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보건소에 관하여 1
보건소가 전국민에게 백신을 무료로 접종해야 한다는 것에 대해, 보건소가 백신 부족하면 일반 병원에서도 싼가격에 의료보험 차원에서 제공되야 한다는 견해에 관하여 제가 다른 분야로 비유해 보겠습니다.

독서는 전 국민이 문화적으로 풍요한 삶을 위해, 인간다운 삶을 살고 존재로써 살아있음을 느끼고 사유하기 위해서, 살아가는데 필수적인 지식을 익히는데 꼭 필요한 생필품같은데, 왜 책은 공공도서관에서만 공짜로 빌려주고 서점가서 사려면 몇만원씩 비싼 돈을 내야하나요? 그나마도 도서관은 서울에나 많지 경기도만 나가도 도서관 몇개 없고 책을 빌리려면 한두권씩 밖에 없어서 몇달을 기다려야 빌려볼 수 있는건가요?

이왕 책 살거 도서관에 모든 책 몇십권씩 갖다놓고, 나라에서 지원금과 세금을 충당해서 모든 서점에서 공짜로 책을 볼 수 있게 해주면 안되나요?

왜 꼭 책의 저자들과 출판사들은 책을 사는데 있어서 치사하게 인세나 이익을 챙기려고 하나요? 돈 없으면 지식도 못 익히나요? 지식을 익힐 권리는 동등하게 있어야죠. 인세 대신에 나라에서 교육세 쪼금 지원해주어서 그것만 받으면 되죠 뭘.

아 그리고 공립 도서관가면 직원들 왜그리 나른하고 대충 갈켜주고 컴퓨터 검색해서 책 직접찾으라고 하더라구요. 일반 서점가면 빠릿빠릿하고 친절하게 잘 찾아주던데..

또는,

구청이나 시청, 공공기관 구내식당가서 밥먹으니 밥도 저렴하고 맛있던데 왜 구내식당은 몇개없고 그나마도 줄서서 기다리며 먹어야 하나요? 돈없으면 밥도 먹지 말아야 하나요? 먹는 것은 살아가는데 있어서 필수적인데 돈 없다고 차별하는건가요? 일반식당도 나라에서 지원해주어서 공공기관 구내식당처럼 싸게 해주면 안되나요?

그리고 구내식당은 왜 셀프서비스에 불친절하죠? 일반식당처럼 서빙해주고 친절하게 주문받아주면 좋을텐데.

물론 위의 도서관과 구내식당에 좋아지기 위해 세금(의료에서는 건강보험료)을 많이 내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세금은 지금이랑 똑같이 내고 책은 공짜로 안기다리고 보고싶고, 밥도 구내식당에서 안기다리며 먹고 서빙주면서 친절했으면 좋겠어요

 


4) 병원에서 만삭을 기피한다?
의료법상 의료인은 환자의 정당한 진료요구를 거절할 수 없습니다. 의료법에서 강제되어 있기에, 서울 압구정 한복판의 삐까번쩍한 몇십억 들여서 개업했을 법한 성형외과라도 단돈 2~3만원 들고 찢어진 상처 꼬매달라고 하면, 다른환자가 기다리고 있어서 바쁘지 않은 이상 꼬매줄 겁니다. 의료보험과 의료법의 힘이지요. 설령 의사는 그런 환자가 달갑지 않더라도 (몇십억 빚내서 개원해서 2~3만원내는 찢어진 상처가진 환자를 진료하게 되면 성형외과 입장에서는 적자입니다) 대충 진료해서 의료사고가 난다면 최소 몇백만원이상을 물어줘야 하기에 제대로 진료해줄 수 밖에 없습니다.

특히나 수도권은 의료인이 과포화인 상태이기 때문에, 자기 병원이나 의원에 오면 다들 친절로 무장되어 있지 꺼리거나 그러지 않습니니다. 기피하거나 불친절하면 바로 옆병원으로 가세요. 분명 옆병원은 친절할 것이고, 불친절한 곳은 몇년이내에 도태되서 망하거나 파산할 겁니다.

과연 내가 W호텔이나 조선호텔 신라호텔 레스토랑에 만원 들고 가서 한식 주방장 있으니 된장찌개나 떡볶이 만들어달라거나 해장국 만들어달라고 한다면 만들어 줄까요? 아니면 백화점 명품 매장가서 옷가게니까 3만원 이하로 티셔츠나 청바지 팔라고 떼쓰면 들어줄까요?

그러나 의료는 이게 가능합니다. 감기걸려서 아프면 제일 삐까뻔쩍한 병원들어가서 비보험 말고 의료보험대로만 진료해달라고 떼쓰시고, 안해주면 진료거부로 신고해버린다고 하면 다 진료해줄겁니다. 안해주면 바로 보건소나 보건복지부에 신고하세요.

 

 


5) 보건소에 관하여 2
보건소 의사가 나른하고, 성의없는 진료를 한다고 느끼시나요? 그 의사가 나쁜게 아니고 우리나라의 의료환경이 그렇게 만듭니다.

일본, 유럽, 미국등의 선진국 의사들은 하루 20명 내외만 봅니다. 일본의 의사들은 하루 30명을 보면 시간이 모자라고 지치고 피곤해서 저질 진료를 하게 될 수 밖에 없다라고 불평하지요.

그러나 우리나라 보건소에서는 평균적으로 의사한명당 하루 70명을 봅니다. 제가 있는 보건소의 예방접종실은 바쁠 때는 오전동안에만 150명의 환자를 보더군요. 왜 이렇게 많이 오냐면 주변 개인의원은 돈을 내야하는데 보건소는 공짜니까!

(여기서 다시, 왜 개인의원에서는 싸게 못해주냐구요? 우리나라에는 그렇게 해줄 건강보험재정이 없습니다. 충당하려면 전국민이 지금보다 건강보험 2~3배는 더 내야합니다. 그리고 아래 6번의 한국의료수가를 참고 바랍니다)

그리고 보건소에서 환자를 보면 별별 일이 많습니다. 독감예방접종시즌에는 예방접종 공짜라고 남의 신분증까지 들고 와서 2번맞고 가는 할아버지 할머니도 있고(할머니 할아버지들이 2번맞으면 좋은지 착각하더군요), 보건소 진료는 공짜라고 아프지도 않으면서 심심해서 물리치료 접수해서 받으려 오는 할머니 할아버지들도 있습니다. (아프다고 거짓말하고 물리치료 받으면 시간도 때우고 몸도 안마받는 것처럼 시원하거든요. 그리고 환자가 아프다고 거짓말해도 그게 진짜인지 가짜인지 판별은 불가능합니다. 원인불명의 통증도 다양하기에. 이학적 검사는 환자의 주관적인 증상에 의지할 수 밖에 없기에)

슬프게도 공짜(!)이기에 저렇게 악용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보건소에서 근무하는 입장에서는 한국의 국민의식은 아직 무상의료서비스를 제공하기에는 뒤떨어진다고 느낍니다. 최소한 단돈 500~1000원이라도 받아야 합니다. 본인부담금 500원만 받아도, 위에 적은대로 예방접종 2번맞는 어르신들이나, 물리치료 무작정 받으려는 환자들 팍 줄어들 겁니다.

