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읽지 않은 지 꽤 되었다. 번역 시는 더더욱. 그렇기에 레이먼드 카버의 시집 《우리 모두》가 출간된 것을 알면서도, 가슴이 떨리던 것을 알면서도, 저 아름다운 자태에 심장이 쿵쿵 뛰던 것을 알면서도 애써 외면했다. 네가 원문으로 읽어라, 누군가의 번역을 거친 시가 온전히 카버, 그의 시이겠느냐, 외면했다. 그러다 어느 저녁 도서관에서 이 책을 발견하고 홀린 듯 그 자리에 서서 몇 장 넘기다가 결국 어떤 구절에 끌려 빌려왔고, 그렇게 몇 날 며칠 읽다가 어느 구절에서는 울컥하고, 어느 구절에서는 눈에 고인 눈물을 닦다가 결국 나는 이 책을 다 읽은 지금, 마침내 책을 주문했다. 이 시들은 간직하고 계속 읽어야 할 것이로구나….
단편소설의 대가로 잘 알려진 카버는 그의 단편보다 더 압축적인 시도 여럿 남겼다. 아니, ‘여럿’이라는 말로는 부족하다. 카버에게 큰 성공을 가져다 준 《대성당》 이후로 그는 남은 생을 시인으로 살고자 했다. 1983년부터 시 쓰기에만 매진한 그는 1988년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불》,《물이 다른 물과 합쳐지는 곳》, 《울트라마린》 등 세 권의 시집을 출간했고, 죽는 순간까지 정리한 원고인《폭포로 가는 새로운 길》이 사망 이듬해 출간되었다. 그 후 출간된 미발표 시 모음집 《영웅담은 제발 그만》까지 다섯 권의 시집을 하나로 묶은 책이 바로 《우리 모두》이다. 카버의 시를 거의 모두 수록했다고나 할까.
이 책은 앞서 언급한 시집들을 순서대로 엮었기에, 카버의 삶을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다. 잘 알려졌다시피 카버는 말년의 몇 년을 제외하고는 인생의 대부분을 가난 속에서 힘겹게 살아가면서 작품을 썼다. 제재소 노동자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알코올의존증이 심한 아버지 밑에서 자랐다. 술 때문에 아버지의 직업은 늘 불안정했고 그건 곧 가난을 의미했다. 설상가장, 아버지의 술과 가난은 카버에게 고스란히 이어진다. 스무 살도 되기 전에 결혼 해 두 아이를 가진 가장이 된 뒤로는 40대에 접어들기 전까지 얼마간의 예외적인 기간을 빼고는 한 주 벌어서 그다음 주를 근근이 버티는 생활을 견뎌야만 했다. 술과 아내에 대한 의심은 카버 부부의 생활을 불안정하게 만들었고 다시 이것은 가난으로 이어졌다. 카버의 단편 대부분이 그렇듯이 그의 시(詩)들도 대부분은 술과 가난, 단절된 부부, 해체 직전의 가족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그러나 그 목소리와 감정은 단편보다 더 압축적이고 직설적이며 생생하다.
그는 모든 문제의 근원이 술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이렇게 읊조린다. ‘술 때문에 문제가 생기지. 언제나 술-/네가 끝까지 가버린 것 그리고/네가 처음부터 사랑에 빠질 운명이었던/그 사람도 그렇게 하게 만든.’(<술>). 술로 망가진 아버지, 술로 가난했던 아버지, 그리고 그 술과 가난을 대물림 받은 아들- 그 아들(카버)은 아버지의 장례에 한 푼도 보탤 여력이 없어 그저 구경만 한다.(<아버지의 지갑>), 아버지를 묻을 때 옷을 위아래 모두 입힐 건지, 상의만 입힐 건지 장의사는 어머니에게 묻는다. 결국 아버지는 화로에 들어갈 때 반바지만 걸친다(<초원>). 죽은 아버지에게 옷을 제대로 입힐 여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는 아버지를 사랑한다. ‘아버지, 사랑해요./하지만 어떻게 아버지한테 고맙다고 말할 수 있겠어요./똑같이 술을 조절하지 못하고,/어디 가서 낚시를 해야 하는지도 모르는’ 그이지만 그래도 아버지를 사랑한다(<아버지의 스물두 살 적 사진>).
