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에 빠진 아이 구하기 - 어떻게 세계의 절반을 가난으로부터 구할 것인가
피터 싱어 지음, 함규진 옮김 / 산책자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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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구호활동을 전문으로 하는 모 국내 단체에 매달 소액 기부한 것이 삼 년째에 접어들었다. 말하기도 민망한 액수지만 꾸준히 끊지 않고 하는 일이 누군가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된다는 생각으로 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내가 충분히 먹고 살고 있고 넉넉하지는 않지만 하고 싶은 것과 사고 싶은 것을 살 수 있는 능력이 된다고 믿고 있다. 그래서 정말로 하고 싶어도 몸이 불편하거나 주변 환경 때문에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매일을 고통 속에서 사는 사람들을 내가 도와야 한다고 믿는 편이다. 하지만 이런 ‘믿음‘을 제대로 ’실천’하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여러 곳에서 도움이 필요한 상황에서 어디에다 어떻게 내가 가진 돈을 주어야 할지는 항상 의문스럽다. 티브이에서 나오는 병든 아이를 배경으로 전화한통으로 1000원씩 기부되는 현황이 중계되는 장면은 뭔가 인간적이지 못한 느낌이다. 그리고 그 프로그램의 제작비와 촬영비, 기타경비 등을 제외하면 어느 정도나 그 아이에게 제대로 전달될까 하는 의심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 그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된다면 비판의 여지는 없다.


98년 국가 환란의 돌파구로 홍보된 금모으기 행사 때 ‘가진자’들의 책임을 ‘가지지 못한 자’들이 대신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털렸다’는 느낌을 가진 이후로 정부에서 하는 모금행사에는 손이 가지 않는다. 베스트셀러 작가인 한비야씨의 책을 읽고 그녀가 소속되어 있었던 월드비전에 기부하고 싶다는 마음은 가지고 있었으나 그것도 차일피일 일 핑계로 미루어온 것이 오래되었다. 남들의 위기에 처한 삶보다 나와 내 안위가 더 우선에 있기 때문일 것이다.



돈을 많이 벌면 기부할 거야. 불쌍한 사람들 도우며 살면 얼마나 좋을까. 처와 가끔 불쌍한 이들의 이야기를 보거나 듣고는 하는 말이다. 하지만 이는 현실성이 떨어진다. 돈을 그리 많이 벌고 싶은 마음이 없거니와 정말 남을 돕기 위해 돈을 벌수 있을까? 과연 내가, 우리가 그런 마음으로 현실에 뛰어들 자세가 되어 있을까?


역시나 나의 삶은 올바르지 않았다. 세끼를 꼬박 챙겨먹고 가끔 외식을 하며 좋아하는 책과 영화를 사서보고 여름휴가를 가서 즐길 수 있는 처지에 당장 옆에서 돈이 없어서 굶거나, 아픔을 견디지 못해 죽어가거나, 주사를 맞지 못해서 병에 걸리는 예쁜 아이들을 제대로 도와오지 못했다.


당신은? 당신은 기부하는가.


아프리카로 대표되는 헐벗은 사람들. 우리는 주기적으로 미디어를 통해 가난 때문에 죽어가는 아이들을 접하고 있다. 그들은 아무 죄도 없이 태어난 환경부터 고통의 시작이다. 그저 먹을 것을 구하지 못해서, 예방주사를 맞지 못해서, 모기장을 살 돈이 없어서 그들은 그렇게 힘없이 생을 마감한다. 그들을 위해 우리가 하는 것이라고는 순간의 동정심을 발휘해서 마음으로만 멀리서 위로하는 것뿐이다.


기부해야 한다. 죽어가는 아이들을 살리기 위해, 그들이 지속적으로 최소한의 생계를 꾸려나갈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그러지 않는다. 왜? 왜 우리는 우리가 술을 마시거나, 차를 바꾸거나, 해외여행을 가거나, 과자를 사먹거나, 핸드폰을 바꾸거나 하는데 들이는 돈의 일부라도 그들의 삶을 찾아주는데 쓰기를 주저하는 것인가.