(보건소에서 무료가 가능한 이유는 환자들이 내야할 본인부담금을 지자체에서 세금으로 대신 건강보험공단에 납부해주는 겁니다. 이런 제도 자체가 불법인가 아닌가  논란이 있는 방식입니다. 개인의원이나 대형병원에서 환자에게 본인부담금을 무료로 해주거나 덜 받으면 `환자유인행위`라고 해서 벌금과 함께 병원 영업이 정지되는 큰 처벌을 맞습니다.)

그러나 공짜로 해주다가 500원이라도 돈 받는다고 정책을 바꾸면 해당 지자체의 장은 유권자들의 비난을 바가지로 받을 거고 그 정당은 다음 선거에서 안 뽑아줄테니 다시 유료로 돌릴 수는 없죠. 인기영합주의 정책의 폐해입니다.

아무튼 공짜라 악용하는 얌체족때문에 다른 시민들이 더 기다려야 되고, 안그래도 부족한 백신은 더 빨리 줄어들죠.

지나가는 일화로 저와 같은 보건소에 있는 예방접종 담당의사분이 오전에만 100여명의 환자를 봄에도 친절하게 대해주려고 나름노력하는데 어떤 환자분이 의사가 진료중에 껌을 씹는다고 불쾌하다고 민원을 넣더군요. 참고로 그 의사분은 원래는 흡연자였는데 매일 아기들이 예방접종 맞으러 오니 아기들을 위해(!) 담배냄새 풍기지 않기 위해 금연을 하며 금연껌을 씹고 있었던 겁니다. 그리고 100여명의 예방접종 환자를 보고 있노라면 예방접종 기다리느라 짜증났다고 예방접종표를 의사에게 기분나쁘게 휙 던지는 아기엄마들이 보통 10명은 됩니다. 의사도 사람인데 그런 보호자 몇명 만나면 기분 확 상하죠. (대부분의 인간관계에서 사람은 자기가 타인에게 행하는 대로 대접받는 경우가 많습니다.)

또 아기의 질환으로 진료를 받고 싶으면 진료실 가서 접수표 끊고 기다리면 되는데, 2번 기다리기 귀찮으니 예방접종 맞으러 와서는 진료받듯이 이것저것 물어보는 엄마들도 있습니다. 간단한 것 몇가지야 의사분이 당연히 답해주지만 계속해서 물어보면 답해주기가 곤란합니다. 뒤에는 예방접종을 위해 수십명이 기다리고 있고, 예방접종실은 예방접종 업무가 주가 되고 바로옆에 진료실이 별도로 있는데도.. 계속해서 이것 저것 물어보는 얌체 엄마들에게 진료실가서 접수하고 진료받으세요 라고 하면 불친절하다며 신경질내고 나갑니다. 뒤에서 기다리는 수십명에 대한 배려는 전혀 없고 자신이 귀찮게 진료받으러 접수표 또 끊어야 한다는 사실에 기억속에는 그저 의사가 불친절하다만 남아 있는 경우도 있더라구요. 그 다음에 집에 가서는 보건소 불친절하다고 민원넣죠.

 


6) 한국의 의료수가
서울을 기준으로, 일반 개인의원에서도 우리나라 의료보험에서 주는 수가가 환자 한명당 1만원 근처로 너무 낮기에 하루 40~50명은 봐야 본전이 됩니다. 병원에서 건물주에게 주는 월세가 서울은 보통 300~400만원 할거고, 간호사 3명 한달 월급하면 500~600만원이 되고, 그외에 여러가지 운영비를 합치면 한달 운영비가 1200~1300만원 이상되는 개인의원이 많습니다.

환자 한명당 보험진료를 받을 시에 1만원이 개인 의원에 들어오는데, 한달 25일(주6일 근무) 근무한다고 치면 하루 48명의 환자를 보면 딱 손익분기점이 나오는군요.

요새 수도권은 대부분의 개인 병원은 평일에도 야간진료합니다. 그중 상당수는 정말로 적자 안보기 위해서입니다.

요새 머리 커트해도 2만원, 대리운전 30분만 가도 3만원, 심지어 구두수선비도 1.5만원이더군요. 근데 의료비는 환자부담금 4000원에 나라에서 주는 돈 8000원 포함해서 12000원입니다. 이런 수가 아래에서 환자의 아픈 마음의 상처까지 다 들어주면서 1시간 진료하는 의사는 로또가 되었거나 원래부터 몇십억 재산이 있어서 취미로 진료하는 의사일 겁니다.  

한국에서 양심적으로 환자를 꼼꼼히 보고 아픈 마음의 상처까지 다 들어가며 20명씩 진료를 하면 6개월 이내에 파산신청해야 합니다.

류마티스 질환으로 세계적 권위를 자랑하는 미국 펜실베니아 의과대학에서 수련을 받고 한국에 와서 개업한 의사분이 있습니다. 이분은 자신의 경력을 믿고 자신만만하게 개업한 뒤, 최고의 의료서비스를 제공한다는 마음가짐으로 미국에서 하던대로 환자 한명한명 30분이상 진료하다가 2년만에 병원 망하고 대학병원으로 들어가더군요. 환자 눈치껏 빨리 봐서 적자는 안나게 운영했어야 하는데, 이분은 자기 자부심때문에 소신진료하다가 망했다지요. 강남쪽에 개업했다가 지금은 H대학병원으로 들어가 계신다는군요.

5~10분동안 빨리 환자를 보나, 1시간동안 꼼꼼히 보나 나라에서는 무조건 만원내외 받아야 하는데 30분씩 진료하면 파산하는 지름길입니다.

그렇기에 대다수 의료인들이 의료보험의 강제적용이 안되는 피부미용, 비만, 성형에 하고싶어서 안달나는 현실이 벌어집니다.

이미 서울시에 있는 산부인과 절반이상이 출산이나 부인과 질환보다는 여성의 미용 비만 분야만 주로 보고 있습니다.

이런 현실을 타파하려면 국민들이 건강보험료를 지금보다 더 내야합니다. 그러나 그러면 온국민이 의료인들을 도둑놈이라 욕할거고, 건강보험료 인상을 단행한 정권은 국회의원 선거에서 참패하고, 욕 바가지로 먹겠지요.

