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렌마트 희곡선 - 노부인의 방문.물리학자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65
프리드리히 뒤렌마트 지음, 김혜숙 옮김 / 민음사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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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일요일에 누운 채로 느슨하게 이 책을 읽다가 중간에 벌떡 일어났다. 흥미롭고 놀라웠다. 《뒤렌마트 희곡선》에는 <노부인의 방문>, <물리학자들> 두 편의 희곡이 실려 있다. 첫 번째 작품인 <노부인의 방문>을  읽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극의 설정 자체에 감탄했다. ‘노부인’ 캐릭터도 강렬하다. 큭큭 곳곳에서 웃음도 터진다. 처음에는 블랙코미디를 보는 것 같았다. 그런데 어느 순간 참 섬뜩해진다. 그러고는 쉽지 않은 질문을 던진다.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몰락한 소도시 귈렌, 이곳은 쇠락할 대로 쇠락해서 기차도 그냥 지나친다. 그런데 어느 날 이 마을에 평소에는 정차하지 않는 특급 열차가 멈춰 선다. 이유는 오직 하나 노부인 ‘클레어 자하나시안’이 방문했기 때문이다. 그녀는 온 세계가 주목하는 대부호이다. 이 노부인이 왜 이 마을을 찾았느냐고? 사실 귈렌은 그녀가 태어나고 10대 시절을 보낸 곳이다. 클레어, 이 노부인은 45년 만에 처음으로 고향을 찾은 것이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귈렌 시는 파산 직전이다. 그런데 세계적인 대부호가 된 클레어가 고향을 찾는다니, 이 노부인으로부터 한몫 단단히 챙기길 기대하는 마을 사람들은 그녀를 환대하기 위해 대대적인 행사를 계획하고, 시민 대표로 시장, 고등학교 교장, 목사, 의사, 경찰 등이 역 앞에 몰려나온다.

여기까지는 조금 평범(?)한 설정이다. 이 성공한 노부인은 늘그막에 이르러 고향이 그리워서 찾아왔고, 순박한 마음을 간직하고 있어서 그녀의 돈을 노리고 벌떼처럼 달려든 마을 사람들에게 이용당하는 게 아닐까 예상하기 쉽다. 그러나 이 노부인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 열차가 서지 않는 귈렌에 특급 열차를 강제로 세우는 모습부터 예사롭지 않다. 승무원은 막무가내로 기차를 세우는 클레어에게 항의한다. 그러나 노부인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다. 내가 누군 줄 알아? 나 ‘클레어 자하나시안’이야! 그 한마디에 승무원의 태도는 확 변한다. 몰라 뵈었다면서 이곳에서 열차를 세우는 건 지당하고 또 지당하십니다, 굽실굽실. 땅콩회항이 떠오르는 장면이다.

그런데 이 부인은 그렇게 부자라면서 왜 열차를 타고 왔을까? 자기 차 없어? 의문이 드는데, 이윽고 역으로 마중 나온 이들을 통해 클레어의 비밀 아닌 비밀이 드러난다. 사실 그녀는 자동차 사고를 당해, 의족을 한 상태이고 그래서 그 뒤로는 기차만 타고 다닌다는 것이다. 거의 온몸이 의족 상태인 것처럼 차디차다. 노부인과 오늘 함께 귈렌을 찾은 사람은 무려 그녀의 일곱 번째 남편이다. ‘오늘’이라고 말한 까닭은, 이 극에서도 클레어는 계속 남편을 갈아치우기 때문이다. 더 재미난 것은 사람들에게 남편을 소개할 때이다. “일곱 번째 남편을 소개할게요. 모비 이리와요. 사실 진짜 이름은 페드로예요. 하지만 모비가 더 나아서요. 집사 이름인 보비와도 잘 어울리고요. 어쨌든 집사는 평생 필요하니 남편들이 집사 이름에 맞춰야죠.” 집사는 평생 필요하니까 남편들이 집사 이름에 맞추라고 하다니, 껄껄 웃음이 나오면서 한편으로는 뭔가 통쾌하다.

