가를 시킨다.
그것 외엔 그는 하는 일이 없다.

 
그 프로그램은(사실 다 합쳐서 30분 봤을까? 계속 보고 있기 힘든 프로그램이다)
어떤 프로그램인지 궁금해서 잠깐 틀었다가 보고 있는 내내 머리가 지끈거렸다.
그 프로그램의 산만함과 불필요한 화려함에 멀미가 날 지경이었다.
어쩌자고 그런 시대착오적인 프로그램을 만들었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된다.
혹시 <박중훈쇼>를 '과도하게' 반면교사로 삼았나?
진지하고 조용한 토크쇼는 이제 안먹힌다는?

 
좀 딴 얘기지만, <박중훈쇼>가 망한 이유는 진지해서가 아니다. '가짜'여서지.
그 쇼는 하나도 진정성이 안느껴졌다. 앵무새같은 진행자와 역시 앵무새 내지 철면피같은 초대손님.
우리는 그들의 '연극', 식상할 대로 식상한 '질문과 답변'을 보고 있는 게 싫어서
그 프로그램을 외면했던 것이지, 조용해서나 진지해서가 아니다.

 
나는, <박중훈쇼>의 진지하고 차분한 쇼라는 처음 시도는 매우 좋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거기에 없었던 진솔함, 진정성, 리얼-
그걸 찾아 줄 프로그램이 이제서야 탄생한 것이다. <오 마이 텐트>
그리고 그걸 맡기에 적격인 김제동이라는 진행자까지.

 
 

6. 삼림욕 같은 토크+(다큐)멘터리

지끈거리는 TV속 쇼프로그램들의 홍수에서 벗어나
삼림욕을 하듯 마음이 맑아지는 프로그램이었다.
앞으로 어떤 초대손님들과 계속 이런 '정화'의 느낌을 만들어갈지 기대된다.
이 프로그램은 분명 잘 될 수 있을 것 같다.
사람들은, 사실, 많이 지쳐있다.
이런 프로그램들을 통해 가끔은 잔잔한 웃음과 위로를 받고 싶다.
그런 마음을 달래주기에 '토크'+'(다큐)멘터리' <오마이텐트>는 좋은 포맷을 갖췄다.

 
김제동이여, 이제 스타골든벨은 잊어라.
당신을 위한, 당신에 의한, 당신의 프로그램이 만들어졌다.
혹, 이번에도 잘 안되더라도,
부디, 용기 잃지 말고, 오래오래, 당신만의 '착한' 색깔로,
당신의 자리를 구축해나가길, 진심으로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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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30% 이상의 시청률을 획득한 드라마는 '대박' 드라마로 취급된다. 예전에 <허준>이나 <사랑이 뭐길래>의 경우는 시청률이 50~60%까지도 나왔다고 하는데, 그건 아직 케이블 채널이 활성화되기 이전의 일이다. 오늘날처럼 케이블TV 뿐 아니라 IPTV까지 TV채널 시장에 진출한 시기에는 30%대의 시청률을 얻은 드라마만 해도 엄청난 성공이라고 할 수 있다. 

30% 이상의 드라마는 다시 몇 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오늘은 일단 첫번째 유형에 대해서만 얘기해 보기로 한다. 그 첫번째 유형이란 어제 종영한 <솔약국집 아들들>로 대표되는 '안온감'을 주는 '주부 선호적' 드라마들이다.  

