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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들의 음모
파트리스 라누아 지음, 최정수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9년 8월
평점 :
전직 천체물리학자 ‘로익’은 눈을 감는다. ‘파트리샤’는 내 곁에 더 이상 없다. 내가 그녀를 죽였다. 매일 계속되는 악목과 쌓여가는 죄책감. ‘모르포’라는 이름의 작은 요트를 손질하고 한 번씩 항해를 하는 것으로 소일하는 그는 어느 날 ‘파트리샤’와 닮은 ‘클라라’와 그녀의 동생 ‘솔’을 만난다.
그리고 예기치 못했던 긴 항해가 시작된다. 애초에 아이들의 꾐에 넘어가 가까운 곳에서 수영을 마치고 다시 항구로 돌아올 생각은 뜻대로 실현되지 못했다. 표류 후, 사흘이 흐른 뒤부터 시작된 항해일지는 홀로 구조된 로익이 병상에서 회상하는 장면으로 끝을 맺는다.
그들의 여행이 사실인지 아닌지도 모른다. ‘나‘를 통해서 보는 그들의 ‘여행’은 몇 개월인지 몇 년인지조차 알 수 없다. 게다가 구조된 후의 상황은 소설속의 ‘나’를 정신병이나 착란증세로 보는 암시가 있다.(너무 자의적 해석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혼자 항해를 하고 클라라와 솔을 창조해서 기억한다는 뜻일까? 항해일지의 내용은 다분히 철학적이다. 삶과 행복, 그리고 내 주변과 나의 관계에 관한 이야기를 클라라와 로익이 끊임없이 나눈다.
“사람들은 자신의 행동을 통해 자기 삶을 결정한단다. 매순간 조금씩, 아주 작고 무수한 붓질을 통해…….바이올린을 처음 배우는 사람이 수년 동안 무수히 활을 움직여 연주하는 법을 배우듯이 우리의 일상 속에 수없이 축적된 결정들과 대수롭지 않은 행위들이 우리의 삶을 조직하는 법이야. 눈에 보이지 않는 가벼운 것들이 핵심이 되는 골조를 구성하기도 하고 해체하기도 한다.”
“그러면 행복과 고통은 누가 준비하죠?”
“조용한 밤에 귀를 기울이면 소리가 들릴 거야. 그들의 작고 빠른 움직임은 네 마음속 깊은 곳에서 멈추지 않는단다. 나는 그것을 ‘나비들의 음모’라고 부르지. “
제목 “나비들의 음모”는 우리가 사물이나 현상을 바라보는 시각에 대한 이야기다. 모든 것은 중심에 내가 있고 나의 의식이 세계를 구성하는 것이라는.
끝없이 펼쳐진 바다위에 3인의 인물들이 나누는 대화. 그 대화를 가로막는 거대한 태풍과 폭풍, 소나기 등이 그들에게 시련을 더하고 이를 통해 ‘삶’에 대한 욕심이 가져오는 관계의 파괴. 그리고 자폐아 솔이 상어에 쫒기다 극적으로 구조되면서 ‘정상아’로 변하는, 외부의 충격이 가져오는 치유의 과정은 생사를 오가는 상황에서 참 아이러니 하다.
바다와 같은 세계와 그 속에서 어려운 삶을 살아가는 개인을 극단적인 축소의 상황이 이야기하는 소설은 가을밤 천천히 곱씹으며 읽을 만하다. 물론 페이지를 넘나드는 호기심과 재미는 없다해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