사고를 당한 후로 클레어는 가마로만 움직인다. 열차에서 내린 그녀를 위해 ‘로비’와 ‘토비’ 두 가마꾼이 달려온다. 이들은 맨해튼 출신의 갱 단원들로 사형 선고를 받고 뉴욕의 싱싱 감옥에 갇혀 있던 것을 클레어가 손을 써서 빼냈다. 한 사람당 100만 달러를 주고 오직 가마꾼으로 쓰려고 말이다. 이들이 그럴 가치가 있었는지는 이 극을 보면 알 수 있다. 클레어가 타고 다니는 가마는 루브르 박물관에 있던 것으로 프랑스 대통령이 선물했다. 이런 설정들이 묘하게 뒤틀린 웃음을 준다. 그런데 클레어가 호텔로 옮겨간 뒤 그녀 뒤를 따르는 무언가가 보인다. 그것은 다름 아닌 장례식에 쓰이는 ‘관’이 아닌가? 이 관은 대체 무엇이며, 클레어는 왜 관을 갖고 고향으로 돌아왔을까? 마을 사람들도 궁금하지만, 독자도 궁금해진다. 이 관은 <노부인의 방문>에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윽고 벌어진 환영식에서 시장은 클레어에 관해 재빨리 입수한 정보를 갖고 작성한 연설문을 읊는다. 온갖 미사여구를 동원한다. 그의 연설에 따르면 지난날 클레어는 가난하고 늙은 과부에게 식량을 마련해 준 적이 있다. 자신이 힘들게 번 돈으로 감자를 사서 굶어 죽게 된 과부를 살린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그 붉은 곱슬머리 말괄량이는 이제 이 세상을 선행으로 넘치게 하는 부인이 되었다. 클레어는 수많은 여성 요양소, 무료 급식소, 예술가 원조 기금, 탁아소들을 운영하고 있다. 이렇게 입 발린 찬사가 끝나고 노부인은 흡족해할 줄 알았는데, 이상하다. 클레어는 별다른 감흥 없는 얼굴로 시장의 연설에서 잘못된 정보를 바로잡는다.


클레어 : 나는 시장의 연설에 나온 아이와는 좀 달랐어요. 학교에선 매를 맞았고, 과부 볼에게 주었던 감자는 훔친 것이었죠. 일 씨와 함께 말이에요. 그 뚜쟁이가 굶어죽을까 봐 그랬던 게 아니라 일 씨와 잘 침대가 필요했던 겁니다. 숲이나 페터네 헛간보다 침대가 편했거든요. 하지만 여러분의 기쁨에 동참하기 위해 즉시 공표하기로 하죠. 나는 귈렌에 10억을 제공할 용의가 있어요. 5억은 시에 기부하고, 나머지 5억은 귈렌의 각 가정에 분배하겠어요. 단 한 가지 조건이 있어요. 여러분에게 10억을 주고 정의를 사겠습니다. 나는 정의를 원해요. 10억짜리 정의를  (<노부인의 방문>, 47~48쪽)


학교에서는 매를 맞았고, 연인과 함께 하룻밤 잘 침대가 필요해 훔친 감자를 이웃에게 주었던 지난날의 클레어. 그녀는 수많은 재산을 가진 대부호답게 그 어떤 것도 두렵지 않은지, 자기의 치부마저도 별 부끄러움 없이 밝힌다. 그러면서 귈렌 시에 10억을 제공하겠단다. 시에 5억을, 각 가정마다 5억을 나눠주겠단다. 그런데 조건이 있다. ‘정의’를 사겠다는 것이다. 과연 그녀가 말하는 정의란 무엇이며, 그녀는 이 10억으로 ‘정의’를 살 수 있을까? 이 책을 읽을 이들을 위해 클레어가 내건 ‘그 조건’을 자세히 밝힐 수는 없지만 클레어의 이 제안 후, 마을 사람들은 조금씩 사치스러워진다. 여자들은 외모를 꾸미고 남자들도 멋지게 차려입고, 다들 빚을 내서 평소에는 사지 못했던 물건들을 사들이기 시작한다. 마치 5억이 벌써 분배된 것처럼 행동하는 것이다. 괴테가 이곳에서 머물렀고, 브람스가 사중주곡을 만든 인문주의 전통을 지닌 귈렌 시는 클레어의 10억 제안에 서서히 무너져 간다. 교장의 말대로 ‘유혹은 너무 크고 우리의 가난은 너무 혹독’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귈렌 시의 이 몰락은 원래 그렇지 않은 마을이 돈 앞에서 무너져 가는 것일까? 아니면 인간의 본성이 애초부터 그렇게 물질 앞에서는 한없이 이기적인 것일까. 쉽사리 판단하기 어렵다. 뒤렌마트는 10억과 ‘정의’ 실현이라는 발칙한 제안으로 인간성과 공동체, 정의와 자본의 문제를 질문한다.


