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천 년의 농부 농부가 세상을 바꾼다 귀농총서 16
프랭클린 히람 킹 지음, 곽민영 옮김 / 들녘 / 200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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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한국 농업의 미래를 밝게 볼 이가 있던가. 이 시대의 개혁과 개방은 신자유주의에 편입된 정부의 ‘선택’이며 여러 산업중 하나인 농업은 포기의 대상이 되고 말았다. 여생이 얼마 남지 않은 늙은 농민과 그들이 이끌고 있는 농업을 달래기 위한 것은 기껏 쌀 수매를 중단하지 않고 직불제를 유지한 정도가 고작이다. 이것으로 농민들은 위안을 삼고 있을지는 알 수 없는 일이지만…….

‘호구지책’이 될 뿐 인 농사. 자식도 다 여의고 농부로 사는 세상에 먼 미래에 대한 비전과 포부가 없기 때문일까. 결국 쌀 경작지도 해마다 큰 폭으로 줄어들고 있고 작물에 투입되는 비료와 퇴비 값은 유류비와 같이 큰 폭으로 상승하고 있으며 검게 산야를 뒤 덮은 인삼밭은 전국 대부분의 농토를 황폐화의 길로 인도하고 있는 실정이다.

수천 년을 이어온 농업의 나라. 어쩌다가 오늘날 ‘농업’이 이런 모멸과 천대의 대상이 되었는가. 불과 수십 년 전만 해도 모두가 스스로 농사를 지어 먹고 살았는데, 오늘날은 자급률 20%대에 그치는 농업의 현실조차 널리 인식하고 있지 못하니 미래 거대 농업유통회사에 복속 될 우리 음식의 미래는 어찌할 것인가.


1909년, 미국 토양관리국장을 지낸 F. H.킹 박사는 아시아 3국인 한중일의 농업을 돌아볼 기회를 갖게 된다. 책만으로는 그의 의도는 알 수 없으나 배움의 의지는 확고한 지식인이 분명했다. 이 기간 동안 꼼꼼하게 기록한 글과 사진들이 그 당시의 중국, 일본, 한국의 농업현황을 구체적으로 보여주고 농토현장과 농민, 농기구와 농자재들을 담고 있다. 저자 유고 후 부인이 모아서 책을 내 놓았는데 100년이 다되어 대한민국에 선보이는 이유는 무얼까.

열강 미국의 농업은 넓은 땅과 유럽에서 수입되는 사료와 무기비료를 기반으로 하고 있었다. 이는 고스란히 아시아, 아프리카 등지로 유입되어 오늘의 ‘관행농법’으로 이어진다. 당시의 관점이야 분명했다. 선진 농법을 후진 국가들에게 전해주어야 한다. 하지만 분명 ‘선진 미국’에서 시찰 왔을 저자는 자국의 농업현실을 통렬하게 비판하고 수치와 통계를 근본으로 하는 자료를 바탕으로 동아시아 3개국의 농업이 우월함을 증명한다. 일본에서 중국으로 다시 일본에서 한국으로 이어지는 여정 동안의 그가 본 모든 것을 ‘풀 한포기’라도 놓치지 않으려는 저자의 노력은 자국에서 당사국내에서 조차 구하기 힘들 수많은 사진과 통계, 묘사의 자료들로 남겨져 한권의 책으로 결실을 맺었다.

3개국의 농업현실이 ‘리얼’하게 펼쳐지는 동시에 농사 준비와 과정, 결실까지 추적해 생활과 농업의 연관과 그 효율성까지 유추해내고 이와 관련한 각 국의 통계자료를 미국의 농업과 비교하는 일을 지나치다 싶은 정도로 집요하게 집필해 놓았다. 이는 단순히 ‘견문록’ 이상이라 평가할 만하며 당시 상황을 그대로 보여주는 사진과 이에 대한 근거의 글은 미국인을 위한 것이라 생각되지만 오히려 오늘날의 아시아인들에게 훨씬 더 유용할 듯하다. 자신의 과거를 ‘객관적’으로 돌아보는 일은 과거를 ‘조작’하고 미래를 새롭게 ‘가공’하려는 국가들에게 어려운 일이다. 당시 농업이 가지고 있는 소중한 가치들을 오늘에 되살리는 데에 충분하지 않지만 소중한 자료가 될 것이 기대된다.

