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데렐라는 재투성이다 - 발도르프 선생님이 들려주는 진짜 독일 동화 이야기 2
이양호 지음 / 글숲산책 / 2009년 10월
평점 :
품절



이 책. 표지부터가 심상치 않네. 살짝 금장을 하고 있어서 은근히 저 같은 서민에겐 고압적인 이미지가 풍기는데. 내용을 보면 우리가 잘 아는 신데렐라 이야기에 대한 비평서가. 호기심이 생기는군.

내가 알던 신데렐라 이야기는 근본을 떠올리기가 쉽지 않아. 백설공주, 헨젤과 그레텔, 숲속의 잠자는 미녀 들의 이야기가 튀어나오지. 차분히 기억을 떠올려볼까.


‘신데렐라는 어려서 부모님을 잃고요. 계모와 언니들에게 구박을 받았더래요. 샤파샤파은샤파~얼마나 울었을까요‘


고무줄놀이에 쓰이던 노래가 생각난다. 그래. 부모님을 잃은 게 아니라 엄마를 잃고 아빠가 새장가 들어서 든 집에 계모와 언니둘이 있었지. 무도회에 가고 싶은데 말도 안 되는 일들을 시켜서 어렵게 만들고 두꺼비와 생쥐들이 도와줘서 무도회장에 갈 수 있었지. 요정이 나왔던가? 아니, 두꺼비는 콩쥐팥쥐이야기인가? 허허 헛갈리기 시작이구먼. 요정이 나오는 건 디즈니가 꾸민거라구? 그럼 뭐야. 도대체 원작은?


재투성이 아가씨란다.


‘신데렐라의 역사를 거슬러 오르면 프랑스작가 샤를 페로의 <재투성이와 작은 유리신발>, 그림형제의 <재투성이>가 나온다. 두 이야기 어디에도 ‘신데렐라’는 등장하지 않는단다. 신데렐라는 영어로 옮기는 과정에서 생겨난 신조어다. Cinderella가 우리말로 바뀌면서 가벼운 ‘신데렐라’로 되었다고. 이런 배경에도 불구하고 ‘재투성이’가 아닌 신데렐라라고 해도 좋은 건가?‘


그림형제가 쓴 <재투성이>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여자아이는 엄마를 잃고 계모와 언니들을 맞게 된다. 부자 아빠는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계모와 언니들은 잘 입고 잘 먹으면서 자신은 화롯가 잿더미 옆에서 누워 자고 먹고 하기에 재투성이라는 별명이 붙는다. 원래 옷을 벗기고 잿빛의 옷을 입히고 나막신을 신겨 식모살이를 시킨다. 물 긷고 불을 지피고, 밥 짓고 빨래를 한다. 콩을 잿더미에 쏟으며 소녀는 그것을 재에서 골라내야 했다.  

아버지가 장에 가면서 두 의붓딸에게 뭘 가져다줄까 했을 때 새 옷과 보석을 답한 언니 둘과 다르게 모자에 부딪히는 어린 나뭇가지를 꺽어다주라 한다. 개암나무 가지를 꺾어다 주자 그 나무를 엄마무덤가에 심었다. 그 위에 눈물이 떨어져 가지가 자라 아름다운 나무가 되었다. 그때 새하얀 새가 한 마리 날아와 소녀가 울면서 기도하면 바라는 것을 떨어뜨려주곤 했다. 왕이 궁에서 사흘이나 이어지는 잔치를 벌였는데 나라의 모든 아가씨를 초대했다.  

신붓감을 고르기 위해서. 재투성이는 같이 가고 싶었지만 누이들은 먼지투성이에 옷도 더럽다며 거부했지. 그래도 가고 싶다고 애원하자 콩을 가득 잿더미에 쏟아서 한 시간 안에 골라내면 가게 해주겠다고 놀렸다. 재투성이는 비둘기들을 불러 콩을 골라냈지. 그러자 의붓엄마가 옷이 없고 춤을 출수 없어서 창피하다며 갈수 없다고 못 박고 가버렸지. 재투성이는 개암나무 밑으로 가서 소리쳤어. 금과 은을 내려달라고. 새는 금과 은으로 된 옷과 비단으로 수놓은 신발을 내려줬다. 그 옷을 입고 혼인잔치에 갔지. 두 언니와 의붓엄마는 못 알아보고 왕자는 그녀에게만 마음을 열고 춤을 청했지. 밤이 깊어 왕자가 바래다주려하자 그녀는 뛰어나와 집으로 들었어.  

