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명에 못 죽은 20대 여성들"
1/ 경찰청 통계 자료에 의하면 2008년 자살자의 수는 전년에 비해 1,000명 이상 줄어 2000년대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 2005년 이후 경제 불안으로 꾸준히 늘어났던 30~40대와 60대 이상 노년층 자살이 줄어든 덕분”이라 한다.(<제 명에 못 죽은 20대 여성들>, <한겨레> 2009.08.21) 자살과 ‘경기’의 원론적, 통계학적 연관성을 생각할 때, 이는 2008년에 경기가 좋아지거나, 양극화가 완화되었다는 뜻이다.
그러나 ‘상식적’으로는 이해하기 힘들다. 알다시피 2008년 하반기에 소위 ‘글로벌 경제 위기’가 닥쳐와서 ‘거품’이 여기저기 꺼졌고, 자살의 그야말로 ‘직접’ 원인이 되는 ‘부도’와 ‘해고’가 늘었기 때문이다. 또한 ‘양극화’가 완화되었다는 증거를 어디에서도 발견하기 어려우며 정부의 경제 정책은 이와 반대로 가고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최진실, 안재환 자살 사건 등으로 작년에 '자살'은 또 한번 한국사회를 보여주는 키워드가 되었다.
따라서 2008년에 자살이 준 것이 사실이라면 두 가지로 생각해볼 수 있다. 실제로는 ‘글로벌 경제 위기’가 한국사회의 하층에까지 미친 영향이 작았다는 것? 아니면 하반기에 주로 경제위기의 효과가 늦게 도달하여, 그 영향이 아직 2008년에는 나타나지 않았다는 것? 그렇다면 2009년 상반기에 자살률은 다시 급등할 것인가? 또는 노인복지가 확충되었다는 것?
2/ 지난 금요일 <한겨레>와 금주 월요일(8.24) MBC ‘오늘 아침’이라는 프로그램은 20대 여성 자살 문제를 다뤘다. 최근 한국의 20대 여성 자살률이 전체 성별ㆍ연령별 인구에서 가장 빨리 증가하고 있고, 20대는 “‘자살자’ 수가 남성보다 많은 유일한 세대”라는 것.(아래 <한겨레>기사 참조) ‘통계 미비’까지를 고려하면, 20대 여성 자살은 훨씬 실제 수가 많을 것이라는 점. 원래 10-20대 여성은 ‘자살 충동’을 가장 많이 느끼는 층이지만 실제 자살 행위나 자살 ‘성공’으로 이어지는 비율은 매우 낮으나, 이런 일반적 경향이 깨져 있다는 것.
<한겨레>의 해당 기사는 현재 20대 여성이 겪는 사회경제적 고난에 대해 잘 말하고 있다. 경제활동을 하는 여성 계층이 자살 확률이 낮다는 말도 주목할만하다. 전체 논지에 대부분 동의 가능하다. 그러나 “20대 여성의 경우 인생에서 가장 감정적인 영향을 많이 받는 시기이고, 일신상 겪게 되는 굵직한 변화들 때문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때여서 우울감 때문에 자살이 많은 것으로 짐작하기 쉽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자살은 심리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문제를 가장 극명하게 반영하는 지표라고 말한다. 20대 여성이 가장 사회적 약자이기 때문에 자살을 많이 하는 것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에는 쉽게 동의하기 어렵다. 이 ‘전문가’는 누군지 몰라도 이런 논지는 자살에 대한 경제환원론이라 할만하다.
첫째, 자살이 사회적 문제를 가장 극명하게 반영하는 지표라는 것은 맞지만, 자살은 개인에게 부과된 심리의 문제이기도 하다. 심리적, 기질적, 사회적 요인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자살은 일어난다. 물론 각 요인의 작용 범위와 힘은 서로 다르다.
둘째, 여성의 ‘자아’가 처하는 고난도 단지 취업과 경제적 문제만을 아닐 것이다. 한국의 이성애와 ‘젠더’ 상황, 여성 내부의 경쟁, ‘가족’과 ‘결혼’이 처한 여러 형태의 과도기적 양상 속에서, 그들의 자아는 ‘우울’에 빠져들고 있는 것이다. 또한 이런 ‘관계’들 속에서 20대 여성의 자아를 ‘지지(支持)’해주는 힘이 지극히 약화되어 있다는 점이 지적될 수 있겠다. 자살은 지지의 문제와 깊은 관련이 있다. 즉, 막연하거나 구체적인 자살 충동을 느낄 때, 혹은 자살행동의 심리적 원인이 되는 ‘고립감’에 휩싸여 있을 때, 그것을 제어하고 ‘위로’해줄 ‘관계’의 문제이기도 하다.
셋째, 위 기사에는 20대 여성이 ‘가장 사회적 약자’라는 말도 나온다. 이전에 여성학자 정희진이 ‘젊고 예쁘면 사회적 약자가 아니다’는 말을 했던 것이 기억난다. 자살은 분명 사회적 약자가 더 많이 하는 것이지만, 20대 여성은 왜 ‘사회적 약자’가 되나? 그들을 둘러싼 사회적 관계 때문에, 그리고 이들을 속박하는 ‘도덕’ 때문에, 그들이 가진 젊음과 건강 같은 자원에도 불구하고 약자가 되는 것일 테다. 이를테면 ‘지방 거주-하층-60대-남성’이 엄청나게 많이 자살한다. 이들이야말로 사회적 약자로서의 면모를 다 가지고 있다고 보인다.
이런 60대 노인 남자와 20대 여성이 ‘사회적 약자’로 존재하는 양상은 크게 다른 것일 테다. 한편으로는 20대 여성이야말로 가장 열심히 자아를 돌보고 가꾸고 관리하는 계층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자기 ‘계발’ ‘관리’ ‘돌봄’의 실패와 자살의 문제가 함께 읽혀야 하겠다. (이후 계속)
작성 : JH.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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