클레어 : 인간성이란 말입니다. 신사 양반들, 부호들의 돈주머니에나 적당한 겁니다. 내가 가진 재력이 세상 질서를 만들어 내지. 세상이 날 창녀로 만들었으니, 이제 내가 세상을 유곽으로 만들겠어요.  (<노부인의 방문>, 100쪽)


두 번째 작품인 <물리학자들>의 배경은 어느 요양소이다. 이곳은 사실 정신 병원이나 마찬가지로 정신질환을 앓는 고위층 인사들을 수용하고 있다. 이중 특별한 병동이 있는데, 이곳에는 과대망상증이나 정신분열증에 걸린 물리학자 세 명이 격리 수용되고 있다. 한 사람은 자신이 뉴턴이라고 생각해서 18세기 초 복장으로 그 시절처럼 가발을 쓰고 지낸다. 또 다른 사람은 스스로 아인슈타인이라고 생각하며 틈이 날 때마다 바이올린을 연주한다. 나머지 한 명인 주인공 ‘뫼비우스’는 솔로몬 왕이 나타나 우주의 비밀을 계시한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저마다 자신이 만든 상상의 세계 속에 틀어박혀 살아간다. 이 병원 의사인 찬트 박사는 이 물리학자들이 온순하고 말썽 부리지 않는 환자들이라고 보증한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이 희곡은 뜻하지 않은 살인 사건과 그 사건을 둘러싸고 일어나는 반전 등이 예상치 못하게 흘러가면서, 사회 속의 개인이라는 철학적 질문과 함께  기괴한 상황설정을 통해 섬뜩한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한다. 정신 병원을 배경으로 하는 작품이 흔히 그렇듯이 병원 안에 갇힌 자들이 비정상인지, 아니면 병원 밖 세상이 비정상인지 질문하기도 한다.

이 물리학자들은 모두 같은 목표를 갖고 있지만 전략이 다를 뿐이다. 한 사람의 목표는 물리학의 발전이다. 그는 물리학의 자유를 보존하려고 하지만 물리학의 책임은 부인한다. 반대로 또 다른 사람은 특정한 나라의 권력 정치에 대한 책임이란 명목으로 물리학에 의무를 지운다. 그리고 나머지 한 사람은 자신의 이론의 위험성을 깨닫고 스스로 자기 자신을 정신 병원에 유폐시켰다. 이렇게 서로 다른 세 사람의 대비를 통해 이 작품은 과학 기술 발전과 그에 대한 인류의 책임 문제를 질문한다. <뒤렌마트 희곡선>의 두 작품은 모두 풍자와 해학이 넘쳐나 흥미롭게 읽힌다. 그로테스크한 설정으로 인해 ‘저게 말이 돼?’ 하는 생각이 얼핏 들기도 하지만 조금만 더 생각해 보면 현실과 크게 다를 바 없다. 폭주하는 자본과 과학 앞에서 개인의 양심과 정의를 지키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이 빛나는 작품은 날카롭게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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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란공 2020-05-19 15: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써주신 글만으로도 흥미가 생기네요^^ 중간 중간에 웃음도 나오네요 ㅋㅋ

잠자냥 2020-05-19 15:48   좋아요 1 | URL
실제로 읽어보시면 아주 마음에 들 작품이라고 확신합니다. ㅎㅎ

초란공 2020-05-19 15: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소개해주신 글이 재미있어서 저혼자 웃었네요 ..^^

Falstaff 2020-05-19 16: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골때리는 블랙 코미딥니다.
이 여사님의 성姓 ‘자하나시안‘이 돈 많은 세 명의 남자, 무기재벌 자하로프, 선박왕 오나시스, 석유재벌 굴벤키안의 합성이라더군요. ㅋㅋㅋ 저도 주워 들은 이야기입니다.

잠자냥 2020-05-19 16:38   좋아요 0 | URL
푸하하 ㅋㅋㅋㅋㅋ 어쩐지 성이 좀 이상타했더니 ㅋㅋㅋㅋㅋ
암튼 다른 작품도 다 찾아 읽으려고요.