 <솔약국집 아들들>은 제목을 듣는 순간 예상할 수 있듯 "아들들의 장가 보내기 프로젝트"를 줄거리로 하는 드라마이다. 큰아들이 하는 '솔약국'을 위시로 네 명의 아들들이 장가도 안 가고 엄마 등골만 빼먹으며 살다가, 드라마 마지막회에는 짝짓기에 성공하면서 끝나는, 하나도 궁금하지 않은 유형의 드라마이다. 드라마 홈페이지를 가보라. 처음 홈페이지를 만들면서부터 이미 어떻게 짝짓기가 될지를 '첫째 커플'  '둘째 커플' 식으로 이미 명명해 놓고 있다. 

http://www.kbs.co.kr/drama/sol/index.html

 그런데 이 드라마의 종영날 시청률은? TNS의 경우 48.6% 좀 짜게 나오는 닐슨의 경우도 44.2%다. 이게 얼마나 대단한 시청률인지는, 최근 이승기 신드롬과 한효주의 광고시장 점유 등 스타배출로 화제 속에 종영한 <찬란한 유산>의 최종회 시청률이 TNS 47.1%라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이건 2009년 드라마중 최고치이다. 현재 최고의 시청률을 자랑하는 <선덕여왕>도 아직까지 넘어서지 못한 벽이다. 그런데 이 드라마를 보신 적이 있는 분들은 알 것이다. 이게 <찬란한 유산>이나, <선덕여왕>, <태양을 삼켜라>같은 드라마랑 비교해서 얼마나 '저렴한' 드라마인지. 

 저렴하다는 건, 그야말로 저예산이라는 뜻이다. 이 드라마의 대부분은 세트 촬영이라서 시간도 돈도 많이 절약했을 것이고, 나오는 배우들도 초호화 스타는 없다. 약간 한물 갔거나, 이제 겨우 뜨기 시작했거나. 대신에 연기력은 누구 하나 거슬리지 않는 '중견', 또는 '똘똘한 신인' 배우들이다.  내용은 앞서 말한 대로 너~~~무 뻔하다.(사실, 그래서 나도 매회 챙겨볼 의지도, 이유도 없었다. 가끔씩 봐도, 아니, 예고편만 봐도 무슨 내용인지 다 알 수 있는 그런 드라마이다.)

 그런데 어떻게 최고의 스타들을 데려다 쓰고, 예쁜 화면들로 시청자를 사로잡으며  화제를 몰고 다녔던 <찬란한 유산>이나, 스케일 면에서 <솔약국집 아들들>과는 비교도 안되게 거창한 <선덕여왕>, 해외로케를 해가며 찍은 블로버스터 드라마 <태양을 삼켜라>보다도 높은 시청률을 얻을 수 있었을까?  

 일단은 편성 시간대도 좋았다. 주말8시 드라마는 전형적인 가족시청 시간대다. 그리고 가족들이 다같이 보기에 부담없어야 하며, 내용도 복잡하지 않은 편이 가족들이 '노가리를 까며' 보기에 좋다. 딴 짓하며 봐도 다 이해되고, 적당히 씹을 거리와, 가끔 몰입할 흠잡을 데 없는 짠한 감동의 연기, 전혀 마음 불편함 없이 볼 수 있는 '해피엔딩'에 대한 기대가 이러한 드라마로 채널을 고정하게끔 한다. 부모형제아들손자며느리 다 같이 모여 보아도 아무런 부담이 없다.  

한편 여러가지 설정들은 걱정 없이 보게 만드는 요소들로 가득 찼다. 청춘남녀들은 신체건강하고 건전한(?) 정신을 소유한 처녀총각들로, 손 한번 잡는 것에 부끄럽고 설레하는 순진둥이들이다. 엄마아빠는 가정을 지키며 전통적 성역할을 잘 분담한다. 가계는 딱히 찢어지게 가난하지는 않아서 보면서 불편하거나 걱정스럽지 않다. 게.다.가. 자세히 보면, 평범한 소시민의 이야기인 듯 보이지만, 사실 네 명의 아들들 중 재수를 하는 막내를 제외한 셋은 우리나라 최고의 엘리트들이며, 그들의 아내도 최상위 계급의 여성들이다. 이건, 사실 매우 기분 묘해지는 대목이다. 