 

 

* 글로 소통하기 때문에, 몇가지 오해도 생기는 것 같지만(말로 한다면, 글보다 더 뉘앙스의 차이라던지, 아니면 바로바로 상대방의 진의를 물을 수 있으니까 상대적으로 더 진의를 이해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글의 주고받음이 더 왕성해졌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이에 대한 답변 글도 조만간 작성해서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그 답변 글에 대한, 또 답변 글도 올릴 수 있었으면 의료계와 환자계(?) ㅋㅋ (물론 이를 대표하는 것은 전혀 아니고 그럴 마음도 없지만)가 서로의 상황과 불만과 애로사항을 더 잘 알게 되는 계기가 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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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mun 2009-09-21 11: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건소에는 누가 갈까를 썼던 인간인데요. 이 글을 보니 실제가 무엇인지를 파악할 수 있군요. 하지만 예방접종과 책이나 식당은 비교의 대상이 아닌 것 같아요. 모든 예방 접종을 무료로 하라는 것이 아니라, 적어도 보건소에서 무료로 실시하기로 지정한 네다섯 가지 (아무래도 우리나라 실정상 이미 최소한도로 제한했겠죠.)를 어디서나 저렴한 가격으로 받을 수 있도록 하면, 말씀하신 대로 보건소로 폭주하는 환자들을 분산할 수 있으니 효율적이지 않겠느냐는 것이죠. 굳이 드신 비유를 이용해 보자면, 예방접종은 원하는 지식을 모두 제공해주는 책이 아니라, 의무교육에서 지급되는 교과서 같은 것이 아닐까요?

실상은 2009-09-22 19: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보건소 친구께선 환자의 입장이 별로 안 되어보신 것 같군요. 의사는 진료 요구를 거부할 권리가 없죠. 하지만 환자가 진료받지 않을 권리까지 인정해주는 경우는 못 보았습니다.

굳이 제발로 병원 찾아갔으면 의사 지시를 따를 일이지 웬 말이 많냐,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환자에게 언제나 선택권과 결정권을 준다고 강변하겠지만, 강요된 선택, 불가항력적 결정이 얼마나 많은 줄 아십니까? 잘 몰라서, 의학 분야에서만큼은 내가 약자이기 때문에 무섭고 겁나서 그렇습니다.

의사 지시 안 따르다가 퇴원 압력 받고, 협박 받는 경우 부지기수로 봤습니다. 환자가 주인이 되지 못하는 이런 현실을 의사 자신들이 직시하지 않으면 참 암담하다고 봅니다..

보건소친구 2009-09-23 10: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의료인이 권하는 진료를 신뢰하지 못해서 안따르겠다면 퇴원하고 믿을만한 다른병원 가는게 맞는 것 같은데요.

의료인이 행하는 모든 진료에는 책임이 따릅니다. 환자분께서 어떤 시술이나 처방이 마음에 안든다고 이것은 받아들이고 저것은 안받아들이더라도,그 책임을 환자만 부담하는게 아니라 잘못되면 의사도 책임을 지게 됩니다. 제왕절개수술이 꼭 필요한 산모에게 수술을 권했더니 산모는 제왕절개가 안좋다는 말을 들어와서 산부인과 의사의 반복된 권유에도 불구하고 끝끝내 거부해서 자연분만중에 태아가 사망했을때, 의사도 일정부분 책임이 있기에 약 3000만원을 물어줘야한다고 판결이 나더군요.

의사가 권한 진료를 거부한 상태에서 병원에 계속 입원해있고, 그 상태에서 환자의 증상이 악화되거나 잘못되면 해당 주치의가 최선의 의료를 행하지 않았다고 해서 의료분쟁시에 책임을 지게 됩니다.(입원해 있는한 담당주치의는 배정되어 있으니까요) 환자입장에서도 믿지 못하고 납득이 가지 않는 진료를 권하는 병원에 왜 비싼 돈 내시며 입원해 계십니까? 퇴원절차밟고 신뢰가 가는 다른 병원으로 가셔야죠.

글쓴이 2009-09-23 11: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뭔가 계속 다른 말을 하시는군요. 몇 번 반복하지만, 특정 의료인이나 특정 병원을 신뢰하느냐 하지 않느냐는 문제와는 관계 없는 이야기입니다. 싫으면 떠나라? 왜 이 병원 다른 병원이 나옵니까? 만약 '의료계에 과잉진료는 전혀 없다'거나 '의사의 지시는 예외없이 타당하다'거나 이렇게 주장한다면 차라리 모르겠는데, 계속 꼬투리를 물고 늘어지고 있군요.
물어봅시다, '과잉진료'라는 말과 그 존재여부 자체에 대해서는 인정하십니까? 또 '환자주권'이라는 개념에 대해서는 인정하고 계신지요? 네이버 검색창에 '과잉진료', '환자주권' 이렇게 한번 쳐보시길 권해드립니다.
 

보건소에서 일하는 친구에게, '병원에 반대한다'라는 글을 읽고, 소감을 말해달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고맙게도, 친구가 장문의 글을 써 주었습니다. 아래부터는 인용하겠습니다.


경기도 모 보건소에서 근무중인 한 청년 :)

1) 김대중 대통령의 진료 및 기관절개에 관하여.
신촌세브란스병원에 김대중 전 대통령께서 입원하셨을 때, 대통령께서 받았던 진료는 초특급진료였을 것입니다..

일반환자가 입원하면 인턴이 정기적으로 환자상태를 체크 및 기본적인 시술등을 하고 입원한 과의 레지던트가 주치의로써 환자를 담당해서 진료기록부를 작성하고, 교수가 환자를 살펴보는 것은 오전에 5~10분 정도 정기회진을 통해서 잠깐 보는 것으로 끝났을 것입니다.

그러나 김대중 전 대통령이 입원했을 때는 인턴&레지던트는 김대중 대통령 주변에 다가가지도 못했을 것이며, 펠로우(전문의를 취득하고 교수가 되고 싶어서 병원에서 추가적으로 남아있는 전임의)가 인턴이 했을법한 기본적인 의료시술을 하고, 각분야별로 최고의 교수들이 주치의가 되어 수시로 상태를 살펴보고 각과의 주임교수가 일일히 김대중 대통령을 살폈을 겁니다. 그리고 김대중 대통령을 위해 관련분야의 모든 교수들이 모여서 오전 오후마다 회의를 열어서 할 수 있는 한에서 최고의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려 노력했을 것이란 추측이 드네요.

신촌 세브란스 병원 정도면 분야별로 세계적인 권위를 자랑하는 교수들이 한명씩을 있을 것입니다. 김대중 대통령이 받았던 여러가지 시술들은 이들이 여러차례 회의를 통해 신중히 결정했을 것이고..

즉, 김대중 전 대통령이 받았을 의료서비스는 세계정상수준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전문가의 결정은 존중해 줘야 합니다.. 최고의 전문가들이 과연 일반인도 알만큼 별 쓸모없이 도움도 안될 의료시술은 감히 전직 대통령에게 함부러 시술할 수 있을까요? 언론을 통해 전 국민에게 노출되고 이목이 집중된 상태에서? 당연히 진료에 있어서 극도로 안정적이고 조심스러웠겠죠.

기관절개가 필요한지 의문이라고 주장을 하려면 정당한 근거를 들어야 합니다. 자기 주변에서 일어난 한두번의 주관적인 경험은 결코 근거가 되지 못합니다.