다락방 2020-05-20 08: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엄청 재미있을 것 같아요. 그 정의가 어떤건지, 마을 사람들이 또 마을이 어떻게 될지도 궁금하고요. 잠자냥 님 리뷰 읽을 때마다 반드시 이렇게 그 책을 찜해가지고 돌아가니 참 큰일입니다. 방금전에도 저는 책을 주문했는데 말이지요.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독서인생이란...뭘까요?

그나저나 최근에 민음사 고전 안산지가 좀 된 것 같은데, 이 책 덕분에 민음사 고전들 사이에 한 권 더 꽂아 넣을 수 있겠네요. 이 고전전집이라는 것이 모아두면 참 뽀대가 나지 않습니까? 하하하하핫

잠자냥 2020-05-20 09:17   좋아요 0 | URL
네 정말 흥미진진한 책입니다. ㅎㅎ 여기저기 웃기는 부분도 많고요. ㅎㅎ
와 방금 전에도 책 주문하셨어요? 부럽 ㅋㅋㅋㅋㅋ(전 아주 자제중... 극기 또 극기! ㅋㅋㅋ)

저도 민음사 고전 시리즈 안 산지 좀 됐어요. 이것도 예전에 사둔 책. 그래도 이런 고전전집은 사두면 이렇게 언젠가 읽는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뽀대 나기도 하고요. ㅎㅎ
 
나를 알기 위해서 쓴다 정희진의 글쓰기 2
정희진 지음 / 교양인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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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쓴 글이 나’라는 말을 곰곰 생각해 본다. 여전히 폭넓게 읽고, 보고 쓰는 치열한 정희진의 삶. 그리고 여전히 변태를 가능하게 하는 그만의 구절들. 이 시리즈의 다음 권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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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렌마트 희곡선 - 노부인의 방문.물리학자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65
프리드리히 뒤렌마트 지음, 김혜숙 옮김 / 민음사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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낄낄 웃다 보면 어느 순간 섬뜩해지는 희곡 둘. 풍자와 해학으로 현대 사회의 병폐를 콕콕 집어낸다.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하지? 뒤렌마트 천재 아니야? 예전에 사두고 이제야 읽었는데 진작 읽었더라면 아마 지금쯤 뒤렌마트의 모든 작품을 다 읽었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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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권리는 희생하고 싶지 않습니다 - 절대 외면할 수 없는 권리를 찾기 위한 안내서
김지윤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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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여성, 장애인, 성소수자 등 이른바 ‘비주류’의 인권을 논하는 이런 종류의 책치고는 너무 흔하고 새롭지 않은 사례 나열이라 읽기 지루했다. 게다가 어쨌든 저자는 한국 사회에서 넓은 의미로 기득권인데... 비주류의 권리를 논하는 게 그저 좀 방관자 같은 느낌. 모범답안 같은 소리만 한다. 하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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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이좋다 2021-04-05 21: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수에 대한 관심이 저는 좋더군요. 비주류만 비주류를 얘기해서는 발전이 없죠.

잠자냥 2021-04-05 23:18   좋아요 0 | URL
네 그런데 그 말하는 방식은 새로운 내용이 없어서 진부하게 느껴졌습니다.

under3sky 2021-10-22 13: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읽었습니다
 
티끌 같은 나
빅토리아 토카레바 지음, 승주연 옮김 / 잔(도서출판)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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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도 운명 같은 게 있다. 아니, 운명이라기보다는 잘 알지 못하는데도 왠지 호감이 가는 그런 책. 처음 보는데도 분위기나 느낌이 좋아서 왠지 눈길이 가고 그래서 알고 싶고 궁금해지는 그런 사람 같은 책. 그래서 급기야 읽게 되는 책. 읽고 나서는 아, 그래 역시 내 느낌이 틀리지 않았어, 확인하게 되는 책. 빅토리아 토카레바의 <티끌 같은 나>가 내겐 그런 책이었다. 처음 들어보는 작가였음에도 이 책은 왠지 눈길이 갔고 궁금했다. 아마도 내가 러시아 문학을 좋아하고, 그런 중에 현대 러시아, 그것도 여성 작가의 작품을 접한 적이 거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 나는 러시아 문학을 좋아하고 즐겨 읽으면서도 돌아보면 단 한 번도 여성 작가가 쓴 작품을 읽은 적이 없었다. 도스토예프스키를 비롯해 톨스토이 등 대문호라는 그들의 작품 중에 그려진 러시아 여성이 정말 러시아 여성의 표본일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게다가 오늘날 러시아 여성의 모습과는 또 다를 것이다. <티끌 같은 나>의 첫 작품을 읽으면서부터 나는 그 익숙하면서도 새로운 러시아 세계를 황홀하게 거닐게 된다.  