첫째 아들은 제목의 주인공 답게 약사로, 혜화동에 약국을 운영한다. 둘째 아들은 소아과 의사로 서울대 의대를 수석으로 입학했다고 한다. 셋째 아들은 방송국 기자로 7개국어를 자유자재로 하고 교양과 지식이 넘치는 전도유망한 기자이다. 이들은 한국에서 흔치 않은 초엘리트들인 것이다.  

 그럼 그들의 '짝꿍'들은 어떠한가? 첫째의 짝은 미국에서 로스클을 나온 국제변호사이고, 둘째의 짝은 처음엔 미련한 간호사인척 하더니 알고보니 굴지의 종합병원 원장 딸이자 존스홉킨스 의대를 나온 신경외과 전문의였다. 셋째는 잘나가는 탤런트인 방송국 국장의 딸이다.  제목과 주요 무대가 되는 혜화동 어느 골목의 단독주택집의 '소시민적' 이미지와 비교할 때, 좀, 배신감 들지 않는가?

우리는 이러한 이력을 가진 인물들과 비슷한 사람을 한 명이라도 알고있나 떠올려 보자. 서울대 의대 수석한 친구? 탤런트 친척? 약사 선배? 국제변호사 언니? 한 명을 알고 있기도 힘든 사람들이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이, 무더기로 나오는, 사실 '트렌디 드라마'들보다 더한 '그들만의 리그'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러나...드라마는 이러한 이들의 이력을 함부로 부각시키지 않는다. 평소 그들이 만나고 연애하고 결혼하는 과정에서는 이들의 화려한 스펙은 거의 언급되지 않는다. 그들은 세상에서 가장 소박한 연애와 결혼으로 일관한다. 김밥을 싸온 여자에게 감동하고, 공기놀이를 하며 사랑을 싹틔우고, 곰인형 하나에 감동하는...'소시민'스러운 척 살아간다. 

또한 이 네 아들의 부모가 보여주는 소박함, 평범함, 단순무식함으로 그러한 부모의 모습이 곧 이들의 모습인 듯 위장한다. 그래서 우리는 이 드라마를 우리들의 삶과 비슷하다 착.각.한.다. 

불쾌하지 않은가? 이런 식으로 '속는' 다는게. 그러나 아마 이 드라마를 즐겨 본 시청자들에게 물으면, 이 세쌍의 커플 주인공들이 이런 대단한 스펙을 가진 인물이라는 사실을 충분히 알고 있다는 답을 듣게 될 것이다. 이 드라마의 시청자들은 그 사실을 절대로 잊지 않는다. 왜? 그들의 '스펙'은 매우 중요한 거니까. 

 이게 '드라마 매혹'의 한 축이다. 이렇게 '잘난' 인물들이 나오는 것. 주위에선 보기도 힘든 이런 엘리트들을 떼거지로 등장시키면서, 한편으론 그들의 엘리트성을 전면에 부각시키지 않으면서, 다른 한편으론 '결정적인' 순간에 그 스펙을 들이밀어 이들의 짝짓기에서 초래되는 갈등 해결을 손쉽게 한다.  

이 짝짓기에서 초래되는 갈등이 이 드라마 매혹의 두 번째 요소이다. 사실 이 드라마의'아들들'은 자신의 스펙은 매우 훌륭하지만, 집안은 '소시민'인 게 맞다. 그런데 이들이 결혼한 세 여성은 또 좀 다르다. 첫째의 부인은 그나마 평범한 미국 이민1.5세대 출신이고, 둘째의 부인은 앞서 말했듯 종합병원 원장의 딸이며, 셋째는 방송국 국장의 딸이다. 이런 대단한 집안의 딸들과 평범한 집안의 남성들이 짝을 짓는 게 쉽게 가능한 이유는 이들이 '비룡클럽'(개천에서 용난 자식들)엘리트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정적인' 순간이란 그런 것이다. 이 계급의 차이로 생길 수 있는 결혼 과정의 잡음을 이들의 스펙은 일소해 버린다는 것. 그래서 이 사실을 미리 알고 있는 시청자들은 조마조마한 마음 없이 짝짓기 과정의 알콩달콩한 스토리를 즐길 수 있다.  

