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여러모로 기대가 별로 없는 사람이다. 특히 나라가 우릴 위해 뭘 해줄 거라는 기대는 거의 가져 본 적이 없다. 내가 다닌 공립학교들은 집에서 뭘 가져오라면 가져오라고 했지. 우릴 위해 뭔가를 마련해 준 적이 없었다.  

 

우리는 매달 집에서 폐품을 바리바리 날랐고, 조금 가져오면 선생님의 눈총과 잔소리를 들어야 했다. (다닥다닥 4남매인 우리집은 나름 풍족한 가정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황당하게 폐품이 모자라서 매달 눈치를 봐야했다.) 하여튼 달마다 무언가때문에 돈이나 쌀이나 기타 등등 가져오라는 게 많았다. 그 외에 국가랑 큰 관계를 맺어볼 기회가 없던 나로서는 그런 이미지가 쉽게 털어질리 만무했다. 

 

그런데 아이를 갖고는 보건소라는 곳이 생각보다 많은 것을 해준다는, 매우 놀라운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철분제도 주고, 유아용품도 줄 때도 있고, 초음파 검사도 해준다고 했다. 교육도 해주고, 심지어 아이를 낳은 뒤 도우미를 보내주기도 한다고 했다. 놀라웠다.  

 

하지만 보건의사는 7개월까지만 검사해주니 나머지는 병원가서 알아보라고 했다. (근데 일반 병원에서는 만삭의 산모가 오는 것을 매우 기피한다. 핑계는 그 이전까지 검사기록이 없기 때문이라는 것인데, 사실은 돈이 안 되니까 그렇다.) 고형의 철분제는 나중에 탈크가 나왔다는 뉴스를 들어야 했다. (뭐 보건소의 잘못은 아닐 수 있다.) 가사 도우미는 예산부족으로 끊겼다.(정권이 바뀌고 예산 편성의 방향이 많이 바뀌었다.)  

무엇보다도 보건소의 나른하고, 성의없는 진료에 신뢰가 가지 않았다. 초보엄마의 신경증이었을지도 몰랐다. 

 

아이를 낳고 나니, 예방접종을 무료로 해준단다. 아이가 나오고 처음에는 뭣도 모르고 한동안 병원을 다녔다. 사실 임신했을 때 갔었던 보건소의 분위기가 한 몫을 했다. 그런데 병원에 갈 때마다 몇 만원씩 깨졌다.  

 

아이가 돌이 지나고 이제 키우는데 정신적으로 여유가 생기니 돈이 아까웠다. 그래서 보건소 문을 두드려 보기로 했다. 그런데 어떤 것이 무료인지, 무슨 접종을 해주는지 몰라서 지식이 많은 친구들(지식인)에게 인터넷으로 상담을 했다. 결론은 각 구의 보건소마다 다르니 전화로 문의해 보는 것이 가장 빠르다는 것이었다. 

인터넷으로 우리 구 보건소를 들어가보니 바보같이 돈내고 맞춘 예방접종들이 무료로 가능하다고 쓰여 있었다. 이런 이런...마침 뇌염접종을 해야 하는데 병원의 이십분의 일에 가까운 가격이어서 '옳타꾸나'했다. 하지만 전화해 보니, 현재는 백신 수급이 원활하지 않아서 11월에나 전화해보고 오라고 한다.  

 

병원에는 사백신과 생백신으로 나누어 설명해주고 맞출 시기를 알려주었을 뿐 백신 수급에 대해서는 별 말은 없었었다. 보건소는 무슨 백신인지 알려주지도 않았고, 그 이전에 맞춘 예방접종과 얼마간의 차이를 두고 맞춰야 하는지도 알려주지 않았다.(아... 여전히 나른하고 무기력한 설명, 무지할 수록 아무 설명도 들을 수 없다. 내가 뭘 모르는지도 모르는 엄마들에게는 난감함의 연속이다.) 

 

전화를 끊고 나니 기분이 이상했다. 모든 국민이 맞아야 하는 예방접종이라면, 그러니까 꼭 맞춰야 하는 것이라서  보건소에서 접종하는 것이라면 왜 일반 병원에서도 싼 가격에 맞출 수 없는 것일까? 의료 보험의 차원에서 처리될 수는 없는 것일까? 그렇다면 수급때문에 복잡하게 접종시기를 늦추거나 할 필요가 없을텐데... 

 

그리고 무엇보다도 보건소의 업무부담이 줄어들지 않을까? 게다가 구마다 사람들이 걸릴 수 있는 질환이 다른 것도 아닌데, 무료 예방접종의 종류가 왜 다른 것일까? 우리 보건소에 수급이 부족하다는 그 백신이 다른 구 보건소에도 그럴까? 순간 출생신고를 하는 순간 몇 십만원을 쥐어 줬다는 어떤 구와 허접한 체온계를 쥐어준 우리 구가 떠올랐다. 

 

지자체에 반대하는 것은 아니지만, 보건소 업무까지 지자체의 예산편성을 따른다는 것은 좀 그렇다. 건강은 돈 없다고 참을 수 있는 것이 아니지 않은가? 

 

보건소에 가려면, 풍족한 예산 편성이 된 지역에 살면서, 보건소에 열심히 전화해서 일정을 맞출 수 있고 여유가 있어야 하는 것일까? 나는 너무 게으른 엄마일까? 갑자기 여러가지 의문과 자책과 불만에 휩싸이는 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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