표제작인 ‘티끌 같은 나’에는 그동안 러시아 문학 작품을 읽으면서 만나지 못한 새로운 여성이 등장한다. 천사에서 유래한 이름인 ‘안젤라’는 카자흐인 마을인 마르트노프카에서 태어났다. 한때 교사였던 어머니는 알코올중독으로 학교에서 쫓겨나고 이제는 소를 돌보며 살아간다. 아버지는 게을러서 거의 방 안에서 나올 줄 모른다. 그런 그녀에게 이 작은 마을은 꿈을 이루기에는 한없이 좁은 우물일 뿐이다. 안젤라는 노래 부르기를 좋아하고, 가수가 되고자 무작정 모스크바로 떠난다. 우여곡절 끝에 영화 관련 일을 하면서 수많은 사람들을 알고 지내는 ‘키라 세르게예브나’를 알게 되고 그이의 집에서 가사도우미 일을 하며 기거하면서 가수가 될 날만을 손꼽아 기다린다. 드디어 오디션 기회가 주어지지만 재능보다 ‘돈’이 필요하다. 가난한 안젤라에게 그런 큰돈이 있을 리가 없고, 안젤라는 이 큰 도시에서 계속 가사도우미, 청소부, 비서, 심부름꾼 역할 등을 하며 노동에 지쳐만 간다. 청소, 다림질, 풀 먹인 셔츠가 꿈에 나올 지경이다. ‘노래라는 정체를 알 수 없는 학 한 마리를 잡겠다며 남이 싸 놓은 똥을 치우고 끊임없이 닦고 청소하느라 세월을 낭비’한다. 과연 안젤라는 자기의 꿈을 이룰 수 있을까?

이 중편은 그야말로 ‘티끌 같은’ 안젤라가 자기의 꿈을 이루기 위해 부단히 애를 쓰는, 그러나 생각처럼 잘 풀리지 않는 과정을 지난하게 보여준다. 그런데 이 ‘안젤라’라는 캐릭터는 지금까지 러시아 문학에서 본 여성 인물과 조금 다르다. 젊고 세파에 찌들지 않은 그녀는 어떤 면에서는 순박하고 성실하면서도 돈 맛을 알지 못하고, 지금까지도 세상에서 당근이 가장 달다고 생각하는 아가씨이다. 순박하다고 해서 누군가에게 착취만 당하는 스타일도 아니다. 자기가 원하지 않는 것, 자신의 길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은 단연코 싫다고 말할 줄도 안다. 그녀의 당당한 면은 가수 오디션 장면에서도 엿볼 수 있다. 무작정 “옷을 벗으라”는 요구에 “왜요?”라고 묻는 장면이나 자신을 좋아하게 된 부잣집 남자 ‘니콜라이’에게 하는 태도만 봐도 그렇다. 가사도우미 일을 하다가 그 집의 부유한 집주인의 정부가 된다는 설정은 어찌 보면 익숙한 장면이기도 하지만 안젤라는 그 부자 남자를 이용하지는 않는다.


키라는 니콜라이의 정부가 된 안젤라에게 부자를 낚았으니 이제는 그의 아이를 낳아 그를 오래도록 잡아두라고 말하는데, 안젤라는 되묻는다. “뭐 하러 그렇게해요?” 사실 니콜라이 또한 안젤라가 아이를 낳을 거라고 생각한다. 자신의 돈 많은 친구들을 보면 애인들이 앞 다투어 아이를 낳았다. 그들의 돈과 안락한 생활을 아이를 앞세워 보장받기 위해서이다. 그런데 안젤라는 다르다. 아이는 언제든 또 낳을 수 있다며 아이를 낙태한다. “아이를 낳기 전에 먼저 나 스스로 다시 태어나야 해요”라고 말하는 것이다. 니콜라이는 내게 돈이 많은데 대체 왜 아이를 지웠느냐고 묻는다. 안젤라는 자신은 ‘무일푼’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부자 애인은 있지만 그의 돈은 자신의 돈이 아닌 것이다. 니콜라이를 얻은 그녀에게 그 자체가 성공이라고 말하는 이들을 안젤라는 이해할 수 없다. 그녀는 다른 사람의 성공이 아닌 자기 자신의 성공을 원하기 때문이다. 그녀 자신만의 성공, 그 길을 가기까지 그리 쉽지는 않아 보인다. 그럼에도 노동하고, 사랑하고, 자기 재능을 꽃 피우고자 끊임없이 애쓴다. 그런 모습들이 인상 깊다.