당신 앞에 물에 빠진 아이가 있다. 중대한 계약을 위해서 또는 가족과의 일 년만의 약속을 위해 시간을 다투며 길을 가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곧 빠져 죽을 것 같은 아이가 보였다. 어떻게 해야 하는가. 옷이 젖을까봐. 양말과 새로산 구두가 머릿속에 떠오르고 차를 그냥 두고 달려가면 누군가 훔쳐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머리를 어지럽힌다. 하지만, 아마 그냥 못 본체 하고 지나치는 인간은 거의 없다. 누구든지 주저하지 않고 구하러 뛰어 들 것이다.


우리는 지속적으로 ‘물에 빠진 아이들’을 접하고 있다. 돈이 없어서 매일 한 끼밖에 먹지 못하는 아이가 아니라, 태어나서 한 끼도 제대로 먹지 못하는 아이들. 천원의 주사를 맞지 못해서 병에 걸리는 아이들. 그들은 하루 천원이면 적어도 삶을 이어갈 수 있게 된다. 그들을 위해서 선진국의 국민들이 각자 1달러씩 기부만 해도 지금 죽어가는 아이들의 대부분을 살릴 수 있다고 한다. 그런데 왜 그렇게 하지 않고 있는 것일까. 당장 해야 한다.


하지만, 너무 급진적인 논리로 기부하지 않는 사람들을 압박해서는 안 된다.


“누구나 다른 견해를 가질 수 있으며 각자의 신념대로 행동할 수 있다. 우리는 돈을 벌기 위해 일했고, 그 돈을 마음대로 쓸 권리가 있다. 우리가 아무런 잘못도 저지르지 않은 사람들에 대해서 어떤 보편적인 의무를 갖는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세금에서 일부의 돈이 대외 원조로 나가고 있다. 또한, 일방적 원조는 의존하는 습관을 들이게 한다.”


이러한 생각들이 우리를 기부로부터 멀어지게 한다. 그리고 꽤 설득력이 있다고 믿고 있어서 마음속에서 거의 흔들리지 않을 정도다.


그러나 이는 핑계일 뿐이다. 그들의 처지는 우리가 이런 의논하는 것조차 사치일 정도로 훨씬 절박한 상태이다. 그저 그들에게 생명을 유지할 수 있는 기회를 주자는 것인데 그런 기회를 내가 벌어들이는 돈의 일부로 주자는 것은 선한일이며 오히려 알면서도 주지 않는 것이 ‘악’이 될 수 있다는 주장은 설득력을 가진다.


그 어느 단체나 과거의 대부호들보다 많은 기부를 하고 있는 빌게이츠나 워렌버핏 같은 ‘의식 있는’ 부자들은 수입의 1%의 기부로 온갖 생색을 내고 다니는 일부 부자들에 비한다면 칭찬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그들은 그런 돈을 기부하고도 여전히 여유 있는 삶을 누릴 수 있으며 당장 자동차 할부금과 집 대출 이자를 갚는데 급급한 서민들하고 비교할 수 없다.


서민은 기부할 수 없다. 자동차 할부금에 집 대출 이자를 갚아야 하고 아이들 학원비를 대기에도 빡빡해서 마이너스 통장의 지출이 늘어간다. 휴가비와 주변의 관혼상제가 차지하는 비용등도 벅차다. 하지만, 나는 먹고 산다. 굶지 않고 있고 예방주사도 꼬박꼬박 맞으며 무엇보다도 물을 길으러 십리길을 걸어 다니는 일은 해본적도, 그런 일을 하는 주변사람을 본적도 없다. 그러니 색이 바랜 티셔츠를 몇 달 더 입고 그 돈을 학교도 못다니는 아이를 위해 기부하는 것은 불가능하지 않다.