그런데 이 알코올의존증은 카버의 아내는 물론 자식들에게도 이어진다. 카버가 아름다운 주정뱅이라고 부른 그의 딸은 ‘사흘 동안 취해’ 있다. ‘술이라는 게 우리 집안에서는 독약과 마찬가지라는 걸/잘 알고 있으면서도’ ‘네 엄마와 내가 이미 충분히 보여’ 주었음에도. 그는 딸에게 절규한다. ‘사랑하던 두 사람이/서로를 때려눕히고, 우리가 느끼고 있던 사랑을/한 잔, 또 한 잔 마셔 없애버린 것./그 욕설과 주먹질과 배신을’ 멀리하라고. 그러나 그 모든 걸 알면서도 딸은 술을 마신다. 그런 딸을 보며 카버는 경고한다. ‘딸아, 넌 술을 마시면 안 돼./ 그게 널 죽일 거야. 그게 네 엄마한테, 나한테/그랬던 것처럼. 그게 그랬던 것처럼.’(<내 딸에게>)
술 때문일까, 아니면 이 힘겨운 인생 때문일까. 정신이 좀처럼 잠들지 못하고 불면증을 앓는 밤, 그는 ‘체호프가 이 자리에 있어서 뭐라도 처방해줬으면’(<겨울 불면증>)하고 바라지만 그조차 쉽지 않다. 도리어 악몽에 시달린다. 꿈속에서 낯선 사나이가 위스키를 건네주고 그는 술병을 입에 가져가 마시고 입술을 훔친다. 그러고서 추락한다. 추락은 죽음을 뜻한다(<어제, 눈>). 술을 마시는 행위도 공포이지만, 인생도 두려움 그 자체이다. 그는 늘 두려움에 시달린다. ‘경찰차가 마당으로 들어오는 걸 보는 두려움, 잠 못 드는 일에 대한 두려움, 한밤중에 울리는 전화에 대한, 엄습하는 불안에 대한, 돈이 떨어지는 것에 대한, 아이들이 나보다 먼저 죽을까봐, 그래서 죄책감을 느끼게 될까봐.’ 두렵다. ‘늙은 내가 늙은 어머니와 함께 살아야 할 거라는 두려움. 잠에서 깨어나 네가 떠난 걸 알게 되는 일의 두려움. 사랑하지 않는 일, 충분히 사랑하지 않는 일의 두려움. 내가 사랑하는 것들이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치명적인 것이 될까.’ 두렵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 너무 오래 사는 일에 대한 두려움.....’(<두려움>) 모든 것이 두려움투성이다. 그래서 또 술을 마신다.