이 작품의 또 다른 중심은 ‘키라 세르게예브나’가 맡고 있다. 키라는 남편과 함께 살았는데 이름은 인노켄치로, 그는 안젤라 아버지와 공통점이 많았다. 두 사람 다 모두 빈둥거리면서 아내가 벌어다주는 돈으로 살아간다. 게다가 키라는 하나뿐인 아들을 애써서 대학 철학부에 입학시키는 데 성공하지만 그녀의 아들은 온갖 현학적인 용어나 철학 사조는 잘 알아도 무능력한 탓에 여자가 오래 붙어 있지 못한다. 때문에 안젤라처럼 순박하고 성실하면서도 일도 잘하고 재능도 있는 (그러나 돈은 없는 가여운) 아이가 자기 아들의 짝이 되면 참 좋을 것이라고 생각해 둘을 이어주려고 생각하기도 한다. 이처럼 ‘티끌 같은 나’를 비롯해 이 책에 등장하는 남자들은 몇몇 이들을 제외하고는 일하지 않고 아내가 벌어다주는 돈으로 살아가는 무능력한 존재로 그려진다. 그렇지만 딱 거기까지라서 게으르고 무능력하지만 폭력을 쓴다든가 등등 ‘악한’ 남자는 등장하지 않는다. 때로는 그들에게 연민이 느껴질 정도이다. 그들 또한 이 작품에 나오는 여성 못지않게 인생에 시달리는 나약한 인간임이 드러난다. 그래서 내가 이 책을 좀 더 좋아하게 된 것 같다.
 

키라 세르게예브나는 평생 거물을 낚으려고 안간힘을 썼지만, 결국 잉여 인간 취급을 받는 인노켄치와 함께 살았다. 사실 그 대단한 거물들은 막상 가까이에서 겪어 보면 하나같이 배신자에다 비열한 인간뿐이었다. 반면 인노켄치는 한결같이 믿음직했다. 즉 완벽한 사람은 없다. 리더십이 있다는 것은 그만큼 단점이 많다는 걸 의미했다. 무엇이 더 중요한지 수도 없이 갈등하게 된다. 옷으로 비유하면 리더십은 남에게 보여 주기 위한 외출복이고 인품은 평상복이다. 물론 선택은 개인 몫이다. (‘티끌 같은 나’, 27쪽)

그녀는 두 부류의 남편이 존재한다고 생각했다. 첫 번째 부류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사람이고, 두 번째 부류는 돈 많은 남자였다.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남편은 아내한테 붙어서 살아간다. 그러면 여자는 둘이서 함께 움직이는 느낌이 든다. 물론 힘든 일이다. 반면 돈 많은 남자는 자기가 원하는 대로 행동하고 무례하며 결국은 아내를 버린다. 무거운 짐을 홀로 지고 가는 당나귀로 살 것인지, 자기를 마구 짓밟고 척추를 부러뜨려도 참고 살 것인지 선택은 각자의 몫이다. 물론 지조와 성공 두 가지를 다 갖고 싶은 게 사람 마음이다. 하지만 하나를 가지면 하나를 잃는 법이다. (‘티끌 같은 나’, 96쪽)


나는 첫 번째 작품인 ‘티끌 같은 나’보다 두 번째 작품 ‘이유’가 좀 더 좋았다. ‘이유’의 주인공 또한 여성이다. ‘마리나 이바노브나 구시코’는 바쿠의 평범한 러시아 가정에서 태어나서 평범한 청소년기를 지나 교육대학원에 들어가 교사가 된다. 사랑하는 남자를 만나 결혼하지만 삶은 그리 쉽지 않다. 남편은 자신을 온몸으로 사랑해주고 일도 열심히 하는데 그녀는 살아가는 게 버겁기만 하다. 남편과 사랑을 나눌 때도 어디 가서 돈을 구할지, 내일 아침에는 뭘 만들지 시험을 어떻게 볼지 등을 고민한다. 그러던 중에 아들이 태어나고 딸이 태어나고 그녀의 삶은 한층 더 버거워진다. 더는 이렇게 살수 없다고 생각한 마리나는 남편에게 섹스를 거부하는데, 그러자 남편은 곧 그녀를 떠난다.