노령 환자에게 기관절개가 필요없다고 주장하려면, 기관절개가 필요한 증상 및 질환을 가진 65살 이상의 환자에게 기관절개를 했을 때와 하지 않았을 때의 장기적인 생존률 및 증상호전도 비교데이터를 제시하고 그 결과 기관절개를 하지 않는 쪽이 생존률이 높다고 할때에 고령자는 기관절개를 하지 말아야 한다가 비로소 합당한 주장이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데이터가 있었다면 세브란스 병원 의료진들도 그분야의 전문가인 만큼 논문을 접해서 당연히 시행하지 않았겠지요.

나는 그 분야 잘 모르지만, 내가 대충 보기에 안좋아 보이니 전문가라도 그렇게는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비유를 해보자면 문학에 대해 문외한인 내가 어떤 특정한 문학적 기법이 사용된 유명하고 작품성 있는 작가 혹은 노벨문학상 수상작가의 시나 소설 한두편 읽어보고, 그런 문학적 기법은 영 별로다 라고 단정을 내려버리고, 소설과 시를 왜 그렇게 형편없이 쓰냐고 평가한다면, 문학인들은 황당하고 저를 무식하다고 비난하겠죠?

모든일은 역지사지입니다.

 

 


2)임산부 초음파 검사에 관하여.
초음파 검사는 그 누구도 강요하지 않습니다. 받기 싫으면 가서 안받으면 그만입니다. 산모를 병원에 강제로 입원시키고 싫다는 것을 억지로 묶어두고 초음파 검사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초음파 검사를 통해서 태아의 발육을 점검하고, 유산의 위험 예방,  선천기형여부를 감지해낼 수 있습니다. 검사는 정기적으로 해야합니다. 태아는 한주한주가 다르게 발육하는데 그럼 10개월에 1~2회만 검사하면 땡일까요? 매달 매달 체크해야 상태를 체계적으로 추적조사할 수 있습니다. 절대로 매달하는게 과잉진료가 아닙니다. 그리고 과잉진료라고 생각되면 본인이 병원안가면 끝이구요.

그리고 그러한 초음파 검사 몇만원이 비싸서 아까우며 과잉진료라는 뉘앙스는 산부인과 의사들이 들으면 분통터질 것 같다는 생각이듭니다. 산부인과 전문의는 태아검진지식을 익히기 위해 11년간 전문적인 교육을 받고, 1~2억을 호가하는 초음파 기계를 자기돈으로 사서 환자에게 검사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의대 교육 통한 지식을 익힘이 있어서, 초음파 진단기를 사는 것에 있어서 나라에서 1원 한푼 보태준 것 없이 대부분의 산부인과 의사는 자기 돈으로 기계를 사고 병원을 개업한합니다. (대부분 병원개원비와 진단장비 구입비는 은행에서 대출받아 빚으로써 마련함)

정말로 1~2억짜리 진단기를 사용해서 의사라는 전문인력이 전문적인 의료서비스를 제공해주는데에 몇만원이 비싸다고 느껴지나요? 미용실에서 여자들 머리 파마해주는 데에도 10~30만원 하고, 10ml도 안되는 에센스인가 뭔가하는 화장품도 10~20만원하던데..

게다가 산부인과 의사는 10만원쯤받고 초음파검사 (그나마 요새는 임산부 초음파 검사비 나라에서 조금 지원해준다고 하지만 그래도 1회당 받는돈 10만원 이하일겁니다)를 시행하지만, 만약에 의사의 부주의로 태아의 건강에 이상이 생긴다면 몇천만원을 물어줘야 합니다.

웨딩카를 탈때 모범택시운전기사가 2억짜리 벤츠 S-Class로 호텔까지 실어다 준다면 차 렌트비를 포함해서 얼마를 지급해야할까요? 분명 초음파 검진비보다 비쌀겁니다. 다시 생각해보세요. 1~2억짜리 초음파로 산부인과 전문의가 몇만원받고 태아 검진해주는게 비싸다고 생각하시나요?

아무튼 최근에는 산부인과는 수련을 받고자 하는 의사가 없어서 병원마다 산부인과 수련의 모집하면 미달이고, 수련받던 의사도 그 힘들고 고된 수련과정과 형편없는 대우때문에 중간에 포기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참고로 동물병원가서 강아지 분만비용이 30~50만원인데, 존엄한 인간의 아이 출산비는 나라에서 강제로 25만원 정도로 지정해놓았습니다. 물론 그러다가 역시 의료사고라도 생기면 몇천만원 물어줘야함.

전에 뉴스보니 강원도 삼척시인가 동해시에는 출산할 수 있는 산부인과 혹은 산부인과 병원이 없다더군요. 산부인과 의료수가가 지금처럼 계속된다면 십년후에는 분만할 병원 없는 도시가 부지기수로 생길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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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학이나 삶 2009-09-22 07: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에 대한 관점의 차이가 좀 있는 것 아닐까요? 기관절개를 꼭 해야만 했을까?라고 묻는 건, '삶의 질'과 관련된 문제이지 '삶의 양'과 관련된 이야기는 아니었을 거라고 생각되네요. 반면에 이 글을 쓰셨다는 '보건소 친구'분은 아마도 '생명연장', 삶의 양과 더 관련된 말씀이 아니었을까요? 각자 다른 거겠죠...어떤 게 '더' 옳다..고 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닌것같고..평생 환자나 환자 보호자의 입장만 될 수 있는 사람들이 보는 의학과, 의사의 입장이 다르겠죠.

핀트 2009-09-22 18: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전문가의 판단은 무조건 존중되어야 한다? 전 환자의 주권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지 소위 전문가의 전문성이니 하는 데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잘 알지도 못하구요. 왜 우리는 의사에게 전적으로 내 몸을 맡겨 놓고 내 몸에 대해 아무 이야기를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가, 그겁니다.

초음파 검사 안받으면 그만이라구요? 병원 지시 따르지 않는 산모 병원에서 받아주지도 않습니다. 5-6개월 혼자 애 품고 있다가 막상 만삭이 되어 병원에 찾아가면 내로라 하는 병원들 그동안 병원에 등록해서 관리 받지 않은 환자는 받아주지 않습니다. 이건 나 하나의 경험이 아닙니다.

많은 병원이 수지타산을 위해, 이윤창출을 위해, 또는 막강한 소위 '전문가 집단'의 의료 권력의 강화와 유지를 위해 과잉진료를 하고 있는 부분이 분명히 있으며, 그렇다면 그 부분에 대해서 우리가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운을 뗀 것입니다.

의사의 고충, 물론 의사라는 직업 자식한테 권할 만한 직업이 아닐 만큼 고되고 위험한 직업이라는 거 잘 압니다. 하지만 환자의 주권이라는 문제와 의사의 전문성이나 고충은 여기서 다른 문제입니다.