그럼 어떻게 기부할 것인가. 저자는 본인의 수익을 어떻게 써야 할지에 대한 계획을 세우고 유흥과 오락을 위해 쓰이는 돈, 더 써도 되는 물건을 바꾸는 일에 쓰이는 돈 등을 무조건 기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를 위해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기업체나 국가차원에서 개인 소득의 일부를 기부액으로 미리 설정해 놓는 것도 한 방법이라 한다. (오스트리아는 기부를 Default로 한다) 개인이 그 기부설정을 거부신청하지 않으면 자동적으로 기부액으로 나간다는 이야기이다. 당연히 그 기부의 비율은 구성원들의 동의를 통해 정해져야 한다.


옆집아이가 물에 빠졌는데 나 몰라라 할 인간은 없다. 먹고사는 데에 더 이상 급급하지 않은 ‘선진국’의 개인으로서 책임을 강조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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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과 재 동문선 현대신서 41
아티크 라히미 지음, 김주경 옮김 / 동문선 / 200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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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로 한쪽에 노인과 아이가 앉아 있다. 아이는 할아버지를 계속 귀찮게 한다. 그리고 이것저것 주문한다. 노인이 사과를 꺼낸다. 앞니 없는 아이가 사과를 깨물어 먹는 것이 힘겹다. 노인은 칼을 꺼내 사과를 자르고 다시 손자에게 준다.


군용트럭이 지나간다. 먼지가 자욱이 내려앉는다. 사과위에도…….사과를 손으로 덮어서 감싸자 아이는 하지 말라며 손을 잡아끈다. 먼지가 앉는다고 이야기 해봐야 소용없다. 아이는 자기가 하고 싶은 말만 하고 있을 뿐이다.


노인은 아들을 만나러 가기위에 기에 있다. 언제 지나갈지 모르는 버스를 기다리면서 손자와 함께 있는 것이다. 다리 옆의 건널목을 지키는 사내에게 차가 오면 알려달라고 신신당부한다. 초소를 지키는 이는 신경질 적이다. 노인은 쩔쩔 매면서도 꼭 차를 놓치지 않으려는 듯 같은 말을 반복한다.


노인의 가족은 다 죽었다. 전쟁의 폭격으로 무너진 건물더미와 폭격의 화염에 휩싸여 죽었다. 노인은 살아남은 자의 슬픔을 한탄하며 손자를 바라본다. 손자는 운이 좋아 살았으나 폭발음으로 청각을 잃었다. 노인은 발가벗은 며느리가 폭발의 화염 속에 찢겨 죽는 것을 목격하고 말았다.


물을 얻기 위해 갔던 가겟집 주인은 무척 온화하고 이해심이 많았다. 무엇보다도 남의 이야기를 들어줄 줄 알아서 그에게 기억하고 싶지 않은 이야기를 풀어 놓는다. 그리고 자신이 가족이 둘밖에 남지 않았음을 알려주기 위해 아들에게 가는 것이라고 말한다.


아이가 떼를 쓴다. 차가 올 시간이 다가온다. 노인은 갈등한다. 가서 말해야 할까. 아니면 가지 않고 아들이 모르는 채 탄광에서 생활하는 것이 좋은가. 남에게 전해 듣는 것 보다 노인이 직접 전해주는 것이 좋을 것이다.


아이는 결국 가겟집 주인이 맡아 주기로 한다. 가서 잘 곳도 마땅치 않을 것이고 자신의 아들이 귀머거리가 되었음을 일가의 죽음으로 인한 충격에 더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처음본 사람에게 아이를 맡겨도 될까하는 의심이 들었지만 버스기사가 가겟집 주인의 인품을 칭찬하고 나서는 안심한다.


탄광에 도착하고 아들을 만나게 될 두려움에 망설인다. 결국 감독관을 만나 자신을 소개하고 아들을 만나기를 요청하지만 감독관은 아들이 갱도 깊이에 일하고 있으며 가족모두가 다 죽은 줄 알고 있다는 이야기를 한다.


알면서도 집으로 오지 않은 아들에 대한 배신감에 휩싸인다. 사실 감독관의 술책으로 아들의 면회는 거절되었다. 돌아가는 차를 타기 위해 길을 나서는 노인. 동료청년에게 자신임을 증명할 담배통을 맡기고 돌아선다.