모성애는 축복이라고들 한다. 하지만 돈과 집안일을 도와줄 사람이 있을 때라야 비로소 행복을 느낄 수 있는 법이다. 이 모든 것이 있고 아이가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아무것도 없이 힘만 든다면 스스로 사람이 아닌 비 맞는 한 마리 말이라고 느낄 수밖에 없다. (‘이유’, 182쪽)


젊은 나이에 남편이 떠나버리고 홀로 남겨진 마리나. 아이들을 키우기 위해 억척스럽게 살아간다. 그러는 중에 루스탐이라는 새로운 사랑도 찾아온다. 이 사랑은 그녀를 행복하게 만든다. 하지만 인생이 그렇듯이 모든 게 그녀 뜻대로 흘러가지는 않는다. 어느덧 세월이 흘러보니 아들도, 딸도 자기가 바란 대로 자라지 않았고, 심지어 알코올중독 며느리에 범죄와 연루된 사위까지 가족이 되어 있다. 왜 다른 이들은 사람답게 사는데 내 자식들만 이 모양일까? 도대체 내가 무슨 실수를 한 것일까? 내가 뭘 그렇게 잘못한 것일까? 러시아 지식인들이 자주하는 질문인 ‘누구의 잘못인가?’ ‘그리고 '무엇을 할 것인가?’를 떠올려 봐도 이미 늦었다. 그토록 사랑한 루스탐과도 종교 이유로 결혼하지 못하고 이제 완전히 홀로 남겨진 마리나는 죽음을 생각하기에 이른다. 그녀는 그렇게 죽고 말 것인가.

‘이유’의 마리나는 조금 자기멋대로인 구석이 있지만 억척스러우면서도 부지런하고 따뜻한 사람이다. 그런 그녀의 성품이 이 작품에서 두 사람의 인생(아니 여러 사람을)을 구한다. ‘루스탐’과 ‘안나’가 그렇다. 어떤 면에서는 절망에 빠져 죽고 싶은 순간에 루스탐이나 안나가 마리나를 살게 해주기도 했다. 마리나와 안나의 연대가 이루어지는 장면에서는 마음속에 따뜻한 바람이 불어오는 것 같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 작품에서 내 마음을 울린 것은 루스탐과 마리나가 재회하는 장면이다. 루스탐과 마리나의 관계는 체호프의 <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이나 윌리엄 트레버의 단편 ‘그 시절의 연인들’을 떠올리게 한다. 불륜이기에 헤어질 수밖에 없었지만 오랜 세월이 흘러 다시 만난 그들. 젊음도 청춘도 모두 사라진 뒤 생의 온갖 고통을 겪고 다시 만난 그들의 모습에서는 서글픔이 밀려온다.


루스탐은 마리나를 쳐다보았다. 그녀에게서 과거에 있던 무언가가 사라졌다. 다름 아닌 젊음의 눈부심이었다. 대신 희미하나마 슬라브인 특유의 선이나 파란 눈은 여전했다. 루스탐은 서서히 그녀에게 익숙해지고 있었다. 삶은 그들을 찌그러뜨리는가 하면 포옹도 하고 버스에서 만난 집시들처럼 소중한 것을 훔쳐 달아났다. 하지만 그들은 살아 있고 아픈 데도 없으며 몸 안에는 마트료시카처럼 옛 모습이 숨겨져 있었다. (‘이유’, 317쪽)



루스탐과 마리나 뿐만이 아니다. ‘첫 번째 시도’의 ‘마라’와 ‘디미치카’, 서로 헤어졌지만, 중년이 되어 한 사람은 아픈 몸이 되고, 그런 그 사람 곁에서 아무렇지 않은 척 돌봐주다가 허무하게 돌아가는 또 다른 한 쪽의 모습. 그 장면 또한 연민 가득하다. 수면제 없이 잠을 자지 못하는 전남편이 약병을 놓고 간다. 그걸 전해주기 위해 자신의 차림새는 전혀 생각하지 못하고 거리로 나가 전남편의 모습을 쫓는 마라. 마라는 열차 맞은편에서 그를 발견한다. 그는 시선에 초점이 없다. 자신과 함께 있을 때는 절대 볼 수없는 모습이다. 그녀와 함께 있을 때는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고 애쓴 거였다. 하지만 혼자가 되자 기운이 빠지면서 절망과 고독이 그를 덮친 것이다. 디미치카는 아내가 배신해도, 뻔뻔해도, 반송장이어도 그녀만 있으면 됐다. 무너진 남편의 모습, 늙어버린 모습을 보고 마라는 그를 부르고 싶었지만 그런 그가 너무 안쓰러워 그저 목이 메어 온다. 한때 사랑했지만 헤어진 채로 늙어버린 두 사람이 재회하는 장면은 인생의 모든 고단함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것 같아 왠지 눈물이 난다.