글쓴이 2009-09-22 19: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병원에 반대한다'는 글을 병원을 적극 옹호하는 어떤 이에게 '소감' 형식으로 또 '전문적으로' 반박당하는 일이 그리 상쾌하지 않습니다. 물론 열린 공간의 글에 대해 어떤 방식의 토론도 가능하긴 하겠지만, 좀 우습게도, 어떤 의사 지망생(?)에게 글의 전문성을 평가받는 것은 좀 싱겁군요. 몇 개 개인적인 사례를 놓고 어떤 조치가 필요하다 불필요하다를 어줍잖게 논하는 것이 글의 목적이 아닌데 말이죠. 글 청탁(?)시 논점에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내 아버지의 기관절개를 판단한 의료진의 전문성이나 판단력과 상관 없이, 우리 가족은 그것을 거부했어야 한다는 것이 내 요지입니다.

결국, 의사와 환자의 입장을 떠나서 환자 주권에 얼만큼 공감하느냐 여부의 문제라고 봅니다.

기인 2009-09-22 21: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 사실 글로서 토론하게 되면, 이런 경우들이 생기는데요. 몇가지 제 생각을 저도 지적해보도록 하겠습니다.
1. 의사 지망생(?)은 아니고, 현직 의사로서 의료계 입장에서 이 글을 어떻게 보는지, 특히 지금 보건소에서 일하고 있기 때문에 여러 문제점들을 평소에 많이 들어왔던 상황에서 글을 청탁하게 되었습니다.
2. 보다 생산적인 논의는, 글의 '논점'을 왜 다르게 파악하는가,라는 지점에 있는 것 같습니다. 독해력의 문제나, 악의로 치부할 것이 아니라, 어떤 글에서 '저자의 의도'와 다르게 읽어내지는 독자와의 지평이라는 지점이 정말 흥미롭습니다. 특히 이부분에서 흥미로운 것은,

기인 2009-09-22 21: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의료계' 독자가 글을 읽는데 있어서의 '과잉'지점들입니다. 즉, 의료계 독자는 일상에서 시달리는 일들과 걱정으로 말미암아, 글을 어떠한 방향성을 갖고 해석하게 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글쓴이께서는 논점이 '환자 주권'에 얼만큼 공감하느냐 여부라고 지적했지만, 독자는 그런 지점을 전혀 읽어내지 못(안)하게 된 까닭이 여기에 있는 것 같습니다. 즉, 두 쪽다 '방어적'으로 자신의 입장에서 사고하고, 글을 쓴다는 점. 여기에 '의료' 또는 '의사-환자' 관계의 특수성이 있는 것 같습니다.
우선, 환자는 아픈 상태에서 병원에 방문하기 때문에, 그리고 '의사'라는 전문가 권위 때문에 권력관계에서 하위에 처해 있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기인 2009-09-22 21: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따라서 글쓴이의 경우처럼, 어떠한 '불이익'을 얻을까봐 자신의 주장을, 권리를 확실히 주장하지 못하게 됩니다. 이를 '환자 주권'이라는 용어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반면에 의사들은, 그들이 계속 주장하는 것은 한국 의료계의 열악함과 건강보험료 시스템의 문제점입니다. 쉽게 요약하자면, 한국 의료계의 시스템은 의사들로 하여금 '과잉진료'거나 '최대한 빠른 진료' 중에 하나를 선택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즉 정부의 일방적인 의료수가 적용 때문에, '친절한 진료'를 하게 되면 손해가 나서 진료를 할 수 없다는 것. 그러니 '과잉진료'로 돈되는 것을 마구잡이로 요구하거나(물론 환자의 건강에 해가 될 정도는 아니고 가능성의 낮더라도 비싼 검사를 요구하는 등), 아니면 최대한 빠른 시간에 최대한 많은

기인 2009-09-22 21: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환자들을 보려고 노력하는 것일 터입니다.
이것이 '진료-치료'라는 상황 속에서, 한국의 환자와 의사들이 처해있는 '동상이몽'이라 할 수 있겠지요. 우선은 '환자'와 '의사'와의 만남이 필요한 것은 이러한 '동상이몽'적 상황을 드러내는데 의의가 있습니다.
그다음에는, 역시, 그러한 상황을 조성하는 제3의 역학 관계를 파악하는 것이겠지요. (물론 양자의 대화가 더 이어질수록, 서로에 대한 이해와 이기심, 양보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들이 드러날 것이라 생각합니다.)
제 생각에, 이 '제3의 역학 관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정부의 정책입니다. '환자의 주권'의 문제가, 의사들의 '싸가지'의 문제도 아니고, '환자들의 무지' 때문만

기인 2009-09-22 21: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도 아니라는 것을 드러낼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지점에 문제제기를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정부의 현 의료정책은, '누구'를 위해서, '무엇'을 최우선적 가치로, 재화들을 배분하고 있는가? 이 질문에 대한 대답 이후에, 우리는 우리의 현조건을 규정하고 제한하고 있는 것이 '최선의 악'인지, 아니면 개혁되어야 하는지를 따져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댓글이 길어지니 글이 안 올려져서 불가피하게 이렇게 댓글을 달았습니다.)

원글쓴이 2009-09-23 10: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정부의 정책이 환자와 의사로 대표되는 두 권력집단(?) 사이의 제3의 힘이 될 수 있다는 것은 별로 동의가 되지 않는군요.. 병원권력과 시스템은 이미 대자본에 속해 있습니다. 미국의 예를 보더라도 너무나 분명하지 않습니까? 제약회사, 보험회사, 병원 시스템 등을 포괄하는 넓은 의미의 의료 권력 커넥션은 정부를 아주 손쉽게 무력화시킵니다. 클린턴이 제1공약으로 내세웠던 바로 그 의료개혁, 결국 끝끝내 실패했습니다. 그런 의료개혁 문제를 오바마가 또 들고 나왔습니다. 미국의 고질적인 문제이니까요. 그런데 이번엔 과연 성공할 수 있을지 회의적인 시각이 많은 것도 그 때문이겠죠. 그리고 언젠가 우리도 미국처럼 되지 않으리라는 법도 없습니다.
문제가 의사의 싸가지도 환자의 무지 때문만도 아닌 것만은 맞지만, 핵심은 '돈'의 문제 돈을 둘러싼 문제라는 겁니다. 여기에 정부의 역할이 있다면 정부가 자본에 굴복하지 않을 수 있는가 하는 문제겠죠.

그리고 2009-09-23 11: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의사가 의사의 형편 또는 한국 의료현실을 개탄하면서 환자의 주권이라는 문제를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든 무시하는 것이, 또 그에 무지한 것이 어떤 점에서 흥미로운 독자의 지평인지 솔직히 의아하군요. 저도 악의는 없습니다만, 의사들은 자신들의 직업을 잘 수행하고 좋은 조건에서 일할 권리가 있는 만큼, 의료의 주체가 되어야 할 사람들에 대해 알아야 할 의무를 갖고 있습니다. 친절을 베풀고 도와야 하는 의무따위가 아니라, 최소한 알아야 할 의무 말이죠.
한국은 후진국이고 시스템이 열악하니 그에 맞는 서비스나 기대하라, 이런 문제도 아닙니다. 한국의 의료 자본은 엄청난 수준입니다. 환자들이 기대할 수 있는 서비스도 철저히 돈에 종속되어 있지요. 그나마 지불한 돈값이나 하면 다행인 경우가 허다합니다.