전쟁의 참상을 전하는 영화, 소설, 희곡 등의 문학작품들은 하나같이 그 현실의 어두움과 인간성의 파괴, 잔혹성과 야만의 그림자 속에서의 삶을 그린다. 저자 아티크 라미히는 외세의 침략과 내전으로 이어지는 모국 아프가니스탄의 혼란을 견디지 못하고 프랑스로 망명했다. 전쟁속의 무자비한 폭력의 광기는 지식인에게 가장 먼저 큰 상처를 남기게 마련이다. 이를 아는 이들은 국외로의 망명길에 오르고 그렇지 못한 대부분은 고국에서 죽음을 맞는다.


외세에 의한 전쟁과 동족끼리의 전쟁을 겪은 한국의 역사를 보아도 수백만의 눈물과 고통, 아픔이 오늘날에 전해지는 것은 기껏 그 단어의 사전적 의미정도에 지나지 않을 뿐이다. 전쟁이 앗아간 나와 내 주변의 삶을 잃는 것에 대한 내면을 잘 그리고 있는 ‘흙과 재’는 읽는 이로 하여금 과연 전쟁 후에 남는 것이 무엇인가를 성찰하게 하는 울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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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 아는 여자 2030 취향공감 프로젝트 1
김정란 지음 / 나무수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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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의 열망을 돌리려는 3S(스포츠, 섹스, 스크린)정책의 일환으로 전두환 정권에 출범한 프로야구도 어느덧 30년이 다 되어 간다. 그 동안 프로야구는 우리 국민이 기대와 열망을 담은 스포츠의 대명사였다. 수많은 스타들과 진기한 기록들이 야구역사에 남고 있다. 꼭 강한 팀 뿐 아니라 최고의 약자였던 야구팀에 대한 향수를 담은 소설과 영화도 있다.


얼마 전 역대 최고의 관중을 갱신한 한국 프로야구가 점점 그 관심을 더하고 있다. ‘08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 지난 3월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준우승을 계기로 불붙은 야구의 열기가 국내 프로야구 시장에서 식지 않고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12년 만에 통산 10번째 우승을 노리고 있는 KIA타이거즈의 기운이 가는 곳마다 관중을 불러오고 있고, 순위와 관계없는 관중을 몰고 다니는 롯데자이언츠, 연속 우승을 노리고 있는 SK와이번스, 서울을 홈팀으로 하고 있는 전통의 강호 두산베어스의 우승을 노리는 힘과 4위권을 다투고 있는 삼성과 롯데, 히어로즈의 싸움이 흥미진진하다.


여성관중이 많이 늘었다는 것이 특징이다. WBC와 올림픽을 통해서 강한 인상을 심어준 특급 투수와 타자들이 젊은 여성 팬들을 야구장으로 불러 왔다는 것이 중평이다. 그들은 팀보다는 선수에 관심을 가지고 이 선수들이 소속된 팀의 경기마다 선수를 응원하는 피켓이나 구호를 외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프로야구의 중흥을 국제대회의 성적만 가지고 이야기 할 수는 없다. 각 구장에서 관객의 흥미를 더하게 하는 각종 이벤트와 홍보가 이루어지고, 관객의 불편을 해소하기 위한 구장설비개선과 관중석의 보수공사 등이 이루어진 것도 관객이 많아진 것에 일조했다.


문제는 급작스러운 관심이 야구경기에 흥미를 가지는 데에 도움은 되지만 지속되는 것은 또 다른 문제이다. 이를 위해서 야구팬이 되고자하는 야구 초보자들은 많은 정보를 접해야 하고 이중에 필요한 것은 알아 두어야 야구경기를 관람하는 데에 더욱 흥미를 더 할 수 있을 것이다.