 그런데 이게 전부가 아니다. 여기서 파생되는 또 하나의 '매혹'적 요소. 그것은 이들 '짝' 여성들이 사실 계급만 높았지, 모두 '결핍'된 가정을 이루고 있는데, 이를 이 '아들들'이 채워준다는 데 있다. 이게 이 드라마의 가장 큰 성공요인 중 하나이다. 첫째의 아내 수진(박선영분)에게는 사고뭉치 오빠가 있다. 오빠는 암으로 요절한 올케언니 대신 혼자 두 명의 자녀를 키우고 있다. 그래서 수진은 결혼후에도 시집살이를 하면서도 오빠와 조카들을 위해 이리저리 고군분투하다가, '너그러운' 시어머니 덕에 조카들이 좀더 클때까지만 오빠네 집에 들어가 살며 조카들을 돌볼 수 있게 된다. 

둘째의 아내 복실(유선 분)은 시부모님과 함께 살긴 하지만, 둘째아들 대풍은 오랜 앙금으로 화해하지 못했던 복실의 부녀지간과 이복자매간을 화해시켜 복실의 가정에 행복을 가져다 준 사람이다. 또한 딸의 결혼으로 적적해진 대풍의 장인에게 대풍의 아버지는 주기적인 술친구가 되어 준다.  

셋째의 아내 은지(유하나)는 외동딸이어서 은지가 시집간 뒤 은지의 부모는 우울증에 시달린다. 이러한 은지 부모를 위해 선풍(한상진 분)의 부모는 선풍을 데릴사위로 보내버린다. 자신들에겐 아들이 넷이나 있다는 게 이유이다. 연애나 결혼을 하는 관계로 발전하진 않았지만, 넷째마저도 자신의 친구 애인이자 오갈 데 없는 미혼모 모녀를 집에 불러들여 거둬준다. 

이처럼 이 드라마는 (알고 보면) '딱한' 사정이 있는 여성들이, '솔약국집 아들들'에 의해 '구원'을 받는 스토리를 갖고 있다. 특히 그 '구원'의 내용이 여성들의 가족을 위한 것들이어서, 이 드라마를 보는 여성들은 흐뭇하고 뿌듯했을 것이다. 그러니...이 드라마가 30~40대 여성들에게 가장 선호되었던 것은 당연하다. 결혼이라는 제도를 통해 한국의 가부장제 내에서 어떤 '상실감'을 맛볼 수밖에 없는 여성들에게 이 드라마는 사실 엄청난 '판타지'이다. 재투성이 아가씨가 왕자님을 만나는 <찬란한 유산>류의 트렌디 드라마보다 훨씬 더 탐나는 판타지일지도 모른다.   

이러한 드라마들이 주는 '열심히 안 봐도 해피엔딩'일 거라는 안온함, 안도감, 그리고 이 드라마들에 '티 안나게' 들어있는 계급상승의 욕망, (사실은 손발이 오그라들 정도로 말도 안되고 거추장스럽기까지 한-미련곰퉁이 '김간' 복실이가 사실 존스홉킨스 대를 나온 신경외과 전문의인 닥터 제니퍼 킴이라는 설정은 그 최고봉이다.-)엘리트주의, 그리고 여성들이 보기에 곱씹을 수록 뿌듯한 '개량된 가부장제'의 판타지는 '주부선호형' 드라마로서의 미덕이다. 여기에 고루 안정적인 연기자들의 연기로 말도 안되는 내용이 나와도 시청자들을 몰입하게 만들었던 점도 크게 한 몫 했다. 

