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책쟁이들>을 읽고 리뷰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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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책쟁이들 - 대한민국 책 고수들의 비범한 독서 편력
임종업 지음 / 청림출판 / 2009년 9월
평점 :
품절
전 연예인들이 참으로 부럽습니다. 그들에게 주어진 명예나 돈도 탐나긴 하지만 정말 탐나는 것은, 그들은 드라마에서 주어진 역할을 통해 또 다른 인생을 살아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흔히 인생에는 리허설이 없다고들 하는데 그들의 인생은 리허설 천지인 듯 싶습니다. 열정적인 사랑을 나누는 연인으로 때로는 넘치는 스릴감을 즐기는 스파이로, 때로는 엄청난 모험을 즐기는 도둑으로, 시한부생을 살아가는 환자로, 또는 입으로 담기 힘들 만큼 천박한 요부로도 살아보며 이미 사라지고 없는 과거 역사 속의 인물로도 살아보니 말입니다. 내 삶의 주인이 나인 것은 분명하지만 나에게는 그들만큼 다양한 역할이 주어지지 않는 것이 못내 서운하기만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나에게 책읽기란 그러한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는 간접적인 창구입니다. 요즘 이런 나의 눈에 책과 관련된 제목이 심심치 않게 눈에 띕니다. ‘순례자의 책(김이경)’, ‘책의 세계(강유원)’, ‘탐독(이정우)’, ‘세상은 한 권의 책이었다(소피 카사뉴-브루케)’, ‘서재 결혼시키기(앤 패디먼)’, ‘내 인생을 바꾼 한 권의 책(게이 핸드릭스, 잭 캔필드)’, ‘한국의 책쟁이들’에 이르기까지. 요즘 출판계의 트랜드라고 해야 할까요? 아님 뭔가 음모이론이 있는 것일까요? 여튼 책을 좋아하는 저로서는 많은 책들이 쏟아져 나오는 것이 기쁘기만 합니다. 물론 마음에 드는 내용도 있었고, 실망스러운 책도 있었지만, 여튼 같은 취미(?)를 가진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기쁜 일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이번에 읽은 책은 ‘한국의 책쟁이들’입니다. 책 때문에 아파트가 무너질까 걱정하는 인물에서 책을 통해 세상을 만나는 사람들, 또는 책으로 만든 세상 속에서 침잠하는 연구자들까지 참으로 많은 고수들이 등장하는 이야기였습니다.
책은 총 5부작으로 나뉘어 있는데 1부에서는 ‘꿈꾸는 자들의 책’에 대한 내용이었습니다. 이곳에서 책을 통해 욕망에 이르고 있는 ‘성수선’씨를 보면서는 설레었고, 만화를 통해 세상과 소통하다 결국 만화 때문에 세상과 격절하게 된 만화 마니아 ‘박지수’의 이야기에서는 씁쓸함을 감출 수 없었습니다. 좋아하는 일만을 하고 살아가기에는 사람들에게 주어진 일이 너무나 무겁기만 하니 말입니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과 해야만 하는 일과 하고 있는 일이 일치하는 이들이 그리 많지 않은 것이 현실이니까요.
2부는 ‘사람을 읽다 책을 살다’라는 내용으로 묶여 있었습니다. 그 중 저의 눈길을 끄는 사람은 다름 아닌 책 중간상 김창기씨였습니다. 그는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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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물건이다. 그 물건은 펼쳐져 읽힐 때 책이 된다. 마지막 장이 덮이면 책은 다시 물건이 된다. 책이 책됨은 무척 짧다. 책은, 책으로서보다 책이 되려는 기다림으로 존재한다. 책은 곧 그러함일 터이다.”(p117-책 중간상 김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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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욕심이 많은 저로서는 많은 생각을 하게끔 하는 말입니다. 물론 그가 책 중간상이기에 더욱 저러한 생각을 했을지 모르나 책에 대한 집착이 넘치는 이즈음의 저를 다시 한 번 돌아보게끔 했다고나 할까요? 저에게 속한 책들이 물건이 아닌 책이 될 수 있도록 저만의 방법을 강구해야 할 듯 합니다.