보건소친구 2009-09-24 00: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지불한 돈값이나 하면 다행이라구요? 나라에서 강제된 원가이하(의료시술하는데 필요한 재료비 이하로 책정된 수가도 비일비재합니다) 수가때문에 대형병원에서 미어터지게 환자보고도 적자가 나서 장례식장,주차장,매점으로 병원 적자 매우는 기형적인 구조가 현실입니다. 글쓴이님 글 읽다보면 그냥 답답해집니다.

기인 2009-09-24 10: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넵. 제가 '제3자'라고 했던 것, '정부'라고 하는 것은 그러한 자본과 결탁한 자본배분을 결정하는 심급을 의미한 것입니다. 그리고 물론 의사의 의무도 있고, 이를 모르고 있는 의사는 그렇게 많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도 현재와 같은 의사주체와 환자주체 사이의 불만과 충돌이 생기는 이유를 드러내게 해준다는 점에서 흥미로운 '독자 지평'이라는 점이죠. 지금도 서로 '답답'하다고 하는 것의 배후에는 어떠한 전제들이 있는가, 서로 충분히 공감못하는 지점들, 그리고 서로 다른 세계관들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이를 더 파헤치기 위해서, 서로 대화를 지속해나가야지요. :) 결국 서로의 '차이'를 이해하는데서, 소통이 출발할 수 있기 때문에, 대화는 '답답'하더라도 밀고나가야지요. ㅎㅎ

자꾸 2009-09-24 11: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말끝마다 수가 수가 하시는데, 참 그렇습니다. 그래서 병원 경영자 혹은 의사들과 병원 이용자 혹은 환자들은 참 평행선을 달려 나갑니다. 한국은 다른 나라에 비해 대체로 싼 값에 질 좋은 진료를 받을 수 있는 환경인 것은 맞습니다. 동네 병원들 가보면 누구나 느낄 수 있죠. 일단 동네병원들과 대형병원은 이야기를 달리 해야 합니다.

그리고 대형병원들이 적자를 억지로 메운다고 하는데, 환자들은 왜 맨날 의료비 때문에 허덕여야 합니까? 돈을 누가 중간에서 가로채나요? 문제는 그 언저리에 있겠죠. 왜 적자에 허덕이는지 일단 조사부터 해보시지요. 그게 미어터지는 환자 때문입니까? 돈 안내고 떵떵거리는 환자 때문입니까? 환자들이 정말 좋은 진료를 받고도 형편없이 싼 가격에 마음대로 의사와 병원을 '누리고' 있다고 생각하시는 건 아니겠지요? 환자들이 높은 부담을 지면서 '돈값 못한다'고 느끼는데, 거기서 말끝마다 수가 이야기가 왜 나오는지도 참 재미있군요. 병원이 적자라고 환자들은 그런 불평도 못합니까?

환자들은 각종 진료비 치료비 약값 등등에 의사 촌지까지 챙기느라 가산이 거덜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촌지 이야기는 다음 기회에 하겠습니다만, 아버지가 입원하니 친척 되시는 의사분께서 아예 대놓고 조언을 하시더이다. 주치의에게 인사(촌지) 좀 잘 챙기시라고. 물론 이건 의사들 일반에 대한 공격은 아니니 오해 마시기 바랍니다.
 

  
얼마 전 세상을 뜬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은 신촌의 대학병원에 입원해 있다가 그곳에서 세상을 하직하셨다.  

 

워낙 노령인지라 입원과 퇴원을 반복할 때만 해도, 혹시나 돌아가시려나 하고 긴장을 하긴 했지만, 그의 죽음이 임박했으리라는 실감은 갖지 못했었다.  

 

좀더 버틸 수 있을 거라는 막연한 기대감(?)도 있었고, 노인들은 으레 그러니까, 하는 생각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결국 마지막이 된 올해 7월의 입원 소식은 이전과는 달랐다. 입원한 지 일주일만에 그가 '기관절개수술을 받았다'는 것이다.  

 

병원측 말은 "장기간의 치료에 대비하기 위해서"였다는 것인데, 그가 기관절개술을 받았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나는 생각했다. '이제 더는 못 버티시겠구나', '곧 가시겠구나'.  

 

장기치료에 대비한다고는 했지만, 기관절개를 하는 상황이라는 것은 이미 되돌아오기 힘든 길을 가는 것과 다름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기관절개란, 입을 통해 관을 넣어(삽관) 인공호흡기를 부착하는 대신 목을 절개하여 구멍을 낸 뒤 직접 기도로 기계를 꽂아 인공호흡을 시도하는 것을 말한다.  

 

정말로 장기간의 치료가 필요할 경우 입을 통해 관을 넣어 놓는 것은 환자에게도 고통이고 관리도 불편하기에 흔하게 이루어지는 시술인 것은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병원을 수시로 들락거리며 악화일로를 걷고 있던 노령의 중환자에게 그 시술이 필요했는지는 의문이다.  

 

한번 절개한 기관을 다시 봉합하기 위해서는 완전히 자가호흡이 가능해져야 하는데, 장기 입원환자 또는 중환자의 경우 그런 호전을 기대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아흔을 바라보는 나이, 오늘이 될지 내일이 될지 알 수 없는 할아버지가 기관절개를 받아야 했던 상황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호흡이 점점 나빠지는 상황, 우선 입을 통해 삽관을 해 놓은 상황에서 의사들의 권고가 있었을 것이다. 기관절개가 불가피하다고.  

 

가족들은 갈등했을 것이다. 그것이 꼭 필요한 조치인지 어떤 것인지 판단할 능력도 여력도 없었을 것이 분명하다. 결국 의사 앞에서 무지하고 약한 가족들은 의사의 말을 따르는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

물론 기관절개를 통해 정말 효율적인 치료가 이루어져 상태가 호전될 수 있는 상황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을 것이고, 그렇게 해서 장기전으로 들어갔을 가능성도 있다.  

 

왜 없겠는가. 의사들의 전문성과 경험 그리고 오랫동안 축적된 노하우를 깡그리 부정하려는 것이 아니다.  

 

답답한 것은 그 어떤 상황에서도 환자 또는 환자의 가족이 주권을 행사할 수 없다는 점이다. 우리에게는 선택권이 애초에 없다.  

 

의사가 하라는 대로 시키는 대로 따라야 할 뿐이다. 의사가 검사 받으라면 받고, 먹으라면 먹고, 째라면 째야 한다. 

 

지금은 돌아가신 나의 아버지가 입원 중에 중환자실에 가야하는 상황이 생긴 적이 있었다.  

 

역시 기관절개를 권유받은 우리 가족들은 심하게 갈등했지만 결국 의사의 말에 ‘복종했다’.  

 

기관절개를 하지 않을 경우 중환자실에 보낼 수 없다는 둥, 절개를 하지 않아서 생기는 문제는 다 우리들 책임이라는 둥의 협박(?)도 등장했고, 나중에 반드시 다시 원상복구될 수 있으니 걱정 말라는 회유도 있었다.  