‘가난과 수치가 문을 밀고 들어오던 시절’이고 ‘그 뒤로 경찰이 끔찍한 권위를 가지고 현장을 조사하기 위해 따라오던 시절’(<섬세한 여자>)이다. ‘사랑 때문에 죽을 수 있는 시절’이기도 했지만 ‘이제는 아니다.’ ‘걸쇠를 걸어놔도, 그 시절에는 그걸로는 어느 누구도 막아낼 수 없’다.(<섬세한 여자>). 그리고 이제 그가 사랑하던 여자가 카버 자기라고 주장하는 그 사람은 어쩐지 자기가 아닌 것만 같다. 그는 어리둥절한 얼굴로 중얼거린다. ‘그녀는 아무래도 마음속에서/나를 다른 누군가와 혼동하고 있는 것 같다./별다른 특징이 없는 젊은 사내, 꿈만 가지고 사는,/그녀를 영원히 사랑하겠노라 맹세했던./그녀에게 반지를 주고, 또 팔찌를 줬던 사내./나와 함께 가, 나를 믿어도 돼. 라고 말했던 사내.’ 그런 맥락의 말들을 했던 그 사내는 어디로 갔는가. ‘나는 그 사람이 아니다./말했듯이, 그녀는 나를 다른 누군가와 혼동하고 있다.’(<그녀가 처한 불운의 저자著者>)
술에 취해 있지 않을 때는, 가족이 곳곳에서 보내온 편지들이 그를 괴롭힌다. 아들이 보내온 그림엽서의 이미지는 아름답지만, 내용은 그렇지 못하다. 아들은 파산직전이다. 급히 돈이 필요하단다. 딸이 보내온 편지도 마찬가지이다. 딸은 스피드광인 남자와 살고 있는데 그 아이들은 오트밀로 연명하고 있고, 그 애도 도움이 필요하단다. 아프고 정신이 흐려진 어머니에게서 온 편지도 크게 다르지 않다. 어머니는 그가 당신의 마지막 이사를 도와줄 수 있겠느냐고 묻는다. 당신이 거주할 집을 사줄 있느냐고(<편지>). <차>라는 시는 이렇게 고통스러운 그의 인생을 집약해놓은 것 같다. ‘앞 유리가 깨친 그 차, 브레이크가 없는, 라이데이터에 구멍이 난, 운전대가 잘 안돌아가던, 엔진 블록에 금이 간, 앞좌석이 찢어진, 뒷좌석이 없는, 오일이 타버린, 타이어가 다 닳아버린, 엔진에 불이 붙던 그 차’(<차>) 그러나 그 차는 ‘그걸 사기 위해 복숭아를 땄던’ 차이기도 하고, ‘식당에서 돈을 안 내고 도망친, 아이가 그 안에서 토한, 내가 그 안에서 토한, 내가 도로 옆에 버리고 온, 내 딸이 박살을 낸, 개를 치고 계속 달리던, 내가 남한테 줘버린, 내가 두 손 다 든’ 차이기도 하다. ‘내가 망치로 두들겨 팬 그 차. 할부금을 낼 수 없었던 그 차.’ 마침내 ‘소유권을 빼앗긴 차.’ 인생의 모든 순간, 불행도, 행복도 모두 함께 겪은 차인 것이다. 그리고 이제 ‘저 뒤 주차장에서 기다리고 있는 내가 꿈꾸던 차. 내 차.’이다.(<차>) 이 시를 읽노라면 그의 인생이, 나의 인생이, 그리고 결국 별것 없이 스러져가는, 스러져갈 대부분 우리 모두의 인생이 눈앞에 그려진다.
그렇다면 삶은 이렇게 카버의 시에서 느껴지듯이 고통으로 점철된 고난의 길이기만 한 것일까? 이런 생을 어떻게, 왜 견뎌야 하는가, 그럴 바엔 차라리 카버처럼 알코올에 빠져 사는 게 낫지 않을까. 이런 생각이 들 즈음 그 고통스러운 나날 속에서도 희망을 찾으려던, 희망을 놓지 않으려던 카버의 모습을 만나게 된다. ‘우리가 별이라고 부르는 저 불빛들은/한동안 타오르다가 죽는다.’ 그리고 어머니는 ‘내일을 바라지 마라./그건 인생이 지나가기를 바라는 거야.’ 말하신다. 그러나 ‘그럼에도 나는, 내일을/바란다. 그것이 가지고 있는 최상의 것들과 함께 오기를.’(<내일>) ‘우리 모두, 우리 모두, 우리 모두는/우리의 불멸의 영혼을 구원하려 애쓰는데,/어떤 길들은 다른 길들보다 더 빙글빙글 돌고/종잡을 수 없다.’ (<스위스에서>) 그럼에도 ‘내일’을 기다리던 그는 마흔다섯이 되어서야 텅 비었던 심장이 다시 흐르는 것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어느 강가에서 ‘마음껏 오후 시간을 보낼 것’이라고 다짐한다. 왜냐하면 ‘강을 사랑하는 일은 내 마음을 기쁘게’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강의 원천까지 거슬러 올라가며/사랑하는 일./나를 불어나게 하는 모든 걸 사랑하는 일’(<물이 다른 물과 합쳐지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그는 이제 관조적으로 아들에게 이렇게 말할 수 있게 된다. ‘아들아-시간은/지나간단다./ 내 아들아, 우리 모두/미래에는 좀더 살 만해.(<아들의 오래전 사진을 보며>)
<횡재>
다른 말로는 안 돼. 왜냐면 딱 그거였거든, 횡재.