일본, 중국, 홍콩과 광둥을 따라 서강등지에서 본 농민과 농업의 현주소를 평가하고 풍습과 건축, 의복 등에도 신경을 많이 써서 평가하였다. 서양에서 쓰레기로 분류되어 골치덩어리 뿐일 인분의 효율적인 처리방법에 놀라고 어찌하여 ‘파리’를 보기가 이렇게 힘든가라고 하는 부분에서는 과연 퇴비를 그렇게 논밭의 구석에 쌓았는데 파리가 없었을까 하는 생각은 통기성을 고려한 마른 풀들과 톱밥, 나뭇가지 등을 섞었다는 이야기에서 믿음으로 바뀌었다.

40여 년 전, 이 책을 접하고 훌륭하게 활용해 주변에 그 가치를 퍼뜨리는데 온 생을 바친 조셉 젠킨스의 <똥 살리기 흙 살리기>는 오히려 이 책의 영향력을 증명하는 살아있는 증거가 되었다. 오늘날 귀농인과 유기농법 실천자들의 참고서로 활용되고 있는 ‘퇴비 만들기’의 거의 유일하다 싶은 참고서니 말이다.

쌀 문화, 비단 문화, 차 산업과 농지공간의 효율적 활용을 분류해 기술해 놓은 책은 옛날을 그리워하는 단계가 아니라 ‘복원’해서 우리의 살림을 풍요롭게 해보자는 움직임에 큰 도움이 될 수 있겠다.

기껏 백년도 되지 않은 옛 농업문화를 오늘에 되살리는 일이 이 땅을 살리고 농업을 살리는 일이라는 점을 절실하게 깨닫게 해주는, 미국 지식인의 ‘오래된’ 저서는 과거의 우리와 지금의 우리 농업을 이어서 그 미래를 가늠해 볼 수 있는 희망의 메신저다.


서문 말미에 쓴 ‘효율성’에 관한 저자의 말은 오늘 농업을 생각하는 모든 이들이 새겨들어야 할 ‘미국인’의 금(金)같은 조언이다.

   
 

무엇보다 이들 국가가 농업 효율성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생산계층이 삶의 모든 부문에서 실천해온 모범적인 생활 태도 때문일 것이다.

동아시아에서 땅은 먹을거리와 연료, 옷감을 생산하는 데 남김없이 쓰인다. 먹을 수 있는 모든 것은 사람과 가축의 입으로 들어간다. 먹거나 입을 수 없는 모든 것은 연료로 쓰인다. 사람의 몸과 연료, 옷감에서 나온 배설물과 쓰레기는 모두 땅으로 되돌아간다. 동아시아인들은 이것들을 잘 보관해뒀다가 1~3개월에서 길게는 6개월 동안 꾸준히 작업을 해서 거름으로 쓰기에 아주 좋은 상태로 만든다. 이는 축적된 지식을 바탕으로 충분한 사전 준비를 거쳐 이뤄진다. 한 시간, 또는 하루의 노동이 조금이라도 생산량을 늘릴 수 있다면 일을 놓지 않고, 비가 오거나 땡볕이 쏟아져도 일을 게을리 하거나 미루지 않은 것은 이들에게 적어도 불가침의 원칙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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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마 2021-06-13 21: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남 장흥에 살고 있는 교사 입니다. 4천년의 농부 서평을 매우 감명 깊게 읽었습니다. 다른 어떤 책들을 읽으셨는지 궁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