3부는 “배움의 즐거움”입니다. 이 장에서는 종이에 인쇄된 활자만이 아니라 세상사 모든 것이 책이라는 가르침이 고수들의 입을 통해 흘러나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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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따로 있는 게 아니더군요. 저자거리가 책이고 사람들이 책이었어요.(p159-목재상 김태석)"
“앉아서 책읽기보다는 골목에서 뛰어노는 게 낫습니다. 삶은 상상이 아니라 몸으로 살기 때문이죠.(p183-재밌는 글쓰기․책읽기 가르치는 선생님 윤태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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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부는 “진리를 찾아서”라는 내용으로, 5부는 “사회를 생각한다”라는 내용으로 묶여 있었는데 솔직히 앞 부분보다는 전문가들의 전문적인 이야기와 웅대한 이야기가 많아 끼어들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냥 세상에는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해 나가는 사람들이 참 많다는 사실을 또 한 번 알게 되었고, 그들이 있기에 세상이 이렇게나마 굴러간다는 생각이 들어 숙연한 느낌마저 들었습니다.
세상은 요즘 책 읽히기에 여념이 없습니다. 70년대 새마을 운동처럼 일사불란하게 다들 “읽자, 읽히자”라며 난리입니다. 책 속에 길이 있고, 책 속에 밥이 있고, 책 속에 모든 것 다 있다고 합니다. 청소년의 미래를 위해 책을 읽어야 한다는 것이 어쩌다 논술이 되어 논술 준비 책이 따로 마련되고, 직장인들을 위한 처세술과 외국어 관련 책이 널려있는 세상, 모든 독자들을 돈방석에 앉히고자 미친 듯이 팔리는 경제 관련 책들이 넘쳐나는 현실입니다. 부자 아빠가 되어야 하고 88만원 세대를 양산한 시대에 분괴해야 하는 세상. 인기를 끄는 드라마의 원작을 읽기에 바쁜 사람들. 늘 베스트셀러가 나오고, 스테디셀러가 있는 시대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책을 읽는 사람들은 읽고 읽지 않는 사람들은 읽지 않는 현실입니다. 그럼 정말 책만 읽는다면 이 세상의 모든 일이 술술 풀리는 것일까요?
글쎄요. 이건 참 어려운 문제입니다. 책쟁이 고수들도 말합니다. 책보다는 세상살이가 더 소중한 가르침을 준다고 말이지요. 사람은 한 권의 책이라고들 하지 않습니까? 어떤 이는 책으로 세상을 보고, 또 다른 이는 사람을 통해 세상을 보며, 또 여타의 사람들은 자연을 통해 세상을 보면 되지 않을까요? 굳이 책일 필요는 없을 듯 합니다. 다만 초보 독자인 저로서는 책이 소통의 창구가 될 수 있을 듯 하다고 조심스럽게 말씀드려봅니다. 우리가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는 똑똑한 척 하기 위해서도 아니고, 성공하기 위해서도 아니며, 그럴 듯한 지위를 위해서도 아닙니다. 그것은 바로 서로의 목소리에 귀기울이는 방법을 배우기 위해서인 듯 합니다. 서로의 주장만 내세우며 악다구니를 떨지 않기 위해서 잠시 입을 닫고 눈을 열어 책을 읽다 보면 어느 새 서로의 목소리에 귀를 열지 않을까요? 입보다는 귀가 먼저인 세상, 눈이 보배인 세상은 참으로 조용하고 평화로울 것 같습니다.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랍니다. 독서의 계절을 정해서 독서를 시켜야 할 만큼 우리 사회가 책을 천대하고 있기에 만들어진 말인 것만 같아 입맛이 씁쓸하기만 합니다. 독서에 좋은 계절이라면 놀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요. 따뜻한 봄에도 더운 여름에도 선선한 가을에도 차가운 겨울에도 다 나름의 장점이 있는 계절인 만큼 각 계절 뿐 아니라 각 시간별로 즐길 수 있는 독서를 나름 만들어 가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 책의 필자가 말합니다. “돈과 이름값에 오로지 미친 세상에서 책에 미친 미련퉁이들이 있어 더불어 살 만하다.”고 말입니다. 정말 백배 공감입니다. 약삭 빠른 이들이 외치는 무엇을 위한 책읽기가 아닌 책 자체가 목적이고 과정이었으면 좋겠습니다. 목적 없는 글읽기가 생활화되는 세상을 꿈꿔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