이렇게 진지하게 썼지만 <티끌 같은 나>는 뜻밖에 웃음이 터지는 장면도 많다. 위트와 유머러스함도 빛난다. 조용조용 담담하게 오늘날 러시아 여성의 꿈과 욕망 삶을 이야기한다. 그러면서도 섬세하고 다정한 어조로 인간 자체에 대한 연민을 잃지 않는다. 어떤 문장은 시처럼 아름답다. 그래서 이 리뷰에서는 인용이 다른 때보다 많다. 그 문장들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싶어서이다.


10년이라는 세월 동안 우리의 사랑은 지치고 매일 입는 작업복처럼 무덤덤해졌다. 하지만 나는 새로운 삶을 시작하지 않을 것이며 내 미래는 스텝 지역처럼 길고도 단조로울 거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우리는 그들을 배웅하고 돌아오는 동안 서로 낯선 사라처럼 말없이 걷기만 했다. 어쩌면 남편 역시 나와 같은 생각을 했는지도 모른다. 우리 아이는 잠에서 깨어나 울고 있었다. 내 삶이 딱해서 아이가 우는 것만 같았다. (‘첫 번째 시도’, 358쪽)

바다 멀리, 한편으로는 그리 멀지 않은 깊은 바다에 배가 떠 있었다. 선장이 망원경으로 바닷가와 그곳에서 조용히 회전하는 발레리나를 발견했다. 해가 지기 시작했고, 대지와 바다, 슬픔, 새, 사람 그리고 그날 하루와 작별 인사를 했다. 하늘 곳곳이 분홍색과 산딸기 색으로 어지러이 물들었다. 어찌나 아름답고 충만한지 누군가와 이별을 앞둔 것 같았다. (‘남이랑 우리가 무슨 상관이죠’. 411쪽)

 
요즘 나는 신간을 사보면 곧 중고로 되판다. 넘치는 책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처음에 이 책도 그럴 거라고 생각하면서 읽기 시작했다. 그런데 나는 이 책을 다 읽은 뒤 책꽂이에 잘 꽂아두었다. 세월이 흘러 읽으면 또 다르게 다가올 것 같다. 그때는 문장, 문장 연필로 밑줄을 그을 것이며, 내가 만일 필사를 한다면 빅토리아 토카레바의 이 작품들을 할 것 같다. 이 이의 다른 작품을 장바구니에 바로 담은 것은 말할 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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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0-05-14 14: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잠자냥 님 덕에 이렇게 처음 알게된 작가인데 번역된 다른 작품들도 있군요. 역시 덕분에 저도 검색해 보았습니다.
저는 일단 이 책을 읽어봐야겠어요. 너무 재미있을 것 같아요. 그러고보면 저도 러시아 여자작가의 글은 읽어본 기억이 없지 뭡니까! 이게 무슨 일이랍니까!! 러시아에 여자 작가가 없는 것도 아닐텐데요.
아무튼 조만간 이 책에 대한 땡투가 들어온다면 저임을 기억하시면 됩니다. 훗.

잠자냥 2020-05-14 14:09   좋아요 0 | URL
그러니까요! 우리가 그렇게 많은(?) 책을 읽었어도 러시아 여성 작가 글을 읽어본 게 없다는 사실이 놀랍지 않습니까?!
이 책이 다락방 님 마음에도 꼭 들길 바라겠습니다.
그리고 미리 땡투 감사합니다. ^____________^

krasibaya 2020-05-20 13: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미있게 읽어봐주시고, 훌륭한 리뷰를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

잠자냥 2020-05-20 14:18   좋아요 0 | URL
댓글을 읽어 보니 이 책과 관련이 있는 분인 것 같습니다.
좋은 책 출간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

2020-11-01 09: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11-01 11:39   URL
비밀 댓글입니다.