 <솔약국집 아들들>의 성공은 매우 단순하고 정공법적인 드라마 제작의 중요성을 다시한번 일깨워준다. 드라마는, 사실 꿈이고 만화고 판타지고 거짓말이다. (대부분의) 드라마와 같은 세상은 사실 존재하지 않는다. 어차피 판타지라면 요즘의 시청자들이 원하는 판타지가 무엇인지를 정확히 파악하는 게 우선이다. 그리고 그 시청자들의 대부분이 여성이라는 점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 <솔약국집 아들들>은 하나도 새로울 것 없는 짝짓기 이야기에. 주부여성들의 꿈-시집'가지' 않고 친정'가고' 싶은-을 가미하여 새로움을 만들어 낸 드라마이다. 이런 드라마이기만 하면, 초호화 스타가 나오지 않아도(괜히 그러면서 연기 못하는 애들은 드라마를 말아먹을 수 있으므로 금물), 해외로케를 하지 않아도, 엄청난 제작비를 쏟아붓지 않아도, 거대한 서사를 다루지 않아도 2009년(현재) 최고 시청률의 드라마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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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인 2009-10-13 20: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이거 지나가다가 몇분씩만 봤는데, 이런 배경이 있었네요 *.*
 

15~20%의 시청률을 유지하는 드라마는 크게 두 종류가 있다. 

1. 

하나는, 초특급스타들이 출연하는 드라마. 이때의 초특급은 그야말로 지금 현재 잘나가야 한다. 한때 잘나갔던 배우로는 쉽지 않다. 전작에서 큰 인기를 얻었고, 그래서 그 '인기발'이 사라지기 전에 새로운 작품을 했을 때 전작을 통해 형성된 팬층을 통해 관성적으로 일단 먹고 들어가는 시청률이 있는 경우가 이에 속한다. 최근의 <아가씨를 부탁해>에서 윤상현이 나오는 경우가 그 대표적 예일 것이다. <내조의 여왕>으로 올해 3월부터 5월 사이에 '확 뜬' 윤상현이 3개월만에 브라운관으로 복귀한 드라마인 <아가씨를 부탁해>는, 윤상현에게 꽂혔던 아줌마 팬들이 그의 모습이 궁금해서 일단 채널을 그곳으로 돌렸다.  

이럴 경우 15~20% 사이의 시청률을 담보하며 드라마는 출발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다음은 드라마의 몫이다. 드라마가 실제로 재미있고, 공감할 무언가가 있으면 거기서부터 쭈욱 30%이상의 시청률로 올라가지만, '이 드라마, 뭥미?' 소리를 들으면 15%이하에서 왔다갔다하다가 종영되고 만다. 

지금의 <아가씨를 부탁해>는 여러가지 이유로 후자에 속하고 있다. 일단 드라마의 컨셉이 '여성판' <꽃보다 남자>에 머물고 있다는 점. 그것도 <꽃남>의 '악덕'을 많이 닮은 드라마가 되어가고 있다.재벌집 손녀인 윤은혜의 '천한 것들' 하며 다른 사람들을 무시하는 꼴을 보고 있자면 속이 뒤집어 진다. 그리고 그동안의 드라마에서보다도 안 예쁜 메이크업과 헤어스타일로  '윤은혜가 어쩌다 저렇게 됐나?' 싶은 스타일로 출연하면서도 드라마에서는 최고의 패셔니스타이자 미녀 취급을 받는 설정은 당황스럽다. 이 시대에 온갖 행패를 부리는 '주인'을 위해 헌신하는 집사, 메이드가 등장하는 드라마...그 비현실감 역시 참기 어렵다. 진짜 '걔네들'이 그러고 사는지 모르겠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불편한 노사구조이다. 돈 가진 자의 횡포를 우리에게 '멋지다'며 동경하게 만들려 하는 건 <꽃남> 하나로도 매우 버거웠다.

또한 나오는 배우들의 연기력, 발성도 엉망이어서 드라마를 보고 있자면 일전에 기사에 떴듯 '<아가씨를 부탁해>, 자막을 부탁해' 소리가 절로 나온다.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아듣기 힘들다.  오죽하면 '신인'급에 속하는 윤상현이 그 중 제일 연기를 잘하는 축에 속할 것인가? 