<야구 아는 여자>는 최근 늘어가는 야구팬들 중에 야구에 좀 더 관심을 가지고 싶어 하는 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3년 만에 초보에서 전문가가 된 여성기자가 쓴 야구해설서다. 야구경기를 위한 기본적인 규칙과 전광판 보기, 경기 구성인원과 야구산업이 가지고 있는 자원들, 해설가와 감독, 선수, 코치에 관한 전반적인 사항을 백과사전식으로 담고 있다. 그리고 친절하게도 취향별 팀선택 가이드까지 넣고 있다. 프로야구의 역사와 알아두면 좋은 상황별 대처 팁들도 소개된다.


야구를 좋아하고 싶어도 방법을 몰라서 방황하는 분들은 지금 막판인 야구장에 가서 그 열기를 느껴보라. 그리고 좀 더 취하고 싶으면 쉽고 재미있게 쓰인 야구해설서를 읽는 것이 열광적인 야구팬이 되는 한걸음에 도움을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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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0-02-19 11: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프로야구 개막 카운트다운에 해가 뜨고 지는 2월입니다!
야구 관련 도서를 즐겨 읽으시는 분들을 찾아다니다 들어왔습니다.:)
찌질하고 부조리한 삶은 이제 모두 삼진 아웃! 국내최초의 문인야구단 구인회에서 우익수로 뛰고 있는 박상 작가가 야구장편소설 <말이 되냐>로 야구무한애정선언을 시도합니다.
야구 소설도 읽고, 야구 경기도 보고, 소설가가 시구까지 하는 야빠 대동단결 이벤트에 참여해 보세요.
인터넷 교보와 알라딘, 인터파크, yes24에서 진행하고 있습니다.

+말랑말랑 흥미진진한 야구해설서죠. 저도 즐겁게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소일 2010-02-27 15:56   좋아요 0 | URL
네 좋은 정보 힘들게 전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타워
배명훈 지음 / 오멜라스(웅진)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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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래에 개인의 삶과 죽음, 고통과 기쁨에 관한 소설을 많이 있지만, 사회적인 구조 정. 경. 학계의 공고한 시스템, 계파와 이즘의 아귀다툼과 그 속에서 생기는 소모에 대해 이야기하는 소설은 흔하지 않다.


배명훈의 ‘타워’는 그래서 다르게 느껴진다. 자신의 팬을 점점 넓혀 유명기성작가이상의 호응을 받고 있는 박민규의 ‘칭찬’의 글이 아니더라도 소설이 가진 통속성과 유머, 풍자와 해학의 이야기 전개는 충분히 시선을 끌만한 일이다.


‘태초에 ‘타워’가 있었다‘ 라고 시작해야 할 것 같은 분위기의 타워는 674층 높이에 50만의 인구를 수용하는 독립국가 빈스토크(잭과 콩나물에 등장하는 콩나물의 이름을 땀) 층별대로 계급구조가 이루어져 있고 수직이동 통로인 엘리베이터가 주요 이동수단인 동시에 국가의 동맥이라 할 수 있다. 이곳에서 일어나는 국가적 사태의 면면을 들여다보는 소설은 지금 대한민국의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비효율과 부조리에 관한 보고서이기도 하다.


소설은 연작형태로 구성되어 있고 마지막에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이나 사건 등에 대한 ‘보너스’ 같은 글들이 등장한다. 각기 다른 등장인물과 시간, 배경을 가지고 이어지는 단편 중에 가장 직설적인 현실비판을 드러내는 ‘엘리베이터 기동 연습’을 꼽는다.


타워의 대표적 ‘사상’은 ‘수직’과 ‘수평’으로 나뉜다. ‘수평운송노조와 수직운송조합의 입장 차이에서 비롯된 빈스토크의 양대 이념 체계’라는 작자의 해석과, 이 단어가 가진 본래의 의미로 해석 할 수도 있다. 타워가 가진 물리적 성격, 그리고 구성원들의 계급과 계층에 따른 분류로도 이해가 가능하다. ‘나’는 교통공무원이면서 수직주의자도 수평주의자도 아닌 중립적 성격을 가지고 있다고 항변한다. 하지만 수평주의자들의 데모와 테러에 대항하기 위한 선택은 ‘수직주의자’의 것이 되고 만다. 계급과 계파, 수직주의와 수평주의의 대립이 테러를 낳고 이 테러 속에서 분열하는 계급내의 갈등까지 재미있게(?) 그리고 있다.