 

무엇보다도 우리에게는 어떤 선택이 옳은지 판단할 아무런 근거가 없었다.  

 

그래서 아버지 몸은 그 순간 신참 레지던트의 수련을 위해 쓰여졌다. 그리고 돌아가실 때까지 몇 년을 목에 구멍을 낸 채로 지내셔야 했다.

 

이는 과잉진료문제와 연결된다.  

 

세상이 꼭 필요한 일들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닌 것처럼 의료 현장에서도 종종 불필요하거나 잉여인 일들이 벌어질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그 잉여의 부분들이 지나치게 많거나 꼭 필요한 일인 양 둔갑한다는 데 있다.  

 

예를 들자면, 임산부가 매달 초음파 검사를 해야 하는 건 무엇 때문인가? 매달 병원에 올 것을 요구받고, 태아에게 매달 초음파를 쏘아 주며, 그에 매번 수만 원씩을 지불하는 것과 같은 일을 모든 임산부가 치러야 한다면 이를 과잉진료가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가?

내 아버지가 당한 일, DJ가 당한 일을 내 판단에는 과잉진료라고 본다.  

 

그때 왜 거부하지 못했을까, 수년이 지난 지금도 가끔씩 그 때 일이 잊히지 않는다. 아니라고 분명히 말했어야 한다고 지금껏 생각한다.  

 

이건 아니라고 생각하면서도 아니라고 도저히 말할 수 없는 그런 순간들을 왜 우리는 계속 반복해서 겪어야 하는 걸까. 

 

아니라고 말했어야 하는데 말하지 못했던, 그래서 앞으로는 아니라고 말해야겠다고 마음 먹은 일들에 대해 앞으로 써보려고 한다. (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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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인 2009-09-18 23: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대되는 주제이네요. 정말 이는 몸에 와닿는, 아프면 고민될 수 밖에 없는 주제인 것 같아요. 현대의학을 고발하는 관련 책들도 함께 소개해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 ㅎㅎ
 

나는 여러모로 기대가 별로 없는 사람이다. 특히 나라가 우릴 위해 뭘 해줄 거라는 기대는 거의 가져 본 적이 없다. 내가 다닌 공립학교들은 집에서 뭘 가져오라면 가져오라고 했지. 우릴 위해 뭔가를 마련해 준 적이 없었다.  

 

우리는 매달 집에서 폐품을 바리바리 날랐고, 조금 가져오면 선생님의 눈총과 잔소리를 들어야 했다. (다닥다닥 4남매인 우리집은 나름 풍족한 가정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황당하게 폐품이 모자라서 매달 눈치를 봐야했다.) 하여튼 달마다 무언가때문에 돈이나 쌀이나 기타 등등 가져오라는 게 많았다. 그 외에 국가랑 큰 관계를 맺어볼 기회가 없던 나로서는 그런 이미지가 쉽게 털어질리 만무했다. 

 

그런데 아이를 갖고는 보건소라는 곳이 생각보다 많은 것을 해준다는, 매우 놀라운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철분제도 주고, 유아용품도 줄 때도 있고, 초음파 검사도 해준다고 했다. 교육도 해주고, 심지어 아이를 낳은 뒤 도우미를 보내주기도 한다고 했다. 놀라웠다.  

 

하지만 보건의사는 7개월까지만 검사해주니 나머지는 병원가서 알아보라고 했다. (근데 일반 병원에서는 만삭의 산모가 오는 것을 매우 기피한다. 핑계는 그 이전까지 검사기록이 없기 때문이라는 것인데, 사실은 돈이 안 되니까 그렇다.) 고형의 철분제는 나중에 탈크가 나왔다는 뉴스를 들어야 했다. (뭐 보건소의 잘못은 아닐 수 있다.) 가사 도우미는 예산부족으로 끊겼다.(정권이 바뀌고 예산 편성의 방향이 많이 바뀌었다.)  

무엇보다도 보건소의 나른하고, 성의없는 진료에 신뢰가 가지 않았다. 초보엄마의 신경증이었을지도 몰랐다. 

 

아이를 낳고 나니, 예방접종을 무료로 해준단다. 아이가 나오고 처음에는 뭣도 모르고 한동안 병원을 다녔다. 사실 임신했을 때 갔었던 보건소의 분위기가 한 몫을 했다. 그런데 병원에 갈 때마다 몇 만원씩 깨졌다.  

 

아이가 돌이 지나고 이제 키우는데 정신적으로 여유가 생기니 돈이 아까웠다. 그래서 보건소 문을 두드려 보기로 했다. 그런데 어떤 것이 무료인지, 무슨 접종을 해주는지 몰라서 지식이 많은 친구들(지식인)에게 인터넷으로 상담을 했다. 결론은 각 구의 보건소마다 다르니 전화로 문의해 보는 것이 가장 빠르다는 것이었다. 

인터넷으로 우리 구 보건소를 들어가보니 바보같이 돈내고 맞춘 예방접종들이 무료로 가능하다고 쓰여 있었다. 이런 이런...마침 뇌염접종을 해야 하는데 병원의 이십분의 일에 가까운 가격이어서 '옳타꾸나'했다. 하지만 전화해 보니, 현재는 백신 수급이 원활하지 않아서 11월에나 전화해보고 오라고 한다.  

 

병원에는 사백신과 생백신으로 나누어 설명해주고 맞출 시기를 알려주었을 뿐 백신 수급에 대해서는 별 말은 없었었다. 보건소는 무슨 백신인지 알려주지도 않았고, 그 이전에 맞춘 예방접종과 얼마간의 차이를 두고 맞춰야 하는지도 알려주지 않았다.(아... 여전히 나른하고 무기력한 설명, 무지할 수록 아무 설명도 들을 수 없다. 내가 뭘 모르는지도 모르는 엄마들에게는 난감함의 연속이다.) 

 

전화를 끊고 나니 기분이 이상했다. 모든 국민이 맞아야 하는 예방접종이라면, 그러니까 꼭 맞춰야 하는 것이라서  보건소에서 접종하는 것이라면 왜 일반 병원에서도 싼 가격에 맞출 수 없는 것일까? 의료 보험의 차원에서 처리될 수는 없는 것일까? 그렇다면 수급때문에 복잡하게 접종시기를 늦추거나 할 필요가 없을텐데... 

 

그리고 무엇보다도 보건소의 업무부담이 줄어들지 않을까? 게다가 구마다 사람들이 걸릴 수 있는 질환이 다른 것도 아닌데, 무료 예방접종의 종류가 왜 다른 것일까? 우리 보건소에 수급이 부족하다는 그 백신이 다른 구 보건소에도 그럴까? 순간 출생신고를 하는 순간 몇 십만원을 쥐어 줬다는 어떤 구와 허접한 체온계를 쥐어준 우리 구가 떠올랐다. 