 이런 드라마들은 결국 15%대를 벗어날 수 없다. 그냥 그렇게 끝나고 말 것이다. 그리고 이제 윤상현도 15%대의 시청률 담보를 하는 '초특급 스타' 반열에서 한 계단 내려오게 되었다. 윤은혜도 <커피프린스 1호점>의 영광이 이젠 옛날 일임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이번 작품은 그래도 전작들의 이름값으로 이 정도 했지만, 다음 드라마가 작품성이나 연기력으로 뭔가 혁신되지 않는다면 이들은 하향길이다. 

<스타일>도 비슷하다. 한국판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를 만들겠다는 야심찬 기획, 한류스타인 류시원, <베토벤 바이러스>로 인기를 얻은 이지아, 패셔니스타의 대명사 김혜수의 등장 등으로 화제가 되었지만, 지난주 종영때까지 별 반향을 일으키지 못한 채 막을 내렸다. 역시 몇몇 배우의 발연기와 지리한 밀고당기기, 리얼리티 떨어지는 잡지사 이야기로 사람들을 매혹시키는 데 실패했고, 혼자 고군분투한 김혜수의 카리스마만 오래간만에 한번 확인한 드라마로 그쳤다.  

 

이런 드라마들의 15%내외의 시청률은, 앞에서 말한 애국가 시청률의 '전조'이다. 그래도 15%정도 나오면 '참패'는 아니지만, 초특급 스타가 등장해서 15%이상을 못넘기며 지지부진 하다가, 10%초반대의 시청률로 조용히 막을 내리고 나면, 후속작 선정에 매우 신중해야 한다. 다음에도 이러면, 그들은 이제 애국가시청률을 기록하는 드라마의 주연이 될 것이다.  

 

2.  

한편, 15%대를 벗어나지 못하는 드라마 중에는 의외의 훌륭한 드라마들이 많다. 이러한 드라마는 대부분 초특급스타가 등장하지 않아서, 또는 '대박' 드라마랑 같은 시간대에 붙어서 자신의 진가를 제대로 보여주지 못하는 경우들이다. 내 기억 속에 이런 부류의 드라마의 대표작으로 남아 있는 것은 <부활>이다. <부활>은, 혹시 안보신 분들이 있다면 시간 될 때 꼭 한번 보라고 말하고 싶다. 2005년에 방영했던 드라마인데, 하필 이 드라마는 <내이름은 김삼순>과 붙었었다. 더구나 <김삼순>에서 김선아와 현빈이 초절정의 인기를 구가하고 있을 때 <부활>에서는 아직 신인이고 아직 별 인기를 끌지 못했던 엄태웅과 한지민이 주연을 하고 있었으니, 일단 캐스팅에서부터 한 수 접고 들어간 게임이었다.  

그러나 이 드라마는 정말, 한국 드라마가 보여줄 수 있는 최대치의 탄탄한 구성력, 연출력, 연기력으로 무장된 드라마이다. 엄태웅과 한지민이 주연이긴 하지만, 이 드라마에 등장하는 주조연급 배우들의 층은 매우 넓고 강력해서 그들이 주연인 것이 별로 눈에 띌 틈도 없다. 젠틀한 척 하면서 서늘한 이미지를 가진 이정길, <오이디푸스>의 이오카스테를 연상시키는 비련의 어머니의 선우은숙, 당시만 해도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무명배우이나 신비감과 무게감이 첫판부터 느껴지는 김윤석, 그 외에도 김갑수, 이대연, 안내상, 기주봉, 이한위, 김규철까지, 중견의 연기자들이 대거 포진해 있었다. 그러니 드라마가 안정감 있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들의 연기는 하나같이 너무 훌륭해서, 거기다, 그들에게 부여된 캐릭터들이 모두 치밀하고 개성적이어서, '예쁜' 주연들인 엄태웅, 한지민, 고주원, 소이현이 나오지 않는 장면에서도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거기다 그들 사이에 얽히고 얽힌 관계, 사건들의 수레바퀴는 절대로 쉽게 앞날을 예상해볼 수 없는 것들이었다. 또한 대체로 '남성적'인 드라마임에도 한지민, 소이현 캐릭터에도 작가는 세심한 배려를 했다. 여성 캐릭터들이 중심이 아니지만, 그들이 드라마에서 하는 역할은 매우 결정적이며, 그들은 남성들 못지 않게 똑똑하고 용감하다.  뿐만 아니라 연출력...드라마는 종종 색깔의 대비라든가 독특한 구도 등을 활용하여 드라마의 주제의식을 암시하고 복선을 깐다. 정말, 어디 하나 버릴 데가 없는 드라마이다. 