이 외에 5개의 에피소드는 타워에 대한 포괄적 이해를 돕는다. 타워에 대한 이해가 읽는 이에게 주는 것은 무엇일까.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21세기의 한국, 더 넓게는 세계 속의 한국에 대한 위치와 그곳의 국민으로 살고 있는 우리의 처지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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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들의 음모
파트리스 라누아 지음, 최정수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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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직 천체물리학자 ‘로익’은 눈을 감는다. ‘파트리샤’는 내 곁에 더 이상 없다. 내가 그녀를 죽였다. 매일 계속되는 악목과 쌓여가는 죄책감. ‘모르포’라는 이름의 작은 요트를 손질하고 한 번씩 항해를 하는 것으로 소일하는 그는 어느 날 ‘파트리샤’와 닮은 ‘클라라’와 그녀의 동생 ‘솔’을 만난다.


그리고 예기치 못했던 긴 항해가 시작된다. 애초에 아이들의 꾐에 넘어가 가까운 곳에서 수영을 마치고 다시 항구로 돌아올 생각은 뜻대로 실현되지 못했다. 표류 후, 사흘이 흐른 뒤부터 시작된 항해일지는 홀로 구조된 로익이 병상에서 회상하는 장면으로 끝을 맺는다.

그들의 여행이 사실인지 아닌지도 모른다. ‘나‘를 통해서 보는 그들의 ‘여행’은 몇 개월인지 몇 년인지조차 알 수 없다. 게다가 구조된 후의 상황은 소설속의 ‘나’를 정신병이나 착란증세로 보는 암시가 있다.(너무 자의적 해석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혼자 항해를 하고 클라라와 솔을 창조해서 기억한다는 뜻일까? 항해일지의 내용은 다분히 철학적이다. 삶과 행복, 그리고 내 주변과 나의 관계에 관한 이야기를 클라라와 로익이 끊임없이 나눈다.


“사람들은 자신의 행동을 통해 자기 삶을 결정한단다. 매순간 조금씩, 아주 작고 무수한 붓질을 통해…….바이올린을 처음 배우는 사람이 수년 동안 무수히 활을 움직여 연주하는 법을 배우듯이 우리의 일상 속에 수없이 축적된 결정들과 대수롭지 않은 행위들이 우리의 삶을 조직하는 법이야. 눈에 보이지 않는 가벼운 것들이 핵심이 되는 골조를 구성하기도 하고 해체하기도 한다.”

“그러면 행복과 고통은 누가 준비하죠?”

“조용한 밤에 귀를 기울이면 소리가 들릴 거야. 그들의 작고 빠른 움직임은 네 마음속 깊은 곳에서 멈추지 않는단다. 나는 그것을 ‘나비들의 음모’라고 부르지. “


제목 “나비들의 음모”는 우리가 사물이나 현상을 바라보는 시각에 대한 이야기다. 모든 것은 중심에 내가 있고 나의 의식이 세계를 구성하는 것이라는.


끝없이 펼쳐진 바다위에 3인의 인물들이 나누는 대화. 그 대화를 가로막는 거대한 태풍과 폭풍, 소나기 등이 그들에게 시련을 더하고 이를 통해 ‘삶’에 대한 욕심이 가져오는 관계의 파괴. 그리고 자폐아 솔이 상어에 쫒기다 극적으로 구조되면서 ‘정상아’로 변하는, 외부의 충격이 가져오는 치유의 과정은 생사를 오가는 상황에서 참 아이러니 하다.


바다와 같은 세계와 그 속에서 어려운 삶을 살아가는 개인을 극단적인 축소의 상황이 이야기하는 소설은 가을밤 천천히 곱씹으며 읽을 만하다. 물론 페이지를 넘나드는 호기심과 재미는 없다해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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