 

지자체에 반대하는 것은 아니지만, 보건소 업무까지 지자체의 예산편성을 따른다는 것은 좀 그렇다. 건강은 돈 없다고 참을 수 있는 것이 아니지 않은가? 

 

보건소에 가려면, 풍족한 예산 편성이 된 지역에 살면서, 보건소에 열심히 전화해서 일정을 맞출 수 있고 여유가 있어야 하는 것일까? 나는 너무 게으른 엄마일까? 갑자기 여러가지 의문과 자책과 불만에 휩싸이는 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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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
알랭 드 보통 지음, 정영목 옮김 / 이레 / 2005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알랭 드 보통의 이 책, <불안>을 산 건 인터넷 서점의 '반값할인'때문이었다.

나는 사랑에 고민중이던 친구들에게서 종종 알랭 드 보통의 다른 책 이야기를 들었지만,

그가 아무리 '촌철살인'하는 사랑에 대한 소설이나 에세이를 쓴다고 해도, 아니 그럴수록 전혀 궁금치 않았다.

그래서 한 권도 읽어보지 않았다.

그런데 이 책 <불안>은 사랑과는 관련이 없는, 인간의 욕망, 특히 지위에 관한 욕망과 공포를 다룬 에세이라길래

그동안 '소문'으로만 들었던 그의 '말발'이 궁금해서 사봤다.

 

책은 뭐...좀 뻔하고 흔한 이야기도 많아 대충대충 읽게 됐지만 대중적 교양서로서 나름 괜찮다고 생각된다.

('해법'의 하나로 '정치'를 들고 있는 점에서 마음에 들었다. 이 책은 그런 점에서 뭐든 '내탓이요'하라는 '자기치유서'류는 아니다.)

인간이 왜 더 높은 지위를 얻기 위해 발버둥치는지, 인정투쟁의 문제 등에 대한 원인분석과

이 과정에서 생겨난 인간의 '불안'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해결책이 가능한지를

자신의 박학한 상식들과 다양한 전거들을 들어 이야기하고 있는 책이다. 문장 편안하고, 글이 친절하다.

 

다음은 그 중 눈에 띄는 구절들 몇 가지.

----------------------------------------------------------------------

28쪽 '속물근성snobbery'이라는 말은 영국에서 1820년대에 처음으로 사용되었다. 이 말은 옥스퍼드와 케임브리지의 많은 대학의 시험 명단에서 일반 학생을 귀족 자제와 구별하기 위해 이름 옆에 sine nobilitate(이것을 줄인 말이 's.nob.'이다), 즉 작위가 없다고 적어놓는 관례에서 나왔다고 한다.

이 말은 처음에는 높은 지위를 갖지 못한 사람을 가리켰으나, 곧 근대적인 의미, 즉 거의 정반대의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 상대방에게 높은 지위가 없으면 불쾌해하는 사람을 가리키게 된 것이다. 어떤 사람을 속물이라고 말하는 것은 그 사람을 경멸하려는 의도를 가진다는 것, 즉 그 사람의 조롱받아 마땅한 매우 유감스러운 차별행위를 묘사하기 위해 그 말을 사용한다는 것 또한 분명해졌다. 이 문제에 대한 선구적인 작업인 <속물에 관한 책 Book of Snobs>(1848)에서 윌리엄 새커리는 25년간 속물이 "영국에 철도처럼 퍼져나갔으며, 이제는 해가 지지 않는 제국의 어디를 가나 발견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말 새로웠던 것은 속물근성이 아니라, 속물들의 그런 전통적인 차별행위를 이제 용납할 수 없는 것으로 여기게 된--적어도 새커리 같은 사람들에게는--평등 정신이었다.

29쪽 그 이후 노골적으로 사회적 또는 문화적 편견을 드러내는 모든 사람, 즉 어떤 한 종류의 사람이나 음악이나 와인이 다른 것보다 분명하게 낫다고 말하는 모든 사람을 속물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이런 식으로 이해하자면, 속물이란 하나의 가치 척도를 지나치게 떠벌이는 모든 사람을 가리킨다고 할 수 있다.

 

35쪽 이 문제를 이해하려다 보면 결국은 두려움이 모든 일의 근원이라는 느낌이 든다. 자신의 자리에 확신을 가지는 사람은 남들을 경시하는 것을 소일거리로 삼지 않는다. 오만 뒤에는 공포가 숨어 있다. 괴로운 열등감에 시달리는 사람만이 남에게 당신은 나를 상대할 만한 인물이 못 된다는 느낌을 심어주려고 기를 쓴다.

 

59쪽 데이비드 흄은 <인성론 A Treatise on Human Nature>(에든버러, 1739)에서 이렇게 말했다.


"질투심을 일으키는 것은 우리와 다른 사람들 사이의 커다란 불균형이 아니라 오히려 근접 상태다. 일반 병사는 상사나 상병에게 느끼는 것과 비교하면 장군에게는 질투심을 전혀 느끼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다. 뛰어난 작가 역시 평범한 삼류작가보다는 자신에게 좀더 접근한 작가들로부터 질투를 더 받는다. 불균형이 심하면 관계가 형성되지 않으며, 그 결과 우리에게서 먼 것과 우리 자신을 비교하지 않게 되거나 그런 비교의 결과로부터 영향을 받지 않게 된다."


281쪽 그러나 울프는 쉽게 입을 다물지 않았다. 그녀는 전형적인 정치적 전술을 구사하여, "도서관에 입장이 허용되지 않다니 나에게 무슨 문제가 있을까?" 하고 묻는 대신 "나를 들여보내지 않다니 도서관 문지기에게 무슨 문제가 있을까?" 하고 물었다. 관념이나 제도가 "자연스럽다"고 생각할 때는 고통의 책임을 아무에게도 묻지 못하거나 고통을 겪은 당사자에게 묻게 된다. 그러나 정치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우리가 아니라 관념이 문제일지도 모른다고 상상하게 된다. 수치감에 싸여 "나에게 무슨 문제가 있을까[여자라는 것일까/피부색이 검다는 것일까/돈이 없다는 것일까]?"하고 묻는 대신 "나른 비난하다니 다른 사람들이 틀렸거나, 부당하거나, 비논리적인 것이 아닐까?" 하고 묻게 된다. 이것은 자신의 무죄에 대한 확신에서 나오는 질문이 아니라, 자연주의적인 관점이 이야기하는 것과는 달리 제도, 관념, 법은 어리석고 편파적이라는 인식에서 나오는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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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인 2009-09-17 16: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 이건 창작블로그 연재에는 안 올려진 것 같은데요; 어쨌든 좋은글 추천하고 갑니다 ㅎㅎ

somun 2009-09-18 07:45   좋아요 0 | URL
땡큐..왠지 창작블로그에 올릴만큼 완결된 글은 아니라서리...이런건 그냥 서재지수를 위해 올릴라고(새롭게 알게 된 사실인데, 창작블로그에 올리는 글은 <마이리뷰>에서는 작성이 불가능하네. 창작블로그에 올리려면 <마이페이퍼>에서만 써야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