왕자가 확인했을 땐 재투성이 부엌데기만 있었어. 사흘을 반복하게 되자 왕자가 대책을 마련하는데 계단에 송진을 발라둔것이지. 아가씨의 왼쪽신발이 남게 되었어. 신발이 맞는 여인을 찾는다는 말에 두 언니는 필사적이었지. 첫째는 엄지발가락 때문에 맞지 않았는데 엄마는 왕비가 되면 걸을 일이 없다며 발가락을 잘라 넣었어.  

왕궁으로 향하는 길에 신발에 흥건한 피를 보고 다시 되돌아가 구두 주인을 찾았지. 둘째언니는 뒤꿈치가 커서 안 들어갔는데 엄마가 칼을 들고 와서 잘라버렸어. 그래서 왕자는 다시 둘째를 데리고 왕궁으로 향하다가 비둘기들의 노랫소리를 듣고 구두 안을 보니 피가 흥건한 거야. 말머리를 돌려 돌아왔을 때 재투성이 밖에 남지 않았지. 어머니는 너무 더러워서 보여드릴 수 없다며 거절했지만 왕자가 청하여 구두 앞에 서서 신게 되자 꼭 맞았지. “이 아가씨가 진짜 신부다.” 외치고 궁으로 향했어.

왕의 혼인잔치가 열린 날 언니들은 재투성이에게 온갖 아양을 떨었지. 신부 측 사람들이 교회로 갈 때 큰언니는 오른쪽에 작은 언니는 왼쪽에 섰어. 그 때 비둘기들이 언니들의 눈 하나씩 쪼아서 빼버렸어. 돌아올 때 반대로 서서 걸었는데 또 남은 한쪽을 쪼아 빼버려서 평생 눈먼 자로 지내야 했단다.


와~우. 섬뜩한 결말인데. 확실한 인과응보로구나. 이런 이야기가 고전이라 할 만하지 너무 치장된 이야기는 사실 현실성도 떨어지거니와 우리에게 ‘콤플렉스’만 줄 뿐이지. 재투성이가 결국 공주로 되어가는 과정에서도 일하고 성정이 바르고 곧아서 언젠가는 복을 받을 만한 아가씨였기 때문에 결말이 인정이 되는 것이고 한껏 소비하는 언니와 다르게 나무를 심고 나무와 자연을 통해서 수확하는 과정은 뭔가 교훈을 주는 것 같은데. 두 언니의 엄마는 요즘 학부형들과 그리 달라 보이지 않아. 자식의 출세를 위해 신체훼손도 서슴지 않는다. 물론 비유적이 되겠지만 감방수준의 생활패턴을 10여년이나 참아야 하는 요즘 학생들이 떠오르고 또 이를 채찍질 하는 엄마의 모습이라. 혹은 군대에 가지 않기 위해 손가락을 자른다던가 어깨수술을 받는 이 땅의 젊은이들의 슬픈 모습도 떠오르는 걸.


재투성이 아가씨는 결국 행복해졌을까? 이야기에서는 알 수 없어. 그저 결혼을 위한 과정이 그려질 뿐이고 끝없는 시련과 고통을 통해서 ‘완성’이 된다는 옛사람들의 결혼에 대한 의식을 미루어 짐작해 볼 뿐이지. 하지만 원래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환상적인 ‘공주 이야기’가 아닌 은 분명하군.


아이에게 이야기를 읽을 때는 신중해야 할 것 같아. 무턱대고 읽어주거나 읽게 했다가는 어느덧 모순과 편견 속에 자라는 이가 되어버릴 것 같아서 말이지. 요즘 동화책들은 그림도 편견투성이더군. 백인우월과 오리엔탈리즘. 민족주의와 집단주의와 폭력성이 주입되는 건 아이들이 교과서를 잡기 전에 비디오나 책을 통해서라는 이야기도 있으니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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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보고 갑니다 2011-11-04 16: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잘 보고 갑니다!
신데렐라 원본 이야기를 잘 알게 되어서
너무 좋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