 그러나..이런 드라마는 사실 좀 복잡하기 때문에, 킬링타임용은 아니다. 한 회라도 빼놓고 보면 스토리를 이해하기 어렵고, 힘을 들여 몰입해서 봐야 하는 드라마이기 때문에 대중적이긴 힘들다. 반면 당시 경쟁 중이었던 <내이름은 김삼순>은 스토리보다 촌철살인하는 30대 여성의 내면에 관한 대사와 내레이션, 30대 여성들의 판타지를 척척 충족시켜주는 멋진 남자 주인공 등으로 재미난 칙릿소설이나 자기치유서를 보는 듯 편안함과 공감을 끌어내고 있었으니, <부활>에게는 버거운 상대였다. 그럼에도, <부활>은 15%는 유지했다. 그게, 나는 '좋은 드라마'의 힘이라고 생각한다. 

더구나 뿌듯했던 것은, <부활>은 결국 <내이름은 김삼순>이 끝나고 난 뒤 거의 30%의 시청률로까지 등극했다는 사실이다. 몇 회 남지 않은 상태였지만, 갑자기 <김삼순>이 끝난 뒤 시청률이 상승하기 시작하여 '성공한 드라마'의 기준이라는 30%대를 넘겼다는 것. 이건 경이적인 일이었다. 이렇게 (드라마치고)복잡한 이야기구조를 가진 드라마가, 막판에 스퍼트를 낸다는 것은, 그러니까, 사실 사람들이 <김삼순>과 <부활> 모두를 그동안 즐겨왔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부활>은 KBS에서 하고 있었기 때문에, 공짜로 홈페이지에서 다시보기를 할 수도 있고, 꼬박꼬박 재방송도 해준다. 또 쌈박한 맛은 역시 <김삼순>이기 때문에 '닥본사(닥치고 본방 사수)'를 하기에는 역시 <김삼순>이 선택되었던 것. 그러나 이 소리소문없이 훌륭한 <부활>이란 드라마를 사람들은 눈여겨 보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김삼순>이 끝나자마자, 사람들은 <부활>에 몰입했다. 

 

이런 <부활>과 같은 경우는 사실 흔치는 않다. 대부분 작품이 좋으나 경쟁 상대가 너무 막강할 때, 배우진이 눈에 띄지 않을 때는, 그냥 15%~20%대에 안착하며 무난하게 막을 내린다. 그러나 이런 드라마는 마니아를 만들어낸다. 노희경의 <거짓말>, 인정옥의 <네멋대로 해라>, 김지우의 <부활>, 이경희의 <상두야 학교가자>, 김도우의 <눈사람>이 그런 예이다. 인정옥은 앞에서 말했던 대로 <아일랜드>에 가서 좀 사그러들었지만, 노희경은 <고독>이나 <꽃보다 아름다워>, 김지우는 <마왕>으로, 이경희는 <미안하다 사랑한다>로, 김도우는 <내이름은 김삼순>으로 후속 드라마에서 더욱 두터운 팬층을 흡수하며 대중적 작가로 거듭난다. 그들의 첫 디딤돌이 된 드라마가 바로 이러한 15%대의 마니아드라마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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