횡재, 지난 십 년.
살아 있었고, 취하지 않았고, 일을 했고, 사랑했고 또
훌륭한 여자로부터 사랑받은 십일 년
전에 사내는 이런 식으로 가다간 여섯 달 정도
더 살 거라는 소릴 들었지. 그때 사내는
내리막길로만 가고 있었어. 그래서 사내는 어찌어찌 사는
방법을 바꿨지. 사내는 술을 끊었어! 그리고 나머지는?
그 뒤로는 죄다 횡재였어. 매 순간이, 사내가, 그러니까,
어떤 게 쪼개져서 다시 사내의 뇌 속에서 자라나고 있다는
그 말을 듣던 순간까지 포함해서. “날 위해 울지마.”
사내가 친구들에게 말했어. “난 운이 좋은 사람이야.
난 나나 다른 사람들이 예상한 것보다
십 년을 더 살았어. 진짜 횡재지. 그걸 잊지 마.”
<말엽의 단편>
어쨌거나, 이번 생에서 원하던 걸
얻긴 했나?
그랬지.
그게 뭐였지?
스스로를 사랑받은 자라고 일컫는 것, 내가
이 지상에서 사랑받았다고 느끼는 것.
카버는 거듭된 실패 끝에 목숨을 잃을 위기를 넘기고 나서야 겨우 술을 끊었다. 그 이후로 자신의 삶을 줄곧 ‘덤으로 사는 인생’이라고 표현했다. 그리고 그 덤으로 10여 년을 산 후에 폐암이 뇌까지 전이되어 세상을 떠난다. 가끔 생각해본다. 그가 말하는 이 덤으로 산 10년, 말년의 행복한 시절이 그에게 존재하지 않았더라도, 그가 이렇게 과거와는 달리 충만한 느낌으로 인생을 돌아보고 얼마쯤은 만족한 채 세상을 떠날 수 있었을까? 예전에는 그렇지 못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우리 모두》를 읽고 나니 그렇게 고통으로 이어진 인생을 살다갔어도 그는 희망을 놓지 않았으리라고, 그래서 그 고통스러운 생(生)에서 한 점의 행복이라도 발견하고 죽어갔으리라고 믿게 된다. 왜냐하면 그는 내일을 바라지 말라던 어머니의 말에도 ‘내일을, 그것이 가지고 있는 최상의 것들과 함께 오기를’ 꿈꾸던 소년이었고, 결국 ‘스스로를 사랑받은 자’라고 생각하며 ‘이 지상에서 사랑받았다고 느끼’며 죽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 모두는 이 힘겨운 나날 속에서도 누구나 한 번쯤은 카버와 같은 감정을 느낄 수 있기에 그의 시가 진솔하게 다가온다. 아름다운 언어로 쓰이지 않았을지라도 날것 그대로의 생의 모습이 고스란히 전해져 온다.
머지않아 우리는 모두 땅속에서 썩을 것이다.
이 말엔 진실이 들어 있지 않다, 다만 사실일 뿐.
살아 있는 동안 서로에게
그토록 많은 행복을 안겨준 우리들-
우리는 썩을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썩지는 않을 것이다. 여기서는 아니다. (<가능한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